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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예 방/추사 김정희

잔서완석루, 아거객래, 불이선란도 - 추사의 걸작

by 연송 김환수 2020. 3. 1.

추사 김정희의 걸작


잔서완석루(殘書頑石樓), 김정희(金正喜,1786-1856), 조선 19세기, 종이에 먹,31.8×137.8cm


추사 김정희 글씨 잔서완석루(殘書頑石樓)

 

잔서완석루(殘書頑石樓) "희미한 글씨가 고집스럽게 남아있는 돌이 있는 누각" 이다.


오래된 글이 남아있고 흔한 돌이 있는 서재, 낡은 책과 울퉁불퉁한 돌이 있는 서재,

또는 고비(古碑)의 파편을 모아둔 서재’의 뜻을 가진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비바람에 깎인 볼품없이 깨진 빗돌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몇 개의 글자가 있는 서재"를 말한다.


殘書頑石樓(잔서완석루) : 오래된 글(책)과 흔한 돌이 있는 서재(평범한 돌집)

書爲蘇侯(서위소후) : 소후를 위해 쓰다

三十六鷗主人(삼십육구주인) : 추사의 다른 호, 강상에서 지낼때 갈매기가 많지 않은 날

 

잔서완석(殘書頑石)에서 잔()은 깨지고 남아 있는 부스러기를 뜻하고 서()는 책이 아니라 글자를 의미한다.

잔서(殘書)는 세월이 흘러 깨지고 뭉그러져 겨우 희미하게 남아 있는 글자 몇 자를 뜻하고,

()은 거칠고 세련되지 못하다는 말이며, 완석(頑石)은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돌을 말하는데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깨지고 부서져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돌을 의미한다.


따라서 "잔서완석(殘書頑石)"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비바람에 깎인 볼품없이 깨진 빗돌(비석,碑石)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몇 개의 글자라는 의미가 된다.

 

편액에는 書爲瀟矦 三十六鷗主人(서위소후 삼십육구주인) "소후를 위해 삼십육구주인(김정희)이 쓰다"라는 관기가 있는데 소후는 김정희의 제자인 유상(柳湘,1821~?)이다.

 

잔서완석루는 금석문을 공부하는 문인의 집에 걸렸을 법한 당호(堂號), 김정희가 유상에게 금석문 연구 및 서법書法에 정진하라는 의미로 써 준 것으로 생각된다.

 

전서와 예서, 해서, 행서의 필법이 함께 녹아있는 추사의 잔서완석루는 제주도 유배후 강상 시절에 쓴 완당(추사)의 대표작이다.

 

모든 글씨가 위쪽에 정연하게 맞춰져 있고 거기서부터 아래로 늘어져 있는데 유홍준 교수는 이를 두고 글씨를 빨래줄에 걸어놓은 듯 하다고 표현했다.

 

완당의 범접할 수 없는 필력과 서권기(書卷氣)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김정희 글씨 중 명작의 하나로 꼽히는 작품이다. 기본적으로 예서(隸書)이지만 전서(篆書)字形을 응용한 데다 해서(楷書)와 초서(草書)運筆法을 섞어 썼기 때문에 횡액으로는 보기 드물게 장중함과 활달함을 함께 느낄 수 있다.

 

글자의 변화는 심하지 않지만 붓끝의 힘은 종이를 뚫을 듯하여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또한 거친 붓질은 희끗희끗한 비백(飛白)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내 깨진 빗돌의 글씨를 연상시킨다. 이것이 김정희 글씨에서 느낄 수 있는 금석기(金石氣)이다.

함추각 행서 대련(涵秋閣行書對聯) 아거객래(雅去客來) , 김정희(金正喜,1786-1856),

조선 1831년 이전, 종이에 먹, 135×32.5cm


雅去客來(아거객래) : 까마귀 떠나자 손님 찾아오네


古木曾嶸雅去(고목증영아거후) 우뚝 솟은 고목 위에 까마귀 떠나가자

夕陽迢遞客來(석양초체객래초) 아스라한 석양 속에 손님 막 찾아오네



함추각 행서 대련(涵秋閣行書對聯) 아거객래(雅去客來)

 

1831년 추사 김정희가 청나라 문인들과 교우관계을 하며 청나라 예술가 주학년(1760~1834)을 위해 쓴 함추각 행서 대련으로 "아거객래(雅去客來)"이다.

 

추사의 함추각 행서 대련(涵秋閣行書對聯)은 먹을 두껍게 쓰고 힘이 넘치는 매우 중요한 작품으로 추사체(秋史體) 형성 직전의 글씨체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서체의 변화 과정을 알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다.

 

대련은 원래 문과 집 입구 양쪽에 거는 대구(對句)를 쓴 것을 말하며, 함추각은 청나라 예술가 주학년(1760~1834)의 서재 이름이다.

 

추사의 명성은 청나라 학계에 널리 퍼졌으며, 1806년 청나라 연경(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주학년 등의 환대를 받은 바 있다.


주허니엔(주학년,朱鶴年)이 그린 '추사전별도(秋史餞別圖, 출처 難勝)'


추사는 군복을 입고 전립(戰笠)을 쓴 모습이다. 추사는 동지부사로 옌징에 파견된 부친 김노경을 수행하는 자제군관(子弟軍官)이었기에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군복을 입어야만 했다.

 

추사는 주학년(朱鶴年, 주허니엔)과 금란지교(金蘭之交)를 맺었다. 추사는 '雅去客來(아거객래)' 행서 대련을 써서 인편으로 옌징의 주허니엔에게 보내 주었다.

 

'雅去客來(아거객래)' 행서 대련, 135 x 32.5cm

 

古木曾嶸雅去後(고목증영아거후) 우뚝 솟은 고목 위에 까마귀 떠나가자

夕陽迢遞客來初(석양초체객래초) 아스라한 석양 속에 손님 막 찾아오네

 

'雅去客來(아거객래)' 대련은 추사가 40대 말에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문의 큰 글자는 예서에 우양쉰(구양순,歐陽詢) 해서체(楷書體)를 가미해서 쓴 행서체(行書體) 글씨다.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 김정희(金正喜,1786-1856), 조선 19세기, 종이에 먹, 54.9×30.6cm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 또는 부작란도 (不作蘭圖)

 

조선 말기의 추사 김정희(金正喜)가 그린 난() 그림이다.

종이 바탕에 수묵으로 그렸고, 크기는 세로 54.9, 가로 30.6이다. 손창근이 소장하고 있다가 2018년에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으며, 김정희의 묵란도(墨蘭圖)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그림으로,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라고도 불린다.

 

이 그림에 붙여진 부작란도(不作蘭圖)’ 혹은 불이선란도라는 제목은 화면의 왼쪽 윗부분에서부터 오른쪽으로 줄을 바꾸며 써내려 간 쓴 김정희의 제시(題詩)에서 연유한다.

 

난초 꽃을 그리지 않은 지 20년 만에 뜻하지 않게 깊은 마음속의 하늘을 그려 냈다. 문을 닫고 마음 깊은 곳을 찾아보니 이것이 바로 유마힐(維摩詰)의 불이선(不二禪)이다.”라 썼다.

조금 작은 글씨로 만일에 누가 그 이유를 설명하라고 강요한다면 역시 또 비야리성(毘耶離城)에 살던 유마힐의 무언(無言)으로 거절하겠다.”라는 글이 추사체(秋史體)로 적혀 있다.

 

이 시와 글은 석가모니와 같은 시기에 살았던 인도의 현인(賢人) 유마힐과 보살들 간의 대화를 기록한 유마힐경(維摩詰經)중 불이법문품(不二法門品)에서 따온 것이다.

즉 선()을 여러 가지 말로 설명하는 보살에게 오직 침묵으로 대항하여 둘이 될 수 없는 선(不二禪)’의 참뜻을 보여 주었다는 이야기이다.

 

김정희는 오랜만에 그린 난초를 성중천(性中天)’이라 하고 이를 다시 불이선에 비유하고 있다. 또 한 번 크게 꺾인 길다란 난초 잎의 오른쪽에는 초서(草書)와 예서(隷書)의 이상한 글씨체로 (난을) 그렸으니 세상 사람들이 어찌 이를 이해하고 어찌 이를 좋아할 수 있으랴.”라고 썼다.


김정희 자신이 그의 화란법(畵蘭法)에서 늘 주장해 온 것처럼 예서와 초서로 난을 그렸다고 밝힌 것이다. 과연 이 그림의 난초는 언뜻 보면 잘 그렸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다만 추사체의 글씨를 특징짓는 기괴(奇怪)라는 표현이 어울린다고 생각된다.

 

이 밖에도 화면의 제일 왼쪽에는 처음에는 달준(達俊)을 위하여 거침없이 붓을 놀렸다. 단지 하나는 있을 수 있으나 둘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오소산(吳小山)이 보고는 빼앗듯이 가져가니 우습다.”라고 쓰여 있다.

 

이 글을 통하여 김정희는 사람들에게 마음 내키는 대로 그림을 그려 주고, 그 친구들은 그의 깊은 마음속의 표현인 난초 그림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어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특별한 지기(知己) 사이나 작화(作畵) 태도는 북송시대부터 발달하기 시작한 중국 사대부 화가들의 전형적인 이상세계를 상기시켜 준다.

 

난초는 담묵(淡墨)으로 힘없이 그려져 이제 곧 시들어 버릴 듯하다. 더구나 여백을 꽉 채운 짙은 먹 글씨들의 위세에 눌려 초라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연약하면서도 군데군데 보이는 비백(飛白)의 묘미와 몇 번씩 구부러진 획의 강인성이 두드러져 보이며 한 송이 꽃이 향기를 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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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의 걸작

<불이선란도> 등 손세기, 손창근 컬렉션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배기동)20181121() 손창근孫昌根(1929년생) 선생으로부터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걸작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를 포함한 손세기·손창근 컬렉션 202304점을 기증받았습니다.


손창근 기증자는 201811212시에 진행된 기증 기념식에서 인사말을 통해 한 점 한 점 정도 있고, 한 점 한 점 애착이 가는 물건들이다.

 

죽을 때 가져갈 수도 없고 고민 고민 생각하다가 박물관에 맡기기로 하였다. 우리나라의 귀중한 국보급 유물들을 나대신 길이길이 잘 보관해주시길 부탁드린다.

앞으로 내 물건에 대해서 손아무개 기증이라고 붙여주세요. 나는 그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합니다.”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손세기·손창근 컬렉션 성격과 기증

 

손세기·손창근 컬렉션은 개성 출신 실업가 고석포石圃 손세기孫世基(1903-1983) 선생과 장남 손창근이 대를 이어 수집한 문화재입니다.

 

이 컬렉션은 15세기 최초의 한글 서적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초간본(1447)17세기 명필 오준吳竣과 조문수曺文秀의 서예 작품 및 18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의 대표적인 한국 서화가인 정선, 심사정, 김득신, 김정희, 전기, 김수철, 허련, 장승업, 남계우, 안중식, 조석진, 이한복 등의 작품, 그리고 오재순, 장승업, 흥선대원군 등의 인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컬렉션은 일찍이 1972년 국립중앙박물관 <한국회화> 특별전을 비롯하여 다수의 전시와 서적에 소개되었으며 한국미술사 연구 분야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져 왔습니다. 손창근 선생은 2005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국립중앙박물관에 컬렉션을 기탁하여 전시와 연구에 활용되도록 하였는데, 금년 11월 아흔 살을 맞이하는 기념으로 조건 없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였습니다.

 

대표 명품

 

이 컬렉션에는 값을 따질 수 없는 지정문화재급 명품이 많은데, 대표작으로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4)이 서울 장의동(장동壯洞) 안 북원에서 마을의 원로들의 장수를 기원한 축하 잔치 장면을 그린 <북원수회도北園壽會圖>가 수록된 북원수회첩北園壽會帖(1716년 이후), 김정희의 40대 작품으로 추사체가 형성되어 가는 과정과 청나라 문인과의 교유交遊 관계를 보여주는 <함추각 행서 대련涵秋閣行書對聯>(1831년 이전) 그리고 김정희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는 <불이선란도><잔서완석루殘書頑石樓>를 들 수 있습니다.

 

<잔서완석루>는 예서 글씨 편액인데, 조선시대 문인들이 지향한 학문과 예술 그리고 기상을 잘 보여주고 있는 명품입니다. <불이선란도>는 난초 그림으로 김정희가 지향한 학예일치의 경지를 보여주는 걸작 중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 용비어천가 龍飛御天歌, 권제정인지鄭麟趾·안지安止 등 편찬, 조선 1447년 초간, 종이에 목판 인쇄, 각 면 35.4×23.5cm


2 북원수회도 北園壽會圖, 북원수회첩北園壽會帖중 제1-2, 정선鄭敾(1676-1754),

     조선 1716년 이후, 종이에 엷은 색, 39.3x54.5cm


3. 함추각 행서 대련 涵秋閣行書對聯, 김정희金正喜(1786-1856), 조선 1831년 이전,

      종이에 먹, 135×32.5cm





4.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 김정희金正喜(1786-1856), 조선 19세기, 종이에 먹, 54.9×30.6cm


5. 잔서완석루殘書頑石樓, 김정희金正喜(1786-1856), 조선 19세기, 종이에 먹,31.8×137.8cm

 

손세기·손창근 부자의 기증과 기부 정신


손세기·손창근 부자는 평생 근검절약하며 부를 형성하고 문화재를 수집하였고 이를 아낌없이 국가와 사회에 기증하는 귀감을 보여 왔습니다.

고 손세기 선생은 일찍이 고향 개성에서부터 인삼 무역 및 재배에 종사한 촉망을 받은 실업가였고, 특히 우리 겨레의 토착 자본의 성장에 기여한 개성삼업조합開城蔘業組合에서도 중심 역할을 수행하였다.

손창근 선생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을 졸업 후 공군을 예편하고, 1960년대 외국인 상사에서 다년간 근무한 이후 사업에 매진하였습니다. 손세기 선생은 생전인 1974년 서강대학교에 <양사언필 초서>(보물 제1624) 등 고서화 200점을 기증했습니다.

 

선친의 나눔 정신을 계승한 손창근 선생은 2008년 국립중앙박물관회에 연구기금으로 1억원을 기부하였으며, 2012년에는 50여 년간 매년 자비로 나무를 심고 가꾸어 온 경기도 용인의 1,000억대 산림 약 200만평(서울 남산의 2배 면적)을 국가에 기부하는 놀라운 결정을 내렸다.

 

이미 산림녹화 공적으로 1966년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기도 한 그는 전대미문의 기부로 2012년 최고 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습니다.

현재 이 산림은 선친의 아호를 딴 석포숲 공원으로 꾸며져 많은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었습니다. 또한 2017년에도 88세 미수연米壽宴을 기념하여 50억 상당의 건물과 함께 1억원을 KAIST에 기부하였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손세기·손창근 기념실 운영

 

국립중앙박물관은 손세기·손창근 부자의 숭고한 기증 정신을 길이 기리고자 상설전시관 2층 서화관에 손세기·손창근 기념실을 마련하였습니다.

 

이 기념실은 손세기·손창근 컬렉션과 함께 국립중앙박물관 서화 소장품을 전시하여 우리나라 서화 유산의 정수를 보여주는 공간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이 기념실의 첫 번째 전시는 김정희 서화에 초점을 맞춘 손세기·손창근 기증 명품 서화전”(11.22.-‘19.3.24.)으로 김정희의 <불이선란도>, <잔서완석루> 등과 김정희 제자 허련이 그린 <김정희 초상>, 그리고 19세기를 대표하는 남계우南啓宇<호접묘도胡蝶猫圖>, 장승업張承業의 회화가 전시된다. 두 번째 기증 명품 서화전은 내년 3월에 열리며, 여기에는 정선의 북원수회첩, <비로봉도> 등이 전시될 예정입니다.

이번 손세기·손창근 컬렉션 기증은 국립중앙박물관을 넘어 대한민국 역사상 손에 꼽을 경사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나라 기증 및 기부 문화가 확산되어 문화강국으로 거듭 나기를 바라는 손창근 기증자의 아름다운 뜻이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국립중앙박물관은 기증품의 전시와 연구 활동을 꾸준히 이어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