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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당2

내고향 황간 향교, 가학루, 월류봉, 회도석, 반야사, 백화산, 궐리사 -- 1탄 황간향교 (黃澗鄕校) 옛 황간고을 교육의 중심지 ~ 황간향교(黃澗鄕校) 충북 지방유형문화재 100호 1981년 12월 26일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100호로 지정되었다. 향교재단에서 관리하고 있다. 본래 조선 태조 3년(1394)에 황간현감으로 있던 하첨(河詹)이 황학루(黃鶴樓)를 세우고, 선현 봉사와 지역 유림의 교육을 위해 현(縣)의 뒷산에 창건하였던 향교이다. 그 후 현종 7년(1666)에 서쪽으로 2리떨어진 토성 안으로 이건하고, 영조 28년(1752)과 광무 5년(1901)년에 각각 중수하였다. 건물의 배치는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을 취하였다. 문묘(文廟) 대성전(大成殿)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집인데, 그 초석에 연화문(蓮華紋)이 조각된 것으로 보아 본래는 인근 사찰건물을 이건한 것.. 2009. 7. 9.
경주이씨 익재공후 청호공파 세거지 고백당, 족보 -- 2탄 고백당 (孤栢堂) 주소 : 영동군 황간면 금계리 11-2 지정문화재 : 향토유적 제62호 16세기 초엽 기묘사화로 인해 중종때 벼슬을 버리고, 이곳 백화산 기슭에 은거하면서 후학을 지도하였으니, 이름은 이우인(李友仁), 자는 사중(士中), 호는 농헌으로 본관은 경주 이씨이다. 그는 이곳에서 후학을 지도하여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는데 그곳을 고백당이라 하고 현판은 미수 허목(許穆)이 지었다. 건물은 3칸의 팔작 기와집이다. 16세기 초엽의 인물로 이름은 이우인 자는 사중(士中), 호는 농헌, 본관은 경주이씨이며 중종14년(1519) 기묘사화때 지평(持平) 집의(執義)의 벼슬을 버리고 이곳 백화산 밑에 은거하면서 후학을 지도하여 많은 인재를 배출했는데 그곳을 고백당이라 하고 현판은 미수 허목이 지었다. 정면 .. 2009. 6.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