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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준 선물 / 주먹만한 침향 수억원에 유통

by 연송 김환수 2014. 8. 4.

자연이 준 선물?주먹만한 침향 수억원에 유통

 

침향의 허와 실

데스크승인 2014.07.29 11:50:53 하정은 기자 | tomato77@ibulgyo.com

 

 

몸에 좋은 기운을 전하는 침향으로 만든 합장주. 사진제공=침향인

 

군복무 과정에서 부적절한 일들을 연이어 겪었던 가수 비는 전역 후 침향염주를 손목에 찼다.

침향의 좋은 기운을 몸에 지니면 액운이 사라진다는 부적의 의미로 부모님이 구해준 침향이다.

 

침향을 부적으로 활용하는 문화는 우리보다 중국이 앞선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침향예찬가로 알려져 있다.

 

이외 우리나라 최고의 CEO로 꼽히는 양현석은 침향염주에 다이아몬드를 박아서 자신만의 악세서리를 착용하는 것으로 유명하고, 영화배우 김혜수는 침향을 피워놓고 일기쓰는 습관이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태우는 향은 물론 염주 합장주까지 침향에 대한 스님들의 관심은 말할것도 없고 이처럼 연예인들에게도 침향바람이 불고 있다.

 

비누나 화장품, 발효차, 침구 등 침향을 활용한 생활용품도 늘고 있다.

 

가라앉는 향을 뜻하는 침향(沈香). 최소 10년 이상된 침향나무에서 채취하는 침향은 체내에서 기()를 발하여 효능을 발휘한다고 알려져 귀한 침향일수록 가격대가 엄청나다.

 

일반적으로 인도나 중국에 비해 베트남산 침향을 최고로 여기지만, 최근엔 베트남 현지에서 가짜로 침향을 만들어 유통하는 사례가 적지 않아 정밀한 감별이 필요하다.

 

침향은 오래된 나무일수록 나무 속 침향 특유의 기름량이 많아서 가격이 올라간다. 보통 우리돈으로 25000원짜리 침향묘목 한 그루가 7년만 지나면 40만원이 된다.

 

2030년된 나무에서 양질의 기름을 추출할 경우엔 주먹만한 침향이 최소 3000만원부터 수억원의 고가에 유통되기도 한다.

 

값어치와 질이 천차만별이다보니, 침향시장은 산삼이나 보이차처럼 부르는게 값인 경우도 많고, 가짜를 진짜처럼 속여 파는 업자들도 상당하다.

 

진위여부를 가려낼 표준이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아시아 각국마다 대표적인 침향협회가 있지만 이들 협회도 매년 정례세미나를 갖고 침향나무에 기름보유량 증가방안 등의 연구 논문을 발표하는 정도일 뿐, 침향감별기준 등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일반적인 감별법에 따르면 진짜 침향은 물에 가라앉고 물에 녹지 않아야 하고, 불태우기 전에는 꿀처럼 달콤한 향이 나고 불태우면 기름이 끓으면서 튀는 양상을 보인다고 김미형 침향인 대표는 귀띔한다.

 

향산업에 종사하는 이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는 능혜스님의 취운향당은 지난해 창립 20주년을 맞아 침향 관련 전시회 침향과 향로전을 열었다. 전시회는 가짜침향, 유사침향, 진짜침향을 실물로 보여줌으로써 침향에 관심있는 이들에게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한 바 있다.

 

침향이 자연이 준 선물이 될지 양심없는 업자들의 탐욕덩어리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

 

[불교신문3030/20147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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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향(沈香)은 '물 속에 가라앉는 향나무'라는 의미로 침향나무는 우리나라에서는 잘 자라지 않고 태국, 미얀마,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의 열대 아열대 우림지대에서 자생한다.

 

침향나무에서 채취하여 만든 침향은 불교경전은 물론이고 성경에도 자주 언급되는 향으로 향기가 강하기 때문에 더운 지방에서는 방부효과와 함께 향료로 이용되었다.

 

우리 조상들은 진짜 침향은 값이 비싸고 구하기도 어려워 자연히 대용 침향을 찾을 수 밖에 없어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국산 향나무를 향으로 대체 사용하였다.

 

 

침향(沈香)

 

서향과에 속하는 상록성 교목인 침향과 백목향의 목재. 약재의 하나이다.

 

주산지는 인도·말레이시아·중국 남부 등지이다. 약재의 형태는 수지가 많이 들어 있는 목재로서 향기가 높고 은은하다. 곤봉상 또는 편형을 띠고 길이는 720에 지름이 1.56정도이다.

 

높이는 20m, 지름은 2m 이상 자란다. 잎은 어긋나고 두꺼우며 긴 타원 모양이고 표면에 윤기가 있으며 길이가 57cm이고 끝이 꼬리처럼 길며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꽃은 흰색으로 피고 잎겨드랑이와 가지 끝에 산형꽃차례를 이루며 달린다.

 

화피는 종 모양이고 끝이 깊게 갈라지며 안쪽에 털이 빽빽이 있다. 수술은 10개이고, 암술은 1개이며 암술머리가 2개로 갈라진다. 열매는 거꾸로 세운 편평한 바소꼴이고 길이가 5cm 정도이며 2개로 갈라진다. 종자는 달걀 모양이고 꼬리 같은 부속체가 있다.

 

나무를 벌채하여 땅 속에 묻어서 수지(樹脂)가 없는 부분을 썩인 다음 수지가 많이 들어 있는 부분만을 얻거나 나무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수지를 수집하여 침향을 만든다. 침향은 의복이나 물건에 향기가 스며들게 하고 또 이것을 태우면 향기를 낸다. 옛날부터 가장 귀한 향 중에 하나로 애용되었다.

 

한방에서는 줄기를 약재로 쓰는데, 진정·건위·통기 작용이 있으며 소화불량·식욕부진·구토·기관지천식·조루·정력 부족 등에 효과가 있다. 인도와 동남아시아에 분포한다. 아시아 남부에 같은 속의 식물이 몇 종이 자라고 있으나 수지가 있는 종은 이 종과 말라켄시스(A. malaccensis)뿐이다.

 

표면은 갈색 혹은 흑갈색으로 황색 분리가 교차하며 약간의 광택이 있다. 질은 견실하고 단단하며 물에 담갔을 때 가라앉아서 침향이라고 하였다. 현존하는 국내 문헌 중에서는 동의보감 東醫寶鑑에서 침향의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성분은 정유로서 벤질아세톤, P-메토실 벤질아세톤 등이 알려져 있다. 동물실험에서는 진정작용이 인정되고 있으며 달인 물은 결핵균을 완전히 억제시키고 티프스균·적리균에 대해서도 강력한 억제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이 약은 주로 하복부에 냉감을 많이 느끼고 월경불순이 있거나, 남자에게 있어 정력이 감퇴되고 소변을 자주 보는 증상에 탁월한 반응을 일으킨다. , 이런 증상에 수반하여 하복통이 심한 사람에게 많이 활용되는 약재이다.

 

호흡기질환으로 만성기관지천식에 호흡곤란이 있을 때에 다른 약물과 배합해서 보조효과를 얻게 된다. 이른바 선천적인 신장기능이 쇠잔하여 천식이 유발되었을 때에 많이 쓰이는데, 이 경우에는 다른 약보다 이 약으로 좋은 치료결과를 얻게 된다.

 

, 급성위장염에 위장이 차고 딸꾹질을 그칠 사이 없이 하여 구토를 일으킬 때에 건위제와 배합하여 사용한다. 이 밖에도 혈관운동성장애로 안면이 붓고 배뇨가 곤란할 때에 다른 약물과 배합해서 사용한다. 그리고 노인이 기운이 허약하여 변비가 있을 때에도 활용된다. 대표적인 처방으로는 침향강기산이 있다.

 

참고문헌한약임상응용(안덕균 외, 성보사, 1986)

중약대사전(江蘇新醫學院 , 성보출판사영인, 1980)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로고

 

 

http://www.침향인.com/index.html

 

자연산 호랑이 무늬 14mm 합장주

판매가 : 1,800,000

제조사 : 침향인

원산지 :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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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향오일 최고침수 10mm 합장주

판매가 : 100,000

제조사 : 침향인

원산지 :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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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사 : 침향인

원산지 : 베트남

 

 

자연산 VIP 침향18mm 108염주

판매가 : 39,000,000원

제조사 : 침향인

원산지 : 베트남

   

 

 

 

 

 

 

 

 

 

 

 

 

 

 

우리나라 창덕궁의 향나무 (수령 750년)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향을 만드는 나무는 침향나무로 우리나라에서는 자라지 않고 태국, 미얀마,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에서 자라는 나무로 진짜 침향은 값이 비싸고 구하기도 어려워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구경조차 힘들었고 자연히 대용 침향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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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년 향나무 보살피는 성전 송학리 김홍순 어르신

2억3천만원 준다고 했지... 그러나 팔지 않았어

 

주희춘 기자 / 승인 2012.04.10 14:02:26

 

김홍순 어르신이 자신의 앞마당에 있는 700년 이상된 향나무앞에 서있다. 오른쪽 마른 부분은 이미 죽은 부분이고 왼쪽 김어르신의 손이 닿아 있는 부분이 살아 있는 줄기로 이 나무에 양분을 공급하는 유일한 생명줄이다.

 

조선땅서 수백년 자란 향나무

일본인에 팔린게 가장 아까워

그런것은 국가가 지켜야 했다.

 

2대 못가는 부자소리

왜 그렇게 집착하는지

돈보다 가치있는게 많다

 

 

송학리 향나무의 자태는 마치 기러기가 모래위에 내려앉은

평사낙안(平沙落雁)모습이다

 

平沙落雁(평사낙안) : 모래톱에 내려앉는 기러기라는 뜻으로

   ① 글씨를 예쁘게 잘 쓰는 것을 비유(比喩譬喩)해 이르는 말

   아름다운 여인의 맵시 따위를 비유적(比喩的)으로 이르는 말

 

2억3천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일본으로 갈거라고 했다. 딱 10년전 일이다. 그렇게 해 보마고 했다. 다음날 새벽 일찍 잠을 깨었다. 갑자기 마음이 허전해 졌다. “내가 저 나무를 팔아야 먹고 사나”

단번에 말을 물리쳤다.

 

매년 향나무를 팔라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올해도 벌써 3~4번 사람이 찾아왔다. 나무를 팔면 헬기를 이용해 가져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런 소리는 쇠귀에 경읽기다.

 

성전면 송학리 김홍순(77)어르신은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마당 한쪽에 있는 향나무 앞으로 간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공손히 절을 올린다.

 

올해로 700~800년이 된 향나무다. 자기가 보는 앞에서만 죽을 고비를 세 번이나 넘겼다. 다 죽어가던 나무에서 푸른 잎이 나왔다. 그 잎이 다시 컸다. 한쪽에서 줄기가 살아났다. 그런 과정을 겪다보니 나무 모양이 절세미인이다.

 

높이는 5.5m다. 직경 1.5m에 달한다. 위쪽은 마치 기러기가 모래톱에 내려앉은 듯한 평사낙안(平沙落雁)의 모습이다. 죽은 고목을 휘감고 올라가는 붉은 줄기는 마치 살아 있는 용을 보는듯 하다.

 

절세미인을 가만 놔둘 리가 없다. ‘송학리 향나무’가 조경업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퍼저 나갔다. 서울에서 부산에서, 강릉에서 사람들이 찾아왔다. 가격은 10년전 2억3천만원을 들었을 때가 마지막이였다. 그 뒤에는 가격을 물어보지도 않고 되돌려 보냈다.

 

한 40년전이던가. 서울에서 사람들이 내려왔다. 서울 요지에 집 두채를 사주겠다고 했다. 향나무만 팔면 서울에 집이 두채나 생길 판이었다. 그러나 딱 거절했다. 그때 그렇게 말했다. “나는 서울에 집 필요없는 사람이요” 다행히 가족들이 그 뜻을 이해해 주었다.

 

경향신문 1982년 3월 6일자에는 식목일을 앞두고 우리나라의 제일가는 관상수를 소개하는 글이 있다. 신문기사에는 수목전문가들의 추천을 받았다며 우리나라 최고 관상수로 서울시 효자동에 있는 ‘500년 이상된’ 향나무를 꼽았다. 신문은 ‘이 나무의 가격이 아파트 한 채에 해당된다는 3천만원이나 된다’고 소개했다.

 

이를 비교해 보자. 송학리 향나무는 40여년 전에 집 두채값을 제시 받았고, 효자동 향나무는 30년 전에 아파트 한 채값인 3천만원을 홋가했다. 누가 비싼지 금방 비교가 된다. 아마도 당시 기사를 쓴 사람은 전남 강진군 송학리에 있는 향나무를 듣지 못한게 틀림없어 보인다.

김홍순 어르신에 따르면 전남지역에는 모양좋은 향나무가 꽤 있었다. 진도 울돌목과 영암 덕진면, 영암 독천, 해남 황산, 순천 송광사에 700~800년 이상된 향나무가 있었다. 젊었을 적에 마치 성지를 순례하듯 좋은 향나무가 있다는 곳을 찾아 다녔다.

 

또 서울 남산공원 향나무와 서울 서초구 4거리에 있는 향나무도 그 연배에 들어가는 향나무들이였다. 그러나 지금 이 향나무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송학리 향나무와 서초구 4거리 향나무, 송광사 향나무가 남아 있을 정도다.

 

향나무의 근황을 살펴보니 영암 덕진면 금강리의 향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13호로 보호됐으나 1975년 완전히 고사됐고, 남산 향나무는 1978년에 역시 고사판정을 받았다. 지금은 마른 가지밖에 없다.

 

김홍순 어르신이 말하는 서초구 4거리 향나무는 서울 서초역 사거리 도로 가운데에 위치한 수령 870년의 향나무를 말하는 것이였다. 이 향나무는 아직도 자태가 좋아서 매년 이맘때 물주기 행사를 하는게 큰 뉴스다. 송광사 향나무는 곱향나무라고 해서 두 그루가 나란히 있는게 장관이다.

 

나머지는 모두 다른 곳으로 팔려갔다. 나머지는 ‘꽤 좋은 가격’에 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팔려 나갔다.

“일단 부산으로 가져간다고 해요. 그곳에서 몇년 정도 다시 키우다가 일본으로 건너간다고 합디다. 그러면 일본에서 다시 미국이나 대만으로 간다고 들었어요. 징한 사람들이지요. 아마도 전라도 좋은 향나무 몽땅 일본으로 넘어갔을 겁니다”

 

향나무는 우리 조상들에게 신성한 나무였다. 향나무는 조상들께 제를 올릴 때 가장 성스러운 향재료이다. 오래된 나무일수록 성스러움이 크다고 믿는다. 또 매향(埋香)이라고 해서 내세의 복을 빌기 위해 오래된 향나무를 강이나 바다에 뭍었다. 훗날 이것을 다시 파내 사용하는 것을 침향이라고 한다. 매양을 동양적인 메시아 신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 때문에 향나무의 역사는 깊다. 보통 500년 이상은 되어야 향나무 대접을 받는다. 매향을 할때도 수백년 이상의 것을 뭍고 침향을 위해서는 보통 300년 이상은 물이나 갯뻘속에서 지낸 것이라야 향내가 제대로 난다고 한다. 향나무는 이렇게 보통 몇 백년씩의 수식어를 달고 다닌다.

 

김홍순 어르신은 그런 나무를 외국으로 팔아 넘긴게 영 탐탁하지가 않다. 아무리 돈이 궁해도 팔게 있고 팔지 말아야 할게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향나무는 참 이상해요. 작은 나무를 키워보면 한 20~30년 동안은 조금 큰 것 같은데 그 후에는 도무지 변하지가 않은 것 같아요. 기백년은 넘어야 모양이 잡힌가봐요. 내가 심은 향나무는 당대가 아니라 2~3대 후손까지는 그 모양을 못보는 것이지요. 우리가 지금 좋은 향나무를 볼 수 있는 것은 먼 윗대 조상님들의 숨결을 느끼는 것이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외국에, 그것도 일본사람들에게 넘겼으니...”

 

일본사람들이 향나무를 사간 것은 일제강점기때가 아니다. 6.25 전쟁이 끝난 시점이였다. 갑자기 향나무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일본사람들이 향나무를 사가는 방법은 그랬다. 먼저 괜찮은 향나무가 있다는 소문이 있으면 부산 사람을 중간에 세워 나무 주인에게 보냈다.

 

중간상인이 강진까지 와서는 협상을 하고 사진을 찍어 일본으로 보냈다. 나무 모양이 괜찮다고 판단하면 일본사람이 직접 한국에 나왔다. 최종 계약이 이뤄지면 본격적으로 거래가 이뤄졌다. 보통 전라남도지역에서 부산까지 향나무를 옮기는 기간이 일주일 이상이 소요됐다.

 

나무의 덩치가 있고, 주로 밤시간을 이용해 옮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부산으로 이동한 향나무는 다시 땅에 심어 5~6년을 키웠다. 1차 적응시간을 갖는 것이다. 부산항에서 일본으로 갈 때는 대형 화물선이 이용됐다. 일본 지역 부두에 하역된 향나무는 다시 일본 현지인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향나무를 구입한 사람이 직접 소유를 하기 위해 구입한 것이였다면 그 사람의 정원에 심으면 끝났지만, 중간상인이 구입한 경우에는 다시 일본땅에서 2~6년을 뭍혀 새 주인을 기다렸다. 나무값을 2억을 치더라도 실제 부대 경비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에서 미국이나 대만으로 팔려간 향나무도 있었다고 하니 전라도를 출발한 향나무의 운명이 얼마나 기구했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참 징한 사람들이예요. 저 나무를 파가서 안착시키는데까지 한 6~7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어찌 보면 대단한 정성이예요. 그런데 그런 나무를 다른 나라에 팔어넘긴 사람들은 뭐랍니까. 국가가 지켜도 지켜야 했어요.”

 

김홍순 어르신이 고집스럽게 지킨 덕분에 강진에 살아남은 ‘송학리 향나무’지만 그렇다고 그 운명이 화려하지는 않다. 주변 물길이 막히면서 세차례에 걸쳐 죽을 고비를 넘겼다.

 

나무모양은 좋지만 전문적으로 관리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생명이 위험하다는게 나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김홍순 어르신이 작고한 후 고집스럽게 저 나무를 그렇게 지킬 사람이 있을지도 걱정이다. 100년 후 저 ‘송학리 향나무’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돈은 아무리 많아도 2대를 가기 어렵습니다. 요즘 보세요. 50년전 부자들 지금 몇이나 남아 있는지. 그런데 돈만 벌려고 난립니다. 그렇게 벌어서 뭘하자는 건지 모르겠어요. 자식들에게 인간답게 사는 법을 가르치는게 가장 좋다고 생각해요.”

 

김홍순 어르신의 덕담을 들으며 마당갓쪽에서 700번째 봄을 맞고 있는 ‘송학리 향나무’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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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군 성전면 송학리 마을 "양반향나무" 로 불리는 김흥순('14년현재 78세)씨의 집 앞에 자라고 있는 이 향나무는 이름에 얽힌 일화를 가지고 있다.

 

조선 영조 때 왕의 명령으로 마을에 당도한 신하들이 말을 타고 집안으로 들어가려는 데 이 나무의 가지에 갓이 걸리자 할 수 없이 말에서 내렸다고 하여 이후부터 양반향나무라 불리고 있다.

 

또 이 향나무는 3번이나 고사했다가 자연적으로 다시 살아난 일 때문에 더욱 귀하게 여겨지고 있다.

 

 

향나무

나무의 높이는 약 20m까지 자란다. 새로 돋아나는 가지는 녹색이고 3년생 가지는 검은 갈색이며 78년생부터 비늘 같은 부드러운 잎이 달리지만 새싹[맹아:萌芽]에서는 잎사귀에 날카로운 침이 달려있다. 잎은 마주나거나 돌려나며 가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밀생한다.

 

꽃은 단성화이며 수꽃은 황색으로 가지 끝에서 긴 타원형을 이루고 4월과 5월에 핀다. 암꽃은 교대로 마주달린 비늘조각 안에 달린다. 열매는 구과(毬果)로 원형이며 흑자색으로 지름 6~8mm이다. 성숙하면 비늘조각은 육질로 되어 핵과(核果) 비슷하게 되고 24개의 종자가 들어 있고 다음해 9~10월에 익는다.

 

향나무는 제사 때 쓰는 향의 재료가 되는 나무로 우리 민족의 삶과 깊은 인연이 있다.

 

향나무는 우리나라 중부 이남을 비롯해 울릉도와 일본 등에 분포하고 있으며 상나무·노송나무로도 불린다. 이 나무는 강한 향기를 지니고 있어 제사 때 향을 피우는 재료로 쓰이며, 정원수·공원수로 많이 심는다.

 

향나무는 향 냄새가 난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고, 상을 당하여 쓰는 나무라 하여 “상나무” 라고도 하는데 목질부를 태워 연기를 낸다.

향나무는 목재를 향으로 써왔기 때문에 향나무라고 하고 상나무 이름은 상중에 망자를 위로하여, 명계(冥界 : 사람이 죽은 후에 가는 저승)로 인도한다는 뜻에서 사용된 명칭이다.

 

 *** 저승 : 이승의 상대개념으로 사람이 죽은 뒤에 그 영혼이 가서 산다고 믿는

                세상

 

상나무 고개 (구로동)

서울시 구로구 구로5동 523­29번지 강남성결교회 앞의 고개를 상나무 고개라 하였다. 고개 너머에 큰 상나무(향나무)가 있었기 때문에 상나무 고개로 불리어졌다.

 

이 상나무는 구로동의 동명 유래가 된 아홉 노인 중 한 분이 심었다고 전해온다. 구로동이라는 동명은 옛날 이 마을에 아홉 노인이 장수하며 살았다 하여 붙여졌다.

 

수령 500년 이상이었던 이 상나무는 마을의 신목(神木)이기도 하여서 나무 아래에서 기우제나 마을의 평안과 번영을 비는 제사를 지냈다. 마을사람들은 이 고개를 넘을 때면 반드시 나무에 절을 하고 지나갔다고 한다.

 

그러나 이 나무는 내부가 썩어들어 가고 도시개발 등으로 관리하는 사람이 없게 되면서 20여년 전에 베어지고 말았다. 지금 구로5동 새마을금고 자리가 상나무가 서 있던 터이다.

 

*** 상나무 : <향나무>의 강원도 사투리

서울 구로구 지역에서는 마을 노인들이 ‘측백나무’라고 부르지 않고 ‘큰 상나무’라고 부르며,

상나무는 향나무의 강원도 사투리인데 구로구 지역에서 측백나무를 ‘상나무’라고 부르고 있다.

 

향나무는 심산지역, 특히 울릉도에 많이 자랐으나 대부분 없어지고 관상용으로 흔히 심는다. 목재는 연필을 만드는데 많이 쓰이며 그외 조각재 ·가구재 ·장식재 등에 사용한다. 한국 ·일본 ·중국 및 몽골에 분포한다.

 

침엽의 길이가 3~5mm로 작고 비스듬히 눕는 것을 눈향나무(var. sargentii), 지면으로 기어가는 것을 섬향나무(var. procumbens)라고 한다. 원줄기가 없고 곧게 자라지 않고 여러 대가 한꺼번에 자라서 공처럼 둥근 수형이 되는 것을 둥근향나무(var. globosa) 또는 옥향나무라고도 한다.

 

한국 특산종으로 가지와 원대가 비스듬히 자라다가 전체가 수평으로 퍼지며 대부분 침엽으로 되는 것을 뚝향나무(var. horizontalis)라고 하며, 잎의 일부가 은백색 또는 금색으로 되는 것을 은반향나무 ·금반향나무라고 한다. 어린 가지가 옆으로 꼬이며 침엽이 없는 것은 나사백(var. kaizuka)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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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 제158호 울진 죽변면 후정리 향나무 (蔚珍 後亭里 향나무)

면적 : 1,243(보호구역)

지정(등록): 1964.01.31

소 재 지 : 경북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 297-2번지

 

바닷가 도로 옆에서 자라고 있는 울진 죽변리의 향나무는 나이가 5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밑동에서부터 가지가 2개로 갈라져 있다. 한 가지는 높이가 11m, 둘레 1.25m이며, 다른 가지의 높이는 10m, 둘레가 0.94m이다.

 

향나무 옆에는 서낭당이 있으며,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신성하게 여겨 신목(神木)으로 삼고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울릉도의 향나무가 이곳까지 떠내려온 것이라고 한다.

 

이 향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로서 민속학적·생물학적 보존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죽변항의 향나무는 울릉도에서 파도에 떠밀려 와 자라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바닷물에 나무가 떠 내려와 죽지 않고 살았다는 사실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따지기보다 숨겨진 의미를 새겨 보아야 할 것 같다.

 

 

 

조선왕조실 록 숙종 28(1702) 528일자를 검색해 보면 이런 기록이 있다.

 

삼척진영의 대장 이준명이 울릉도에서 돌아와 그곳의 지도와 자단향(紫檀香)등을 바쳤다.

울릉도는 2년 걸러 한번씩 지방 관리를 보내어 특산물 을 가져오도록 하고 있다.

올해에는 삼척이 차례에 해당되기 때문에 이준명이 울진의 죽변진(竹邊津)에서 배를 타고 이틀 만에 돌아왔는데, 제주도보다 갑절이나 멀다고 한다.

 

죽변과 울릉도의 거리는 약 130km, 목포와 제주도의 거리는 146km이다. 거리로야 가깝지만 섬과 섬 사이를 빠져나가는 제주도보다 망망대해 울릉도가 훨씬 멀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 정조 18(1794) 강원도 관찰사는 심진현은 월송만호 한창국을 시켜서 울릉도를 조사한 내용을 조정에 보고한다.

‘421일 배 4척과 80명의 병사를 싣고 출발하여 도중에 폭풍우를 만나 1척을 잃어버리고 23일 경에 황토구미진(黃土丘尾津, 지금의 태하리?)에 상륙하였습니다. 산으로 올라가서 살펴보니, 오른편은 바 위가 병풍처럼 둘러쳐 있으며 그 위에는 향목정(香木亭)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2년마다 향나무를 베어 갔 던 까닭에 향나무가 점차 듬성듬성해지고 있었습니다. 자단향(紫檀香) 2토막 비변사로 올려 보냅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단향은 모두 향나무의 다른 말이다.)

 

이런 기록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동해안의 지방 관리들을 정기적으로 울릉도에 파견하여 섬의 상황을 살피고 향나무를 비롯한 특산물을 가져왔다.

 

왕실과 귀족들의 제사의식과 고급가구 등에서 쓰이는 향나무를 대부분 강원도 일대와 울릉도에서 조달하였다.

 

울릉도 출입의 전진기지인 죽변은 일찍부터 향나무의 중요성을 깨우쳤을 터, 흔히 심고 가꾸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고 이 나무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죽변읍 화성리에 있는 천연기념물 312호를 비롯하여 이 일대에 특히 오래된 향나무가 많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

울진화성리의 향나무 (천연기념물 제 312호)

경북 울진군 죽변면 산190외 1필

 

수령(樹齡)은 500여년이며,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14m, 가슴높이의 둘레가 4.2m, 뿌리 근처의 둘레가 9m, 가지 밑의 높이가 2.3m이고, 가지의 길이는 동쪽이 6.3m, 서쪽이 3.6m, 남쪽이 6.8m, 북쪽이 9.2m이다. 측 백나무과의 상록교목(常綠喬木)이며 1년생 가지는 녹색(綠色)이고 2년생은 적갈색(赤褐色), 3년생은 자갈색(紫褐色)이 돌며 동아(冬芽)가 뚜렷하지 않다.

 

잎은 7-8년생(年生)까지는 침엽(針葉)뿐이고 점차 비늘잎이 생긴다. 침엽(針葉)은 3개씩 윤생(輪生)하지만 호생(互生)하는 것도 있고 비늘잎은 교호대생(交互對生)한다. 꽃은 4월에 피고 열매는 다음해 10월에 자주빛으로 익는다.

 

열매는 둥글고 1-6개의 종자가 들어 있으나 보통 3개씩이다. 관상용으로 주로 가꾸고 목재(木材)는 향기와 무늬가 좋아서 귀중한 가구재와 향료로 사용한다.

 

이 향나무가 자라고 있는 곳은 화성리(花城里)의 꽃방마을이라고 하며 마을 뒤의 언덕에서 자라고 있으며 누가 심었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뒤에 잡목림(雜木林)이 있고 주변에는 풀이 우거졌다.

 

 

이 나무는 마치 두 나무가 서로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 한 나무로

천연기념물 제158호인 울진 죽변면 후정리 향나무 (蔚珍 後亭里 향나무)이다.

 

경북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 297-2

수령(樹齡)은 500년이며,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11m(가슴높이의 지름 1.25m), 10m(가슴높이의 지름 0.94m)(이간성(二幹性))이다.

 

향나무는 상록침엽교목으로 큰나무는 수고 20m이상 가슴높이 줄기직경 1m이상에 이른다. 잎에는 두가지 형이 있는데 인엽(鱗葉)과 침엽(針葉)이 그것이다. 독특한 푸르름과 밀생하는 잎으로 말미암아 향나무는 아름답게 보인다.

 

붉은 심재는 제사때 향료로 쓰인다. 죽변리의 향나무는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면서 바로 앞에 있는 동해를 내려다보고 있다. 줄기가 지상에서 두갈래로 분기해 있다. 말로는 울릉도의 향나무가 이곳까지 떠내려온 것이라 하나 전설일 뿐이다. 향나무에 이웃해서 서낭당 당집이 있다. 동민들은 이 나무를 신목(神木)으로 취급해서 숭앙하고 있다.

 

성황사(城隍祠)라는 자그마한 당집은 바다 신에게 제사를 올려 풍어와 무사안녕을 빌던 당산나무임을 알려준다.

멀리 울릉도를 다녀온 관리들이 고유제를 지내던 나무이기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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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목(香木)

향기가 강하여 목재를 얇게 깎아서 향으로 쓰거나 불구(佛具) 또는 부챗살 등을 만드는 데 쓰는 나무의 총칭으로 열대지방에서만 자라는 것이 많고 값이 비싸며, 산지와 상품에 따라 차이가 있고 시대와 나라에 따라 좋아하는 향목의 종류도 다르다.

열대지방에서만 자라는 것이 많고 값이 비싸며, 산지와 상품에 따라 차이가 있고 시대와 나라에 따라 좋아하는 향목의 종류도 다르다. 서양에서는 성서에도 나타난 바와 같이 유향(乳香:감람나무과 보스웰리아속 Boswellia의 수지)과 몰약(沒藥:감람나무과 코미포라 Commiphora abyssinica의 수지) 등 특정한 수종의 수지(樹脂)를 사용하였다.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침향(沈香)이나 가라(伽羅)라고 하는 향목이 중요시되어 왔으나 어떤 나무인지 밝혀지지 않았고, 몇 종류의 나무가 같이 사용된 것 같다. 특히 나무를 벌채해서 쓴 것이 아니라 땅속에 오랫동안 묻었다가 화석처럼 된 것을 파서 썼기 때문에 원식물의 동정이 매우 어려우나 서향과의 아퀼라리아(Aquillaria agallocha) 또는 이와 가까운 종류의 식물로 보고 있다.

 

백단과의 백단(白檀:Santalum album)의 심재는 향기가 강하고 목재가 치밀하므로 향의 원료로 사용함과 동시에 불상과 부챗살을 만드는 귀중한 재료였다. 백단속에는 20종 내외가 있으나 인도의 마이소르 지방에서 생산되는 것을 최고품으로 친다. 북아메리카의 서부 연안지방에서 자라는 리보케드루스(Libocedrus decurrens)와 동부에서 자라는 연필향나무(Juniperus virginiana) 등은 향기가 있어 연필재로 사용된다.

 

壇君(단군)은 하늘제사(祭天)를 주관하는 어른(天君)으로 제단(祭壇)의 주위에는 향기나는 단목(檀木:香木)이 많이 심고 가꾸어져 있었다.

단군(檀君)에서의 단()은 단목(檀木)인데 땅()에서의 광명(光明)이다. 단목은 향목(香木)으로 땅()에서 자라므로 향목(香木)은 땅에서의 향기(香氣)를 지니고 있다.

 

향나무는 신성한 제사를 올릴 때나 그윽한 절간에서 피우는 향불의 재료이며 주변을 신성하고 그윽한 분위기로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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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양지리의 향나무

 

 

 

양주 양지리의 향나무

 

경기 남양주시 오남읍 양지리 530. 천연기념물 제232호.

지정번호 : 천연기념물 제232호

지정일 : 1970년 11월 05일 / 면적 7,851m

소재지 :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 양지리 530

 

추정수령 500년. 지정사유 노거수. 국가 및 개인 소유. 나무높이 13m, 가슴높이 줄기둘레 3.25m, 뿌리목 줄기둘레 7m, 가지밑 줄기높이 2m, 가지퍼짐은 동쪽 5.7m, 서쪽 5.7m, 남쪽 7.5m, 북쪽 8.5m이다.

 

이곳의 향나무는 땅 위 2m 정도 되는 곳에서 줄기가 5갈래로 갈라져서 고루 수관을 확장하고 있다. 그 중 서쪽으로 뻗은 가지가 가장 큰데, 줄기의 밑둘레가 1.8m나 된다.

 

원줄기의 동쪽 밑부분은 향의 재료를 얻기 위해 깎아서 줄기에 심한 상처가 나 있다. 거창 신씨(愼氏) 선조의 묘 옆에 심은 나무라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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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는 다음과 같이 천연기념물로 보호하고 있다.

또한 울릉도 도동항 주변 해안 절벽에는 세계 최고령 향나무로 추정되는 수령 2500년의 향나무 한 그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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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울릉도 향나무

울릉도 도동항 부두의 2500년 된 향나무 보실래요?

 

05.07.19 18:45  배상용(iulleung)

 

▲ 2005년 브랜다 태풍으로 한쪽 가지가 유실되기 전의 2500년 향나무

ⓒ 서귀용

울릉도 도동항에 내리면 관광가이드들이 관광객들에게 침이 마르도록 손가락을 가리키며 자랑하는 것이 도동항 기암절벽 위에 있는 2500년 된 향나무이다. 울릉도의 지킴이로서 오랜 세월을 버텨오다 지난 85년 10월 5일 브랜다 태풍으로 한쪽 가지가 꺾인 아픈 과거가 있는 향나무이다.

 

▲ 한쪽 가지가 부러진 현재의 2500년 향나무 ⓒ 배상용

▲ 부러진 향나무를 공개입찰하여 용의 모양으로 조각하여 전시되고 있는

     현재의 향나무 가지 ⓒ 배상용

원래 울릉도에 자생하는 향나무인 '석향'은 석산 암벽에서 수천년 동안 해풍에 시달리며 돌에 있는 모든 수분과 진기를 흡수 하면서 겨우 수명을 이어왔다. 그러는 동안에도 희귀한 모양과 향기로 사람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었다. 이 향나무는 사람의 피부병에 최고의 약재로 알려져 있으며, 썩지도 상하지도 않아서 골동품으로도 최고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울릉도가 자랑하는 신비의 나무이다.

 

▲ 2500년 향나무의 유실된 가지부분은 소장하고 있는 서귀용씨  ⓒ 배상용

 

당시, 브랜다 태풍으로 부러진 가지를 울릉군에서 공개입찰 하였고 현재 울릉도에서 기념품 매장을 운영하는 서귀용(63)씨가 구입, 용이 승천하는 모양으로 조각을 해 20년이 넘는 지금까지 소장하고 있다.

 

서씨에 따르면 도동항의 향나무는 높이 6m, 직경1.5m, 둘레가 4.5m나 되며 절벽 돌 틈 사이에 뿌리를 내린 보기 드문 거목으로, 나이테가 너무 정밀해 정밀한 측정이 필요하다고. 당시 정명당 고대 미술전시관을 운영하는 백정당 고대 미술평가위원들에 측정을 맡겨 실측 조사한 결과, 수령이 최소한 4~5천년 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예로부터 도동항의 향나무는 주민들 사이에 구전으로 2000년이 넘은 향나무로만 전해 내려오고 있는 상태. 서씨는 좀 더 검증된 관계 기관으로부터 정밀조사를 받아 정확한 나이를 산정, 실제 4000~5000년이 넘는 향나무로 판정이 되면 세계 관련학계에 보고를 해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기념품들과 함께 울릉도 향나무 박물관을 만들어 보는 것이 평생소원이라고 말한다.

 

▲ 서귀용씨가 운영하고 있는 매장 내부 모습 (용의 모습으로 조각된 부러진 가지가

    보인다) ⓒ 배상용

 

울릉도의 장구한 역사를 말해주려는 듯, 자연의 모진 풍파를 거치며 한쪽 가지를 잃고서도 꿋꿋히 버티고 서 있는 2500년 된 향나무. 울릉도 주민들은 섬사람들의 끈끈한 개척정신을 대변해 주는 것이 바로 저 향나무라 자랑스럽게 말하곤 한다.

 

덧붙이는 글

2500년된 향나무를 관람하시려면 울릉도 도동 "독도박물관" 입구에 위치한 "5000년 향나무 기념품점"에 가시면 구경 하실 수 있습니다.

*배상용 기자는 울릉도관광정보사이트 울릉도닷컴현지운영자이자 울릉군발전연구소 소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