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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학 방/성씨 연원(박)

박씨(朴氏)의 유래

by 연송 김환수 2014. 7. 25.

박씨(朴氏)의 유래

박씨(朴氏)는 우리 민족 가운데서도 귀화족(歸化族)이 없는 가장 순수한 혈통임을 자랑하는 성씨(姓氏)로서 신라(新羅)의 시조왕(始祖王)인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유일한 시조(始祖)로 하여 모두 한 가닥에 근원을 두고 있다. 박씨끼리는 되도록 혼인을 피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박씨(朴氏)의 본관(本貫)은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ㆍ‘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ㆍ‘박씨선원대보(朴氏璿源大譜)’ 등에 무려 300본 이상이 기록되어 있으나, 그중 시조(始祖ㆍ중시조)가 분명하게 밝혀지고 후손이 현존하는 본관(本貫)은 70여 본으로 추정된다.

그 중 주요 본관은 밀양(密陽)ㆍ반남(潘南)ㆍ죽산(竹山)ㆍ함양(咸陽)ㆍ순천(順天)ㆍ고령(高靈)ㆍ무안(務安)ㆍ충주(忠州)ㆍ상주(尙州)ㆍ창원(昌原)ㆍ음성(陰城)ㆍ영해(寧海)ㆍ영암(靈巖)ㆍ진원(珍原)ㆍ고성(固城)ㆍ울산(蔚山)ㆍ운봉(雲峰)ㆍ춘천(春川)ㆍ비안(比安)ㆍ강릉(江陵)ㆍ월성(月城)ㆍ태인(泰仁)ㆍ면천(沔川)ㆍ삼척(三陟)ㆍ문의(文義)ㆍ장성(長城) 등이다.

▲ 경주시 탑정동에 있는 신라의 오릉(五陵ㆍ사적 제172호)은 모두 5기로,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ㆍ왕비 알영(閼英)ㆍ2대 남해왕ㆍ3대 유리왕ㆍ4대 파사왕의 능묘라고 한다.

▲ 내려다본 오릉(五陵)과 신라 시조 박혁거세를 봉사하는 제전인 숭덕전(崇德殿).

시조(始祖) 박혁거세(朴赫居世)의 탄생에 대해서는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 등에 다음과 같은 설화(說話)가 기록되어 있다.

기원전 69년 신라(新羅)의 전신인 사로(斯盧)의 육부 촌장(六部村長)들이 어느 날 알천(閼川) 언덕에 모여 나라를 다스릴 군장(君長)을 추대할 것을 의논하고 하늘에 제례(祭禮)를 올리던 중, 고허촌장 소벌도리(蘇伐都利)가 우연히 양산(陽山ㆍ지금의 경주 남산) 밑의 나정(蘿井)이란 우물이 있는 곳을 바라보니 울창한 숲 사이에서 오색채운(五色彩雲)의 서기(瑞氣)가 뻗치고 그 가운데 한 마리의 용마(龍馬)가 소리쳐 울며 절하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소벌공(蘇伐公)이 그곳에 가보니 알 같기도 하고 박[瓠] 같기도 한 포(胞)가 있어 기이하게 여겨 헤쳐 보니 그 속에서 사내아이가 나왔다. 소벌공(蘇伐公)이 이 아기를 받들어 동천(東泉)에 목욕시키니 몸에서 광채가 나며 새와 짐승도 춤을 추어, 여섯 마을 촌장(村長)들은 그의 출생을 신기하게 여겨 아기에게 하례를 올리고 받들며 길렀다.

그 후 기원전 57년에 신라(新羅)의 초대왕으로 삼아 위호(位號 ㆍ작위와 명호)를 거서간(居西干)이라 하고 나라 이름을 서라벌(徐羅伐)이라 하였으며, 박[瓠]과 같은 알에서 나왔다 하여 성(姓)은 박(朴)으로 하고 명왕(明王)ㆍ성왕(聖王) 혹은 철인(哲人)ㆍ현지자(賢智者)라는 뜻으로 이름을 혁거세(赫居世)라 칭했다.

그 후 제22대 지증왕(智證王) 때 국호가 신라(新羅)로 개칭되었으며, 신라왕국 992년 동안 56대(代)의 왕계(王系)가 박(朴)ㆍ석(昔)ㆍ김(金) 삼성(三姓)에 의해 교체 반복되었는데, 그 중에서 박씨왕(朴氏王)은 시조왕 박혁거세(朴赫居世)를 비롯하여 2대 남해왕(南解王)ㆍ3대 유리왕(儒理王)ㆍ5대 파사왕(婆娑王)ㆍ6대 지마왕(祗摩王)ㆍ7대 일성왕(逸聖王)ㆍ8대 아달라왕(阿達羅王)ㆍ53대 신덕왕(神德王)ㆍ54대 경명왕(景明王) 등 모두 10명이다.

▲ 경주시 배리에 자리한 신라 제6대 지마왕릉(祗摩王陵ㆍ사적 제221호)

 

▲ 경주시 탑동에 자리한 신라 제7대 일성왕릉.(逸聖王陵ㆍ사적 제173호).

▲ 경주시 배리에 있는 배리삼릉(拜里三陵ㆍ사적 제219호)은 서쪽으로부터 각각 신라 제8대 아달라왕, 제53대 신덕왕, 제54대 경명왕 등 박씨 3왕의 능이라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아달라 왕릉의 소재에 대한 기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신덕왕과 경명왕에 대한 장사(葬事)기록이 현재의 위치와는 전혀 다른 데다가 제각기 다른 곳으로 기술하고 있으며, 신라 초기의 아달라왕과 700여 년이나 시간적 간격이 있는 하대 신덕왕과 경명왕의 능이 한 곳에 모여 있다고 보기도 어려워 이 삼릉이 앞의 세 왕의 능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 경주시 배리에 있는 신라 제55대 경애왕릉(景哀王陵ㆍ사적 제222호).

박씨(朴氏)의 세계(世系)는 박혁거세(朴赫居世)의 증손(曾孫)인 5대 파사왕(婆娑王)과 7대 일성왕(逸聖王ㆍ유리왕의 맏아들이며 8대 아달라왕의 아버지) 대(代)에서 크게 갈라졌다. 파사왕계(婆娑王系)는 뒤에 영해(寧海)ㆍ면천(沔川)ㆍ강릉(江陵)ㆍ해주(海州)ㆍ비안(比安)ㆍ이산(尼山)ㆍ구진(邱津)ㆍ계림(鷄林)ㆍ노성(魯城)으로 분적(分籍)되었으며, 일성왕계(逸聖王系)는 그의 26세손인 경명왕(景明王)과 경애왕(景哀王)에서 다시 갈라져 경애왕계(景哀王系)는 계림대군파(鷄林大君派)를 이루었고, 경명왕계(景明王系)는 그의 아홉 아들이 각기 다음과 같이 분파(分派)하였다.

(1) 밀성대군(密城大君) 언침파(彦?派)는 밀양(密陽)ㆍ반남(潘南-상계 실전으로 제외됨)ㆍ진원(珍原)ㆍ문의(文義)ㆍ영암(靈巖)ㆍ창원(昌原)ㆍ봉산(鳳山)ㆍ구산(龜山)ㆍ태안(泰安)ㆍ의흥(義興)ㆍ진주(晋州)ㆍ나주(羅州)ㆍ선산(善山)ㆍ여주(驪州)ㆍ문주(文州)ㆍ인제(麟蹄)ㆍ고성(固城)ㆍ언양(彦陽)ㆍ운봉(雲峰)ㆍ강진(康津)ㆍ은풍(殷豊)ㆍ태인(泰仁).
(2) 고양대군(高陽大君) 언성파(彦成派)는 고령(高靈).
(3) 속함대군(速咸大君) 언신파(彦信派)는 함양(咸陽)ㆍ삼척(三陟)ㆍ군위(軍威).
(4) 죽성대군(竹城大君) 언립파(彦立派)는 죽산(竹山)ㆍ음성(陰城)ㆍ고성(固城)ㆍ평산(平山).
(5) 사벌대군(沙伐大君) 언창파(彦昌派)는 상산(商山)ㆍ상주(尙州)ㆍ충주(忠州)ㆍ평택(平澤)ㆍ남원(南原).

(6) 완산대군(完山大君) 언화파(彦華派)는 전주(全州)ㆍ무안(務安)ㆍ순창(淳昌).
(7) 강남대군(江南大君) 언지파(彦智派)는 순천(順天)ㆍ춘천(春川)ㆍ여수(麗水).
(8) 월성대군(月城大君) 언의파(彦儀派)는 월성(月城).
(9) 국상공(國相公) 교순파(交舜派)는 울산(蔚山) 등으로 관적(貫籍)되었다.

박씨는 다른 씨족과는 달리 역대 세계(世系)가 비교적 분명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밀성대군파(密城大君派)의 밀양 박씨가 주류를 이루어 박씨 인구의 70∼80%를 차지하고 있는데, 밀양(密陽)ㆍ반남(潘南)ㆍ고령(高靈)ㆍ함양(咸陽)ㆍ죽산(竹山)ㆍ순천(順天)ㆍ무안(務安)ㆍ충주(忠州) 박씨를 ‘8박(八朴)’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이 8본(本)이 역사상 많은 인물을 배출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도시조(都始祖) 박혁거세(朴赫居世)가 일찍부터 한반도의 동남단(지금의 경주 지방)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개국한 신라(新羅)는 반만년의 민족사상 가장 찬란한 문화를 이룩했으며, 고려(高麗)와 조선(朝鮮)에 이르기까지 많은 명신(名臣)과 재상(宰相)을 낳아 명문의 자손임을 긍지로 삼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