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원주 이씨(原州李氏)는 신원주 이씨(新原州李氏)와 구원주 이씨(舊原州李氏)로 갈려 있는데, 동본이조(同本異祖)라고 한다. 중국으로부터 건너와 원주(原州)에 정착한 이춘계(李椿桂)의 이씨를 구원주 이씨(舊原州李氏)라 하고, 경주 이씨(慶州李氏)에서 분관(分貫)한 원주백(原州伯) 이신우(李申佑)의 후손을 신원주 이씨(新原州李氏)라 부른다. 따라서 이 두 원주 이씨는 서로 혈통(血統)이 다르다.
신원주 이씨(原州李氏)의 비조(鼻祖)는 표암공(瓢巖公) 이알평(李謁平)이며, 시조(始祖)는 소판공(蘇判公) 거명(居明ㆍ경주 이씨의 시조)의 12세손으로 고려 때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내고 나라에 공이 있어 원주백(原州伯)에 봉해진 신우(申佑)이다.
그러므로 후손들은 경주 이씨(慶州李氏)에서 분적(分籍)하여 본관(本貫)을 원주(原州)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으며, 후대로 내려오면서 판도공파(版圖公派)ㆍ월성군파(月城君派·경주 이씨로 환원)ㆍ대장군공파(大將軍公派·종파)ㆍ시랑공파(侍郞公派·뒤에 경원군공파와 강릉공파로 분파됨) 등 크게 네 계통으로 갈라져서 세계를 잇게 되었다.
가문을 빛낸 대표적 인물로는 13세손 중흥조(中興祖) 반계(攀桂)가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로 신호위 영중랑장(神虎衛領中郞將)을 지내고, 공민왕(恭愍王) 때 예부상서(禮部尙書)ㆍ병부상서(兵部尙書) 등에 올랐으나 고려의 국운이 기울자 운곡(云谷) 원천석(元天錫)과 함께 강원도 원주 치악산(稚岳山)에 은거하여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지켰다.
태종(太宗)과 친분이 두터웠던 반계(攀桂)는 누차 영상(領相)의 벼슬이 제수되었으나 끝내 거절하자, 태종이 그를 만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식음(食飮)을 전폐하다가 7일만에 “은(殷)나라가 이미 망했으니 누구의 녹(祿)을 먹겠는가(殷室己喪誰粟司食)”하며 죽었다. 그 절의(絶義)를 가상히 여긴 태종이 영의정(領議政)에 추증(追贈)하고 경원군(慶原君)에 추봉(追封)하였다.
반계(攀桂)의 아들 4형제 중 장남 이(頤)는 정주학(程朱學)에 정통한 유학자였으나 태종이 홍문관 대제학(弘文館大提學)의 벼슬을 내려 관직에 오를 것을 종용하자 자식들을 불러놓고, “충효(忠孝)는 우리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가훈이다. 일찍이 아버지께서 벼슬을 버리시고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켜 순사(殉死)하셨으니 내가 벼슬에 나가는 것은 자식으로서의 어찌 신자(臣子)의 도리라 하겠는가?” 하면서 음독자결하여 충의의 가통을 지켰다.
반계(攀桂)의 둘째 아들인 견(肩)은 정산현감(定山縣監)으로 나가 선정을 베풀어 고을 백성들이 그의 청백한 치적을 영원하게 기리기 위하여 ‘영사불망철비(永思不忘鐵碑)’를 세웠으며, 그의 묘가 있는 여주군(驪州郡) 북내면(北內面) 운촌리(雲村里)는 그의 호(號)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견(肩)의 아우 요(腰)와 족(足)도 모두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병을 핑계로 사직하고 향리로 돌아와 여생을 보내니, 세상 사람들은 이들 형제를 ‘일문사충(一門四忠)’으로 일컬었다.
▲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자 벼슬을 버리고 해남(海南)의 무진산(無塵山)에 산막을 짓고 세상을 등지며 은거한 이영화(李永華)의 묘와 유허비 및 신도비.
반계(攀桂)의 아우 을계(乙桂)의 후손에서는 손자 영화(永華)가 유명하다. 그는 감찰(監察)ㆍ직산현감(稷山縣監)을 거쳐 단종 때 강릉대도호부사(江陵大都護府使)로 나갔으나,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개탄하여 벼슬을 버린 후 홀로 해남(海南)의 무진산(無塵山)에 산막을 짓고 세상을 등지며 은거하였다. 후세 사람들은 그의 절의를 숭모하여 산막이 있었던 마을 이름을 산막리(山幕里)라 하며, 그의 묘가 있는 산 이름을 이영산(李英山)이라 부르고 있다.
▲ 임진왜란에 순절한 이계정(李繼鄭)을 비롯해 이숙형(李淑亨)·이호(李琥)·이원해(李元海)·이대행(李大行) 등 원주 이씨의 아홉 충신을 배향하는 사당으로 1732년 세워진 영산사(英山祠).
▲ 전남 해남군 마산면 화내리 영산사(英山祠) 소장 문서(전남문화재자료 159호)와 통례원 봉례(通禮院奉禮) 이을계(李乙桂)와 아들 성균생원 분(蕡)의 단소(左) 및 9충기적비(九忠紀績碑).
원주 이씨 문중이 배출한 충신 중의 한 사람인 계정(繼鄭)은 반계(攀桂)의 증손으로 임진왜란 때 충청도 수군절도사(忠淸道水軍節度使)로 수군(水軍)을 이끌고 통제사(統制使) 이순신(李舜臣)을 도와 왜적(倭賊)을 섬멸했으며, 한산대첩(閑山大捷)에서 적탄(敵彈)을 맞아 순절(殉節)하였다.
▲ 한산대첩에서 순절한 전남 영암군 영암읍 학송리 이계정(李繼鄭)의 묘.
이외에도 임진왜란 때 용맹을 떨친 충신들이 많이 배출되었는데 의병으로 활약한 황(璜)과 순(珣), 선무원종2등공신(宣撫原從二等功臣)에 녹봉된 호(琥) 등이 있으며, 효자로서 이름난 의춘(毅春)ㆍ회박(會樸)ㆍ내흠(乃欽) 등이 원주 이씨의 가문을 빛낸 인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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