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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절 방/제사,축문,지방 등

건원릉 기신친향례 홀기(健元陵 忌辰親享禮 笏記)

by 연송 김환수 2014. 3. 30.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산 2의1번지 소재 동구릉(사적 193호)의 건원릉(健元陵)에서 기신 친향례(忌辰 親享禮)가 매년 거행된다.

건원릉은 조선왕조 창업자이신 태조고황제(이성계,1355~1408)의 능이다.

 

 

매년 6월27일에 거행되는 기신친향례(忌辰親享禮)란 역대제왕과 왕후에 대한 의식을 지칭하는 것으로 조선시대의 국가의식의 규정인 오례의(五禮儀) 중의 길례(吉禮)에 해당된다.

 

 

 

왕과 왕비가 승하한 후에는 사계절과 납일(臘日.그믐)속절(俗節.

명절이나 절기일)에 왕이 거가출궁(車駕出宮)하거나 왕세자가 친행하여 제례를 행하였고,

 

담제(譚祭.상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환원하는 제사)후에는 경복궁 문소전(文昭殿)에서 승하한 기일(忌日)에 기신제를 지냈으나

 

문소전이 임진왜란때 소실된 이후로는 산릉에서 기신제 까지 지내게 되었다가 인조14년(1636)오향대제(五享大祭.정월 초하루.한식.단오.추석.동지)를 혁파하고 한식날에만 제사 지내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각 능에서 기신제로 봉행한다.

 

 

忌辰(기신) : 죽은 이나 또는 죽은 이와 관련(關聯) 있는 사람을 높이어 그의

                  제삿날을 이르는 말이다.

 

기신(忌晨) : 한국고전용어사전

죽은 사람의 제삿날. 음주하지 않고 매사에 삼가 조심해야 하기 때문에 기일(忌日)이라고도 함. ≪주문공가례(朱文公家禮)⇀«에 의하면 기일에는 술을 마시지 않고 고기도 먹지 않으며, 음악도 듣지 않고 검은 건[黲巾]·흰 옷[素服]·흰 띠[素帶]를 착용하도록 하고 저녁에 외실(外室)에서 자도록 하였음.

 


 


[제례절차]

제 관 (祭官) = 예조에서 제관을 선정한다.

제 계 (齋戒) = 제례를 행하기 전에 임금과 신하가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한다.

출 궁 (出宮) = 임금의 행렬이 궁궐을 나서서 산릉에 도착하는

                   행차

제수진설(祭需陳設) = 제례의식 전에 전사관(典祀官)과 능사

                   (陵司)가 제수를 진설하는 의식.

예능소(詣陵所) = 임금이 제례를 행하기 위해 소여를 타고

                   홀살문 앞에 도착한다.

예판위(詣版位) = 임금이 정자각의 판위(版位)에 서쪽을 향한다.

참 신 (參神) = 신을 맞이하기 위하여 모든 제관이 네번 절한다.

관세취이(盥洗就位) = 제관이 손을 씻고 정해진 위치에 나아

                            간다.

감 작 (監爵) = 임금이 제주를 따르는 것을 살펴본다.

삼상향(三上香) = 신을 모시기 위하여 향을 세번 피운다.

초헌례(初獻禮) = 초헌관(임금)이 첫째잔을 신위전에 올리고

                       대축(大祝)이 낭독한다.

독 축 (讀祝) = 축문을 읽는다.

아헌례(亞獻禮) = 아헌관(영의정)이 둘째잔을 신위전에 례

종헌례(終獻禮) = 종헌관(좌의정)이 셋째잔을 신위전에 례

사 신 (辭神) = 신을 보내기 위하여 네번 절한다.

망 료 (望燎) = 제례에 쓰인 축문을 태우는 례

환 궁 (還宮) = 임금의 행렬이 다시 궁궐로 돌아가는 행차

철 찬 (撤饌) = 전사관과 제관들이 제찬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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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원릉기신친향례홀기(健元陵忌辰親享禮笏記)

 

(不唱) 執禮師贊者謁者贊引入就階聞拜位重行北向四拜訖就位

(불창 집례사찬자알자찬인입취계문배위중행북향사배흘취위)

: 집례는 찬자,알자,찬인을 인솔하여 먼저 국궁사배하고 봉무할 자리로 나아가시오.

 

贊引引監察及典祀官陵司大祝祝史齋郞入就拜位

(찬인인감찰급전사관능사대축축사제랑입취배위)

: 찬인은 감찰과 전사관 능사 대축 축사 재랑이 절할 자리로 들어서도록 인도하시오.

 

監察及典祀官以下鞠躬四拜興平身<贊者傳唱>

(감찰급전사관이하국궁사배흥평신)

: 감찰이하 전사관 모든 집사는 무릎을 꿇고 네 번 절하고 일어나도록 인도하시오.

<찬자가 전창한다>

 

贊引引監察及典祀官陵司大祝執尊者詣盥洗位洗訖

<近侍二人包含>

(찬인인감찰급전사관능사대축집준자예관세위세흘)

<근시2인포함>

: 찬인은 감찰,전사관,능사,대축등 모든 집사를 관세위로 인도하여 손을 씻게 하시오.

 

贊引引監察及典祀官陵司大祝執尊者各就位

(찬인인감찰급전사관능사대축집준자각취위)

: 찬인은 모든 집사를 각자가 봉무 할 자리로 인도하시오.

 

謁者引亞獻官終獻官入就拜位

(알자인아헌관종헌관입취배위)

: 알자는 아헌관 종헌관이 절할 자리로 들어서도록 인도하시오.

 

參班員入就拜位

(참반원입취배위)

: 참반원은 절할 자리로 들어시오.

 

아헌관,초헌관 제집사관세위

 

황사손 초헌관관세위

 

贊禮導皇嗣孫入小次

(찬례도황사손입소차)

: 찬례는 황사손께서 소차로 들어가시도록 인도하시오.

 

典祀官陵司進饍訖

(전사관능사진찬흘)

: 전사관과 능사는 재물을 올리시오.

 

贊引引典祀官陵司祝史齋郞降復位

(찬인인전사관능사축사재랑강복위)

: 찬인은 전사관,능사,축사,재랑이 제자리로 내려가도록 인도하시오.

 

贊禮詣小次前跪奏請行禮

(찬례예소차전궤주청행례)

: 찬례는 소차 앞에 나아가 행례 시작을 아뢰시오.

 

진설. 재물을 올리라할때 덮개를 벗기면 된다.

 

贊禮導皇嗣孫出小次

(찬례도황사손출소차)

: 찬례는 황사손께서 소차에서 나오시도록 인도하시오.

 

贊禮導皇嗣孫訖盥洗位帨

(찬례도황사손흘관세위세흘)

: 찬례는 황사손께서 관세위로 나아가 손을 씻도록 인도하시오.

 

贊禮導皇嗣孫陞自東階詣版位北向立

(찬례도황사손승자동계예판위북향립)

: 찬례는 황사손께서 동계로 올라가 판위에 북향하여 서시도록 인도하시오.

 

贊禮跪奏請皇嗣孫鞠躬四拜興平身

(찬례궤주청황사손국궁사배흥평신)

: 찬례는 무릎 꿇고 네 번 절하고 일어나시도록 아뢰시오.

 

謁者引亞獻官終獻官鞠躬四拜興平身

(알자인아헌관종헌관국궁사배흥평신)

: 알자는 아헌관 종헌관에게 네 번 절하고 일어나도록 하시오.

 

參班員鞠躬四拜興平身

(참반원국궁사배흥평신)

: 참반원은 무릎을 꿇어 네 번 절하고 일어서시오.

 

行 初獻禮.

(행 초헌례)

초헌례를 행하시오

 

贊禮導皇嗣孫詣尊所西向位

(찬례도황사손예준소서향위)

: 찬례는 황사손께서 준소 앞에 나아가 서향하여 서시도록 인도 하시오.

 

執尊者擧冪

(집준자거멱)

: 집준자는 멱을 드시오.

 

近恃1人酌酒1人以爵受酒

(근시1인작주1인이작수주)

: 근시1인은 제주를 따르고 1인은 작에 제주를 받으시오.

 

贊禮尊皇嗣孫詣神位前北向立

(찬례존황사손예신위전북향립)

: 찬례는 황사손이 신위앞에 이르러 북쪽을 향해 서시도록 인도하시오.

 

 

준소에 준비된 제주와 작. 일명 술상이다.

황색은 황사손이 머물 소차(小次)이다.

 

贊禮跪奏請皇嗣孫跪

(찬례궤주청황사손궤)

: 찬례는 무릎을 꿇고 황사손께 굻어 앉도록 아뢰시오.

 

亞獻官終獻官諸執事跪

(아헌관종헌관제집사궤)

: 아헌관 종헌관 집사는 모두 무릎을 꿇고 궤하시오

 

近侍1人捧香盒1人捧香爐皇嗣孫之左右

(근시1인봉향합1인봉향로황사손지좌우궤진)

: 근시1인은 향합을 받들고, 1인은 향로를 받들고 황사손 좌우로 나아가 꿇어 앉으시오.

 

贊禮奏請皇嗣孫三上香

(찬례주청황사손삼상향)

: 찬례는 황사손께 향합의 향을 세번 나누어 향로에 넣도록 아뢰시오.

 

近侍香盒香爐奠于案

(근시향합향합전우안)

: 근시는 향합과 향로를 향상에 올려 놓으시오.

 

近侍1人以酌

(근시1인이작궤진)

: 근시1인은 작을 받들고 나아가 꿇어 앉으시오.

 

贊禮奏請皇嗣孫執爵獻爵

(찬례주청황사손집작헌작)

: 찬례는 황사손께 작을 받들어 올리도록 아뢰시오.

 

以爵?受近侍奠于神位前

(이작궤수근시전우신위전)

: 근시는 작을 받아 신위전에 올리시오.

 

贊禮奏請皇嗣孫俯伏興沙退北向

(찬례주청황사손부복흥사퇴북향궤)

: 찬례는 황사손께 부복했다 일어나서 조금 뒤로 물러나 무릎을 꿇고 다시 북쪽을 향해 궤하도록 아뢰시오.

 

大祝啓蓋西栖正著

(대축계개서서정저)

: 대축은 제수의 덮개를 열고 저분의 자루가 서향하도록 가지런히 시접에 올려 놓으시오.

 

參班員

(참반원궤)

: 참반원은 모두 무릎을 꿇고 궤하시오.

 

大祝進神位之右東向讀祝文訖

(대축진신위지우동향궤독축문흘)

: 대축은 신위 오른쪽으로 나아가 동쪽을 향해 꿇어 앉아 축문을 읽으시오.

 

贊禮奏請皇嗣孫俯伏興平身

(찬례주청황사손부복흥평신)

: 찬례는 무릎을 꿇고 황사손께서 부복했다 일어서시도록 아뢰시오.

 

亞獻官終獻官執事及參班員俯伏興平身

(아헌관종헌관집사급참반원부복흥평신)

: 아헌관과 종헌관 모든 집사 및 참반원은 부복하였다 일어서시오.

 

贊禮導皇嗣孫還復位

(찬례도황사손환복위)

: 찬례는 황사손께서 판위로 가시도록 인도하시오.

 

贊禮導皇嗣孫降復位

(찬례도황사손강복위)

: 찬례는 황사손께서 소차로 내려 가시도록 인도하시오.

 

贊禮導皇嗣孫入小次

(찬례도황사손입소차)

: 찬례는 황사손께서 소차에 들어가시도록 인도하시오.

 

行 亞獻禮

(행 아헌례)

아헌례를 행하시오.

 

贊引引祝史齋郞詣洗位帨

(찬인인축사재랑예관세위세흘)

: 찬인은 축사와 재랑을 각자 관세위로 인도하여 손을 씻게 하시오.

 

贊引引祝史齋郞各就位

(찬인인축사재랑각취위)

: 찬인은 축사와 재랑을 각자 자기가 봉무 할 자리로 인도하시오.

 

謁者引亞獻官詣洗位帨

(알자인아헌관예관세위세흘)

: 알자는 아헌관께서 관세위로 나아가 손을 씻도록 인도하시오.

 

謁者引亞獻官陞自補階詣尊所西向立

(알자인아헌관승자보계예준소서향립)

: 알자는 아헌관께서 보계로 올라가 준소 앞에 이르러 서쪽을 향해 서시도록 인도하시오.

 

執尊者擧冪齋郞酌酒祝史以爵受酒

(집준자거멱재랑작주축사이작수주)

: 집준자는 멱을 들고 재랑은 제주를 따르고, 축사는 작에 제주를 받으시오.

 

謁者引亞獻官詣神位前北向立

(알자인아헌관예신위전북향립)

: 알자는 아헌관께서 신위전에 나아가 북쪽을 향해 서도록 인도하시오.

 

謁者贊亞獻官

(알자찬아헌관궤)

: 알자는 아헌관이 꿇어앉도록 하시오.

 

齋郞捧爵亞獻關之右

(재랑봉작아헌관지우궤수)

: 재랑은 작을 받들고 아헌관 우측에 꿇어앉아 작을 드리시오.

 

亞獻官執爵獻爵

(아헌관집작헌작)

: 아헌관은 작을 받들어 올리시오.

 

以爵?受祝史奠于神位前

(이작궤수축사전우신위전)

: 축사는 아헌관 좌측에서 작을 받아 신위전에 올리시오.

 

謁者贊亞獻官俯伏興平身

(알자찬아헌관부복흥평신)

: 알자는 아헌관께서 부복하였다 일어서도록 인도하시오.

 

謁者引亞獻官出降復位

(알자인아헌관출강복위)

: 알자는 아헌관께서 나아가 제자리로 내려가시도록 인도하시오.

 

 

 

行 終獻禮

(행 종헌례)

종헌례를 행하시오.

 

謁者終獻官詣?洗位帨

(알자종헌관예관세위세흘)

: 알자는 종헌관을 관세위로 나아가 손을 씻게 인도하시오.

 

謁者引終獻官陞自補階詣尊所西向立

(찬의인종헌관승자동계예준소서향립)

: 알자는 종헌관을 인도하여 보계로 올라가 준소 앞에 이르러 서쪽을 향해 서시도록 인도하시오.

 

執尊者擧冪齋郞酌酒祝史以爵受酒

(집준자거멱재랑작주축사이작수주)

: 집준자는 멱을 들고 재랑은 제주를 따르고, 축사는 작제 제주를 받으시오.

 

謁者引終獻官詣神位前北向立

(알자인종헌관예신위전북향립)

: 알자는 종헌관께서 신위전에 나아가 북쪽을 향해 서시도록 인도하시오.

 

謁者贊終獻官

(알자찬종헌관궤)

: 알자는 종헌관이 꿇어 언도록하시오

 

齋郞捧爵終獻官右

(재랑봉작종헌관우궤수)

: 재랑은 작을 받들고 종헌관 우측에 꿇어 앉아 작을 드리시오.

 

終獻官執爵獻爵

(종헌관집작헌작)

: 종헌관은 작을 받들어 올리시오.

 

以爵受祝史奠于神位前

(이작궤수축사전우신위전)

: 축사는 종헌관 좌측에서 작을 받아 신위전에 올리시오.

 

謁者贊終獻官俯伏興平身

(알자찬종헌관부복흥평신)

: 알자는 종헌관께서 부복하였다 일어서도록 하시오.

 

謁者引終獻官出戶降復位

(알자인종헌관출소강복위)

: 알자는 종헌관께서 나아가 제자리로 내려가시도록 인도하시오.

 

贊禮導皇嗣孫出小次陞自東階詣版位北向立

(찬례도황사손출소차승자동계예판위북향립)

: 찬례는 황사손께서 소차에서 나와 동계로 올라가 판위에 북향하여 서시도록 인도하시오.

 

贊禮奏請皇嗣孫鞠躬四拜興平身

(찬례궤주청황사손국궁사배흥평신)

: 찬례는 무릎을 꿇고 황사손께 네 번 절허고 일어나시도록 아뢰시오.

 

謁者引亞獻官終獻官鞠躬四拜興平身

(알자인아헌관종헌관국궁사배흥평신)

: 알자는 아헌관 종헌관에게 네 번 절하고 일어서시도록 하시오.

 

參班員鞠躬四拜興平身

(참잔원국궁사배흥평신)

: 참반원은 네 번 절하고 일어서시오.

 

 

 

大祝撤著闔蓋

(대축철저합개)

: 대축은 저분을 거두어 시접안에 넣고 제수의 덮개를 덮으시오.

 

行 望燎禮

(행 망료례)

망료례를 행하시오.

 

贊禮導皇嗣孫詣望燎位北向立

(찬례도황사손예망료위북향립)

: 찬의는 초헌관께서 망료위에 이르러 북향하여 서시도록 인도하시오.

 

贊者詣望燎位西向立

(찬자예망료위서향립)

: 찬자는 망료위에 이르러 서향하여 서시오.

 

大祝捧祝出自正門詣望燎位西向立

(대축봉축출자정문예망료위서향립)

: 대축관은 축을 받들고 정문을 나와 망료위이 이르러 서향하여 서시오.

 

可燎

(가료)

: 축을 태우시오.

 

大祝取祝版燎於坎

(대축취축판료어감)

: 대축관은 축을 받들고 요소에 가서 불사르시오.

 

贊禮奠禮畢

(찬례궤전예필)

: 대축관은 초헌관 좌측에 서서 예를 마쳤음을 고하시요.

 

贊禮導皇嗣孫還復位入小次

(찬례도황사손환복위입소차)

: 찬례는 황사손께서 제자리로 돌아가 소차에 들어가시도록 인도하시오.

 

贊引引監察及典祀官陵司大祝祝史齋郞俱復拜位

(찬인인감찰급전사관능사대축축사재랑구복배위)

: 찬인은 감찰 및 전사관 능사 대축 축사 재랑을 인도하여 제자리로 돌아가시오.

 

 

축문을 올려놓는다.

 

 

'소전대'는 헌릉과 건원릉에만 있다.

과거에는 축문을 올려놓기 위한 용도였으나

지금은 위의 것으로 대신한다.

 

 

'예감' 축문을 불사르는 곳이다.

 

監察及典祀官陵司大祝祝史齋郞鞠躬四拜興平身

(감찰급전사관능사대축축사재랑국궁사배흥평신)

: 감찰 및 전사관 능사 대축 축사 재랑은 무릎을 꿇고 네 번 절하고 일어나시오.

 

禮畢

(예필)

: 모든 예를 마쳤습니다.

 

(不唱) 典祀官陵司各師其屬撤禮饌以降乃退

(불창) 전사관능사각사기속철례찬이강애퇴

 

 

 

 제향이 거행 되기전 본원의 종현들

 

제관 봉무자

 

수령방백들

홍살문앞에 제관행렬이 당도

취타대들이 풍악을 울리며 행진

 

 

 

노부꾼들

삼정승 육판서 행렬

궁중 내시들

가운데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이사장 (흰옷 모자 쓰신 분)

 임금이 초헌례를 올리기 위해 침전

 

삼정승 육판서가 도열  

제향 진행

제향이 거행되고 있는 홍살문 안의 침전 

 

 초헌례순에 따라 독축부복

독축시의 참반원 부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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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朝王陵圓 笏記解設 (조선조왕능원 홀기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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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숭혜전 춘향대제 헌집분정(獻執分定)

경순대왕릉 춘향대제 헌집분정기

 

원성왕릉 춘향대제 헌집분정

 

내물왕릉 추향대제 헌집분정

 

춘향(추향)대제 헌집분정

春享(秋享)大祭 獻執分定

1. 초헌관

2. 아헌관

3. 종헌관

4. 대축관

5. 집례관

6. 전사관

7. 찬자

8. 알자

9. 찬인

10. 판진설

11. 사준

12. 봉향

13. 봉작

14. 전작

15. 직일

1. 初獻官

2. 亞獻官

3. 終獻官

4. 大祝官

5. 執禮官

6. 典祀官

7. 贊者

8. 謁者

9. 贊引

10. 判陳設

11 司尊

12 奉香

13. 奉爵

14. 奠爵

15. 直日


 

釋奠儀笏記 用語解說 (석전의홀기 용어해설)

 

초헌관(初獻官) : 五聖位(오성위)에 첫잔을 드리는 제관

                                   (祭官,五梁冠祭服-焚香 奠幣 飮福 望瘞 禮를 행함)

                                   (제관,오량관제복- 분향 전폐 음복 망예 예를 행함)

                            향을 사르고 첫 잔을 올리는 제관으로 제사의 주인이다.

 

아헌관(亞獻官) : 오성위에 두 번째 잔을 드리는 제관

                             (四粱冠祭服 사량관제복)

 

종헌관(終獻官) : 오성위에 세 번째로 끝잔을 드리는 제관(三梁冠祭服)

 

분헌관(分獻官) : 東西從享位(동서종향위)에 분향하고 잔을 드리는

                             제관(三梁冠祭服삼량관제복)

 

대축(大祝) : 축문을 읽는 제관(一梁冠祭服일량관제복)

 

당상집례(堂上執禮) : 홀기를 부르는 제관(二梁冠祭服이량관제복)

                                   한문 홀기를 읽어 진행을 담당하는 제관.

 

당하집례(堂下執禮) : 東西廡(동서무)진행을 담당하는 제관

     (二梁冠祭服(이량관제복), 현재는 동서무에 위폐를 모시지 않아 대성전

    월대(月臺)밑에서 해설을 담당함) /  밑에 서서 해설을 담당하는 제관.

 

 

전사관(典祀官) : 제상을 차리는 일을 맡은 제관

                             제사에 제수를 준비하고 제상을 차리는 일을 맡은 제관


 

찬자(贊者) : 제사 때 의식의 순서를 읽는 사람

 

알자(謁者) : 獻官(헌관) 인도인 / 초헌관을 안내하는 집사.

 

찬인(贊引) : 分獻官(분헌관) 인도인, 의식 진행을 돕는 사람 

                      헌관과 대축을 안내하는 집사.

 

판진설(判陳設) : 제사 음식의 진설을 감독하고 지시하는 사람,

                                     學生이라고 한다)

 

사준(司尊) : 술동이를 맡은 집사

 

봉향(奉香) : 향합을 받드는 집사(執事)

 

봉로(奉爐) : 향로를 받드는 집사

 

봉작(奉爵) : 술잔을 받드는 집사

 

전작(奠爵) : 술잔을 神位前(신위전)에 올리는 집사

                      헌관에게서 술잔을 받아 신위 앞에 올리는 집사

 

직일(直日) : 제례 전반에 대하여 자문을 하는 사람

 

사준(司樽)준소에서 술을 잔에 따르는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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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춘향 집사파록(書院春享 執事爬錄)

- 초헌관(初獻官) : 원장. 첫잔드리기

- 아헌관(亞獻官) : 두 번째 잔

- 종헌관(終獻官) : 마지막 세 번째 잔

- 집례(執禮) : 홀기를 맡아 부른다

- 대축(大祝) : 축을 쓰고 읽는다.

- 전사관(典祀官) : 제수를 진설할 때까지 담당

- 알자(謁者) : 초헌관 제례 봉행 도운다

- 찬인(贊引) : 아헌관, 종헌관을 도운다.

- 판진설(判陳設) : 제수를 법도에 맞게 진설한다.

- 봉향(奉香) : 향합을 받들어 헌관 우측에 간다.

- 봉로(奉爐) : 향로를 받들어 헌관 좌측에 간다.

- 봉작(奉爵) : 술잔을 헌관에 드린다.

- 전작(奠爵) : 헌관으로부터 잔을 받아 신위전에 드린다.

- 사준(司尊) : 술을 맡아 잔을 부어준다.

- 통갈(通喝) : 집사 파록을 낭독한다.

- 학생(學生) : 원로로서 제례 전반에 대해 고문에 응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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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執事) : 절차에 따라 일을 진행시키는 사람

 

홀기(笏記) : 식순(式順)

 

관세위(洗位) : 손 씻는 자리

 

배위(拜位) : 절하는 자리

 

복위(復位) : 제자리로 돌아옴

 

진홀(搢笏) : 홀을(제복) 홀 꽂이에 꽂음

 

집홀(執笏) : 홀을 손에 잡음

 

국궁(鞠躬) : 존경의 뜻으로 몸을 굽힘

 

준소(尊所) : 술 항아리 있는 곳

 

예제(醴齊) : 담은 지 얼마 안 된 단술 (犧樽(희준)에 담으며 초헌관이 올린다)

 

앙제() : 중간정도 익어 푸른빛이 도는 술 (象樽(상준)에담으며 아헌관이

     올린다.

 

청주(淸酒) : 겨울에 빚어 여름에 익은 술 (山罍(산뢰)에 담으며 종헌관과

    분헌관이 올린다)

 

醴齊一日宿酒. 盎齊三日宿酒. 淸酒五日宿酒라고도한다.

    (예제는 일일숙주요. 앙제는 삼일숙주요. 청주는 오일숙주라고도한다.)

 

현주(玄酒) : 태고 때에는 술이 없어서 물로 행례(行禮)했는데 뒤의 왕이 옛것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현주라고 했다.(물의 빛이 검게 보여 현이라고 함.

    상준이나 산뢰에 담는다.)

 

명수(明水) : 그늘진 곳에서 뜨는 것으로 달빛 아래의 물은 달에서 난다고 여겨

                       明()이라 한다. (희준과 상준에 담는다)

() : 수판(手板-有位者 朝見時 有事則 書于以備遺志)

(() : 술잔이나 축을 올려놓는 받침대

() : 제기이름 보 (바깥은 네모지고 담는 안 부분은 둥근 제기,

                   수수나 보리쌀 등을 사용)

() : 제기이름 궤(쌀 찹쌀 등을 사용)

(() : 육장 탐 (肉醬)

() : 수건 세 (女子佩巾)

() : 도마 조 (제향 때 희생을 얹는 도구)

() : 제기이름 변 (竹器)

() : 제기이름 두 (木器)

() : 술잔

() : 술잔(술독)

() : 따르다 (액체를 퍼내다)

() : 덮개

() : 묻다

() : 구덩이

() : 通用 (古來 原文에 준()으로 사용)

               준과통용 (고래 원문에 준()으로 사용)

() : 과통용 (古來 原文로사용)

               ()과 통용 (고래 원문로사용)

예차헌관(預差獻官) : 석전즉후 교중회의를 통하여 차기 석전의 제관을 정해야 하는데 이것을 祭官分定(제관분정)이라 한다. 천망(薦望) 망첩(望帖)을 보내면 망첩을 받은 후보자는 함부로 사퇴하지 못하는 불문율(不文律)이 있다.

부득이한 경우 사유를 갖춘 사단(辭單)을 교중에 제출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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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전대제(釋奠大祭) - 제관,순서(홀기)

http://blog.daum.net/yescheers/8598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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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王陵과 祭享 奉行

        社團法人全州李氏大同宗約院 理事 李 泰 雨

I. 王陵의 發展과 由來

고대에는 왕의 무덤을 구(丘)라 하였고, 백관은 봉(封)이라 하고 사서인의 무덤을 묘(墓)라 하였다. 이후 중국의 한고조(漢高祖)12년 4월 황제가 붕어하여 5월에 장안(長安) 북산에 예장하니, 그 규모가 방대하여 구(丘)라 하기에 맞지 않아, 장릉(長陵)이라 한 것이 능(陵)의 시원이 되었으며, 이 후 황제, 황후, 왕, 왕후, 후비의 무덤을 능으로 부르게 되었다.(문헌통고 38책)

 

그 후 명(明) 나라 태조(太祖)의 효릉(孝陵)에서부터 시작된 능제도는 전방후원(前方後圓)의 형태로 변화하여 새로운 설계로 혁신 되었다. 우리나라의 장묘(葬) 문화도 고대에는 고인돌 문화로 시작되었으나 신라시대에 이르러 왕과 왕후의 무덤을 평지지대에 크게 모셔 영생을 상징하였고, 고려시대에는 산지 능선지대에 정혈의 정기(精氣)가 서린다 하여 땅 기운을 받고자 산의 능선을 선택하였고, 조선시대에 이르러 비산비야(非山非野) 지대에 산혈(山穴) 정맥의 기(氣)가 서린다 하여 땅 기운의 정혈(精穴)의 기를 받고자 산도 아니오 들도 아닌 곳에 장례문화를 순차적으로 발전시켜왔다.

 

왕릉의 변천사를 살펴보면, 삼국시대 왕릉과 통일신라시대의 왕릉의 문화는 풍수의 틀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왕릉이 성립되었으며, 고려왕릉의 문화는 통일신라 말에 중국에서 풍수이론이 도입됨으로써 풍수발전이 시작되었다. 조선의 왕릉문화는 전방후원의 형태로 변화하여 길한 곳은 곡절 된 반면, 흉한 곳은 직선적이라는 것이며, 따라서 능의 신로(神路)는 굴절되도록 설계되었다. 조선의 왕과 왕후의 장례기간은 약 3개월에서 5-6개월로 하였다.

 

조선시대의 제사(祭祀)의 문화는 국가의 행사가운데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 때문에 국왕을 비롯한 신하들은 물론 모든 백성에 이르기까지 제사를 신성시하여 정성을 다하였다. 그 의식을 대사(大祀). 중사(中祀). 소사(小祀)로 분류하고 체계적으로 발전시켜 가히 왕실의 위엄이나 격을 한층 더 높였다.

 

왕릉 제향은 역대 제왕과 왕후에 대한 제사의식을 지칭하는 것으로 오례의(五禮儀)중 길례(吉禮)에 해당된다. 능 제향은 속절제(俗節祭)와 기신제(忌辰祭)로 나눌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일찍이 ‘삼천리 금수강산에 동방 예의지국이며 백의민족’이라고 일컬어 왔다.

 

1392년 태조께서 조선을 건국하신 이후 27대 순종 효황제까지 519년을 이어오며 조선의 문물과 제도에 힘입어 조선의 왕릉 50기를 남겼다. 27대에 이르도록 역대 왕과 왕비, 그리고 추존(追尊)된 왕과 왕비의 능까지 포함된 숫자이다. 제26대 왕 고종이 1897년 10월 12일에 황천상제께 고천제를 올려 황제국임을 고하고 국호를 대한제국이라 하여 세계만방에 선포하고 드디어 황제로 등극하였다.

 

II. 朝鮮 王陵 

 

살아있는 역사의 거울 조선왕릉, 태조게서 1392년 조선을 건국하시고 백두대간 따라 힘차게 뻗어 내린 도봉산 자락, 백악산 아래 도읍을 정하여 경복궁을 세우시고 1910년에 이르도록 519년 동안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는 동안 27대에 이르는 역대 왕과 왕비, 추존 왕이 9왕으로 조선 왕릉은 50능 이다. 일제강점 이후 우리나라는 외세의 간섭으로 남북이 분열되었으며 조선왕릉도 남한에 40능 북한에 10능으로 자리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들 왕릉가운데 태조의 고조(高祖) 목조(穆祖;德陵)와 고조모(高祖母;穆祖妃 孝恭王后安氏의安陵), 증조(曾祖) 익조(翼祖;智陵), 증조모(曾祖母 翼祖妃貞淑王后崔氏의淑陵), 조부(祖父) 도조(度祖;義陵), 조모(祖母 度祖妃 敬順王后朴氏의純陵) 그리고 부(父) 환조(桓祖;定陵)와 모(母 桓祖妃 懿惠王后崔氏의 和陵)를 비롯하여 태조의 원비(元妃 神懿高皇后의 齊陵)와 정종(定宗)과 定宗妃 定安王后의 후릉(厚陵)은 북한지역인 함흥과 개성시에 있고, 경기도 여주군에 세종(世宗)과 소헌왕후(昭憲王后)의 영릉(英陵)과 효종(孝宗)과 인선왕후(仁宣王后)의 녕릉(寧陵)이 있으며, 강원도 영월군에 단종(端宗)의 장릉(莊陵)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 왕릉들은 모두 서울과 서울 근교인 경기도 구리시, 고양시, 남양주시, 파주시, 화성시, 김포시, 양주시 등에 산재하여 있다.

 

조선시대의 왕실의 묘제(墓制)는 능(陵), 원(園), 묘(墓)로 구분했다. 왕과 왕비의 무덤은 능, 왕의 사친(私親)과 세자(世子)와 세자빈(世子嬪)의 무덤은 원(園), 대군, 공주, 옹주, 후궁 등의 무덤은 묘(墓)로서, 위계(位階)에 따라 그 명칭을 다르게 정(定) 하였다.

 

왕실(王室)에서 국상(國喪)을 당하면 국장(國葬)을 맡아 진행할 임시 기구들인 빈전도감(殯殿都監), 국장도감(國葬都監), 산릉도감(山陵都監)을 설치하고 장례(葬禮)준비를 했다. 빈전도감에서는 염습(殮襲), 성복(成服), 성빈(成殯) 및 혼전(魂殿)의 설치 등을 맡았고, 국장도감에서는 재궁(梓宮), 거여(車輿), 책보(冊寶), 복완(服玩), 능지(陵誌), 명기(明器), 길흉(吉兇), 의장(儀仗), 상유(喪?), 포연(鋪筵), 제기(祭器), 제전(祭奠), 반우(返虞) 등의 의식과 절차를 관장했으며, 산릉도감에서는 제조(提調)가 중심이 되어 현궁(玄宮)과 정자각(丁字閣), 비각(碑閣), 제실(齊室) 등을 짓는 본격적인 산릉조성과 부대시설에 관한 작업을 맡았다.

 

왕이 승하하면 왕이 묻힐 곳을 정하는 택지를 하게 된다. 이때 동원된 여러 명의 상지관(相地官)들과 함께 대신들이 한양 주변 백리 안팎의 명당자리를 찾아 다니면서 풍수로써 판단하여 능지(陵地)를 천거하면 조정에서 논의를 거친 뒤에 새로 등극(登極)한 왕의 재가를 받아 결정했다.  능지를 정하는 것은 선왕(先王)이 영면할 곳을 정하는 아주 중요한 문제였으므로 왕이 친히 현지에 거동하여 답사하기도 했다.

 

조선 왕릉의 제도를 살펴보면, 고려 왕릉의 경우와 같이 배산임수(背山臨水)로 북쪽의 주산(主山)을 뒤로 업고, 그 중허리에 봉분을 이룩하며, 좌우에 청룡(靑龍)과 백호(白虎)의 산세를 이루고, 왕릉 앞쪽으로 물이 흐르며, 남쪽으로는 멀리 안산(案山)을 바라보는 것이 표준형이다.

 

왕릉의 조영은 당시에는 거대한 인원과 물자가 소요되는 국사(國事)중의 하나였다. 제정일치(祭政一致)의 군주국가에서 선왕(先王)이 영원히 쉴 수 있는 왕릉을 조영(造瑩)하는 일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나위 없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택지와 능역 조성 작업은 대략 3개월에서 5개월이 소요되었으며, 이때 동원된 인원만도 4,000명에서 6,000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왕릉 아래 들머리에는 제실(齊室)이 있다. 능에 딸린 이 부속건물은 왕릉의 수호관리를 담당하던 참봉(參奉)이 상주했던 곳으로 제관(祭官)이 휴식을 취하고, 제기(祭器)를 간수하며, 능제의 제수를 준비하였고 수복(守僕)의 거처로 쓰였던 건물이다.

 

제실을 지나 숲이 울창한 능역(陵域)으로 들어서면 왕릉으로 들어간는 다리를 건너게 된다. 금천교(禁川橋)라는 이름을 가진 돌다리이다. ‘금천(禁川)’은 말 그대로 건너가는 것을 금(禁)한다는 시내라는 뜻으로, 금천교 건너편은 이곳과는 구별된 특별한 영역, 즉 임금의 혼령이 머무는 신성한 영역임을 표시한 것이다. 이 신성한 영역으로 들어가는 금천교를 건너면 역시 신성한 곳임을 알리기 위하여 세워놓은 홍살문(紅箭 門)을 만나게 된다.

 

이 홍살문 안의 오른쪽에 왕이 절하던 배위(拜位) 또는 판위(版位)가 있다. 홍살문을 들어서면 정자각(丁字閣)까지 박석(薄石)을 깔아 만든 긴 돌길인 신로(神路)가 있다. 배위에서 절을 한 왕은 이 신로를 따라 정자각으로 가는데, 이때 왕이 걸어가던 오른쪽 길을 어로(御路), 왼쪽에 한 단 높게 만들어놓은 길은 선왕(先王)의 혼령(魂靈)께 올리는 향을 모시는 길이라 하여 신로(神路)라 부른다.

 

정자각은 ‘丁’자 모양으로 생긴 건물로 제향을 모시는 곳이다. 정자각에는 동입서출(東入西出)이라 하여 동쪽에는 올라가는 계단 두 개가 있고(英陵과 寧陵에는 동쪽계단이 3곳), 서쪽에는 내려가는 계단이 한 개만 있다. 홍살문에서 신로를 따라 향과 축을 모시고 동쪽의 계단으로 정자각에 올랐다가 제향이 끝나면 선왕의 혼령은 정자각 능침쪽 신문을 통하여 능으로 올라가고, 왕만 정자각을 내려왔으므로 신로가 필요 없었기 때문에 서쪽 계단은 한 개를 생략한 것이다.

 

정자각의 앞 동서 양쪽에 수복방(守僕房)과 수라간(水喇間)이 있고, 다시 동쪽에 비각(碑閣)이 서있다. 이 비각 안에 왕릉의 묘비(墓碑)가 세워져 있다. 그리고 정자각 뒤쪽에는 제향 후의 축문을 태워 묻는 예감(예坎)이 있다. 또한 정자각 뒤쪽으로는 흙더미를 쌓아 작은 동산처럼 조성한 사초지(莎草地)가 있다 그러므로 정자각 두쪽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는데, 이 사초지 위에 오르면 능원(陵原)이 펼쳐진다.

 

능원은 크게 3계(階)로 나뉘어져 초계(初階;일명 上階). 중계(中階). 하계(下階)가 있고, 각 계(階)마다 배치되는 석물(石物)이 정해져 있다. 하계(하계)에는 갑옷을 입은 무인석(武人石) 1쌍이 석마(石馬)를 대동한재 장검을 빼어 두 손으로 짚고 서서 위엄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또한 중계(中階)에는 중앙에 장명등(長明燈)을 세우고, 그 좌우에 문인석 1쌍을 배치했다. 그리고 초계(初階)의 봉분 바로 앞쪽에 상석이라고도 부르는 혼유석(魂遊石)이 놓여있고, 그 좌우에 망주석(望柱石) 1쌍이 세워져 있다.

 

혼유석은 선왕과 왕비의 혼령이 나와 쉬는 곳이라 한다. 이 혼유석 아래에는 귀면(鬼面)을 새긴 고석(鼓石)이 받치고 있다. 고석에 귀면을 조각한 것은 사악(邪惡)한 것을 경계하기 위한 것이다. 태조의 건원릉에는 이 고석이 5개인데, 세종의 영릉부터 4개로 했다가 휘릉(徽陵)에 와서 다시 5개를 만들기도 했다.

 

조선 왕릉제도의 정례가 되는 태조 건원릉을 보면 높직한 봉분 능침(陵寢)에 12면의 병풍석(屛風石)을 세웠다. 병풍석은 면석(面石). 우석(隅石). 만석(滿石). 인석(引石) 등으로 구분되며, 면석에는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을 조각했고, 그 바깥 둘레에 다시 난간석을 둘렀다. 난간석은 12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망주석 모양의 제일 높은 기둥을 석주(石柱)라 하고, 석주와 석주 사이를 가로지를 장대석을 죽석(竹石), 죽석의 중간부분을 받치고 있는 작은 기둥을 동자석주(童子石柱)라 한다. 그리고 난간석 밖으로 석양(石羊)과 석호(石虎)를 각각 2쌍씩 배치하여 능침을 호위하게 했다. 석양은 사악함을 물리친다는 의미와 함께 명복(冥福)을 비는 뜻을 담고 있으며, 석호(石虎)는 능을 수호하는 수호신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이루어진 능침 주변 동. 서. 북 3면에 곡장(曲墻)이라 하는 담장을 둘렀다.

 

조선 왕릉은 조성 형식에 따라 단릉(單陵). 쌍릉(雙陵). 합장릉(合葬陵). 삼연릉(三連陵).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으로 나뉜다. 단릉은 태조의 건원릉(健元陵)이나 신덕고황후(神德高皇后)의 정릉과 같이 왕과 왕비 중 한 위(位)만을 안장(安葬)한 왕릉을 말하고, 쌍릉은 정종(定宗)의 후릉(厚陵)이나 태종(太宗)의 헌릉(獻陵)과 같이 한 곡장 안에 왕과 왕비를 좌우로 나란히 안장(安葬)하여 봉분이 2기로 조성된 왕릉을 일컫는다.  또 합장릉(合葬陵)은 세종(世宗)의 영릉(英陵)이나 인조(仁祖)의 장릉(長陵)과 같이 하나의 봉분 안에 왕과 왕비가 안장된 왕릉을 말하며, 삼연릉(三連陵)은 헌종(憲宗)의 경릉(景陵)과 같이 왕과 원비(元妃). 계비(繼妃) 등 3위릉 한 곡장 안에 나란히 일자로 안장하고 3기의 봉분을 조성한 왕릉을 말한다. 그리고 문종의 현릉(顯陵)과 같이 한 능호 아래 왕과 왕비의 능을 정자각 뒤쪽 좌우의 각기 다른 언덕에 단릉(單陵)처럼 조성한 왕릉을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이라 하고 효종의 녕를(寧陵)과 경종의 의릉(懿陵)은 동원상하릉(同原上下陵)이라 한다.

 

조선 태조의 건원릉(健元陵)은 고려왕릉인 현.정릉(恭愍王과 魯國公主의 陵)를 기본으로 조성되었으며, 이는 조선왕릉제도의 표본을 이루었다. 그 이후 ‘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따라 능을 조성했으며 현릉(顯;文宗)은 ‘국조오례의’양식을 따른 가장 오래된 왕릉이다. 영조(英祖)는 능제(陵制)에 관심이 많아 ‘국조상례보편(國祖喪禮補編)’을 펴냈고, 원릉(元陵;英祖)의 석물제도는 ‘국조상례보편’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예릉(睿陵;哲宗)은 조성왕릉의 상설제도에 따라 조성된 마지막 능이고 홍릉(洪陵;高宗)과 유릉(裕陵;純宗)은 대한제국(大韓帝國) 황제(皇帝)의 능으로 역대 왕릉과 다른 양식으로 조성되었다.

 

이와 같이 조선왕릉은 유구한 역사 속에 다양한 능제 문화를 꽃피워 왔으며 드디어 2009년 6월 26일(현지시각) 조선왕릉 40릉이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제3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문화유산에 우수한 점수로 통과하여 6월 30일 세계유산등재 확정의 쾌거를 이루어냈다. 유네스코는 조선왕릉이 유교적, 풍수적 전통을 근간으로 한 독특한 건축과 조경양식으로 세계 유산적 가치가 충분히 인정되며 지금까지 제례의식 등 무형의 유산을 통해 역사적인 전통이 이어지는 점, 조선왕릉 전체가 통합적으로 보존 관리되는 점 등이 세계유산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고 평가하였다.

 

III. 象設圖 解說

 

*곡장(曲墻) : 봉분을 보호하기 위하여 봉분의 동, 서, 북 삼면에 둘러놓은 담장, 조선 전기 왕릉에서는 석조상들이 곡장의 둘레를 따라 봉분의 주변에 위치하지만 황제 능은 석조상들이 모두 침전(일자각:황제 능의 침전) 앞으로 옮겨져 있다. 왕릉 봉분이 있는 곳의 뒤와 좌우에는 담이 둘러쳐져 봉분을 보호하고 경계로 삼게 되어있는데 이것이 바로 굽어져 있다 해서 곡장(曲墻)이라 한다.

 

*능상(陵上) : 능 주인이 잠들어 있는 곳의 능봉(陵封)부분을 말함.

 

*인석(引石) : 잉석(仍石)이라고도 하며 만석의 사이 12모 위에 얹혀 있는데 안쪽으로 한쪽 끝부분이 능 봉분 흙 속에 묻혀있다.

 

*만석(滿石) : 가석(가석)이라고도 하며 병풍석 위에 설치되어 있다.

 

*상석(裳石) : 병풍석의 아래 12면에 덮어 세 조각으로 설치하며 일명 와첨석(瓦?石)이라고도 한다.

 

*병풍석(屛風石) : 봉분을 보호하기 위해 봉분 밑부분에 둘러 세운 12개의 돌. 병풍석에는 12방위를 나타내는 십이지신상을 해당 방위에 맞게 양각하였는데, 모든 방위에서 침범하는 부정과 잡귀를 몰아내기 위하여 새겼다. 둘레 돌, 호석(護石)이라고도 한다.

 

*지대석(地臺石) : 병풍석의 면석을 바쳐놓은 기초가 되는 돌, 또는 난간석의 아래에 있으며 한 면에 두 쪽씩인 돌.

 

*난간석(欄干石) : 상석(裳石)의 밖에 봉분을 둘러 싼 울타리 돌.

 

*주석(柱石) : 난간석의 기둥이며 모두 머리가 뾰쪽하다.

 

*죽석(竹石) : 주석 두 기둥의 사이에 가로로 설치되어 있으며 동저석 위에 얹혀있다.

 

*동자석(童子石) : 주석 사이에서 죽석을 받치고 있다.

 

*외전석(外?石) : 주석의 밖에 깔려있다.

 

*망주석(望柱石) : 봉분 좌우에 각 1주씩 세우는 기둥, 혼령이 봉분을 찾는 표지의 구실을 한다는 설과, 음양의 조화 풍수적 기능을 한다는 등 기능에 대해 여러 가지 주장이 있다.

 

*혼유석(혼유석) : 일반인의 묘에는 상석이라 하여 제물을 차려놓지만 왕릉은 정자각에서 제를 올리므로 혼령이 앉아 쉰다는 곳이다.

 

*고석(鼓石) : 북 모양을 닮은 혼유석의 받침돌. 사악한 것을 경계하는 의미로 귀면(鬼面)을 새겨놓았다.

 

*하전석(下?石) : 혼유석 아래 고석을 받치고 있다.

 

*장명등(長明燈) : 혼유석 앞에 세워져 있으며 장생발복(長生發福)을 기원한다고 한다.

 

*문인석(文人石) : 장명등 좌우에 동서로 서로 바라보고 세워져 있으며 두 손으로 홀을 쥐고 서 있다.

 

*무인석(武人石) : 문인석 아래에 동서로 서로 바라보고 세워져 있으며 두 손으로 장검을 짚고 위엄 있는 자세로 서 있다.

 

*외안석(外案石) : 장명등 앞에 설치하였으며 길이 6척, 너비 3척 5촌이다.

 

*석양(石羊) : 죽은 이의 명복을 빌며 땅속에 사악한 것을 물리친다는 것으로 설치했다.

 

*석호(石虎) : 석양과 함께 능침을 수호하는 호랑이 모양의 수호신. 밖을 지켜보는 형태로 설치했다.

 

*석마(石馬) : 문인석과 무인석은 각각 석마를 곁에 두고 있다.

 

*상계(上階) : 능침과 혼유석, 석양, 석호, 망주석, 곡장이 있는 가장 위의 단으로 초계라고도 한다.

 

*중계(中階) : 문인석과 석마가 있는 중간 단.

 

*하계(下階) : 무인석과 석마가 있는 아랫단.

 

*삼계체(三階?) : 상계, 중계, 하계를 삼계체라고도 하며 3계 아래에 좌우로 나누고 중간에 각각 소계석(小階石) 한 덩이가 있다.

 

*망료위(望燎位) : 네모난 돌로 만들었으며 정자각의 서쪽 조금 북쪽에 있으며 행제(行祭)한 뒤에 축을 태우는 곳이다.

 

*예감(예坎) : 돌 네 조각으로 네모지게 우물처럼 쌓고 축을 태운 후 재를 이곳에 묻는다.

 

*산신석(山神石) : 장사 후 3년 동안 후토신(后土神;땅을 관장하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정자각 뒤 오른쪽에 있다. 보통 예감과 마주보는 곳에 있다.

 

*정자각(丁字閣) : 제향을 올리는 곳. 능 주인의 침전으로 정(丁)자 모양으로 지은 집. 정자각에 오를 대는 오른쪽 계단으로 올라 동문으로 들어가고 서문으로 나오는데 이를 일러 동입서출(東入西出)이라고 한다.

 

*비각(碑閣) : 비석이나 신도비를 세워 둔 곳. 신도비(神道碑)는 능 주인의 업적을 기록한 비석을 가리킨다.

 

*신로(神路) :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진 길. 박석으로 깔아놓았으며 왼쪽의 약간 높은 길은 신에게 올릴 향(香)과 축(祝)을 모신다 하여 신로(神路) 또는 향로(香路)라 하며 오른쪽 약간 낮은 길은 임금이 다니는 길이라 하여 어로(御路)라고 한다. [康陵誌. 健陵誌 參照]

 

*수복방(守僕房) : 능을 지키는 수복이 거처한 곳으로 정자각 오른쪽 앞에 있다.

 

*수라간(水喇間) : 정자각 왼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제례음식을 차리는 부엌으로 복원된 곳이 여주의 영릉(英陵)과 융. 건릉에 있음.

 

*판위(版位) : 배위(拜位)라고도 하며 홍살문 옆 한 평 정도의 땅에 돌을 깔아 놓은 곳으로 왕이나 제관이 절을 하는 곳이다. 판위(版位), 어배석(御拜石), 방릉위(望陵位)라고도 한다. 왕릉에는 신로 오른쪽에 있고, 황제릉에는 신로 왼쪽에 있다.

 

*신어상(神御床) : 정전의 중간부분 신문(神門)안의 중간에 배치하며 위에는 자연황문석(紫緣黃文席)을 깐다. (일명 神座라고도 한다.)

 

*제상(祭床) : 4좌를 연하여 배치하고 위에 곡수좌면지(曲水坐面紙) 8장을 깔되 사방에 홍주건(紅紬巾)을 늘어뜨린다. 황제국(皇帝國)에서는 황주건(黃紬巾)을 쓴다.

 

*향상(香床) : 제상 앞에 1좌이며 분향석(焚香席)을 깔아둔다.

 

*준소상(尊所床) : 제주(祭酒)와 작(爵)을 차리는 상으로 1좌이며 아가상(阿架床)이라고도 한다.

 

*축문안(祝文案) : 1좌이며 서쪽 촉상(燭床)의 아래에 두며 흑칠한 축판(祝版)이 있다.

 

*촉대상(燭臺床) : 제상의 좌우에 각각 1좌이다. 그 외에 관세상(?洗床), 망료상(望燎床) 등이 있다.

 

*제실(齊室) : 제실에는 전사청(典祀廳), 향대청(香大廳), 제정(祭井) 등이 있다.

 

*전사청(典祀廳) : 제물을 익혀서 두는 곳이다. 대청 안에 나무 찬장이 있는데 제물을 안배해 두는 곳이다.

 

*향대청(香大廳) : 제향할 때 향과 축을 보관하는 곳이다.

 

*홍살문(紅箭門) :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문. 붉은 칠을 한 기둥 2개를 세우고 위에는 살을 박아놓았다. 홍문 또는 홍전문 이라고도 한다. 홍전문 앞에는 금천교(禁川橋)가 있다.

 

*황제릉(皇帝陵) : 황제의 침전은 정자각이 아닌 일자각(一字閣)으로 되어 있다. 일자각 앞의 월대 동. 서에는 어계(御階)가 따로 있고 월대 앞 참도쪽에는 신계(神階)와 좌.우계(左右階)가 따로 있다. 석수(石獸)의 종류가 다르고 일자각 앞 신로 옆 좌우에 문관석(文官石), 석기린(石麒麟), 석상(石象), 석사자(石獅子), 석해치(石??), 석낙타(石酪駝), 석마(石馬) 등의 순으로 배열되어있다. 중앙에 신로가 있고 좌.우에 어로가 있다. 홍전문 옆의 판위는 좌측에 있다.

 

IV. 王陵의 陵祭

 

1.   기원(起源)

 

기신제(忌辰祭)는 죽은 사람의 기일(忌日)에 지내는 제사(祭祀)이다. 기일에 지내는 제사는 시대에 따라 혹은 종교에 따라 다른 형태로 변화하였다. 고려에서는 불교식 기신제(忌晨齊)의 형태로 기제사(忌祭祀)를 모셨다. 조선조(朝鮮朝)에서는 유교식 기신제(忌辰祭)를 모셔 선왕(先王)과 선후(先后)의 기제사를 봉행 하였다. 조선조에서는 왕릉 능제를 속절제(俗節祭)와 기신제(忌辰祭)로 구분하여 봉행하였다. 조선조 초기부터 원묘(原廟)인 문소전(文昭殿)에서 선왕과 선후의 제향(祭享)을 모셔왔으나 선조(宣祖) 임진란(壬辰亂 1592년) 이후 문소전이 소실되어 그 후로부터 능(陵)에서 기신제를 모시고 있다.

 

l      속절제(俗節祭)

 

능제향은 속절제와 기신제로 나눌 수가 있다. 기록에 의하면 송(宋), 당(唐), 명조(明朝)에서 춘하추동(春夏秋冬) 4절과 납일(臘日), 정조(正朝), 청명(淸明)에 각 능에 행하는 것을 속절제라 하였고, 조선왕조 때에 능속절제 기록을 보면, 정종대왕(正宗大王)원년 2월 제릉(齊陵-神懿高皇后韓氏)에 제를 드리도록 하였으며 동년 4월 예조(禮曹)에 명하여 제릉제향(齊陵祭享) 종묘(종묘)와 같이 하되 다만 희생(희생)만 없애라 하였다. 그 후 5대 속절제를 봉행하게 되니 이것이 조선조 능(陵)의 속절제 시원(始原)이 되어 매년 제향을 올린 기록이 정종 이후 태종(太宗)을 비롯 역대(歷代)로 이어졌다.

 

*기신제(忌辰祭)

 

기신제는 대왕이나 왕비가 승하허면 기일에 제를 봉행하는 예(禮)로, 제왕의 기신제에 관한 기록을 문헌비고(文獻備考)에 보면 고려(高麗) 목종(穆宗) 때 태조(太祖)와 황고(皇考)는 기제(忌祭) 때 5일 수제(修齊)하고 1일은 철조(輟朝)하고 제왕(諸王)은 모두 1일간 수제(修齊) 하였다.

고려 말과 조선 초에는 능 주변의 사찰에 재궁(齊宮)을 설(設)하고 불교식으로 기신제를 모셨던 기록이 상당히 여러 곳에 나와 있다.

 

조선(조선) 태조(태조) 7년 10월 갑오에 [神懿王后忌辰祭於藏義寺-신의왕후 기신제를 장의사에서 모셨고(태조실록)] 정종 원년 8월 13일 기신제를 흥천사에서 모셨고, 태상왕(太上王)은 같은 날 광명사에서 기신제를 지낸 것이다. (정종실록)

 

태종(太宗) 10년 8월 13일 정미 [命正尹李興濟行神德王后忌辰齊于興天寺-정윤 이흥제에 명하여 신덕왕후 기신제를 흥천사에서 지내도록 하라] 하였다(태종실록) 태종 11년 5월 23일 태조의 기신제를 흥천사에서 모시도록 세자에게 명하였고, 의정부(議政府)와 승정원(承政院)에 관원 모두를 참석토록 명하였다. 또 태조와 신의왕후(神懿王后)기신제를 태조 소상예(태조 소상예)에 따라 행하도록 하였다(태종실록). 태종 8년 7월 29일에 산릉에 재궁명(齋宮名)을 내려주고 계경사를 조계종에 붙이고 노비 150인과 전지 300결을 정속 시켰고, 산릉 수호군 100명을 두었다(태종실록).

 

세종(世宗) 6년 9월 경신 [厚陵齊宮興天寺(세종실록)] 위의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불교례(佛敎禮)로 제(祭)가 봉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세종 15년에 불교례(佛敎禮)의 기제를 폐지하고 문소전(文昭殿, 태종 때 건축됨)에서 중신의 논의에 따라 유교례(儒敎禮)로 바뀌면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가 공포되어 모든 제례(祭禮)의 기준이 되었다.

 

l      변천사(變遷史)

 

세종 15년 이후 문소전에서 기신제를 모셨고, 연 4회 속제를 모셔오던 것이 다소의 변화는 있었으나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 병화로 문소전이 소실되어 그 때부터 능침에서 기신제를 봉행하게 된 것이 순조숙황제(純祖肅皇帝)에 이르도록 이어졌다. 그 때에 불천지위(不遷之位)와 친진(親盡) 전의 위(位)에만 기신제를 지냈고, 장주위(藏主位)는 속절제를 연 2회 를 지내던 것이 현재는 불천지위와 조천위(?遷位) 모두를 연 1회에 걸쳐 기신제로 봉향회(奉香會) 주관으로 능 제향을 봉행 하고 있다.

 

성종조(成宗朝)에서는 정조(正朝), 한식(寒食), 단오(端午), 추석제(秋夕祭)를 추가하여 불천지위는 연 9회에 제향하고 장주위(藏主位)는 연 2회 춘추(春秋)로 제를 드렸다. 선조(宣祖) 때 임진란을 겪으면서 5계 절사를 모두 폐지하고 한식제만 드렸다가 인조(仁祖) 8년에 다시 5대 제향을 복행(復行)하였다. 그리고 동 10년에 폐지하였다. 고종(高宗) 3년 한식제가 청명제로 바뀌었으나 현재는 행하지 못하고 있다. 순종(純宗) 1년(1908 융희 2년) 7월 23일 칙령 제50호 향사이정령(享祀釐正令)이 공포되어 제례의 기준이 되었다.  이를 보면 친진(親盡) 전의 능원묘(陵園墓)는 기신제와 청명제를 모셔 년 2회를 모셨고, 장주위(藏主位)는 연 1회 청명제만 모셔왔다.

 

l      문소전(文昭殿)

 

태종조(太宗朝)에 건축되어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 신의왕후(神懿王后) 및 역대 제왕과 왕후의 혼전(魂殿)으로 연 4회에 걸쳐 속절제와 기신제를 선조(宣祖) 이전까지 지냈으나 임진란으로 소실되어 현재는 능 침전(陵 寢殿)에서 연 1회로 기신제를 올리고 있다.

 

*진전(眞殿)

 

일명 선원전(璿源殿)이라 하여 조선 역대(歷代) 제왕(帝王)의 어진(御眞)을 모시고 제향을 모셨던 곳으로 창덕궁(昌德宮) 북서쪽에 있었으나 소실되었다.

 

*절사(節祀:俗節祭)

 

속절제를 절사라고도 하고 소사(小祀)에 해당하며 춘하추동 사계절에 네 번의 제향을 올렸고, 문소전, 진전, 의묘(懿廟), 산릉 등이 속제로 모셔졌다. 춘.하.추.동에 제사를 지내는 것을 속제(俗祭)라 한다.

 

2. 능 제향 재계(陵祭享 齋戒)

 

능 제향은 소사(소사)로서 2일간 별전(別殿)에서 산재(散齋)하고 1일은 재궁에서 치재(致齋)를 했다. [太常志에는 기신대제(忌辰大祭)라 하였으나 속제(俗祭)를 소사(小祀)라 한 듯 하다.]

 

*산재(散齋)

 

모든 업무를 평상시와 같이 하되 조상(조상)과 문병을 하지 않으며 음악을 듣지 아니하고, 파, 마늘, 부추 등 자극성 음식을 먹지 않으며 형살(형살)의 문서를 다루지 않는다.

 

*치재(致齋)

 

모든 업무를 중지하고 제향에 관계되는 문서 외는 다루지 않는다.

 

*축판(祝版)

 

축판은 송목으로 만들며, 길이가 1척2촌이고 넓이는 8촌이며 두께가 6푼으로 통나무 송판을 쓴다.

 

*향(香)

 

(香)은 향장(香匠)이 치성선향(致誠選香)하여 전교서(典校署)에 보낸다.

 

*수축(修祝)

 

1일 전 전교서(典校署)에서 수축(修祝;축을 쓴다)을 하되, 초헌관(初獻官) 서명만 남겨 축판에 모신다. 전향(傳香)은 전교서 관원이 향축을 만들어 근시(近侍)에게 드리고 근시는 전하께 올린다. 전하께서는 향을 살펴보고 축문(祝文)을 검토한 후 서명을 하여 근시에게 주면 근시는 전사관에게 전하여 종묘(宗廟)에 기고(祈告)하고, 능 재실(齋室)로 모신다.

 

능 제실 향안청(香案廳)에 병풍을 친 후 축상(祝床)을 마련하여 황보를 펼친 후 상 위에 축함을 모시고 제 제관(諸 祭官)은 입재(入齋)에 임한다. 축상(祝床) 좌우에 촉(燭)과 등(燈)을 밝히고 대청 좌우와 대문 좌우에 모두 황등(黃燈)을 밝히게 되는데 현재는 의장 황등(儀裝黃燈)으로 쓰고 있다.

 

*제관(祭官)

 

친향(親享)과 섭향(攝享)이 있는데 친향의 경우를 보면 아헌(領議政), 종현(議政), 전사관(奉常寺正), 능사(참봉), 집례(정3품), 대축(4품), 재랑(5품), 찬자 2명(통례원 관원), 알자(6품), 찬의(6품), 감찰(3품), 찬례(예조판서, 근시 4인(승지), 좌.우 통례 등 대체로 24-30명까지 제관이 필요했다. 친향은 왕이 직접 제사하며, 섭향은 왕을 대신한다. (현제는 황사손(皇嗣孫)이 제주(祭主)이므로 제주가 행례시 친향례라 한다.)

 

*현재의 제관(祭官)

 

삼헌관(三獻官), 감제(監祭), 집례(執禮), 대축(大祝), 좌전(左奠), 우전(右奠), 내봉(內奉), 외봉(外奉), 자준(司尊), 봉향(奉향), 찬의(贊儀) 봉등(奉燈) 등으로 14-19명 정도이다. (현행 제관 = 섭향례 : 14명. 친향례 : 19명 (찬례 1, 좌통례 1, 우통례 1, 관세위 2명 추가) 해설이 있으면 친향례 제관 20명)

 

3.   전향례(傳香禮)

 

초헌관(初獻官)은 북궤남향(北?南向)하여 축상(祝床)을 전(前)으로 한다.

대축관(大祝官)은 남궤북향(南?北向)하여 축상(祝床)을 전(前)으로 한다.

찬의(贊儀)는 서궤동향(西?東向)하여 축상(祝床)을 전(前)으로 한다.

배종제관(陪從祭官)은 동쪽으로부터 아헌, 종헌, 감제, 집례, 내봉, 좌전, 우전, 봉향, 봉로, 외봉, 사준 순으로 남쪽에서 북쪽을 향한다.

이를 도설해 보면 아래 <그림 1>과 같다.

 

<그림 1> 전향례(섭향례)           

                                * 초헌관

 

                 西    *찬의            축상        

 

                                * 대축관

                                  

(*봉로)---------------------등(*봉향)

*사준 *우전 *좌전 *외종 *내봉 *감제 *집례 *종헌관 *아헌관

 


(1)    축관은 축함을 열고 축판을 초헌관에게 건네준다.

(2)    초헌관은 축문을 확인한 후 서명란에 서명하여 축관에게 건네준다.

(3)    축관은 축함에 축판을 넣고 황보로 싸서 받들어 찬의에게 건네준다.

(황보로 축함을 싸는 요령:축함을 세로(남북방향)로 황 보 위에 놓되 황 보는 동서남북 방향으로 황 보 끝을 놓고 가로 매를 먼저 동서 방향으로 매고 세로 매를 뒤에 남북 방향으로 맨다)

(4)    찬의는 축함을 받아서 상(상)이 앞쪽을 향해 받들고 일어나 신로로 나아간다.

(5)    대축관 초헌관도 일어나서 축함을 따라 나아간다.

(6)    좌우 봉등은 축함의 약 2보 앞(1미터)에서 등(등)이 밖으로 향하도록 하여 반보씩 행진하며 순서에 따라 모든 재관이 그 뒤를 따라 앞뒤 거리가 일정하도록 개인거리를 약 2보씩 확보해서 행진한다.

 

이를 도설해 보면 아래 <그림 2>와 같다.

<그림 2>

--------------------------------------------------------------------

*등

     (정자각) *대축 4m *집례 *초헌 *아헌 *종헌 *감제 *좌전 *우전 *내봉 *외봉 *사준

-------------------------------------------------------------------------------------------

 *향 . 축(찬의)                        

--------------------------------------------------------------------*등


 

4. 공수법(拱手法)

 

오른손으로 왼손 검지를 잡고 왼손이 오른손을 덮어서 자기 배꼽 윗부분에 가볍게 댄다. 모든 제관은 첨단복(첨단복)을 입으면 반드시 공수를 해야 한다.

 

5. 승강계법 합보연보(乘降階法, 合步連步)

 

계단을 오를 때는 먼저 오른발을 올려서 왼발을 합치고, 내려갈 대는 왼발을 먼저 내딛고 오른발을 합친다. 이 동작이 연속되는 것을 연보합보(連步合步)라 한다.

 

6. 보법(步法, 行進動作)

 

공수를 하고 단정히 머리를 조금 숙이고 약 2보 앞, 즉 앞 사람의 발뒤꿈치를 바라보면서 엄숙한 자세로 개인거리를 유지하며 걸어가야 한다.

 

7. 궤법(?法)

 

무릎을 구부리고 앉을 때는 왼쪽 무릎을 먼저 구부린 다음, 오른쪽 무릎을 뒤에 따라서 구부리고 앉아 허리를 펴고 양수거지를 하여 가볍게 무릎 위에 올려놓는 자세이다. 일어날 때는 양손으로 땅을 짚고 오른쪽 무릎을 먼저 펴고 일어선다.

 

8. 문 출입법(門 出入法)

 

동문으로 들어갈 때는 오른 발을 먼저 내딛고, 서문으로 나갈 때는 왼발부터 내 딛는다.

 

9. 배법(拜法 鞠躬四拜)

 

가례원류(家禮原流)에는 “좌수(左手)로 우수무지(右手拇指)를 잡고서 절한다”고 하였으니 주례구배(周禮九拜)에는 “공수배(空手拜)라 하여 양손을 어덟 팔자형(八字形)으로 벌리고 절을 한다” 고 하였다. 현재 종묘대제 및 각 능제에는 모두 공수배로서 행해지고 있다.

 

10. 국궁(鞠躬)

 

국궁은 두 가지 동작으로서 절할 때 선동작(先動作)으로 국궁은 무릎을 굽혀서 손은 여덟 팔자로 땅을 짚고 고개는 들고 팔을 편 자세로, 부복과 동일한 자세를 말한다. 그 자세에서 “배(拜)” 하면 팔을 구부려 지면에서 주먹 하나 들어갈 정도로 천천히 머리를 숙이고, “흥(興)” 하면 서서히 팔을 펴면서 고개를 든다. 이를 네 번 반복하면 국궁사배가 되며, 사배가 끝나고 “흥평신(興平身)” 하면 처음 섰던 자세로 일어선다. 평상시 국궁 : 일반적으로 국궁하면 양수 거지한 상태로 허리를 약 15도 정도 굽히고 고개를 숙인 자세를 말한다.

 

11. 부복(俯伏)

 

(?) 할 때와 같이 무릎을 꿇은 다음, 양손은 여덟 팔자로 땅을 짚고 팡은 펴고 머리를 숙인 자세를 말한다.

 

12. 각 제관의 임무(各 祭官의 任務)

 

1) 초헌관(初獻官)

 

l      제주(祭主)로서 처음 작(爵;술잔)을 올리는 사람으로 찬의의 인도로 준상(尊床)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서서 술 따르는 것을 확인하고 신위전(神位前)으로 나아가 궤(?) 한다.

*삼상향(三上香)

삼상향은 향합(香盒)의 향(香)을 세 번에 나누어 향로(香爐)에 넣는다.

*헌작(헌작)시 내봉관으로부터 작을 받아 신위전에 눈높이만큼 올렸다가 좌전에게 준다.

*흥소퇴궤부복(興少退?俯伏)하면, 부복한 상황에서 일어나서 약간 뒤로 물러나 궤하고 부복한다.

*독축(讀祝)이 끝나면, 일어나 찬의의 인도로 강복위(降復位) 한다.

    *망료(망료)시 찬의의 인도로 망료위(望燎位) 남쪽에 서서 축문 태우는 것을 확인한 후 망료례를 마치고 찬의의 인도로 환복위 한다.

 

2) 아헌관(亞獻官). 종헌관(終獻官)

    *두 번째 세 번째 작을 드리는 사람으로, 찬의의 인도로 준상(尊床)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서서 술 따르는 것을 확인하고 신위전에 나아가 궤 한다.

    *내봉관이 전하는 작을 눈높이만큼 올렸다가 좌전 또는 우전에 전하여 울리고 부복했다가 일어나서 찬의의 인도를 받아 강 복위 한다.

 

3) 감제(監祭)

    *감제는 제관  행렬이 제실을 출발 할 때부터 모든 집사를 인도하여 홍살문을 지나 정자각 동남쪽의 월대 아래 집사 배석 자리로 인도한다.

    *정자각에 들어가서 모든 집사가 봉무하는데 잘못이 없도록 바로잡아 주고 총감독을 한다.

    *대축관의 계개(啓蓋)와 합개(盒蓋), 그리고 정저(正箸)와 철저(撤箸)를 돕는다.

 

4) 집례(執禮)

    *제관의 습의(習儀)를 담당한다.

    *홀기(笏記)를 창홀(昌笏)하여 제향을 진행한다.

    *제관 행렬이 정자각 정면에 도착하면 정자각 우측 동쪽에 헌관 배석으로 삼헌관을 인도하여 서쪽을 향해 서도록 한다.

    *집사가 서 있는 곳으로 가서, 찬의와 함께 먼저 국궁사배를 하고 동계로 올라 정자각 월랑 좌측 중간 기둥과 바깥 기둥 사이에 위치하여 선다.

    *찬의가 빕례에게 홀기를 인계한 후 월대 동계를 내려가 집사 위치에 서서 ‘부르오’ 하는 신호로 창홀을 시작한다.

 

5) 대축(大祝)

*봉등과 축함이 운계(雲階)로 오르면 대축은 정자각 동계로 올라 동문으로 들어가 신문(중앙문) 안에서 찬의가 전해주는 축함을 받들어 축상에 모시고 향을 향합에 담아 놓고 서문으로 나와 찬의 안내를 받아 강복위 한다.

*다른 집사와 함께 제상 앞에 도착하면 초에 불을 켠다.

*대축진선(大祝進膳) 하면, 제기와 제수를 싼 종이를 다른 집사의 도움을 받아 벗긴다.

*대축계개서병정저(大祝啓蓋西柄正箸)하면, 덮여있는 제수 제기의 덮개를 열고 젓가락은 자루가 서쪽으로 향하게 하여 가지런히 시접 위에 올려놓는다.

    *독축(讀祝)하면, 초헌관 서쪽에 동향 하여 꿇어앉아 축문을 읽는다.

    *대축철저합개(大祝撤箸盒蓋)하면, 수저를 거두어 시접 안에 모시고 제기의 뚜껑 덮개를 덮는다.

    *대축봉축예망료위(大祝奉祝詣望燎位) 하면, 축판을 받들어 서계로 내려가서 망료위 초헌관 앞쪽(北立南向)에 남향하여 서서 축문을 초헌관에게 보여드린 후 확인이 끝나면, 축문을 예감에 가서 태우는데 축관이 축을 망료저로 잡고, 찬의는 불을 부쳐 태우고 돌아와 초헌관에개 축판을 확인하시게 보여드린 후 창홀에 따라 정자각 내 축관의 자리로 돌아간다.

 

6) 내봉(內奉)

내봉은 외봉이 전해주는 작을 받아서 눈높이로 받들고 우로 돌아서 헌관 우측 옆에 나아가 꿇어앉아 헌관에게 작을 올리고 일어나 자리로 돌아간다.

 

7) 좌전(左奠)

헌관이 작을 전해주면 헌관 좌측에 꿇어앉아 작을 받아서 눈높이로 받들어 맨 좌측(서쪽)으로부터 작판 위에 올려놓는다. 이 때 작의 용두가 서쪽을 향하도록 놓는다. 단설(1위)인 경우, 삼헌 중 초.아헌을 좌전이 하고, 병설(2위)일 경우 왕위(王位)만 받들어 올린다.

 

8) 우전(右奠)

단설(1위)인 경우, 종헌관이 전하는 작을 헌관 우측에 꿇어앉아 작을 받아 눈높이로 받들어서 작점에 올려놓는데, 용두가 서쪽을 향하도록 올려놓고, 병설인 경우 왕후(王后)작을 받아 네 번째 작점부터 차례로 올려놓는다.

 

9) 봉향(奉香)

    *집례가 삼상향(三上香) 하면, 초헌관 우측에 꿇어앉아 오른손으로 향합을 들어 왼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왼손으로 향합 밑을 받쳐 잡고 오른손으로 향합 덮개를 열어 잡고 왼손 밑을 바쳐올려 초헌관 앞에 적당한 높이로 드린다.

    *초헌관이 향을 향로에 지피면 다시 향합 뚜껑을 덮어 본래 자리에 올려놓고 봉로와 함께 일어서서 제자리로 간다.

 

10) 봉로(奉爐)

    *집례가 삼상향하면, 초헌관 좌측에 꿇어앉아 준비된 수건으로 향로의 덮개를 열고 양손으로 향로의 두 발을 잡고 초헌관 앞에 적당한 높이로 대드린다.

    *초헌관이 향을 향로에 세 번 지피면 본래 자리에 올려놓는데, 향로의 세 발 중 두 개의 발이 정면으로 일직선으로 오게 하고, 한 발이 뒤로 가게 하여 놓고 뚜껑은 용두가 앞쪽(남향)으로 향하게 덮은 후 제자리에 선다.

 

11) 외봉(外奉)

    *집례가 대축진선(大祝進膳) 하면, 작을 싼 종이를 벗겨서 옷소매 속에 넣는다.

    *작주(酌酒) 하면, 외봉관 우측 작부터 양손으로 받쳐 준통에 가까이 대서 집준관이 따르는 제주를 받아 우측에 놓는다. 병설(합설)일 경우 두 번째 작은 그 앞에 놓는다.

    *집레가 집작헌작(執爵獻爵) 하면, 작을 자기 눈높이로 받들어 오른쪽으로 돌아 내봉관에게 전해주고 왼쪽으로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다.

 

12) 사준(司尊;執尊)

    *취위(就位) 하여 준상 앞에 도착하면 우선 초에 불을 켠다.

    *집례가“대축진선”하면, 용작을 싼 종이를 벗겨서 옷소매 속에 넣는다.

 *”작주(작주)” 하면, 멱을 열고 용작을 두 손으로 받쳐 잡고 술을 세번 떠서 외봉관이 받들어주는 작의 굽까지 차도록 부은 후에 멱을 덮고 용작을 멱 위에 올려놓는다.

 

13) 봉등(奉燈)

원래 봉등이 따로 있었으나 현재는 대부분 봉향, 봉로가 겸무를 한다.

    *행렬이 정자각 정면에 도착하면 동계로 가서 신계(神階;雲階)의 계단 좌우로 올라간다. 봉등이 두 계단 오른 후 축을 모신 찬의는 신계(神階) 중앙으로 올라간다.

    *정자각 양 기둥사이 중앙으로 행진하여 신문(중앙문) 앞 단 아래(월대)에 잠시 서고, 찬의가 단 위에 올라 대축에게 축을 전해주면 좌우 봉등은 뒤 돌아서 정자각 맨 앞 좌우 기둥에 등(燈)을 세운 후 남향하여 서서 기다렸다가 찬의의 안내를 받아 대축 뒤를 따라 내려온다.

 

14) 찬의(贊儀)

    *홀기를 집례에게 전해주고 월대를 내려와서 집사석 동쪽에 서서 집례를 향해 ‘부르오’ 하면 제향이 시작된다.

    *집사 각취위(각취위) 할 때, 제관의 오른쪽 1보 앞에서 관세위가지 인도한다.

    *헌관을 인도할 때, 삼헌관을 향해 대기하고 있다가 헌관을 인도할 때는 종헌관석을 돌아서 해당 헌관(아헌, 종헌) 정면에 가서 상읍을 하고 다시 돌아와서 인도한다. 단, 초헌관은 바로 한다.

    *삼상향, 집작헌작 하면, 초헌관의 동작이 시작되려는 순간(향을 잡는 순간) ‘삼상향’하고 복창한다. 집작헌작 때도 초헌례와 같이 ‘집작헌작’ 복창하고 아헌관, 종헌관이 집작헌작 때도 초헌례와 같이 ‘집작헌작’ 한다. 뒤로 조용하게 ‘이렇게 하시오’ ‘저렇게 하시오’ 라고 한다.

 

15) 찬례(贊禮) [친향례]

    *전하(殿下;祭主)를 모시고 행례(行禮)에 인도하여 보좌한다.

 

16) 좌통례(左通禮). 우통례(右通禮) [친향례]

    *전하(殿下;祭主)를 좌. 우에서 보필하며 경호한다.

 

17) 관세(?洗) [친향례]

    *친향례에는 세뢰(洗?)를 사용하므로 2명이 관세위에 봉무(奉務)한다.

 

13. 제복(祭服) 착용법(着用法)

1)    오사모는 앞면이 눈썹 위에까지 약간 앞으로 숙여서 쓰고 턱 아래 걸치는 오사모 줄은 귀 옆면 얼굴쪽으로 걸쳐서 맨다. (오사모 끈을 귀 뒤로 매는 것은 안된다.)

2)    천담복은 목 부위 단령 끈이 늘어지지 않도록 매고 옷고름 고리가 좌측방향으로 가도록 단정하게 맨다.

3)    흑수는 천담복 좌측으로 흑각대에 묶어 매어 아래로 늘어지게 맨다.

4)    흑각대는 앞가슴쪽이 위로 오르게 하고 뒤 등쪽이 아래로 늘어지게 맨다.

5)    백피화(예화)는 자기 발에 잘 맞는 규격으로 예화를 착용하여야 한다.

 

14. 주의사항(主意事項)

    1)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은 간격과 열을 맞추어 서고 찬의가 헌관을 모시기 위해 읍을 하면 헌관은 답을 하지말고 그대로 따라 나가면 된다.

    2) 헌관, 집사는 정자각 정면(기둥과 기둥사이) 신위 앞을 지나갈 때는 허리를 약간 굽히고 고개를 숙인 자세로 지나간다.

    3) 모든 제관이 관세할 때는 손가락 끝만 조금 적셔서 수건에 닦는다.

    4) 제상 옆 좌측(서편)의 대축, 좌전, 봉로는 항시 간격과 열을 맞추어 서고 우측(동편) 감제, 우전, 봉향도 간격과 열을 맞추어 선다.

5)    내봉은 정자각 침전 안쪽 기둥 뒤에 자리하여 선다.

6)    외봉은 준상을 바라보고 준상 중앙에 북립남향(北立南向)하여 서고, 사준은 준상 중앙에 남립북향(南立北向)하여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