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李朝) 五百年 野談
차 례
第 一 話 - 寶娘과 靑湖 - 血痕奇譚
第 二 話 - 樂浪과 好童 - 悲戀哀史
第 三 話 - 楊書房의 致富 - 抱腹絶倒
第 四 話 - 風流監司 - 節佳妓話
第 五 話 - 哀戀話 - 靑春悲戀
第 六 話 - 異花 雪竹梅 - 復讐奇譚
第 七 話 - 將軍과 義盜 - 名將逸話
第 八 話 - 煩惱僧 - 佛力奇譚
第 九 話 - 悲愴의 賦 - 百濟哀話
第 十 話 - 金議官 叔侄 - 韓末逸話
第十一話 - 李星信의 最後 - 海戰悲話
第十二話 - 阿非知의 九層塔 - 望鄕哀話
第十三話 - 可憐杜十娘 - 名妓哀話
第十四話 - 公主와 神尺 - 怪夢奇譚
第十五話 - 餘愁 - 落照悲話
第十六話 - 斬首된 별아기 - 愛情悲譚
第十七話 - 千里遠情 - 義俠美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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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 화>
落照悲話(낙조비화)
餘愁 (여수)
설움찬 宮殿
자시(子時).
축시(丑時).
인시(寅時)도 거진 되었다.
송악(松嶽)을 넘어서 내려부는 이월의 혹독한 바람은 솔가지에서 처참한
노래를 부르고 있고 온 천하가 추위에 오그러뜨리고 있는 겨울
밤중이었다.
이 추위에 위압되어 행길에는 개새끼 한마리도 얼씬하지 않고
개경(開京) 십만 인구는 두꺼운 이불 속에서 겨울의 긴 꿈을 꾸구 있을
때다.
그러나 대궐에는 이 깊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고관에서 부터 말직까지가
모두 입직하여 있고 방방이 경계하는듯한 촛불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왕후궁 노국대장공주전(魯國大長公主殿)의 앞에는 내시며 궁액들이 몸을
오그리고 추위에 떨며 심부름을 기다리고 있었고 침전의 밖에도 두명이
지키고 있었다.
침전 --- 침전에는 아무도 없는 대신에 그 협실에 두 사람이 있었다.
협실에 안치한 불상 앞에 중 편조(遍照)가 합장을 하고 꿇어 앉고 그
곁에는 고려국왕 공민이 단 아래 역시 불상앞에 머리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난산 후에 환후 위독한 왕후 대장공주의 쾌치를 불전에 빌기 위하여
왕은 비밀히 중 편조를 침전까지 불러 들이어서 여기서 기원을 드리는
것이었다.
부처에 매우 귀의해 있는 왕이 이전 원나라에 있을 때에 구해 두었던
영하다는 불상앞에 지성으로 굻어 엎드려 있는 왕과 편조.
어지럽고 불길한 일이 박두해 있는 가운데서도 고요히 고요히 깊어가는
겨울의 밤을 왕과 편조는 불상 앞에 엎드려서 공주의 쾌차를 빌고 있었다.
궁중에 비밀히 불러들인 편조라 큰소리로 기원을 외이지도 못하고 입
속으로 드리는 그 기원에 왕은 연하여 합장 예배하였다.
이때에 복도를 좇아서 공주부(숙옹)에서 침전으로 달려오는 가벼운
발소리가 들렸다. 가벼운 소리나 또한 황급히 달려오는 소리였다.
왕은 빨리 일어나서 협실에서 정침으로 나갔다. 협실과 정침을
가로막는 장짓문을 겨우 닫을 때 쯤 공주부에서 달려온 궁녀가 침전 밖에
시직하는 내시에게 무엇을 소군소군 전하는 소리가 들렸다.
왕이 자리에 자리를 잡을 때에
완관 최만생 아뢰옵니다
하는 내시의 말이 들렸다.
음. 무에냐?
잠간 내전까지 임어하십사는 후전 마마의 전탁이 계시옵니다
음. 가마
황황히 일어나서 내시의 부액도 받을 겨를이 없이 공주부로 발을
옮길동안 왕의 가슴은 놀랍게도 방망이질 하였다.
* * *
공주부에 입시해 있는 전의(典醫)의 표정을 보고 왕은 벌써 사태가 그른
것을 짐작하였다.
진맥을 하기 위하여 뚫은 병풍의 구멍 틈으로 은어와 같은 공주의 손의
맥을 짚고 있던 전의는 왕의 입어에 허리를 굽혔지만 얼굴로써는 뜻을
나타내었다.
병풍을 돌아서 공주에게로 내려가매 머리맡에는 왕의 어머님 명덕
태후가 앉아있고 발치에는 혜비 이씨(惠妃李氏)가 앉아 있으며 그 뒤로는
몇몇 지밀궁녀(至密宮女=지밀나인)들이 지켜 있다가 왕의 입어에 조금씩
자리를 움직이기는 하였지만말 한마디도 없이 공주의 누워있는 얼굴로
눈들을 향하고 있다.
왕은 공주의 침두에 가서 고요히 앉았다.
몽고인(蒙古人) 특유의 기다란 살눈섭이 반달모양으로 굳게 닫겨 있고
좀 짧은듯한 웃 입술이 방긋이 열려서 기운없는 호흡이 그 틈으로
드나드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비교적 넓고 균형잡힌 백옥같은 이마에는 머리칼이 두어올 걸리어
있었으며 그새 십개월간의 태중과 이번 난산 때문에 여위고 여윈 뺨에는
따로 만들어 붙인듯이 광대뼈가 솟아 보였다.
왕은 손을 들어서 고요히 공주의 이마에 얹었다. 선뜻한 왕의 손이
이마에 얹히우매 공주는 눈을 번쩍 떴다. 번쩍 띄운 눈은 잠시 허공에서
방황하였다. 허공에서 휘번득이던 눈이 왕에게로 돌아와서 잠시 머무를
동안 겁에 띠운듯 하던 눈은 차차 사람다운 표정을 갖기 시작하였다.
왕을 알아 본 것이었다.
상감마마
비로소 입에서 나온 말.
왕은 곁에 놓인 붓으로 공주의 마른 입술을 추기어 주려고 손을
움직이려할 때에 공주의 손이 벼락같이 왕의 손을 와서 잡았다. 단지
사람다운 표정이 나타난데 지나지 못하던 공주의 눈이 순간에 변하여
타는듯한 정열이 나타났다.
상감마마, 상감마마
공주 좀---
상감마마. 신을 안아 주세요
움직일 기운이 없는 몸을 억지로 움직이려는 그 고민. 왕은 양팔을
공주의 허리 아래로 넣어서 공주의 몸을 안았다.
상반신을 왕의 무릎에 올려놓은 공주는 최후의 정열 때문에 창백하던
얼굴이 붉게 변하고 그 눈에 광채가 났다.
상감마마. 좀 더 힘있게 안아 주세요. 힘껏 신의 허리가
끊어지도록---
왕의 팔의 힘이 차차 더하여 감을 따라서 머리를 좀 더 들어 보려는
공주의 최후의 노력.
삼감마마. 신은 기쁘옵니다. 더 힘껏--- 신은--- 신은 다만 마마께
사후없으신 것이 죄송---
숨이 찬듯이 말을 끊었다. 온 정열을 모아서 왕을 우러러 보던 공주의
눈힘도 어느덧 풀렸다. 걸그렁 걸그렁 힘없는 숨소리.
그 숨이 문득 끊겼다. 왕의 마음이 철석 내려앉는 순간 아직껏 좀
가볍던 공주의 몸이 천근 같이 무거워 졌다.
공주! 공주!
예기는 하였지만 이 의외의 사변에 공주의 몸을 안은채 어쩔줄을 모르고
공주만 연하여 찾았다.
이 동안 국모 대장공주의 승하를 조상하는 애곡성이 태후며 혜비
이씨들에게서 터져 나왔다.
이튿날 국상은 정식으로 반포되었다.
공민왕 십사년 이월, 아직도 매운 바람이 몸을 에이는 겨울이었다.
긴듯 하고도 짧은 생애. 짧은듯 하고도 긴 생애.
왕이 아직 한낱 고려 종실로서 백안첩목아(伯顔帖木兒)라는 몽고의
이름으로 원(元)나라 서울에 잠저(潛邸)해 있을 때에 원나라 황제의
어명으로 원나라 종실 위왕(魏王)의 딸을 아내로 맞았다.
즉 이번에 승하한 대장공주였다. 후에 본국 고려로 돌아와서
충정왕(忠定王)의 뒤를 이어 고려 국왕이 된 이래 십사년간을 변함없이
사랑하던 왕비였다.
즉위 이래 십사년간 어지러운 고려의 정파(政波)에 올라 앉아서
파란많은 생애를 보낼 동안 사랑하는 공주의 내조만 없었더면 왕은 이
왕위를 내어던지고 공주와 함께 어느 조용한 곳에 사랑의 보금자리를
찾으려 떠났을 것이다.
동과 서와 남쪽의 해변으로는 왜적의 난이 끊이지 않는 일면에 또한
북쪽으로는 홍건적(紅巾賊)의 난이 있어서 그 편도 한때도 평안한 날이
없이 어떤때는 왕이 멀리 상주까지 몽진을 한 일까지 있었다.
이렇듯, 동, 남, 서, 북으로 외국의 환이 끊일 날이 없으면서 또한
안으로는 내란이 끊이지를 않았다.
즉위 원년에 최유 김원지의 무리가 월나라의 힘을 빌려서 본국인 고려를
침범하려던 일을 비롯하여 조일신, 김용등의 난이라, 무엇이라 한때도
베개를 편안히 하고 잠잘 날이 없었다.
신임하는 신화와 대할 때에도 저 사람의 마음의 배포가 어떤가를 속으로
경계하지 않을 수가 없는 왕의 입장이었다. 신임하는 신하가 연하여
당신을 배반할 때에 왕의 눈에는 이 세상에 한 사람도 믿을 사람이 없어만
보였다.
이렇듯 얽히고 설핀( 힌?) 어지러운 국정에 또한 재상가 끼리의
세력다툼이며 사병(私兵)을 양성하는 장상끼리의 싸움이 끊이는 날이
없었다. 어지러운 정국이었다.
이런 어지러운 정국안에서 왕후 노국공주의 따뜻한 사랑만 없었더면
왕은 일년을 왕위에 배겨나지 못하였을 것이다.
* * *
이러한 어지러운 정국에서 과거 십사년간의 치적을 돌아보건데 과연
용하였다.
먼저 원나라의 세력이 이 왕의 손으로 얼마만치 꺽이었다.
이전에는 무슨 소소한 일을 행할지라도 반드시 먼저 원나라에 품하여
허가를 얻고야 하던 것을 이 왕의 대에서는 선참후주의 방침으로
나아갔다. 먼저 행하고 후에 아뢰었다.
아직껏은 각 재상 분권이던 정치를 중앙집권을 꾀하여 재상끼리의
세력다툼을 얼마듣지 완화시키고 모든 권세를 국왕인 당신이 잡았다.
그 밖에도 집안 문벌이나 학벌만 자랑하고 아무 실능력이 없는 재상들은
차차 경원해 버리고 실능력을 가진 장상을 좌우에 모아들였다.
풍속에 있어서도 원나라 풍속과 고려의 풍속을 다 잘 알고 있으니만치
세밀한 주의로써 개량을 하였다.
각 뫼에 솔을 심어서 사태에 방비하고, 재상들의 매사냥을 금하여
공연한 살륙을 막고, 아울러 이때문에 밟히는 전토를 보호하고, 돈을
만들어서 일용에 편케하고 수차를 만들어 농사에 편리케 하고, 흔히
민간에 미행하여 백성의 고초를 살피고- 세세한 일까지 모두 살피고
살펴서 국운을 융성케하여 피폐하였던 고려의 국정이 바야흐로 이 왕의
내에서 중흥이 되나부다 누구든 믿었다.
이 왕의 위업의 뒤에 숨은 공주의 내조의 힘이 얼마나 컸던고. 첩첩히
쌓인 어지러운 문제에 골머리 쏘아서, 에라 왕이고 무어고 내어던지고
말까 할때마다 공주의 부드러운 손은 왕의 어깨에 얹히었다.
상감마마. 마마께서 내 던지시면 고려의 백성은 누구를 믿고 살리까?
격려하는 공주이 말은 피곤한 왕으로 하여금 다시 용기를 나게 하곤
하였다.
* * *
빈전(殯殿) - 재궁(梓宮)을 지키는 왕.
수없이 피운 향의 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왕은 고요히 앉아 있었다.
삼감마마 수라를 어찌하리까?
환관 신소봉(申小鳳)이 이렇게 아뢸때도 왕은 아무 대답도 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공주 승하한지 초칠일이 지난 이때까지 왕은 아직도 수라를 받아보지
않았다. 몇번 냉수를 찾고 몇번 태후의 강권에 못이기어 술 몇잔과 돈육
몇점을 입에 넣어 본 뿐 수라반은 대하지 않았다.
여전히 끼니때라고 환관은 예에 의지해서 수라를 채근하지만 왕은 또한
여전히 예에 의지해서 대답도 없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상감마마. 수라를 어찌리까?
신소봉은 한번 더 채근하여 보았다. 그런 뒤에 잠시 기다려 보고는
인젠 자기의 직책은 다 하였다는듯이 왕과 제궁앞에 합장 명목하고 염불을
외고 있었다.
대사
불러 계시오니까?
다시 공주는 안 돌아 올까?
생자 필멸이 올씨다
말이 끊어졌다.
또 다시 왕은 눈을 감고 편조는 염불을 외었다.
잠시는 정숙가운데서 시간이 흘렀다. 잠시 뒤에 이번은 편조가 염불을
중지하고 왕의 편으로 돌아 앉았다.
생자 필멸, 회자정리- 이것이 사람의 세상이올시다. 여기 이르러서는
왕후 장상이라도 필부와 다른것이 없읍니다. 돌아가신 분은 이미
돌아가셨거니와 전하께서는 전하를 아버지로 알고 있는 천만의 생명을
위해서라도 좀더 보중하시지 않으면 안될까 하옵니다
마디마디마다 똑똑히 끊어서 아뢰는 편조의 말. 그러나 왕은 여전히
등등 않았다.
전하. 다른 점은 그만두고라도 공주전 재세시에 공주전께서 그렇듯
사랑하시던 이 창생을 위하여서도 옥체를 보중하옵셔야 하지 않겠읍니까?
전하께서 애통하시는 마음은 어리석은 빈도도 짐작 못하는 바가
아니옵니다마는 이 창생을 위해서 보다도, 전하를 위해서 보다도,
전하께서 이 창생을 버리시면 승하합신 공주전의 영이 가장 슬퍼하실 점을
생각 하셔서라도 좀더 보중하시지 않으면 안될까 하옵니다
무슨 말을 할지라도 여전히 눈을 감고 부처같이 가만히 앉아있는 왕.
좌우 눈에서는 눈물만 연하여 흘러서 침침한 촛불에 눈물이 번쩍 거리고
있다.
公主는 갔건만
편조는 딱하였다.
어떻게하면 이 왕으로 하여금 조금이라도 마음을 돌려서 수라를 진어케
하나.
공주 승하한 뒤에는 마치 산 송장으로 자처하는 이 왕을 어떻게 하면
잠시라도 인간다운 감정과 감각을 회복하도록 하게 하나.
본시부터 공주 한 사람만을 사랑하고 다른 여인은 눈 거듭떠 보지않던
왕이라 공주 승하한 뒤 부터는 여인이란 여인은 모두 악마로만 보는
모양이다.
이번 공주 승하한 뒤로는 왕은 모든 아리따운 후궁들 까지도 악마같이
보았다. 공주 이미 없는 이 세상에 다른 계집들은 어째서 존재하느냐
저런 계집들은 왜 살아있고 공주는 왜 없어졌느냐. 이러한 마음으로써
여인들은 빈전 가까이는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였다. 공주
승하하였는지라 당연한 순서로 인전 왕후의 자리에 오르게 된 혜빈이씨
가 빈전으로 들어오다가 왕에게 쫓겨난 이래로 이 빈전에는 여인이라고는
왕의 모후되는 명덕태후 한 사람이 들어올 뿐 다른 여인은 얼씬 하지를
못하였다.
지금에 있어서 가장 근심되는 것은 왕의 건강이었다.
벌써 팔구일간을 수라를 진어치 않았으며 어떻게 하여서든 수라반을
대하게 하도록 하는 것이 제일 급무였다.
수라를 권키 위하여 왕께 생자필멸의 이치를 강론하던 편조는 이
돌부처와 같은 왕을 우러러 보며 잠시 가만 있다가 한 걸음 무릎으로
나아가서 왕의 딱 맞은 편에 앉았다.
전하!
대답이 없었다.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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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편조는 왕의 양손(무릎위에 합장하고 있는 손을 꽉 잡았다.
전하! 전하!
대사!
왕은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러나 이것은 폭발하려는 통곡의 그
서곡이었다. 대사- 한마디 부를 뿐 왕은 체면을 내던지고 당신의 손을
뽑아서 얼굴을 덮고 울었다.
대사. 반혼법(返魂法)은 불가(佛家)든가? 도가(道家)든가?
울음에 섞이어 하는 왕의 이 하소연에 기지있는 편조는 매달렸다.
전하. 빈도가 마침 그 말씀을 올리려 했읍니다. 공주전 가셨다
할지라도 반혼술로 다시 전하를 뵐날이 있을까 하옵니다. 보중하소서.
전하, 보중하소서.
편조는 왕의 손을 다시 끄을어 잡고 장삼 소매로써 왕의 눈물을 씻어
드렸다.
만약 그런 술(術)이 있다 하면, 여기 공주의 혼을 다시 불러 주
아니올시다. 입토(入土)키 전에는 혼은 공주전 속체에 그냥 계셔서
출현하실 수가 없사옵니다. 보중하소서. 공주전 입토하신 뒤에는 빈도가
반드시 공주전의 혼으로 전하를 모시게 하오리다. 그때 돌아오신
공주전의 혼께서 전하의 너무도 수척하신 용안을 대하오면 얼마나
심통하오리까. 수라를 부릅소서. 공주전을 위하셔서 옵니다
그날 왕은 비로소 수라를 진어하였다.
적적한 수라. 이전에는 반드시 공주가 함께 앉아서 서로 권하며 받으며
하던 수라반을 혼자서 받을 때에 왕은 너무도 적적하여 편조에게 배식을
명하였다.
한개 옥천사(玉川寺) 사비(寺婢)의 자식으로 그 아이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중 편조는 이리하여 왕의 총애와 신임을 차차 높이어 갔다.
* * *
이월에서 삼월 사월 - 공주의 영해를 정릉(正陵)에 안장하기까지 왕은
빈전에서 난적이 없었다.
왕은 인제 공주 입토한 뒤에 편조의 반혼법으로 공주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이 단 한가지의 희망으로 쓸쓸한 삶을 그냥 계속하였다.
이월에서 삼월 사월, 날이 차차 따스해 감을 따라서 공주의 제궁에서도
차차 냄새가 괴악하여 갔다. 밖에서 갑자기 빈전에 들어 오는 사람은
한순간 숨이 딱 막힐만치 냄새가 괴악하였다. 이 냄새를 감추기 위하여
눈이 쓰라리도록 향을 피웠지만 인위적 향내가(로) 그 냄새를 감출 수가
없었다.
아무리 이 방에 젖은 왕의 코도 이 냄새는 맡았다. 그러나 이 냄새조차
왕에게는 눔물을 자아내는 향내였다. 이것이 공주의 몸이 썩느라고 나는
냄새거니 이 냄새가 밖으로 나아가서 대공에 헤지는 것이 아까웠다.
많은 물재를 들이어서 삼화서 가져온 오석(烏石)으로 명공이 깎은
석관에서도 틈틈으로는 붉은 물이 바닥에 새어 내렸다.
다른 사람이면 이 빈전에 오기조차 싫어할 것이나 왕은 빈전에서 한번도
밖에 나가 보지를 않았다.
찬바람이 살을 에이고 산야에는 아직 두꺼운 눈이 쌓여 있는 이월에
승하하여 백화가 난만한 오월에 안장을 할 동안- 눈이 녹고 땅의 얼음이
풀리고 흙이 트고 풀이 나고 자라고 나무에 잎이 피고 남국 갔던 새들이
모두 돌아오고 할 동안- 왕은 세월이 가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
어둑침침한 빈전- 촛불고 향연기와 양내와 악취가 뒤서리는 가운데서 꿈과
같이 생시와 같이 만 삼개월 남아를 보냈다.
그것은 다만 뒤숭숭하고 순서없고 갈피를 차릴 수가 없는 날이 가고
오고 하는 것 뿐이었다. 그 가운데는 아무 합리된 일도 없고 명료한 일도
없고 엄벙벙의 꿈과 같은 세월이었다.
때때로는 재상들이 와서 무엇이 어떻다 하고는 돌아가고 태후도 간간
와서 이렇다 저렇다 하다가는 가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섯바뀌고
혼돈되어 돌아갈 뿐 왕은 모두 알지도 못하였거니와 알려 하지도 않았다.
공주는 이젠 돌아올 길이 없는 사람이라는 이 일념 뿐이 지금의 왕을
지배하는 단 한가지의 생각이었다. 그 밖엣 것은 왕의 감정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었다.
-이리하여 하오월(여름5월) 공주를 정릉에 안장한 뒤에는 왕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하였다.
그 건장하고 원만하던 체격이며 얼굴이 알아보기 힘들도록 여위고
약하여진 것은 두말도 할 것이 없거니와 성격과 감정에 있어서도 본시의
왕과는 딴 사람이 되었다.
그 세밀한 관찰력과 치밀하고도 밝던 정치안이며 인자하고 관대하던
성질이 모두 어디로 갔는지 없어지고 멍하니 얼혼 빠진 사람같이 되어
버렸다. 무한한 창공을 멍하니 바라보며 한나절을 움직이지 않고 그냥
앉아 있기가 일수며 신하들이 무슨 말을 할지라도 듣는둥 마는둥 몇번을
찾아도 대답도 않고 대답이 있댔자 헛대답이 많았다.
말하자면 인간으로서의 온갖 감정이며 감동이며를 잃은- 한개의
움직이는 허수아비였다.
* * *
공주를 정릉에 안장한 십여일 지난 어떤날 밤이었다.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왕의 부르는 소리가 들리므로 침전밖에 입직해 있던 환관 최만생이 침전
뒷마루로 돌아가려 할때에 왕이 침전에서 나왔다. 보매
뜻밖에(미복이나마) 두면까지 쓰고 어디 밖으로 거둥(거동?)하려는 것이
분명하였다.
만생과 동료 환관 한 명이 달려와서 부액을 하려하매 왕은 손짓으로
그만 두란 뜻과 조용하라는 뜻을 나타내었다.
만생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어디 거둥(거동)을 하시옵니까?
응. 편조의 집까지
작은 소리로 왕은 대답하였다. 그리고 더욱 작은 소리로
미행이다. 너희만 따라라
하고 보태었다.
이리하여 왕은 환관 두명만 데리고 걸어서 대궐을 빠져 나왔다.
대궐 담을 넘어 행길까지 뻗어 우거져 있는 꽃을 우러러 보며 말없이
걷는 왕의 뒤를 환관 두사람은 영문도 모르고 만일을 경계하며 따랐다.
현월(眩月)은 벌써 서산에 걸리고 상쾌한 바람이 옷깃을 날리는 여름
저녁이었다. 아직 초저녁이라 행길에는 오고가는 사람도 꽤 많았다.
이러한 가운데를 왕은 왕으로서 따로이 근심을 갖고 환관들은 직무상의
근심을 갖고 묵묵히 행인의 눈을 피하며 갔다.
반혼법(返魂法)을---
왕이 편조를 밤에 찾은 것은 편조의 반혼술로 그리운 공주의 면영이나마
다시 한번 보고자 함이었다.
호반(胡盤)에 주안을 배포하고 왕과 편조는 마주 앉아 있었다.
전하 아직 시간이 이르옵니다. 대개 혼백은 자정이 지나지 않으면
출유치 않으옵니다
왕께 공손히 술을 부어 드리며 편조는 이렇게 말하였다. 좀하면 도로
펴려는 얼굴을 정신차려 근엄히 꾸미며 편조는 연하여 왕께 술을
권하였다. 왕은 편조가 드리는 술을 받아서 들이키고 받아서는 들이키고
하였다. 한번도 사양하거나 함이 없었다.
편조는 이 드리는대로 술을 받아 들이키는 왕을 보면서 속으로
탄식하였다. 일국의 국왕- 그가 한번 호령하면 천백의 미희(美姬)라도
당장에 구할 수 있겠거늘 잃은 공주에게 대한 지극한 사모의 염이 이
금지옥엽으로 하여금 보행으로 천승(賤僧)의 집까지 오게 하였구나.
전하
상에 벌린 많은 음식중에 공주에게 소하는 뜻으로 채소만을 안주로 하는
이 정열의 중년남자. 여위고 여윈 얼굴은 어느덧 술때문에 검붉게 되고
톡 두드러진 광대뼈 위에 번득이는 두 눈은 눈물 때문인지 취기 때문인지
충혈이 되었다. 떨리는 그의 손. 술때문에 중심을 잡기 힘들어 연하여
팔꿉으로 호반을 짚어 쓰러지기를 면하는 쇠약한 몸.
이 가련한 왕의 신경을 생각할 때는 편조의 눈에도 눈물이 고이려
하였다.
전하. 오늘 반혼술로 공주전의 혼백을 어전에 부르기는
하겠읍니다마는---
말을 끊고 잠시 생각한 뒤에 편조는 그 말끝을 맺었다.
전하께서는 공주전의 혼백을 한번 보시면 다시 이전과 같으신
인군(仁君)이 되시겠사오니까?
왕은 눈을 들었다. 바야흐로 들이키려는 잔을 중도에 멈추었다.
적적하구료. 적적해 오늘 보면 내일 또 보고 싶고 모래 또 보고
싶고---
아니올시다. 혼백은 자유롭지 못한 것. 한달에 한번쯤이나 현신케
하올까. 매일은 힘들것 같사옵니다
한달에 한번- 한달 삼심일- 서른날-
혼잣말 같이 이렇게 뇌이던 왕은 아직 들고 있던 잔을 딱하니 상에
놓았다.
대사. 한달에 한번씩이라도 제발---
그대신 빈도의 아뢰인 말씀을 잊지 말아 주시옵시오. 이전과 같은
인군이 됩소서. 전하 한분을 우러러 보는 창생을 살핍소서
다시 왕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밤은 차차 깊어 갔다.
* * *
자정. 반혼법을 베풀어서 대장공주의 혼백을 왕의 앞에 다시 불러
낸다는 시각이었다. 이때는 왕은 편조의 권하는 술때문에 꽤 취한
때였다. 취하기는 꽤 취하였지만 일단 정신을 박은 일이라 연하여 자정이
아직 안되었느냐고 채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리하여 자정. 편조는 일어나서 왕을 부액하였다. 연하여 쓰러지려는
왕을 단단히 부액을 하고 반혼실로 천천히 걷는 동안 편조는 왕의 귀에
입을 갖다대고 한마디씩 한마디씩 똑똑한 말로 이렇게 말하였다.
혼백은 형태는 있으나 소리는 없읍니다. 첫째로 말씀을 걸으시지
말것이며, 혼백은 자유롭지 못한 것이오니 밝기 전에 놓아 보내셔서
후일의 기약에 편리토록 하옵소서
반혼실은 복도를 통하여 뒤에 따로이 달린(딸린?) 이 집 후당이었다.
편조가 앞서서 문을 열어 잡고 왕을 인도하여 반혼실 안으로 들어갔다.
방 머리맡에는 금불 한채가 안치되어 있고 아랫간은 오색이 찬란한
비단으로 담벽을 삼고 그 앞에는 향로에 향불이 피어 있으며 머리맡
불전에 놓인 방석은 편조의 자린듯하고 웃간 담벽에 기대어 금병풍이
둘리고 그 앞에 용을 수놓은 방석이 왕의 앉을 자리인 모양이었다.
편조는 먼저 왕을 인도하여 불전에 서서 함께 합장예배 하였다.
그리고는 왕을 와으이 자리로 가게 하고 자기는 반혼향가루 한줌을
내어다가 향로에 뿌린 뒤에 불전에 가서 명목하고 꿇어 앉았다.
불전에 명명하는 촛불 두대와 향로 좌우편에 키어있는 두개의 촛불을
광원으로한 이 밤은 비교적 밝았다.
경건한 마음으로 용석에 앉아 기다리는 왕.
엄숙한 태도로 불전에 축문을 외이는 편조.
향로에서는 편조의 뿌린 향가루 때문에 자욱히 연기가 피어 오른다.
엄숙하고 정숙한 시간이 흐르고- 또 흐르고 왕은 이 너무도 경건한
찰나에 어느덧 몹시 취하였던 술조차 얼마간 깨었다.
편조의 축문은 차차 차차 템포 가 빨라갔다. 방안의 향기는 더욱이
자욱하였다. 향로에서는 이윽고 향가루도 거진 탔는지 연기가 점점 엷어
간다.
그때에 그 엷어가는 연기의 틈으로 왕은 보았다.
틀림이 없는 대장공주였다. 너무도 엄숙한 기분이기 때문에 취기도
거진 깬 왕의 눈이 그릇 보았을 까닭이 없었다.
연기가 차차 엷어가는 뒤로 오색 비단을 두른 담벼락을 등지고 단아히
서 있는 한 개의 이국부인(異國婦人).
희고도 좀 넓은 이마며 좀 짧은 듯한 웃입술이며 길고 꼬리가 위로
향한듯한 눈이며 시꺼먼 살눈섭으로, 아로새긴듯 한 코로, 또는 그
몸태도, 옷(원나라 황실복장이었다) 어느 곳이든 일호의 틀림이 없는
공주의 현신이었다. 이 너무도 기이한 일에 한 순간 눈이 아득하여졌다가
다시 왕이 시력을 회복할 때에 아랫간 공주는 얼굴에 미소를 나타내었다.
이젠 연기도 사라진 때라 방긋이 웃노라고 열린 입틈에서 왕은 공주의
이빨까지 보았다. 좌우편 송곳니가 덧니이기 때문에 웃을 때는 더욱
고혹적으로 보이던 공주의 그 덧니까지 틀림이 없었다. 단지 승하 직전의
공주와 조금 다른 점은 공주가 제 아무리 늙지 않은 본국태생으로서
승하할 때까지 청춘미를 그냥 보전하고 있었다하나 그래도 나이가 서른이
넘은 완숙한 맛은 그 얼굴에서든 몸매에서든 감출 수가 없었다. 그랬는데
지금 왕의 앞에 나타난 이 공주는 왕이 일찌기 백안첩목아로서 원경에
있어서 처음 공주를 알고 처음 공주와 사랑을 속삭일 그때의 공주였다.
아! 공주!
그것은 애무와 반가움의 소리라기 보다 오히려 맹호의 신음성과 같았다.
이런 신음성을 내이며 왕이 공주에게로 달려 내려가려 할때의 왕의
옷깃을 붙들은 사람이 있었다.
펄떡 보니 편조였다.
편조의 만면에는 미소가 나타났다. 편조는 왕의 귀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
전하. 아까 아뢴 말씀을 잊지 마시도록, 그리고 저 문을 열면 협실이
있사옵고 그 방에는 금침 준비도 있사옵니다. 그럼 빈도는 밝는 날 다시
배알하겠사오니 오래 막히셨던 정회를 푸시옵소서
공주!
왕은 편조의 말은 듣는듯 마는듯 편조가 밖으로 나가는 동안 두 팔을
벌리고 허둥지둥 공주에게로 내려갔다.
공주는 얼굴에 부끄럼과 미소를 띄고 역시 왕을 맞으려 한 걸음
두걸음--- .
왕을 반혼실에 남겨두고 편조는 홀로 나왔다. 왕과 함께 있기 때문에
저린 팔 다리 허리를 몇번의 기지개로 풀면서 정침으로 향하였다. 왕을
모시노라고 얼굴에 지었던 근엄한 표정도 사라졌다.
재미를 봅시오
후당을 돌아보며 한번 씩 웃은 뒤에 걸음을 빨리하여 제 방으로
돌아왔다.
편조의 방에는 금침이 벌써 준비되어 있고 편조의 베개에 엎드려 한
계집이 자고 있다. 편조는 내려갔다. 가만가만 내려가서 계집의 좌우
엉덩이의 틈을 발로 쿡 찔렀다. 거기 깜짝 놀라서 일어나는 계집을
웃목으로 데구로 굴려 버리고 덤썩 제자리에 누웠다.
굴러간 계집은 일어나 앉았다.
요망스럽게 잠은 웬 잠이야!
계집도 마주 흘겨 보았다.
에끼! 여우같으니!
편조는 계집을 꾸짖었다.
내가 여우같으면 대사는 뭣 같으오?
묏(멧)돼지 같지. 그래 속이 시원하니?
마주 보는 계집의 흘기는 눈이 가늘어 졌다. 서로 가느다란 눈으로
한참을 흘겼다.
내가 묏돼지면 임자는 암퇘지 되련?
싫어
싫어? 잘 싫겠다
싫구나
싫으면 임자는 나가구 주씨(朱氏)나 보내게
것두 싫구나
이두 싫구 저두 싫구- 에라 임자 오늘 밤은 암퇘지 되게
편조는 벌떡 일어났다.
한소리 계명성으로 짧은 밤이 밝았다. 날이 밝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편조는 건넌방으로 건너가서 등대된 옷을 바꾸어 입고 후당으로 돌아가
보았다.
왕도 벌써 일어난 모양이었다. 협실 밖에서 잠시 방안의 기수를 살핀
뒤에 편조는 햄, 햄, 두어번 기침을 하였다. 얼굴에는 근엄한 표정을
부치었다.
안에서는 여전히 동정이 없었다.
햄! 햄!
또다시 짖어보고 그냥 동정이 없으므로 문을 방싯이 열고 보았다.
맞은편으로 보이는 왕- 누구에게 혼을 빼앗긴사람모양으로 눈이 퀭하니
이불 위에 까치 다리로 앉아서 한군데만 주시하고 있다.
편조는 이 모양을 보고 문을 좀 더 넓게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빈도(?편조)의 어깨는 또 우그러졌다.
빈도 올시다
궁중의 절을 모르는 편조는 왕의 맞은 편에 가서 정면으로 왕께
절하였다. 그러나 왕은 여전히 한군데만 주시하고 있을 뿐 편조의 인사를
의식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편조는 한번 큰 소리로 기침을 하였다.
왕이 비로소 알았다. 깜짝 놀라며 몸까지 소스라쳤다.
빈도 올시다
왕은 잠시 멍하니 편조를 보았다.
오. 대사 밝기전에 갔구료
혼백은 광명한 곳을 싫어하옵니다. 전하. 초조반을 진어하압셔야지
혼백은 형(形)은 있어도 체(體)는 없다는데- 공주의 혼백은 체까지
있었구료
네. 전하의 지극하신 정성에 부처가 감동하셔서 특별히 체까지 보낸
모양이옵니다
체까지- 체까지- 아직 방안에 향내가 남고 몇 올 머리털이 남고.
대사. 오늘밤 또 못볼까?
전하 얼른 초조반을 진어 합시고 환궁합셔야지 대궐에서 알면 적지않은
소동이 일어날까 하옵니다
대사. 나는 대궐에 안올라 가겠소
전하께서 환궁 안합시면 빈도의 목이 그냥 남지 못하리이다
왕은 의아한듯이 편조를 굽어 보았다.
公主의 眞影
여름은 무르익었다.
교외에서 빛을 자랑하던 하록(夏綠)은 어느덧 개성안에까지 스며들어서
길가 담 틈, 뜰 구석마다 푸른빛은 한창을 자랑하고 있다.
수녕궁 향각(壽寧宮 香閣) 앞에 작약도 제철이라고 만개하여 하늘을
나는 나비들을 부르고 잇다.
이전에는 공주와 함께 따던 이꽃을-
지금 혼자서 바라보는 왕의 심사는 형용하기 어렵도록 적적 하였다.
향각 난간에 의지하여 한참을 꽃을 굽어보고 있다가 왕은 탄식하며
자리에 돌아왔다.
자리에는 비단 한폭, 붓 몇자루, 단청, 물, 등이 준비되어 있고 내시
몇사람이 부채를 들고 묵묵히 분부를 기다리고 있다.
왕은 자리에 앉아서 붓을 잡고 눈을 감았다.
한번 눈을 감은 뒤에는 뜰줄을 모르는 왕은 여기서도 눈뜰것을 잊은듯이
잠자코 있었다. 공주의 영(影)을 그려 보려고 이곳에 자리잡은 왕이었다.
이전 원나라에 있을 때부터 서(書)며 화(畵)에 있어서 입신의
기(入神之技)라는 찬사를 받아오던 왕은 몸소 공주의 진영을 그려서 이와
매일 대하고자 여름의 작약냄새 우거진 이 향각에 자리를 잡은 것이었다.
그러나 공주의 모습을 생각하고자 일단 눈을 감자 왕의 눈은 뜨이지
않았다. 해마다 공주와 함께 여름에는 작약을 따던 이 동산 또는
지금으로부터 오년전의 한 겨울을 공주와 함께 말타기를 연습하던
연마장으로 쓴 일이 있는 이 동산에 자리를 잡자부터 공주의 모습보다도
지난 십육년간의 공주와의 부부생활이 주마등과 같이 왕의 머리에
어른거려서 붓 들을 생각이 들지를 않았다.
일국의 국왕이나 또한 어지러운 정국의 통어자로서의 왕의 과거는
기구한 생애였다. 연년 다달이 끊임 없이 일어나는 외환 내우.
이 고달프고 어지러운 왕, 생애를 보내는 동안, 물건의 그림자와 같이
왕의 곁에서 고초를 같이 겪어 드리고 간난을 나누어 맛보는 공주가
있었거늘.
왕의 재위 십사년간 그냥 계속적으로 있는 어지러운 일이 생기면 누구를
믿고 누구와 어려움을 나누랴.
아직 낮이 되기 전에 향각에 자리 잡은 왕은 화견을 앞한채 해가 서산에
기울때까지 그냥 망연히 있었다. 붓을 적시어 보지도 않았다.
해가 서산에 넘고 들에 나갔던 새들이 제 깃을 찾을 때야 왕은 비로소
눈을 떴다.
마음이 산란해서 여기서는 안됐다. 환궁하자
* * *
일심을 다하여 왕이 공주의 진영을 완성한 것은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
신기(神技)라는 일컬음을 듣던 왕의 필력이요, 일심을 다하여 가장
사랑하는 이를 그린 것이라 과연 혼이 들은 듯한 진영이 완성된 뒤부터는
왕은 끼니때마다 진영의 앞에로 수라반을 갖다 바치게 하여 산사람 대하듯
하였다. 그 애무와 대접에 있어서 공주 생존시와 조금도 다름이 없이
하였다.
이렇게 공주에게 마음을 향하기 때문에 왕은 온갖 세상사가 귀찮았다.
이렇다 저렇다 대신들이 문제를 가지고 들어오는 것이 귀찮고
시끄럽기만 하였다. 이 모든 세상 잡무에서 피하여 공주만 생각하여 그
여생을 보내고 싶었다.
이리하여 세상 잡무를 피하기 위하여 왕은 중 편조를 사부(師傅)로 삼고
청한거사(淸閑居士)라는 호를 내리고 국정을 자순케 하였다.
과거 십사년간의 경험으로 보아서 소위 세신거족(世臣巨族)들은 서로
틀고 서로 무웃고(?) 서로 짜고--- 이리하여 삐억삐억 좋지못한 꾀만
꾀하고 도당이 짜지고 넘어지면 자연히 세력이 생기고 세력이 생기면
자연히 다른 세력과 다투고 다툴 세력이 없으면 왕에게 대하여 불쾌한
생각까지 품게 되고--- 고려 오백년간을 쌓아 내려온 이 세력은 지금은
너무도 뿌리가 크게 뻗어서 이들에게는 도저히 한나라의 정사를 맡길 수가
없었다.
초야의 신진에서 인물을 추려 낼 수가 없는 바가 아니지만 이들도 차차
올라가서 명망이 생기고 귀하게 되면 어느덧 자기의 초라한 근본을
부끄러이 여겨서 거족들과 혼인을 하고 그 틈으로 잠겨버리니까 이것도
또한 길만 있는 있는 일이 아니었다.
유생은 또한 나약하여 굳센 맛이 없고 그 위에 학벌의 뿌리로써 얼기
설기 연락되어 강직한 정치를 하지를 못할 것이다.
과거 십사년간을 고려의 국왕으로 있으면서 지나본 바로서 통절히
느낀바 있어서 언제든 고립하고 강직한 인물만 골라오던 왕이라 이번에
고려의 정치의 대행자를 선택함에 있어서 중 편조를 부른 것이었다.
득도(得道)한 불도(佛徒)매 욕심 적고 천한 태생이매 얽히는 연줄이
없고 홀몸이매 역모할 근심이 없는 이 편조야 말로 오래 왕이 구해 오던
이상적 인물이었다.
이리하여 편조는 정치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
여름도 어느덧 가고 성했던 모기들도 송악으로 그림자를 감춘 어떤
가을날이었다.
왕도 인제는 얼마만치는 안돈이 된 때였다. 만날 공주의 진영과 음식
거처를 같이 하며 한달에 한번씩 쯤은 반혼법으로 공주의 몸을 어루만질
수 가 있는지라 처음 한 동안과 같이는 비통하지 않았다. 공주 잃은 뒤에
눈물이 잦아진 왕이라 지금도 공주의 말만 나오면 두 뺨으로 눈물이
주르르 흐르고 하였지만 여느때는 담소도 예사로이 하도록 안돈 되었다.
그 어떤 날 왕은 편조와 함께 강안전에서 환담을 하고 있었다.
편조의 말.
빈도- 아니 소신은 본이 불도 출신이라 귀현의 예의에 통치
못하옵니다. 이런 점은 관대히 용서해 주셔야 하겠사옵니다
사실 편조는 어전임에도 불구하고 허리를 펴고 까치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다.
얼굴에 근엄한 표정을 장식하는 것과 어깨를 좀 우그리는 것이 편조에게
있어서는 최대유일의 존경법이었다.
전하의 관후하신 처분으로 사부라는 직책을 맡았사옵지만 소신은---
사부는 그것부터가 틀렸소이다. 소신이라고는 않는 법이요
왕도 웃었다. 편조도 웃었다.
예. 신, 신이 무엇을 알리까. 성의대로만 행하 지만 소 아니 신
본시 미천하와 명문거족들을 어(御)키 힘든 것이 걱정이옵니다
그게야 무슨 근심이 되리까? 사부의 뒤에는 국왕이 있으니 국왕의
명에야 명문거족인들 거역하리까?
그야 그렇지만 신이 전하를 추천하와 사환한 사람들도 일단 높은
지위에만 오르면 신을 무식한 청승이라 수모하오니 이것이 신에게는
억울합니다
왕은 이말을 듣고 얼굴에 검은찌를 한순간에 보였다.
그럴듯한 말이었다. 천승- 명족- 천승- 명족.
왕이 이 점에 대하여 좀 생각하고 있을 동안 편조는 두리번 두리번 살펴
보다가 갑자기
전하. 내밀히 아뢸 말씀이 있읍니다
왕을 쿡하니 었다. 어두운데 주먹으로 넙적하니 엎드린 것도
우스웠고 그 묏더미만한 몸집에서 떨리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우스웠거니와 떨리는 애원성으로 소신 하니 신이라고 정정하는 것이
어욱이 우스웠다. 왕은 고소가운데서 이렇게 물었다-
사부는 대체 무슨 일이요?
죽여 줍시사
글쎄 무슨 일이요?
신이 전하를 기만하왔읍니다
그게 무슨 말이요?
신이 전하를 기만하였습니다. 신자로서 국왕을 속인다는 것은 마땅히
죽을 죈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기만하왔읍니다
글쎄 무슨 일이요?
너무도 수다스럽게 구는 바람에 왕도 눈을 크게 하고 이렇게 묻지 않을
수가 없엇다.
전하, 오늘밤 누옥까지 미행합시면 신이 천팜에 바칠 것이 있읍니다.
죽여 줍시사
사부 죽이기는 저녁뒤에 하기로 하고 지금 일어나서 이야기나 합시다
왕은을 무엇으로 보답하리까?
편조는 일어나 앉았다. 방금까지도 죽여달라고 목소리를 떨던 그가
천연히 일어나서 어깨를 우그리고 얼굴에 근엄한 표정을 나타내고 마주
앉은 이 꼴을 왕은 막연히 바라 보았다.
* * *
그날 밤 편조의 집, 공주 반혼청에는 세사람이 솥발(삼발이?) 모양으로
둘러 앉았다.
금병풍 앞 용석위에 앉은 사람은 왕이었다.
그 곁에 머리를 숙이고 앉아있는 젊은 여인은 대장공주였다.
그 맞은 편에 엉거주춤히 꿇어 앉아있는 사람은 편조였다.
전하, 반야(般若)라는 북국여인이옵니다. 전하를 기만한 죄는 일백번
죽어도 마땅하오니 처분하옵소서. 그러니 이는 신 스스로를 위함이
아니옵고 위으로는 전하를 위함이옵고 아래로는 전하를 잃으면 광명을
끊기는 고려의 창생을 위하여서 옵니다. 공주전 승하 후에 전하를 몇달간
빈전에 모실때에 전하의 심경을 살피옵고 신이 몰래 사람을 놓아서
전국에서 구해 온 여인 백명중에서 골라 내인 사람이 이 반야옵니다.
공주전의 면영을 닮았다고 구해 온 백여명 여인 중에서 가장 흡사한 자로
택한 여인이 이 반야옵니다. 전비(田卑)의 천생이 어찌 감히
용종(龍種)에야 비기리까 마는 그래도 얼른 보기에는 외람 되어도
공주전의 면영을 닮았삽기 행여 전하의 부르심을 볼까하고 신이 꾸이 던
한막의 연극이로소이다. 국왕을 기만한 죄 일백번 일천번 도륙을
당하와도 한이 없사오이다. 죽여 줍시사
왕은 대답이 없었다. 눈을 꾹 감은채 묵묵히 있었다. 방심한듯---
그밖에 다른 표정은 없었다.
아직껏 공주의 혼으로 알고 애무하던 것이 사실인즉 한개 실물 여인에
지나지 못하였으니 거기 대한 낙망때문에 이렇듯 방심 상태가 되었나?
반혼술이라 해서 국왕을 이렇듯 농락한 편조의 행동을 괘씸히 보기
때문에 그 노염으로 이렇듯 묵묵히 있나?
이런 무리들에게 속아서 줄줄 따라다니던 당신의 행동을 스스로
부끄러이 여기기 때문에 대답이 없나?
혹은 대장공주 아닌 이 반야라는 여인에게 애정이 품어지므로 그것을
꺼리어서 가만 있나? 왕은 묵묵히 있을 뿐이었다.
반야도 또한 전하를 모신지 수삭에 외람되이도 전하를 사모하는 마음이
생겼는지 이젠 공주전의 혼백으로가 아니요, 반야 자신으로 모셔보고 싶어
하는 듯한 양을 보면 그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심사가 가증도 하거니와
한편으로는 가련도 하옵니다. 성의(聖意)는 어떠 하온지---
잠간 말을 끊고 왕과 반야를 본 뒤에 편조는 또 말을 계속하였다---
또 한가지 반야는 전하를 처음 모신 뒤부터 태기가 있는 모양이옵니다.
(왕은 이말에는 몸을 흠칫 하였다) 벌써 오륙삭--- 밭은 전비의
천종이나마 씨는 용종, 이 뒤라도 혜비전 마마께서 왕자를 탄생합시면
다른 일이 없겠거니와 그렇지 못하오면 이 아이가 유일의 혈자가
아니오니까? 지금 나라의 정국이 어지러운 때에 하루바삐 혈사 없으시면
고려의 사직이 위태롭사옵니다. 신의 죄는 일백번 죽어도 마땅하옵기
어전에 죽음을 빌거니와 전하의 후를 생각하셔서 반야에게는 관대하신
처분이 계시기를 바라옵니다
왕의 앞이라고 억지로 지으려던 근엄한 표정은 어느덧 자연적 위엄까지
띄었다. 눈에는 눈물 흔적까지 보였다.
왕은 그냥 침묵을 지켰다. 고요한 방에 세 사람은 머리를 숙이고
잠자코 있었다.
한참 뒤에 왕이 일어섰다.
전하 어디로?
편조가 펄떡 놀라서 뒤따라 일어섰으나 왕은 따라오지 말라는 뜻으로
손을 두어번 설레 설레 짓고는 머리를 푹 수그린채 방 밖으로 나갔다.
왕의 눈에서는 눈물이 비오듯 하였다.
편조도 펄떡 놀라서 뒤따라 일어서기는 아혔으나 따라오지 말라는
바람에 따르지도 못하고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반야는 왕이 임어할 때부터 지금껏 머리를 가슴에 묻고 깍아놓은 듯이
앉아 있었다.
좀 뒤에 편조가 나가 알아보니 왕은 어까 벌써 환궁하였다 한다.
왕자는 났건만
그로부터 두달 편조는 대죄하는 뜻으로 집에 박혀 있어서 입궐치
않았다.
반야도 자기의 거실인 별당에서 근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왕에게서는 아무말도 없었다. 죄를 준다는 뜻도 입궐하라는
분부도 없었다.
편조도 이번 일은 왕과 반야와 자기 세사람만이 아는 사건이라 어떻다
말을 낼 수도 없고 단지 침묵 중에서 왕명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랬는데 뜻밖에도 섣달에 들면서 왕은 편조를 수정이순논도 섭리
보세공신 벽상삼한중대광령도첨의사 사사 관중방 감찰 사사 취성부원군
제조승록사사 겸 판서운관사(守正履順論道
燮理保世功臣壁上三韓重大匡領都僉議使 司事 判重房 監察司事
鷲城府院君提調 僧錄司事 兼 判書雲觀事) 를 봉하고 겸하여
환속(還俗)하기를 명하고 속명까지 신돈(辛旽)이라고 내렸다.
편조--- 변하여 신돈은 이 너무도 황송하고 놀라운 성은에 울었다.
첨의(신돈의 벼슬이름). 나를 위해서 국정을 도와 주시오, 그새 안
부른 것은 첨의를 밉게 봄이 아니라 내 좀 생각하는 일이 있어서 그리
하였소
왕이 신돈을 대궐에 불러서 이렇게 말한 때에 신돈은 엉엉 어린애같이
울었다.
전하. 무어라 말씀 올리리까. 다만 전하께서 간사한 무리의 참소에만
귀를 기울이시지 않으시면 신은 미련하오나 신의 힘이 및는 껏 신이
생각이 자라느 ㄴ껏은 전하의 고려, 생명의 복리를 위해서 이 노구를
아끼지 않으리다
이리하여 왕은 친필로써
師救我 我救師 生死以之 無或人言 佛天證明 이라는 맹서문을 써서 주고
신돈은 고려의 섭정의 지위에 서게 되었다.
* * *
반야는 잊어버린 존재같이 되었다. 왕도 반야에 관한 일은 다시
신돈에게 지 않았다. 신돈도 이 열적은 말을 다시 왕의 앞에서 꺼내지
않았다.
태중이기 때문도 되겠지만 나날이 안색이 창백하여 가는 반야를 신돈은
간간 별당까지 가서 위로 하였다.
성욕이 강하기 때문에 젊은 여인의 가까이 가기만 하여도 어지러운
생각을 금하기 어려운 신돈은 반야의 방에 가면 이부자리 쪽으로 눈이 갈
기회를 피하고 할 수 있는대로 엄숙한 기분과 경건한 태도로 반야를
대하고 하였다.
자기의 방에서는 젊은 계집들과 음란한 장난을 기탄없이 하는
신돈이로되 반야에게 들어 가 볼 때에는 언제든 어깨를 우그리고 근엄한
얼굴을 하였다.
그리고 내실과 별당과의 새를 엄중히 경계하게 하여 내실 여인들이
별당에 가는 것을 엄금하고 하인들도 반야의 하인을 따로 두어서 반야의
하인의 내실 출입을 금하고 내실 하인들의 별당 출입을 금하였다.
장래를 기다리오. 상감마마의 부르시는 날을 기다리오. 태중의
애기가 나오시는 날은 상감께서 부르시겠지
어깨를 우그리고 외면을 하고 반야에게 이렇게 말하는 신돈의 태도는
마치 재상가 소지에게 시종드는 늙은 충복 같았다.
이 신돈의 보호 아래서 복중의 왕자는 차차 세상에 고함칠 날을 고요히
준비하고 있었다.
그해도 어느덧 과거장에 말리어 들어가고 새해가 이르렀다. 왕의 제위
십오년이요, 원나라 지정(至正) 이십육년이었다.
그해 이월 신돈의 별당에서는 한개 새로운 생명이 첫울음 소리를 쳤다.
사내였다. 대장공주에게 혈사가 없고 다른 여인은 가까이 하지 않은 이
왕에게는 유일한 왕자였다.
그러나 이 아기의 아버님되는 왕은 아기 탄생을 아지도 못하였다.
신돈은 장차 좋은 기회를 기다리기 위해서 아직 가만 내버려 두었다.
아기는 탄생후 며칠을 지나지 못하여 연령 두살이라 부르게 되었다.
입춘(立春) 전에 탄생하였는지라 입춘이 지나서는 두살로 세었다.
그러나 두살로 세게 되기까지 아직 아버지의 축복을 못받은 가련한
아기였다. 아버지의 축복을 못받았는지라 이름도 아직 못지었다.
내실 사람들은 토끼리 없이
아기
라 칭하였다. 누구의 아긴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별당 하인들 뿐은
아기마마
라 불렀다. 신돈이 이렇게 시킨 것이다. 그러나 왜
마마
라고 부르는지는 신돈과 반야 밖에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공주를 정릉에 안장한지도 일년이 지났다.
공주의 일주기까지는 감히 이런 말을 어전에 꺼내지 못하였지만
일주기가 지나면서 부터는 대신들은 왕께 왕비간택하기를 졸랐다. 그리고
안극인(安克仁)의 따님을 후보자로 들었다. 왕에게 원자가 없는지라 어서
원자를 보아야 겠다는 것이었다.
왕은 마음에 없는 일이었다. 현재 있는 혜비 이씨며 그밖에 궁녀들도
돌보지 않거늘 어찌 또 무슨 여인을 맞아 들이랴. 그러니 너무도 귀찮게
굴므로 어떤날 이 문제를 신돈에게 의논 하였다.
납비 합시다
신돈의 의견은 간단하였다.
그러니 지금 혜비도 혼자 공방을 지키는데 또 한 과부를 만들면
무얼하오?
적적한듯이 왕이 어렇게 말함에 신돈은
그렇지만 전하께서 거절 하시면 연달아 상계가 들어 올테니 귀찮지
않사옵니까?
하며 무사주의를 취하기를 주장하였다.
왕은 신돈의 이 의견에 대하여 무엇이라 말하지 않고 한참을 가만
있다가
반--- 무어? 반---
거북한 모양이다. 신돈은 알아 들었다. 신돈은 씩 웃었다.
전하. 축하 드리옵니다. 거 이월에 왕자가 탄생하셨읍니다. 전하
이하로 고려 천만 창생의 행복이로소이다
왕은 그냥 가만 있었다. 기쁜듯한--- 그러면서도 더 적적한 기괴한
심정이었다.
이 왕자가 공주에게 났으면 얼마나 기쁘랴.
공주 생존시에 늘 왕자를 보고싶어 하더니, 공주 자신의 몸에서
못낳으면 다른 여인의 몸에서라도 왕의 혈사가 생기기를 그렇게도
기다리더니. 지금 난 왕자가 하다 못해 공주 생존시에라도 났더면 공주도
마음을 놓고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공주 임종의 마지막 말---
마마께 사후 없으신 것이 죄송하옵니다
왕은 문득 물었다.
언제요?
예? 이월 **일 이 니다. 원자께서도 건강하시옵고 반야도 산후
평안하옵니다
왕은 눈을 굴려서 벽에 걸린 공주의 진영을 쳐다 보았다.
산듯--- 바야흐로 입을 움직이려는듯 왕을 굽어 보는 공주의 진영.
신돈이 퇴궐할 때에 왕은 원자를 축복하는 뜻으로 왕이 원나라에 있을
때에 쓰던 옥띠를 주었다. 이름은 무니노(無尼奴)라 지었다.
* * *
드디어 안극인의 따님을 왕비로 맞아 들였다. 그러나 비극의 주인공인
이 정비(定妃) 안씨도 첫날부터 별궁에 거처하고 그의 청춘을 외로이
보내지 않을 수 없는 가련한 여성이었다.
* * *
어제날 까지도 한개 중에 지나지 못하던 신돈이 놀라운 세도로 자리에
올라가면서 고려의 조정은 물 끓듯 하였다.
왕의 뜻을 받아서 신돈의 행한 첫번 정사가 세신 권속들의 그 얽히고
얽힌 뿌리들을 죄 짤라버리는 것이었다.
한미한 곳에서 자란 신돈이라 나라의 정치는 잘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될지 이런 복잡한 문제는 잘 처리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그대신
열과 성으로써 여기 대신하려 하였다.
세세로 내려온 조상의 위력을 방패삼아 아무 훈공도 없이 높은 자리에서
편안히 지나는 무리. 왕에게 아첨하여 권력을 얻어 가지고 아래를 누르는
무리. 사병(私兵)을 양성하여 이로써 국방에 당하지 않고 도리어
개인세력을 높이려는 무리.
중 출신의 신돈에게는 꺼릴만한 아무 인연도 없었다.
공자 맹자가 인연이 없으니 그의 후배되는 유림도 걸릴 것이 없었다.
세족(世族)에게 연분이 없으니 권문도 무서운 바가 없었다.
역사를 안배웠으니 원나라도 무서운줄 몰랐다.
고려에서 높일 사람은 왕 한분밖에는 없다.
고려왕은 공자에게 구속될 것이 아니요, 원나라에 구속될 것이 아니요,
세족권문에게 구속될 것이 아니요, 유림에게 구속될 것이 아니요, 만일
구속될 것이 있다면 단지 고려백성에게만 구속되어야 할 것이다.
세태에 무식하기 때문에 이런 용감한 단안을 내린 신돈은 왕이 맡긴
자기의 권한을 높이 들고 재추에 일어 섰다.
신돈이 이렇게 아무 배경도 없는 한개의 중으로서 고려조정에 일어서매
고려조정에서는 가만 있을 이가 없었다.
자기네들 끼리 맡아볼 때는 자기네들 끼리 서로 깎고(깍?) 싸우고
하였지만 상대편으로 신돈이라는 중이 나타나매 일제히 그리로 싸움의
예봉을 들었다.
좌사의대부 정추(左司議大夫 鄭樞)와 우정언 이존오(右正言 李存吾) 두
언관의 상소가 그 첫 시합이었다. 상소문은 대략 이런 뜻이었다.
그 어떤날 문수회(文殊會)에서 보매 영도참의 신돈은 신하의 자리에
서지 않고 전하와 나란히 하여 구경하였으며 영도참의의 하명이 내리는
날도 조복(朝服)을 입지 않았으며 반달이 지나지 못하여 대궐에서도 고추
서서 다니며 말을 탄채로 홍문(紅門)을 출입하며 늘 전하와 나란히 하여
호상에 앉으며 자기집에서도 재상들이 뜰아래서 절하는 것을 자기는 방에
앉아서 받으니 이런 외람된 자는 벌하셔야 합니다.
이 상소문을 왕은 예에 의지하여 신돈과 호상에 나란히 앉아 받았다.
이 상소문을 보고 신돈은 안색이 변하여 상아래 내려 꿇어 앉았다.
전하. 신이 예절을 모르기 때문이옵니다. 죄하십사
그러나 왕은 내려 앉은 신돈을 몸소 붙들어 상에 오르게 하였다.
섭정이 대왕과 나란히 한다는 것은 결코 예절에 어그러지지 않는
일이외다. 오늘 첨의가 세신(世臣)의 한개 상소문에 이렇듯 굴하면 장래
어떻게 국정을 마음놓고 맡기리까?
그리고 도리어 정추와 이존오를 불러서 꾸짖었다.
첨의는 야생(野生)이라 예절에 서투른 것은 나도 알고 맡긴바여니와
그래 몸이 언관(言官)에 있으면서 민정과 왕도에 관해서는 진언할 일이
없어서 겨우 이것이란 말인가? 연변에는 도둑이 왕성하고 나라는
가물어서 백성이 농사짓기가 곤난해 하는 이때에 그래 예의의 말절이나
이렇다 저렇다 할 밖에는 다른 말이 할것이 없단 말인가. 그래서 넉넉히
언관의 직책을 다할 수가 있을까?
이리하여 정추를 동래현령으로 이존오를 장사감무로 좌천을 시켰다.
이렇듯 왕이 철저적으로 신돈을 두호하여 주기 때문에 신돈은 자기
마음대로 고려정치를 주무를 수가 있었다.
서울서 놀고 있는 장신(將臣)들을 차례 차례로 변방으로 쫓았다.
이것은 첫째로는 변방으로 침범하는 도둑을 막기 위함이요, 둘째로는
장신들을 서울에 그냥 두면 서로 핥고 흘기고 모함하고 하므로 이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무능한 세속(世俗)들을 용서없이 벼슬을 깎았다. 아직껏은 무능한 줄은
알지만 혹은 학벌로 혹은 족벌로 얽히는 곳이 있어서 그냥 귀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무능한 명문들을 없이하기 위함이었다.
정민추정도감 을 두고 신돈 자기가 판사가 되어서 민원(民寃)을 직접
듣기도 하였다. 고려의 정사가 흐리고 권문이 너무 높기 때문에 횡포가
심해서 백성들은 권문에게 재산을 빼앗기되 호소할 곳도 없어서 참던
신돈은 호소할 길을 터서 권문들의 횡포를 금하였다.
賣妻求官
권세를 따르는 것은 예나 이제나 일반이었다. 신돈의 권세가 이렇게
되매 차차 신돈에게 부회하는 무리가 많아 갔다. 이 가운데서 신돈은
소인을 추려서 자기의 좌우에 두어서 몸을 장식하게 하고 재능있는 사람은
추려서 상당한 관직을 맡겨서 갈충보국케 하였다.
유림의 반대성 권문들의 아우성 가운데서도 신돈의 권세는 나날이
높아갔다.
공자밖에는 존경할줄을 모르고 원나라 사람 밖에는 숭배할 줄을 모르는
유림이며 권문들은 떨구어 버리려고 별 야단을 다 하였다. 그러나 신돈의
세력은 인제는 튼튼하여져서 어찌할 수가 없었다. 유림은 주둥이만
까졌지 신돈을 대할만한 실제력이 없고 권문들은 자기네들의 내흥때문에
실력을 당할 수가 없고 장수들은 벌써 변경에 쫓겨가서 외구(外寇)막기에
겨를이 없고--- 이리하여 신돈을 꺼꾸러뜨릴 힘은 합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신돈은 왕의 고적한 마음을 위로하기 위하여 공주의 영전(影殿)을
설계하여 역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 * *
그해 십이월 종실 덕풍군(德豊君)의 따님을 맞아서 익비(益妃)로
봉고(성을 한씨라 고침)왕비 책립의 잔치가 대궐에 크게 있는 날이었다.
신돈은 외연(外宴)이 끝나고 내연으로 들어서게 될때에 백관을 거느리고
왕께 축하하는 절을 드린 뒤에 집으로 돌아왔다.
예쁜 여인--- 왕께 바치어서 외따로이 별궁에서 청춘을 보내라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익비 한씨의 얼굴이 연하여 눈앞에 보이므로 이것을 힘있게
떨구며 내실로 들어와서 신돈은 그의 비대한 몸집을 보료위에 커다랗게
내던졌다.
뒤따라 신돈의 심복인 기연의 아내가 들어와서 먼저 찌앉은 촛불을
다스려서 밝혀 놓은 뒤에 좀 어색한 듯이 말하였다.
아까부터 누가 와서 기다리고 있읍니다
신돈은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기연의 아내를 쳐다 보았다. 한편 촛불을
받은 여인의 완숙한 얼굴을 잠시 쳐다 보다가 물었다.
누구야
여인이 올시다
좀 질투하는 음성이었다.
여인? 물론 젊은이겠지
예
예쁜가? 임자와 어떤가?
소인보다 예쁘고 말구요
신돈은 눈으로 미소하였다.
어디 불러 들이게
잠시 디에 문이 열리며 젊은 여인 하나가 들어왔다.
여인은 문안에 읍하고 섰다. 신돈은 여인의 얼굴을 보려 하였으나 불이
약하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자. 이리 와 앉지
여인은 대답이 없었다.
여기로 오지 않았다가는 내가 일어설 테야
계집은 앉았다.
좀 더 가까이
계집은 더 가까이 왔다. 신돈은 계집의 얼굴에 비치도록 불을 돌려
놓았다. 서민은 아니었다. 스물서넛 났을까 꽤 예뻤다.
무슨 일로?
대답이 없었다.
무슨 일로? 나를 찾아온 이상에는 무슨 곡절이 있겠지. 대답 안하면
도로 내보낼 테야
소인의 지아비의 구실자리를 좀 높여 달라러---
지아비의 구실자리야? 그럼 왜 지아비가 안오고 임자가 와?
병중인가?
계집은 대답이 없었다. 얼굴이 새파랗게 된 뿐이었다. 신돈은 거듭
물었다.
병중이 아니면 절름발인가?
-----
절름발이가 아니면 천친가?
신돈은 불쾌하여 졌다. 말이 거칠었다.
그래 서방의 주소 성명은?
선부의랑 이모의 아내라고 계집은 대답하였다. 신돈은 그것을 적었다.
음 알았다. 네 서방은 밝은 아침 잡아다가 곤장을 쳐서 경외에 내쫓고
너는 내집에 있거라. 벼슬을 얻고자 계집을 보내는 놈은 벼슬도 못하고
계집까지 잃을 것이고 너는 이미 내게 허락할 생각으로 온 이상에는 여기
있거라
신돈이 계집을 좋아하여 집에 많은 계집을 둔 것을 알고 신돈의 권력을
시기하는 권문들은 고 한 풍설을 많이 퍼쳤다.
---신돈은 황음무쌍하여 계집을 즐기므로 신돈에게 제 마누라를 바치고
그 덕으로 벼슬을 얻어 하는 무리가 많다. 지금 신돈의 신임을 받고 있는
무리들은 다 제 마누라를 빌린 자들이다. 무누라만 바치면 아무런
벼슬이라도 할 수 있다.
이런 소문이 퍼져서 신돈의 집을 찾아오는 젊은 여인들이 차차 생기게
되었다. 벼슬에 눈 어둔 사람들의 행사였다.
본래 색을 즐기는 신돈은 처음 몇명은 벼슬도 시켜주었다. 그러나 차차
이런 무리가 너무도 많아가므로 인젠 도리어 너무도 해이된 풍속에 싫증이
생겨서 그 비루한 행동을 벌하는 뜻으로 계집만 거두고 사내는 벌하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계집들은 그냥 찾아오는 것이다.
신돈에게 뜻밖의 선고를 들은 계집의 얼굴은 순간 창백하게 되었다.
몸을 훔쳤다.
* * *
한각경 뒤 캄캄한 신돈의 침실 밖에 계집하인 하나이(가) 어쩔 줄을
모르고 망서리고 있었다.
신돈이 알아차리고 누구냐고 물었다. 하인의 대답은 왕이 미행하였다
하는 것이었다.
신돈은 깜짝 놀랐다. 처음은 거짓말인줄 알았다. 반야의 정체를 안
이래 아직 다시 왕이 와 본적이 없었다. 더구나 오늘 대궐에서는 왕비
영립의 잔치가 있었는데 왕이 미행할 까닭이 없으므로 그래서 재차 물어
보아도 여전히 왕이 거둥하셨다는 것이다.
신돈은 할일없이 일어났다. 계집은 버려두고---
신돈은 얼른 나와서 소세를 하고 사랑으로 갓다. 과연 왕은 내시
두명을 데리고 와서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거둥하셨읍니까?
신돈은 절하니 왕은 적적히 웃을 뿐이다.
오늘 잔치는 어찌 하시고 이렇듯?
또 가련한 과부가 하나 생길 뿐이요
왕은 또 미소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우는듯한 미소였다.
순간전까지의 음락에서 갑자기 왕의 적적한 심경에 직면한 신돈은 왕을
위로코자 얼굴에 미소를 나타내려 하였다. 그러나 잘 나타나지 않았다.
왕이 환관을 돌아보며 손을 내릴 때 환관은 무슨 작은 보퉁이를 하나
왕께 드렸다.
아기-
?
무니노에게
신돈은 가슴이 덜컥 하였다. 왕이 갑자기 미행한 것은 아기를 보기
위하였던가. 새 왕비를 맞기 위하여 대궐에서는 욱적할 동안 왕의 적적한
심사는 문득 유일의 혈육인 무니노 아기를 생각나게 하였던가. 얼마나
고적하면 대궐을 벗어나서 이곳까지 미행 하였는가.
이리로 모셔 오리까?
왕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그러나 신돈이 바야흐로 일어나서 나가려 할
때에
잠간 내가 들어갑시다. 겨울 바람이 찬데
하면서 몸소 일어났다.
환관이 왕을 부액하려 하였다. 그것을 왕은 손짓으로 말리고 신돈과
함께 나섰다.
별당에서 뜻아닌 왕의 임어에 방과 몸을 정제할 동안 왕은 몸소 손에
보퉁이를 들고 찬 바람에 덜덜 떨며 기다렸다.
생후 처음의 부자의 대면, 방이 정제되기를 기다려서 들어 가매
남향하여 왕의 자리가 깔리고 그 앞에는 강보에 싸인 아기가 눈을 뜨고
주먹을 빨고 있으며 반야가 웃목에 국궁하고 서 있었다.
왕과 신돈은 들어갔다. 왕은 남향하여 앉고 신돈은 마주 굻어 앉고
반야는 영외에 엎드렸다.
왕은 힐끗 반야를 보았다. 볼뿐 곧 도로 아기에게로 눈을 돌리고 잠시
굽어 보았다. 신돈이 촛불을 정면으로 비치인 아래 누운 강보의 왕자는
주먹을 빨며 무엇이라 중얼 중얼하며 휘번득거리었다.
이 모양을 굽어 볼 동안 왕의 얼굴에는 차차 차차 미소가 나타났다.
음울한 기분이 식어져 갔다. 왕은 손을 들어서 강보의 자락을 들었다.
그런 뒤에 당신 손이 찬것을 근심하는 듯이 몇번 손을 비빈 뒤에 왼편
옆구리를 들치고 들여다 보았다.
첨의
만면의 웃음.
왕씨의 자손은 반드시 왼편 옆구리에 커다란 사마귀 세개가 있소이다.
자, 이것 보시오
굽어 보매 거기는 큼직큼직한 사마귀 세개가 분명히 있었다.
왕은 그것을 본 뒤에 만족한듯이 아기를 두 손으로 조심히 쳐들었다.
얼굴 맞은 편에 높이 쳐들고 한참을 들여다 보고 있을동안 만족한듯이
미소가 나타났던 얼굴에 미소가 없어지고 차차 적적해지고 그 뒤에는 차차
우울해지고 마지막에는 뺨으로 눈물이 흘렀다.
전하. 왜 앙앙해 하십니까?
왕은 덜컥 아기를 놓았다. 흙(흑?)하니 느꼈다.
전하!
공주가 살아서---
전하. 이미 가신이는 가신이 올시다. 돌아 오시지 못할 분을
생각하시면 무얼하리까? 전하 유일의 혈사가 장성하시기까지---
아니. 이 아기의 장성은 보지 못할 것 같구료
그런 말씀---
아니. 영전(影殿)이나 낙성한 뒤에는 나도 머리를 깍고 공주의
명복이나 빌면서 여생을 보낼까 하지만 그때까지도 살지 못할 것 같구료
아니올시다. 전하. 전하께서는---
첨의도 모르시지 내 마음은, 이즈음 강잉히 살아는 가지만 속으로는
기운이 하나도 없어서 들어눕기만 하면 방금이라도 죽을 것 같구료
신돈은 대답할 바를 몰랐다. 할일 없이 손으로 아기의 볼을 쓸어
보았다.
나 천추만세 후에는 이 아기는 첨의께 밖에는 부탁할 곳이 없소이다
왕은 눈물을 씻었다. 그리고 가져온 보퉁이를 아기의 강보 곁에 가만히
갖다 놓았다. 자식에게 어버이로서의 선사. 신돈은 그냥 허리를 굽히고
아기의 볼만 쓸고 있다가 힐끗 영외에 엎드려 있는 반야를 보았다. 행여
왕의 눈이 한번이라도 돌아올까 하여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 측은하였다.
신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왕도 손을 펴서 아기의 머리만 쓸어주고
있었다.
한참을 이렇게 말없이 지난 뒤에 신돈이 문득 몸을 조금 훔쳤다.
신은 차차 늙어서 그러온지 밤엔 요통이 심하오니 먼저 물러가기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아니. 나도 환궁하겠소
신돈은 뜻하지 않고 반야를 힐끗 보았다. 그러나 한순간 뿐이요 곧
눈을 돌렸다.
신돈은 왕을 모시고 별당에서 나왔다. 별당 밖에 국궁한 반야. 비록
소리는 안내지만 울고 있는 것이 분명 하였다. 문밖까지 왕의 보련을
보낸 신돈은 내실로 들어가지 않고 사랑에 자리하게 하였다.
승하한지 만 이년이 가까워 오는 지금까지도 공주를 잊지 못해
앙앙불락하는 왕---
왕의 돌아봄을 못받아 적적해하는 반야---
두개의 적적한 혼을 생각할 때에 신돈은 오래간만에 느끼는
승도(僧徒)로서의 감정--- 인간 무상에 얽힌 고적감 때문에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내실에서는 한 여인이 그의 돌아오기를 기다릴 동안 신돈은 사랑에서
인간무상과 가지가지의 인간상태를 탄식하고 있었다.
* * *
신돈의 정치적 업적의 제 일년도 지났다. 각 창령들은 변방으로 보내기
때문에 외구의 침범이 적었고 관리의 탐욕을 용서없이 벌하기 때문에
백성의 기운이 얼마간 펴고 얽히고 얽힌 권문들의 거미줄을 되는대로 끊어
놓기 때문에 지어 음모를 하는 일이 없어지고 공맹을 무서워하지 않기
때문에 선비들의 잔소리가 적어지고--- 첫솜씨로서는 성공한 편이었다.
세족과 선비들의 아우성은 꽤 심하였지만 이것은 모두 자기네의 개인적
원한을 토로함인지 서민들은
성인(聖人)이 출현하였다
고 까지 찬송하였다.
이런 일년이 지나고 그 이듬해 여름 작년 봄에 기공한 공주 영전이 거의
낙성되어 갈 때에 왕은 영전을 몸소 가서 보고 다시 헐어버리라는 엄명이
내렸다. 영전이 작고 좁아서 중 삼천을 수용할 수가 없다는 것이 왕에게
불만하었다.
그리하여 짓던 영전은 그냥 버려두고 마암(馬岩)에다가 굉장히 큰
설계로써 새로이 짓기 시작하였다. 왕이 공주를 생각하는 지극한 정성은
영전이나마 전무후무한 것을 짓고 싶었다.
신돈은 딱하였다. 왕의 심경을 동정하자면 얼마든 광대한 영전이라도
지어 드리고 싶었으나 지금 농번기에 많은 인력을 들여서 또 새로이
영전을 기공한다 하는 것은 목민자(牧民者)의 차마 하지 못할 일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벌써부터 민원성이 차차 들렸다.
새 영전 역사를 시작한 것이 유월--- 육월에서 칠월, 팔월, 한창
농번기에 농민들은 사역하는 공사라 말썽이 차차 높았다.
이리하여 팔월 어떤 날 때의 도첨의 시중 유탁(柳濯)과 첨서밀직
정사도(鄭思道)와 정비 안씨의 친정 아버지 극인이 서로 의논한 결과 왕께
영전 역사를 중지하기를 상소하였다.
그날도 마침 영전 도본을 상에 놓고 어떻게 하면 전무후무한 영전이
될까 하고 이리궁리 저리궁리할 때에 이 상소가 들어 왔다.
왕은 처음에는 무심히 이 글을 보았다. 보다가 얼굴이 검붉게 되었다.
왕은 글을 찢었다. 그리고 눈을 들어서 둘러보고---
삼사사(三司使) 입직 안했느냐?
고 호령하였다.
이 명에 삼사좌사 이색이 달려와서 미처 대령한다는 말도 올리기 전에
도첨의 시중 유탁과 첨서밀직 정사도를 당장에 순군에 내리오,
동지밀직 안국인은 집에 가서 대명할 것이고 정비(定妃)는 아비의 죄로 제
친정으로 돌려 보내오
하여 영이 추상같았다.
왕의 친명이며 또한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는 이색은 명령대로 시행하러
나갈 때에 왕은 소매를 떨치고 침전으로 들어갔다.
왕의 노염이 너무도 컸는지라 재상들은 노염을 깨드리고자 연하여
아뢰었으나 왕은 침전에서 나지 않고 침전에 누구든 들이지 않았다.
정비 안씨를 쫓아 보내기 때문에 안 문제까지 되므로 태후는 근심하여
시신을 보냈지만 태후의 시신까지도 왕을 보지 못하였다.
그밤을 왕은 통분하여 한잠을 못잤다. 공주의 신성함을 유린당한 것
같아서 속이 불붙듯 하는 가운데서 왕은 그새 잊었던 삼년정의 일까지
회상하였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공주 승하한 뒤 처음은 사흘동안
제사를 안드렸다. 공주의 장례를 영화공주<인종(仁宗)의 딸>의 의식에
좇(쫓)아서 했다. 이 두가지의 일이었다.
서민도 죽으면 그 첫날부터 제사를 지내거늘 일국의 국모되는 공주는
사흘을 제사를 못받았다. 또한 장례에 있어서도 영화공주는 일개 왕녀에
지나지 못하는 신위(臣位)요 대장공주는 일국의 국모임에도 불구하고
공주의 장례를 영화의 의식에 따라서 행한 것이었다.
그때에도 이것을 도맡아 본 사람은 유탁이었다. 그때의 그 유탁이
이번에 또한 영전 역사를 중지하라는 상소를 한 것이다.
이 유탁에게 대하 ㄴ괘씸한 생각 때문에 왕은 밤새도록 한잠을 못이루고
밝는 날 새벽에 신돈과 재상들을 불러 들이고 삼사좌사 이색에게 명하여서
유탁을 국문케 하였다.
이 때에 이색의 지혜만 없었더면 유탁은 반드시 죽음을 면치 못하였을
것이다. 이색은 유탁을 국문한 뒤에 서전에 엎드려 복계하였다.
유탁의 말을 듣잡건데 국모 승하하신 뒤에 신자로서 국모를 잃은
애통때문에 순서를 잃고 부지중 궐제를 한 것이옵고 장례의 절차는 신축년
난리에 고례문(古禮文)을 죄 잃어서 빙거할 바를 아지 못하옵고 단지
기억에 남아있는 영화공주 장의의 절차로 행하였다 하옵니다. 신자의
도리로서 아무리 애통 총망중이기로 궐제를 하였다는 일은 용서치 못할
죄옵지만 국모상을 항한 망극중이오니 관대한 처분이 계시기를 바라옵니다
그런 말로 면하려고? 내 마음이 굽히지 않으니 헐 수 없소
냉혹한 태도로 왕은 간단히 유탁을 죽일 것이라는 뜻을 나타내었다.
신돈도 왕의 곁에 묵묵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맹렬히 노한
것을 처음 보므로 어떻다 말을 끼울 수가 없었다.
서글픈 王情
무서운 공기가 흐르는 가운데 군신은 잠시 묵묵히 있었다. 그 뒤에
왕이 또 입을 열었다.
유시중의 죄로 말하면 첫째로 오래 수상의 자리에 있으면서 불의한
일을 해서 하늘이 가무르니 이것이 죄요, 둘째는 연복사의 밭을
빼앗았으니 이것이 죄요, 공주 승하 후에 삼일 궐제가 그 셋째요, 장례에
영화공주의 예를 좇(쫓)은 것이 넷째--- 이렇듯 불의 불충한 신하니 알아
하오
이색이 또 응하였다.
그러나 전하, 그것은 모두 기왕지사요
그냥 말을 계속하는 것을 왕이 빼앗았다.
여러말 말고 그러면 유시중이 옭고 내가 글르단 말이지?
비교적 낮은 음성이나 장차 폭발할 노염을 감춘 음성이었다. 한 찰라
두 찰라--- 왕의 입이 드디어 폭발하려 할 때에 이색은
뿐만 아니오라 이 일은 영도첨의(신돈)도 아실 일이옵니다---
고 신돈에게 밀어 버렸다.
왕은 신돈의 편으로 눈을 돌렸다. 힐문하는 눈이었다. 신돈은 즉시
받았다.
신도 아옵니다
그럼 첨의의 의견도 역사를 중지하라는 편이요?
이 힐난에 신돈은 푹 머리를 묻었다. 눈물이 그의 늙은 눈에서
떨어졌다.
전하. 성지(聖志)야 거역하리까 마는 민원이 약간 있사옵니다
왕은 잠시 뚫어져라 하고 신돈을 바라보았다. 신돈까지 이런 말을
하리라고는 너무도 억울하였다. 그래도 신돈뿐은 공주의 편을 들어
주리라고 믿었더니. 그러면 세상이 모두 공주를 배반하고 나를
배반하는가.
왕은 일어섰다. 일어서면서 이춘부를 불렀다.
이시중. 이 국새(國璽)를 봉하오
순간 모든 사람의 등골로는 소름이 일제히 돌았다. 모두 푹 엎드린채
숨까지 죽였다. 지적받은 이춘부는 몸을 와들와들 떨뿐 움찍을 못하였다.
왕은 잠간 기다리다가
그것까지도 복종할 신하가 없소?
신돈이 할 수 없이 이색에게 눈짓하였다. 이색은 얼굴이 창백해지며
손을 와들와들 떨면서 옥새를 봉하고
신 이색 근봉
이라 썼다.
그것을 보면서
내가 덕이 없다고 내 말을 좇지 않으니 마음대로 유덕한 자를 구해서
국새를 맡기오. 왕손은 별 종자며 서민은 별 종잘까. 고약한!
최후의 말을 탁 내어 던지고 획 들어가 버렸다.
왕이 들어간 뒤에도 모두 잠시는 죽은듯이 고요하였다.
이 신하들이 정신을 수습하고 왕을 찾을 때는 왕은 환관 네명을 데리고
대궐에서 종적이 사라진 때였다.
왕을 잃은 대궐은 물끓듯 하였다. 대궐에서 왕을 찾노라고 야단할
동안은 왕은 환관 네명을 데리고 정비 안씨궁(정비는 어제 친정으로
쫓았다)으로 공주의 진영 하나만 모시고 가서 그 앞에서 너무도 통분하여
통곡을 하고 있었다.
왕의 행방을 알고 재상들이 옥새를 받들고 행궁으로 갔지만 댓돌 위에도
올라서지 못하게 하여 그냥 돌아왔다. 수라반도 못들이게 한다고 모두
얼굴이 사색이 되어 돌아갈 뿐이었다.
* * *
대신들은 모두 어쩔줄을 모르고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수군거리고
있을동안 신돈은 혼자서 넓다란 정청을 지키고 묵묵히 앉아 있었다.
딱한 일이 생겼군
그러나 신돈의 마음은 이 재상들은 결코 죽이고 싶지 않았다. 유탁의
용맹과 과단성, 정사도의 곧은 마음, 이색의 슬기로움, 모두 일국의
재상으로 그 자리를 더럽히지 않는 인물들로서 이런 변변치 않은 일과는
차마 목숨을 바꿀 수 없는 인물이었다.
신돈은 자기의 몸을 호화롭게 하기 위하여 좌우에 모든 소인배의 무리와
달라서(다른?) 이 인물들은 국가 동량의 재로 아껴오는 인물들이다.
어떻게 해서든 그들의 목숨을 해하지 않고 이 문제를 해결을 시켜야겠다.
두런거리는 대궐에 외따로이 홀로 앉아 있던 신돈은 저녁이 거진 되어
왕이 사랑하여 기르는 비들기들이 모두 제 깃으로 들어갈 때쯤 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순군에 명하여 이색을 옥에 내리었다.
그날 밤도 꽤 어두어서 신돈은 혼자서 왕이 있는 정비궁으로 갔다.
너무도 당돌히 올라오므로 수직하던 내관들도 혹은 어명으로 오나하고
망서릴 동안 신돈은 어느덧 왕의 침전 안으로 들어갔다.
첨의 신돈 아뢰옵니다. 삼사좌사 이색을 어명에 거역한 죄로
하옥하왔읍니다. 신돈 마땅히 대죄할 처지에 있사오나 지금 이색의 일을
끝내고는 대명하겠사옵니다
왕은 신돈이 이렇게 아뢰어도 아주 대답없이 신돈을 보았다.
신돈은 거기 꿇어 엎드렸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이색의 아까의
행동은 오로지 전하를 위함이지 자기를 위함이 아니라는 점을 누누이
설명하고 이색이든 유탁이든 모두 추호라도 승하한 공주를 소홀히 함이
아니라 모두 전하와 전하의 백성을 위하여 자기 몸이 죽기를 무릅쓰고
간하였다는 말을 하여 이 본시 어질은 왕으로 하여금 종내 머리를
끄덕이게 하였다.
이튿날 환궁한 왕은 하옥하였던 신하들을 모두 어전에 부르고 술을 주며
내가 너무도 가볍게 노해서 재상들을 욕보게 한 것을 너무 탓하지 말고
이 뒤에도 늘 충성을 다 해주시오
하고 간곡히 말하였다. 일단 친정으로 쫓았던 정비 안씨도 도로 불렀다.
그러나 왕의 마음에는 유탁의 과실 뿐은 장래 영구히 잊을 수가 없었다.
이리하여 이번의 사변 때문에 이 뒤에는 다시 영전역사에 대해서 감히
말하는 자가 없었으며 왕은 또 왕으로서 역사를 처음같이 쳐몰지 않고
천천히 진행시켰다.
왕의 십팔년 십구년도 주마등과 같이 지나갔다.
왕이 신돈에게 대한 신임은 그 끝이 없는듯 하였다.
왕은 무니노 아기를 보기 위하여 자주 신돈의 집에 미행하였다. 신돈의
집은 이전에 있던 곳이 아니요, 대궐 서문쪽의 빈 터가 있는 것을
신돈에게 주어서 거기 짓게 한 것이다.
아기에게 대한 애정이 나날이 자람을 따라서 반야를 긍휼히 여기는
생각도 차차 들었다. 공주 이외에는 여인을 보지 않으려는 왕이매 다시는
반야를 모시게 하지는 않았지만 쌀을 한달에 삼십석(碩)씩 하사하여 용에
쓰게까지 하였다.
때때로 영전 조영하는데 거둥을 하고 밤에 신돈의 집에 미행하고
굉장하게 문수회(文殊會)를 차리고 공주의 혼전에 제사하고 이런 사사로운
일 이외에는 국정을 온통 신돈에게 일임하고 왕은 일체 간섭지 않았다.
한번 왕의 십팔년 섣달 납일에 공주의 능에 제사치 않았다고(본시부터
유탁을 좋지않게 보던 나마에) 이것도 유탁의 행한 일이라고 유탁을 옥에
가두고 그 집을 적몰 하였다가 재추에서
납제
라고는 없다는 석명을 하여 도로 놓아 준 일이 있었다.
이렇게 전 책임과 전 권세를 한 몸에 지고 나라를 꾸려 나가는 동안
인제는 웬만치 자신도 생기고 눈도 떠지기 때문에 신돈의 정치는 처음의
과도기를 지나서 차차 완숙하여 갔다.
그 때에 아직껏 고려를 지배하던 원나라가 얼마만치 세력이 꺽이고
주원장(朱元璋)이 이룩한 명나라가 커가는 것을 기회로 원나라와의 인연을
투기어 버렸다.
원나라에 맡겼던 제주도 도로 찾았다.
각 연변을 침략하던 왜구도 춤(주춤?)하였다.
정부도 이젠 안돈되어 적재 적소 배치된 정부는 장차 대고려 제국을
건설할 실력을 차차 갖추었다.
중의 아래 들기를 꺼리던(문벌을 자랑하는) 고려의 세족이며 유림들
가운데서도 좀 현명한 사람들은 신돈의 아래 머리를 숙이고 들어왔다.
이러한 가운데 왕의 십구년 사월에는 관음전(觀音殿)을 임시 쓰게 하고
그 육월에는 다시 왕께 간해서 옛날 짓다가 내버린 왕륜사의 영전을 다시
수리하고 마음의 대규모 영전은 중지하도록 하였다.
십구년 섣달--- 신돈이 집정한지 만 사개년 뒤 어떤날 왕이 입시한
사관(史官) 두명에게
민간의 이병은 다 네 득실이니 감춤없이 아뢰라
고 할 때에는 사관들은 천하가 배를 두드리며 성대를 축하하옵니다고
아뢸만치 안정이 되었다.
* * *
왕의 이십년도 절반이 지난 육월 어떤 날이었다.
어떤 날 저녁 신돈은 대궐에서 왕과 바둑을 두었다.
무엇을 깊이 생각하고 있음인지 이날은 유난히도 왕은 바둑이 서툴었다.
횡수가 많았다. 한참을 두다가 왕은 한 점을 딱 놓으며 무심히(인듯이)
이렇게 말했다.
다시 영전 역사를 시작할까 보오
안됩니다. 아직 안됩니다
바둑에 정신이 팔린 신돈은 마주 돌을 놓으며 애교없이 응하였다.
그래도 인제는 민심도 좀 안돈되고---
아직 안됩니다. 왕륜사에 영전이 있는데---
그건 너무도 협소해서---
그만 했으면 넉넉하옵지
왕은 머리를 들었다. 허덕이었다.
첨의까지 공주를 멸시---
멸시함이 아니오라 공주전 보다도 백성이 더 중하옵니다
인제는 더 참을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왕은 벌떡 일어섰다. 바둑에
정신이 팔려서 무심히 마음에 있는대로 대답을 하다가 펄떡 정신을 차리고
우러러 보니 왕은 얼굴이 종잇장 같이 희게 되고 입술 몸 사지 할것 없이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전하
깜짝 놀라서 신돈이 엎드릴 때에 왕은 홱 돌아 섰다.
괘씸한!
전하
신돈은 왕의 옷깃을 잡으려 하였다. 그러나 왕은 빼치고 침전으로
들어갔다.
침전까지 쫓아 갔으나 왕은 내시에게 엄명하여 신돈을 보지 않았다.
신돈은 밤새도록 집에 돌아와서 근심하였다. 그리고 이튿날 밝자
입궐하여 왕께 뵙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왕은 허락지 않았다.
노염이 극도에 달한 것이다.
신돈은 할일없이 집에 돌아와서 대죄하는 뜻으로 문을 닫고 근신하였다.
근신하면서도 걱정하였다. 자기 밖에는 왕이 위임하는 사람이 없는지라
지금 자기가 노염을 샀으매 왕의 마음을 풀어드릴 사람이 없었다.
* * *
근신하는 가운데 한 달이 지났다. 육, 칠월 더위에 신돈은 문을 굳이
닫고 죄인으로 자처하고 그의 즐기던 계집도 모두 멀리하고 지냈다.
어떤 날 신돈은 어명으로 드디어 결박을 지고 대궐로 가게 되었다.
신돈에게는 특별히 친국을 하겠다 하여 어전에는 말을 타고 출입하던
홍문을 (이제는?) 결박을 지고 들어갔다.
친국소 앞 뜰에 꿇어앉을 동안, 얼핏 왕을 쳐다 보니 월여에 무척이도
상하였다.
신돈은 가슴이 송구하였다. 그날 밤 바둑에만 정신이 팔리지 않았더면
좀더 다르게 대답할 말도 있었거늘 정신없이 대답을 하기 때문에 이렇듯
여위 왕을 보매 가슴이 찢어지는듯 하였다.
그러나 그 맛 죄로는 너무도 어마어마한 경계였다. 죄한대야 과즉
견책에 지나지 않을 것을.
대역 신돈. 네 죄를 알겠느냐?
벽두에 대사성 임박의 이 호령에 신돈은 깜짝 놀랐다. 대역이란?
황공 하옵니다
신돈은 머리를 흙에 부비었다. 뒤따라 추상같은 호령이 다시 내렸다---
상께서 너를 그만치 무우하사, 네게 과한 직책을 맡기시고 부귀를
주셨거늘 너는 무엇이 부족해서 기현(奇顯) 최사원(崔思遠)따위와 역적을
도모 하였느냐?
--- 신돈은 가슴이 철꺽 내려 앉았다. 한순간 온 천지가 아득하였다.
네 도당은 모두 토사를 했으니 너도 이실직고하고 성은이나 바라거라
어서 아뢰어라의 소리가 천지가 진동하듯 한 가운데 신돈은 너무 억하여
숨이 (딱)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눈물만 비오듯 하였다.
역시 도모라 한다. 도당은 벌써 토사했다 한다. 그새 다년간
고려정사를 맡아본 신돈은 다 알아 채었다. 자기가 왕과 불화한 이
기회를 타서 누가 참소를 한 것이다. 누구라고 그것을 켈 것도 없다.
자기가 신임을 받거니 이 고려의 권문세가들이 모두 할 수 없이 자기에게
붙어 있었다. 그 신임만 없다치면 모두가 저편이 되고 중(僧) 출신인
자기는 홀로 비어져 나올 것이다.
언관은 자기를 극도로 참소할 것이다. 사관(史官)은 자기를 극도로
곡필을 할 것이다. 재상은 자기를 대역자로 몰 것이다.
어서 아뢰라는 호령과 함께 등으로 빗발치듯 내리는 곤장을 한참 받다가
신돈은 조금 머리를 들었다.
전하께 직소하겠읍니다
무에냐?
대사성이 대신 물었다.
전하, 신은 육년전에 전하께 죽을 죄를 짓삽고 그 때 전하께 바친
목숨이매 언제 거두실지라도 어의에 달렸을 뿐, 그 새의 연명을 사례할
따름이올시다. 오늘 친국의 취지만은 신이 도무지 모르는 바로소이다
네 도당이---
임박이 대신 호령하는 것을 신돈이 받았다.
전하도 총찰하시는바, 신의 지위가 인신의 극이오매 무엇이 부족하와
불퀘를 도모하옵고 신이 이미 연로하옵고 신에게 후사가 없으매, 누구를
위하여 외람되이 보위를 엿보리까. 이---
그것으로 미루어 볼지라도, 너는 자초지종으로 사언(詐言)이 아니냐.
네게는 자식이 있다는---
아니옵니다. 신---
있다---
아니옵니다. 신 본시 유병하와 자식을 못보옵니다. 무엄한
말씀이오나 신이 칠, 팔년간에 사(私)한 계집의 수효도 적지 않거늘 한
계집도 유신하여 보지 못하고 오직 한 계집이 작년에 사내애를
낳았삽는데, 그것은 그 계집의 본남편의 자식인것은 그 계집도 알고 신도
잘아오나 신이 노래(老來?)에 너무 적적하와 그냥 신이 아들이라 불러둔
것이 있사옵지만 그 밖에 후사가 없사옵니다. 남의 자식을 위하여 성은을
배반하올 신이 아니옵니다. 통촉합소서
네 일찍 내게 한 말이 있지 않느냐. 젊은 계집을 많이 가까이 함은
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양기를 기르기 위해서라고. 그런데 사했단 말이
또 웬말인고. 그것도 사언이 아니랄까
신돈은 왕의 특별한 관후한 처분으로 수원에 유배(流配)되었다. 소위
도당들은 모두 죽었다.
유배되는 길에 신돈은 이번의 참소자가 누구인지를 알았다. 선부의랑
이인(李靭)이었다. 몇해전에 자기에게 아내를 보내서 벼슬 높여 주기를
청하였거늘 신돈은 이것을 괘씸히 보고 계집만 빼앗고 청은 안들어
주었더니, 그 결과가 오늘의 이것이었다.
배소로 떠날 때 신돈은 기회를 타서 재상 이인임에게 왕께 아기마마의
뒤를 청하였다.
이리하여 신돈은 수원 배소에서 목 자르고, 그 목을 갖다가 서울에
걸어서 구경을 시켰다.
신돈이 죽은 뒤에 왕은 신돈의 집에서 기르던 무니노를 대궐로 불러서
태후께 알현시켰다.
동시에 신돈 죽은 인제는 다시 간할 사람이 없는 영전 역사를
시작하였다.
왕자 무니노의 생모 반야는 신돈의 집이 적몰될 때에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다.
* * *
신돈 죽은지 한 달 두 달간은 왕은 무심히 지났다. 그러나 석달---
날이 갈수록 통절한 고적감을 느꼈다.
정부에서는 그 새 신돈이 세웠던 시설을 모두 없이할 동안 왕의
마음에는 신돈을 그리는 생각이 나날이 간절하여 갔다. 어떤 때는 공주를
사모하는 마음이나 거진 같으리만치 애타도록 그리운 때도 있었다.
마음의 괴로움을 하소연할 사람도 없었다. 알아줄 사람도 없었다.
그 새 다 들어서 신돈에게 맡겼던 정사는 신돈이 죽기 때문에 다시
왕에게로 돌아왔다.
그 번거러움.
정 애탈 때에는 신돈을 부르면 그래도 신돈에게서는 좀 시원한 말이라도
있었거늘, 이 막히고 빽빽하고 답답한 재상들과 대하려면 정 진저리가
났다. 사사에 공맹을 들고 나오고 송당을 들고 나오고 선왕을 들고
나오고---
이런 가운데서 왕의 성격은 괴벽하여 갔다. 신돈이 죽은지 일년 뒤---
마음영전의 종루(鐘樓)가 낙성 되었다가 헐리우고(높이가 얕다고) 영전의
취두(鷲頭, 금 육백오십량, 은 백량을 들인)가 된 때 쯤은 왕은 온전히
다른 사람 같이 되었다. 대수롭잖은 일에 성을 내고 내면 포악성을 띄는
것쯤은 그래도 인간미가 있는 편이요, 때때로는 이틀 사흘을 말 한 마디도
없이 음침한 얼굴로 앉아 있다가는 생각나면 엉뚱한 일을 시켜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하였다.
이십일년 시월에 왕은 자제위(子弟衛)라는 것을 두기로 하였다. 그것은
김흥경(金興慶)으로서 두목을 삼은 미소년들의 무리였다.
홍윤(洪倫), 한안(韓安), 권진(權晋), 홍관(洪寬), 노선(盧瑄)등이 왕의
사랑을 받는 소년들이었다.
그러는 한편 계집들에게 대한 잔학본능이 강하여져서 계집--- 그
가운데서도 젊고 예쁜 계집이 괴로워하는 양을 보는 것을 통쾌히
여기었다. 대궐에서는 계집들은 차차 이 괴벽한 왕을 무서워하고
꺼리었다. 어떤날 왕은 홍윤을 익비 한씨의 방에 몰아넣은 일까지
있었다. 한씨는 반항을 하였지만 왕까지 칼을 뽑아들고 종내는 꺽고야
말았다. 그것을 엿보며 기뻐하는 왕.
* * *
왕의 마음은 나날이 어지러워 갔다.
일찌기 어떤 날 청년 때에 개가 몹시 짖는 것을 보고 저개가 아마 배가
아픈 모양이라고 약방에 명하여 약을 주게한 일이 있느니만치 착하고
인자하던 본성은 어디로 없어졌는지 지금은 그냥 음침한 가운데서 날을
보내고 날을 맞고--- 무슨 잔혹한 일을 본 뒤에야 비로소 약간 음산한
웃음을 얼굴에 띄어 보이느니 만치 왕은 격변 하였다.
어떤 때 심히 마음이 어지러울 때는 당신의 목이라도 잘라 보고 싶은
기괴한 충동 조차 일어났다. 왕의 앞에서 술상이 떠나 본적이 없다.
술이 매우 취하여서 가까스로 잠이 들면 그래도 좀 나았지만 깨어 있기만
하면 가슴이 설레거리고 강박관념에 눌리워서 잠시도 마음이 펴지는
순간이 없었다.
이런 가운데서 연달아 생각나는 것은, 하나는, 과거 십육년간을
동고동락한 대장공주의 추억이요 또 하나는 과거 육년간을 당신과 나라를
위하여 애를 쓰다가 도리어 당신께 죽인바 된 신돈 생각이었다.
공주만 살아 있어도 오늘날 이런 미칠듯한 고경(곤경)에는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공주 잃은 뒤에라도 신돈이라도 그냥 살았더면 어떻게든
당신을 위로하여서 이렇듯 괴로운 경지에까지 빠지게는 안할 것이다.
나날이 체력이 쇠약하여 감을 느끼고, 나날이 늙어
감(마흔네살이었다)을 느끼고, 나날이 마음이 더 어지러워 가는 것을
느낀다. 인제 더 산대야 얼마를 더 살지 못할 것이이요, 오래 산다
하여도 그것은 괴로운 시간을 더 오래 누리는데 지나지 못할 것이다.
어떤 날 왕은 태후궁에 태후께 뵈러 갔다.
인사가 몇마디 왕래된 뒤에, 왕은 침울한 음성으로 말하였다---
신의 수도 인전 다 하고 얼마를 더 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태후전마마. 무니노를 당부하옵니다. 아무 철 모르는 어린애옵니다만
전하는 그게 무슨 말씀이요?
신의 망령이 아니옵니다. 지금 후사를 세우지 않으면 한을 천추에
남길듯 하옵니다. 이 사직도 부탁 하려니와 공주영전의 역사를 뉘 맡아서
계승하리까!
태후는 이 아드님의 초췌한 양을 민망한듯이 한참을 보았다.
영전의 굉장 화려한 것이 천하에 무비라고 원성이 많은 위에 전하는 또
농번기에도 비만 오면 영전역사에 방해된다고 기청제(祈晴祭)를 드리고
하니 임금된 도리에 어그러진 일로 아오.
또 이 즈음 들으니 김흥경등 소년들을 일야 대궐에 머물러 둔다 하니
이것도 또한 인자의 효도를 막는 것으로 임금의 취하지 않을 일이요.
전하, 늘 밤이 깊도록 깨 계시다니 밤이 늦으면 아침도 늦는 법이라,
정사에 게을게 될 터이니 역시 임금의 피할 일인데 좀 삼가시오
왕은 침울한 얼굴로 듣고 있다가 모후의 말이 끝나자 일어서려 하였다.
태후는 왕의 옷깃을 붙들었다.
전하. 내 말에 대답을 하고 나가시오
예
명료치 않은 대답을 하고 몸을 돌이키려는 왕을 태후는 그냥 안놓아
주었다.
들으시오? 안들으시오?
명대로 시행하겠읍니다
또 비빈(妃嬪)들은 왜 보지 않우?
왕은 머리를 끄덕 하였다.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공주만한 자 없읍니다
주루루 눈물이 흘렀다.
이 마흔네살이 난 아드님의 눈물을 보고 태후는 그만 우셨다---
사람은 한번 죽는것--- 전하도 면치 못합니다
그러나 왕은 눈을 멍하니 뜨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 * *
음산한 왕과 난륜의 궁실과 어지어운 정국--- 이런 가운데서 그 해도 또
넘어갔다.
정치의 중심이던 신돈이 없어지고 왕 또한 정치를 돌보지 않으므로
재상들이 제각기 당파를 짜가지고 제멋대로 놀아나는 고려의 정국은 다시
수습하기 어렵도록 어지러워 갔다.
이런 어지러운 가운데서 이십사년 봄도 가고 여름도 또한 가고 가을이
이르렀다.
그렇지 않아도 음산한 가을 팔월 어떤 날, 왕은 꺼질듯한 음침한
기분으로 환관 최만생의 부액을 받고 후원을 거닐고 있었다.
후원의 어느 곳이라 이전 한때 공주와 손을 마주 잡고 안다녀 본 곳이
있을까. 봄에는 꽃을 따라, 여름에는 녹음을 찾아, 가을에는 낙엽을
주으러, 겨울에는 눈을 보러, 늘 함께 다니던 공주의 생각 때문에 왕의 푹
숙이고 있는 얼굴에서는 연하여 눈물이 흘렀다.
한참을 이렇게 거닐다가 문득 변의(便意)가 생긴 왕은 만생을 데리고
내전으로 돌아왔다.
매화틀(便器)에 앉아서 왕이 침울한 얼굴로 앞만 바라보고 있을 때에
곁에 부축하던 환관 최만생이 허리를 굽혀서 제 입을 왕의 귀에 가져다
대이고 소근거렸다.
상감마마, 익비께서 유신(有身, 胎中) 합신듯이 들었읍니다
무얼? 익비가?
예. 벌써 다섯달인가고 들었읍니다
왕은 한순간 기괴한 표정을 하였다. 그 뒤에 물었다.
누구라더냐? 사내는? 들었느냐?
비의 말씀이 홍윤이라 하옵니다
홍윤?
왕은 잠시 침울한 얼굴을 계속하였다.
응. 공주 생전에 늘 원자(元子)없는 것을 근심하더니 인전 됐다
왕은 일을 끝내고 일어났다.
홍윤의 입을 막아야 소문이 안나지. 내일 창릉에 알할 때 독주를
먹일까?
그러고는 획하니 얼굴을 최만생에게로 향하였다.
너도 내막을 알았으니 살지 못할줄 알아라
만생은 왕의 너무도 침울한 얼굴에 몸서리쳤다.
여전히 그 날 저녁 왕은 술을 몹시 먹고 대취해서 자리에 들면서는 정신
모르고 잠이 들었다.
그 밤도 어지간히 깊은 때에 왕의 침전을 향하여 발소리를 감추어
가지고 가까이 오는 몇명의 괴한이 있었다. 최만생, 홍윤, 권진, 한안,
노신 등이었다. 밝는 날 왕께 죄 받기 전에 왕을 시하여 자기네의 생명을
도모하고자 함이었다.
대취하여 업어갈지라도 모를만치 된 왕의 이불을 벗어던진 가슴에는
흉한들의 칼이 내려박였다.
도둑이야!
역도야!
좀 뒤에 침전에서 울리는 이 아우성. 이것은 역도들이 일을 끝내고
스스로 피하려고 지른 함성이었다.
그러나 위사(衛士) 한명도 이 소란한 침전으로 달려 오는 자가 없었다.
침전에서 고함 지르는 소리에 내전 궁인들도 모두 깨어 일어났지만
무서워서 나오지 못하고 내전에서 야단들만 하고 있었다.
이런 소란한 대궐에 제일 먼저 달려온 것이 왕의 모후되는
명턱태후였다.
모후가 달려왔을 때는 흉도들은 가장 아닌체 하고 왕의 앞에서 통곡들을
하고 있을 때였다.
태후궁에서 단숨에 여기까지 달려온 태후는 숨이 딱딱 막혔다. 태후는
침전에 뛰어 들면서,
아이고 이게 웬 일이요. 전하! 전하!
피가 펑 고인 방에 주저 앉아 아드님의 머리를 흔들며 울었다.
전하. 전하. 내가 왔소. 전하! 너희들은 빨리 가서 대신들은 지급
입내 하래라
태후의 명으로(아닌체 하고 있던) 흉도들이 물러간 뒤에 침전에는 태후
혼자서 아드님의 육체를 흔들며 통곡 하였다.
전하! 전하! 정신을 차리오? 전하!
문득 왕의 입술이 조금 떨렸다. 눈이 힘 없이나마 조금 움직이는듯
하였다.
태후는 얼굴을 아드님의 눈 마주 갖다 대었다.
전하. 내요, 내야
무, 무, 무
무어요? 물요?
무, 우, 니, 노
무니노 말씀이요?
왕은 그렇다는 뜻으로 눈을 감았다.
태후의 마음은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져 나갔다. 왕의 최후의 소원---
무니노를 보고 싶다는 그 소원을 들어주자니 태후궁까지 갈 사람이
없었다. 임종의 아드님을 두고 태후는 떠날 수가 없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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