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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사 방/조선오백년 야담

조선 오백년 야담 제13화 / 可憐杜十娘 - 名妓哀話

by 연송 김환수 2013. 8. 30.

朝鮮(李朝) 五百年 野談

 

차 례

 

第 一 話 - 寶娘靑湖 - 血痕奇譚

第 二 話 - 樂浪好童 - 悲戀哀史

第 三 話 - 楊書房致富 - 抱腹絶倒

第 四 話 - 風流監司 - 節佳妓話

第 五 話 - 哀戀話 - 靑春悲戀

第 六 話 - 異花 雪竹梅 - 復讐奇譚

第 七 話 - 將軍義盜 - 名將逸話

第 八 話 - 煩惱僧 - 佛力奇譚

第 九 話 - 悲愴- 百濟哀話

第 十 話 - 金議官 叔侄 - 韓末逸話

第十一話 - 李星信最後 - 海戰悲話

第十二話 - 阿非知九層塔 - 望鄕哀話

第十三話 - 可憐杜十娘 - 名妓哀話

第十四話 - 公主神尺 - 怪夢奇譚

第十五話 - 餘愁 - 落照悲話

第十六話 - 斬首된 별아기 - 愛情悲譚

第十七話 - 千里遠情 - 義俠美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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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 화>

名妓哀話(명기애화)

可憐杜十娘 (가련두십낭)

 

 

명나라 만력(萬歷) 연간의 일이었다.

북경태감(北京太監)에는 각지 청년이 천여 인이나 몰려들어 있었다.

한때는 북경 시내가 이를 좌감(坐監) 학생들의 판이 되고 말았다.

명나라 조정에서 무슨 까닭으로 이렇게 입감(入監)의 전례를 만들었느냐

하면 이때 일본 풍신수길(豊臣秀吉)이 대병을 움직이어 명나라를 치려는

생각으로 먼저 조선을 습격하매 오래 태평에 젖은 조선은 도저히 그들의

적수가 되지 못하였다.

이리하여 조선은 급거히 이 병화를 명나라 조정에게 고하고 구원병을

보내 주기를 청하였던 것이다.

명나라 조정에서는 누차 황제 어전에서 회의를 거듭하여 마침내 조선을

도웁기로 가결은 되었지마는 큰 군사를 움직이는 데에는 막대한 군비가

필요한지라, 국고에 있는 현재의 돈으로는 도저히 그 막대한 군비를

담당(감당?)할 수 없게 되어서 필경 꾀를 낸다는 것이 태감(太監)을

개방하여 적지 않는 상납금을 받고 청년을 수용하여 군비에 사용하기로 된

까닭이었다.

이때 그들 청년가운데에 이갑(李甲)이라는 청년이 있었으니 절강

소흥부(浙江紹興府)에서 명문거족의 자손으로 유명한 이포정(李布政)의 큰

아들이었다.

이러한 집 큰 아들로 매양 귀히 자라고 응석으로 자라서 공부에 힘을

쓰지 못하였고 마음은 약하기 여자와 다름 없었다.

그러나 청운의 뜻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동향 친구

유우춘(柳遇春)이란 청년과 작반(작당?)하여 북경으로 올라온지 이미

반여년, 좌감(坐監)의 목적은 달하였지마는 그 대신 전에 감히 하여보지

못하던 일 하나를 배우게 되었으니 그섯은 교방(敎坊) 오입이었다.

나이도 젊으려니와 인물이 여자와 흡사하다 할만치 고와 교방에

출입하는 허다한 남자 가운데서 특히 뛰어나 보이었다.

인물이 그러하였을 뿐 아니었다. 돈 쓰는데에도 그다지 남에게 뒤지지

않았다.

이러한 인물과 이러한 풍도를 가지고 일없이 지낼 수는 만무하였다.

교방의 미인들은 서로 다투어 이공자의 총애를 받아 보고자 하였다.

그 허다한 미인 가운데에서 동무의 질시와 선망을 받아가며 마침내

이공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한 개의 미인이 있었으니 그는

두십랑(杜十娘)이라는 기명을 가진 열아홉살 먹은 예기였다.

교방사원(敎坊司院) 천여명 예기 가운데에서는 첫째 둘째를 다투는

미인으로 만도 유야랑의 인기를 끄는 아교(兒敎)이었다.

두십랑은 열두살 먹었을 때 지금 양모에게 몸이 팔려 와서 오늘까지

칠년 동안 수만금의 돈을 벌어 주었다.

그의 인기는 그의 고운 얼굴과 절묘한 기예와 아울러 그의 착한 심지에

있었다.

그의 심지는 이러한 화류계에서 드물게 보는 착한 심지였다. 동무중에

신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기의 용돈을 절약하여서라도 힘껏의

동정을 아끼지 않았고 유야랑 가운데에 너무나 끝없는 짓을 하는 자가

있으면 그의 미움을 각오하면서도 그의 비행을 극구 만류하기도 하였다.

사소한 일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일이 만도의 인기를 끄는데 가장

유럭하였다.

그리하여 두십랑을 자기 것으로 하려는 야망을 가지는 자가 나날이

늘어갔다.

그러나 두십랑은 여간해서 몸을 허락하지 않았다.

돈이면 무슨 일이든지 행하지 못할바 없는 화류계이지마는 두십랑의

절개를 깨뜨리지는 못하였다.

권력도 하잘 것 없었고 황금의 힘도 쓸 데 없었다.

이러한 두십랑이 한 개 한미한 서생 이공자(李公子)에게 몸과 마음을

아울러 기울일 줄은 누구나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두십랑은 이공자를 만날 날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굳센 힘이 둘의 몸을

붙들어 매어 주는 것처럼 떨어지기가 싫었다.

이러고도 내가 소위 명기이던가

이러한 반성을 하기는 하면서도 두십랑은 이공자의 곁을 떠나기 싫었고

이공자 앞에서는 마치 처녀같이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두근거리었다.

이것은 두십랑이 그러할 뿐이 아니었다. 이공자 역시 두십랑과 자리를

같이한 이후로는 다른 교방에 발을 들여 놓지 않았다.

두십랑의 얼굴을 보지 못하면 밥맛이 없었다.

 

* * *

 

초련(初戀)에 미쳐진 두 남녀의 얼은 남보기에 해괴할만치 상규(常規)를

잃었다.

이공자는 몸에 지니고 왔던 돈은 이미 써서 없거니와 멀리 아들의

성공을 축수하고 있는 시골 부친을 속이어 적지않은 돈을 올려다가 이

교방에 흩였다.

그러나 사람의 정은 오직 깊어갈 뿐 그칠바를 모르지마는, 한 있는 돈은

필경 그쳐지고 말았다.

이공자의 부친은 아들의 방탕을 눈치채게 되어서 겨우 연명하여갈

돈만을 아들의 친구 유우춘(柳遇春)에게 부쳐서 아들에게 내어주게 할

뿐으로 넉넉한 돈을 보내지 않았다.

이것을 당하게 된 이공자의 가슴은 아팠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급하고

아픈 것은 두십랑의 사랑을 놓칠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그리하여

이공자는 가졌던 패물과 서책까지도 내 팔아가지고 두십랑의 집에 출입을

계속하였다.

유우춘은 동무의 타락하여 가는 것을 보매 은근히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어 권고도 하였다.

여보게 우리가 애초 교방에 출입하여 보게 됨은 열인도 하여 보고

견문도 늘려 보자는 것이었지 자네처럼 몰두 종사하자는 것은 아니었으니

그만 정신을 차리는 것이 어떠한가, 유래로 교방 기녀란 믿을 수 없는

것이니

하면 이공자는

이것도 한 때이고 저것도 한 때이니 미칠 대로 미쳐 보겠네

하고 막가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이공자는 부친의 마음을 거역하고 아내를 배반하고 친구를 잃고라도

한개 두십랑을 얻어 보자는 결심이었다.

두십랑 역시 이공자의 열렬한 사랑에 진정을 바치지 않을 수

없었으려니와 그 역시 모든 것을 잃고라도 이공자 하나만을 얻으면

만족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열렬한 정이 맺어진 둘 사이에 한 커다란 장해는 역시

돈이 없음이었다.

두십랑의 수양모 되는 노파는 이갑(李甲)의 수중이 점점 궁핍하여 가는

형편을 보고 냉대하기를 시작하였다.

어제까지 이갑을 보면 바로 왕후 장상이나 맞이 하는 듯이 아첨과

봉명을 유공불급히 하던 노파가 오늘은 눈쌀을 찌푸리고 괄시하기를

마지않았다.

화류계란 돈이 없는 날이 인연이 끊어지는 날인줄 알면서도 이갑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발을 끊을 이공자는 아니었다.

싫어하거나 미워하거나 이공자는 두십랑의 정을 유일의 편을 삼아 하루

궐하지 않고 드나들었다.

그런 중에도 가장 고생은 두십랑이었다. 이 눈치 저 눈치를 보아가면서

이공자의 마음을 즐거웁게 하자니 더욱 힘이 들었다.

노파는 이제는 노골로 두십랑을 꾸짖고 욕설까지 하는 날이 늘어갔다.

이런 빌어먹을 신세보지, 이마에 솜털이 미어지기 전에 얻어다가 인제

제법 돈푼이나 벌게 되니까 게다가 버러지가 붙어 일 참 잘 된다.

이럴랴거든 차라리 다른 교방에다가 몸을 팔아서나 그동안에 든 돈이나

빼게 해다고

하는 욕설을 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두십랑의 덕으로 수만금의 돈을 벌어

먹었건마는 그런 소리는 꿈에도 하지 않는다.

두십랑은 듣다 못하여

아니 그게 어인 말씀이요. 이공자인들 한푼 두푼의 돈을 썼소,

오늘까지에 허비한 돈만 해도 볏백거리나 넘지 않소

그돈을 다 나 주었니, 그게 왠소리냐.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지

이노릇 해 먹는 년이 해가에 남의 사정까지 본다더냐. 정히 너 그 위인을

딸고 싶거들랑 네 몸을 물어달라고 그러려므나. 그랬으면 고만 아니냐.

나는 돈만 받았으면 그만이지 누가 널더러 살지를 말랬니, 보지를 말랬니,

같이 살던 죽던 내야 알배 있니

아니 어머니는 진정으로 하시는 소리요, 홧김에 하시는 말요

늙은 년이 무얼 못해먹어서 젊은 것 데불고 거짓말 해 먹으라더냐

아니 그러면 어머니는 내 몸 값을 얼마 받으시려우

노파는 이 말을 듣더니 코웃음을 치면서

얼마나 받으려우(?), 바로 돈이 있는 듯이 말을 하는구나. 다른 사람

같으면 천금을 준대도 부족히 알겠다마는 쿵쿵지가 된 이생에게서 받으면

멀마나 받겠니, 은자 삼백량만 삼일 안으로 내 노라고 그러려므나.

그것도 말이지 특별히 생각한 것이니까 사흘 안에 만들어 와야지 삼일이

넘으면 천금을 준대도 싫다. 사흘이 넘거든 행여 우리 문안에 발을

들여놀 생각을 말래라 만일에 그래도 뻔뻔히 들어오면 창피한 꼴

당하리라고 해라

노파는 한미한 서생 따위가 무슨 놈의 삼백금이 있으랴 하고 얕잡아

생각한 것이었다.

지당한 말씀이요마는 사흘 한은 너무나 혹하지 않소. 그야 삼백량 돈

만들려며는 못만들기야 허겠소마는 기위 선심을 쓰는데는 열흘만 한을

잡아 주시우

노파는 그러면 그렇지 하는 낯으로

삼백량 돈 만들기가 어렵지 않은 사람이면 사흘을 해 무얼 허겠니마는

니가 그렇게 말하니 그럼 열흘을 보아 주마

하고 선선히 대답하였다.

열흘이 넘어서도 돈이 안되면 이공자인들 무안해서 다시 오기야

허겠소마는 만일에 돈이 돼서 온 후에 이러니 저러니 말씀은 마슈

죽고 썩어도 비릿비릿허게 굴 내가 아니다

하고 노파는 도리어 어깨 웃음을 치는 것이었다.

이날밤 두십랑은 이공자와 한자리에 누워서 낮에 양모와 설왕설래한

내용을 이야기 하며

몸을 깍아 파는 수가 있더라도 여기를 벗어났으면 좋겠소

하였다.

그야 낸들 그 생각이 없나마는 지금 수중에 돈이 없으니 어쩌면 좋은가

 

정히 없으면야 허는 수 있소마는 친구다운 친구가 있다면 그만한 돈

돌려 주지 못하겠소. 다른 일과 달라서 돈 삼백량만 있으면 우리 둘이

꺼릴 것 없이 평생을 해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소, 첫째 분해서 못

살겠소

하고 이공자는 한동안을 신음하다가

어디 그럼 내일 짐 단속을 해놓고 몇몇 친구를 만나보고 시골 갈

터인데 노수가 부족하다고 사정 사정해 보지 그리해서 줏어모아 보는 수

밖에

글쎄 그렇게라도 해 보슈, 설마 하느님도 하느님이지 우리더러

죽으라고야 허시겠소, 무슨 탁방이든지 나겠지

과히 염려 말게 어떻게 만들어 보지

이렇게 대답을 하였지마는 자신이 없었다.

과연 이튿날부터 삼일 동안을 동분서주 하여 보았다.

말인즉 시골 갈 노수를 잠시 취해 달라는 것이었지마는 듣는 사람은

곧이 듣지 않았다.

시골서 상당히 지내는 문벌가로 만일에 아들을 불러 내릴 필요가 있다면

노수를 아니 보냈을 리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는 족족

실패에 돌아갔다. 여출일구(如出一口 = 異口同聲)로

객지에 우린들 무슨 돈이 넉넉한가, 도리어 날 좀 꾸어 주었으면

좋겠네

하는 대답이었다.

 

* * *

 

벌써 나흘째 공연히 걸음만 걷고 말품만 팔았다.

오늘도 한편으로는 무안해서 두십랑의 집을 찾을 수도 없으려니와

객관에 들어가기도 당기지 않아서 유우춘의 집을 방문하였다.

무관한 터이기 때문이었다.

자네 요새 신색이 좋지 못하니 무슨 근심되는 일이나 생겼나

유우춘은 근심스러운 낯으로 이공자의 눈치를 본다.

이공자는 울울한 가슴 속이 이야기만 해도 풀릴 것 같아서 두십랑과

약속한 내력을 낱낱이 얘기해 들렸다.

유우춘은 그 이야기를 듣더니 머리를 외두르며

잘못일세 잘못야. 두십랑은 당대의 명기로 기원 제일이 아닌가.

그러한 명기로 몸값이 겨우 삼백금이란 것도 말이 안되고 또 굳기가

쇠뭉치같은 노파가 그만한 돈에 두십랑을 내놓을 리 만무하여이. 그런

소리를 해 가지고 자네에게서 돈 삼백량을 울겨 먹자는 것이 분명하여이

하고 곧이 듣지 않는 것이었다.

울거 먹을대로 먹었으니까 그리고 자네가 돈이 없어진 것을 알고

그러한 어려운 문제를 내서 자네를 못오게 하는 꾀가 분명하여이, 내

생각같아서는 하루빨리 절교를 해 버리는게 옳을 것 같으이

하고 충고하는 것이었다.

글쎄 그것도 그럴듯한 말일세

이렇게 겉으로 대답은 하고도 이공자는 미련이 남아서 이후 삼일 동안을

동분서주하여 보았지마는 역시 헛애만 쓰고 말았다.

도합 엿새가 되었다.

두십랑은 이공자와 헤어진지 엿새가 되도록 아무 소식 없는 것을 보고

속이 답답해서 부리는 아이를 길로 내보면서

만일에 이공자를 만나거든 죽기를 한하고 모셔 오너라

하고 일렀다.

저녁때가 되어서 부리는 것은 이공자를 다행히 길에서 붙들었다.

무안해서 아니 오려는 이공자를 한사코 끌고 왔다.

서방님 대관절 웬 일이시우

하고 물었다.

이공자는 고개를 숙일 뿐으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돈이 안된 모양이구려

부끄러운 말이지마는 엿새를 돌아다녀도 삼백량커녕 삼백푼이 안되니

무안해서 올 수 있던가

인정을 모르는 강박한 세상이 그르지 서방님이 그를게 무어요. 하여간

이 눈치를 양모에게는 보이지 마시고 오늘은 내게서 주무시우, 달리

생각한 배가 있으니

하고 붙들어 재우더니 이날밤에 두십랑이 장농 속에서 은자 일백오십량을

내 놓으며

내가 푼푼이 모은 돈이 이것이니 이것을 가지고 가셔서 유우춘

서방님을 보고 사정을 자세히 말씀하면 설마 퇴각이야 허시겠소.

나머지를 채워 주실 것 같소. 그 양반은 워낙 부호가 자제라 그만한 돈

없을 리는 없으리다

엿새 동안에 돈 한량도 구처 못한 이갑이에게는 한 커다란 서광이

비치었다.

이튼날 날이 새자마자 이공자는 그 돈을 몸에 지니고 발이 공중에 떠서

유우춘의 집을 찾았다.

유우춘은 이갑의 이야기를 듣고는 천만 뜻밖이란 낯으로

세상에 사람이란 경솔히 말못할 것일세그려, 두십랑의 심지가 그러할

줄 모르고 어쩌니 어쩌니 한 내가 부끄러우이, 참 세상에 드문 여자일세.

화류계 속에도 그런 여자가 있더란 말인가. 희한한 일일세. 염려말게,

그러면나머지 일백오십량은 내가 채워 놈세. 내가 돈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자네가 속을까봐 그런 것이었네

하고 쾌락을 하고 몇번이나 감탄을 마지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넨 복이 있네. 그런 부실을 얻다니

하고 부러워 하기까지 하였다.

이공자는 너무나 기뻐서 도리어 말문이 막혀서 얼빠진 사람같이 멍하니

있었다.

 

* * *

 

어머니 이공자께서 은자 삼백량을 만들어 가지고 오셨으니 받으슈

노파는 제아무리 정 아니라 무엇이 있은들 은자 삼백량이 무슨 수로

마련되랴 하고 얕잡아 생각하고 태평으로 있었던 것이 눈앞에 은덩이를 내

논것을 본즉 후회도 나고 어안이 벙벙해서 한동안 말을 하지 못한다.

설마 어머니가 날더러 전에 헌 말이 거짓말이라고야 허실 수 있겠소.

만일에 그렇다면 나는 당장에 자결이라도 할 터이니 깊이 생각허슈

두십랑은 결심의 빛을 얼굴에 나타내며 이렇게 다졌다. 노파는 사리가

이젠 하는 수 없는 것을 깨닫고

일이 어차피 이렇게 됐으니까 가는 수 밖에 있니

하고 저울을 내다가 은자를 달아 받으며

기위 가게 된 바에는 당장에 나가거라. 그리고 그동안 몸에 걸친 입성

패물은 하나두 건드리지 마라

이것도 사리에 당치 않은 말이언마는 두십랑은 아무 소리 하지 않았다.

염려마슈, 당장에 나가오리다. 그리고 옷과 패물 등속은 상고해

받으슈

하고 노파가 장만해준 의복과 패물을 하나 깔축없이 챙겨 내주고는 그길로

바로 칠년 동안 정든 처소를 등지고 나왔다.

자아 우리 보교를 잡아 타고 유우춘의 집으로 가서 내두사를 의논하세

이공자는 아직 세수단장도 아니하고 자고난 헌옷 하나만을 몸에 걸친

애인을 바라보며 의논하였다.

천만에 이꼴을 하고 어디를 가겠소. 내 동무 사월랑(謝月娘)의 집으로

가십시다. 여기서 지척이니

두십랑은 눈물이 글성글성 해서 이공자의 팔을 잡았다.

세상에 화류계란 이다지도 강박한가. 소위 명기라던 계집으로 속신하고

나가는 꼴이 이다지 초초해서 옳을 일인가. 미웁든 곱든 칠년 동안 돈을

벌어주고 한솥의 밥을 먹은 수양모이어든 잘 가란 말 한마디라도 있는

것이 당연치 아니한가.

노파는 두십랑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대문을 걸어 잠그며

잘 살기나 해보지, 다시 행여 찾아오지 마라

한다. 이것이 사람의 인사일까. 이것을 생각하매 구차히 이 세상에 살아

있는 것이 욕일까도 싶어서 한심하였다.

그러나, 그러나 눈앞에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정든 이랑이 있음에 다시

맘을 고쳐 먹고

자아 어서 가십시다

하고 걸음을 재촉하였다.

분하고 억울하고 괘씸해서 눈물도 나오지 아니하였다.

사월랑은 발바닥으로 뛰어나오다 시피 둘을 맞아 들이었다.

이공자가 두십랑을 속신코자 돈을 주선하러 다닌다는 말은 기위 들어서

알지마는 오늘 이렇게 들어닥칠 줄은 몰랐었다.

아니 그런데 아우님 속신하고 나오게 된 것이 기쁘긴 하오마는 대관절

어째 이렇게 초초히 나오셨소

하며 사월랑은 두십랑의 초초한 행색을 휘둘러 본다.

참고 참았던 눈물이 두십랑의 두뺨에 흘러나린다.

여보 세상에 이런 법이 있소, 이럴래서야 세상에 이노릇을 해먹을 연이

어디 있소. 우리가 팔자가 기구해서 이 짓을 해 먹으오마는 이런 냉혹한

대접을 받아보기는 난생 처음이구려

하며 수양모의 냉혹한 태도를 눈물섞어 이야기 하였다.

당한 두십랑보다 듣는 자들이 이를 갈았다. 신세가 일반인 처지에 있는

그들이라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아니 세상에 그런 몹쓸 늙은이가 어디 있나? 그게 인두겁을 썼으니까

사람이지, 온전히 죽지는 못허리라

이러한 욕설까지 하였다. 그리고 동정의 눈물이 저절로 솟아 올랐다.

사월랑은 이를 갈다시피 하며

가만 있게 아우님을 이렇게 초초히 보내서는 우리들의 낯이 깎이네

하고 일변 동무에게 통문을 돌리어 모이게 하고 일변 자기의 패물

등속으로 장신을 해 주었다.

형님 어쩔라고 이러슈

아니 자네가 당한 일이 내가 당한 일이나 진배 없네

하고 일변 부근 반관에 기별하여 성찬을 차리게 하였다.

이리하여 두십랑과 이공자를 주빈으로 성대한 송별연을 열었다.

 

* * *

 

이 송별연은 북경 화류계에서도 드물게 보는 굉장한 연회이었다.

일등기란 명기는 다 모여들었고 이렇다는 오입장이는 다 모여들었다.

반나절 밖에 아니되는 시간에 간신히 통문을 돌렸건마는 그 통지를 받은

기생들과 오입장이들은 하나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였다.

평소에 남에게 미움을 받지 않던 두십랑의 인기가 그렇게 만든 것도

만든 것이지마는 주간(주관?)하는 기생이 당대의 명기의 하나로 유명한

사월랑인 덕도 있었다.

이날 밤이 초경에 가깝도록 진탕으로 놀은 후에 먼저 두십랑 내외를

사월랑 자기집으로 보내고는 사월랑이 일어서서 일장 설화를 하였다.

두십랑의 지금 처지와 수양모의 냉혹한 처사를 호소하였다.

사월랑의 눈물겨운 호소는 듣는자의 심금을 울리지 않고는 마지 않았다.

여럿은 의분이 일어나고 동정이 생기어 삽시에 전송금이 모여들었다.

나도나도 하여 성책에 응분의 금액을 기록하였다. 사월랑은 자기일처럼

기뻐 하였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여러 동무에게 치사를 마지 아니하여

우리도 사람이란 것을 이런 때에 남에게 알려 봅시다

하고 부르짖었다.

두십랑 내외는 연회를 마치고 그날밤은 은혜를 입은 유우춘의 사관에서

하루를 이야기로 새웠다.

그리고 이튿날 곧 행장을 차려가지고 절강 고향으로 가기로 하였다.

고향을 떠나서 단둘이 새가정을 이룬다 할지라도 일단 시부모에게 신부의

예를 마치는 것이 도리에 옳은 것을 두십랑 자신이 역설한 까닭이었다.

그러나 이공자는 두십랑을 데리고 고향으로 가기를 매우 꺼리어 하였다.

그대의 말이 지당함으로 가기는 가야하겠네마는 오늘까지 부모에게

불효를 끼친 나머지에 외첩을 데리고 간다면 상필 우리 둘은 문전에

들이지 않을 것 같으이

하며 두십랑에게 슬품과 고생을 끼칠까 염려하는 것이었다.

차라리 이곳에서 무슨 짓을 해서 호구를 하여 가든지 그대로 몰래

살아가다가 나중에 알면 알고 모르면 모르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고 재삼 두십랑이 결심을 고치기를 바랐다. 두십랑은 의외라는 듯이

불만의 빛을 얼굴에 띄며

그게 무슨 말씀이요. 우리들은 평생을 누릴 결심을 하고 함께

되었거든 한때의 부모의 노염을 두려워하여 숨어 산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고 무슨 큰 죄라고 그다지 숨어 살게 무엇이요. 그뿐아니라 안사

천리라니 가사 아것이 불미한 일이라면 어찌 이 소문이 고향댁으로 가지

않고 말 리 있소. 만일 나중에 양친께서 아시고 보면 더구나 노염이 크실

것이 아니겠소. 부자지간은 천륜이어든 어찌 영영 뵙지 않고 말게 될 될

리 있겠소. 나 역시 한개 천첩이라 할지라도 공자를 평생의 남편으로

뫼시는 이상 어찌 시부모의 알아보심이 없이 지낼 수 있사오리까. 그런

말씀은 섭섭한 말이시니 행여 그렇다 생각 마시오

이공자는 두십랑의 도리 깊은 말에 대답할 말이 없어 고개를 숙이고

있고 곁에 있는 유우춘은

여부가 있는 말이요, 지당한 의견이지. 여보게 이군 자네는 너무

심약해서 못쓰겠네. 부모의 노염은 한때의 노염이고 도리는 천고의

도리가 아닌가

하고 권하였다. 두십랑은 이공자의 눈치를 보며 한편으로 가엾게

생각함이었든지

만일 불쑥 들어가시기가 난처하시거든 함께 내려가서 나는 댁 근처에서

며칠 사관을 잡고 있을 테니 그동안에 부모님의 노염을 푸시게 하고

나중에 들어가 뵈옵는 것도 좋지 않소

이 말에 다소 생기를 얻은 이 공자는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하고 떠나기로 합시다

하였다.

이리하여 곧 출발하기로 의논이 끝나매 유우춘은 사관 하인을 내보내어

하남으로 내려가는 배 한척을 잡게 하였다.

두십랑은 길을 떠나기로 결정이 나매 더욱 기뻐서 어쩔줄 모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머나먼 뱃길이 비참하고도 애달픈 나그네 길이 될 줄이야

귀신 아니어든 어찌 짐작 조차 할 수 있었으랴.

 

* * *

 

이틀 동안을 유우춘의 집에서 정양한 두십랑 내외는 때마침 하남으로

내려가는 배를 잡아 타게 되었다.

배는 두돛배기 중선이었다.

마침 다른 선객이 극히 적었기 때문에 배는 마치 두십랑 내외를 위해서

꾸며 논 배와 다름없었다.

명화 두십랑이 연경을 뜬다네

하는 소문은 북경 화류계에 파다하여져서 이날 강두에는 때아닌 꽃이

만발하였다.

여느때는 지저분하고 혼잡하고 비린 냄새가 코를 찌르는 부두에 오늘은

꽃같은 기생들이 향기를 피워주는 것이었다.

당대의 명기란 명기는 사월랑을 비롯하여 대개가 모여들었고 유명한

반관의 장괴들도 친히 못오면 대인이라도 보냈다.

개중에는 오입장이도 많았다. 평소의 두십랑에게는 직접 간접으로 폐를

끼치는 사람들은 구경 겸 모여들었고 이공자의 친구 그리고 이 모든

광경을 구경하고자 모여든 군중은 부두를 시커멓게 물들여버리었다.

배가 닻줄을 감아 올리고 주황색 돛을 드르럭 드르럭하며 달아 올리기

시작하니 부두에 오른 여러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일로평안(一路平安)의

인사를 부르짖었다.

이때에 사월랑은 조그마한 손궤함을 손수 받들고 배 위에 올라서

두십랑에게 전하며

이것은 남아 있는 우리 동무들의 정성껏 모아서 아우님께 드리는

것이니 약소타 말고 받아주오

한다. 그리고 이어서

이것은 우리들의 정성이 모인 것이니 함부로 열지 마시고 급할 때에

열어보슈

하며 입으로는 웃으면서도 눈에는 눈물이 금방 떨어질 듯이 가득히

고이었다. 두십랑은 감격해서 눈물을 흘리며

여러 동무의 은혜를 무엇으로 갚아야 하겠소. 배를 나려(내려?)

일일이 치사할 수 없으니 형님이 대신해서 아뢰어주슈

하고 그 궤를 받아 옆에 끼고 뱃전에 나서서 여러 동무를 내려다보고

몇마디 인사를 하였다.

그러나 감격에 눈물이 솟아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이 광경을 바라본 여러 기생들은 거의 다 손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코를

훌쩍어리었다.

유우춘은 육지에 내려서는 차마 바로 볼 수 없음인지 돌아서서 자꾸

눈물을 씻는 것이었다.

그 중에 수선쟁이 오입장이 하나가

기쁜 길을 떠나는데 눈물이 웬일이요. 자아 배가 떠나니 고별이나

허슈

하고 소리를 치며

두십랑 내외 백세천세!

하고 부르짖었다.

삿대가 육지를 밀어 넘기매 육중한 배는 뱃머리를 돌리기 시작하고

여럿의 입에서 터져나오는

일로 평안히 백세를 누리시오

하는 인사의 소리가 한덩어리가 되어서 부두를 뒤흔들었다.

무심한 배는 물을 헤치며 몸을 돌린다. 이공자는 손을 들어 여럿에게

인사하고 두십랑은 뱃전에 머리를 대고 엎대어 운다.

이 아름답고도 애처러운 광경에는 아무 관계가 없는 구경군들도 눈물을

뿌리지 않을 수 없었다.

허 제-기 북경에 자랑거리 하나 없어졌네!

하고 히히탄식을 하는자도 있었다.

 

* * *

 

노수가 모두 얼마나 남았소

하고 이공자는 두십랑에게 묻는다.

연경에서 떠난지 사흘후에 풍우가 대작하여 중간 어느 연강 포구에 배를

대고 사, 오일을 묵고나니 서울서 지니고 떠난 이십량 노수는 얼마 남지

않았을 것 같아서 심약한 이공자는 이렇게 아내에게 물어본 것이었다.

두십랑은

이십랑을 가지고 떠났으니 얼마나 남았겠소. 그러나 설마 노수가 없어

중간에 봉변이야 하게 되겠소

돈 없으면 봉변이지 별 수가 있소

정히 그렇게 심려가 되시면 안심하시도록 보여 드리리다

하고 두십랑은 한편으로 너무나 심약한 이공자의 태도에 불만을

느끼면서도 애인의 심려를 덜어주기 위해서 출발임시에 사월랑이 전하고

간 조그마한 상자를 끌러 이공자의 앞에 놓으며

이걸 좀 열어보슈,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모르지마는 어려운 때에

열어보라고 했을 적엔 기필코 그 속엔 돈이 들어있을 듯 허오.

이공자는

당신에게 준 것이니 당신이 끌러보우

하는 것을 두십랑은 얼레빗으로 머리를 가리면서

네것 내것이 어디 있소. 어서 열어보슈, 열쇠가 여기 있으니

하고 협낭을 내어민다.

협낭끈 끝에는 조그만 열쇠 두개가 매달려 있다.

이공자는 상자를 열었다. 그 상자 속에는 또한개 조그마한 궤가

들어있고 그 궤 위에 한봉의 쇄금(碎金)이 놓여 있다.

여보 금이구려 금

하는 이공자는 반가운 낯으로 그 사금봉지를 두십랑에게 전한다.

얼마치나 될 것인지 꺼내보슈 그려

이거 아무리 적게 치더라도 백량어치는 될 듯 싶소

그만하면 족하구려, 설마 든다허니 백량까지야 들겠소, 또 그건

무엇이요

하고 턱으로 그 상자 속에 있는 궤를 가리킨다.

글쎄 가만 있어

하고 이공자가 이윽히 그 궤 두께를 들여다보더니

여보 여기 이상한 글이 써 있구려

한다. 두십랑 역시 이공자의 말에 호기심이 생겨서

어디 봅시다

하고 자기 앞으로 끌어다가 들여다보니 거기에는 세자(細字)로

杜娘以外 斷勿觸手 如有違則 當有重報

(두랑이외 단물촉수 여유위측 당유중보)

의 네 글귀가 쓰여 있다.

날더러만 보라구 했구려, 어이 무엇이길래 이 따위 장난을 했을까,

나만 보랬으니 나만 그럼 열어볼까

하고 그 궤짝을 들어 자물쇠를 열고 그 속을 들여다보고는 다시

두께(뚜껑?)을 덮어 잠그며

장난들두

하고는 고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엔 숨길 수 없는 기쁨의 빛이

떠올랐다.

무어야

시댁에 가서 차차 보여드리리다

하고 상자를 저리로 치워 놓는다.

이공자는 더 재쳐 물으려고 하지 않았다. 젊은 여자들의 짓이니 상필

무슨 장난의 짓을 한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하여간 백량어치의 쇄금은 이공자의 마음을 명랑하게 하였다.

이튼날 날이 개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배는 다시 행선하기를 시작하여

연 사흘을 남으로 남으로 흘러 내려갔다.

때는 마침 구월 열 사흗날(사흘날?)이다. 만월에 가까운 명랑한 달은

완월객의 심서를 산란케 하고 망망한 강물 위에는 천조각 만조각의

금파은파(金波銀波)가 뛰놀았다.

배는 홍구(虹口)라는 포구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강 언덕

주루에서 바람에 실려 흘러오는 풍류소리는 바야흐로 상녀부지

망국한(商女不知 亡國恨)의 옛글을 돌이켜 생각하게 하였다.

여보 우리도 연경을 떠난지 일순(열흘?)에 가깝도록 아무 흥취가 없이

지냈으니 오늘밤 달을 볼겸 술이나 한잔 마셨으면 좋겠소

선창에서 달을 바라 보고 있던 이공자가 돌연히 이런 제의를 하였다.

두십랑 역시 감개가 무량하던 차이라 이공자의 말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지 아니해도 나 역시 그런 청을 헐까 하던 차이요, 그럼 사공을

부르셔서 분부를 허시구려

이공자는 기뻐서 사공을 불러 술과 안주 등속을 장만해 오도록 하였다.

그리고 두십랑은 따로 돈 얼마를 사공들에게 행하해 주면서 육지에

올라가서 술을 사먹고 돌아오게 하였다.

사공들은

이러기에 같은 값이면 서울 행차를 뫼셔야 해

하고 치사를 마지아니하며 둘을 남겨 놓고 상류하였다.

 

* * *

 

뱃머리에 술상을 차려놓고 두십랑 내외는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다.

두십랑의 부어주는 술을 오늘 처음 마시는 것은 아니었지마는 이공자는

새삼스러이 흥취를 느끼었다.

두십랑 역시 같은 느낌이었든지 오늘은 먹지 못하는 술을 벌써 수삼배

마셨다.

그렇게 먹어서 괜찮겠소

괜찬지 않으면 어때요, 당신이 곁에 계시니 취해 정신을 모른들 설마

날 버리고 달아나실까

하고 웃었다.

여보 그런데 취흥이 일어나고 보니 그대로 있을 수 없구려. 당신헌테

소리를 청허는 것이 예가 아닌 것 같소마는 당신의 노래를 들은지도

오래고 또 이 야심한데 뉘 볼 사람이 있소 한마디 불러 보우

두십랑은 이공자의 청을 쾌락하였다. 그역시 한마디 부르고 싶은

충동을 받았던 것이었다.

곡명(曲名)은 소도홍(小桃紅)이다.

유객의 청을 따라 하기 싫은 노래를 부를 때에도 명창이란 칭찬을

받았거든 이제 정랑과 더불어 기탄없는 술을 월하에 마셨으니 그 어찌

아름다운 목청이 나오지 않을 것이랴.

청아한 음성이 강산에 흘러 뛰노는 인어도 바야흐로 숨을 죽이고 들을

듯 오묘한 곡조와 아울러 듣는 사람의 심서를 울리고 마는 것이었다.

이공자는 무릎을 자로 치며 갈채를 마지 않는다.

여보 고만허우, 더 듣다가는 살아 있지 못할것 같소

하고 두십랑의 손을 잡는다.

이때에 이 두십랑의 배에서 그리 동안 뜨지 않은 곳에 배를 대고

하룻밤을 묵고 있은 청년 하나가 있었으니 그의 성은 손(孫)이요 이름은

부(富)이었다.

그는 휘주신안부(徽州新安府) 사람으로 연기 이십에 누거만의 재산을

가지고 있은 호운아였다.

그의 생화는 양주(楊州)로 소금을 무역하러 다니는 관계로 이따금 이

포구에 배를 대는 수가 적지 않았다.

오늘도 뱃속에서 혼자 적적히 누워 있노라니 어디서 떠들어 오는

노래소리 그 청아한 성음과 곡조는 바야흐로 연경 화류항에서가 아니면

들을 수 없는 묘음이다.

이 노래의 주인이 누구일꼬

손부는 벌떡 일어나서 선창을 열고 내다보니 달은 중천에 높이 떠

사면이 백주와 같은데 노래는 바로 건너 뱃머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분명하였다.

손부는 그 노래 주인의 근지를 알고 싶어 부리는 하인더러

너 저 건넛배에서 지금 소리를 하고 계신 부인이 어떤 이인지 알아봐라

 

하였다. 하인이 금방 돌아와서 하는 말이

가서 물어본즉 이공자께서 꾸며 타신 배인데 소리를 하시는 부인은

이공자의 아낙이시란 말만 들었읍니다

하고 손부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공자라 하니 의당 행세하는 집 사람이 분명하되 행세하는 집

정부인으로 저와 같은 노래를 부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상필 서울 기생의 퇴물이 분명하다.

이렇게 생각하매 의마심원(意馬心猿)으로 잠을 이루지 못할 지경이었다.

 

* * *

 

이날밤 새벽녘부터 또다시 풍우가 대작하고 때아닌 진눈깨비까지 섞여서

쏟아지매 배는 하루를 더 이 포구에서 묵게 되었다. 손부는 천재일우의

이 풍우를 기화(奇貨)로 여기어 자기 배를 이공자의 배 곁으로 대이게

하고 창문을 열어 놓고 이공자의 내행의 얼굴을 구경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 때에 두십랑은 일찌기 일어나서 소세단장을 한 연후에 세수물을 선창

밖으로 내버릴 양으로 선창 창문을 열고 반신을 내 밀었다.

손부는 두십랑의 화용을 한번 바라보매 정신이 황홀하였다.

방가위(方可謂之) 국색이었다. 손부는 돌차간(잠깐사이)에도 그가

가정의 양부(良婦)가 아닌 것을 짐작하고 더욱이 동심이 되어 먼저

이공자의 내력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선창을 두드리며

고학사(高學士)의 매화시 두귀(梅花詩二句)를 읊었다.

설만산중고사와 하니 월이임하미인래라

(雪滿山中高士臥, 月移林下美人來)

이갑은 시 읊는 소리를 듣고 누가 이 글을 읊나하고 선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사면을 둘러 본다.

손부의 계획은 들어 맞았다.

그리 되기를 예기하고 글을 읊은 손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거참 피차에 풍우를 만나 고생이외다 그려. 어디로 가시는

행차이오니까

네 나는 절강으로 가는 사람이외마는 노형은

네 나는 연경으로 소금을 무역하러 가는 상고이외다마는 택호가

뉘신지요?

택호랄게 있음니까. 나는 이갑이란 한미한 서생이외다

천만에 소제는 손부라 이릅니다

이렇게 수인사를 한 뒤에 둘은 시사이야기로 한동안을 보냈다. 이것이

동기가 되어 둘은 급작히 친하여 졌다.

손부는

풍우가 우리의 행선을 머물게 한 것은 상필 하늘이 우리로 하여금

반가이 만나게 하는 것인듯 하니 우리 이 포구 주루에서 한잔 나누면서

청담을 하시는게 어떠하오

말씀은 고마우나 우연히 만난 우리 사이에 폐를 끼쳐서야 되겠읍니까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오. 사해는 개형제라니 사귀면 친구이어든

공연히 사양치 마시오. 외려 섭섭하외다

하며 부리는 아이를 불러서 우산을 잡게하고

자아 어서 그대로 나오시오

하고 상륙하기를 재촉한다.

이공자는 할일 없이 옷을 고쳐 입고 배에서 내렸다.

할일 없다느니 보다 속으로 해롭지 않게 여기었다. 그래서 둘은 얼마

걷지 않아서 이 포구에서 제일가는 주루에 올랐다.

손부는 깨끗한 방 하나를 치고 이공자를 인도해 들였다.

자아 우리 여기서 종일을 놀아 봅시다

하고 값을 묻지 않고 극히 사치하는 음식을 주문하였다.

너무 그리

하고 사양을 하는 것을 손을 들어 말리며

뜻 밖에 친구를 얻었거든 돈이 무슨 관계가 되리오리까

하고 부호다운 풍도를 보이었다.

이윽고 갖은 주효가 식탁에 가득히 배열되매 손부가 잔을 들어

이공자에게 권하며 문한시화로 부터 이야기하기를 시작하여 화두를 차차

화류계로 돌리었다.

한동안을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 하던 끝에 손부는 음성을 낮추며

그런데 어제밤 형의 뱃속에서 노래를 부른이가 누구이오니까

하고 물었다.

이갑은 다소 자랑하고 싶은 생각이 나서

그 노래 소리가 어떠합디까

명창아니고는 그렇게 부를 수가 없읍니다

그렇다니 말이지 당대 북경 명기로 유명한 두십랑이외다

두십랑? 익히 듣던 이름이외다. 그런데 당대 명기가 어찌하여 형과

함께 배를 타게 되었읍니까

원래 정직한 이갑이는 하나도 숨기지 않고 두십랑을 알게 된 내력과

유우춘에게 돈을 취해서 몸값을 치러준 이야기까지 자세히 설파하니

손부는 듣기를 다하더니 무릎을 치며

미인을 끼고 고향으로 돌아가니 그역 호쾌한 일이로군

하고 껄껄대고 웃더니 금시에 점잖은 얼굴을 하고

그러나 춘부장께서 용납을 하실는지

아닌게 아니라 그것이 염려가 돼서 집사람은 말하기를 함께 가긴 가도

곧장 집으로 들어가지 말고 자기만은 내집 근처에 사관을 잡고 있다가

먼저 가친의 허락을 받은 후에 들어 가서 뵙는 것이 좋겠다고 하고 있소

하고 자랑삼아 말을 하며 그의 의견을 듣고자 하였다.

손부는 아무 대답없이 잠시 무엇을 말할 듯 말할 듯 하더니

말하고 싶은 일은 없는게 아니지마는 초면에 너무 지나친 말씀을

드리기는 어려운 일이니 그만해 두지요

하고 언중에 무슨 뜻이 있는 것을 은근히 표시하였다.

그게 무슨 말씀이요, 비록 초면일 망정 깊이 믿지 않는 터이면 어찌

자세한 사정을 아뢰었을 것이요

그럴진대 기탄없이 말을 하겠소마는 지금 이형이 취하시는 방책이 매우

졸렬하다고 생각합니다. 이형의 부친께서는 이미 이형의 오입을 극히

괘씸히 생각하셨을 것인데 이제 또 돌연히 외첩을 대동하고 고향으로 돌아

왔다하면 상필 체면을 생각하셔서라도 용서하실 리 만무하고 또 친구를

찾아 부자간의 조종을 청한다 할지라도 누군들 이형의 춘부장을 쫓으려

하지 불효의 아들 편을 들 사람이 있을리 있읍니까, 그러고 본 즉 첫째

부친의 노염을 더욱 크게 하는 것이요 둘째는 남의 동정을 잃어 기필코

이형은 진퇴양난의 곤란을 받을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그러 저러

하다가 노수나 떨어지고 보면 젊은 여자를 사관에 두고 큰 고생을 하게

되오리다. 형과 같은 형편에 빠져서 큰 고생을 하던 친구를 내 눈으로 본

경험이 있으니 말씀하는 것이외다

이 말을 듣고 보니 이갑의 가슴은 급작히 답답하였다. 그러지 아니해도

지금 있는 돈이 종후 얼마를 능히 지탕할는지 알 수 엇는 터에 진퇴양난이

되리라는 말을 들으매 더욱 큰 협위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닌게 아니라 형의 말씀이 극히 지당한 말씀이외다

지당하다고야 말씀할 수 있소마는 하여튼 십중 팔구 그렇게 될 것은

분명하외다. 그런데 도리가 하나 있긴 하오마는 형이 믿어주실는지

모르겠소

그게 무슨 말씀이요. 쌍말에 뒤보고 밑 아니 씻은 셈으로 그냥 지날

수 있는 일이겠소? 어서 말씀해 주시오

글쎄 친한 터가 아니면 고이쩍어 못 할 말이요마는

어서 말씀이나 해보슈

그러면 아주 기탄없는 말을 해 보겠소. 자고로 말하기를 부녀는

수성무상(婦女水性無常)이라고 해서 믿지 못할 것이라고 말해오는

터이지마는 화류계 여자란 더구나 믿지 못할 것이외다. 항차 내행은

대원명기(大院名妓)이었다 하니 서로 아는 사람이 천하에 가득하였을

것이고 그 중에는 깊은 관계가 있는 사람이 없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지

않소? 그러고 본즉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혀의 내행이 꼭 그런 일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비유하면 그렇다는 것이니 행여 어찌 아지는 마시오마는 전에도 나의 친구

하나가 형과 꼭 같은 형편으로 외첩 하나를 얻어 가지고 고향으로

내려가서 우선 사관을 잡고 며칠을 유숙시켜 놓았더니 바로 이, 삼일 되는

날 밤에 부지거처로 도망해 버리지 않았겠소, 그래서 차차 뒤를 알아 본즉

따로 정부 하나가 있어서 서로 짜고서는 그 친구로 하여금 몸 만 치르게

하고 저희끼리 짜고 도망을 한 것이 분명하게 드러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번 형의 일과 그 친구의 내행과는 사람도 다르고 하니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겠지마는 그런 일도 생각은 해 두어도 좋은 일이 아니겠소?

이공자의 가슴은 이 손부의 말에 다소 동요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강잉해서

설마 그런 일이야 있겠소

하고 부인하였더니 손부는 고개를 흔들며

흥 그렇게만 믿으시오. 유래로 강남자제는 교언영색의 무리가 많기로

유명하니 형이 없는 동안에 벽에 구멍을 뚫고 담을 넘는 위인이 없으란

법이 어디 있으며 그렇다고 내행을 데리고 부모께 뵙자니 반드시 부친의

큰 꾸지람을 받고 혹은 집에서 쫓겨나게 될 터이니 위자지도에 일개

계집으로 말미암아 집을 쫓겨난다면 친구인들 돌볼 사람이 있을 리

있읍니까. 대관절 무슨 낯을 들고 천지간에 서시려고 합니까

속이 깊지 못한 이공자는 이 말에 완전히 끌리고 말았다. 들을수록

당연한 말같이 들리었다.

아니 그러면 장차 어찌하면 좋단 말씀이오니까

하고 재쳐 물으니까 그는 빙긋이 웃으면서

내게 좋은 계책은 하나 있소마는 형이 신정지초에 서로 떨어지기를

싫어 할듯하니 공연히 말품만 팔면 무얼 하오리까

그게 무슨 말씀이요, 내게 좋은 계책이면 나에게는 은인이신데 무슨

말씀을 못 하실게 있소

그러면 말씀하겠소마는 나의 생각에는 춘부장께서 이제까지 노하고

계신 원인이 어디 있느냐 하면 형이 북경에서 화류계에 허다한 돈을

낭비하였다는 것에 있은즉 내가 돈 천금을 드릴 것이니 그것을 가지고

가셔서 부친께 그동안 돈을 낭비한 줄 여기셨지마는 기실은 돈을 이렇게

따로 모아 두었읍니다 하고 내놀 것 같으면 필연 부친께서도 곧이

들으시고 노기가 풀리실 것이 아니겠소. 그런 후에 차차 기회를 타서

이번 일을 애소해서 허락을 받으신 연후에 데려 가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은 어디다가 둬야 옳단 말씀요

만만한 데가 없으면 내 집에 계시도록 하면 형이 데려 가시기까지 잘

보호해 드리리다

단순한 이공자는 손부의 말이 엄융(?)의 그것처럼 들리었다. 그리고 돈

천금을 내준다는 말에 감격하기 이를데 없었다.

말씀만 들어도 마음이 시원합니다. 그러나 한번 내 안사람에게 의논을

해 볼 수 밖에 없소이다. 아무리 우리가 마음이 합한다고 해도 당자가

싫다면 그역 어려운 일이니까

그렇고 여부가 있소. 하여튼 내가 돈 천금까지 드리겠다는 것을

보드라도 내가 공연히 남의 일을 훼방 놓자는 것이 아닌 것을

짐작하시겠죠

그게 무슨 말씀이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되려 섭섭한 일이외다

이공자는 돈 천금에 십분 마음이 움직이었다.

 

* * *

 

자리 옷을 갈아 입으시고 누으시지(누우시지?) 왜 그러고 앉으셨소

늦게 돌아와서 주기가 가득한 채 자리 위에 덜썩 앉아서 무슨 곡절인지

한숨을 치쉬었다 내리쉬었다 하는 이공자의 수상한 태도에 두십랑은

한동안 그의 눈치를 본 연후에 이렇게 권해 보는 것이었다. 이공자는

고개만을 끄덕 하고는 아무 말이 없다.

왜 어디가 불편하슈

아니

그럼 왜 눕지 않으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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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내외가 아니요. 속에 무슨 근심되는 일이 있거든 말씀을

하시구려. 그러고만 계시면 너무나 서어하지 않소

이공자는 두십랑의 말에 잠시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하면 어찌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우리가 이렇게 돌연히

고향으로 돌아가서 부친께 뵙는게 암만해도 도리에 합당치 않은 것 같소

그건 한두번 생각한 것이 아니요마는 딴 무슨 도리가 있단말요,

그러기에 내가 뭐라고 했소. 아버님의 마음이 내키시기까지 사관을 잡고

있자고 하지 않았소

그야 마찬가지이지, 같이 가는게 좋지 못하다는 것이 아닌가

새삼스럽게 웬 변덕이신지는 모르오마는 대관절 어쩌면 좋단 말이요

내가 이 말을 왜 하느냐 하면 오늘 이 옆 배에 묵고 있는 손부라는

친구의 의견을 들어본즉 귀절이 지당한 말일 뿐더러 돈 천량을 자기가

내줄테니 그걸 가지고 나혼자 먼저 집으로 가서

하고 손부가 말한 전후 사리를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끝으로

나 역시 지금 부모의 노염을 풀지 않고는 내두사가 막막하니까

하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럼 돈 천량으로 잠시동안 내 몸을 사자는 말이구려

사자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맡기면 안심되지 않느냐는 말이지

그래 당신은 뭐라고 그랬소

나는 그리 하자는 약속을 했지마는 하여튼 당신의 의견을 들어

보겠다고 했지

두십랑의 가슴은 끓는 물을 마신 것 같았다.

세상에 이러한 심약하고 열정 없고 이기주의인 사람이 또 어디 있으랴.

이러히 냉정한 사람을 내 어이하여 평생의 애인으로 삼으려고 하였던고.

돈 천금에 눈이 어두워 애인을 남에게 팔려는 비루하고도 심약한 이

남자를 어찌 평생의 애인으로 삼을 수 있으랴.

이것이 남자의 마음인가. 그렇다면 내 세번 환토해서라도 남자란

남자의 피를 빨아 먹으리라 그리하여 이 원통한 분풀이를 하리라.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심하기 이를 데 없었다. 서울서 여러 동무와

작별할 제 그들은 나의 갱생(更生)을 축수하고 부러워 하였다.

아아 생각할수록 이 세상이 싫어진다. 목숨을 내놓고 사랑을 바친

남자에게서--- 믿고 믿었던 남자의 입에서 이 한심한 말을 들으니만치

그의 설움과 분과 염세의 비관은 컸다.

그게 무에 그리 어려운 일요, 퍽 좋은 말이구려 당신은 돈 천금을

가지고 가게 되고 나는 잠시라도 부자 사람에게 몸을 의탁하게 되니---

그런데 돈은 정녕 내준답디까 잘못하다가 헛탕을 치리다

아니 그대만 쾌락한다면 내일 아침에 돈을 주마고 하더구만

괘락이고 아니고가 어디 있소. 당신의 계집 당신이 파는데

하고 두십랑은 한심한 웃음을 웃었다.

 

* * *

 

이튿날 아침 손부는 은자 천량을 이공자의 배로 듬뿍 옮겨 싣고 자기

역시 새옷을 갈아 입고 이공자의 배로 건너와서 두십랑과 초대면의 인사를

하였다. 노상 입이 헤 벌어져 있었다.

자아 그럼 이배는 떠날테니 우리 배로 가지요

하고 손부는 재촉을 한다.

평생을 뫼실는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급하실게 무엇있읍니까 잠간만

계십쇼

하더니 사공을 시키어 배에 탄 다른 손 전부를 청해다가 놓고 이공자와

만나게 된 전후사와 지금 손부가 돈 천량으로 자기 몸을 농락하여 가는

내력을 설파한 후에 앞에 놓은 상자의 뚜껑을 열고 그 속에 있는 조그마한

상자를 끄내서 들고

이것은 나의 동무들이 내가 죽을 고팽이를 치게 될 때에 열어 보라고

한 것이니까 지금 여러분이 계신 앞에서 열어 보겠습니다

하고 그 뚜껑을 열어 젖치니 거기에는 싸고 싼 사금이 싯가로 해서

사,오천량어치나 쏟아져 나오고 그 외에도 야광주 기타의 보물이

수천량어치가 쏟아져 나왔다.

여러 선캑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놀랐다.

이런 보물을 가진 애인을 남에게 돈 천량에 팔다니

하고 이공자를 일제히 바라본다. 두십랑은 눈물을 흘리며 이공자의

박정을 공격하고 손부의 비루한 행동을 극구 타매하며

사랑보다 돈을 중히 여기는 사람을 평생 애인으로 삼았던 내가 불쌍한

연이요

하고 그 보물 상자를 가슴에 끼어 안고 일어서더니 여럿이 깜짝 놀라는

사이에 몸을 날려 창창한 강물에 빠져 버렸다. 여럿은 당황망조하여

사공을 시켜서 강물에 뛰어들게 하여 두십랑의 몸을 건지려 하였으나 그의

몸은 다시 강위에 솟지 않고 무심한 강물만이 트레를 치며 흘러갈

뿐이었다.

 

* * *

 

이 소문은 십여일 후에 북경 화류계를 격분과 감격과 슬픔으로 뒤

흔들었다.

사람들의 흥분이 아직 사라지기 전에 또하나 기괴한 소문이 돌았으니

그것은 두십랑의 영혼이 유우춘의 머리 맡에 나타나서 북경을 떠날 때에

돌려준 일백오십량에 대한 치사를 하고 보물 한개를 놓고 갔는데 그

야광주 한개 값이 천금이 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간

이갑이는 집에 도착한 후 사흘이 넘지를 않아서 실신이 되어 입으로

두십랑의 이름을 연호하며 부지거처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