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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사 방/조선오백년 야담

조선 오백년 야담 제14화 / 公主와 神尺 - 怪夢奇譚

by 연송 김환수 2013. 8. 30.

朝鮮(李朝) 五百年 野談

 

차 례

 

第 一 話 - 寶娘靑湖 - 血痕奇譚

第 二 話 - 樂浪好童 - 悲戀哀史

第 三 話 - 楊書房致富 - 抱腹絶倒

第 四 話 - 風流監司 - 節佳妓話

第 五 話 - 哀戀話 - 靑春悲戀

第 六 話 - 異花 雪竹梅 - 復讐奇譚

第 七 話 - 將軍義盜 - 名將逸話

第 八 話 - 煩惱僧 - 佛力奇譚

第 九 話 - 悲愴- 百濟哀話

第 十 話 - 金議官 叔侄 - 韓末逸話

第十一話 - 李星信最後 - 海戰悲話

第十二話 - 阿非知九層塔 - 望鄕哀話

第十三話 - 可憐杜十娘 - 名妓哀話

第十四話 - 公主神尺 - 怪夢奇譚

第十五話 - 餘愁 - 落照悲話

第十六話 - 斬首된 별아기 - 愛情悲譚

第十七話 - 千里遠情 - 義俠美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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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 화>

怪夢奇譚(괴몽기담)

公主와 神尺 (공주와 신척)

 

 

꿈이 빚은 悲劇

 

원 이럴수가 이럴수가 으으음---

점심밥에 취하여 논 두덩 수양버들 그늘에 네 활개를 큰댓자로 내던지고

누웠던 떡보는 자기 잠꼬대에 낮잠을 깨어 멍하니 먼 하늘을 바라보다가

야! 꿈이기는 하다마는 정말 멋이 있구나

하고 무릎을 탁 치며 일어나 앉았다.

아이 깜짝이야! 미친 사람같이 뭐가---

급작스러이 경탄하는 남편의 거동에 떡보의 아내는 깜짝 놀랐다.

음 정말--- 야 참 좋구나!

떡보는 아직도 꿈인양 두 번 세 번 연거푸 무릎을 친다.

뭐가 그렇게 좋단 말이요. 좀 같이 압시다

떡보 아내는 남편의 곁에 다가앉으며 선잠을 깨우는 듯이 떡보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그러나 떡보는 아내의 말에는 대꾸도 없이 크게 떴던

눈을 감으며 고개를 숙으려 버린다.

여보 말 좀 해봐요. 뭐가 그렇게 좋단 말이요

떡보의 아내는 자꾸 어깨를 흔들었으나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수그러진 머리만이 힘없이 좌우로 흥청거릴 뿐 떡보는 입을 다문채 아무

대답이 없다.

떡보는 원래 술 잘 먹고 투전 잘 하기로 이름난 명랑한 사내로서 밖에

나가서는 풍을 치고 돌아다니다가도 집에 들어와서는 비밀이 많은

남편이었다. 그 비밀이란 딴 것이 아니고 계집질 관계이기 때문에 아내의

<쎈스>는 언제나 지나치게 날카로워질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버릇이 거듭됨에 따라 남편의 말눈치나 행동이

흐리멍덩(흐리멍텅?)만 할 지경이면 걸핏 계집이라는 선입감이 앞서기

때문에 버럭 악을 쓰며 대들게 되는 것이 예사이었다(였다).

그래서 이 꿈 얘기만 하더라도 채 내용을 따질 새도 없이 아내의

머릿속에는 질투의 불꽃이 먼저 튀었다.

오오라 알았어! 그 어떤 년이 꿈에 나타났더란 말이지? 그래 말해

봐요! 어떤 년이야 어떤 년! 꿈에 보고 그렇게 야단할 것 없이 어떤

년인지 그년한테로 갑시다

아내는 땀에 젖은 삼베 적삼 소매를 걷어 올리며 남편의 손목을

끌어당긴다.

그제야 떡보는 얼굴을 들고 빙그레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이거 왜 이러는거야 그따위 문제가 아니야, 큰일이야 큰일. 감히

입밖에 내지 못할 큰 일이야

큰 일? 무슨 꿈이길래 말도 못해?

이 사람아 큰 일이라면 큰 일인 줄만 알아! 목이 짤리는 한이

있더라도 말은 못해

정말 못해?

죽어도 못할 말이라니깐

정말 못해?

분에 받힌 아내는 김 매던 호미자루를 두르며 게거품을 뿜고 덤비기

시작한다.

이 년이 환장을 했나?

떡보의 억센 주먹에 아내는 밥광주리를 왱강 뎅강 엎지르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땅에 부딪친 뒷머리에서는 피가 흐른다.

아구머니 떡보가 사람 죽이네, 아이구 아이구---

이 년이 누구를 못살게 할려구 극성이야

이렇게 벌어진 부부싸움은 온 동네 사람을 모으고(모우고?) 그 말 못할

꿈의 소문은 그 지방 관가에까지 알게 되었다.

대관절 무슨 꿈이길래 그렇게도 기를 쓰고 입을 봉한단 말인가?

하는 호기심에서 관가에서는 떡보를 불렀다.

예, 어떤 일이 있더라도 차마 꿈 얘기만은 설파 할 수가 없읍니다

관헌의 앞에서도 떡보의 꿈의 비밀은 공개되지 못했다.

야 굉장한 꿈이로구나

필유곡절이라 이 소문은 멀지 않은 서울에도 전파되어 임금님의

귀에까지 들렸다.

무슨 꿈이길래 그럴 수가 있나. 어디 그 놈 불러 들여라

임금님도 호기심에 소문만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드디어 떡보는 어전에 부복하였다.

그래 무슨 몽사였던고? 나한테는 말할 수 있겠지

처음듣는 지존의 위엄있는 음성에도 달래는듯한 부드러움을 엿볼수

있었다. 그러나 꿈의 사연만은 차마 아뢸 수 없는 떡보였다.

예 황송하오이다. 그저 죽여 주시옵소서

말 못하겠단 말이냐?

-----

떡보는 엎드린채 말이 없다.

너 이놈 어명이 지중한 줄은 알렸다

예 알다 뿐이오리까?

그래두---

-----

떡보는 역시 말이 없다.

비위가 거슬린 임금님은 다시금 정색을 하고 좌우를 돌아보며 호령을

내린다.

여봐라 이놈 하옥하여라. 그리고 끝내 정신을 못 차리면 사흘 후에

목을 베어라

떡보는 당장에 옥중신세가 되었다.

참으로 억울한 노릇이다. 죄아닌 꿈의 비밀로 말미암아 사형을 당하게

되다니--- 팔자 타령도 하여 보았고 주책없는 아내의 극성도 원망하여

보았다.

그러면서도 그 황홀한 꿈의 장면이 회상될 때엔 옥방(獄房)을 잊어 버릴

지경인 행복스러운 떡보만의 비밀이었다.

에라! 아무 때 죽으면 안 죽겠나

죄는 아니련만 감히 터뜨리지는 못할 어마어마한 비밀. 그렇다고해서

말해 봤댔자 세상사람의 웃음거리 밖에 못되는 것일진댄(덴?) 영원히 비밀

그대로 간직하고 죽어 버리리라는 생각에서 자위하는 떡보였다.

 

獄中의 怪變

 

하옥된지 이틀의 날자가 흘러가고 단두대에 오를 날이 왔다.

오늘은 죽는구나

허탈된 떡보는 자리에 누운채 기다리는 줄 모르고 형장에 나갈 시각을

기다리며 망연히 철창너머로 아침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사람이 아직도 자나?

옥사정(獄事丁)이었다.

죽을 시각을 기다리네

떡보는 살창 틈으로 기웃거리는 옥사정을 마주 보며 쓴 웃음을 웃었다.

이 사람아 자네따위 죽이고 살리는 문제가 아니야! 지금 궁중은

울음바다가 터져서 정신이 없는 판이야

울음바다?

어제밤 이팔청춘 꽃다운 공주님이 세상을 떠났어

아니 공주님이?

그러니깐 자네따위 죽이고 살리는 문제는 아주 멀어졌다니까

돌연 공주가 죽었다는 놀라움보다 자기의 사형집행이 연기된다는 새로운

사실에 떡보는 눈을 크게 떴다.

비록 고식적이나마 금방 죽기는 면했따.

---옥사정이 간 뒤에 무료히 담배 연기와 희롱하고 있노라니까 방구석에서

밤알만한 생쥐새끼 한마리가 나타났다.

이놈 어떻거나 보자

떡보는 숨소리를 죽여가며 그 생쥐새끼의 거동을 흥미있게 노려보았다.

그 생쥐새끼의 거동을 흥미있게 노려보았다. 그 생쥐새끼는 두리번

거리더니 반대 방향 구석의 조그만 구멍으로 사라져 버렸다.

응 쥐란놈이 새끼를 깠구나

떡보는 심심하던 판에 좋은 일 만났다고 고양이 모양으로 쪼그리고

앉아서 아까 쥐 나오던 구멍과 들어가던 구멍을 부리나케 번갈아 보며

하회(下回)를 기다렸다.

같은 또랫 놈이 또 나타났다. 뒤이어 두놈 세놈.

요놈들 어디로 가는거야

떡보는 들었던 장죽을 날쌔게 휘둘렀다. 불의의 습격을 받은

생쥐새끼들은 도망칠 겨를도 없이 그만 무참히 쓰러지고 말았다. 자기도

모르게 잔인스러운 흥분에 들뜬 떡보는 나타나는대로 모조리 갈겼다.

십여마리의 쥐새끼 시체가 즐비하게 널려졌다.

얼마 후 이번에 나타난 쥐는 죽은 새끼들의 어미인지 무지무지하게 큰

놈이다. 컴컴한 구멍에서 앞발을 내놓고 두 눈을 빤짝거리며 떡보의

모양을 노려보던 쥐는 조심스러이 사방을 살피며 냄새를 맡듯이 코 끝으로

죽어 넘어진 새끼쥐의 몸뚱이를 차례차례 더듬더니 슬며시 나오던

구멍으로 들어가 버린다. 떡보는 마음속으로 그 정경을 가긍히 여기면서

흥미를 가지고 그 큰 쥐의 뒷조치를 기다렸다.

얼마 안있어 되돌아 나온 큰 쥐는 무슨 장손가락 길이만한 나무가지

하나를 입에 물었다. 쥐는 떡보를 힐끗 보더니 입에 문 나무가지로 마치

자질하듯이 한자 두자 새끼쥐 시체를 더듬는다.

으음 저런!

떡보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자질 하는대로 죽었던 새끼쥐들은

차례차례 살아나서 달아나는 것이 아닌가. 어안이 벙벙하여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 죽었던 새끼쥐들은 모조리 살아서 달아나 버리고

나중 큰쥐마저 가버릴 참이다. 그 찰나.

이놈 잠간 있거라

떡보의 반사적으로 후려갈긴 장죽에 대가리를 맞은 큰쥐는

찌익

비명을 지르며 사지를 뻗었다. 떡보는 무엇인지 모르게 전신에 소름이

끼침을 깨달았다.

이것이 무엇이기에

무슨 마귀에 홀린 것만 같은 자기 정신을 가다듬는듯이 눈을 부비며

쥐의 입에서 떨어진 나무가지를 줏어 들었다.

진달래나무같이 보이는 젓가락 굵기의 통나무 가지다.

이것이 죽은 목숨을 다시 살리는 기이한 물건인가?

떡보는 당장에 시험해 볼 작정으로 눈앞에 죽어 넘어진 큰쥐의 몸뚱이를

자질해 보았다.

앗!

사지를 뻗었던 쥐는 금시 일어나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달아나 버리는

것이 아닌가.

---얼마 후, 흥분과 긴장이 풀린 떡보는 그 신기한 나무가지가 든

주머니를 어루만지며 아침 옥사정한테서 들은 공주의 죽음을 생각하였다.

이 나무가지를 가지고 죽은 사람을 살릴 수도 있지 않을까?

어차피 사형선고를 받은 몸이니 되든 안되든 한번 대들어 볼만한

일이다. 생각끝에 용단을 내렸다.

여보 옥사정!

떡보는 신난 목소리로 옥사정을 불렀다.

내 죽은 사람 살리는 재주가 있어! 공주님께서 꽃다운 나이에

돌아가셨다니 상감님께서 오죽(오즉)하시겠나. 이제 그 공주님을 살려

봄이 어떨까?

자신있게 자기 뜻을 소개했다.

말을 듣는 옥사정은 배룰 움켜쥐고 웃어가며

여보게 정말 혼이 빠졌나. 이사람아 정신 차려 하하하--- 죽은 사람을

살려?

떡보를 미친놈으로 돌리는 것이었다.

아니 경을 쳐도 내가 칠 것이 아닌가. 당신은 내 말을 상감마마께

통하여만 달라니까--- 이봐요 그러다가 내가 성공하는 날이면 당신도

옥사정 신세를 면케 될지 누가 알아. 그러지 말구 빨리---

웃어버리려던 옥사정도 떡보의 달콤한 말에는 입맛이 당기지 않을 수

없었다.

이사람아 농담이 아니라 그것이 정말인가?

정말이구말구 당장에 살려 놓을테니 봐요. 머뭇거리지 말구 빨리 내

청만 들어 줘요. 신세 갚음은 톡톡히 할께

이리하여 옥사정은 이리저리 다리를 놓아 임금님께 상주하여 보기로

하였다.

 

一躍 駙馬로

 

비록 미친놈의 수작일망정 슬픔에 싸인 궁중으로서는 그저 귓가로 흘려

보낼 수는 없는 얘기였기 때문에 논의가 분분하던 끝에

그러다 어떤 기적이나 있지 않을까

하여 드디어 묘의(廟議)는 떡보를 부르기로 결정을 내렸다.

옥으로부터 일로 대궐로 들어간 떡보는 어전에 다짐을 두고 나서 어명에

의하여 호기 당당히 제반 절차를 명령하였다.

첫째 시체를 조용한 방에 옮길 것.

둘째 그 방에는 별도 명령이 있을 때까지 떡보 자신 의외 잡인의 출입을

금할 것.

세째 꿀물 한그릇을 준비하여 놓을 것.

떡보의 기세야말로 벌써 어제까지 촌에 묻혔던 농부는 아니었다.

나중에에 어찌 되든 당장에 임하여서는 제아무리 재상일지라도 떡보의

명령대로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정중한 거동으로 위의를 꾸미는 떡보는 계하에 둘러선 문무백관을

좌우로 바라보며 천천히 층층대를 올라 조용히 시체실로 들어섰다.

넓다란 방이다. 방 한복판에 눈부신 비단 이부자리가 펴 놓였는데 이불

깃가로 윤기도는 까만 머리와 하얀 이마가 반쯤 보인다. 떡보는 무언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서쪽 창문에는 아직도 유원(유월?)의 또약볕(뙤약볕?) 이 내려쪼이고

있건만 방 가득히 서리운 향냄새에는 태고의 적멸이 깃드린듯 시체 머리맡

촉대 위에 너울거리는 촛불마저 이 떡보의 장난아닌 장난을 저주하는 신의

손짓과도 같이 보였다.

금시 문을 박차고 뛰어나가고 싶은 충동이 떡보의 등을 떠민다.

그렇다고 용기를 꺾이울 떡보는 아니었다. 큰 기침 두어번 하고 마음을

진정시키며 조심스러이 이불 깃을 잡아 제쳤다.

꽃같은 처녀의 얼굴. 가볍게 눈을 감고 단정히 누운 자태며 웃음을

머금은 듯한 표정은 흔히 연상되는 흉칙스러운 주검이 아니라 마치 한폭

미인의 그림인양 보였다.

저윽이 진정을 회복한 떡보는 허리에 찬 주머니 속에서 그 신기한

나무가지를 끄집어 내었다.

하느님 살려 주시옵소서

떡보는 자기를 살려 달라는 말인지 공주를 살려달라는 말인지 입속으로

하느님을 찾으며 그 나무가지로 시체의 꼭대기에서부터 자질하기

시작했다.

발끝까지 자질을 끝낸 떡보는 사람인(人)자로 다리를 벌리고 선채로

시체의 얼굴을 뚫어지게 들여다 보았다.

기적이 나타나느냐 않느냐 하는 숨가쁜 순간이다.

바르르 살눈섭이 떨리자 번쩍하고 눈을 뜨는 것이 아닌가.

얏! 살았다!

떡보는 공주를 껴안을듯이 두팔을 벌리고 허리를 굽혔다가 두서너걸음

뒤로 물러섰다. 분명히 기적이 나타난 것이다.

멍하니 낯설은 떡보의 얼굴을 쳐다보던 공주는 다시 눈을 감더니 가는

목소리로

아이 목 말라

하고 입을 다시며 두손을 들어 젖가슴 위에 얹는다.

소생된 모습을 확인한 떡보는

휴우

하고 긴 한숨을 내쉬며 흥조된 얼굴로 방을 나섰다.

주위에서 초조히 화회를 기다리던 여러 고관들은 떡보가 나오는 것을

보고, 우욱 혜하로 몰려들었다.

그래 어찌 되었소?

황급히 묻는 말에 떡보는 빙그레 웃으며 임금님을 찾는듯이 사방을

둘러보고 나서 정중히 입을 열었다.

상감을 모시고 들어들 가보시지. 공주님께서는 지금 목이

말라하실겝니다. 마련해 둔 꿀물을 드리시오

여러 고관들은 와아하고 함성을 터뜨렸다.

죽었던 사람을 살렸다는 놀라움도 놀라움이려니와 공주가 소생된 궁중의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임금님도 친히 떡보의 손목을 붙잡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어명에 따라 부랴부랴 별당을 소제하여 떡보의 거처할 곳을 마련하는

한편 아리따운 궁녀의 시종(시중)으로 떡보를 목욕시킨 후 새옷을 갈아

입히게 하였다.

벌써 연못 가 누대에 준비된 경축연(慶祝宴)자리로부터는 떡보라는

저속한 이름을 부르기가 못마땅하다하여 무슨 벼슬인지

사생대부(司生大夫)라는 관직을 하사하였다.

떡보는 이것이 꿈인양 정신이 얼떨떨하여짐을 금할 수가 없었다.

찬란한 옷차림으로 남녀 관비에 옹위되어 경축연 누대에 오른 사생대부

떡보는 풍악의 영접을 받아가며 상좌 임금님 곁에 공손히 정좌하였다.

임금님은 감격한 어조로 만당의 신하들에게 오늘의 기쁨을 피력하면서

곁에 앉은 공주를 향하여

이 이가 바로 너를 부활시킨 생명의 은인이다

하고 떡보를 소개하는 것이었다.

공손히 고개 숙여 인사하는 공주의 얼굴은 짙어가는 황혼 속에서도

떠오르는 보름달같이 황홀하게 보였다.

자아 오늘밤은 우리 공주를 위하여 또 그리고 귀한 사생대부를 위하여

즐겨 볼까하오

임금님은 잔을 높이 들었다. 좌중은 이에 따라 잔을 들었다.

계속되는 풍악소리에 어울려 잔은 거듭되고 또 거듭되었다. 떡보는

공주가 따라주는 술도 여러잔을 받았다.

누대 안은 불빛이 휘황하나 바깥은 어두운지 이미 오래다.

춤추는 궁녀들의 오색 장삼소매도 취흥이 어리운듯 물결이 높았다.

아까부터 무슨 생각에 잠긴듯 묵묵히 앉았던 임금님은 은근히 떡보의

손을 잡으며

사생대부!

하고 떡보에게 말을 건넨다.

떡보는

예?

하며 얼굴을 돌렸다. 임금님의 붉어진 얼굴에는 미소가 띄었다.

내 대부에게 청이 있는데

청이시라오니 황송하오이다. 무슨 분부시온지?

농촌에 살면서도 서울 출입이 잦았던 탓인지 제법 존대엣 말도 쓸 줄

아는 떡보이기도 하다.

대부 우리 공주와 배필됨이 어떨꼬?

임금님은 나란히 앉아있는 공주도 들으라는 듯이 상반신을 기울이면서

떡보와 공주의 얼굴을 번갈아 살피는 것이었다.

말문이 막힌 떡보는 한참동안 얼빠진모양 멍하니 앉았다가 두 손을 짚고

땅바닥에 엎드렸다.

너무나도 황송하옵신 말씀 감히 분간키 어렵나이다. 더욱이 이 떡보

일찍부터 같이 사는 처가 있사옵거늘---

임금님은 껄껄 웃으며

본처가 있어도 좋아. 우리 공주는 이미 죽었던 사람이니 인제 소생된

목숨은 살려준 대부에게 맡기는 것이 가장 타당한 길일 것이다. 그것이

살려준 대부에게 대한 은혜 갚음일 것이야. 내 소원이니 어떠냐 공주는?

동의를 구하는듯 공주를 바라본다.

공주는 수줍은듯이 고개를 숙인다. 세 사람은 한참동안 말이 없다.

이윽고 임금님은 이 이상 따질 것 없다는 듯이

그렇게 하지?

하고 정면으로 돌아 앉더니 손을 들어 풍악을 멈추었다. 춤도 멎고

좌중은 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하여졌다.

임금님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즐거운 이 밤이 다 가기 전에 내 오늘의 기쁜 소식 한가지를 전하노니

우리 공주 별아기와 사생대부 떡보 두사람은 오늘로써 부부됨을 허하노라.

만조 백관과 천하 만민은 같이 기뻐할진저---

임금님의 선언이 끝나자 일동은 두 손을 들어 읍하며

경하하오이다

이로써 미천한 일개 농부 떡보는 하루 아침에 부마(왕의 사위)의 지위에

오른 것이다.

 

호랑이의 報恩

 

죽은 사람을 살렸다는 떡보의 소문은 서울 장안으로부터 나라안을

휩쓸고 중국 제후국 고을고을을 거쳐 어느덧 천자(天子)에게까지 알린바

되어 십년전에 역시 처녀의 몸으로 애석히 죽은 천자의 딸을 살려 달라는

전갈을 가지고 사신이 달려왔다.

이것은 널리 국제적으로 우리나라 국위를 빛내는 일이라하여 임금님의

기쁨이란 여간이 아니었다. 그러나 떠나라는 어명을 받은 떡보로서는 큰

근심이 생긴 것이다.

그것은 별아기공주는 죽자마자의 일이었거니와 중국천자의 딸 그 공주란

죽은지 이미 십년. 살이 다 썩어빠진 해골일터이니 어찌한단 말인가.

지금 떡보가 지니고 있는 재주란 갓 죽은 사람을 살릴 수는 있어도 뼈만

남은 해골에 살을 붙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줄은 모르고 궁중은 사생대부 떡보님의 행차 준비에 바빴다.

사랑하는 아내 별아기공주인들 남편의 이 고민이야 알아차릴 바가 있으랴.

택한 길일(吉日) 출발의 날은 왔다.

임금님 공주 기타 조정 고관들로부터 전별인사를 받으며 사생대부

떡보는 아무 계책없이 망연한 생각에 잠긴 채 남여(籃輿) 위에 올라탔다.

대궐 문을 나서는 행차는 배종(陪從) 하는 관원과 호위하는군졸이

장사진을 이루고 바람에 나부끼는 오색 깃발은 연도에 늘어선 구경군의

눈을 어지럽게 할 지경이다.

서울을 뒤로 행차는 서북을 향하여---

---재를 넘고 물을 건너 국경을 넘은지도 수일째. 망망한 벌판을 지나

첩첩한 대륙 산기슭을 탄 어떤날이었다. 밀림속으로 뚫린 으슥한 산길로

걸음을 재촉할 즈음. 으악! 하는 선두의 비명과 함께 행렬은 멈칫 섰다.

범이다

큰 범 한마리가 행차를 가로막고 나선 것이다. 앞을 섰던 전위 군졸과

관원들은 혼을 잃고 길 좌우로 굴러 떨어진다.

일찍 떠날 때부터 남모를 수심을 품었던 떡보는 이 심상치 않은 징조에

직각적으로 불길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어차피 운이

진하였다면 죽을 때에 임하여서도 호기나 부려보리라 결심하고

이놈들아 정신 차려라

남여채를 두들기며 소리 높여 사시나무 떨듯하는 교군을 꾸짖었다.

범은 커다란 두 눈을 번쩍거리며 서서히 남여 앞으로 다가온다.

떡보는 고개를 높이 들고 위엄있게 두 눈을 부릅뜨며 전신의 힘을

다하여 벽력같이 고함을 질렀다.

너 이놈 아무리 짐승이기로서니 미물이 아닐진댄 어명을 받고 가는

사신행차를 몰라본단 말이냐?

떡보의 힘찬 고함은 은은히 산을 울린다. 비록 공포를 초월한

떡보일망정 참말로 자신도 의심할만한 기개였다.

범은 떡보의 기세에 위압을 당하였음인지 남여 가까이 걸음을 멈추고

한참동안 떡보를 바라보더니 조용히 앞발을 끓고 머리를 굽실거리는

것이었다.

무엇을 의미하는 동작일까. 사람을 해치려는 살기가 사라진 것만은

짐작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 물러갈(가)려는 눈치인 것같지도 않다.

이놈 썩 물러가지 못해?

떡보는 다시 호령을 하였다. 그러나 범은 여전히 무엇인가 애원하는듯

머리를 굽실거릴 뿐 몸을 일으키려하지 않는다.

너 산중호걸이라 하였으니 뭇 짐승과 달라 지각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무슨 청이라도 있단 말인가?

떡보는 사람을 대한듯이 은근히 물었다.

그제야 범은 머리를 들어 떡보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떡이는 것이었다.

그래 무슨 청일꼬?

떡보가 다시 묻자 범은 돌아서서 등을 남여 앞으로 내대며 힐끗힐끗

고개를 돌린다.

이놈 나너러 네 등에 타란말이냐?

범은 그렇다는 듯이 또 고개를 굽실거린다.

범의 뜻을 알아차린 떡보는 전후 좌우로 일행을 돌아보며

말은 못하나 이 범이 무슨 소중한 청이 잇는 모양이야, 범을

따라갔다가 올터이니 너희들은 서슴치 말고 예정대로 다음참인 산너머

촌락에서 오늘 밤을 자면서 기다려라

명령을 내리고 남여에서 내려 범의 등에 올라탔다.

떡보를 태운 범은 나는듯이 울창한 밀림 속을 헤치며 준험한 능선을

따라 어디로인지 달린다.

나무가지새로 보름달이 얼른거린다. 산을 넘고 넘어 얼마를 갔는지

교교한 달빛아래 끝없이 뻗은 산줄기만이 밭이랑같이 굽어 보일 뿐이다.

방향 모를 곳 높은 절벽 앞에 당도하였다. 떡보를 등에서 내려놓은

범은 시커먼 굴 속으로 들어가더니 이윽고 뼈만 남은 늙은 범 한마리를

데리고 나왔다. 암범이었다.

이 늙은 범은 입을 벌린채 다물리지 못하고 침만을 흘리고 있다. 모든

태도로 미루어 이 두 범은 모자간인 것 같고 무엇인지 모르지만 이 늙은

범은 병에 지친 것이 틀림이 없는것 같앗다.

떡보는 물었다.

네 어미냐?

범은 끄떡인다.

무슨 탈이 들었느냐?

범은 다시 끄떡이며 앞발로 어미범의 입안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떡보는 어미범 아가리를 추켜들고 달빛에 비쳐보았다. 목에 무엇인가

가로 걸려 있는 것 같다. 떡보는 손을 넣어 더듬었다. 무슨 뼈다귀였다.

어미범은 얼마 동안이나 고생하였는지 모르나 뼈다귀가 뽑힌 뒤에야

제대로 입을 다물었다.

범의 모자는 고개를 굽실거리며 무한히 감사의 뜻을 표하는 것이었다.

내가 죽은 사람을 살리러 가는 명의(名醫)라는 것을 짐승 세계에서도

알았던 것이로구나---

하고 떡보는 생각하면서 빙그레 웃었다.

어미를 도로 굴 속에 데려다 두고 나온 범은 다시 떡보를 등에 태우고

어디로인지 한참 달렸다.

이번에는 묘가 즐비한 북망산이다.

떡보를 내려놓은 범은 앞발로 고총 하나를 파더니 묻힌지 몇백년이나

되었는지 모를 하얀 해골을 끄집어 내어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뼈를

정돈해 놓은 후 이것을 자세히 보라는듯이 떡보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손짓하듯이 앞발을 흔든다.

그래 잘 볼께

범은 언제 어디서 지니고 온 것인지 기다란 수염을 씰룩거리며 입

안에서 네모 진 초록색 손수건 하나를 뱉았다.

범은 그 손수건을 펴서 입에 물고 해골 위를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손수건으로 한번 스쳤다.

그러자 그 앙상한 뼈만이던 해골은 어느새 살이 제대로 붙은 백발

노파로 변한 것이 아닌가. 떡보는 눈이 둥그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앗! 썩은 살이 되 산단 말인가!

떡보는 지금 고민하는 숙제(宿題), 중국 공주, 십년 전에 죽은 시체

처리에 대한 생각이 번개같이 머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떡보는 범의 양해를 구할 새도 없이 황급히 주머니 속에서 그 신기한

나무가지를 끄집어내어 하던 식대로 그 노파의 시체를 자질했다.

아니나다를까 노파는 즉시 눈을 뜨더니

아이 실컷 잤다. 그런데 내 옷은 다 어디 갔노?

하며 창피하다는듯이 두손으로 다릿사이를 가리우며 일아나 앉는 것이

아닌가.

떡보는 미칠듯이 기뻤다.

범은 입에 문 손수건을 떡보의 허리에 달린 주머니에다 대고 흔든다.

받아 넣으라는 것이다.

고맙소

이번에는 떡보 편에서의 인사였다.

떡보는 허리를 굽혀 감사하면서 손수건을 받아 주머니 속에 간수하고

범의 등에 업혀 그곳을 떠났다.

다시금 산을 넘고 개울을 건너 동틀 무렵에야 일행이 초조히 기다리는

마을 주막에 돌아왔다.

---범으로부터 신기한 보물을 선사받은 떡보는 의기양양히 중국 서울로

행차를 재촉하였다.

 

中國公主의 回生

 

멀리 수십리 밖에서부터 영접을 받으며 성대한 환영 속에 중국 서울에

들어선 떡보는 천자의 별궁 영빈전(迎賓殿) 깊숙이 자리를 잡고 유유히

노독을 풀었다.

천자를 비롯하여 중국조정은 예의상 차마 서둘지는 못하나 떡보로부터

무슨 지시가 있기를 기다리는 눈치다. 그러나 썩어빠진 살까지 되 살릴

수 있는 떡보로서는 일부러 늦장을 낼만도 한 것이었다.

입경 십여일 후에야 떡보는 몸차림을 고치고 나섰다.

마침 대궐로 나가 천자에게 알현한 다음 대관들이 모인 자리에서 장차

공주의 소생을 맞이할 때까지의 제반 절차를 지시하였다. 지극히 간단한

것이었지만 자기만이 지닌 재주를 뽐내기 위한 떡보의 지시는 필요이상

까다로운 절차로 꾸며진 것이었다.

날자는 어느날. 묘를 파되 해골을 땅위에 올리는 시각은 동틀무렵

몇시. 해골을 향수로 닦아 구리관에 옮길것. 해골을 운반할 적엔 지난날

출장 때와 같이 성대한 의식을 갖출것. 해골을 안치할 곳은 공주 생시에

거처하던 궁전으로 정할 것. 해골에는 공주 생시에 입던 관복을

산사람모양 입혀서 이부자리에 눕힐 것. 회생시키는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궁전 뜰 앞에 제단을 꾸며 놓고 신악(神樂)을 연주하며 초혼제를

지낼 것. 떡보 자신이 해골 모신 방에 들어가 있을 동안에는 절대 잡인의

출입을 금할 것. 그리고 이날 밤은 초혼제에 앞서 궁중을 비롯하여 서울

장안에 집집마다 등촉을 밝힐 것. 물론 꿀물도 준비시켰다.

상여다, 상복이다, 궁중은 출장 아닌 출장인 경사 잔치 준비에

흥성거리고 장안 거리는 이 소문을 듣고 구경차 모여드는 사람으로

뒤끓었다.

모든 절차는 예정대로 진행되어 묘소를 떠난 공주의 해골은 장송곡 아닌

회생곡에 발 맞추어 십년 전에 영결하였던 옛궁으로 돌아왔다.

해 지기가 바쁘게 궁중은 물론 장안거리는 집집마다 오색 등불이 켜지고

성벽 주변 산봉우리에까지 불꽃이 찬란하게 피어 오른다.

밤이 깊어 기다리던 시각은 왔다. 관복에 위의를 갖춘 떡보는 둘러선

문무백관의 금빛 관대(冠帶)가 불빛에 반사되어 불야성같이 번쩍이는

초혼제장에 나가 제단 앞에 분향재배하고 정숙히 발을 옮겨 빈실로

들어섰다.

방안에는 향기가 서렸는데 문 밖에서는 신곡의 풍악소리가 조용히

일어난다. 꾸며진 일이면서도 스며드는 신비스러운 느낌에 떡보는 자기도

모르게 옷깃을 바로 잡았다.

조심스러이 이불을 걷었다. 현란한 관복의 옷무늬와 금은 보석의

패물만이 그 옛날의 영화를 자랑하는듯 그 속에 싸인 잔해는 짐승

뼈다귀와 별 다름 없는 흉악한 모습 그것 뿐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모름지기 꽃과 달을 무색케 하였을 미모의 주인공이었으리라. 떡보는

눈을 감고 장차 옛 자태로 환원될 공주의 풍모를 머릿속으로 그려 보면서

녹색 손수건을 펴들었다.

가볍게 얼굴을 덮는듯 손수건이 발끝까지 스치는 순간 쑥 꺼졌던 옷이

불쑥 부풀어 오르며 베개위에 놓인 바가지같던 해골은 백설같은 피부의

아름다운 처녀의 얼굴로 변한 것이었다.

떡보는 멍하니 그 소생된 공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별아기공주의

유가 아니다. 정말 절세의 미인이다. 경탄하는 떡보는 이제서야 죽은지

십년이 되도록 애석의 정을 잊지 못하여 하는 어버이 천자의 슬픔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떡보는 다음 그 나무가지를 꺼내어 자질을 했다.

방금 시체였던 공주는 자던 사람모양으로 눈을 뜨며 흘러간 십년도

꿈이었던양 큰 기지개를 하는 것이었다.

방을 나선 떡보는 굽어보이는 젯장을 향하여 손을 들어 풍악을 멈추면서

공주에게 꿀물을 등대하시오

하고 공주의 소생을 알렸다.

하회를 기다리던 근친들은 우르르 방으로 몰려 들어갔다. 편전에서

기다리는 천자에게도 기별이 날랐다.

불야성을 이룬 장안은 환희속에 날이 바뀌는 줄도 모르는 것만 같았다.

삼일 후 천자는 관하 지방 방백 수령이며 각국 사신을 청하여 딸의

소생을 자축하는 큰 잔치를 베풀기로 하였다. 그날 아침이다. 떡보는

천자에게 불렸다.

이미 십년전에 장사 지냈던 딸이요, 회생구명의 은혜를 갚을 길이

없으니 떡보더러 살아난 달빛공주를 아내로 맡아 달라는 것이었다.

떡보에게는 이 또한 뜻밖의 일이 아닐 수 없다.

천만 황송이오이다. 떡보 본래 처가 있사옵는 위에 모국의 공주를

둘째로 맞았삽거늘 아무리 황송하온 어명이실지라도 다시 생각지 않을 수

없음을 아뢰나이다

천자는 만면에 웃음을 걷지 못한채

있을법도 한 일, 셋찌인들 어떤가 내 대부의 뜻을 믿고 오늘 연석에서

천하에 이를 선포코저하는 바요---

하며 다정히 떡보의 손을 쥔다.

이로써 떡보는 모국의 별아기공주를 제이부인으로 중국의 달빛공주를

제삼부인으로 맞이하여 수만리 타국땅 구중심처에 깊이 묻혀 새로운

밀월생활을 이루게 된 것이다.

 

錦衣로 還國

 

끝없는 애정의 달콤한 꿈속에 날이 가고 달이 바뀌어 그 신기로운

나무가지며 녹색손수건의 기억도 아득하여 가는 어떤날 떡보는 뜻밖에

손님의 방문을 받았다. 이나라 젊은 재상 황이라는 사람이엇다.

인사를 마친 후 황은 짐짓 거북스러운 태도로 잠간 머뭇거리다가 말문을

열었다.

대단히 황송스러운 청이오나 저는 외아들로서 십오년전에 부모를

일시에 여의었삽는데 양주 모두 아직 여년이 있을 때이었사옵기 자식된

마음에 아직도 망극하기 짝이 없사오니 대인께서 이 불효자식의 미진한

효성을 가긍히 생각하시사 선친 양위의 부활의 덕을 베풀어 주시옵기

바라는 바입니다

떡보는 이제서야 그 신기한 나무가지와 녹색 손수건을 잊었던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 어려울 것 없는 일입니다

떡보는 허식을 늘어 놓을 여념도 없이 선뜻 대답하여 버렸다.

천만 감사합니다. 대인의 은혜야말로 백골이 된들 잊을 법

있사오리까. 그러면 준비 절차는 어찌하면 좋사올는지---

그리 거창스러이 아니하고도 될 수 있으니 간단히 해골만 파서 댁에다

깨끗이 모셔 놓으시지요

또 날자는?

아무 때도 좋습니다

떡보는 일사천리의 쾌락을 하였다.

---재상 황의 부모가 불시에 회생되자 이번에는 어떤 부호로부터 애첩을

살려 달라는 청이 들어왔다. 살려주었다. 뒤이어 어떤 열녀로부터

불상히(불쌍히?) 죽은 남편을 살려 달라는 부탁이 왔다. 그도 살려

주었다. 스승을 살려달라는 제자들의 청이 왔다. 그도 살렸다. 애

주검, 늙은 주검, 남편 주검, 아내 주검, 궁중에 통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사람은 제각기 꼬리를 물었다.

떡보는 성가신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내 달빛공주의

권고로 낱낱이 응대하는 한편 천자에게 주청하여 천하에 방을 붙이게

하였다.

애석히 죽은 사람은 지방 관가의 알선으로 구역과 날자를 차례로

정하여 큰길 가에 시체를 나란히 내놓으라

방이 나붙자 중국 전역은 묘 파는 사람으로 북망산을 뒤덮었다.

떡보는 잘 달리는 말 한필을 마련하였다. 그 신기한 나무가지와 녹색

손수건을 각각 지팡이 길이의 막대기 끝에 매달아 가지고 말에 올라 그

막대기 끝으로 길가에 내 놓은 시체를 스치며 달렸다. 떡보가 지난 뒤의

길 좌우는 되살아난 애 어른이 열을 짓는다. 개중에는 죽은지 몇백년된

후손도 낯모를 할아버지 할머니도 있다.

떡보는 동으로, 서로, 매일같이 쉴새없이 달렸다. 겨울에는 남쪽으로

여름에는 북쪽으로 몇해를 달렸다.

---그러는 동안 몇천만 밖에 안되던 중국 인구는 일약 사억대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환호로 들끓던 세상 여론은 점점 근심조로 변하였다.

이렇게 인구가 늘다가는 장차 살기 힘든 세상이 되어버리지 않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천자도 이를 염려하여

인제는 그만하고 돌아오라

는 명을 내렸다.

떡보는 몇해만에 천자궁에 돌아왔다.

천자는 잔치를 베풀고 떡보를 위하여

그동안 수고 많았소. 인제는 모국에서 기다릴 때도 되었으니 돌아감이

어떨꼬---

환국을 종용하였다.

---떡보는 천자로부터 받은 금은보화며 비단 등속을 수백필의 말에 실리고

제삼부인 달빛공주와 함께 회로에 올랐다.

행차가 지나가는 길가에는 새 마을과 없던 거리가 연달아 생기고

수목만이 울창하던 산과 들은 농사터로 개간되고 있다.

이리하여 살림터를 찾는 사람의 떼는 물을 따라 들판따라 새땅으로

새땅으로 뻗어, 인구 사억으로 급격히 팽창된 중국의 강토는 동으로

북으로 또 남으로 나날이 확장되어 가는 것이었다.

 

神秘한 꿈

 

오래간만에 돌아온 떡보를 맞이한 모국의 궁중은 환영절차에 바빴다.

신부 달빛공주가 거처할 궁전도 마련해야 했다.

그 동안 궁전 일부도 확장되어 미리 중국천자로부터 보내온 사례금으로

떡보루(德甫樓)라는 큰 전각이 새로 섰다.

임금님은 떡보를 위로하기 위하여 만조백관이며 각지방의 방백수령들을

불러 떡보의 기념으로 세운 떡보루에 큰 잔치를 베풀었다.

옷차림도 찬란히 수백명이 둘러앉은 중앙 임금님 맞은편이 떡보의

자리다. 왼편에는 제이부인 별아기공주를 앉히고 바른편에 제삼부인

달빛공주를 앉히었다. 희색이 만면하여 떡보의 좌우를 바라보고 있던

임금님은 좌중의 정좌를 기다려 자리에서 일어섰다.

--- 그리하여 우리 떡보대부는 멀리 중국에까지 가서 광활한 미개지에

사억인구의 씨를 뿌려 제대로 나라의 기초를 잡게하고 왔으니 우리나라

국위가 바야흐로 사해(四海)에 빛나는도다. 이 어찌 짐의

기쁨만이리요--- 널리 그 공을 찬양하며 정성껏 그 노고를 위로하노라

황송하오이다

임금님의 찬사에 떡보는 머리숙여 답례를 하였다.

임금님을 따라 일동은 잔을 들었다.

수륙 만리 먼먼 길에---

임금님은 다음 달빛공주를 소개하려 하였다. 이때였다. 갑자기 대궐문

안이 소란하여진다. 뭣인가하고 모두 그쪽으로 눈을 돌렸다. 임금님도

말을 끊었다.

흙 묻은 삼베옷 차림의 어떤 여자가 황황히 잡는 관원들을 밀치면서

내가 바로 떡보의 여편네야!

하고 악을 쓰는 것이었다.

떡보 너 이놈 나는 이꼴로 버려두고 너만이 호강이냐? 이놈! 이놈!

알아볼 것도 없이 떡보의 큰마누라였다.

알아차린 임금님은 빙그레 웃으며

알았다. 빨리 목욕시키고 새옷을 갈아입혀 이곳 자기 남편 곁으로

인도하여라

명을 내렸다.

볕에 글대로 글은 검붉은 얼굴과 거칠은 노랑머리가 갑자기 뒤집어씌운

비단옷에 어울릴 리 있으리요만 그래도 사생대부 떡보대감님의 부인임엔

틀림이 없었다.

남편 옆에 좌정한 떡보마누라는 이제서야 주위를 깨달았음인지 발광하던

흥분도 가라앉고 꿀먹은 벙어리모양 묵묵히 앉아있다.

한참동안 어수선하던 잔치는 점차 흥이 어울리기 시작했다.

전각의 처마끝에는 봄빛이 무르익었고 떡보의 마음속에는 애정이

짙었다.

난간 앞 연못에는 원앙새 또한 쌍쌍인데 낙화는 춤추는 소매끝에

휘날리고 새 노래는 풍악속에 멋들었다.

상감마마

떡보는 허리를 굽히며 취기어린 눈으로 임금님을 우러렀다.

떡보 지난날 감히 말하지 못하였던 꿈이란 바로 지금 이

광경이었나이다. 제가 상감마마께서 베푸신 자리에 마누라를 앞에다

우리나라 공주를 왼편에다 중국 공주를 바른편에다 앉히우고 호강을 하는

장면이었사오니 아무리 꿈이라 하온들 감히 입밖에 낼 수 있었사오리까?

임금님은 인제야 알았다고 무릎을 치며 껄껄 웃었다. 이말이 전해지자

전각이 무너질듯이 웃음이 터졌다.

잔치가 파할 무렵 텀벙하는 돌던지는 소리에 원앙새 몇쌍이 놀라

날아갔다.

이것은 돌이 아니라 떡보가 던진 별아기공주를 살리고 달빛공주를

살리고 또 중국 사억인구의 기초를 만든 신기한 나무가지와 녹색손수건

그것이었다.

신기한 보물을 영원히 삼켜버린 궁궐안 깊은 연못은 짙어가는 황혼속에

둥근 무늬만을 그리고 또 그릴뿐이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