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당선된 날 사라진 안대희 “내 임무 끝났다”
“朴에 부담주기 싫다” 대선 전날 짐싸
게재 일자 : 2012년 12월 21일(金)
지난 19일 대통령 선거 당일 아침 서울 여의동 새누리당 당사 5층에 마련된 안대희(사진) 당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의 사무실 문을 열어 본 당의 한 관계자는 깜짝 놀랐다. 평소 사무실에 있던 안 위원장의 짐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책상 위에는 종이 한 장 남아 있지 않았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안 위원장의 비서 등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뒤 안 위원장이 하루 전인 18일 자신의 짐을 다 꾸려 당사를 떠났다는 것을 파악하게 됐다. 혹시나 안 위원장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나 선거 캠프에 불만이 있어 예고없이 사무실을 비운 게 아니냐는 불안감에 빠져 있던 당 관계자들은 그가 자신의 역할이 모두 끝났고 이후 박 당선인에게 어떠한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일찍 자리를 정리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나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당의 한 관계자는 “보통 선거가 끝나면 너 나 할 것 없이 당사나 캠프에 모여들어 자신의 공치사를 과장해서 홍보하는 게 이 바닥의 현실인데 안 위원장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신선했다”며 “역시 ‘안대희답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고 밝혔다.
안 위원장은 지난 9월 당에 영입된 이후 문화일보와 가진 파워인터뷰에서도 “정치쇄신하러 (새누리당에) 온 거지, 정치하러 온 건 아니라는 생각, 항상 갖고 있습니다. 정무직까지 (가능성을) 닫고 생각하는 겁니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문화일보 9월 14일자 29·30면 ‘파워인터뷰’ 참조)
안 위원장은 21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도 “내 임무가 끝났으니 떠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이렇게 했다고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하라고 부담을 주기도 싫다”고 밝혔다.
김만용 기자 my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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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희 변호사, 전 대법관 |
출생 : 1955년 3월 31일 (경상남도 함안) 소속 : 변호사안대희법률사무소 가족 : 슬하 1남 1녀 학력 : ~ 1982 국립사법관학교 수료 서울대학교 행정학 중퇴 ~ 1973 경기고등학교 수상 : 2006년 황조근정훈장 경력 :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 2012.08~ 변호사안대희법률사무소 2006.07~2012.07 대법원 대법관 2005.04~2006.07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 2004.06~2005.04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 2003.03~2004.06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부장 2002.08~2003.03 부산고등검찰청 차장검사 2001.06~2002.08 서울고등검찰청 형사부 부장검사 2000~2001.06 부산지방검찰청 동부지청 지청장 1999.06~2000 대구지방검찰청 제1차장검사 1998.03~1999.06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 지청장 1996.07~1998.03 서울지방검찰청 특수1부, 2부, 3부 부장 1994~1996.07 대검찰청 수사1과, 수사3과 과장 1993~1994 부산지방검찰청 특수부 부장 1993~1993 인천지방검찰청 특수부 부장 1991~1993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과학수사지도과 과장 1989~1991 대구지방검찰청 영덕지청 지청장 1988~1989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1984~1988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검사 1983~1984 춘천지방검찰청 영월지청 검사 1980~1982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1975 제17회 사법시험 합격 |
2012. 10. 9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국민대통합 정치쇄신 심포지엄
2012.11.6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안대희 정치쇄신특위위원장이 배석한
가운데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정치쇄신안 발표
안대희(安大熙 1955년 3월 31일 ~ )
순흥안씨(3파) 29세 대사헌공파 / 취우정공(휘 광렬)파 순흥안씨(3파) 28세 청주 송곡종중회장 안병희의 아들
경상남도 함안군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여 재학 중이던 1975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서울대학교를 중퇴하고 사법연수원에 입소하였다. 25세에 최연소로 검사에 임용되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2·3부장을 거쳐, 대검찰청 중앙수사본부 과장을 두 번 역임하였다. 2006년 대법관이 되었고 2012년 대법관에서 퇴임하였다.
경력 경기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행정학과 중퇴 1975년 제17회 사법시험 최연소 합격 (노무현 대통령과 동기) 1980년 검사 임용 1982년 프랑스 국립사법관 학교 수료 2003년 3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2004년 6월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 2005년 4월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 2006년 7월 ~ 대법관
출생과 성장 그의 아버지는 회사원이었으며, 부산교대부속국민학교에서 공부하였다. 아버지가 서울로 발령이 나서 혼자 부산에 남아 중학교를 다니다가 숭문중학교로 전학하였다.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서울대학교 법대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재학 중 사시에 합격하고 서울대학교를 중퇴하고 사법연수원에 입소하였다.
검사 시절 삼성 대선자금 수사김용철은 당시 중수부장이던 안대희가 자신이 겪은 가장 청렴하고 능력 있고 강직한 검사인데, 2002년 대통령선거 때에 삼성의 비자금이 한나라당에 전해진 것을 알고도 덮었다고 주장했다.
비자금 수사노무현 대통령 측근 비리와 한나라당 대선자금에 대한 성역없는 수사로 실체를 파헤치며 국민들 사이에서 안짱으로 불리기도 한다. 당시 수사를 같이하던 송광수와 함께 검사로는 최초로 팬클럽이 결성되기도 했다.
대법관 시절 안대희는 중앙일보 네트워크 분석에서 대법관 중 전원합의체에서 보수적인 의견을 가장 많이 낸 대법관으로 꼽혔다. 또 김영란 대법관과는 분석에 사용된 판결에서 만장일치를 보인 것을 제외한 18건의 판결 중 16건에서 반대 의견을 내는 모습을 보였다.
대법관으로서 그는 형사사건과 조세사건에 있어선 엄격하지만, 여성과 난민·무허가건물 입주자 등 사회적 약자 보호엔 적극적이란 평가를 하는 언론도 있다.
사형 확정 판결을 내린 것은 70대 어부가 젊은이들을 죽인 '보성 연쇄 살인사건'과 '서남부 연쇄 살인사건' 두 건이다. 자기 스스로 기억에 남는 판결로는 백화점이 남품업자이 고용한 직원들에게 백화점 판촉일을 시키는 관행을 중지시킨 것을 꼽았다.
취미 당구도 즐기며, 실력은 300 정도 친다고 스스로 말하였다. 또한, 아주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골프·테니스·바둑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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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흥안씨(順興安氏)
순흥(順興)은 경상북도 영주시(榮州市)에 속해 있는 지명이다.
시조 안자미(安子美)는 고려시대 흥위위보승별장(興威衛保勝別將) 신호위상호군(神號衛上護軍)에 추봉되었다. 따라서 시조 이전의 세계(世系)는 알 수 없으나, 그 후대로 순흥현(順興縣)에 세거했기 때문에 관향(貫鄕)으로 삼았다.
순흥안씨의 시조는 안자미(安子美)인데, 고려 신종 때 홍위위 보승별장을 지내고 신호위 상호군에 추봉된 사람이다. 그의 세 아들 안영유(安永儒, 一派)·안영린(安永麟, 二派)·안영화(安永和, 三派)는 순흥안씨 3개파의 각 1, 2, 3파조가 된다.
안씨의 역사상 대표적 인물이며 주자학(朱子學)의 태두인 문성공(文成公) 안유(安裕)는 1파인 안영유의 손자이다.
고려시대에는 안유 외에 안문개·안축 등 많은 인물을 냈고, 조선시대에도 상신 2명, 호당 2명, 청백리 2명, 공신 2명, 장신 1명, 문과 급제자 116명을 배출했다.
근세인물로는 1909년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암살한 의사 안중근(安重根), 선천(宣川)에서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총독을 암살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안명근(安明根:중근의 사촌동생), 독립운동가이며 교육가인 안창호(安昌浩) 등이 있다.
2000년 국세조사에서는 인구수 46만 8827명, 가구수 14만 5254가구로, 안씨의 73.5%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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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겼지만 … 친박 기득권 버린다
기사입력 2012-12-22 00:52 최종수정 2012-12-22 06:22
후보 비서실장이던 이학재
“임명직 일절 안 맡을 것” 선언
김무성 · 안대희도 짐 싸 떠나
박근혜·오바마 “이른 시일 내 회동”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21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통화를 하고 있다. 두 사람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한 공동 대응 등에 공감하면서 이른 시일 내에 만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2월 취임 후 4월에 미국을 방문했다. 박 당선인은 내년 상반기 중 방미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경빈 기자]
'친박(親朴)' 인사의 기득권 포기 선언이 21일 릴레이로 이어졌다. 박근혜 당선인을 지지한 51%(1577만3128명)의 국민 외에 문재인 전 후보를 지지한 48%(1469만2632명)의 국민까지 하나로 만드는 '대탕평 인사'를 위해 박 당선인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뜻이다.
박 당선인의 비서실장인 이학재 의원은 이날 인터넷 홈페이지에 “기쁜 마음으로 원래 제가 있던 국회의원 직분으로 돌아간다. 오늘 이 순간부터 일체의 임명직 직책을 맡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이 의원은 2010년 8월부터 2년5개월 동안 박 당선인의 그림자 역할을 해온 인물이다.
그는 “천리마의 꼬리에 붙으면 천 리 길도 쉽게 간다는 말이 있다. 저 이학재가 바로 천리마에 붙은 파리였다”며 “파리는 천 리를 가면서도 말에게는 조금도 폐를 끼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난세에 업을 이루었으니, 나라를 유지하고 발전시킬 인재들을 세상에서 널리 모아야 할 것”이라며 “그들이 기꺼이 뜻을 합칠 수 있도록, 저는 뒤에서 돕고 오늘 이 순간부터 일체의 임명직 직책을 맡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이 의원에 이어 선거캠프의 사령탑이던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도 이날 짐을 꾸려 여의도 당사를 떠났다. 그는 당사 사무실 문 앞에 자필로 “이제 제 역할이 끝났으므로 당분간 서울을 떠나 연락을 끊고 쉬겠다”고 쓴 편지를 놓았다. 그는 이미 “박근혜 정부에서 어떤 임명직도 맡지 않겠다”고 공언했었다.
대법관 출신인 안대희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은 대선 하루 전인 18일 당사 5층의 집무실에 서류 한 장도 남기지 않고 떠났다. 그는 9월 박 당선인의 제의로 미국 스탠퍼드대학 연수를 취소한 채 캠프에 합류했었다. 그는 기자들과 만날 때마다 “박 후보의 당선을 도우러 왔을 뿐 자리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곤 했다.
안 위원장과 함께 캠프에 합류했던 남기춘 클린정치위원장도 “인수위든 뭐든 가지 않을 것”이라며 해외로 출국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만든 사람들'의 기득권 포기 선언이 줄을 잇는 것은 이명박 정부 시절 이른바 '핵심실세'로 꼽히던 이들이 인수위 때부터 요직에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해 권력투쟁을 벌이고, 그것이 부패로 이어져 결국 정권이 실패하는 과정을 봐왔기 때문이라고 한 새누리당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한구 원내대표도 이날 기자와 만나 “박근혜 정부가 성공하려면 '친박'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대통령직 인수위나 정부 조각에 들어가선 안 된다”며 “나부터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정효식.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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