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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사 방/고구려,백제,신라

나제통문은 가짜다 - 우리역사의 비밀

by 연송 김환수 2010. 7. 31.

 

나제통문은 가짜다

          - 우리역사의 비밀

 

무주구천동 33경중 제일먼저 통과하는 곳이 "나제통문"입니다

무주군청 관광안내도에는
"나제통문"이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가 국경을 이루던 곳이다.
석모산의 기암절벽을 뚫고 동서를 통하는길을 내었는데

지금도 양쪽지역의 언어와 풍습이 다르다"

라고 소개하고 있으나 이는 가짜다

 

 


이 굴은 "기니미굴"로 일제시대(1910년경) 일본놈들이

인근 금광에서 채굴된 금을 용이하게 옮기고
그 지역의 농산물과 임산물을 옮겨가기 위하여 뚫은

굴로서 이름이 "기니미굴"이었다

굴을 중심으로 한 도로를 기준으로

위쪽마을은 "기니미 마을" 아래쪽은 "이미리 마을"이다
도로개설 기록은 무주군청지인 "적성지"에도 기록되어있다

이러한 굴이 언제 "나제통문"으로 바뀌었는가 ?
바로 무주구천동 33경을 만들면서 1963년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때부터 기니미굴이 "나제통문"으로 둔갑을 하여

교과서에 버젓이 등장하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 국사교과서 때문에 학생들의 수학여행 단골 메뉴가 되어버렸다

이 나제통문이
진실을 아는 어느 뜻있는 한분에 의해서

강력하게 항의를 받아 어느날 교과서에서 삭제되었다

역사는 우리모두의 것이며 어느 특정부류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나제통문"의 사례에서 보듯이
감시하고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내고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 또 황당한 오류의 역사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 집요한 역사 은폐, 도제식의 역사 조폭문화      
개선할때도 되지 않았는지요 ?

 

* 출처: 우리역사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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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나제통문, 일제가 만든 굴이었다. - - - 미디어다음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가 국경으로 알려져 있는 전북 무주군의 나제통문. 나제통문 앞에서 한 사람이 옛수문장 복장을 하고 나제통문 주변의 관광코스를 홍보하고 있다.

 

 

전북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에 위치한 무주구천동 33경 중 제 1경인 '나제통문(羅濟通門)'은 높이 5~6m 너비 4~5m 길이 30~40m인 굴로 삼국시대 때 신라와 백제의 경계선 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굴이 삼국시대부터 있던 굴이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뚫은 굴 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이러한 사실을 추적해 역사 교과서에서 관련 내용을 삭제하게 만든 한국우리민족사연구회 상임연구위원인 역사학자 오재성씨는 “이 굴의 원래 이름은 기니미굴” 이라며 “1910년경 일본 사람들이 인근 금광에서 채굴된 금을 용이하게 옮기고 그 지역의 농산물과 임산물을 신속히 옮겨가기 위하여 뚫은 굴로 당시 김천과 거창을 잇는 신작로였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당시 이 ‘기미니굴’을 중심으로 위쪽마을은 ‘기니미 마을’로 아래쪽은 ‘이미리 마을’ 이라 불렀다. 이 굴의 명칭이 바뀐 것은 1963년 무주구천동 33경을 만들면서부터. 이때부터 '기니미굴'이 '나제통문'으로 둔갑해 교과서에 등장했고 학생들의 수학여행 필수코스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런 사실은 지역 노인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지금은 굴을 뚫을 당시의 현장을 목격한 노인들은 모두 사망한 상태다. 그러나 무주군의 행정기록을 적어놓은 ‘무주군청지 적성지(赤城誌)’에 당시 공사를 한 작업일지가 적혀있다고 한다.

 

우리민족사연구회에 따르면 지리적으로 살펴봐도 무주에서 경상북도 김천시와 경남 거창으로 향하거나 반대로 그 쪽에서 무주로 들어설 때 반드시 이 문을 통과해야 한다. 즉 이 굴은 현대에 와서 드나들기 편하게 만든 굴일 뿐이지 결코 삼국시대에 존재하던 굴이 아니란 것이다.

 

오재성 선생은 "이제는 교과서에서도 사라진 것을 아직도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놀랍다” 며 “불과 몇 십년 전 일도 이렇게 왜곡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우리 역사적 진실을 사실 그대로 밝히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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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제통문 [羅濟通門]  - 네이버 백과사전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에 있는 석굴문().

 

높이 5~6m, 너비 4~5m, 길이 30~40m이다. 암벽을 뚫은 통문으로, 옛 신라와 백제의 경계관문()이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에 이 굴이 삼국시대 때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일제강점기 때 뚫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논란이 일고 있다.

통문 동쪽은 본래 무풍현(), 서쪽은 주계현()의 땅이었는데, 조선시대에 합쳐서 무주현()이라 하였다. 무풍현은 신라의 무산현()으로 경덕왕 때 무풍현으로 고쳐 개령군(경북 김천)에 소속시켰고, 주계현은 백제의 적천현()으로 통일신라시대에 단천현()이라 하다가 고려시대에 주계현으로 고쳤다.

이와 같이 통문을 경계로 한 동 ·서 두 지역은 삼국시대 이래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판도와 문물이 다른 지역이었던 만큼, 600년이 지난 지금도 통문을 경계로 언어 ·풍습 등에 차이가 있으며, 사투리만으로도 두 지방 사람을 식별할 수 있다. 나제통문은 무주구천동() 입구의 경승지이기도 하다. 현재 덕유산()국립공원 경역()에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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