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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리 유적 - 백제왕궁 박물관

by 연송 김환수 2023. 7. 29.

전북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에 있는 백제의 궁터 유적은 1998년 9월 17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백제 후기 궁궐의 구조와 기능, 축조과정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전북 익산 용화산 남측 끝자락의 구릉에 자리 잡고 있다. 《삼국사기》, 《관세음응험기》, 《신증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지》, 《대동지지》, 《전라도읍지》, 《금마지》 등의 문헌에 마한 또는 백제 무왕, 보덕국 안승 또는 후백제 견훤의 왕궁이 있었다는 각기 다른 기록이 전해지는 유적이다.

 

1989년부터 30년 넘게 진행된 발굴조사 결과 백제 후기 무왕(재위 600∼641) 때 조성된 궁성의 터인 것으로 추정된다.

일정기간 궁으로 사용되다 백제 말~신라 초에 그 터에 탑, 금당(부처를 모신 공간), 강당으로 구성된 사찰이 들어섰던 것으로 보인다.

백제왕궁박물관

1998년 9월 17일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2015년 7월에는 송산리고분군, 부소산성, 정림사지, 미륵사지 등 공주·부여·익산 지역 7개 문화유산과 함께 ‘백제역사유적지구’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바있다.

왕궁리 5층석탑 / 1층 지붕돌 사리장엄구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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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을 둘러쌌던 직사각형 담장은 동서 약 230m, 남북 약 495m로 총 길이 1,454m에 달한다. 잘 다듬은 화강석으로 쌓아올린 담장으로, 잔존 부분의 최고 높이 1.2m, 폭 3m 내외이다.

내부 공간은 동서 방향으로 뻗은 축대를 쌓아 구획하였는데,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구분된 구조이다. 전반부에 대형건물, 후반부에 후원·공방·대형 화장실 등이, 전반부와 후반부 경계에 정원이 조성되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찰 유적은 전반부에서 발견되었다.

 

대형건물터는 정면 7칸(31m), 측면 4칸(15m) 크기로, 왕이 정사를 보거나 의례·연회를 행할 때 사용한 정전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후원은 유적 내 북동쪽 구릉에 있었다.

 

유적에서 왕의 거처와 중앙행정기구가 있는 곳을 의미하는 ‘수부(首府)’라 새겨진 기와를 비롯해 수막새, 토기, 자기, 인장기와, 유리·금·철 제품, 등잔 등 약 1만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대관사(大官寺)와 유사한 사찰명인 대관궁사(大官宮寺), 대관관사(大官官寺), 관궁사(官宮寺) 등의 이름이 새겨진 기와도 출토되었다.

정원은 조경석으로 화려하게 꾸민 사각연못 형태로, 후원의 수리시설과 연결되어 있으며 후원 영역으로 진입하는 관문 역할도 하였다. 대형 화장실 3곳 중 하나는 길이 10.8m, 폭 1.7m, 깊이 3.4m 크기였다. 공방은 궁에서 사용한 도구 등을 만들던 곳으로, 공방터에서는 금·동·유리 제품과 도가니·숫돌 등이 발견되었다.

 

그밖에 수십 개의 건물터와 부엌터, 가마터, 배수로 등의 유적이 확인되었다. 사찰터에는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이 있으며, 금당터와 강당터 등이 확인되었다.

복잡하고 정교한 수리체계를 갖춘 후원으로, 길이 485m, 폭 2.7~7.2m의 대형수로와 길고 짧은 6개의 곡수로(구불구불한 수로), 4개의 집수시설을 갖추어 물의 저장·공급, 수량조절, 배수가 가능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