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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쌍릉 (무왕, 선화비릉)

by 연송 김환수 2023. 7. 29.

익산 쌍릉 (益山 雙陵)

 

전북 익산시 석왕동에 있는 백제시대 무덤. 1963년 1월 2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전라북도 익산시 석왕동에 있는 백제 말기의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이다. 남북으로 2기의 무덤이 나란히 있어 쌍릉이라 부르며, 북쪽의 것은 대왕묘, 남쪽의 것은 소왕묘라고 한다.

 

북쪽 대왕릉 (무왕 무덤)

 

마한(馬韓)의 무강왕(武康王)과 그 왕비의 능이라고도 하며, 백제 무왕(武王)과 선화비(善花妃)의 능이라고 전하기도 한다.

고려 충숙왕(忠肅王) 때 도굴된 기사가 있고, 1917년에 학술적인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발굴 결과 그 구조는 원분(圓墳)으로 부여 능산리(陵山里)에 있는 백제 왕릉과 동일 형식에 속하는 판석제 굴식돌방으로 밝혀졌다.

이미 도굴되어 부장품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으나, 당시의 돌방 안에서 비교적 완전한 나무널〔木棺〕이 출토되어 국립박물관에 보존되어 있었는데, 6·25전쟁 중 파손되었다. 지금은 복원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발굴 당시 높이는 3.1m, 양 무덤의 너비는 약 0.5km였다. 현재는 보수되어 대왕묘의 지름은 30m, 높이는 5m, 소왕묘의 지름은 24m, 높이은 3.5m이다.

 

대왕묘의 돌방 바닥은 봉분 꼭대기에서 7.2m 아래에 있는데, 널방〔玄室〕 규모는 길이 3.80m, 너비 1.78m, 높이 2.27m이다. 남면 중앙에 널길〔羨道〕이 설치되었는데 널문〔羨門〕과 널길 입구는 판석을 세워 막았고 4면벽과 바닥·천장을 모두 돌널[板石]로 조립하였다.

 

바닥 중앙에는 널받침〔棺臺〕이 놓였다. 소왕묘의 돌방 바닥은 봉분 윗면에서 5.5m 아래에 있는데 돌방의 형식과 석재 등은 대왕묘와 같다. 널방은 길이 3.2m, 너비 1.3m, 높이 1.7m로 규모가 약간 작다.

쌍릉관리사무소

왼쪽 소왕릉 80m / 오른쪽 대왕릉 100m

1995년에 세운 익산 쌍릉 대왕릉 앞에 세워진 한창교공적비

淸州公諱昌敎功績碑(청주한공휘창교공적비)

공적비 배면(뒷면)

馬韓王孫(마한왕손) “淸州韓氏八峯王陵宗親會(청주한씨팔봉왕릉종친회)”에서 세웠다고 새겨져 있다.

쌍릉은 원형의 봉토분으로 봉분 이외에 별다른 장식이 없었는데 익산쌍릉(대왕릉과 소왕릉)에 석물(石物)들이 2007년 4월 무단으로 설치되어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고발조치까지 된 끝에 청주한씨(淸州韓氏) 종중에 의해 2008년 7월 말경 자진 철거되었고 1995년에 새운 청주한씨 공적비는 남아있다.

 

청주한씨 문중에서는 대왕릉(大王陵) 과 소왕릉(小王陵)을 고조선의 준왕(準王) 즉, 자신들의 시조(始祖)인 ‘마한(馬韓)의 태조(太祖) 무강왕(武康王)과 무강왕비릉’으로 여기고 있다.

 

앞서 2017년부터 2018년까지 대왕릉 발굴에서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관대(棺臺: 관을 얹어놓는 넓은 받침) 위에서 수습한 상자 속 인골 분석을 통해 ‘60대 전후 남성 노인으로 160∼170.1㎝, 사망 시점 620∼659년’이라는 결과를 공개하며 대왕릉이 641년에 사망한 무왕 무덤일 가능성이 커졌다고 설명한바 있다.

청주한씨 종친회는 “고려사에 청주한씨 시조인 무강왕릉으로 기록된 익산 쌍릉을 익산시 등이 백제 무왕릉으로 일방적으로 추정발표했다”고 주장하며 "대왕릉은 ‘청주한씨 시조인 마한태조 무강왕릉‘이다”며 ‘익산 천도나 백제왕도’ 및 ‘대왕릉의 무왕릉 주장’은 완전 허구이고 역사왜곡이라며 청주 한씨로 쌍릉 땅 반환 등을 요구하고 있다.

 

"마한태조 무강왕릉 수호(선우, 한, 기씨)범대책 위원회"라는 구절에서 보듯이 선우, 한, 기씨가 모두 무강왕(武康王)의 자손이 된다.

마한(馬韓) 말년 원왕(元王)이 백제 온조왕(溫祚王)에게 나라를 빼았길 때 그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우평(友平), 우량(友諒), 우성(友誠)이다.

이들은 나라가 망하자 1) 우평은 고구려에 귀의하여 유리왕(琉璃王)을 섬겨 북원(北原) 선우씨(鮮于氏)가 되었고, 2) 우량은 신라에 귀의하여 탈해왕(脫解王)을 섬겨 상당(上黨)한씨<청주한씨(淸州韓氏)>가 되었으며, 友諒(우량)의 32세인 란(蘭)이 시조(始祖)가 된다 3) 우성은 백제에 귀의하여 온조왕을 섬겨 덕양(德陽) 기씨(奇氏)가 되었다고 전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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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소왕릉 (무왕 왕비 선화비 무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