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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예 방/인문고전

산사 - 사재백운중 / 이달(李達)

by 연송 김환수 2020. 4. 13.

사재백운중(寺在白雲中) - 절은 흰 구름 속에 있는데. 


山寺(산사 / 이달(李達) : 조선 중기 명종 때 시인.


寺在白雲中 (사재백운중) / 절은 흰 구름 속에 있는데,

白雲僧不掃 (백운승불소) / 흰 구름을 스님들은 쓸어내지 않네.

客來門始開 (객래문시개) / 손님이 찾아와 비로소 문이 열리는데,

萬壑松花老 (만학송화로) / 산중 골짜기에 송화가루만 흩날리네. (산중에 봄이 지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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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곡 이달 선생 시 山寺(산사) - 일우 김도영 (一宇 金道榮) /2018년 서울서예대전 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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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日庵贈因雲釋 (불일암증인운석) / 불일암 인운 스님에게


寺在白雲中(사재백운중)  / 흰구름이 가득한 곳 그 안쪽에 절이 있는데

白雲僧不掃(백운승불소)  / 그 구름을 스님은 쓸어내지 않는구나

客來門始開(객래문시개)  / 내방객이 찾아와 그제서야 문열리니   

萬壑松花老(만학송화로)  / 온계곡에 송화가루 후루루룩 흩날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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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日庵贈因雲釋 (불일암증인운석) - 불일암 인운 스님에게

위 시제는 (불일암 인운 스님께 드린 글)로 번역된다.


한시 원문을 의역해 보면 산사(山寺 : 산에 있)로 번역되고 산사의 겨울, 눈 속에 묻힌 절이란 해석도 가능하다.


절이 온통 구름으로 덮여있는 시적 배경에 흰 구름과 흰 눈이 연상되는 시상이 전개된다.

흰 눈을 스님이 쓸지 않았던 것은 흰 구름으로 착각했거나, 날마다 스쳐 지나가는 구름을 스님이 비를 들고 쓸 리 없다.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문이 닫혀 있었는데, 모처럼 손님이 찾아오니 비로소 절 문이 열렸다.

문밖에 나와보니 어느새 겨울이 지나고, 봄마저도 지나는지 송화가루가 흩날리고 있다.


寺在白雲中 (사재백운중) : 절이 흰 눈속에 덮혀 있는데

白雲僧不掃 (백운승불소) : 흰 눈을 스님이 쓸지 않는구나

客來門始開 (객래문시개) : 손님이 찾아와 비로소 문이 열리는데

萬壑松花老 (만학송화로) : 산중의 봄도 지나는지 송화가루 날리는구나


고요한 산사의 靜的(정적) 분위기를 극대화한 ()이자 禪詩(선시) 같은 느낌을 받는다.

시상의 전개가 보통 사람의 생각을 넘어 한 편의 그림을 보거나 신선의 세계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일찍부터 문장에 능하였던 이달(李達)은 박순(朴淳)의 문인으로 동문인 최경창(崔慶昌), 백광훈(白光勳)과 함께 삼당시인(三唐詩人)이라고 불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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語句 解釋 (어구해석)


在白雲中(재백운중) : 흰 구름 속에 있다.

僧不掃(승불소) : 스님이 쓸지 않음.

門始開(문시개) : 절의 문이 비로소 열렸다.

萬壑(만학) : 깊은 산중의 여러 골짜기.

松花老(송화로) : 송화 가루가 다 진 것을 말함.(봄이 지나간다)

() : "생애를 마치다" 인데 송화가루가 떨어지는 모습으로 봄이 지나가고 있다.

문이 열리면서 진동을 받은 봄 날에 소나무가 송화가루를 훅하고 날리는 모습이다.

靜的(정적)인 분위기에서 문이 열리면서 송화가루가 훅 날리는 動的(동적)인 분위기로 전환된다.


補充 說明(보충설명)


절이 깊은 산골짜기에 있어 항상 구름 속에 있는 것 같다.

이 절의 스님은 구름 속에서 생활하니, 이 스님이야 말로 신선이다.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문이 닫혀 있는데손님이 찾아오니 절 문이 열렸다.

어느 결에 겨울이 지나고, 봄마저도 지나는지 송화가루가 흩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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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李達, 1539~1618)


조선중기의 시인(詩人)으로 본관은 신평(新平)이다. 충청도 홍주(洪州) 출신으로, 조선 초 대문장가인 쌍매당(雙梅堂) 이첨(李詹)의 먼 후손이자 부정(副正) 이수함(李秀咸, 秀涵)의 서자로 태어났다. 한리학관을 잠시 지냈으나 곧 물러났다. 한때 강원도 원주 손곡리에 정착하여 당시(唐詩)를 연구했으며 호는 손곡(蓀谷)이라 했다.


당시에 신분이 천시 받는 庶孼(서얼)이었기에 후대에 내려오면서 그의 문학적 가치에 비해 그리 큰 각광을 받지 못해왔으나 그의 시작품이 당시에 최고의 경지에 이른 시인으로 한국한문학사에 커다란 위치를 점하고 있다.


최경창·백광훈과 함께 당시(唐詩)에 능하다고 알려져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 불렸으며, 문선·태백·성당 십이가등을 전부 욀 정도의 한시의 대가였다.

허균의 <손곡산인전>에 따르면,신라이래 당시를 지은 자 중 손곡을 따를 자가 없다고 했다.

명나라 사신 주지번과 석주 권필도 손곡의 시를 이백의 시에 섞어 놓으면 안목있는 자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극찬했다.

, <구운몽>의 저자 서포 김만중도 <서포만필>에서 그의 '별이예장(別李禮長)'을 조선 최고의 오언절구라고 했다.

그의 시에는 아취가 있는 서정시도 많으나, 임진왜란 전후에 고단한 삶을 살았던 당시 백성들의 아픔을 노래한 시도 많이 남겼다.

 

한편, 감사 허엽의 아들인 허성, 허봉과 친분이 두터웠고, 그 인연으로 성소(惺所, 허균)와 난설헌을 가르치게 되었다. 또한, 손곡과 비교적 가까운 집안사람인 신평이씨 형조참판 이거(李蘧)가 허균의 부친인 허엽의 제자이자 허균의 외사촌 누님인 전의이씨(판서 이귀령의 손녀딸로 문정왕후 외당질녀이기도 함)의 남편인 점도 이들의 만남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허균(惺所,성소)은 손곡(蓀谷)의 제자로, 서자 출신이었던 스승 손곡(蓀谷)의 생을 동기(動機)로 삼아 한글소설인 홍길동전을 지었다. 또한, 허난설헌도 조선 최고의 여성 시인으로 명나라에까지 그 명성이 자자했다.

 

손곡은 전국을 떠돌며 여러 벗들과 어울려 시짓기를 즐기다, 말년에 평양 여관에서 졸했다고 한다.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손곡리와 홍주군청 앞에 그의 시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