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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예 방/추사 김정희

추사(秋史) 김정희 선생의 묵난화(默蘭畵)

by 연송 김환수 2020. 4. 6.

추사(秋史) 김정희 선생의 묵난화(默蘭畵)


山中覓覓復尋尋 覓得紅心與素心.  欲奇一枝嗟遠道 露寒香冷到如今 居士

산중멱멱부심심, 멱득홍심여소심, 욕기일지차원도, 로한향냉도여금. 거사


[해설]


산중을 찾고 또 찾아서 붉은 난초 꽃과 흰 난초 꽃을 찾았도다. 한가지 임에게 보내고자 하나 길이 멀어 탄식하노라.이슬은 차고 향기는 서늘하여 지금에 이르렀도다.



棘荊斬去 君子獨全 板橋 君勅慾之 世不爲然 南阜續題

극형참거 군자독전 판교 군칙욕지 세불위연 남부속제


[해설]


가시덤불을 베어버려야만 군자가 홀로 안전하다. 판교 자네는 그렇게 하고 싶겠지만 세상은 그렇게되지 않네. 남부에 이어짓다.



昨日天女下雲峰, 帶得花枝灑碧空, 世上凡根與凡葉 ,豈能安頓在基中 居士

작일천봉, 대득화지공, 상범근여범엽,기능안돈재기중  거사

錄板橋詩(록판교 시)


[해설]


어제 낮 선녀가 운봉에 내려, 띠두르고 꽃가지 하늘에 뿌리니, 세상의 범상한 뿌리와 잎들이 어찌 그 중에 곱게 끼일까.




昨日天女下雲峰,帶得花枝灑碧空,世上凡根與凡葉,豈能安頓在基中 居士

일천녀하운봉, 대득화지쇄벽공, 세상범근여범엽,기능안돈재기중 거사.


[해설]


어제 낮 천녀가 운봉에 내려, 띠 두르고 꽃가지 하늘에 뿌리니, 세상의 범상한 뿌리와 잎들이, 어찌 그 중에 곱게 끼일까.


山上蘭花向曉開 ,山腰蘭箭尙含胎 ,畵工刻意敎停畜,何苦東風好作媒.此是幽貞一種花 

산상난화향효개 ,산요난전상함태 ,화공각의교정축,하고동풍호작매,차시유정일종화


花不求聞達只烟霞 ,採樵或恐通來徑 ,更寫高山一片遮 ,兩絶皆板橋詩 居士

화불구문달지연하, 채초혹공통래경 ,갱사고산일편차 ,양절개판교시 거사 



[해설]


산위의 난초꽃은 아침에 피나, 산허리에 난초꽃대 아직도 봉오리로다.

화공의 뜻하는 마음따라, 더디 피란 것 동풍만 수고롭게 불어오노라.



此爲瘦式 寫蘭之最難得格者 居士

차위수식 사난지최난득격자 거사


[해설]


이것은 가냘프게 그리는 법식이니 난 치는데서 제 격을 얻기가 가장 어렵도다 거사.



春濃露重 地暖草生 山深日長 人靜香透 居士

춘농로중 지난초생 산심일장 인정향투 거사


[해설]


봄 깊고 이슬 많아 땅 풀려 풀 돋는다. 산깊고 해 긴데 사람자취 고요하고 향기만 가득하구나.

向來俯首問羲皇, 汝是何人到此鄕, 未有畵前開鼻孔, 滿天浮動古馨香 居士

향래부수문희황, 여시하인도차향, 미유화전개비공, 만천부동고형향 거사


[해설]


전부터 고개숙여 복히씨께 묻기를 그대 뉘기에 이곳에 있는가.하늘 가득히 떠도는것 옛 향기일세. 거사


* 개비공 : 생성이 코로부터 시작된다는 의미. 출생 출현 또는 존재 본연등의 의미로 쓰임

* 복희씨 : 중국 고대 전설상의 임금, 어업,목축을 일으키고 문자를 만들었었다고 전함.


 

山中覓覓復尋尋, 覓得紅心與素心 ,欲奇一枝嗟遠道, 露寒香冷到如今. 居士

산중멱멱부심심, 멱득홍심여소심, 욕기일지차원도, 로한향냉도여금 .거사


[해설]


산중을 찾고 또 찾아서 붉은 난초 꽃과 흰 난초 꽃을 찾았도다. 한가지 임에게 보내고자 하나 길이 멀어 탄식하노라 이슬은 차고 향기는 서늘하여 지금에 이르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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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필 난맹첩(金正喜 筆 蘭盟帖)

  

조선시대 서화가 김정희의 묵란화(墨蘭畵) 16점과 글씨 7점을 수록한 서화첩으로 보물 제1983호이다.

·하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권에는 글씨 4면과 그림 10, 하권에는 글씨 3면과 그림 6면에 관인이 찍혀 있다.


크기는 상권 가로 27.0세로 22.8, 하권 가로 27.6세로 23.4이다. 서화첩은 총 23면에 글씨 7면과 그림 16면이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현재 전하는 김정희의 유일한 묵란화첩이다.

 

이 서화첩에는 모두 2231방의 김정희 인장이 찍혀져 있으며 상권 서문에 유재소의 병인(甁印)과 이름 도장이 있다. 이 서화첩에는 혜란(蕙蘭)과 춘란(春蘭) 등 다양한 묵란의 모습이 포함되어 있으며 추사체로 쓴 서문과 발문, 제시가 있다.


상권의 제11면에는 거사사증명훈(居士寫贈茗薰)’이라는 관제가 남아 있어 이 서화첩을 김정희가 명훈에게 준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명훈(茗薰)’은 김정희의 제자이자 전속 장황사였던 유명훈(劉命勳)의 자()이다. 유명훈은 김정희를 따르던 여항시인 박윤묵의 둘째 사위이며 유명훈의 아들 유재소 또한 김정희의 말년 제자이다.


난맹첩 상권 제1면에 유재소의 인장이 찍혀 있는 것도 이 가문에서 본 유물을 수장해 왔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상권 13-14면에 보이는 내용은 청대 문인 진문술(陳文述)이 펴낸 화림신영(畵林新詠)에서 발췌한 것인데 이 책은 1832년 신위(申緯)에게 의해 조선에 소개되었다. 따라서 본 난맹첩의 제작 연대는 1832년 이후일 것으로 추정된다.


본 서화첩에는 김정희가 강조했던 서예성을 강조한 운필법과 제사(題詞) 및 인장이 조화롭게 사용되어 있다. 아울러 상권의 제첨을 쓴 소장노각(小長蘆閣)’은 청나라 말기의 실업가이자 서예가였던 얀 신호우[严信厚, 1838~1907]로 확인된다.

 

내용 및 특징

 

본 유물의 상권은 14면으로 제1-4엽과 제25-28엽에 제발문이 있고, 나머지 10면에는 난초 그림에 제화한 것이다. 상권과 하권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상권(上卷)

 

1: 청나라 문학가이자 서화가인 오숭량(吳嵩梁, 1766~1834)의 처첩과 딸이 난초 그림에 뛰어났다는 내용을 행서로 썼다.

2: 명대 문인화가로서 문징명의 화란법(畵蘭法)을 따랐던 도갱(陶賡, 생졸년 미상)을 소개하고 감필에 대한 도갱의 글을 인용한 글로 행서로 썼다. 백문방인 묵연(墨緣)’, 주문방인 소천심정(小泉審正)’, 백문방인 유재소인(劉在韶印)’이 찍혀 있다. ‘소천은 김정희의 제자이기도 했던 서화가 학석(鶴石) 유재소의 별호이다.

3적설만산도(積雪滿山圖): 짧은 잎의 춘란(春蘭)을 그렸다.

4춘농로중도(春濃露重圖): 혜란(蕙蘭)을 그렸다.

5부동고형도(浮動古馨圖): 화면 우측에 한 포기 난초를 그렸다.

6설봉천녀도(雪峰天女圖): 춘란을 그렸다. 화면 윗부분과 오른쪽 여백을 사용하여 자 형태로 청나라 화가 판교(板橋) 정섭의 시를 썼다. 같은 내용의 시가 하권 제2면의 작래천녀도에도 적혀 있다.

7홍심소심도(紅心素心圖): 화면 좌측에 춘란을 그렸으며 정섭의 시를 썼다.

8수식득격도(瘦式得格圖): 가는 잎의 난을 그렸다.

9산상개화도(山上開花圖): 긴 잎과 짧은 잎이 조화를 이룬 난을 그렸으며 정섭의 시 두 편을 썼다.

10인천안목도(人天眼目圖): 혜란을 그렸다.

11세외선향도(世外僊香圖): 지초와 난초가 함께 어우러진 모습을 그렸다.

12염화취실도(斂華就實圖): 난 그림 위로 '거사가 명훈에게 그려주었다'는 의미의 거사사증명훈(居士寫贈茗薰)’라는 기록이 있다.

13-14면 제발문(題跋文: 그림과 함께 쓰인 글): 청나라에서 난초 그림에 능했던 서아(徐珴), 황지숙(黃之淑,) 등의 여성화가들을 소개한 내용을 행서로 썼다.

 

하권(下卷)

 

하권은 총 9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1-2엽과 제15-18엽에 제발문이 있다.

1면 제발문: 청나라 화가 판교 정섭의 7언 절구 시 3수를 썼다.

2작래천녀도(昨來天女圖): 화면 왼편 비스듬히 한 포기의 춘란을 그렸다. 상권 제6면에 쓴 것과 같은 정섭의 시가 행서로 쓰여 있다. 백문방인 묵연(墨緣)’과 주문방인 추사시화(秋史詩畫)’를 찍었다.

3산중멱심도(山中覓尋圖): 유연하고 율동감 있는 총란(叢蘭)을 그렸다. 제시는 상권 제7면에 쓴 정섭의 시와 동일하며 행서이다. , , 화가 조화를 이루게 한 면이라 할 수 있다. 주문방인 추사시화(秋史詩畫)’와 백문방인 동국유사(東國儒士)’를 찍었다.

4군자독전도(君子獨全圖): 화면 우측의 제시는 극형참거군자독전(棘荊斬去君子獨全)’이라는 정섭의 시이다. 뒤이어 청나라 화가 고봉한(高鳳翰, 1683-1748)이 덧붙인 내용을 인용해서 옮겼다. 주문방인 추사시화(秋史詩畫)’가 찍혀 있다.

5국향군자도(國香君子圖): 난초 한 포기를 화면 중앙에 배치했다. 주문방인 정희(正喜)’와 주문방인 백정암(百鼎庵)’를 찍었다.

6지란합덕도(芝蘭合德圖): 혜란 한 포기를 그렸다. 주문방인 예당사정(禮堂寫定)’을 찍었다.

7이기고의도(以奇高意圖): 난초 두 포기를 화면 가득 배치하였다. 백문방인 동국유사(東國儒士)’, 백문방인 정희(正喜)’, 백문방인 우연욕서(偶然欲書)’가 찍혀 있다.

8~9면 발문 : 김정희가 자기 난법(爛法)의 연원과 요체를 밝힌 행서로 쓴 글이다.

난맹첩의 그림들은 김정희의 묵란화의 연원과 개성이 잘 드러나 있다. 또한 정섭의 시를 추사체로 옮긴 부분도 있어 시, , 화를 조화롭게 쓴 종합적인 예술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오동나무 상자에 상·2권이 함께 보관되어 있다. 각 권의 앞뒤 겉표지는 나무이며 상권에는 종이 제첨에 난맹소장노각제(蘭盟小長蘆閣題)’라 쓰여 있다.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는 매우 양호하다.




昨來天女圖(작래천녀도) / 김정희 필 난맹첩 (金正喜 筆 蘭盟帖) - 보물 제1983


昨日天女下雲峰  帶得花枝灑碧空 世上凡根與凡葉 豈能安頓在基中 - 錄 板橋詩

일천녀하운봉  대득화지쇄벽공 세상범근여범엽 기능안돈재기중 - 록 판교시


어제 낮 천녀가 운봉에 내려, 띠 두르고 꽃가지 하늘에 뿌리니, 세상의 범상한 뿌리와 잎들이, 어찌 그 중에 곱게 끼일까.


청나라 화가 판교(板橋) 정섭(鄭燮, 1693-1765)의 시를 적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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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필 난맹첩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묵란화(墨蘭畵) 16점과 글씨 7점을 수록한 서화첩으로, 김정희의 전담 장황사(粧䌙師) 유명훈(劉命勳)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 제작한 것이다. 글씨 뿐 아니라 사군자(四君子)에도 능했던 김정희는 관련 작품을 여럿 남겼지만 난맹첩처럼 묵란만 모은 사례는 이 작품이 유일하다.


난의 형상을 다양한 구도와 모습으로 구현했으며 김정희가 추구한 사란법(寫蘭法)에 입각해 개성적인 필묵법(筆墨法)을 구사한 대표작으로 꼽힌다. 화면에 쓰인 제시(題詩) 역시 난()에 관한 고사(故事)와 난 그림에 능했던 중국의 인물들, 난의 속성 등에 관한 것으로, 문사철(文史哲)에 해박했던 김정희의 학술적 경지를 보여준다. 서예적 필법으로 난을 다양하게 잘 그렸던 김정희의 화풍이 유감없이 발휘되었으며, 후대 화가들에 큰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회화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積雪滿山 (적설만산도) / 쌓인 눈 산 덮다 - 김정희(金正喜)난맹첩(蘭盟帖)

지본수묵 / 22.9×27.0cm / 보물 제1983


積雪滿山 江氷欄干 (적설만산 강빙란간)

指下春風 乃見天心 (지하춘풍 내견천심) - 居士 題(거사 제) 

눈이 쌓여 산을 뒤덮고 강의 얼음은 난간을 이루었는데.

손가락 끝에 봄바람이니 이내 천심을 알겠구나.


이 묵란도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30여 년 동안 난치는 법을 배우고 익힌 끝에 터득해 낸 추사 난법(蘭法)의 요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추사는 그 난치는 비결을 체득한 다음 난맹첩2권에 각각 10폭과 6폭씩 자신의 난치는 법으로 그려낸 대표작을 장첩(裝帖)했습니다.

<적설만산>난맹첩상권 첫폭에 해당하는 작품입니다. 짧고 촘촘한 잎들이 보통의 길고 유연한 잎들과는 사뭇 달라 이채롭게 보입니다.

아마 자생란의 북방한계선인 우리나라 중부지방에서 볼 수 있는 춘란의 강인한 기상을 표출하기 위해 이렇게 묘사한 모양입니다.

붓을 급히 눌러 나가다가 짧게 뽑는 필치로 일관하여 언뜻 보면 억센 잔디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민족의 기상이고 고유한 미감이 발현된 굳세고 명확한 표현입니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한서(寒暑)의 차이가 극심하며 바위산이 많은 우리 기후풍토에서 비롯된 감각적 특색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배후에 엷은 담묵으로 꽃을 그렸는데 그것도 꽃대가 짧고 꽃잎은 매우 단조롭습니다. 눈보라에 시달리며 한 겨울을 얼어 지내고 나서 봄바람을 만나 몽그라진 잎새 위로 겨우 꽃대를 내밀었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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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 김정희 필 난맹첩(金正喜 筆 蘭盟帖)

소유자(관리자) : ○○․○○(간송미술문화재단)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로 102-1

수 량 : 2(23)

  - 상권 : 114(10, 4)

  - 하권 : 19(6, 3)

규 격 : 2.8×27.0cm(상권), 23.4×27.6cm(하권)

재 질 : 종이

형 식 : ()

조성연대 : 1830년대1840년대

 

현재 오동나무 상자에 상·2권이 함께 보관되어 있다. 각 권의 앞뒤 겉표지는 나무이며 상권에는 종이 제첨에 蘭盟小長蘆閣題라 쓰여 있고 하권에는 蘭盟二라 표제가 음각되어 있다. 상권에는 글씨 4면과 그림 10, 하권에는 글씨 3과 그림 6면이 장첩되어 있다. 23면에 글씨 7면과 그림 16면이 수록되어 있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바탕 종이는 변색이 진행되고 있으며 부분적으로 얼룩이 산재해 있다. 최근 이물질을 제거하는 등의 보존처리를 하여 현재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내용 및 특징


* 상권(上卷)


1면 서문 : 청대 문인화가로서 문징명의 화란법(畵蘭法)을 따랐던 도갱(陶賡)소개하고 감필(減筆)에 대한 도갱의 글을 인용하여 인수(引首)를 대신한 글이다. 측 상단에 백문방인 墨緣”, 하단에 주문방인 小泉審正과 백문방인 劉在韶印찍혀 있다. ‘소천은 김정희와 가깝게 교류하였던 서화가 학석(鶴石) 유재소(劉在韶,1829-191)의 별호이다. 어느 때인가 이 화첩을 유재소가 소장하였음을 말해준다.


2면 제발문 : 난을 치는 데에 능했던 청대 서화가 오숭량(吳嵩梁, 176-1834)의 처첩과 딸들을 언급한 내용이다.


3<적설만산도(積雪滿山圖)> : 짧은 잎의 춘란(春蘭)을 그린 것이다. 화면오른쪽 상단에 주문방인 寶覃齋와 백문방인經經緯史가 찍혀 있다. 마치 지면(地面)을 대신하듯 화면 하단에 제발을 적어 넣었고 그 마지막에 주문방인 찍었다.


4<춘농로중도(春濃露重圖)> : 화면의 왼쪽 아래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포물선을 그리듯 뻗은 혜란(蕙蘭)을 그린 것이다. 제발은 화면 왼쪽 윗부분에 생긴 여백에 적고 주문방인 秋史를 찍었는데 이례적으로 제발을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적은 것이 특징이다. 이는 정섭이 즐겨 쓰던 방식을 따른 것이다.


5<부동고형도(浮動古馨圖)> : 화면 우반부에 한 포기 난초를 배치하였다.

난을 그리고 남은 화면 우측의 협소한 공간에 칠언절구의 제시를 한줄로 적어 화면에 조형적인 묘미를 더했다. “居士라 관서하고 백문방인 墨緣을 찍었다.


6<설봉천녀도(雪峰天女圖)> : 춘란 한 포기를 화면 오른쪽에 치우쳐 배치하고 화면 윗부분과 오른쪽 여백을 사용하여 자 형태로 청나라 화가 판교(板橋)정섭(鄭燮, 1693-1765)의 시를 적어 넣고 백문방인 金正喜印을 찍었다. 같은 내용의 시가 하권 제2면의 <작래천녀도>에도 적혀 있다.


7<홍심소심도(紅心素心圖)> : 화면 좌반부에 춘란 한포기를 치우쳐 배치하고 제시를 화면 하단에 마치 지면을 형성하듯 썼다. 백문방인은 秋史詩畫이다.

시는 정섭의 시인데 같은 내용의 시가 하권 제3면의 <산중멱심도>에도 반복해서 사용하였다.


8<수식득격도(瘦式得格圖)> : 난 잎을 가는 선으로 치는 수식 난법으로 그린 것이다. 난잎은 가늘지만 힘이 있으며 자연스럽게 우측으로 휘어져 있다. 제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써내려가고 居士라는 관서 옆에 주문방인 那伽山人찍었다.


9<산상개화도(山上開花圖)> : 긴 잎과 짧은 잎이 조화를 이룬 한 포기의 난을 화면 오른편에 그리고 왼편 여백에 정섭의 시 두 수를 적어 전체적으로 대각선 구도를 이루었다. 주문방인 秋史를 찍었다.


10<인천안목도(人天眼目圖)> : 화면 왼쪽 아래 구석에서 장엽(長葉) 두 가닥이 화면을 가로지르며 대각선으로 뻗어나간 모습니다. 한 대에서 5송이가 자라고 있는 꽃은 매우 힘있는 필선의 구사를 보여준다. 화면 상단에 한 줄로 쓴 제시 天眼目吉祥如意의 예서체는 골기있는 혜란의 풍모와 잘 어울리는 선택이다. 백문방인 秋史墨緣을 찍었다.


11<세외선향도(世外僊香圖)> : 지초와 난초가 함께 어우러진 모습이다. “라는 관서 아래 백문방인 偶然欲書를 찍었다. 이 화첩에서 떨어져 나와 편화로 존재하던 <세외선향도>는 조희룡의 그림으로 알려졌던 것이나 최근에 이 <맹첩>의 일부였음이 고증되었다. 즉 그림의 크기가 상권의 그림들과 일치하는 점, 난맹첩을 모사한 이하응의 <묵란첩> 9면이 <세외선향도>와 동일한 점 등이 주요 증거가 된다.


12<염화취실도(斂華就實圖)> : 애초부터 화첩의 마지막 그림으로 계획된듯 김정희의 제사는 此爲終幅也로 시작되며 마지막은 居士寫贈茗薰로 끝난다.

한편 이 화첩이 증여될 대상을 명시하였는데 명훈(茗薰)’은 김정희의 전담 장황사(裝潢師)이던 유명훈(劉命勳)이다. 유명훈은 유재소의 아들로 판명되어 상권 1면에 찍힌 소장인이 유재소의 것인 이유가 설명된다. 주문방인 丙午二寉”,백문방인 悔堂이 찍혀 있다.


13-14면 제발문 : 청대 난초 그림에 능했던 서비옥(徐比玉)과 황경원(黃耕) 등의 여류화가에 대한 이력을 적은 것이다.


* 하권(下卷)

1면 제발문 : 청나라 화가 판교 정섭의 7언절구의 시 3()를 쓴 것이다.

2<작래천녀도(昨來天女圖)> : 화면 왼편 비스듬히 한포기 춘란을 그린 것이다. 상권 제6면에 쓴 것과 같은 정섭 시를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쓰고 백문방인 墨緣을 찍었다. 대각선 방향 반대편 위치에 주문방인 秋史詩畫도 찍혀있다.

3<산중멱심도(山中覓尋圖)> : 유연하고 율동감 있는 이파리의 총란(叢蘭)그린 것이다. 제시는 상권 제7면에 쓴 정섭의 시와 동일한 내용이다. 주문방인 史詩畫와 백문방인 東國儒士를 화면 모서리 대칭되는 위치에 찍었다.

4<군자독전도(君子獨全圖)> : 화면 우측의 제시는 棘荊斬去君子獨全이라는 정섭의 시에 뒤이어 청나라 화가 고봉한(高鳳翰, 1683-1748)이 덧붙인 내용까지 인용해서 옮긴 것이다. 주문방인 秋史詩畫이 찍혀 있다.

5<국향군자도(國香君子圖)> : 난초 한포기를 화면 중앙에 수직으로 배치하고 이파리 두 가닥이 양 옆으로 갈라지면서 대각선 구도를 형성하였다. “此國香也君子也라는 제시는 화면 우측 하단에 꼭 맞게 적고 작은 주문방인 正喜를 찍었다.

또 하나의 길쭉한 주문방인 百鼎庵을 화면 왼쪽 끝 중앙에 찍었다. 그림과 글씨가 하나인 듯 조화를 이루며 제사의 내용대로 완전한 군자의 경지를 표출하였다.

6<지란합덕도(芝蘭合德圖)> : 혜란 한 포기를 그린 것인데 농담을 달리하여 바닥에 찍은 크고 작은 묵점이 활달하고 참신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주문방인 禮堂寫定을 찍었다.

7<이기고의도(以奇高意圖)> : 난초 두 포기를 화면 가득 비스듬히 배치하였다. 백문방인 東國儒士正喜”, 백문방인 偶然欲書가 찍혀 있다.

8- 9면 발문 : 김정희 자신의 난법의 연원과 요체를 밝힌 내용의 글이다.

9면 마지막 부분에 백문방인 金正喜印과 주문방인 覃齋”, “禮堂寫定이 찍혀 있다.


<난맹첩>의 그림들은 김정희의 묵란화의 연원과 개성이 잘 드러나 있다. 정섭의 시를 옮겨 제화시로 삼았으며 정섭이 하던대로 제시를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써나가기도 하였다. 시의 내용과 어울리도록 사란(寫蘭)의 다양한 필묵법을 두루 활용하였으며 그림과 글씨가 화면 안에서 일체를 이루는 경지를 창출하였다. 난초의 포치와 전체적인 구도, 제시를 쓴 위치와 서체, 써내려간 방향, 인장의 크기와 위치 등은 고도로 계산된 김정희만의 세련된 조형 감각의 결과라 생각된다. 이처럼 간결하면서도 품위있는 묵란화의 세계를 보여준 <난맹첩>은 김정희 묵란화의 정

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예술적 가치가 높다.

작품의 제작시기에 대해서는 <난맹첩>의 서풍, 김정희의 묵란화 창작 이력과 주변 정황, 관련 문헌자료 등을 종합해 볼 때 1830년대에서 40년대 초로 추정된다.


문헌자료

백인산, 추사 김정희의 난맹첩 연구, 東岳美術史學 3, 東岳美術史學會, 202, p.163-183.

박철상, 추사 김정희의 장황사 유명훈, 秋史 김정희-學藝 일치의 경지, 국립중앙박물관, 206, p. 358-372.


내용 및 특징

글씨는 상권과 하권에 모두 있다.


상권은 14면으로 제1-4엽과 제25-284면의 8엽에 제발문이 있고, 나머지 10에는 난초 그림에 제화한 것으로 시화의 경지를 나타내었다.


1면은 2엽에 청나라 문학가이고 서화가인 오숭량(吳嵩梁, 176-1834, 호는 ) 처첩과 딸이 난초 그림에 뛰어났다는 내용을 추사체의 행서로 썼다. 2면은 2엽에 서화의 감별에 정통하였던 도갱(陶赓, 생졸미상 자는 筠椒)이 운용한 감필(減筆)의 사란법(寫蘭法)을 인용하여 인수(引首)로 삼았다는 내용을 추사체의 행서로 썼다.


3면은 제5엽 아래 7행에 행마다 1-3자씩 18자를 행서로 썼고, 6엽 아래에 연결하여 1자를 행서로 썼다. 4면은 제7엽 위에 1자를 행서로 썼고, 8엽 위에 이어서 6행에 행마다 1-5자씩 16자를 행서로 썼다. 5면은 제9엽 아래 6행에 행마다 2-4자씩 19자를 행서로 썼고, 봉합선에 2자를 행서로 썼으며, 10엽 아래에 이어서 4행에 행마다 2-3자씩 9자를 행서로 썼다. 6면은 제12엽 위 5행에 행마2-4자씩 13자를 행서로 썼다. 7면은 제14엽 위에 世外僊香이란 4글자를 22자씩 예서로 쓰고, 왼쪽 아래에 居士라는 두 글자를 해서로 썼다. 8면은 제15엽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1행을 길게 자간을 두지 않고 행기를 담은 예서로 서사한 다음 왼쪽 아래에 居士라는 두 글자를 해서로 썼다.


9면은 제17엽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1행을 행서로 길게 서사한 뒤 이어서 위5행에 1-2자씩 7자를 행서로 썼고, 18엽에는 위 5행에 1-2자씩 9자를 행서로 서사한 다음 왼쪽 아래에 居士라는 두 글자를 해서로 썼다. 10면은 제19엽 위 6에 행마다 2-5자씩 16자를 예서로 썼고, 20엽 위에 이어서 2행에 1-2자씩 3자를 예서로 쓴 다음 3행에 행마다 2자씩 글씨 크기를 점차 크게 행서로 서사하였다.

1면은 제21엽 왼쪽 끝의 위에 3, 2엽 위에 7행을 각각 행서로 서사하였다.


12면은 제23-24엽 위에 1행을 세로로 향해 예서로 서사한 다음 왼쪽 아래에 라는 두 글자를 각각 해서와 예서 필의로 썼다. 13-14면은 청나라에서 난초로 유명하였던 서아(徐珴, 생졸미상, 자는 比玉)황지숙(黃之淑, 생졸미상, 자는 ) 등 몇 명의 여류화가들을 소개한 내용을 행서로 썼다.


하권은 9면으로 제1-2엽과 제15-18엽에 6엽의 제발문이 있고, 나머지 7면에는 난초 그림의 화제(畵題)를 써서 시화의 경지를 나타내었다.

1면은 2엽에 청나라 화가 정섭(鄭燮, 1693-176, 호는 板橋)의 칠언절구 3수를 행서로 썼다. 2면은 2엽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향해 위 15행에 행마다 1-6씩 정섭의 시를 행서로 썼다. 3면은 제6엽에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7행에 행마다 2-9자씩 상권 제5면의 내용과 같은 정섭의 시를 행서로 썼다. 4면은 제8엽 왼쪽 아래에 세로로 1행에 以寄高意라는 4글자를 예서로 썼다. 5면은 제9아래에 가로로 1행에 此國香也君子也라는 7자를 예서로 썼다. 6면은 제1엽 위 8행에 행마다 2-4자씩 행서로 썼다. 7면은 제13엽 오른쪽 위에서 아래까지 세로로 길게 1행을 행서로 쓰고 2행과 3행은 아래에 각각 6자와 2자를 행서로 썼다.

8-9면은 4엽의 14행에 김정희 자신의 난법(蘭法) 연원과 사란비체(寫蘭秘諦)행서로 서사하였다.


현 상

부분적으로 이물질 제거했으며, 변색 및 얼룩이 산견되지만,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는 양호하다. 상권의 나무재질 표장에 蘭盟小長蘆閣題라는 제첨을 종이에 예서체로 써서 붙였고, 하권은 나무표장에 蘭盟二寉라는 제첨을 음각으로 새겼다. 2의 화첩에 모두 231방의 김정희 인장이 찍혔고, 상권 서문에 추사파 서화가 在韶(1829~191)의 볋인과 성명인이 찍혀있다.


내용 및 특징

상권의 제 1면과 2, 12면과 13면에 서문과 발문이 수록되었고, 3면에서 1면에 걸쳐 묵란도가 실려있다. 하권은 제 1면에 판교 정섭의 3절구를 적었고, 8면과 9면에 발문을, 2면에서 7면까지 묵란도를 실었다. 모두 15폭의 묵란들은 제화시와 함께 시서화 삼절의 빼어난 경지로 다루어졌다. 혜란과 춘란 등의 다양한 묵란화의 역대 양식을 종합하고 김정희 특유의 추사체 필묵법과 절묘한 구성력을 십분 발휘하여 독창성을 이룩하고 후대의 범본이 되었다. 상권의 묵란도 종폭에 해당하는 제 1면에 적은 居士寫贈茗薰이란 관제에 의거해 기녀로 보이는 명훈이란 인물로 추정되다가, 김정희의 전문 장황사인 유명훈에게 그려 준 것으로 규명된 바

있다. 그리고 화첩 상권의 제첨자인 小長蘆閣을 지금까지 국내인이나 일본인으로 추측했는데, 그는 청말의 실업가이며 서예가였던 嚴信厚이다.


현 상

이 화첩은 두 첩으로 간행한 影印本秋史精華를 통해 전체 규모가 알려졌다. 부분적으로 이물질 제거했으며, 변색 및 위로부터 물방울이 스며들어 얼룩이 산견되지만,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는 매우 양호하다. 상권의 나무 재질 표장에 종이에 예서체로 蘭盟小長蘆閣題題簽을 부착했다. 하권 나무표장에 제첨을 직접 음각으로 새긴蘭盟二寉이 보인다. 2권의 화첩에 모두 231방의 김정희 인장이, 상권 서문에 추사파 서화가 劉在韶(1829-191)甁印과 이름 도장이 있다.


내용 및 특징

이 화첩은 일찍 影印本이 나와 전체 구성이 알려진 화첩이며 지금까지 알려진 추사의 墨蘭帖 중 단연 壓卷이라 하겠다. 상권의 1면과 2, 12면과 13면에 서문과 발문이 수록되었고, 3면에서 1면에 걸쳐 묵란도가 실려 있다. 하권은 제 1면에 판교鄭燮3절구를 적었고, 8면과 9면에 跋文, 2면에서 7면까지 묵난을 실었다.

모두 15폭의 묵난들은 제화시와 함께 시서화 三絶의 빼어난 경지로 다루어졌다.

蕙蘭春蘭 등의 다양한 묵란화의 역대 양식을 종합하고 김정희 특유의 추사체 필묵법과 절묘한 구성력을 분 발휘하여 독창성을 이룩하고 후대의 범본이 되었다.

상권의 묵란도 종폭에 해당하는 제1면에 적은 居士寫贈茗薰이란 관제에 의거해 기녀 명훈으로 추정하다가, 김정희의 전문 장황사인 유명훈에게 그려 준 것으로 규명된 바 있다. 그리고 화첩 상권의 제첨자인 小長蘆閣는 한 때 한국 또는 일본인으로 추청되기도 했으나 淸末 실업가이며 서예가였던 嚴信厚으로 확인되었다.


참고문헌

최완수 역,추사집(현암사, 2014)

최완수,추사명품(현암사, 2017)


현 상


- 오동나무로 만든 보관상자가 있고, 그 안에 두 권의 첩() 형태로 보관되어 있다.

오동상자 뚜껑에는 갈색 얼룩 바탕에 은색 꽃무늬가 찍힌 종이 덮개가 덮여 있. 종이덮개의 측면에는 阮堂 畵贈 劉衡堂墨蘭帖 蘭盟 附衡堂O居帖이라는 묵서가 적힌 흰 종이가 붙어 있는데 그다지 오래된 것은 아니다.

- 첩은 호접장(蝴蝶裝) 형태이다. 나무판으로 앞뒤 표지를 장식하였다. 상권 앞면에는 종이 제첨이 붙어 있는데 蘭盟 小長蘆閣題라는 예서 묵서가 적혀 있고, 하권 앞면에는 음각으로 蘭盟 二寉라고 새겨져 있다.


- 구성 순서는 다음과 같다.(최완수, 추사명품(현암사, 2017)을 따름)


상권

앞 표지(나무)

1: 묵서-陶賡寫蘭法

2: 묵서-吳嵩梁 일가의 그림 솜씨

3: 묵란 <積雪滿山>

4: 묵란 <春濃露重>

5: 묵란 <浮動古響>

7: 묵란 <紅心素心>

8: 묵란 <瘦式得格>

9: 묵란 <山上蘭花>

10: 묵란 <人天眼目>

1: 묵란 <世外僊香>

12: 묵란 <斂華就實>

13: 묵서-女流蘭畵家 1

14: 묵서-女流蘭畵家 2

뒷표지(나무)


하권

앞 표지(나무)

1: 묵서-板橋詩三法絶句

2: 묵란 <昨來天女>

3: 묵란 <山中覓尋>

4: 묵란 <君子獨全>

5: 묵란 <國香君子>

6: 묵란 <芝蘭合德>

7: 묵란 <以寄高意>

8-9: 묵서-寫蘭秘諦


뒷표지(나무)

- 묵서는 모두 연한 갈색의 종이에 적혀 있고, 그림은 흰 종이에 그려졌다. 상태는 양호하다. 이 중 <세외선향>은 편화로 따로 떨어져 있는데, 크기와 접힌 부분의 얼룩으로 미루어 볼 때 난맹첩 상권의 1면으로 추정되고 있다.(백인산 논문 및 최완수, 도판해설 간송문화: , , , (간송미술문화재단, 2015) 83)

* 소장처 소장 기록을 통해 <세외선향>의 전래 과정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내용 및 특징

- 김정희(金正喜, 1786-1856)는 조선 말기의 문신이자 화가, 서예가이다. 본관은 경주이며 자는 원춘(元春)이고 호는 추사(秋史), 완당(阮堂) 등이다. 1809년 자제군관 자격으로 중국 사행단에 동참했는데 북경에서 옹방강(翁方綱), 완원(阮元) 등 대학자들을 만나 고증학을 접했다. 문과 급제 후 병조참판, 형조참판 등을 지냈으나 제주도와 북청에서 오랜 유배 생활을 하였다. 박학했던 그의 학술세계와 더불어 독특한 서체의 서예와 문인화로 이름이 높았다.


- <난맹첩>은 현전하는 김정희의 유일한 묵란화첩이다. , 하 두 권에 각각 10(<세외선향> 포함), 6폭의 난 그림이 포함되어 있다. 김정희가 오랫동안 난 그리는 법을 배우고 익힌 후에 터득한 난 그림의 연원과 요체가 다양하고 세세하게 나타나고 있어 김정희 난 그림의 기준작이자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난 그림의 유래와 여성으로 난을 잘 그렸던 화가들을 소개하는 글 다섯 편을 써서 함께 수록했다. 더군다나 16폭의 그림에는 15종류 26과의 다양한 인장이 찍혀있다.

<난맹첩>이라는 제목은 난은 이렇게 그려야 한다는 맹서의 의미와 함께 뜻을 같이 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고 추정된다.


- <난맹첩>에 포함된 난 그림은 김정희 특유의 강인한 필치로 그렸으며 자신이 강조한 삼전법(三轉法)을 구사하여 난엽 형태에 다양한 변화를 주었다. 서예적 필법이 잘 드러나고 있어 서화일치의 경지를 보여준다고 평가된다.


- 상권 마지막 그림에 해당하는 제12면에 寫贈茗薰즉 명훈에게 그려준다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 명훈은 김정희의 제자이자 전속 장황사였던 유명훈(劉命勳)()이다. 유명훈은 김정희를 따르던 여항시인 박윤묵(朴允黙, 171-1849)의 둘째 사위이며, 그의 아들 유재소(劉在昭, 1829-191) 역시 김정희 말년의 제자이다.


난맹첩 상권1면에 유재소의 인장이 찍혀 있다. 따라서 <난맹첩>은 김정희가 유명훈에게 그려준 후 다시 유재소에게 전해졌던 것으로 판단된다.


- 상권 13-14면의 여류난화가 내용은 청대 문인 진문술(陳文述)이 펴낸 畵林新詠에서 발췌한 내용인데 이 책은 1832년 신위(申緯)에게 전해지면서 조선에 소개되었다. 따라서 <난맹첩>의 제작연대 상한을 1832년으로 설정할 수 있다.


-<난맹첩>의 정확한 제작년대는 알 수 없다. 여기에 찍힌 인장, 서체 등을 근거로1830년대 중반(김현권), 1835(최완수), 183-36(백인산), 1837-40(박철상) 으로 추정한다. 따라서 1830년대 후반, 즉 김정희 50대 초반의 작품으로 여겨진다.


-<난맹첩>에는 김정희 난 그림의 특징을 이루는 서예성을 강조한 운필법, 묵란과 제사 및 인장의 조화, 여백의 중시, 공간의 안배, 가는 난엽의 선호 등이 잘 나타난다. 이로 인하여 김정희를 따르던 조희룡(趙熙龍, 1789-186), 이하응(李昰應,1820-1898), 민영익(閔泳翊, 1860-1914) 등의 난 그림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참고문헌

백인산, 秋史 金正喜蘭盟帖硏究 , 동악미술사학3(202)

김현권, 추사 김정희의 묵란화, 미술사학 19(205)

최완수, 도판해설, 간송문화 69 (205)

박철상, 추사 김정희의 장황사 유명훈 , 추사 김정희, 학예의 일치 (국립중앙박물관, 206)

최완수, 도판해설, 간송문화: , , , (간송미술문화재단, 2015)

최완수, 추사명품 (현암사,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