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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예 방/추사 김정희

백이연전전려묵존 - 우봉 조희룡

by 연송 김환수 2020. 4. 8.


백이연전전려묵존 (百二硏田田廬墨存)


우봉 조희룡(趙熙龍, 1789-1866)

서화첩(書畵帖) / 종이에 먹 / 19.029.02.0(cm) / 예산군 추사고택 소장


백이연전전려묵존(百二硏田田廬墨存)은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제자 우봉 조희룡(趙熙龍, 1789-1866) 서화첩이다.

 

내지 첫 면과 끝 면에 각 각 한 폭의 난초 그림이 있고, 그 사이에 명나라 학자 진계유(陳繼儒)독서십육관(讀書十六觀)이 쓰여있다.

 

표제 제목에 百二硏田田廬墨存(백이연전전려묵존), 그림 관지에 梅人(매인), 寶硏齋(보연재)이라 돼 있는데 백이연전’, ‘매인’, ‘보연재는 모두 조희룡의 호이다.

 

분량은 1428면이다.

讀書十六觀 (독서십육관)나는 보지 못한 책을 만나면 좋은 친구를 만나듯 반갑고, 앞서 읽은 책을 보면 옛 친구를 만나듯 기쁘다(吾讀未見書如得良友見已讀書如逢故人)는 명언을 남긴 저자가 독서의 목적, 태도, 방법 등을 관련된 행적과 연계시켜 16조항으로 나눠 제시한 일종의 독서지침서이다. / 출처 : 예산군청


吾讀未見書, 如得良友 / 내가 아직 읽어보지 않은 책을 읽으면. 좋은 벗을 얻은 것 같고,

오독미견서, 여득량우

見已讀書, 如逢故人.  / 이미 읽은 책을 다시 읽으면, 옛 친구를 만난 것만 같다.

견이독서, 여봉고인


春風眞味君子文情 (춘풍진미군자문정) - 梅人作(매인 작)

춘풍같은 진정한 가치는 군자의 문장이 품위를 갖추는 것이다.


昨日天女下雲峰, 帶得花枝灑碧空, 世上凡根與凡葉, 豈能安頓在基中 - 寶硏齋 並題

작일천봉, 대득화지공, 상범근여범엽, 기능안돈재기중  - 보연재  병제


[해설]

어제 낮 선녀가 운봉에 내려, 띠두르고 꽃가지 하늘에 뿌리니, 세상의 범상한 뿌리와 잎들이 어찌 그 중에 곱게 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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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룡 (趙熙龍) / 1797(정조 21)~1859(철종 10) /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

 

본관은 평양(平壤). 자는 치운(致雲), 호는 우봉(又峰석감(石敢())·철적(鐵笛호산(壺山단로(丹老매수(). 중인출신으로 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

※ 오위장(五衛將) 조선 시대,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에 딸려 오위의 군사를 거느리던 장수.

    12명으로, 품계는 초기에는 종이품(從二品)이었다가, 임진왜란 이후에 정삼품(正三品)이

    되었다.

1846(헌종 12) 헌종의 명으로 금강산을 탐승하고 시를 지어 바쳤으며, 1848년에는 궁궐편액의 글씨를 쓰라는 명을 받았다. 1851(철종 2) 김정희(金正喜) 일당으로 지목되어 추자도로 유배되었다.

 

20대에는 이학전(李鶴田이재관(李在寬) 등과 교유했으며, 1847년에는 유최진(柳最鎭전기(田琦) 등과 벽오사(碧梧社)를 결성하고 김정희파의 여항문인 서화가들과 시··화를 통해 교유했다.

 

김정희의 문하에서 학문과 서화를 배우고 19세기 중엽 화단에서 중추적 구실을 했다. 고서화와 함께 골동품을 좋아했고 중국과 우리나라 회화사에 관심이 많았으며, 청나라 화적을 직접 소장하고 비평을 하는 등 그림에 대한 인식의 폭이 넓었다.

 

화론에서는 수예(手藝)를 강조하고 재능을 중시하여 서화가에게는 학식뿐만 아니라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손의 재주, 즉 기량이 있어야 된다고 주장했다.

 

산수와 함께 사군자를 특히 잘 그렸으며, 김정희가 강조했던 간일한 남종문인화풍에 토대를 두되 다양한 구도와 담채의 대범한 구사, 필치의 자유로운 운영,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는 실험의식, 거리낌없는 표현력을 통해 자신의 독자적인 화풍을 이룩했다.

 

글씨는 추사체를 따랐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매화서옥도 梅花書屋圖(간송미술관) 등이 있다. 저서로는 중인전기집인 호산외사 壺山外史, 귀양시의 기록인 해외난묵 海外蘭墨, 회고록인 석우망년록 石友忘年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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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書十六觀 독서십육관》  

 

명대의 문학가이자 서화가, 장서가인 진계유가 독서에 대한 옛사람들의 말을 모아 편찬한 책입니다. 북송의 문인 소철의 이 말은 여러 번 거듭해 책을 읽으면 뜻은 저절로 알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던 동우의 말 뒤에 실려 있습니다.

 

소철은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아버지 소순, 형인 소식과 더불어 ‘삼소(三蘇)’라 일컫는 북송의 산문가입니다. 아버지와 형의 명성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그 또한 시, 서, 산문 등 다방면에 정통했고, 특히 정치적 견해나 역사적 관점을 밝히는 정론이나 사론에 뛰어났습니다.

 

소철은 불과 열여덟의 나이로 진사에 급제해 일찍이 비서성의 교서랑으로 관계(官界)에 나섰으며 어사중승, 상서우승, 문하시랑 등 요직을 두루 거쳤습니다. 이후 당쟁으로 좌절을 겪으면서 그 관직이 겨우 태중대부에 그쳤지만, 사후에 태사, 제후로 추증되었고 ‘문정(文定)’이라는 시호를 받기도 했습니다.

 

형인 소식은 그의 산문을 두고 “도도한 물결처럼 흘러넘치면서도 흐린 기운 없이 맑고도 깨끗하니 작품을 발표하면 여러 사람이 따라 배울 정도로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그의 남다르게 빼어난 기질은 아무도 범접할 수 없었으며 무상하게 변화하는 유행 속에서도 여전한 면모를 유지했다”라고 극찬한 바 있습니다.

 

소철의 문장은 소식에 비해 좀 더 질박하고 꾸밈이 없는 특징을 보입니다. 공부법에서도 소식이 다방면에 두루 능통한 특징을 보인다면, 소철은 특정 주제에 집중하며 외골수의 기질을 보입니다. 그는 공부의 원천인 ‘책’을 병을 낫게 하는 ‘약’에 비유했습니다. 약효가 센 약을 많이 쓰면 병이 빨리 낫는 것과 같이, 좋은 책을 많이 읽으면 애를 쓰지 않아도 절로 얻는 것이 있다고 여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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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書十六觀》讀書以觀聖賢之意「因聖賢之意,以觀自然之理」

 

【原文】

學問,就自家身上切要處理會方是,那讀書底已是第二義。自家身上道理都具,不曾外面添得來。然圣人教人,須要讀這書時,蓋為自家雖有這道理,須是經歷過,方得。圣人說底,是他曾經歷過來。

 

【譯文】

學問,必須從自己人生最切要的方面來加以理解,那讀書已是第二位的事情了。自己身上,人生的道理都已具備了,不需要外面添加進什麼。但是圣人教導人們,需要讀這個書時,大都因為雖然自身具備了人生的道理,然必須要親身經歷體悟過,才能懂得。圣人說的,都是他曾經歷過的,體悟而得的體會。

 

【原文】

學問,無賢愚,無大小,無貴賤,自是人合理會底事。且如圣賢不生,無許多書冊,無許多發明,不成不去理會!也只當理會。今有圣賢言語,有許多文字,卻不去做。師友只是發明得。人若不自向前,師友如何著得力!

 

【譯文】

學問,不論賢愚、大小、無貴賤,都應是人本來就該懂得的事。如果沒有圣賢之人,沒有許多圣賢之書,沒有許多圣賢所闡發的明確的道理,難道就不去理會,弄明白它了嗎?也仍然要去理會的。如今有圣賢說的語言,有許多文字,人們卻不去學習。師友們只能是把道理闡發明確。個人如果不自己發憤向前,師友們無論如何是沒有辦法的。

 

【原文】

讀書以觀圣賢之意,因圣賢之意,以觀自然之理。

 

【譯文】

通過讀書來認識、體悟圣賢的思想,憑藉圣賢的思想,去認識、體悟自然的道理。

 

【原文】

開卷便有與圣賢子相似處,豈可不自鞭策!

 

【譯文】

打開圣賢之書,就發現自己與圣人的要求尚有一定差距,難道還不勤奮自勉、努力進取嗎?

 

【原文】

讀書,放寬著心,道理自會出來。若懮愁迫切,道理終無緣得出來。

讀書,須是知貫通處,東邊西邊,都觸著這關捩子,方得。只認下著頭去做,莫要思前算後,自有至處。而今說已前不曾做得,只怕遲晚,又怕做不及,又怕那個難,又怕性格遲鈍,又怕記不起,都是閑說。只認下著頭去做,莫問遲速,少間自有至處,既是已前不曾做得,今便用下工夫去補填。莫要瞻前顧後,思量東西,少間擔閣一生,不知年歲之老!

 

【譯文】

讀書時,應放寬心,道理自然會理解、懂得。如果心情非常懮愁,急迫,終無法悟出書中的道理。

讀書應了解書中的貫通處,不論東邊西邊,都能接觸到這個扭轉點才行。只低下頭努力去做,不要思前想後,自有到達之處。如今說以前沒有做過,又怕遲晚,又怕做不到,又怕那個太難,又怕自己笨做不出來,又怕記憶不起,這些都是閑說。只管低下頭努力去做,不要關心快慢,很快就會有收獲。即使是以前不曾做過的,現在更應下工夫將它完成。不要瞻前顧後,思量東西,耽誤自己的一生,不知不覺中年歲已老。

 

【原文】

學者讀書,多緣心不在,故不見道理。圣賢言語本自分曉,只略略加意,自見得。若是專心,豈有不見!

 

【譯文】

學習者讀書,大多是因為心不在焉,所以不能徹底明白書中的道理。圣賢的言語本來就明白曉暢,只要稍微用功,加以留心,自然會明了其中的道理。如果是專心致志地去讀書,怎麼會有不明白的呢!

 

【原文】

董遇挾經書投閑習誦,人從學者,不肯教之。云:「先讀百遍,而義自見。」欒城云:「看書如服藥,藥多力自行。」讀書者當作此觀。

 

【譯文】

三國時的董遇平常總是帶著經書,一有空閑就認真習誦閱讀。別人來向他求教,他往往并不直接講解,而是說:「讀上一百遍,自然就明白了其中意旨。」蘇轍也說過:「看書就像服藥,服的多了,自然就會發生效驗。」讀書人應當從這些話中得到一些啟迪。

 

【原文】

顏之推云:「吾每讀圣賢之書,未嘗不肅衣對之。其故紙有五經辭義及賢達姓名,不敢穢用也。」溫公謂其子曰:「賈豎藏貨貝,儒家惟此計,然當知寶惜。今釋子老氏猶知尊敬其書,豈以吾儒反不如乎?」趙子昂書跋云:「聚書藏書良匪易事,善觀書者澄端虛,凈幾焚香,勿卷腦,勿折角,勿以爪侵字,勿以唾揭幅,勿以作枕,勿以夾刺,隨損隨修,隨開隨掩,後之得吾書者,并奉贈此法。」讀書者當作此觀。

 

【譯文】

北齊顏之推說:「我每次讀圣賢的書籍,從來都肅然起敬,衣冠整潔地閱讀。廢紙上寫有五經辭義和賢達姓名的,也不敢拿來接觸污穢的東西。」司馬光對兒子說:「商人一心收藏金銀財寶,讀書人就只想著讀書,要知道愛惜書籍。佛道兩教的信徒尚且知道敬奉他們的經書,我們儒家難道還不如他們嗎?」趙子昂在其書後寫下這樣的話:「收集書珍藏書,實在不是一件容易事,善於讀書的人,要意念專一,不生雜想,揩凈案幾,焚燒好香。看書時不能翻卷書脊,不能折起書頁的角,不能用指頭指點文字,不能手沾唾液翻揭書頁,不能用書籍當枕頭,不能在書中夾帶名片,書籍破損要隨時修補,不看書時要隨手將書合上。以後誰得到我的這部書,請按上述方法實行。」讀書人應當像他們一樣養成愛惜書籍的好習慣。

 

【原文】

顏之推曰:「校定書籍亦不容易,觀天下書未遍,不得妄下雌黃。或彼以為非,此以為是,或本同末異,或兩文皆欠,不可偏信一隅也。」徐鍇處集賢,朱黃不去手,非暮不出。嘗詣其家曰:「吾直寄此耳!」少精小學,故所讎書尤審諦。朱晦庵答楊元范書曰;「字書音韻,是經中一事,先儒多不留意。然不知此處不理會,卻枉費了無限亂說,牽補而卒不得其意,甚害事也。但恨早衰,無精力整頓耳。」讀書者觀此。

 

【譯文】

顏之推說:「校定書籍也不是一件容易事,沒有把天下所有的書看遍,就不能對他人書籍文章胡亂涂改。或者那本書認為是錯的,而這本書卻認為是對的;或者是大同小異,或者是兩部書都錯了,不能偏信某一部書。」南唐徐鍇在任秘書省正字一職時,用於校書的朱砂和雌黃從不離手,不工作到天黑不回家。曾經有一次回到家中說:「我不過是寄宿在這里罷了!」由於他早年就很精通字詞訓詁之學,所以他所校勘訂正的書籍特別精審謹嚴。朱熹給楊元范回信說:「字書音韻,是研究經典中的一個重要方面,前人大多數都不太留意,豈不知在這個問題上不注意,就很容易主觀臆斷,牽強附會而抓不住真正的意思,害處很大。可惜我自己年邁力衰,沒有功夫從事這方面的研究了。」讀書的人應當對書籍的音義校正給予足夠的重視。

 

【原文】

常人教小童,亦可取益:絆己不出入,一益也;授人數次,己亦了此文義,二益也;對之必正衣冠,尊瞻視,三益也;嘗以因己而壞人之才為之懮,則不敢惰,四益也。(張子《經學理窟》)

 

【譯文】

普通人教育小孩,也會有所收獲:約束自己不三心二意、隨心所欲,這是第一個好處;教了別人幾次,自己也了解了文章的大意,這是第二個好處;面對學生自己一定要衣冠端正,講究儀表,這是第三個好處;常常感到自己水平低下而誤人子弟,并且為此擔懮,因此努力不懈,不敢掉以輕心,這是第四樣好處。

 

【原文】

先生嘗曰:「敬敷五教在寬,君子以教思無窮,容保民無疆,則是為教者當以寬容存心也。今日學中大體雖要嚴密,然就中節目寬緩,大概人品不一,有夙成者,有晚成者,有可成其大者,有可成其小者,且一事有所長,必一事有所短,千萬不同,遽難以強之也。《學記》自『一年離經辨志』至『九年知類通達,強立而不反』,其始終節次,幾多積累,必不可以茍且致之,故教人不止,各因其材。又當隨其學之所至而漸進也。蓋教人與用人正相反,用人當用其所長,教人當教其所短。」(《許魯齋集·附錄》)

 

【譯文】

先生曾經講過:「恭恭敬敬地布陳五教在於寬容,君子通過施行政教就考慮到了政教沒有窮盡,寬容能夠保證民眾幸福無疆,這就是教育人的人應當把寬容牢記在心的原因。今天的學者中的大多數對學生的要求雖然嚴格,然而其中具體的項目還是寬大舒緩的,大概因為人的資質高低不一,有早成才的,有晚成才的,有可以成就大業的,也有只能做小事的。況且擅長於某一方面,必定不善於另一方面,形形色色的人都不相同,很難勉強把他們整齊劃一。《學記》中的『過了一年看學生對經文的讀斷并進而考察他的志向、品行』到『過了九年明曉了某一類事物的道理并且能觸類旁通,獨立思考,能堅持一己之見,不隨便動搖』,其開始結束的次序,經歷了無數次的積累,是一定不能馬馬虎虎、隨隨便便得來的,因此教誨別人不要半途而廢,既要根據他們各人的資質高下因材施教,又要按照他們學習的范圍程度而循序漸進。也許教育人和使用人正好相反,用人應當用人的長處,教育人應當幫助別人認識到、并且彌補自身的短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