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작품 해설
조선 전기의 화가 안견(安堅)이 그린 산수화.
비단 바탕에 먹과 채색. / 제작년도 1447년(세종 29). / 크기 : 38.7×106.5cm
몽유도원도 본인 소장품 (영인본) :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수 있습니다.
이녀석 자기도 찍어 달라고 하네요 ㅎㅎ
이러한 영인본은 박물관에 가야 볼수 있는 아주 귀한 그림입니다.
몽유도원도는 일본 덴리(天理)대학 중앙도서관에 소장(일본 국보)되어 있으며, 1447년 4월 20일 안견의 독실한 후원자였던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이 꿈속에 도원 (桃源)을 방문하고, 그 내용을 안견에게 설명하여 그리게 한 것으로 도잠(陶潛,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안평대군이 쓴 발문(跋文)에 의하면, 안견이 이 걸작을 단 3일 만에 완성하였다고 하여 거장으로서의 면모를 짐작하게 한다.
<몽유도원도 감상법>
그림의 특징은 줄거리가 동양화의 두루마리 그림의 경우 우측에서 좌측으로 전개되는 것이 통상적인 화법인데 몽유도원도는 정반대로 왼쪽 하단부에서 오른쪽 상단부 방향으로 전개된다.
왼편의 현실세계와 오른편 도원세계가 대조를 이루고, 몇 개의 경관이 따로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큰 조화를 이루고 있다. 왼편의 현실세계는 정면에서 보고 그렸으나, 오른편 도원세계는 부감법(俯瞰法)을 구사하였다.
몽유도원도 1447년, 안견 / 비단에 담채, 38.7×106.5cm, 일본 덴리대학 중앙도서관 소장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 안견(安堅) 조금 더 알아보기
발문(跋文)은 그림을 본 감상문으로 작품에 대하여 간략하게 적은 것인데 발문까지 붙인 두루마리는 두 권으로 각 1,120cm 와 857cm로 합하면 1,977cm에서 그림 106cm를 빼면 1,871cm이다. (그림 포함 19m 77㎝)
왼쪽부터 현실세계, 현실과 이상향의 경계, 이상향(도원)으로 1)현실세계, 2)도원의 바깥쪽 입구, 3)도원의 안쪽 입구, 4)도원, 4개의 경군들로 짜여져 있다.
안평대군의 발문을 보면, 안견은 이 그림을 3일 만에 완성하였다고 하며, 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에는 안견의 그림뿐 아니라 안평대군의 제서(題書)와 발문, 그리고 1450년(세종 32) 정월에 쓴 시 한 수를 비롯해 20여 명의 당대 문사(文士)들과 1명의 고승(高僧)이 쓴 제찬을 포함해서 모두 23편의 찬문(讚文)이 곁들여져 있다.
안평대군과 더불어 찬문을 남긴 인물은 신숙주(申叔舟), 이개(李塏), 하연(河演), 송처관(宋處寬), 김담(金淡), 고득종(高得宗), 강석덕(姜碩德), 정인지(鄭麟趾), 박연(朴堧), 김종서(金宗瑞), 이적(李迹), 최항(崔恒), 박팽년(朴彭年), 윤자운(尹子雲), 이예(李芮), 이현로(李賢老), 서거정(徐居正), 성삼문(成三問), 김수온(金守溫), 만우(卍雨), 최수(崔脩) 등으로 모두 안평대군과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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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잠(陶潛,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내용을 먼저 알아보고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작품의 내용을 보는 것이 좋겠다.
桃花源記 (도화원기) 무릉도원 / 陶淵明(도연명)
진(晋)나라 태원(太元) 때, 한 무릉(武陵) 사람이 고기잡이로 생계를 이어갔다.
하루는 시내를 따라 너무 멀리 들어가 길을 잃었다. 홀연히 복숭아 숲을 만났는데, 시내 가장자리 수 백 보가 모두 복숭아나무뿐이었다. 향기로운 풀 아름다운데, 복숭아 꽃잎 어지럽게 흩날려, 어부가 매우 이상하게 여겼다. 다시 앞으로 나가면서, 복숭아나무 숲 끝까지 가보려고 했다.
숲이 끝난 곳에 수원지(水源池)가 있고, 자그마한 산도 보였다. 산에 조그마한 굴이 있는데 밝은 빛이 있는 듯하였다. 배에서 내려 동굴 안쪽으로 들어갔다. 굴 입구가 매우 좁아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수 있었는데, 다시 수십 보 들어가니 넓고 확 트였다. 땅은 넓고 평평했으며, 집들도 잘 정돈되어 있었다. 기름진 땅과 아름다운 연못이 있고 뽕나무와 대나무 등이 있었다. 밭 사이 길은 사방으로 통하고 닭 울고 개 짖는 소리가 도처에서 들렸다. 이 곳에서 오가며 농사짓는 것과 남녀가 옷을 입는 것이 모두 바깥 세상과 같았다. 노인과 어린아이가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했다. 그들이 어부를 보고 몹시 놀라며 어디서 왔는가 물었다. 어부가 자세히 대답하자, 집으로 초청해 술상을 차리고 닭을 잡아먹기를 청했다. 마을에 이런 사람이 와 있다는 소문을 듣고, 마을 사람들이 모두 찾아와서 자세히 물었다. 그들 스스로 “선조들이 진나라 때 난을 피해 처자와 동향 사람을 거느리고, 세상과 단절된 이곳으로 왔다 다시 나가지 않았소. 그래서 바깥 세상 사람과 왕래가 끊겼소.”라고 하면서 물었다.
“지금이 어느 시대입니까?”
그들은 한나라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고, 위와 진나라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이에 어부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일일이 말해주자, 모두 놀라며 탄식했다. 다른 사람들도 그를 자청하여 술과 음식을 대접했다. 어부는 며칠동안 묵은 후 작별 인사를 했다. 마을 사람들이 그에게 부탁했다.
“바깥 사람들에게 이야기 할 것이 못됩니다.”
어부가 그 곳에서 나와 배를 타고 전에 왔던 길을 따라 돌아오면서 곳곳에 표시를 해놓았다. 마을에 돌아와 태수를 뵙고 이러한 사정을 이야기 했다.
이에 태수가 곧 사람을 보내, 그가 온 곳을 따라 표시한 곳을 찾았으나 끝내 길을 잃고 찾지 못했다.
남양에 유자기는 인품이 높은 선비였다. 이 이야기를 듣고 기뻐 그곳을 가보고자 했으나 끝내 찾지 못하고, 이로 인해 죽고 말았다. 그 후로는 이 나룻터를 찾거나 묻는 이가 없었다.
晋太元中 武陵人捕魚爲業 緣溪行 忘路之遠近 忽逢桃花林 夾岸數百步 中無雜樹 芳花鮮美 落英繽紛 漁人甚異之 復前行 欲窮其林 林盡水源 便得一山 山有小口 髣髴若有光 便舍船 從口入 初極狹 纔通人 復行數十步 豁然開朗 土地平曠 屋舍儼然 有良田美池桑竹之屬 阡陌交通 鷄犬相聞 其中往來種作 男女衣著 悉如外人 黃髮․垂髫 並怡然自樂 見漁人 乃大驚 問所從來 具答之 便要還家 設酒殺鷄作食 村中聞有此人 咸來問訊 自云 先世避秦時亂 率妻子邑人 來此絶境 不復出焉 遂與外人間隔 問今是何世 乃不知有漢 無論魏晋 此人一一爲具言所聞 皆歎惋 餘人各復延至其家 皆出酒食 停數日辭去 此中人語云 不足爲外人道也 旣出 得其船 便扶向路 處處誌之 及郡下 詣太守 說如此 太守卽遣人隨其往 尋向所誌 遂迷不復得路 南陽劉子驥 高尙士也 聞之欣然規往 未果尋病終 後遂無問津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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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원기(桃花源記) - 도연명(陶淵明)
晋太元中(진태원중) : 진나라 태원 중에
武陵人捕魚爲業(무릉인포어위업) : 무릉 사람이 고기 잡는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었는데
綠溪行(록계행) : 시내를 따라 가다가
忘路之遠近(망로지원근) : 길의 멀고 가까움을 모르게 되어 길을 잃어 버렸다
忽逢桃花林(홀봉도화림) : 홀연히 복숭아 숲을 만났는데
夾岸數百步(협안수백보) : 양쪽 언덕을 끼고 수백보를 걸어가도
中無雜樹(중무잡수) : 그 곳에는 다른 나무는 하나 없었고
芳草鮮美(방초선미) : 향기나는 풀들이 신선하고 아름다우며
落英繽紛(낙영빈분) : 떨어지는 꽃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漁人甚異之(어인심이지) : 어부가 심이 이상하게 여기고
復前行(부전행) : 다시 앞으로 가면서
欲窮其林(욕궁기림) : 그 숲을 끝까지 다 가보려 했다
林盡水源(림진수원) : 숲이 끝나는 곳에 수원(水源)이 있었고
便得一山(편득일산) : 그곳에 산이 하나 있었다.
山有小口(산유소구) : 산에는 작은 동굴이 있어
髣髴若有光(방불약유광) : 마치 빛을 발하고 있는 듯 하여
便捨船(편사선) : 곧 배에서 내려
從口入(종구입) : 동굴입구로 들어갔다
初極狹(초극협) : 들어갈 때는 구멍이 아주 좁아
纔通人(재통인) : 겨우 사람 하나가 들어갈 만하더니,
復行數十步(부행수십보) : 다시 수십 보를 나아가자
豁然開朗(활연개랑) : 시야가 훤하게 트였다.
土地平曠(토지평광) : 땅은 평평하고 넓으며,
屋舍儼然(옥사엄연) : 집들은 질서 정연하였다.
有良田․美池․桑․竹之屬(유량전․미지․상․죽지속) : 기름진 전답이며 아름다운 연못, 뽕나무와 대나무 등속이 있고,
阡陌交通(천맥교통) : 구획된 논밭이 사방으로 서로 통하고,
雞犬相聞(계견상문) : 개와 닭들이 우는 소리가 한가로이 들렸다.
其中往來種作(기중왕래종작) : 그 곳에서 사람들이 오고가며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男女衣著(남녀의저) : 남녀가 옷을 입고 있었는데
悉如外人(실여외인) : 모두가 이국풍이었다.
黃髮․垂髫(황발․수초) : 기름도 바르지 않고 장식도 없는 머리를 하고,
並怡然自樂(병이연자락) : 한결같이 기쁨과 즐거움에 넘치는 모습들이었다.
見漁人(견어인) : 어부를 보았더니
乃大驚(내대경) : 크게 놀라며
問所從來(문소종래) :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具答之(구답지) : 질문에 모두 답했더니
便要還家(편요환가) : 집으로 돌아가
設酒․殺雞․作食(설주․살계․작식) : 술을 내고 닭을 잡아 음식을 주었다.
村中聞有此人(촌중문유차인) : 낯선 사람이 있왔다는 소문이 온 마을에 돌아
咸來問訊(함래문신) : 모두들 찾아와 이것저것 물었다
自云(자운) : 스스로 말하기를
先世避秦時亂(선세피진시란) : “옛적 선조들이 진(秦)나라 때의 난리를 피해
率妻子邑人來此絶境(솔처자읍인래차절경) : 처자와 마을사람들을 이끌고 이 절경에 왔는데,
不復出焉(불부출언) : 그 이후 다시 밖으로 나가지 않아
遂與外人間隔(수여외인간격) : 외부와 격절되고 말았다”고 했다.
問今是何世(문금시하세) : 그들이 묻기를 “지금이 대체 어느 시대냐” 하니,
乃不知有漢無論魏․晉(내불지유한무논위․진) : 진(秦) 이후 한(漢)이 선 것도, 한(漢) 이후 위진(魏晉)시대가 온 것도 알지 못했다.
此人一一爲具言所聞(차인일일위구언소문) : 이들 어부가 들은 바대로 일일이 말해주자
皆歎惋(개탄완) : 모두들 놀라며 탄식했다.
餘人各復延至其家(여인각복연지기가) : 다른 사람들이 교대로 돌아가며 그를 집으로 초대해
皆出酒食(개출주식) : 술과 음식을 내었다.
停數日(정수일) : 그렇게 며칠을 머문 후,
辭去(사거) : 어부는 이제 가봐야겠다고 말했다.
此中人語云(차중인어운) : 이들 가운데 누군가가 말하기를
不足爲外人道也(불족위외인도야) : “바깥 세상에는 알리지 말아 달라”고 했다
旣出(기출) : 어부는 동굴을 나와서
得其船(득기선) : 배를 타고
便扶向路(편부향로) : 이전의 길을 따라가며
處處誌之(처처지지) : 여기 저기에 표식을 해 두었다.
及郡下(급군하) : 고을로 돌아와
詣太守(예태수) : 태수에게 나아가
說如此(설여차) : 자초지종을 고했더니,
太守卽遣人隨其往(태수즉견인수기왕) : 태수는 사람을 보내 왔던 길을 되짚어
尋向所誌(심향소지) : 표식을 더듬어 찾아 향하게 했으나
遂迷不復得路(수미불부득로) : 다시 그 길을 찾아내지 못했다.
南陽劉子驥(남양유자기) : 남양 땅의 유자기는
高尙士也(고상사야) : 뜻이 높은 은자이다.
聞之(문지) : 이 이야기를 듣고
欣然規往(흔연규왕) : 기뻐하며 찾아갈 계획을 세웠으나,
未果(미과) : 결과를 이루지 못하고,
尋病終(심병종) : 얼마 못되어 병들어 죽었다.
後遂無問津者(후수무문진자) : 그 후에는 길을 묻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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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의 꿈 그린 게 아니다?
등록 : 2015-09-17 19:02 수정 :2015-09-17 22:00
조규희 서울대 강사, ‘통설’ 반박
15세기 조선화가 안견의 대표적 명작인 ‘몽유도원도’.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 도화원경의 이상향을 재현한 작품으로 알려져왔으나 최근 이런 통설을 뒤엎고 안평대군이 칩거했던 서울 백악산 기슭 무계정사의 정경을 이상적인 풍경으로 옮긴 풍수적 그림이라는 해석이 나와 주목된다. <한겨레> 자료사진
1447년 그린 화가 안견의 ‘몽유도원도’(일본 덴리대 소장)는 15세기 세종 때의 ‘문예 부흥기’ 분위기를 전하는 걸작이다. 가로 1m를 넘는 두루마리 그림은 전통적 이상향인 복사꽃 마을(도원)이 험준한 준봉에 둘러싸인 환상적 풍경을 담고 있다.
명작을 탄생시킨 주역으로 알려진 이가 당대 최고의 문화후원자였던 세종의 셋째아들 안평대군(1418~1453)이다. 그는 1447년 음력 4월20일 밤 잠을 자다가 복사꽃숲 가득한 도원경을 신하 박팽년과 함께 말타고 찾아가는 꿈을 꾸었다. 갈림길을 만났을 때 신령스런 옷을 입은 도인이 나타나 낙원에 가는 길을 일러주었다고 한다. 이 생생한 꿈을 그리라고 안견에게 명하고 사흘 만에 몽유도원도가 그려졌다는 게 지금까지 안휘준 서울대명예교수 등이 정립한 통설이다. 현재 전하는 ‘몽유도원도’ 뒤에는 안평대군이 꿈 내용을 기록한 기문(記文)이 붙어있다. “비해당(안평대군)이 몽유도원기를 작성해 내게 보여주었다”고 적은 박팽년의 그림 서문과 더불어 창작 배경을 뒷받침하는 문헌 근거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런데 정작 그림엔 의아한 부분이 적지않다. 그림은 화폭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시공간이 흘러가면서 첩첩산중을 지나 붉은 복사꽃 핀 마을로 옮겨가는 풍경을 보여주지만, 사람이 없다. 안평대군의 생생한 꿈 속 이야기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림이 그려진 뒤 안평대군이 자기 꿈을 갖다 붙인 건 아닐까. 게다가 동아시아의 전통 두루마리(횡권) 그림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시공간을 옮겨가면서 보는 게 원칙인데, 이 그림은 시선의 방향이 완전히 거꾸로다. 왜 그럴까.
“부암동 별장 ‘무계정사’ 풍경”
그림 속에 사람이 안 보이고
중신들 시문 꿈 언급 안해
풍수지리적 영험 ‘서응도’ 주장
몽유도원도의 수수께끼를 통설과 전혀 다르게 풀어낸 학설이 나왔다. 조규희 서울대 강사는 최근 삼성미술관 리움이 펴낸 학술총서 <세밀함으로 읽는 한국미술>에 실은 ‘안평대군의 서응도’란 논고를 통해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의 꿈을 바탕으로 그려진 것이 아니라 그가 칩거했던 서울 부암동 무계정사의 풍수지리 환경을 이상적으로 풀어낸 그림이란 주장을 내놓았다.
“애초부터 꿈 이야기를 풀어낸 그림이 아니었기에 꿈속 인물들을 그릴 필요가 없었”으며, “안평대군과 수하 문인들은 경복궁을 감싼 백악산 서북쪽 산기슭에 조성한 무계정사를 꿈꾸던 도원경으로 보고 이 땅을 안견에 그리게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주장의 근거는 몽유도원도를 보고 붙인 박팽년, 최항, 정인지, 최수 등 집현전 학사와 당대 중신들의 제화시문에서 꿈이 그림의 내용으로 풀려나왔다는 명시적 대목이 보이지않기 때문이다.
최수는 그림을 감상하면서 “붓끝에 아롱져 펼쳐진 도화원의 풍경”이라고 했고 다른 필자들도 도원경을 그린 ‘몽도원도’ 혹은 ‘도원도’로만 명시할 뿐 안평대군의 꿈 내용은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안평대군 자신이 꿈에 대해 쓴 기록들도 이를 뒷받침한다. 안견에게 그리라고 명한 대목은 보이지 않고 무계정사가 자리한 부암동 산야의 모습이 꿈에 본 도화원 풍경과 거의 비슷해 무계정사 편액을 붙였다는 대목 등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무계정사가 궁궐에서 풍수 관련 서적을 구상했던 중신 이현로의 조언에 따라 마련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몽유도원도는 무계정사의 이상향적 풍경을 음양조화에 따라 풍수적으로 재해석한 그림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백악산 아래 경복궁 궁궐에서 남쪽을 보며 정무를 봤던 왕실의 시야에서 보면 백악산 서북쪽 무계정사는 우백호(서쪽 호랑이)자리에 해당한다. 무계정사 건물 안에 내걸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몽유도원도는 그림 보는 시선을 극적으로 뒤집으면서 무계정사의 풍수적 기능을 부각시킨 그림일 수 있다는 논지다.
결론적으로 몽유도원도는 꿈의 그림이 아니라, 12세기 송나라 이후 실제 산천처럼 풍수지리적 영험을 지닌 그림으로 유행한 ‘서응도’로 볼 수 있다고 조씨는 말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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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평대군의 몽유도원기 (夢遊桃園記)
정묘년(1447년) 4월 20일 밤에 내가 막 베개를 베고 누우니, 정신이 갑자기 아득해지며 잠이 깊이 들어 꿈을 꾸게 되었다. 문득 보니 인수(仁叟) 박팽년(朴彭年)과 함께 어느 산 아래에 다다랐는데 겹친 봉우리는 험준하고 깊은 골짜기는 그윽하였으며 복사꽃 핀 나무 수십 그루가 서 있었다.
오솔길이 숲 가장자리에서 두 갈래로 나뉘어 어디로 가야할지 갈 곳을 몰라 우두커니 서서 머뭇거리고 있자니 시골 옷차림을 한 사람이 하나 나왔다. 그는 내게 공손히 인사를 하며 말하기를 “이 길을 따라 북쪽 골짜기로 들어서면 바로 도원입니다” 하는 것이었다. 인수와 내가 말을 채찍질하여 찾아가보니 절벽은 깎아지른 듯하고 수풀을 빽빽하고 울창하였다. 또 시내가 굽이지고 길을 꼬불꼬불하여 마치 백 번이나 꺾여 나간 듯, 곧 길을 잃을 것만 같았다.
그 골짝에 들어서자 골 안은 넓게 탁 트여 족히 2, 3리는 될 듯했다. 사방엔 산들이 벽처럼 늘어섰고 구름과 안개는 가렸다가는 피어오르는데 멀고 가까운 곳이 모두 복숭아나무로 햇살에 얼비치어 노을인 양 자욱했다. 또 대나무 숲 속에 띠풀집이 있는데 사립문은 반쯤 닫혀있고 흙섬돌은 이미 무너졌으며 닭이며 개, 소와 말 따위도 없었다. 앞 냇가에는 조각배가 있었지만 물결을 따라 흔들거릴 뿐이어서 그 정경의 쓸쓸함이 마치 신선이 사는 곳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머뭇거리며 바라보다가 인수에게 말하였다. “바위에 나무 얽고 골짝에 구멍 뚫어 집을 지었다. ‘架巖鑿谷開家室(가암착곡개가실)’ 는 것이 바로 이런 걸 말한 게 아니겠나 참말 도원 골짝일세!” 그때에 옆에 누군가 몇 사람이 두 쪽에서 있는 듯하여 돌아다보니, 정부(貞父) 최항(崔恒)과 범옹(泛翁) 신숙주(申叔舟) 등 평소 함께 시를 짓던 사람들이었다. 제각기 신발을 가다듬고서 언덕을 오르거니 내려가거니 하면서 두루 살펴보며 즐거워하던 중에 홀연히 꿈에서 깨고 말았다.
아! 사방으로 통하는 큰 도시는 참으로 번화하니 이름난 고관대작(高官大爵)이 노니는 곳이요, 골짝이 다하고 절벽이 깎아지른 곳은 바로 그윽하게 숨어사는 은자(隱者)들의 거처다. 그러므로 몸에 화려한 관복(官服)을 걸친 자들의 자취는 깊은 신림에까지 미치지 아니하며, 돌과 샘물 같은 자연에 정을 둔 사람들은 꿈에도 궁궐의 고대광실(高臺廣室)을 바라지 않는다. 그것은 대개 성품이 고요한 이와 번잡함을 좋아하는 이가 서로 길이 다른 까닭에 자연스런 이치로서 그리된 것이다.
옛사람은 말하기를 “낮에 한 일이 밤에 꿈이 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나는 궁중에 몸을 담아 밤낮으로 하는 일이 많은데 어째서 그 꿈이 산림에까지 이르렀던가 또 갔더라도 어떻게 도원까지 다다른 것인가 또 나는 서로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많은데 하필이면 도원에서 놀며 이 몇몇 사람들과만 함께 하게 된 것인가 그것은 아마도 내 성격이 고요하고 외진 곳을 좋아하여 평소에 자연을 그리는 마음이 있으며 그 몇 사람과 특히 두텁게 사귀었던 까닭으로 그렇게 된 것이리라.
그리하여 가도(可度) 안견(安堅)에게 명하여 내 꿈을 그림으로 그리게 하였다. 다만 옛날부터 일러오는 도원이라는 곳은 내가 알지 못하니 이 그림과 같은 것일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보는 사람들이 옛 그림을 구해서 내 꿈과 비교해 본다면 반드시 무어라고 할 말이 있으리라. 꿈꾼 지 사흘째 되는 날, 그림이 다 이루어졌으므로 비해당(匪懈堂)의 매죽헌(梅竹軒)에서 쓴다.
안평대군이 쓴 도화원기(桃花源記)
歲丁卯四月二十日夜, 余方就枕, 精神蘧栩, 睡之熟也, 夢亦至焉. 忽與仁叟, 至一山下, 層巒深壑, 崷崒窈窅. 有桃花數十株, 微徑抵林表而分岐. 徊徨竚立, 莫適所之, 遇一人山冠野服. 長揖而謂余曰: “從此徑以北, 入谷則桃源也” 余與仁叟, 策馬尋之, 崖磴卓犖, 林莽薈鬱, 溪回路轉, 蓋百折而欲迷. 入其谷則洞中曠豁, 可二三里. 四山壁立, 雲霧掩靄, 遠近桃林, 照暎蒸霞. 又有竹林茅宇, 柴扃半開, 土砌已沈, 無鷄犬牛馬. 前川唯有扁舟, 隨浪游移, 情境蕭條, 若仙府然. 於是踟躕瞻眺者久之, 謂仁叟曰: “架巖鑿谷, 開家室, 豈不是與! 實桃源洞也” 傍有數人在後, 乃貞父⋅泛翁等, 同撰韻者也. 相與整履陟降, 顧盻自適, 忽覺焉. 嗚呼通都大邑, 固繁華, 名宦之所遊, 窮谷斷崖, 乃幽潛隱者之所處. 是故紆身靑紫者, 迹不到山林, 陶情泉石者, 夢不想巖廊. 蓋靜 殊途, 理之必然也. 古人有言曰: “晝之所爲, 夜之所夢” 余托身禁掖, 夙夜從事, 何其夢之到於山林也? 又何到而至於桃源耶? 余之相好者多矣, 何必遊桃源而從是數子乎? 意其性好幽僻, 素有泉石之懷, 而與數子者交道尤厚, 故致此也. 於是令可度作圖. 但未知古之所謂桃源者, 亦若是乎? 後之觀者, 求古圖, 較我夢必有言也. 夢後三日, 圖旣成, 書于匪懈堂之梅竹軒
「夢遊桃源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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