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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사 방/역사 조선시대

독립운동가 海史(해사) 박건(朴健)선생 족자

by 연송 김환수 2015. 10. 28.

【伝来】朴健 書 (朴海史) 朝鮮 韓国 李朝

 

 

 

185 x 52 ㎝ (전체)  /  121 x 39 ㎝ (본지)

 

박건 (朴健)

 

독립운동가. 신민회 영덕 지역 대표였다. 만주 동창학교를 경영, 후진양성에 힘썼다.

농무계·부민단·농민동맹 등을 설립, 운영했다.

통의부 통화총관, 정의부 통남북총관으로 활동했다. 하얼빈 취원학교를 설립, 교장이 되었다.

 

출생-사망 : 1880 ~ 1943

호 : 해사(海史(蓑))

본명 : 의연

활동분야 : 정치

출생지 : 경북 영덕

주요수상 : 대통령표창추서(1963), 건국훈장 애국장추서(1990)

본명 의연(義然). 호 해사(海史(蓑)). 경북 영덕(盈德) 출생.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신돌석(申乭石)의 의병대에 참가하였고, 1909년 신민회(新民會)에 가입, 영덕 지역 대표가 되었다.

 

그 후 일본경찰의 감시와 탄압을 피하여 1911년 만주로 망명하여 이동하(李東厦) ·윤세용(尹世茸) ·윤세복(尹世復) 등과 환런현[桓仁縣]에서 동창학교를 경영, 후진양성에 힘쓰는 한편, 이상룡(李相龍) ·김동삼(金東三) 등과는 농무계(農務契) ·부민단(扶民團) ·농민동맹(農民同盟) 등을 설립, 운영하였다.

 

1913년 10월 만주 통화현(通化縣) 김두하락(金斗河洛)에서 독립운동단체 경학사(耕學社)의 후신인 부민단(扶民團)을 발전시켰다.

 

다음해 4월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서 한족회(韓族會) 중앙위원으로 선임되어 군자금모금 등을 전개하였다. 1916년 3월 일본경찰의 밀정 유길선(柳吉善)을 통화현 이도구(二道溝)에서 독립단(獨立團)의 한치응(韓致應)·박응서(朴應瑞)와 같이 사살, 제거하였다.

 

1919년 11월 각지의 임시정부가 통합된 뒤 실시한 국내 각 지방의 유지·재산가·학교·종교상황의 실태조사원으로 임명되어 주로 경상북도 의성군일대의 현황을 조사, 보고하였다. 1920년 5월 활동중 일본경찰에 붙잡혀 사형이 확정되었다.

 

형장(刑場)으로 압송 도중 김자선(金子善 : 일본군 임시통역인)과 동생 세진(世鎭)·명진(明鎭) 등의 합세로 탈출에 성공하였다.

 

그 뒤 다시 동삼성으로 탈출하여 1927년 3월 신숙(申肅)과 독립촉성회(獨立促成會)를 결성하기 위하여 전만대표자회의(全滿代表者會議)를 길림(吉林)에서 소집하기로 결정한 뒤 북만대표(北滿代表)로 참석하여 계속 독립투쟁을 전개하였다.

 

1919년 교육회 ·한족회 등을 조직하여 활약하였고, 1922년에 조직된 통의부(統義府)의 통화총관(通化總管)으로 활동하다가 일본관헌에 체포되어 사형이 확정되었으나 탈주하여 1925년에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인 정의부(正義府)에 가담, 통남북총관(通南北總管)으로 있으면서 군비확충에 진력하였다.

 

그 후 하얼빈 근교에 농장을 만들고 이곳에 취원학교(聚源學校)를 설립, 초대 교장이 되었다. 1963년 대통령표창,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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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閣下), 족하(足下), 귀하(貴下)

 

예전에는 대통령이란 호칭 뒤에 반드시 '각하(閣下)'란 말을 붙였다. 그래서 이 말이 권위주의를 상징하는 단어처럼 되어 버렸다.

 

각하(閣下)에서 아래 하()자는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높일 때 쓰는 표현이다. 이렇게 한자말에는 상대방을 높이기 위해 상대방의 호칭을 직접 말하지 않고, 상대방이 거처하는 공간 명칭 다음에 아래 하()자를 쓰는 표현법이 있다.

 

황제는 폐하(陛下)라고 한다. 황제는 높은 계단 위 궁궐에 앉아 신하들을 내려다보니까 신하들은 계단[] 아래에서 계단 위를 올려다본다. 그래서 폐하(陛下). 황제보다 낮은 임금이나 세자는 전하(殿下)로 불렀다. 전각(殿閣)의 아래에 선다는 말이다.

 

경복궁 근정전 전하(殿下)는 임금이나 세자가 계신 전각 아래 선다는 뜻으로 부른 말이다.

 

예전에 각하(閣下)는 정승(政丞)에게나 쓰던 말이었다. ()이 정승이 집무하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 말을 대통령에게 붙여 쓰면 사실은 그 지위를 격하시켜 부른 셈이다. 자기와 비슷하거나 아랫사람에게는 족하(足下)란 말을 썼다.

오늘날도 교황(敎皇)에게는 성하(聖下)란 말을 쓴다. 거룩한 분 아래에 선다는 뜻이다. 편지를 쓸 때는 받는 사람 이름 끝에 귀하(貴下)라고 쓴다. 귀하신 분 아래에 자신이 선다는 뜻이다. 편지를 쓸 때는 상대의 책상이나 앉은 자리 앞에 놓는다는 뜻으로 안하(案下궤하(几下좌하(座下) 등의 표현을 쓰기도 한다.

 

영식과 영애, 영부인

 

명령 령() 윗부분은 집을 본떴고, 아랫부분은 무릎 꿇고 명령을 듣고 있는 사람을 나타낸 모양이다.

 

남의 아들을 좋게 말할 때 아들은 영식(令息), 딸은 영애(令愛)라 부른다. ()은 아름답다, 좋다는 뜻이다. 영부인(令夫人)은 남의 부인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귀부인(貴夫人)이라고도 한다. 요즘은 대통령의 부인이나 자식을 가리킬 때 주로 쓰는 말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일상에서 흔히 쓰던 말이다.

 

()자의 윗부분은 집을 본뜬 모양이고, 아랫부분은 무릎 꿇고 명령을 듣고 있는 사람을 나타내는 절()자이다. ()자의 명령이란 뜻이 이래서 나왔다. 여기에서 '좋다', '훌륭하다'는 의미가 파생되었다.

 

()자는 자()와 심()을 합한 글자이다. ()의 원형은 코이므로 숨쉰다는 뜻이다. 호흡이란 인간이 살아 있는 한 지속되어야 하므로 대를 잇는 자식(子息)의 의미로도 쓰게 되었다.

 

대감(大監)과 영감(令監)이란 말도 예전과는 다르게 쓴다. 대감(大監)은 정이품(正二品) 이상의 관원을 일컫는 말이었다. 영감(令監)은 정삼품(正三品)과 종이품(從二品)의 관원을 부르는 말이었다. 오늘날 영감이란 말은 그냥 나이든 할아버지를 낮춰서 말할 때 쓴다. 예전에는 영감마님이던 것이 영감태기, 영감쟁이로 격하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