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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방/오늘의 소사

배추밭 갔다 오면 승진 - 기재부 전설

by 연송 김환수 2015. 12. 23.

지난 2015.12.21일 개각으로 주형환 기획재정부 1차관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으로 내정되면서 기재부 직원들 사이에서 1차관의 배추밭 전설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차기 1차관이 첫 업무로 배추밭 현장 방문을 갈 것이라는 심오한(?) 관측까지 나옵니다.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프로필

▲61년 서울 출생 ▲행시 26회 ▲덕수상고 ▲서울대 경영학과 ▲일리노이대 경영학 석·박사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 조정2과장 ▲재경부 금융정책국 은행제도과장 ▲대통령비서실 정책수석실 정책기획행정관(3급)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실 정책기획행정관 ▲기획재정부 정책조정국 성장기반정책관·대외경제국장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추진단장 ▲녹색성장위원회 녹색성장기획단장 ▲기재부 차관보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실 경제금융비서관 ▲기획재정부 1차관

 

배추밭 전설이란 최근 배추밭에 갔던 1차관들이 모두 다른 부처의 장관으로 영전하는 등 잘 풀리면서 생겨난 일종의 신조어입니다. 바꿔 말하면 배추밭을 가지 않은 1차관은 승진에 애를 먹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최근만 해도 두 명의 기재부 1차관이 배추밭을 찾은 뒤 장관으로 승진했습니다. 신제윤 전 1차관은 201210월 충남 당진, 추경호 전 1차관은 20138월 강원 평창 대관령의 배추밭을 찾아갔습니다. 배추값이 들썩일 때마다 배추밭을 찾아가 농심(農心)을 듣고 물가 안정 방안을 강구했던 것이지요. 그 뒤 신 전 차관은 금융위원장으로, 추 전 차관은 국무조정실장으로 영전했습니다. 두 자리 모두 장관급입니다.

 

기재부에서 배추밭 전설이 다시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여름입니다. 당시 주형환 차관도 극심한 가뭄으로 농산물 값이 오르자 강원 대관령 배추밭을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일정을 하루 앞두고 서울 양재동 하나로클럽으로 돌연 방문지를 바꿨습니다. 이때부터 관가에서는 주 차관이 배추밭 징크스에 걸리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떠돌았습니다. 배추밭을 안 갔으니 장관 승진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입방아였지요.

 

하지만 주 차관은 당당하게 산업부 장관에 내정됐습니다. 배추밭 전설이 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반전이 있었습니다. 주 차관은 기재부 차관보 시절인 201211월 전남 해남 배추밭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차관보 시절의 배추밭 방문으로 징크스를 피한 셈이지요.

 

물론 우스갯소리입니다. 한 경제 관료는 지금은 물가가 낮아서 잘 부각되지 않지만 기재부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물가 안정이라면서 물가를 담당하는 1차관이 배추밭을 갔다는 것은 그만큼 서민 물가 안정에 노력했다는 방증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 노력이 자연스럽게 승진으로 이어진 것인데 입심 좋은 사람들이 배추밭 전설로 각색했다는 겁니다.

 

정부는 요즘 물가가 너무 낮아서 걱정이라고 합니다. 오죽 했으면 건국 이래 처음으로 물가 띄우기를 정책 방향으로 설정했겠습니까. 그런데 저물가 속에서도 농산물 가격은 가뭄 때문에 껑충 뛰었습니다. 이래저래 물가를 책임지고 있는 1차관의 어깨가 더 무거워졌습니다. 새로 부임할 1차관은 과연 배추밭을 갈까요?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서울신문 2015-12-23 1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