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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훈민정음" 제3의 해례본 발견 / 후대 위작 ?

by 연송 김환수 2015. 10. 16.

 [단독]"국보 훈민정음 또 있다" 제3의 해례본 발견?

 

뉴시스 기사전송 2015-10-16 08:06 최종수정 2015-10-16 11:06

 

 

【서울=뉴시스】신동립 기자 = ‘조선 왕실본’이라는 훈민정음 해례본(세종 28년·1446)이 나타났다.

 

서울 간송미술관에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70호)도, 어쨌든 1000억·1조원을 호가하는 경북 상주의 훈민정음 해례본도 아니다.

 

고서화 수집가 편영우(75)씨가 1986년 7월 일본 오사카 재판소(법원) 뒷골목의 골동품 상가에서 구입, 보관해 온 것이다. 간송본, 상주본과 달리 1쪽도 낙장이 없는 완전한 훈민정음이다.

 

“간송본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1997)되며 가치를 인정받았기에 남몰래 소장하고 있었는데, 상주본이 일으킨 작금의 사태를 보다 못해 세상에 공개하기로 했다”는 편씨는 이 훈민정음을 편의상 ‘왕실본’이라고 부른다. “29년 전 일본에서 훈민정음과 함께 다른 고서, 유물을 한꺼번에 여럿 구했다. 예외없이 문화재 수준이다. 개중에는 멸실된 것으로 알려진 국보급 물건들도 있다. 추측컨대, 일제강점기 조선의 왕실에서 통째로 유출된 듯하다”는 이유에서다.

 

 

【서울=뉴시스】배훈식 기자 = 훈민정음 ‘왕실본’ 표지(왼쪽)와 조선어학회판 간송본 dahora83@newsis.com 2015-10-15

 

“왕실본의 종이는 명나라 수입품이고, 목판에 찍어낼 때 사용한 먹물 역시 최고급 당먹(唐墨)”이라는 방증도 제시했다. 특히 “훈민정음, 기타 조선의 고서들 속에 섞여 있던 규장각 직인인 거북형 규장지보도 같이 샀다. 규장각은 조선왕실의 도서관이다. 이 훈민정음이 왕실본이라는 확실한 증거”라고 강조했다.

 

편씨의 왕실본은 기존의 간송·상주본과 일부 다르다. 글자의 획이나 삐침 등이 간송·상주본보다 덜 거칠다. 미려하고 세련된 편이다.

 

‘용자례(用字例)’에서는 한 곳에 결정적 차이가 있다. 조선어학회가 간송본을 베껴 1946년에 펴낸 훈민정음과 비교하면 ‘ㅁ’자가 다르다. 간송본에는 ㅁ아래에 。이 있지만, 왕실본에는 ㅁ만 있다.

 

【서울=뉴시스】배훈식 기자 = 훈민정음 용자례. ‘왕실본’(위)과 조선어학회판 간송본의 ‘ㅁ’이 다르다. 위에는 권점이 없고 아래에는 있다. dahora83@newsis.com 2015-10-15

 

대종언어연구소 박대종(52) 소장은 “용자례, 즉 훈민정음 해례본 24쪽 뒷면~25쪽 앞면은 초성 ㄱ, ㆁ, ㄷ, ㅌ, ㄴ, ㅂ, ㅁ, ㅸ, ㅈ, ㅊ, ㅅ, ㅎ, ㅇ, ㄹ, ㅿ을 쓰는 예를 설명한 부분이다. 간송본에서는 모두 위 글자들 밑에 중간쉼표 권점(圈點; 。)을 찍었는데, 유독 ㅁ자 하나만 빠져 있다. 아마도 현대인이 원본을 보고 쓰는 과정에서 실수한 탈자로 보인다”고 짚었다.

 

박 소장은 “세종대왕 때 훈민정음 해례본에는 각 문장의 중간이나 끝부분에 둥근 권점의 구두점이 쓰였다. 구두점은 구점(句點)과 두점(讀點)으로 나뉜다. 구점은 마침표, 두점은 쉼표다. 해례본에서는 마침표 권점은 문장 끝글자 오른쪽 아래부분에 썼고, 쉼표 권점은 글자와 글자 가운데 부분에 썼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간송본은 1940년대 발견 당시 ‘國之語音異乎中國’(나라말씀이 중국과 달라)으로 시작되는 세종대왕의 서문 두 장이 없는 상태였으므로, 조선어학회가 복원을 하는 과정에서 마침표 권점과 쉼표 권점을 구분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오른쪽 아래에 찍는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 권점이 구별되지 않고 조선어학회본과 똑같으니, 잘못 고증된 후대의 조선어학회본을 보고 쓴 것이며, 1차 오류에 이은 2차 오류라는 주장이다.

 

【서울=뉴시스】배훈식 기자 = 훈민정음 제자해. 왼쪽이 ‘왕실본’, 오른쪽은 조선어학회판 간송본이다. dahora83@newsis.com 2015-10-15

 

왕실본의 자형과 서체 등 글자체도 문제 삼았다. “최초 훈민정음의 서체는 마치 막대기처럼 반듯반듯한 고딕체다. 이와 달리 ‘왕실본’의 ㅂ자를 보면 수직선의 시작 부분이 약간 구부러진 해서체다. ‘러울’의 ‘ㅜ’ 수평선 부분도 ”고딕체가 아닌 것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결국, 위작이라는 판단이다.

 

그러나, 동일본인 간송·상주본이 아닌 또 다른 판본일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박 소장의 감정은 “진본으로 판정된 간송본”을 근거 삼은 것이기 때문이다.

 

왕실본을 찾아낸 편씨는 서울시립남산도서관 사서과장 출신이다. 선지식(善知識) 유묵관(遺墨館)을 세우려고 지난 45년 간 국내는 당연하고 일본, 중국, 대만, 프랑스, 영국 등지의 도서관과 고서점을 뒤지고 다녔다. 대만 푸런(輔仁)대학과 중국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국제정치대학원)에서 수학하고 옌볜대 객좌교수를 지냈다. 런민르바오(人民日報)와 신화사 계열 한국지사에서 저널리스트로도 활약했다.

 

【서울=뉴시스】배훈식 기자 = 훈민정음 ‘왕실본’. 간송본과 상주본 말고 미지의 판본이 존재하는 것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dahora83@newsis.com 2015-10-15

 

편영우씨는 “나는 사서다. 서책 감별이 일이다. 고서화에도 전문적 식견을 갖췄다. 이제 문화재청 등 중앙행정기관이 나서서 왕실본이 진본임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reap@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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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3의 훈민정음 해례본'? 위작 가능성 높아

도재기 기자 jaekee@kyunghyang.com

 

3의 훈민정음 해례본이라는 서적(왼쪽)과 조선어학회가 1946년에 영인한 훈민정음 해례본 영인본(오른쪽). 왼쪽에서 두번째 줄 마지막에 오류로 판정난 ’()가 똑같이 쓰여 있다.

 

 

한글학회 등이 조선어학회의 1946년판 훈민정음 해례본 영인본의 잘못을 바로 잡아 1998년에 펴낸 한글학회본. <세종실록><월인석보> 등에 따라 1946년도에 잘못 영인한 ’()자를 ’()로 수정했다.

 

3의 훈민정음 해례본이라는 서적이 등장, 관심을 모았으나 위작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글의 창제 원리와 사용법 등을 해설한 훈민정음 해례본(훈민정음·훈민정음 언해본)은 현재 국보 제70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돼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간송본·간송미술관 소장), 소장자가 소재도 밝히지 않으면서 국가 헌납 조건으로 거액을 요구해 최근 논란을 빚은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상주본) 2건이 전해지고 있다.

 

16일 고서화 수집가인 편모씨(75)는 민영 뉴스통신사 뉴시스를 통해 3의 훈민정음 해례본을 공개, 눈길을 끌었다.

 

편씨는 “19867월 일본 오사카 골동품 상가에서 구입, 보관해왔다상주본이 일으킨 작금의 사태를 보다 못해 세상에 공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해례본은 간송본, 상주본과 달리 낙장이 1장도 없는 완전한 상태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해례본을 접한 대종언어연구소 박대종 소장은 이날 경향신문에 분명한 위작고 밝혔다.

 

박 소장은 그 근거로 이미 오류가 인정된 1946년도 조선어학회 해례본 영인본의 잘못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데다, 해례본 당시와 다른 서체·자형, 쉼표 표기의 불일치 등을 꼽았다.

 

박 소장은 새로 공개된 해례본은 대종대왕의 서문 중에서 便於日用矣’(날로 씀에 편안케 하고저 할 따름이니라)의 마지막 자를 ’(어조사 의)로 쓰고 있다그런데 이 자는 조선어학회가 1946년 해례본을 복원·영인하면서 실수로 ’(따름 이)자를 자로 잘못 복원·영인한 것인데, 그것을 그대로 베끼고 있어 위작이라고 밝혔다.

 

박 소장에 따르면, <세종실록> 1446929일자 기록과 1459년 간행된 <월인석보>에 실린 훈민정음 언해본에는 便於日用耳자가 쓰여 있다. 특히 훈민정음 언해본에는 날로 씀에 편안케 하고저 할 따름이니라따름에 해당하는 부분에 가 아닌 자를 쓰면서 자에 대한 설명까지 해놓고 있다.

 

박 소장은 이에 따라 한글학회 등은 조선어학회 영인본의 자 오류를 인정하고 1998년에 다시 훈민정음 해례본을 영인하면서 로 바로잡았다고 말했다.

 

박 소장은 이 해례본은 조선어학회 영인본 발간 이후부터 한글학회 수정본 이전까지, 1946~1998년 사이에 조선어학회 영인본을 그대로 베낀 위조본이 분명하다“‘자 외에도, 조선어학회 영인본의 오류인 마침표와 쉼표 등의 잘못도 그대로 옮기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박 소장은 이어 최초의 훈민정음 서체는 진본으로 판정된 간송본이나 <동국정운> 등에서 잘 드러나듯, 마치 막대기처럼 반듯반듯한 고딕체라며 그런데 이 해례본은 글자체가 원칙이나 일관성이 없이 어떤 글자는 간송본·동국정운 글자체와 같고, 어떤 글자들은 해서체로 뒤섞여 있다고 말했다.

 

박 소장은 결론적으로 3의 훈민정음 해례본이라는 이 서적은 여러가지 근거들로 인해 1946년 이후 현대인이 조선어학회 영인본을 보고 베낀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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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뉴스 홈 > 문화  Posted : 2015-10-16 19:25

 

"3의 훈민정음 해례본 있다"..."후대에 만든 위작"

 

"3의 훈민정음 해례본 있다"..."후대에 만든 위작"

 

 

앵커

요즘,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데요, 새로운 해례본을 갖고 있다는 70대 소장자가 나타나 진위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윤현숙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한 고서적 수집가가 공개한 훈민정음 해례본입니다.

 

1986년 일본의 골동품 상가에서 조선왕실 도서관인 규장각 직인과 함께 구입했다며 왕실본이라고 주장합니다.

 

[편영우, '3의 해례본' 소장자]

"상주본 가지고 너무 그래서 제가 "이러면 안 되겠다" 이런 것이 있다고 해야지 생각해서."

 

국보인 간송미술관 소장 해례본이나 최근 문제가 된 상주의 해례본과 달리 손상이 전혀 없는 완벽한 상태라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이 해례본에 대해 감정을 의뢰받은 전문가는 위작으로 판명했습니다.

 

1946년 조선어학회가 복원한 영인본을 베낀 위작이라는 겁니다.

 

당시 세종대왕 서문의 마지막 글자가 기록과 달리 잘못 복원됐는데, 이 오자까지 그대로 실려 있다는 설명입니다.

 

[박대종,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조선왕조 실록과 세종대왕이 남긴 언해본에 귀 이가 분명하게 드러나거든요. 그런데 어조사 의자로 조선어학회가 1946년 실수로 그렇게 한 거예요. 누가 봐도 이것은 46년 조선어학회본을 베낀."

 

구두점이 잘못 찍힌 오탈자도 있는 데다 글자체가 해례본 당시의 서체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도 위조의 증거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소장자는 문화재청 등 중앙행정기관이 직접 나서 해례본의 진위를 가려야한다는 입장입니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은 문화재지정 신청이 들어오면 절차에 따라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혀 귀추가 주목됩니다.

 

YTN 윤현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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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훈민정음 해례본 미스터리
이름 :
주간조선 Read: 961   Date: 2012.02.27

훈민정음 해례본 미스터리

상주본의 가치 1조원? “300억가량” “1조원 지나치다” “8000억 이상”

이범진 차장대우

 

 

‘오성제자고(五聲制字攷)’란 표제가 붙은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08년 7월이었다. “상주의 한 골동품 가게에서 샀다”며 골동품수집가 배모씨가 이를 공개했다. 이 판본은 국보급 문화재로 평가받으면서 엄청난 관심을 끌었다. “1조원 가치가 있다”는 일부의 평가도 주목을 받았다. ‘국보’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법원은 2012년 2월 배모씨에게 절도 혐의를 적용, 징역 10년형을 선고했다. 배씨는 훈민정음의 향방에 대해서는 재판 과정에서 모르쇠로 일관했다.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과 같은 고문서는 어떻게 유통되는 것일까. ‘1조원’이란 평가의 근거는 무엇일까.

옥션단 김영복 대표 “300억가량 본다”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고서를 포함한 문화재의 가치 역시 ‘시장’에서 결정된다. 시장은 유사한 다른 고서의 판매가를 기준 삼아 매물로 새로 나온 고서의 금전적 가치를 평가한다. 예를 들어 15세기의 어떤 책이 매물로 나왔다면 같은 시기의 다른 책은 과거 얼마에 거래됐는지를 참고해 그에 준하는 가격을 매긴다. 물론 수요가 공급보다 많으면 가격이 올라가고 그 반대면 가격은 떨어진다. 미술품 경매를 담당하는 옥션단의 김영복 대표는 ‘경자자(庚子字)’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경자자는 계미자에 이어 세종 연간에 두 번째로 만든 금속활자다.
  
“경자자 판본 가격이 10여년 전엔 1000만원가량 했어요. 그런데 어느 집에 보관돼 있던 판본이 한꺼번에 60여점가량 쏟아져 나온 적이 있습니다. 가격이 어떻게 됐겠어요. 곧바로 500만원 정도로 내려갔습니다. 요즘엔 귀해져서 다시 가격이 올랐지만 고미술품 가격이란 게 이렇게 정해집니다. 원칙이란 게 딱 서있질 않아요.”
  
김 대표는 근사록(近思錄·주자의 학문 지침을 기록한 송나라 때의 서적)의 사례를 다시 들었다. “세종 때 나온 근사록의 경우엔 3권 1책(옛 사람들은 통상 2~3권을 하나의 책으로 묶었다)이 1500만~2000만원 선에 가격이 형성돼 있습니다.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 이전엔 가격이 더 많이 나갔지만 이후 거래가가 떨어졌지요. 만약 세종 시대의 다른 고서가 새로 발견됐다면 그 고서의 가격은 근사록을 참고해서 설정하게 됩니다. 이보다 터무니없이 비싸거나 거꾸로 터무니없이 싸게 책정될 수는 없다는 얘기입니다.”
  
김 대표는 이번에 새로 등장한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으로 말을 이었다. “문제는 이번의 ‘훈민정음 상주본’은 다른 것과 비교할 대상이 없는 국보급 고서란 점입니다. 그동안 훈민정음 해례본은 ‘간송본’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왔는데 이번에 서체가 깨끗한 판본이 새로 발견된 것이지요. 이런 문화재는 가격을 정할 수가 없습니다. 비교할 대상이 아예 없으니까요.” 김 대표는 “아무리 그렇다 해도 1조원은 말이 안된다”며 “굳이 가격을 매긴다면 한 300억원가량 볼 수 있지 않겠나 싶다”고 답했다.
  
  
한국고서협회 박민철 회장 “객관적으로 300억”
  
한국고서협회의 박민철 회장도 “1조원은 너무 많다”고 했다. 박 회장은 “고서나 고미술품의 가격은 실거래의 기준이 되는 현실가와, 상징적으로 붙이는 상징가가 있다”라며 “1조원이란 가격은 우리나라에서 한글과 훈민정음이 갖는 특수한 가치를 인정해 상징적으로 붙인 상징가”라고 말했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결(直指心體要訣)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직지심체요결 역시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를 갖고 있지요. 게다가 가격을 비교할 대상조차 존재하지 않습니다. 굳이 가격을 매긴다면 정서적 요소를 감안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박 회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라고 한다면 300억원 정도라고 본다”고 말했다.
  
  
국학진흥원 임노직 연구원 “1조원 지나치다”
  
“1조원이 지나치다”는 점엔 문제의 상주본을 직접 본 유일한 학자인 한국국학진흥원의 임노직 연구원도 공감을 표했다. 그는 “고서의 가격은 사겠다는 사람과 팔겠다는 사람의 의사가 맞아야 정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임 연구원은 “이번 훈민정음 상주본이 발견된 직후 서울에서 30억원에 사겠다는 의사를 밝힌 사람이 있었다는 말이 있다”며 “거래가 성립되지 않자 또 다른 사람이 50억원을 제안했다는 말도 돌고 있다”고 전했다.
  
임 연구원은 “검사가 구형을 하려면 훔친 물건의 가격을 알아야 하는데 알 수가 없으니 문화재청에 문의를 했던 것으로 안다”며 “이번에 발견된 상주본은 훈민정음 목판본 중에서도 초간본에 가깝기 때문에 가치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상주본은 나무판을 깎아 인쇄한 목판본으로, 목판본을 계속해서 찍을 경우 글자가 문드러질 수 있기 때문에 초기에 찍은 판본의 글자 형태가 더 깔끔하다고 한다. 임 연구원은 “그렇다 하더라도 1조원은 좀 과하다”고 말했다.
  
  
경북대 남권희 교수 “1조원 가치 추정”
  
하지만 경북대 남권희 교수는 “1조원 가치를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직지심체요결의 경우 전시 사료로서의 가치와 부대 사업적 가치를 모두 합치면 8000억원 정도 된다는 평가가 인터넷에 있다”며 “이를 참고로 보면 훈민정음의 가치가 그보다 적다고 볼 수 없으므로 1조원이라는 상징적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지학의 권위자로 알려진 남 교수는 이번에 발견된 훈민정음 상주본에 대해 “종이의 재질이 당시의 종이와 일치하고, 먹 또한 당시에 사용된 것이며, 서체가 당시 유행했던 서체이고, 실로 꿰맨 형태가 간송본과 동일하며, 판본의 모습이 간송본과 일치한다”며 “진품임을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아예 목판 새로 짜 복각하는 경우도
  
고문서의 거래는 소장자→1차 거간 또는 위탁상(대부분 지방)→2차 거간 또는 위탁상(주로 서울)→상인의 유통과정을 거친다고 고서상들은 말한다. 시장 구조를 잘 모르는 사람이 소장자일 경우엔 거간 또는 위탁상 단계를 더 많이 거칠 수도 있다.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고문서 역시 유통단계가 많아질수록 유통 마진이 커진다.
  
고문서는 도자기나 미술품 등 다른 고미술품에 비해 위조 가능성이 적다. 대부분 집안에서 조상 대대로 전해내려 왔거나 사찰 궁궐에 묻혀있다 발굴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물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 훈민정음 상주본의 경우처럼 문화재라는 특성상 절도 시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고문서 위조의 대표적 형태가 분책(分冊)이다. 고문서는 대부분 2권 또는 3권이 1책(冊)으로 돼 있다. 그런데 이를 분절해서 2개 내지 3개의 책으로 나눠 파는 것이다. 이 경우 판매자는 산술적으로 2~3배의 이익을 거둘 수 있다. 김영복 대표는 “3개의 책으로 나눈 3권 1책을 한꺼번에 팔면 3배 값을 받지 못하겠지만, 나눠서 팔면 사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3배의 가격을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위조의 또 다른 형태가 책장을 뜯는 것이다. 수백 년 전 종이는 여러 장을 덧댄 형태로 돼 있다. 따라서 한 장의 종이 위에 쓰인 것을 뜯어내 여러 권의 책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고미술업계의 한 관계자는 “예전엔 이런 방식을 많이 사용했지만 최근엔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보다 적극적인 방법을 고발한다. 아예 판을 새로 짜서 복각을 하는 것이다. 이번에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이나 동의보감, 오륜행실도, 삼강행실도 등 조선 초기의 고문서는 주로 목판본이다. 목판은 금속활자와 달리 위조가 손쉽다. “목판 위에 원본 또는 원본의 복사본을 뒤집어 놓고 그대로 각을 뜬 뒤 이 목판에 당시의 먹을 묻혀 당시 종이에 찍어내면 감쪽같다”는 것이다. 금속활자와 달리 목활자는 수명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조선 초기의 경우 통상적으로 100부 이상의 판본을 찍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목판본을 복각한 가짜를 유통할 경우 업자가 얻어낼 수 있는 이익은 상당하다. 위조 시비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학자들 “복각본일 가능성은 없어”
  
전문가들은 하지만 이번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에 대해서는 “위조 가능성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어미(인쇄 과정에서 찍히는 고문서 하단의 무늬)의 모양이나 형태, 서체의 모습, 장정된 책의 구조 등이 모두 간송본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남권희 경북대 교수는 “한국의 전통적 서책 형태는 5개의 구멍을 뚫어 책을 묶는 5침안(針眼)인데 간송본은 4침안으로 돼 있다”며 “이번 발견된 상주본은 5침안의 형태로 돼 있지만 그 속을 살펴보면 4침안으로 돼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남 교수는 “이는 원래 4침안으로 돼 있던 것을 5침안 형태로 다시 묶었음을 의미한다”며 “이 같은 편제 형태나 서체가 당시의 독특한 형태와 일치하기 때문에 진본이 아닐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김용복 대표는 “훈민정음 상주본의 글자체는 당시 유행했던 송설체로 조선 초기 송설체의 대가였던 안평대군이나 세조가 쓴 것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상주본을 실제로 본 임노직 한국국학진흥원 연구원은 “훈민정음의 자본(字本)이 당시 서체와 일치한다”며 “지질이나 형태로 판단할 때 복각의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했다.

 


 

사라진 상주본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나
훈민정음 해례본 미스터리

남권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세계의 수많은 문자 가운데 한글, 즉 훈민정음은 가장 합리적인 문자라고 얘기된다. 세계의 문자 가운데 오직 한글만이 그것을 만든 사람을 알고, 반포한 날짜를 알며, 글자를 만든 원리까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한글을 만든 동기부터 제작 원리와 음가, 운용 방법 등을 체계적으로 설명해 놓은 책이 바로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세계적으로 창제된 문자도 거의 없는 데다, 문자를 만든 사람이 제작 원리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은 전무후무한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1446년 이 책이 출간되고, 500년 만에 경북 안동의 한 사가에서 그 존재를 세상에 드러낼 때까지 한글의 제자(製字)원리는 추측만 할 뿐이었다. 이후 ‘해례본’을 통해 수많은 학자들에 의해 훈민정음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고, 이제 거의 모든 것이 밝혀졌다.
   
책의 내용도 돈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의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책 자체도 세계기록유산으로 남을 만하다. 서양에서도 500년 이상 된 책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역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활자 인쇄본 구텐베르크 성서(1454~1460)도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지만 종이가 아니라 양피지나 송아지 가죽에 인쇄된 것이다. 조선의 종이는 중국에서도 극상품으로 인정받을 만큼 질이 좋았다.
  
  
언해본과 해례본

‘훈민정음(訓民正音)’을 풀이하자면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훈민정음’이 만들어진 이유는 한글을 창제하기 전에는 글자를 쓸 때 한자(漢子)나 한자를 빌려 만든 글자를 사용했는데 이러한 것으로는 생각하는 바를 제대로 표현하기 힘들었고, 특히나 일반 백성들이 배우기에 한자는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에 세종대왕은 1443년 집현전의 여러 학자들과 함께 백성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글자를 창제했고, 글자가 만들어진 지 3년이 지난 1446년 9월에 세상에 반포하게 됐다. 이것이 바로 ‘훈민정음’이다.
  
훈민정음은 해례본과 이를 한글로 풀이한 언해본이 있다. 언해본은 훈민정음에 대해 간결하게 요점을 밝혀놓은 것으로, 세종 말년부터 세조 때까지 다양한 형태의 판본이 존재하고 단일본 형태는 아니다. 그중 월인석보(1459) 제1권에 실려 있는 것이 가장 완벽한 형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첫 문장 “우리나라의 말씀이 중국과 달라서 한자로는 서로 잘 통하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나타내고자 하는 일이 있어도 마침내 제 생각을 얻어 내어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나는 이들을 불쌍하게 생각하여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들었는데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익히어 날로 씀에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로 시작되는 문장이 바로 월인석보에 실린 언해본의 서문에 나오는 문장이다.
  
몇 가지의 이본이 전해지는 언해본에 비해서 해례본은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판본이 유일했으나 2008년 7월 경북 상주에서 간송본과 동일한 진본이 발견되어 그 소장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해례본의 내용과 의의
  
‘훈민정음’ 해례본은 목판본으로 1책 33장으로 이뤄져 있다. 이 책은 한문본으로 훈민정음에 대한 해설과 예의(禮儀)가 적혀 있다고 해서 해례본이라고 불린다. 33장 중 세종의 서문·예의가 4장 분량이고, 집현전 학자들의 훈민정음에 대한 설명, 즉 해례(解禮)가 29장 분량이다. 해례 부분은 다섯 개의 ‘解’와 한 개의 ‘例’로 이루어져 있다.
  
다섯 개의 해란 제자해(글자를 만든 원리에 대한 해설), 초성해(초성에 대한 해설), 중성해(중성에 대한 해설), 종성해(종성에 대한 해설), 합자해(초성·중성·종성의 세 글자를 합쳐서 쓰는 방법에 대한 해설)이다. 한 개의 예는 용자례(用字例)를 일컫는데 실제의 예를 들어서 설명한 것이다.
  
세종은 이 책에서 새로 만든 글자에 대하여 창제의 목적을 밝힌 서문과 한글 하나하나에 대해 개괄적으로 예시하고 설명하였고, 집현전의 학자들에게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용례를 짓도록 하여 이것을 백성들에게 공표하였다. 집필자들은 정인지(鄭麟趾)·신숙주(申叔舟)·성삼문(成三問)·최항(崔恒)·박팽년(朴彭年)·강희안(姜希顔)·이개(李塏)·이선로(李善老) 등 집현전의 학자 8인이다.
  
그중 정인지는 서문에서 임금의 명에 의해 해례를 지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 서문에서 정인지는 “슬기로운 사람은 아침을 마치지 않아도 깨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열흘이 못 되어 배울 수 있다”라고 적고 “바람소리, 학의 울음, 닭의 울음, 개 짖는 소리라도 능히 쓸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서문이 쓰인 연대가 ‘政統十一年九月上澣’(정통십일년구월상한)이라고 적혀 있음에 따라 상한(상순·1일부터 10일)의 끝날인 9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10월 9일을 한글날로 확정했다.

  
  
간송본

 

 

훈민정음 해례본은 1940년 안동에서 발견된 간송본과 2008년 상주에서 발견된 것 두 종류가 존재한다.
  
간송본은 표지 2장에 본문이 33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로 20㎝, 세로 32.3㎝이고, 표지와 앞의 두 장이 떨어져 나갔으며 전체적으로 책의 모서리가 많이 닳아 있는데, 특히 처음 몇 장은 심하게 훼손된 상태다. 그리고 각 장마다 종이의 이면(裏面)에 붓으로 글씨를 많이 써 넣었기 때문에 얼룩져 있다. 떨어져 나간 앞의 두 장은 발견될 당시에 원래의 모습을 추론해 복원했다. 그리고 원래 우리나라만의 고유 제책 방법인 5침안정법이 아니라 4침안정법으로 되어 있다.

구성을 보면 총 33장 3부로 나누어, 제1부는 훈민정음의 본문을 4장 7면으로 하여 면마다 7행 11자씩, 제2부는 훈민정음 해례를 26장 51면 3행으로 하여 면마다 8행 13자씩, 제3부는 정인지의 서문을 3장 6면에 싣고, 그 끝에 ‘정통 11년’(1446)이라 명시하고 있다.
  
이 책은 안동 광산 김씨 종가인 긍구당가 소장으로 일제 강점기인 1940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발견되어 일제 당시 우리 문화재에 대한 사랑과 관심으로 우리 문화재를 수집한 간송 전형필 선생(1906~1962)이 사들여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지금까지 훈민정음 혜례본은 조선어학회(1946), 각자장 오옥진(1979), 한글학회(1997) 등에서 여러 차례 복원된 바가 있다.
  
  
상주본
  
상주본은 2008년 7월 처음 발견되어 전문가의 감정을 거쳐 간송본과 동일한 ‘훈민정음’ 해례본의 진본임이 확인됐다. 상주본의 대체적인 특징과 상태는 다음과 같다.
  
표지의 상태는 한눈에도 오래된 것으로 보이며 종이의 색이 많이 변해 있었다. 특히 표지에는 희미한 붓글씨로 ‘五聲制字攷(오성제자고)’라고 쓰여 있었다. 이 기록과 관련해 간송본과 상주본의 경우 모두 원본의 앞 부분이 몇 장이 떨어져 나가 일반적으로 ‘훈민정음 해례본’이라고 통칭되는 이 책의 원래 서명이 불확실한 상태였으나, 개장된 표지에 이와 같은 글씨가 적혀 있어 당시 이 책이 ‘五聲制字攷’라 통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상주본의 본문 내에는 후대에 누군가에 의해 공부한 흔적이 묵서를 통해 많이 나타나고 있었다. 한글 표기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묵서의 대체적 시기를 보면, 표기 중 ‘ㅅ’ ‘ㅈ’의 자음 표기가 한글 창제 시기가 아닌 후대의 표기로 되어 있어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반에 기록된 것으로 보이며, 전체적으로 표지의 개장 또한 이 시기에 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상주본의 제책은 낱장으로 분리돼 있어 본래의 제책 상태는 알 수 없으나 각 면에 구멍이 뚫린 상태로 보아 원래는 4군데의 구멍을 뚫은 4침안정법이었으나 후대에 5침안정법으로 개장(改裝)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각 장마다 한 장 한 장씩 낱장의 비닐로 보관되고 있었다. 전체적인 본문의 상태는 하단 부분에 모두 물이 침입해 얼룩진 부분이 많이 나타나며 면의 모서리 부분에 훼손이 있다.

 


 

500년 만에 세상 밖으로 ‘간송본’ 뒤엔 이들이 있었다
훈민정음 해례본 미스터리

이충렬 소설가·간송 전형필 저자

 

 

훈민정음 해례본은 오랫동안 그 실체가 확인되지 않았다. 조선 세종(재위 1418~1450) 때 만든 해례본이 500년 만에 세상에 존재를 드러낸 것은 한 스승과 제자의 대화에서 비롯됐다. 스승은 천태산인(天台山人)이라는 필명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국문학자이자 사상가 김태준(1905~1949)이고, 제자는 김태준이 가장 총애했던 서예가 이용준(李容準·1916~?)이다.
   
김태준은 경성제국대학에서 중국문학과 국문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에는 경학원(지금의 성균관대학교)과 경성제국대학에서 조선문학을 강의했다. 1931년에는 이희승·조윤제 등과 조선어문학회를 결성했다. 같은 해에 ‘조선 한문학사’를 발간, 한문학과 국문학을 접목시킴으로써 한국문학사를 정립했다. 김태준은 천재라고 불릴 정도로 총명했고 발표하는 글의 수준이 높아 따르는 제자가 많았다. 김태준은 여러 제자 중에서도 이용준을 가장 총애했다. 이용준은 경북 안동군 와룡면 주하리에 사는 진성 이씨 한걸의 셋째 아들로, 글씨도 잘 쓰고 한학에도 밝았다. 그가 어느날 스승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했다.
   
“가문의 선조가 여진 정벌에 큰 공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상으로 세종대왕으로부터 ‘훈민정음’을 하사받아 세전가보(世傳家寶)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김태준은 훈민정음이라는 소리에 귀가 번쩍했다.
   

“집에 내려가서 ‘훈민정음’을 볼 수 있겠나?”
   
“제가 언제든지 모시고 가겠습니다.”
   
   
훈민정음을 찾아라
   
김태준은 며칠 후 이용준과 함께 그의 시골집으로 갔다. 이용준이 내어준 ‘훈민정음’을 살펴보니, 자신이 경성제대 도서관 깊숙한 곳에서 본 ‘세종실록’의 훈민정음 관련 기록과 상당 부분 일치했다. 훈민정음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더 자세했다. ‘실록’에 언급된 ‘해례본’이 틀림없었다. 이용준은 김태준에게 “‘훈민정음’은 이렇게 집에 놔둘 책이 아닌 것 같다. 꼭 필요로 하고 잘 간수할 사람에게 넘기고 싶다”고 했다.
   
김태준은 자신을 만날 때마다 ‘훈민정음’ 타령을 하던 간송 전형필(1906~1962)을 바로 떠올렸다.
   
간송은 1929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많은 유산을 물려받아 조선 40대 부자로 꼽혔다. 이때 그의 나이 겨우 스물세 살, 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재벌이 된 청년은 사업하거나 유유자적 편안하게 사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당시 일본으로 유출되던 옛 그림과 고려청자, 조선백자, 삼국시대 불상, 고서적 등 민족의 얼과 혼이 담긴 문화재를 지키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과 존엄을 지키고 되찾는 ‘문화 독립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수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우리나라에 꼭 남아야 할 문화재라고 판단되면 값을 따지지 않고 구입했고, 이미 일본으로 건너간 문화재 중에서도 되찾아 와야 할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 서면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오게 했다.
   
간송은 문화재 수집을 위해 골동품과 옛 책이 많이 거래되던 인사동에 있는 한남서림을 인수해 수집의 ‘전진기지’로 삼았다. 그는 다른 수집과는 달리 그림이나 도자기뿐 아니라 귀한 활자로 만든 고서도 중요한 문화재라고 판단했고, 한남서림으로 들어오는 책 중 진서(珍書)나 희본(稀本), 호본(好本)이 보이면 원로나 학자들과 함께 살폈다. 그래서 그 가치가 확인되면 1938년에 완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보화각(지금의 서울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에 설치한 ‘간송문고’로 옮겼다.
   
당시 한남서림에는 고서화나 골동 거간들뿐 아니라 학자도 많이 드나들었다. 일부 학자와 고서 전문가들은 간송에게 “세종실록에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사용을 설명한 책이 완성되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면서 “한글을 어떻게 발음해야 할지 설명한 책인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아직 훈민정음과 관련된 책은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으니, 전형필에게 그 책을 꼭 찾으라는 말들을 했다. 어문학 연구에 조예가 깊었던 김태준도 그중 한 명이었다.
   
   
“기와 열 채 값도 부족하오”
   
훈민정음 해례본의 존재를 확인한 김태준은 한남서림으로 달려가 간송을 만났다. “안동에서 ‘훈민정음’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있어 직접 확인해봤더니 진품이 틀림없었다”며 “간송이 구입하면 좋을 것 같은데 값이 좀 비싸다”고 말했다. 간송은 걱정하지 말고 이야기해 보라고 했다. 김태준은 조심스럽게 기와집 한 채 값인 천원을 달란다고 했다. 당시 지방 양반집에서 올라오는 책값은 그리 비싸지 않았다. 옛 책의 가치가 서화나 도자기와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간들이 지방에서 책을 구입할 때 아무리 귀한 책도 쌀 한 말 이상을 쳐주지 않던 시대였다.
   
그러나 간송은 달랐다. “그런 귀한 보물의 가치는 집 한 채가 아니라 열 채라도 부족하오”라고 말하더니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는 은행으로 달려갔다. 간송은 두 개의 보자기에 나눠 담은 돈보따리를 들고와 그중 작은 것을 김태준에게 밀었다.
   
“이건 훈민정음 값이 아니라 천태산인께 드리는 사례요. 제가 성의로 천원을 준비했소.”
   
김태준이 놀란 눈빛으로 전형필을 바라봤다. 사례비가 너무 많다고 말하려는데, 간송이 또 다른 보자기를 내놓으며 말을 이었다.
   
“훈민정음 값으로는 만원을 쳤습니다. 훈민정음 같은 보물은 적어도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합니다.”
   
기와집 열 채 값이었으니 지금 서울의 아파트 값으로 환산하면 최소 30억원이다. 세로 23.3㎝, 가로 16.8㎝의 훈민정음 해례본은 이렇게 간송의 손에 들어왔다. 책이 만들어진 지 500년 만에 세상으로 나온 보물 중의 보물이었고, 간송이 문화재 수집을 시작한 지 13년 만에 성취한 대발굴이었다.
   
간송은 광복이 될 때까지 훈민정음 해례본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지 않았다. 일제가 한글 말살에 혈안이 되어 조선어학회 학자들까지 잡아들이는 상황에서 훈민정음의 존재가 알려지면 가만 놔두지 않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간송은 훈민정음을 자신의 수장품 중 최고의 보물로 여겼다. 한국전쟁 당시 피란 갈 때도 품속에 품었고, 잘 때는 베개 속에 넣고 지켰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이런 간송의 노력으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와중에도 무사히 지켜졌다. 1956년 통문관에서 학계의 연구를 위해 영인본으로 출판하고 싶다고 하자, 간송은 흔쾌히 허락했다. 그리고 손수 한 장 한 장 해체해서 사진을 찍게 했다. 이렇게 출판된 훈민정음 영인본을 통해 많은 학자가 체계적으로 한글 연구를 할 수 있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광복 후 국보 70호로 지정되었고, 1997년 10월 유네스코(UNESCO)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의 출처

원소장자는 이용준이 아닌 처가 광산 김씨
   
광복 후 60년 동안 훈민정음 해례본은 이용준 집안의 세전가보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2005년 해례본의 출처가 이용준 본가가 아니라 처갓집인 광산 김씨 종택 긍구당(肯構堂)에 소장되어 있던 책으로 밝혀졌다. 이용준이 장인이자 당시 광산 김씨 종손이던 김응수 옹에게 해례본을 처분한 전후 사정을 설명하는 편지가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이용준은 김태준이나 간송 전형필에게 그런 세세한 집안 사정을 이야기하지 않았고, 한국전쟁 때 월북했다. 간송 또한 이용준의 본가에 가서 확인까지 하고 온 김태준의 말을 듣고, 196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출처를 안동 이용준 본가로 알았다.
   
현재 광산 김씨 종손인 김대중씨는 “출처가 우리 집인 것은 맞지만 고모부(이용준)께서 하신 일”이라며 유출과 매매에 대해서는 밖에서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그는 “간송 선생이 그걸 밝혀주기 전에는 그렇게 소중한 책인지도 몰랐다. 우리 집에 계속 있었을 경우, 어떻게 되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훈민정음 해례본을 세상에 알리고 잘 보관해준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주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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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해례본 원문과 번역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서로 사맛디 아니할새 이런 젼차로 어린백셩이 니르고저 홇베이셔도 마참내 제뜨들 시러펴디 못할노미하니라 내 이랄위하야 어엿비녀겨 새로 스물여듫짜랄 맹가노니 사람마다 해여수비니겨 날로쑤메 편안케 할 따라미니라

 

- 훈민정음 서문훈민정음 해례본 원문과 번역    ※ 訓民正音 解例本 (전권 33장 1책의 목판본)

     * 例 義 

      - 序文 : 1면~1면6행 (御旨)

      - 本文 : 1면7행~7면 (音價 · 運用法)

    * 解 例

      - 制字解 : 9면~36면4행

      - 初聲解 : 36면5행~38면6행

      - 中聲解 : 38면7행~42면1행

      - 終聲解 : 42면2행~48면1행

      - 合字解 : 48면2행~56면1행

      - 用字例 : 56면2행~60면3행

      -鄭麟趾序文 : 60면4행~66면

 

 

 

 

 

 

 

 

 

 

 

 

 

 

 

 

 

  

훈민정음 해례본(1446.9.상한)

 

훈민정음 해례본

예의편

                          

國之語音(국지어음).이 異乎中國(이호중국).하야 與文字(여문자)로 不相流通(불상유통).할새 故(고)로 愚民(우민)이 有所欲言(유소욕언)하여도 而終不得伸其情者(이종불득신기정자).多矣(다의).라予(여). 一爲此憫然(위차민여).하야 新制二十八字(신제이십팔자). 하오니 欲使人人(욕사인인)으로 易習(이습).하야 便於日用耳(편어일용이)니라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서 한자와 서로 통하지 못한다.그러므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바가 있어도 마침내 그 뜻을 펴지 못하는 이가 많다. 내가 이것을 매우 딱하게 여기어 새로 스물여덟글자를 만들어 내노니사람마다 쉽게 익히어 나날의 소용에 편리하도록 함에 있나니라.ㄱ. 牙音(아음).이니 如君字初發聲(여군자초발성).이요 竝書(병서)하면 與字初發聲(여자초발성)하니라ㄱ는 엄소리니 군(君군)자의 처음 펴어 난 소리와 같으며어우러 쓰면 뀨(규)자의 처음 펴어 나는소리와 같으니라ㅋ.牙音.이니 如快字初發聲하니라ㅋ는 엄소리니 쾌(快쾡)자의 처음 펴어 나는 소리와 같으니라..牙音.이니 如業字初發聲하니라는 엄소리니 업(業업)자의 처음 펴어 나는 소리와 같으니라ㄷ.舌音.이니 如斗字初發聲.이요 書하면 如覃字初發聲하니라ㄷ는 혀소리니 두(斗)자의 처음 펴어 나는 소리와 같으며어우러 쓰면 담(覃 땀)자의 처음 펴어 나는 소리와 같으니라ㅌ.舌音.이니 如呑字初發聲하니라ㅌ는 혀소리니 탄(呑ㅌ)자의 처음 펴어 나는 소리와 같으니라ㄴ.舌音.이니 如那字初發聲하니라ㄴ는 혀소리니 나(那낭)자의 처음 펴어 나는 소리와 같으니라ㅂ. 脣音.이니 如字初發聲.이요 書.하면 如步字初發聲하니라ㅂ는 입술소리니 별()자의 처음 펴어 나는 소리와 같으며 어우러 쓰면 보(步뽕)자의 처음 펴어 나는 소리와 같으니라ㅍ.脣音.이니 如漂字初發聲하니라ㅍ는 입술소리니 표(漂)자의 처음 펴어 나는 소리와 같으니라ㅁ.脣音.이니 如彌字初發聲하니라ㅁ는 입술소리니 미(彌)자의 처음 펴어 나는 소리와 같으니라ㅈ.齒音.이니 如卽字初發聲.이요 書.하면 如慈字初發聲하니라ㅈ는 잇소리니 즉(卽)자의 처음 펴어 나는 소리와 같으며어우러 쓰면 자(慈)자의 처음 펴어 나는 소리와 같으니라ㅊ.齒音.이니 如侵字初發聲하니라ㅊ는 잇소리니 침(侵)자의 처음 펴어 나는 소리와 같으니라ㅅ.齒音.이니 如戌字初發聲.이요 書.하면 如邪字初發聲하니라ㅅ는 잇소리니 술(戌)자의 처음 펴어나는 소리와 같으며 어우러 쓰면 사(邪)자의처음 펴어나는 소리와 같으니라ㄴ .喉音.이니 如把字初發聲하니라ㄴ은 목소리니 읍(把)자의 처음 펴어나는 소리와 같으니라;ㅎ.喉音.이니 如虛字初發聲.이요 書.하면 如洪字初發聲하니라ㅎ는 목소리니 허(虛)자의 처음 펴어 나는 소리와 같으며 어우러 쓰면 홍(洪)자 의 처음 펴어 나는 소리와 같으니라ㅇ.후음.이니 如欲字初發聲하니라ㅇ는 목소리니 욕(欲)자의 처음 펴어 나는 소리와 같으니라ㄹ.半舌音.이니 如閭字初發聲하니라ㄹ는 반혀소리니 려(閭)자의 처음 펴어 나는 소리와 같으니라.반치음.이니 如穰字初發聲하니라는 반잇소리니 양(穰)자의 처음 펴어 나는 소리와 같으니라..ㄴ 如呑字中聲하니라는 탄(呑)자의 가운데 소리와 같으니라ㅡ.는 如卽字 中聲하니라ㅡ는 즉(卽)자의 가운데 소리와 같으니라ㅣ.ㄴ 如侵字中聲하니라ㅣ는 침(侵)자의 가운데 소리와 같으니라ㅗ.ㄴ 如洪字中聲하니라ㅗ는 홍(洪)자의 가운데 소리와 같으니라ㅏ.ㄴ 如覃字中聲하니라ㅏ는 담(覃)자의 가운데 소리와 같으니라ㅜ.ㄴ 如君字中聲하니라ㅜ는 군(君)자의 가운데 소리와 같으니라ㅓ.ㄴ 如業字中聲하니라ㅓ는 업(業)자의 가운데 소리와 같으니라ㅛ.ㄴ 如欲字中聲하니라ㅛ는 욕(欲)자의 가운데 소리와 같으니라ㅑ.ㄴ 如穰字中聲하니라ㅑ는 양(穰)자의 가운데 소리와 같으니라ㅠ.는 如戌字中聲하니라ㅠ는 술(戌)자의 가운데 소리와 같으니라ㅕ .는 如霰字中聲하니라ㅕ는 별(霰)자의 가운데 소리와 같으니라終聲에 復用初聲이요 ㅇ을 連書唇音之下하면 則爲唇輕音이니라初聲合用則 書요 終聲도同이니라 ㅡㅗㅜㅛㅠ는 附書初發聲之下하고ㅣㅏㅓㅑㅕ는 附書於右하나니 凡字必合而成音이니라左加一點則去聲이요 二則上聲이요 無則平聲이요 八聲은 加點同而促急이니라종성(받침)에는 다시 초성을 쓰며 ㅇ을 입술소리 아래에 연해쓰면 곧 입술 가벼운 소리가 된다.초성을 합쳐쓰는데는 어우러 쓸 것이요 종성도 한가지이다.ㅡㅗㅜㅛㅠ는 초성 아래에다 붙혀쓰고 ㅣㅏㅓㅑㅕ는 오른쪽에 붙혀 쓰나니모든 글자는 반듯이 합해서 음을 이룬다. 왼쪽에 한점을 더하면 거성이요, 두 점이면 상성이요, 없으면 평성이요,입성은 점을 더하는 것은 같으되 빠르다.

훈민정음 해례본 

 制字解 (1446.9.상한)

 

天地之道 一陰陽五行而已.  천지 자연(우주만물)의 원리는 오로지 음양 오행일 뿐이다.

坤復之間爲太極 而動靜之後爲陰陽.곤(坤)과 복(復)의 사이에서 태극이 생겨나서 (태극이) 움직이고, 멈춘 후에 음양이 생겨나는 것이다

凡有生類在天地之間者 捨陰陽而何之.무릇 목숨을 가진 무리들로 하늘과 땅의 사이에 있는 것들은 음양을 버리고 어떻게 할 것인가? (따라서, 음양이 가장 중요하다.)

故人之聲音 皆有陰陽之理 顧人不察耳. 그러므로, 사람의 소리는 모두 음양의 이치가 있는데, 사람들이 살펴서 깨닫지 못한 것일 뿐이다.

今正音之作이제 훈민정음을 만드는 것은  

初非智營而力索처음부터 슬기로 마련하고, 애써서 찾은 것이 아니라

但因其聲音而極其理而已. 다만 그 (원래에 있는)성음(의 원리)을 바탕으로 이치를 다한 것 뿐이다.

理旣不二 則何得不與天地鬼神同其用也. (음양의) 이치가 이미 둘이 아니니 어찌 천지 자연, (변화를 주관하는) 귀신과 그 사용을 같이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正音二十八字 各象其形而制之. 훈민정음 이십 여덟자는 각각 그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

初聲凡十七字.초성은 모두 열 일곱자다. 

牙音ㄱ 象舌根閉喉之形. 아음(어금니 소리)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을 본뜨고,설음(혓 소리) ㄴ은 혀(끝)가 윗 잇몸에 붙는 모양을 본뜨고, 

脣音ㅁ 象口形.순음(입술소리) ㅁ은 입모양을 본뜨고, 

齒音ㅅ 象齒形.치음(잇 소리) ㅅ은 이빨 모양을 본뜨고, 

喉音o 象喉形. 후음(목구멍 소리) ㅇ은 목구멍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

ㅋ比ㄱ 聲出稍  故加劃.  ㅋ은 ㄱ에 비하여 소리나는게 세게 나는 까닭으로 획을 더하였다.

ㄴ而ㄷ ㄷ而ㅌ ㅁ而ㅂ ㅂ而ㅍ ㅅ而ㅈ ㅈ而ㅊ o而ㆆ ㆆ而ㅎ ㄴ에서 ㄷ, ㄷ에서 ㅌ, ㅁ에서 ㅂ, ㅂ에서 ㅍ, ㅅ에서 ㅈ, ㅈ에서 ㅊ, ㅇ에서 ㆆ, ㆆ에서 ㅎ으로

其因聲加劃之義皆同 그 소리(의 세기)를 바탕으로 획은 더한 뜻은 모두 같다.

而唯ㆁ爲異.그러나, 오직 ㆁ이 된 것은 다르다. 

半舌音ㄹ 半齒音ㅿ 亦象舌齒之形而異其體無加劃之義焉.반설음 ㄹ과 반치음 ㅿ 역시 혀와 이의 모양을 본떠서 그 모양을 달리했지만, 획을 더한 의미는 없다. 

 夫人之有聲本於五行. 무릇 사람이 소리(말소리)를 내는 것은 오행에 근본이 있는 것이므로 4계절에 어울려 보아도 어그러짐이 없고, 오음(궁상각치우)에 맞춰보아도 틀리지 않는다.(이후의 설명은 아설순치후의 순서가 아니라 발음기관의 가장 안쪽인 목구멍부터 바깥쪽으로 순서대로 설명함) 

喉邃而潤 水也.  목구멍은 (입안의) 깊은 곳에 있고, 젖어 있으니 (오행으로 보면) 물(水)이다.

聲虛而通 如水之虛明而流通也.  소리는 허하고 통하여, 물이 맑아 훤히 들여다 보이고, 두루 통하는 것과 같다.

於時爲冬 於音爲羽.  4계절로는 겨울에 속하고, 5음으로는 우(羽)음에 속한다.

牙錯而長 木也.  어금니는 어긋나고 길어서, 오행의 나무(木)에 해당한다.

聲似喉而實 如木之生於水而有形也.어금니 소리는 목구멍 소리와 비슷해도 실하기 때문에 나무가 물에서 생겨나지만 형체가 있는 것과 같다.

於時爲春 於音爲角. 4계절로는 봄에 속하고, 5음으로는 각(角)음에 속한다.

舌銳而動 火也 혀는 날카롭고 움직여서 오행의 불(火)에 해당한다.

 혀 소리가 구르고 날리는 것은 불이 이글거리며 활활 타오르는 것과 같다.

於時爲夏 於音爲徵4계절로는 여름에 속하고, 5음으로는 치(徵)음에 속한다.

齒剛而斷 金也.  이는 단단하고 (무엇을) 끊으니 오행의 쇠(金)에 해당한다.

聲屑而滯. 如金之屑쇄而鍛成也.  이 소리가 부스러지고 걸리는 것은 쇠가루가 단련되어 쇠를 이루는 것과 같다.

於時爲秋 於音爲商.  4계절로는 가을에 속하고, 5음으로는 상(商)음에 속한다.

脣方而合 土也.  입술은 모나지만 합해지므로 오행의 흙(土)에 해당한다.

聲含而廣 如土之含蓄萬物而廣大也. 입술 소리가 머금고 넓은 것은 흙이 만물을 감싸고 넓은 것과 같다.

於時爲季夏 於音爲宮. 4계절로는 늦여름에 속하고, 5음으로는 궁(宮)음에 속한다.

然水乃生物之源 火乃成物之用 故五行之中 水火爲大.  그러나, 물은 (모든)생물의 근원이요 불은 (모든)생물을 이루는데 쓰이기 때문에, 오행가운데 물과 불이 가장 중요하다.

喉乃出聲之門 舌乃辨聲之管 故五音之中 喉舌爲主也목구멍은 소리를 내는 문이요, 혀는 소리를 구별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오음(아설순치후) 가운데 후음과 설음이 주가 된다.

喉居後而牙次之 北東之位也. 목구멍은 뒤에 있고, 어금니는 그 다음이므로 목구멍 소리는 북쪽, 어금니 소리는 동쪽이다.  

舌齒又次之 南西之位也.  혀와 이가 그 다음이므로, 혓 소리는 남쪽, 잇 소리는 서쪽이다.

脣居末 土無定位而寄旺四季之義也. 입술은 맨 끝에 있으니 흙은 일정한 방위없이 (북동남서쪽에) 붙어서 4계절(후, 아, 설, 치음)을 왕성하게 한다는 뜻이다.

是則初聲之中 自有陰陽五行方位之數也.이런즉, 초성 가운데는 스스로 음양 오행 방위의 수가 있다. 

又以聲音淸濁而言之.또 성음의 청탁으로 말할 것 같으면,  

ㄱㄷㅂㅈㅅㆆ 爲全淸.ㄱㄷㅂㅈㅅㆆ는 전청이 되고, 

ㅋㅌㅍㅊㅎ 爲次淸.ㅋㅌㅍㅊㅎ는 차청이 되고 

ㄲㄸㅃㅉㅆㆅ 爲全濁.ㄲㄸㅃㅉㅆㆅ는 전탁이 되고, 

ㆁㄴㅁoㄹㅿ 爲不淸不濁.ㆁㄴㅁoㄹㅿ는 불청불탁이 된다. 

ㄴㅁㅇ 其聲最不勵  故次序雖在於後 而象形制字則爲之始. ㄴㅁㅇ은 그 소리가 가장 거세지 않은 까닭으로 차례는 비록 뒤에 있지만 모양을 본떠서 글자를 만드는 기본으로 삼았다. 

ㅅㅈ雖皆爲全淸 而ㅅ比ㅈ 聲不勵 故亦爲制字之始. ㅅㅈ은 비록 모두 전청자이지만, ㅅ이 ㅈ에 비하여 소리가 거세지 않은 까닭으로 (ㅅ을 치음) 글자 만드는 기본으로 삼았다. 

唯牙之ㆁ 雖舌根閉喉聲氣出鼻다만, 어금니 소리(아음)의 ㆁ은 비록 혀뿌리가 후두를 막아 소리의 기운이 코로 나오지만,

而其聲與o相似 故韻書疑與喩多相混用그 소리가 ㅇ과 비슷하여 운서에서도 ㆁ가 초성인 의(疑)자와 ㅇ이 초성인 유(喩)자가 자주 서로 섞여 사용된다.

今亦取象於喉 而不爲牙音制字之始.(따라서) 지금 (ㆁ자를) 목구멍에서 본떠 만들었으나, 어금니 소리의 글자를 만드는 기본으로 삼지 않은 것은

盖喉屬水而牙屬木 ㆁ雖在牙而與o相似 猶木之萌芽生於水而柔軟 尙多水氣也. 대개 목구멍은 물(오행의 水)에 속하고, 어금니는 나무(오행의 木)에 속하여 ㆁ은 비록 아음이지만, ㅇ과 비슷하여 마치 나무의 싹이 물에서 나지만 부드러워서 오히려 물기운이 많음과 같기 때문이다.

ㄱ木之成質.  ㄱ은 나무가 바탕을 이룬 것이요,

ㅋ木之盛長 . ㅋ은 나무가 성장한 것이요,

ㄲ木之老壯.  ㄲ은 나무가 나이들어 씩씩하게 된것이니

故至此乃皆取象於牙也.  여기까지 모두 어금니에서 모양을 취한 것이다.

全淸幷書則爲全濁.  전청자를 나란히 쓰면 전탁자가 되는것은

以其全淸之聲凝則爲全濁也.  전청소리가 엉기면 전탁이 되기 때문이다

唯喉音次淸爲全濁者.  오직 후음의 차청인 ㅎ이 (나란히 써서) 전탁자가 되는 것은

盖以ㆆ聲深不爲之凝.   대개 ㆆ은 소리가 깊어서 엉기지 않고

ㅎ比ㆆ聲淺 故凝而爲全濁也. ㅎ은 ㆆ에 비해 소리가 얕아서 엉기고, 전탁이 되는 것이다.

ㅇ連書脣音之下 則爲脣輕音者. ㅇ을 입술 소리 아래에 이어쓰면 순경음이 되는 것은

以輕音脣乍合而喉聲多也.가벼운 소리로써 입술이 잠깐 닿기 때문에 (잠깐 닿았다가 입술을 떼기 때문에) 목구멍 소리가 많기 때문이다.

中聲凡十一字.중성은 모두 11자이다. 

ㆍ舌縮而聲深 天開於子也.  ㆍ는 혀가 오그라져 소리가 깊으니 하늘이 子時에 열린 것과 같이 맨 먼저 만들어졌다.

形之圓 象乎天地.  둥근 모양은 하늘을 본떴다.  

ㅡ舌小縮而聲不深不淺 地闢於丑也. 形之平 象乎地也. ㅡ는 혀가 조금 오그라져 소리가 깊지도 얕지도 않으니 땅이 丑時에 열린 것처럼 2번째로 만들어졌다. 평평한 모양은 땅을 본떴다.

ㅣ舌不縮而聲淺 人生於寅也. 形之立 象乎人也. ㅣ는 혀가 오그라지지 않아 소리가 얕으니 사람이 寅時에 생긴 것처럼 3번째로 생겼다. 일어선 모양을 한 것은 사람을 본떴다.

此下八聲. 一闔一闢.  이 밑의 여덟 소리는 하나는 합(원순모음) 이고 하나는 벽(非원순모음)이다.

ㅗ與ㆍ同而口蹙 其形則ㆍ與ㅡ合而成 取天地初交之義也.ㅗ는 ㆍ와 같으나 입이 오그라지며, 그 모양은 ㆍ와 ㅡ가 어울려 이룸이며, 하늘과 땅이 처음 어우르는 뜻을 취하였다.

ㅏ與ㆍ同而口張 其形則ㅣ與ㆍ合而成 取天地之用發於事物待人而成也.ㅏ는 ㆍ와 같으나 입이 펴지며, 그 모양은 ㅣ와 ㆍ가 어울려 이룸이며, 우주의 작용은 사물에서 나지만 사람을 기다려 이루어지는 뜻을 취하였다.

ㅜ與ㅡ同而口蹙 其形則ㅡ與ㆍ合而成  亦取天地初交之義也.ㅜ는 ㅡ와 같으나 입이 오그라지며, 그 꼴은 ㅡ와 ㆍ가 어울려 이룸이며, 역시 하늘과 땅이 처음 어우르는 뜻을 취함이라.

ㅓ與ㅡ同而口張 其形則ㆍ與ㅣ合而成 亦取天地之用發於事物待人而成也. ㅓ는 ㅡ와 같으나 입이 펴지며, 그 꼴은 ㆍ와 ㅣ가 어울려 이룸이며, 역시 우주의 작용은 사물에서 나지만 사람을 기다려 이루어지는 뜻을 취하였다.

ㅛ與ㅗ同而起於ㅣ.  ㅛ와 ㅗ는 같으나 ㅣ에서 시작되고, (ㅣ 발음과 ㅗ발음을 연이어하는 발음이라는 뜻이다.) 

ㅑ與ㅏ同而起於ㅣ.  ㅑ와 ㅏ는 같으나 ㅣ에서 시작되고, 

ㅠ與ㅜ同而起於ㅣ. ㅠ와 ㅜ는 같으나 ㅣ에서 시작되고, 

ㅕ與ㅓ同而起於ㅣ.  ㅕ와 ㅓ는 같으나 ㅣ에서 시작된다. 

ㅗㅏㅜㅓ始於天地 爲初出也.  ㅗ,ㅏ,ㅜ,ㅓ는 하늘과 땅에서 비롯되어, 처음으로 생긴 것이다.

ㅛㅑㅠㅕ起於ㅣ而兼乎人 爲再出也.  ㅛ,ㅑ,ㅠ,ㅕ는 ㅣ에서 일어나 사람을 겸하여 두 번째로 생긴 것이다.

ㅗㅏㅜㅓ之一其圓者 取其初生之義也.  ㅗ,ㅏ,ㅜ,ㅓ가 둥근 것을 하나로 함은 처음에 생긴 뜻을 나타내고,

ㅛㅑㅠㅕ之二其圓者 取其再生之義也.  ㅛ,ㅑ,ㅠ,ㅕ가 둥근 것을 둘로 함은 두 번째로 생긴 뜻을 나타낸다.

ㅗㅏㅛㅑ之圓居上與外者 以其出於天而爲陽也.  ㅗ,ㅏ,ㅛ,ㅑ의 둥근 것이 위나 밖에 있는 것은 그것이 하늘에서 생겨나 陽이 되기 때문이다. (양성모음이다.)

ㅜㅓㅠㅕ之圓居下與內者 以其出於地而爲陰也.  ㅜ,ㅓ,ㅠ,ㅕ의 둥근 것이 아래나 안에 있는 것은 그것이 땅에서 생겨나 陰이 되기 때문이다. (음성모음이다.)

ㆍ之貫於八聲者 猶陽之統陰而周流萬物也.  ㆍ가 여덟 소리에 두루 사용된 것은 양이 음을 거느리며 온갖 사물에 두루 미침과 같다.

ㅛㅑㅠㅕ之皆兼乎人者 以人爲萬物之靈而能參兩儀也.  ㅛ,ㅑ,ㅠ,ㅕ가 모두 사람을 겸함은 사람은 만물의 영장으로 능히 음양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取象於天地人而三才之道備矣.  하늘과 땅과 사람의 모양을 취하므로 三才의 이치를 갖추느니라.

然三才爲萬物之先  而天又爲三才之始 그러나 三才가 만물의 앞이더라도 하늘이 또한 三才의 시작이니

猶ㆍㅡㅣ三字爲八聲之首 而ㆍ又爲三字之冠也.ㆍ,ㅡ,ㅣ 석 자가 여덟 소리의 머리가 되며 다시 ㆍ가 석 자의 으뜸이 되었다. 

ㅗ初生於天 天一生水之位也.  ㅗ는 하늘에서 먼저 생겼는데, 天數 1은 물을 낳는 자리이다.

ㅏ次之 天三生木之位也.  ㅏ는 그 다음으로, 天數 3은 나무를 낳는 자리이다.

ㅜ初生於地 地二生火之位也.  ㅜ는 땅에서 처음 생겼는데, 地數 2는 불을 낳는 자리이다.

ㅓ次之 地四生金之位也. ㅓ는 그 다음으로, 地數 4는 쇠를 낳는 자리이다.

ㅛ再生於天 天七成火之數也.  ㅛ는 하늘에서 두번째로 생겼는데, 天數 7은 불을 성숙시키는 자리이다.

ㅑ次之 天九成金之數也.  ㅑ는 그 다음으로, 天數 9는 쇠를 성숙시키는 자리이다.

ㅠ再生於地 地六成水之數也.  ㅠ는 땅에서 두번째로 생겼는데, 地數 6은 물을 성숙시키는 자리이다.

ㅕ次之 地八成木之數也. ㅕ는 그 다음으로, 地數 8은 나무를 성숙시키는 자리이다.

水火未離乎氣 陰陽交合之初 故闔. 물과 불은 아직 氣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음과 양이 서로 어우르는 시초이니 오므라진다.(원순모음이 된다.)

木金陰陽之定質 故闢. 나무와 쇠는 음양이 고정된 바탕이니 펴진다.(非원순모음 즉 평순모음이 된다.)

ㆍ天五生土之位也. ㅡ地十成土之數也.  ㆍ는 天數 5로, 흙을 낳는 자리이다. ㅡ는 地數 10으로 흙을 성숙시키는 數이다.

ㅣ獨無位數者 盖以人則無極之眞 二五之精 妙合而凝 ㅣ에만 혼자 자리수가 없음은 대개 사람은 無極의 정수로, 음양오행의 정기가 신묘하게 어울려 엉긴 것으로,

固未可以定位成數論也.  ㅣ에만 혼자 자리수가 없음은 대개 사람은 無極의 정수로, 음양오행의 정기가 신묘하게 어울려 엉긴 것으로, 본래 정해진 자리나, 성숙시키는 자리가 논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是則中聲之中 亦自有陰陽五行方位之數也.이는 곧 중성의 가운데에서도또한 음양,오행,방위의 자리수가 있기 때문이다. 

以初聲對中聲而言之.초성 대 중성으로써 말하면, 

陰陽 天道也. 剛柔 地道也.  陰陽은 하늘의 이치요, 剛柔는 땅의 이치라.

中聲者  一深一淺一闔一闢  중성이 한편으로 깊으면, 다른 한편은 얕고, 또 한편이 합이면, 다른 한편은 벽이니, (모음이 상호 대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是則陰陽分而五行之氣具焉 天之用也. 이는 곧 음양으로 나뉘나 오행의 기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니 하늘(ㆍ)의 작용이다. 

 초성이 허하고, 실하고, 날리고, 엉기고, 무겁고, 가벼운 것은,

是則剛柔著而五行之質成焉 地之功也.  곧 剛柔가 나타나 오행의 바탕이 이루어진 것이니, 땅의 功이다.

中聲以深淺闔闢唱之於前 初聲以五音淸濁和之於後 중성이 심,천,합,벽으로 앞의 것(초성)을 부르면, 초성은 5음의 청,탁으로 뒤의 것 (중성)에 화답하는데,

而爲初亦爲終 亦可見萬物初生於地 復歸於地也. 초성이 되기도 하고, 종성이 되기도 하는 것은 역시 만물이 땅에서 처음 나서 다시 땅으로 돌아가는 이치와 같다.

初中終合成之字 以初中終合成之字言之 초, 중, 종성이 어울려 이루는 글자 (음절)에 대해 말하자면,

亦有動靜互根陰陽交變之義焉. 마찬가지로 움직임과 멎음이 서로 근본이 되어 음과 양이 어우러져 바뀌는 뜻이 있으니

動者 天也. 靜者 地也. 兼互動靜者人也. 움직이는 것은 하늘(초성)이요, 멎어 있는 것은 땅(종성)이며, 움직임과 멎음을 겸한 것은 사람(중성)이라.

盖五行在天則神之運也 在地則質之成也.  대개 오행은 하늘에 있은 즉 신의 운행이요, 땅에 있는 즉 바탕의 이룸이다.

在人則仁禮信義智神之運也 肝心脾肺腎質之成也. 사람에게 있은 즉 仁,禮,信,義,智는 신의 운행이요, 간장, 심장, 비장, 폐장, 신장은 바탕의 이룸이다.

初聲有發動之義 天之事也.  초성에는 일어나 움직이는 뜻이 있으니, 이는 하늘이 하는 일이며,

終聲有止定之義 地之事也.  종성에는 멎어 정하게 하는 뜻이 있으니, 이는 땅이 하는 일이라.

中聲承初之生 接終之成 人之事也.  중성은 초성의 생김을 이어 종성의 이룸에 잇대주니 사람이 하는 일이다.

盖字韻之要 在於中聲 初終合而成音.  대개 자운(음절)의 허리는 중성에 있는데, 초성과 종성을 어우러 소리를 이룬다.

亦猶天地生成萬物 而其財成輔相則必賴乎人也. 이는 역시 하늘과 땅이 만물을 생성하되 그 조절과 보충은 반드시 사람에 힘입음과 같다.

終聲 復用初聲者 以其動而陽者乾也 靜而陰者亦乾也 종성에 초성을 다시 씀은, 그것이 움직여 양이 된 것도 乾이요, 멎어 음이 된 것도 乾때문이니,

乾實分陰陽而無不君宰也. 乾은 실로 음양으로 나뉘어 주재하여 다스리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다.

一元之氣 周流不窮 四時之運 循環無端 태초의 기운이 두루 흘러 다하지 않으매, 4철의 운행이 순환하여 끝이 없으므로

故貞而復元 冬而復春.  貞에서 다시 元이 되고, 겨울이 다시 봄이 되니,

初聲之復爲終 終聲之復爲初 亦此義也. 초성이 다시 종성이 되고 종성이 다시 초성이 됨도 역시 이러한 이치니라.

旴. 正音作而天地萬物之理咸備 其神矣哉 아, 정음이 만들어져 천지 만물의 이치를 모두 갖추니, 그 신이로움이여.

是殆天啓聖心而假手焉者乎.이는 아마도 하늘이 성군(세종대왕)의 마음을 여시고, 그 솜씨를 빌려주신 것이 아니겠는가? 

훈민정음 해례본

初聲解 (1446.9.상한)

 

正音初聲 卽韻書之字母也. 聲音由此而生 故曰母. 正音의 초성은 즉 韻書의 자모이니, 말소리가 이로부터 생겨나므로 '모'라 한다.

어금닛소리 君자의 초성은 ㄱ으로,ㄱ과 운('ㅇ'가 없어야 하는데 표기가 안되네요)이 어울려 군이된다.  

快字初聲是ㅋ ㅋ與ㅙ而爲쾌. 快자의 초성은 ㅋ으로,ㅋ과 ㅙ가 어울려 쾌가 된다. 

뀨字初聲是ㄲ ㄲ與ㅠ而爲뀨. 뀨자의 초성은 ㄲ으로,ㄲ과 ㅠ가 어울려 뀨가 된다.

業자의 초성은 ㆁ 으로,ㆁ 과 업이 어울려 업이 되는 따위이다. 

半舌半齒之閭穰 皆倣此. 혓소리 斗,呑,覃,那, 입술소리 별,漂,步,彌, 잇소리 卽,侵,慈,戌,邪, 목소리 읍,虛,洪,欲,반혀.반잇소리 閭,穰, 모두 이를 따른다.(마찬가지 원리이다)

훈민정음 해례본

中聲解 (1446.9.상한)

 

中聲者 居字韻之中 合初終而成音중성은 음절(字韻)의 가운데 놓여 초.종성과 합하여져 소리를 이룬다.

''자의 중성은 ㆍ로, ㆍ가 ㅌ과 ㄴ 사이에 놓여 ''이 되고, 

卽字中聲是ㅡ ㅡ居ㅈㄱ之間而爲즉.卽자의 중성은 ㅡ로, ㅡ가 ㅈ과 ㄱ 사이에 놓여 '즉'이 되고,

侵字中聲是ㅣ ㅣ居ㅊㅁ之間而爲침之類. 侵자의 중성은 ㅣ로, ㅣ가 ㅊ과 ㅁ 사이에 놓여 '침'이 되는 따위와 같다.

洪覃君業欲穰戌별  皆倣此. 洪,覃,君,業,欲,穰,戌,별, 모두 이를 따른다.

二字合用者두 자가 합하여져서 쓰이는 중성은,

ㅗ與ㅏ同出於ㆍ 故合而爲ㅘ.  ㅗ와 ㅏ는 똑같이 ㆍ에서 나왔으므로 합하여져서 ㅘ가 된다.

ㅛ與ㅑ又同出於ㅣ 故合而爲ㆇ. ㅛ와 ㅑ는 또 똑같이 ㅣ에서 나왔으므로 합하여져서 ㆇ가 된다.

ㅜ與ㅓ同出於ㅡ 故合而爲ㅝ. ㅜ와 ㅓ는 똑같이 ㅡ에서 나왔으므로 합하여져서 ㅝ가 된다.

ㅠ與ㅕ又同出於ㅣ 故合而爲ㆋ.  ㅠ와 ㅕ는 또 똑같이 ㅣ에서 나왔으므로 합하여져서 'ㆋ'가 된다.

以其同出而爲類 故相合而不悖也. 그들은 모두 똑같이 나와 같은 類가 되었으므로, 서로 어우러짐에 어그러짐이 없다 

一字中聲之與ㅣ相合者十 ㅓㅢㅚㅐㅟㅔㆉㅒㆌㅖ是也.  한 字짜리 중성이 ㅣ와 어울린 것은 10개로, ㅓ,ㅢ,ㅚ,ㅐ,ㅟ,ㅔ,ㆉ,ㅒ,ㆌ,ㅖ, 그것이다.

二字中聲之與ㅣ相合者四 ㅙㅞㆈㆋ是也. 두 字짜리 중성이 ㅣ와 어울린 것은 4개로, ㅙ,ㅞ,ㆈ,ㆋ, 그것이다. 

ㅣ於深淺闔闢之聲 幷能相隨者   ㅣ가, 심천합벽의 소리에 두루 능히 서로 따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혀가 펴지고 소리가 얕아 입을 벌리기에 편하기 때문이다.

亦可見人之參贊開物而無所不通也. 역시 사람이 만물을 여는 데 참여하여 통하지 않음이 없음을 볼 수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

종성해(1446.9.상한)

終 聲 解

終聲者. 承初中而成字韻. 如卽字終聲. 是 ㄱ.ㄱ 居 즈 終而爲 즉, 洪字終聲 是 ㆁ. ㆁ居 終而爲 之類종성이란 것은 초성과 종성으로 이어받아서 자운을 이루는 것이다.가령 즉 자의 종성은 ㄱ 이니 ㄱ 은 「즈」의 끝에 있어서 「즉」이 되고  자의 종성은  이니  은 「 」의 끝에 있어서 「 」이 되는 것 따위와 같다.舌脣齒喉皆同. 聲有緩急之殊. 故 乎上去 其終聲不類入聲之促急. 不淸不濁之字 其聲 不?. 故 用於終則宜於乎上去. 全淸次淸全濁之字. 其聲爲?. 故用於終則宜於入. 所以.  ㄴㅁㄹ 六字 爲乎上去聲之終. 而餘 皆位入聲之終也혀소리 입술소리 닛소리 목구멍소리도 마찬가지나소리에는 느리고 빠름의 다름이 있으므로 평성, 상성, 거성은 그 방법이 입성의 촉급과 같지 않고불청 불탁의 글자는 그 소리가 세지 않는 까닭에 받침으로쓰면 입성에 마땅하다.그러므로  ㄴㅁㄹ 여섯자는 평성, 상서, 거성의 받침이 되고 그나머지는 다 입성의 받침이 된다.然 ㄱ ㄷㄴㅂㅁㅅㄹ八字 可足用也. 如 빚곶 爲梨花ㅇ의갗爲狐皮. 而八字 可以通用. 故 只用八字. 且 ㅇ 은聲炎而虛. 不必用於終. 而中聲 可得成音也. ㄷ 如 ㅂ 爲霰ㄴ如군 爲君. ㅂ如업 爲業. ㅁ如땀爲覃. 人如 諺語옷爲衣.ㄹ如 諺語실爲 絲之類.그러나 ㄱ ㄴ ㄷ ㄴ ㅂ ㅁ ㅅ ㄹ 여덟자만으로도 족히 쓸 수 있다.가령 빚곶에는 ㅈ 이오 ㅇ의갗(狐皮)에는 ㅊ이나 ㅅ 자로서 가히 통혀 쓸 수 있는 까닭에 자만 ㅅ 자로 쓰고또 ㅇ 은 소리가 맑고 비어서 반드시 받침에 쓰지 않아도 ㅂ 은 업의 받침이 되고 ㅁ 은 땀의 받침이 되고ㅅ 은 속말로 옷의 받침이 되고 ㄹ 은 속말고 실의 받침이 되는 것 따위와 같다. .五音之緩急. 亦名自爲對. 女牙之   與 ㄱ 爲對. 而 促呼則變爲 ㄱ 而急. ㄱ 舒出則變爲  而緩. 舌之 ㄴ ㄷ脣之 ㅁ ㅂ. 齒之   ㅅ. 喉之 ㅇ ㄴ. 其緩急相對. 亦병是也오음은 느리고 빠름이 각각 저절로 대가 되어있다. 가량 엄소리   은 ㄱ 과 대가 되니  을 빠르게 부르면 ㄱ 으로 변하여 급해지고ㄱ을 천천히 내면   으로 바뀌어 느리니 혀소리의 ㄴ ㄷ 과 입술소리의 ㅁ ㅂ 과잇소리의   ㅅ 과 목구멍소리의 ㅇ ㄴ은 그 느리고 빠름의 상대가 또한 이와 같다.且半舌之 ㄹ. 當用於諺. 而不可用於文. 如入聲之霰字.終聲 當用 ㄷ. 而 俗習讀 ㄹ. 盖 ㄷ 變而爲輕也. 苦用ㄹ 爲霰之終. 則其聲 舒緩. 不爲入也. 訣 曰또 반혀소리 ㄹ 은 마땅이 우리말이나 쓸것이요 한자음에는 쓸 스 없는 것이니가령 입성의 별자도 받침에 마땅이 ㄷ을 써야만 될 것이나 시속에 ㄹ 로 읽으니 대가 ㄷ 이 바뀌어 가볍게 될 것이다.만약 ㄹ을 별자의 받침으로 쓴다면 그 소리가 느리어 입성이 되지 않는다. 결로 말하면不淸不濁用於終. 爲乎上去不爲入.불청불탁을 받침에 쓴다면 평, 상, 거성이 되고 입성이 되지 않으며全淸次淸及全濁. 皆是爲入聲促急.전청과 차청 또 전탁은 모두 다 입성이 되어 촉급하다.初作終聲理固然 只將八子用不窮초성이 되는 이치는 그러하나 다만 여덟자만 써도 궁하지 않다.唯有俗聲所當處 中聲成音亦可通오직 ㅇ 소리만은 마땅히 쓸데에 중성으로 음을 이루어 가히 통하리라.若書卽字終用君 洪霰赤以業斗終만약 즉 자를 쓰려면 ㄱ을 끝에 쓰고,  에는  이요 별에 ㄷ 이 끝이니君業當終又如何 以那霰彌次第推군, 업, 담자의 받침은 또 어떠할가 ㄴ ㅂ ㅁ 차례로써 미루어 알리라.六聲通乎文與諺 戌閭用於諺衣絲여섯자는 한자와 우리말에 두루쓰고 옷과 실의 ㅅ ㄹ 은 우리말에만 쓴다.五音緩急名自對 君聲 是業之促오음의 완급이 다 각각 대가 되니 ㄱ 소리는   소리를 빠르게 낸 것이요斗霰聲終爲那彌 穰欲亦對戌與ㄷ ㅂ 소리가 느리면 ㄴ ㅁ 이되고   ㅇ 은 ㅅ ㄴ과 더불어 대가 된다.閭宜於諺不宜文 斗輕爲閭是俗習ㄹ 은 우리말에는 쓰나 한자에는 않쓰고 ㄷ 이 가볍게 ㄹ 됨은 시속의 습관이라

훈민정음 해례본(합자해; 1446.9.상한)

初中終三聲 合而成字. 初聲或在中聲之上 或在中聲之左. 초.중.종 3성은 어울려야 글자를 이룬다. 초성은 중성의 위에 놓이거나 왼쪽에 놓인다

如君字ㄱ在ㅜ上'군'字의 ㄱ이 ㅜ 위에 있고 

業字ㆁ在ㅓ左之類.'업'字의 ㅇ이 ㅓ 왼쪽에 있는 따위와 같다. 

中聲則圓者橫者在初聲之下 ㆍㅡㅗㅛㅜㅠ是也.중성의 '둥근 것'과 '가로로 된 것'은 초성의 아래에 놓이는데, ㆍㅡ,ㅗ,ㅛ,ㅜ,ㅠ 그것이다. 

縱者在初聲之右 ㅣㅏㅑㅓㅕ是也.'세로로 된 것'은 초성의 오른쪽에 놓이는데, ㅣ,ㅏ,ㅑ,ㅓ,ㅕ 그것이다. 

如呑字ㆍ在ㅌ下

卽字ㅡ在ㅈ下'즉'字의 ㅡ는 ㅈ의 아래에 놓이고,  

侵字ㅣ在ㅊ右之類.'침'字의 ㅣ는 ㅊ의 오른쪽에 놓이는 따위와 같다. 

終聲在初中之下.종성은 초.중성의 아래에 놓인다. 

如君字ㄴ在구下'군'字의 ㄴ은 구의 아래에 놓이고,

初聲二字三字合用幷書초성의 두세字를 합용병서는 

各自幷書 如諺語각자병서는우리말의 혀는 舌을 말하고,소다爲覆物而쏘다爲射之之類. 소다는 물건을 덮는다는 뜻이고, 쏘다는 물건을 발사한다는 뜻이다.

中聲二字三字合用 如諺語.과爲琴柱 .홰爲炬之類.중성의 두,세 字짜리는 어울려 쓰임이 우리말의 .과琴柱, .홰炬와 같다. 

終聲二字三字合用 如諺語흙爲土 .?爲釣 닭때爲酉時之類.종성의 두,세 字짜리는 어울려 쓰임은 우리말의 흙이土를 뜻하고, ?이 낚시를 뜻하고, 닭때는 酉時의 뜻이다. 

其合用幷書 自左而右 初中終三聲皆同.  합용병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것이 초중종성 3성에 모두 해당된다.

文與諺雜用則有因字音而補以中終聲者漢文과 우리말을 뒤섞어 쓸 경우, 漢字의 音으로 인해 중.종성으로 보충하는 일이 있으니, 

如孔子ㅣ魯ㅅ사람之類.孔子에 주격조사가 붙으면, 孔子ㅣ라 표기하고, 魯에 사이시옷이 붙으면 魯ㅅ사람으로 표기하는 것과 같다.

諺語平上去入 如활爲弓而其聲平 돌爲石而其聲上 갈爲刀而其聲去 붇爲筆而其聲入之類. 우리말의 평.상.거.입성은 활弓-평성, 돌石-상성, 갈刀-거성, 붇筆-입성 과 같다.  

凡字之左 加一點爲去聲 二點爲上聲 無點爲平聲모든 글자의 왼쪽에 1점을 더하면 거성, 2점이면 상성, 점이 없으면 평성이고,  

而文之入聲 與去聲相似. 중국자음의 입성은 (우리말의) 거성과 비슷하지만,

諺之入聲無定 或似平聲 如긷爲柱 녑爲脅. 或似上聲 如:낟爲穀 :깁爲繒. 或似去聲 如.?爲釘 .입爲口之類.우리말 입성은 정해진 바가 없으니, 평성과 비슷하여, 긷柱, 녑脅과 같이 되고상성과 비슷하여, :낟穀, :깁繒과 같거나거성과 비슷하여, .?釘, .입口과 같아지는 따위이나,

其加點則與平上去同.그 점찍기는 평.상.거성과 같다. 

平聲安而和 春也 萬物舒泰.  평성은 수월하고 부드러우니 봄이며, 만물이 천천히 피어 자람이라.

上聲和而擧 夏也 萬物漸盛. 상성은 부드러우며 높아지니 여름이며, 만물이 점차 盛함이라. 

去聲擧而壯 秋也 萬物成熟. 거성은 높아지면서 단단해지니 가을이며, 만물의 성숙이라. 

入聲促而塞 冬也 萬物閉藏. 입성은 빠르며 막히니 겨울이며, 만물이 문득 자취를 감춤이라. 

初聲之ㆆ與o相似 於諺可以通用也. 초성의 ㆆ과 o은 서로 비슷하여 우리말에서 통용될 수 있다. 

半舌有輕重二音. 然韻書字母唯一반혓소리에는 가볍고 무거움의 두 소리가 있다. 그러나 韻書의 字母에서는 (구별하지 않고) 오직 하나로 하였고,

且國語雖不分輕重 皆得成音.또한 우리나라말에서는 비록 가볍고 무거움으로 나누지 않으나 모두 말소리가 될 수 있다. 

若欲備用 則依脣輕例만일 별도로 쓰고자 한다면, 입술가벼운소리의 보기를 따라,

o連書ㄹ下 爲半舌輕音 舌乍附上月 . o을 ㄹ 아래 붙여 써 '반입술가벼운소리'가 되는데, 혀가 윗잇몸에 잠깐만 붙는다. 

ㆍㅡ起ㅣ聲 於國語無用. 兒童之言 邊野之語 或有之ㆍ와ㅡ가 ㅣ소리에서 일어난 소리는 우리 나라말에서 쓰임이 없고, 어린이 말이나 시골 말에 간혹 있기도 하는데,마땅히 두 글자를 어울려 쓸 것이니  

其先縱後橫 與他不同.그 세로로 된 글자를 먼저 쓰고 가로로 된 글자를 나중에 쓴 글자는 다른 글자(가로로 된 글자를 먼저쓰고, 세로로 된 글자를 나중에 쓴 글자)와 다르다. 

훈민정음 해례본

용자례 1446.9.상한

用字例(용자례)

初聲ㄱ.는 如:감爲枾.요 ㄱ爲蘆.요 ㅋ.는 如우.케爲未春稻.요 콩爲大豆.요 ㅇ.는 如러.울爲獺.이요 서.에爲流 요 ㄷ.는 如.뒤爲茅.요 .담爲墻.이요 ㅌ.는 如고.티爲繭.이요 두텁爲蟾 .요 ㄴ.는 如노로爲獐.이요 납爲猿이요 ㅂ.는 如볼爲臂.요 :벌爲蜂.이요 ㅍ.는 如.파爲 .이요 .ㅍ爲蠅.이요 ㅁ.는 여:뫼爲山.이요 .마爲薯 .요  .는 如사. 爲蝦.요 드 爲瓠.요 ㅈ.는 如 .자爲 尺.이요 죠.ㅎㅣ爲紙.요 ㅊ.는 如.체爲麗요. .채爲鞭.이요 ㅅ.는 여. 손爲手.요 :셤爲島.요 ㅎ.는 如.부헝爲 .요 .힘爲筋.이요. ㅇ.는 如.비육爲鷄碼雛.요 .ㅂ얌爲蛇.요 ㄹ.는 如.무뤼爲 雹.요 어·름爲氷.이요 ㅎ.는 如아ㅎ爲弟.요 :너ㅎㅣ 爲 .니 라초성 ㄱ은 [:감]이 시(枾)가 되고 [ㄱ]이 노(蘆)가 됨과 같으며 ㅋ은 [우·케]가 미용도(美春 )가 되고 [콩]이 대두(大豆)가 됨과 같으며 ㅎ은 [러·울]이 달(獺)이 되고 [서·에]가 유시(流 )가 됨과 같으며 ㄷ는 [·뒤]가 모(茅)가 되고 [·담]이 장(墻) 이 됨과 같으며 ㅌ은 [고티]가 견(繭)이 되고 [두텁]이 섬여(蟾 )가 됨과 같으며 ㄴ은 [노로]가 장(獐)이 되고 [납]이 원(猿)이 됨과 같으며 ㅂ은 [볼]이 비(臂)가 되고 [:벌]이 봉(蜂)이 됨과 같으며 ㅍ은 [·파]가 총( )이 되고 [·ㅍ]이 승(蠅)이 됨과 같 으며 ㅁ은 [뫼]가 산(山)이 되고 [·마]가 서여(薯 )가 됨과 같으며  는 [사· ]가 하(蝦)가 되고 [드· ]가 호(瓠)가 됨과 같으며 ㅈ는 [·자]가 척(尺)이 되고 [조·ㅎㅣ]가 지(紙)가 됨과 같으며 ㅊ은 [·체]가 사(麗)가 되고 [·채]가 편(鞭)이 됨과 같으며 ㅅ은 [·손]이 수(手)가 되고 [:셤]이 도(島)가 됨과 같으며 ㅎ은 [·부헝]이 휴류( )가 되고 [·ㅂ얌]이 사(蛇)가 됨과 같으며 ㄹ는 [·무뤼]가 박(雹)이 되고 [어·름]이 빙(氷)이 됨과 같으며 ㅎ는 [아ㅎ]가 제(第)가 되고 [:너ㅎㅣ ]가 보( )가 됨과 같다.우.게… 벼(稻)지금까지 경상도 방언에 남아 있음 러.울…너구리(獺)서에…성에(流 , 氷茂子) 두텁…두께비(蟾 ) 납…원숭이 또는 잔나 비(猿, ) ㅂ…팔(臂) ㅍ…파리(蠅) 사.  ㅣ…새우(蝦) 드 …박(瓢, 瓠). .비육…병아리(鷄雛) :너ㅎㅣ…넉새( )中聲●.는 如.ㅌ爲 .요 .풋小豆.요 ㄷ리爲橋.요 .ㄱ래爲楸.요 一.는 如·믈爲水.요 . 발·측 爲 .이요 그력爲上.이됴 드·레爲汲器.요 ㅣ.는 如·깃爲巢요 :밀爲蠟.이요 .피爲稷.이요 .키爲箕.요 ㅗ.는 如·논爲水田.이요. 톱爲鉅.요 호·민爲 .요 버·로爲硯.이요 ㅏ.는 如·밥爲飯.이요 .낟爲鎌.이요 구리爲銅. 이요 ㅓ.는 如브ㅓ爲 .요 :널爲板.이요 서리爲霜.이요 버·들爲柳.요 ㅛ.는 如:죵爲奴.요 .고욤爲 .이요 . 쇼爲牛.요 삽됴爲創朮菜.요 ㅑ.는 如남샹爲龜.요 약爲龜 .이요 다·야爲 .요 쟈감爲蕎麥皮.요 ㅠ.는 如율ㅁ爲薏苡. 요ㅈ爲 飯초.요 슈·룹爲雨 .이요 쥬련爲 .요 ㅕ.는 如.엿爲飴糖.이요 .뎔爲佛寺.요 벼爲稻.요 : 져비爲燕.이니라중성 ●는 [.ㅌ]이 이( )가 되고[.풋]이 소두(小豆)가 되고 [ㄷ리]가 교(橋)가 되고 [ㄱ래]가 추(楸)가 됨과 같으며 一는 [.믈]이 수(水)가 되고 [..측]이 근( )이 되고 [그력]이 안(上)이 되고 [드. 레]가 급기(汲器)가 됨과 같으며 ㅣ는 [깃]이 소(巢)가 되고 [:밀]이 납(蠟)이 되고 [.피]가 직(稷)이 되고 [ .키]가 기(箕)가 됨과 같으며 ㅗ는 [.논]이 수전(水田)이 되고 [.톱]이 거(鉅)가 되고 (호 .민)가 서( )가 되고 [벼.로]가 연(硯)이 됨과 같으며 ㅏ는[.밥]이 반(飯)이 된고 [. 낟]이 겸(鎌)이 도고 [이.아]가 종(綜)이 되고 [사.ㅅ]이 녹(鹿)이 됨과 같으며 ㅜ는 (숫)이 탄(炭 )되고 [.울]이 이( )가 되고 [누.에]가 잠( )이 되고 [구.리]가 동(銅)이 됨과 같으며 ㅓ는 [ 브 ㅓ]이 조( )가 되고 [:널]이 판(板)이 되고 [서리]가 상(霜)이 되고 [고.욤]이 영( )이 되고 [샵도]가 창출채(創朮菜)가 됨과 같으며 ㅑ는 [남샹]이 구(龜)가 되고 [약]이 구벽(龜 )이 되며 [다.야]가 이( )가 되고 [쟈감]이 교맥 피(蕎麥皮)가 됨과 같으며 ㅠ는 [율ㅁ]가 의이(薏苡)가 되고 [ㅈ]이 반초(飯초)가 되고 [슈.륩]이 우산(雨傘)이 되고 [쥬련]이 세( )가 됨과 같으며 ㅕ는 [.엿]이 이당(飴糖)이 되고 [.뎔]이 불사(佛寺)가 되고 [. 벼]가 도(稻)가 되고 [:져비]가 연(燕)이 된다는 것과 같다.풋…팥(小豆, 荳) 발·측…발뒤꿈치( , 踵) 이·아…잉아(綜) 베틀에 쓰이는 실 브ㅓ…(조, 두) 샵도…창출뿌리(蒼朮, 山精, 仙朮) 약…거북의 이름(龜 ) 쟈감…메물껍질(蕎麥皮) ㅈ…밥주걱(초) 슈룹…우산(雨傘) 다·야…대여( ) 세수그릇終聲ㄱ.은 如닥爲楮.요 독爲擁.이요 ㅎ.은 如 :굼벙爲 .요 .올창爲 ?.요 ㄷ.은 如.갇爲笠.이요 싣爲楓.이요 ㄴ. 은 如.神位 .요 .반되爲螢.이요 ㅂ.은 如섭'爲薪.이요 굽爲蹄.요 ㅁ.은 如:범爲虎.요 :ㅅㅣ爲泉.이요 ㅅ. 은如:잣爲海松.이요 .못爲池.요 ㄹ.은 如.ㄷ爲月.이요 :별爲星之類.니라종성 ㄱ은 [닥]이 저(楮)가 되고 [독]이 옹(甕)이 됨과 같으며, ㅎ은 [:굼벙]이 제조( )가 되고 [.울창]이 과두( ?)가 되는 것과 같으며, ㄷ은 [.갇]이 입(笠)이 되고 [싣]이 풍(楓)이 됨과 같으며, ㄴ은 [신]이 구( )가 되고 [ .반되]가 형(螢)이 됨과 같으며 ㅂ은 [섭]이 신(薪)시 되고 [굽]이 제(蹄)가 됨과 같으며, ㅁ은 (:범)이 호(虎)가 되 고 [.ㅅㅣ]이 천(泉)이 됨과 같으며, ㅅ은 [:잣]이 해송(海松)이 되고 [.못]이 지(池)가 됨과 같으며, ㄹ 은 [.ㄷ]이 월(月)이 되고 [:별]이 성(星)이 되는 것 따위와 같다.닥…닥나무(楮) 종이 만드는 나무 싣…단풍나무(楓)섭…섶나무(薪)

훈민정음 해례본

정인지 서문(1446.9.상한)

鄭麟趾 序

有天地自然之聲 則必有天地自然之文. 所以古人因聲制子 以通萬物之情以載三才之道 而後世不能易也. 然四方風土區別聲氣亦隨而異焉.盖外國之語 有其聲而無其字. 假中國文字以通其用 是猶 鑿之 也.豈能達而無 乎. 要皆各隨所處而安 不可强之使同也. 吾東方禮樂文章擬華夏.但方言之語 不與之同. 學書者患其旨趣之難曉 獄者疾其曲折之難通. 昔新羅薛總 始作吏讀 官府民間 至今行之. 然皆假字而用 或澁或窒. 非但鄙 無稽而已 至於言語之間 則不能達其萬一焉.

癸亥冬. 我殿下創制正音二十八字 略揭例義以示之 名曰訓民正音.象形而字倣古篆 因聲而音犀七調. 三極之義 二氣之妙 莫不該括以二十八字而轉換無窮 簡而要 精而通. 故智者不終朝而會 愚者可浹旬而學 以是解書 可以知其義.以是聽訟 可以得其情. 字韻則淸獨之能辨 樂歌則律呂之克諧.無所用而不備 無所往而不達. 雖風聲鶴 鷄鳴狗吠 皆可得而書矣.

逐命詳加解釋 以喩諸人. 於是 臣與集賢殿應敎臣崔恒 副敎理臣朴彭年 臣申叔舟 修撰臣成三問敦寧府注簿臣姜希顔 行集賢殿副臣撰李塏 臣李善老等 謹作諸解及例以敍其傾槪. 庶使觀者不師而自悟. 若其淵源精義之妙 則非臣等之所能發揮也. 恭惟我殿下天 之聖 制度施爲超越百王. 正音之作 無所祖述 而成於自然.豈以其至理之無所不在 而非人爲之私也. 夫東方有國 不爲不久而開物成務之大智 盖有待於今日也歟.

正統十一年九月上澣. 資憲大夫禮曹判書集賢殿大提學知春秋館事世子右賓客臣鄭麟趾拜手稽首謹書.

〈鄭麟趾序 解釋〉

(세상에)천지자연의 (이치에 맞는)소리가 있다면 반드시 천지자연의(이치에 맞는) 글자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중국에서는) 옛 사람이 (그)소리에 따라서 (거기에 맞는) 글자를 만들어서, 그리하여 (그것으로써) 온갖 사물의 실상(實相)과 통하게 하였고, (그것으로써) 삼재의 도리를 책에 싣게 하니, 후세 사람이 능히 (이를) 바꾸지 못하였다. 그러나, 세계는 기후와 토질이 (서로) 나누어져 있으며, 말소리의 기운도 또한 (이에)따라서 서로 다르다.(그런데) 대개 중국 이외의 나라말은 그 말소리는 있으나, 그 글자는 없다.(그래서) 중국의 글자를 빌어서, 그리하여 그 사용을 같이하고 있으니,이는 마치 둥근 구멍에 모난 자루를 낀 것과 같이 서로 어긋나는 일이어서어찌 능히 통달해서 막힘이 없을수 있겠는가?요컨대 (글자란) 모두 각자가 살고 있는 곳에 따라서 정해질 것이지, 그것을 강요하여 같이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우리 동방은 예악(禮樂),문장등 문물제도가 중국에 견줄만하나다만 방언 이어가 (나라말만은) 중국과 같지 않다.(그래서) 글 배우는 이는 그 뜻의 깨치기 어려움을 근심하고법을 다스리는 이는 그 곡절의 통하기 어려움을 괴롭게 여기고 있다. 옛날, 신라의 설총이 처음으로 이두글자를 만들었는데, 관청과 민간에서는 이제까지도 그것을 쓰고 있다.그러나, 모두 한자를 빌어서 사용하므로, 어떤 것은 어색하고 어떤 것은 (우리 말에)들어맞지 않는다. 비단 속되고 이치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말을 적는데 이르러서는 그 만분의 일도 통달치 못하는 것이다.계해년 겨울에 우리 전하께서 비로소 정음 28자를 창제하시고, 간략하게 예의(例義)를 들어 보이시고 이름을 훈민정음이라고 지으셨다.이 글자는 상형해서 만들되 글자 모양은 중국의 고전(古篆)을 본떴고,소리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였으므로 음은 칠조에 맞고,삼재의 뜻과 이기(二氣,陰陽)의 묘가 다 포함되지 않은 것이 없다. (게다가)이 28글자를 가지고도 전환이 무궁하여 간단하고도 요긴하고 정(精)하고도 통하는 까닭에, 슬기로운 사람은 하루 아침을 마치기도 전에 (이를) 깨우치고, 어리석은 이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 이 글자로써 한문을 풀면 그 뜻을 알 수 있고, 이 글자로써 송사를 심리하더라도 그 실정(實情)을 알 수 있게 되었다.한자음은 청탁을 능히 구별할 수 있고, 악가(樂歌)의 율려(律呂)가 고르게 되며,쓰는 데 갖추어지지 않은 바가 없고,(어떤 경우에라도) 이르러 통달하지 않는 곳이 없다.바람소리, 학의 울음소리,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일지라도 모두 이 글자를 가지고 적을 수가 있다. 드디어 (세종께서) 저희들에게 자세히 이 글자에 대한 해석을 해서 여러 사람들을 가르치라고 분부하시니,이에 신(臣)은 집현전 응교 최 항, 부교리 신 박팽년, 신 신숙주, 수찬 신 성삼문, 돈녕부 주부 신 강희안, 행(行)집현전부수찬 신 이개, 신 이선로 등과 더불어삼가 여러 해(解 )와 예(例)를 지어서 이 글자에 대한 경개를 서술하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승이 없어도 스스로 깨우치도록 바랐사오나, 그 깊은 연원이나 , 자세하고 묘한 깊은 이치에 대해서는, 신들이 능히 펴 나타낼 수 있는 바가 아니다. 공손히 생각하옵건대우리 전하께서는 하늘이 내신 성인으로서 지으신 법도와 베푸신 시정 업적이 백왕(온갖 임금)을 초월하여,정음을 지으심도 어떤 선인(先人)의 설을 이어 받으심이 없이 자연으로 이룩하신 것이라. 참으로 그 지극한 이치가 들어 있지 아니한 데가 없으니, (이는) 어떤 개인의 사적(私的)인 조작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대저 동방에 나라가 있음이 오래 되지 않음이 아니나, 문물을 창조하시고 사업을 성취시켜 주실 큰 지혜는 대개 오늘을 기다리심이 계옵셨구나! 정통 11년 9월 상한, 자헌대부· 예조판서· 집현전 대제학· 지춘추관사· 세자 우빈객,신 정인지는두 손 모아 절하고 머리 조아려 삼가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