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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김 뿌리찾기/뿌리찾기

증 가선대부 병조참판 김락석 묘갈 탁본

by 연송 김환수 2015. 7. 30.

안산김씨 "증 가선대부 병조참판 김락석공" 묘갈 탁본입니다.

 

추증을 받은 병조참판은 조선시대 6조(六曹)에 두었던 종2품직으로 정2품 병조판서(判書)를 보좌하는 차관격(次官格)이었으며 오늘날 국방부 차관정도의 직책입니다.

 

탁본 이미지는 타 문중 어르신이 소장하시고 계시는데 부탁을 드려서 제공받았습니다. 하지만, 락석공 할아버지를 우리 안산김씨 족보에서 찾을수가 없네요.

 

26世 락(樂)자 항렬에서만  찾다보니 찾지를 못하는 것인지 등재가 안된 것인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다시 시간을 내어서 전수조사로 찾아볼 생각이지만 오랜시간이 걸릴듯 합니다. 물론 찾을수만 있다면 한달이 걸리더라도 찾아야 되겠지요.

 

아래 묘갈 탁본의 주인공이신 락석공 할아버지에 대해 아시는 분은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朝鮮 贈 嘉善大夫 兵曹參判 安山金公 諱

조선 증 가선대부 병조참판 안산김공 휘

樂奭 墓   贈 貞夫人 安東權氏 祔左

락석 묘   증 정부인 안동권씨 부좌

 

 

 

 

 

추가 탁본 이미지를 받아보니 아래 창암 김상채 선생님과 연관이 있는 듯 합니다.

 

족보상 계보

 

시조 상서좌복야 안산현 개국후 김긍필(金兢弼) 1

연성군 김정경(金定卿) 12

좌참찬 개() 13

사재감정 맹전(孟銓) 사재정공파 파조 14

건수(乾壽) 15

귀선(貴善) : 1614년생 光海6 甲寅(갑인)         19

연준(延埈) : 1652년생 孝宗3 壬辰(임진)         20

진해(振諧) : 1670년생 顯宗11 庚戌(경술)       21

상빈(尙彬) : 1687년생 肅宗13丁卯(정묘)        22

제량(悌良) : 1704년생 肅宗30 甲申(갑신)       23

       석량 : 1714 肅宗40 甲午(갑오)

종범(鍾範) : 1726년생 英祖2 丙午(병오)         24

현택  성택 윤택:1826 純祖26 丙戌(병술)   25

   l       l       l

동수  동완  락훈(樂薰)                       26

 

묘갈 및 창암집 계보

(창암집 권3 족보서)

 

 

 

 

 

 

창암 상채는 振武 7세손

 

 

 

5대  석 (磶)          21세

고조 창암 상채(尙彩) 22세 (형 상질)

증조 제량(悌良)        23

 

   종범(鍾範)          24

   시택(始澤)          25

 

      락석(樂奭)          26

 

창암집에 언급된 가족사항 부(父) 김석(金磶)과 형 상질(尙質) 미반영

 

* 창암집 족보서 추정된 가계도

 

未詳未詳─┬─

                   ├─--- 尙彩

                   │          ║ -┬─ 濟良 ── 宗軾

                   │結城張氏   ├─ 忠良

                   │昌漢의 女  ├─ 國良

                   └─          ├─ 喆良 夭

                                      └─ 女 ═ 金壽完

 

蒼巖集(창암집) 영인간행 및 해제(解題) 작성 중

http://blog.daum.net/yescheers/8598162

 

한국고전번역원 : 창암집 검색

http://www.itkc.or.kr/itkc/Index.jsp

 

 

추증(追贈)

동양의 고대 봉건 국가에서 어떤 인물이 죽은 후에 생전의 공적이나 활동을 살펴 조정(朝廷)에서 그 관직을 올려주는 것이다. 추증은 원래 추은봉증(追恩封贈)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증되어 받은 관직 이름 앞에는 ()’자를 붙여 생전에 실제 관직을 역임한 경우와 구분할 수 있게 한다. 이를테면, 홍길동이라는 인물이 사후에 자헌대부 이조 판서 겸 지의금부사로 추증되었다면 증 자헌대부 이조판서 겸 지의금부사 홍길동이 된다. 이는 묘비명이나 실록 등의 기록에서 자주 관측할 수 있다.

 

조선에서는 종친(왕족), 문관, 무관 가운데 2품 이상인 관료는 그의 조상을 삼대까지 추증하여, 부모는 본인의 품계에 준하고 조부모와 증조부모는 본인의 품계에서 1품계를 강등하여 관직을 주었다. 또한 아내에게는 남편의 벼슬에 준하는 품계를 주었다. 이를 삼대 추증(三代追贈)이라 한다. 또한 왕비의 친정아버지(왕의 장인)에게는 정1품 의정부 영의정을, 대군(大君)의 장인에게는 정1품 의정부좌의정을, ()의 장인에게는 종1품 의정부우의정, 세자의 장인에게는 종1품 의정부 좌찬성 등을 각각 본인 사후에 추증하였고, 그 위의 삼대에도 그에 맞게 추증하였다. 공신의 아버지에게도 일정한 직위를 주었다. 공신의 아버지에게는 그 공신의 직책에 준하는 공신직책을 부여하고 자손의 관직에 준하는 직책을 추증하거나, 관직을 지낸 사람은 그가 살아생전에 최종적으로 지낸 관직에서 1계급을 더 추가로 추증하는 방식이었다.

 

가증(加贈)

동양의 봉건 왕조에서 어떤 인물이 죽은 후에 이미 추증되어 관직이 오른 사람에게 다른 사유로 그 생전의 관직을 재차 올려줄 경우 이를 가증(加贈)이라 한다. , 일단 추증되거나 증직(贈職)된 관직을 다시 승진시키는 조치이다. 또한 왕이 되지 못하고 죽은 왕족이나 왕의 조상에게 사후에 왕과 왕비의 지위를 주는 것은 추존(追尊) 또는 추봉(追封), 추숭(追崇)이라 한다. 현대사회에서도 근무중 순직자나 공적이 현저한 자에 한하여 계급을 최소 1~2계급에서 그 이상 올려주는 경우도 있다. 이는 추서(追敍)라고 한다.

 

증직(贈職)

증직(贈職)은 동양의 봉건 왕조에서 어떤 인물이 죽은 후에 그 생전의 관직을 올려주는 것이다. 관직이 없던 인물에게 관직을 추서하는 것을 추증(追贈)이라고 하는데, 비슷한 의미이다. 일단 추증되거나 증직된 관직을 나중에 다시 올려주는 것을 가증(加贈)이라고 한다. 특별한 호칭, 이름 대신 활용될 수도 있는 지위를 올린다는 것에서 단순히 관직, 직책을 사후에 붙이는 추증이나 증직과는 의미가 다르다.

 

추존(追尊)

추존(追尊)이란 동양에서 어떤 인물이 죽은 뒤에 그를 높여 부르는 특별한 호칭을 올리는 일이다. 특별히 왕 또는 황제로 추존하는 일을 추숭(追崇)이라 한다. 한편 아랫 사람이나 신하에게 높여 부르는 특별한 호칭이나 제후직을 사후 내리는 것과 군, 부원군, 대원군 등의 작위를 사후 올리는 일은 추봉(追封)이라고도 한다.

 

왕조에서 추존하는 대상은 대부분 왕족이나 황족, 제후 등이며, 민간에서 추존하는 대상은 조상 가운데 쇠퇴한 가문을 일으켜 세운 사람으로 중시조로 추존한다(보첩#용어).

 

그밖에 죽은 승려의 불덕을 높이 사서 국사 또는 왕사 등의 호칭을 올리는 일도 추존이라 하며, 불교를 숭앙한 고려 때에 여러 고승을 왕명으로 추존하였다.

 

증직 (贈職)

공신(功臣)충신(忠臣) 효자(孝子) 및 학덕(學德)이 높은 사람 등()에게 죽은 뒤에 벼슬을 주거나 높여 주던 일, 또는 그 벼슬

 

가선대부 (嘉善大夫)

조선시대 종이품(從二品)의 문관과 무관에게 주던 품계이다. 종이품의 하계(下階)로서 가정대부(嘉靖大夫가의대부(嘉義大夫)보다 아래 자리이다. 경국대전(經國大典) 이후로 문무관에게만 주다가, 대전회통(大典會通)에서는 종친(宗親)과 의빈(儀賓: 임금의 사위)에게도 주었다.

()에게는 정부인(貞夫人)의 작호(爵號)가 주어졌다.

 

병조참판 (兵曹參判)

조선시대 병조(兵曹)에 둔 종이품(從二品) 관직으로 정원은 1원이다. 위로 병조판서(兵曹判書: 正二品)가 있고, 아래로 병조참의(兵曹參議: 正三品 堂上), 병조참지(兵曹參知: 正三品), 병조정랑(兵曹正郞: 正五品), 병조좌랑(兵曹佐郞: 正六品) 등이 있다. 판서를 정경(正卿)이라고 하고, 참판은 아경(亞卿)이라고 한다.

 

원래 사평부(司平府)에 두었던 좌사(左使우사(右使)1404(태종 4) 3월 참판사평부사(參判司平府使)라고 개칭했다가, 14051월 사평부가 호조(戶曹)에 병합될 때 육조의 의랑(議郞) 2원을 좌·우참의(左右參議)로 바꾸었다. 1432(세종 14)에 참판·참의 각각 1원으로 개편되어 각 조()의 판서를 보좌하는 차관으로, 예하 주요기관의 제조(提調)를 겸하였다. 1894(고종 31)의 갑오개혁 이후에는 협판(協辦: 勅任官)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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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채 (金尙彩)생몰년 미상. 조선 영조 때의 시인.

 

본관은 안산(安山). 초명은 상현(尙炫). 자는 경숙(敬叔). 호는 창암(蒼巖). 중인 출신. 진무(振武)의 7세손이라고 하나 가계는 자세히 알 수 없으며, 아들 제량(濟良)이 영·정조시대에 시인으로 행세하였고, 손자인 종식(宗軾) 또한 시인 장혼(張混)과 친구로 여항의 시인이었다.

 

정5품의 품계인 통덕랑(通德郎)을 제수 받았으나, 어떠한 관직을 역임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가정은 비교적 윤택하였다고 전해진다. 어려서부터 큰아버지에게서 학문을 익혔고 장성해서는 장인인 장창한(張昌漢)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초기 여항문학이 대두하던 시대에 활동하였던 시인으로, 『풍요속선(風謠續選)』에 시가 실려 있다. 여항시인으로 이름 있는 엄한붕(嚴漢朋)과 가까이 지냈고, 홍우택(洪禹澤)·전만종(田萬種)·최상집(崔尙楫) 등과 어울렸다. 글씨에 능해 초서·해서를 잘하였다.

 

조엄(趙曮) 등 풍양조씨 일가에서 서리를 지내면서, 한편으로 유자(儒者)의 도리를 좇는 데 치중하였다. 인간이 초목금수와 구분되는 요소 8가지를 제시하여 이를 효·제·충·신·예·의·염(廉)·치(恥)라고 규정하였으며, 이들 요소를 주제로 잠언(箴言)을 짓기도 하였다.

 

그의 시에는 이와 같은 덕성이 반영되어 조탁을 일삼지 않고 돈박(敦樸)하며, 또한 섬세한 묘사에도 뛰어나다는 평을 얻는다. 언행이 조심스러웠고 특히 자식교육에 힘써 아들이 불민한 것은 아비가 불민해서이며, 아들이 무식하면 이 또한 아비가 무식하기 때문이라는 내용의 「계자책기(戒子責己)」라는 시를 쓰기도 하였다.

 

아들 제량과 손자 종식도 시로써 이름을 날려, 3대를 이어 시명을 떨쳤다. 저서로 『창암집』 3권 1책이 있다.

[참고문헌]

『창암집(蒼巖集)』

『삼성재유고(三省齋遺稿)』

『풍요속선(風謠續選)』

『한국평민문학사(韓國平民文學史)』(구자균, 문조사,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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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암록 권3

 

族譜序 b_079_528a

 

我金之貫安山者自麗太師忠翊公始忠翊之子文匡公文匡之子議政公世爲輔佐本朝受命議政之子威靖公又贊大業四世卿相勳德郅隆實爲東韓之甲族而世代寖遠文獻殘缺威靖之緖纔一傳而失其譜家乘所錄只述振武公以下而其上不知逸幾代後孫之痛恨當如何哉然吾宗之祖忠翊者079_528b已始於振武公振武公之祖忠翊者計其時距古稍近傳聞猶及必有可據以爲祖者故祖之耳然則吾宗之祖忠翊者庶其免於歐氏譜遠胄之謬也耶嗟乎空同子之言曰子孫而不錄其先人是悖亂之行也此吾譜之所以作也忠翊公則書以始祖而序五世相傳之統以述其所自出振武公則書以後孫而接宗系旣絶之後以明其所重始此吾譜之所以詳也夫譜也者所以合族也族大矣思所以合之况吾宗之祖振武公者纔三派而不越于同堂功緦之親也乎且余於是役尤有所悽然以悲而惕然以懼者079_528c夫以四世卿相之家而至於失譜則可想其中世陵替之極而振武公以後一向不振以至于今然安知夫來者又有甚於今日也哉凡我譜中人見先祖之起家而知孝敬之能致位傷中世之失譜而知文學之能傳家念後孫之不克負荷而知勤儉仁厚之能獲福則其於合族也何有吾宗其勉之哉其勉之哉譜旣成不曰族譜而曰世譜者秖錄振武公一派故云

聖上二十七年辛未閏夏上浣振武公七世孫通德郞尙彩謹序

 

 

창암록 권3

 

족보서 b_079_528a

 

아금지관안산자자려태사충익공시충익지자문광공문광지자의정공세위보좌본조수명의정지자위정공우찬대업사세경상훈덕질륭실위동한지갑족이세대침원문헌잔결위정지서재일전이실기보가승소록지술진무공이하이기상불지일기대후손지통한당여하재연오종지조충익자079_528b이시어진무공진무공지조충익자계기시거고초근전문유급필유가거이위조자고조지이연칙오종지조충익자서기면어구씨보원주지류야야차호공동자지언왈자손이불록기선인시패란지행야차오보지소이작야충익공칙서이시조이서오세상전지통이술기소자출진무공칙서이후손이접종계기절지후이명기소중시차오보지소이상야부보야자소이합족야족대의사소이합지황오종지조진무공자재삼파이불월우동당공시지친야호차여어시역우유소처연이비이척연이구자079_528c부이사세경상지가이지어실보칙가상기중세릉체지극이진무공이후일향불진이지우금연안지부래자우유심어금일야재범아보중인견선조지기가이지효경지능치위상중세지실보이지문학지능전가념후손지불극부하이지근검인후지능획복칙기어합족야하유오종기면지재기면지재보기성불왈족보이왈세보자지록진무공일파고운

성상이십칠년신미윤하상완진무공칠세손통덕랑상채근서

 

 

 

忌日錄序 b_079_528d

 

夫祭祀最是人子致誠處也盖已沒之親不可追養而若非祭盡其誠則爲人子追遠之慟無處可寓當依家禮以奉先祀可也嗚呼或世代寖遠子孫微弱失其世譜忘其先忌仍以昏昧永喪家道者聞多有之後孫之痛恨當如何哉至於吾家則有世系譜錄與先忌日錄而今又幷子孫重錄使內外諸孫居常披閱熟知而永垂香火之禮節諸孫各自勉旃謹奉先祀毋違家法焉且余於是事今有所悽然以悲者家君兩外宗及余外宗家兒外宗合四門子孫079_529a絶或僅存故其世代幷職銜于其末以憑其識吾家後孫其須識之

 

 

기일록서 b_079_528d

 

부제사최시인자치성처야개이몰지친불가추양이약비제진기성칙위인자추원지통무처가우당의가례이봉선사가야오호혹세대침원자손미약실기세보망기선기잉이혼매영상가도자문다유지후손지통한당여하재지어오가칙유세계보록여선기일록이금우병자손중록사내외제손거상피열숙지이영수향화지례절제손각자면전근봉선사무위가법언차여어시사금유소처연이비자가군량외종급여외종가아외종합사문자손079_529a절혹근존고기세대병직함우기말이빙기식오가후손기수식지

 

家錄序 b_079_529a

 

夫家之有錄錄家事也凡世之喬木之家或有日記與家藏皆所以載世德也感恩數也則吾家安敢有家錄乎雖然吾家之有是錄蓋有所以而發也嗚呼何者不肖惸惸早失所祜三塊血肉未及齠齔悲風樹之不靜詠蓼莪而追慕僾然此心常切于中及至壯年竆而且窶家業冷落立揚無地則家蹟之可攷涉世之甚艱顧何從而憑也耶余於庚戌歲始記乙079_529b酉以後事而乙酉乃舍伯之生歲也裒錄吾家間聞見隨得載筆仍以成軸矣每閑而無事時披去閱來撫躬自傷不覺涕下遂因爲記以爲吾家之永傳錄也

 

 

先塋修葺記 b_079_529b

 

自京東郊二十里楊州牛耳卽余丘墓鄕自高祖府君以下葬以昭穆松檟成行而昔我先君之葬不肖輩孤蒙封而不樹者于今三十有三秊今將涓吉玆於高曾祖王考之墓崇其封域樹墓前石床前面皆079_529c刻以某官某府君之墓先君宅兆別立尺碣以表其識五代祖 先山在維楊小牛耳也高祖兩府君軸主並祧而埋安于同岡墓後卽癸酉二月十七日也嗚呼自我先祖世篤謙恭至于先府君幽光隱德足以範後人垂來裔鋪張鴻筆炳耀龜趺亦不爲侈而顧有所不必爲者謙恭世德不在斯矣毋寧遵先志之儉約而子孫繩烈世守兆域則于祖先實有光焉凡吾先府君子孫者各自勉旃日誦斯文可謂碑在口也安用顯刻也歲癸酉暮春不肖子尙彩泣血謹述

 

行狀

 

 

張聘君行狀 b_079_529d

 

公諱昌漢字子章結城之張曾祖曰得賢贈通訓大夫軍資監正祖曰來吉贈通政大夫掌隸院判決事行副司果考曰碩禧贈嘉善大夫漢城府左尹妣順興安氏贈嘉善大夫漢城府左尹德厚之女公以肅廟庚申正月二十八日生公早失所怙而事母氏極其誠孝有兩弟起漢遇漢而友愛甚篤公氣度閒雅而持身接物務合古禮自少家居只爲菽水之供而已若家人產業則不屑也公於辛酉遭先妣喪哀毁骨立幾至滅性服闋尙有餘哀竟以丙079_530a寅十二月二十六日寢疾終于典醫洞仲氏家享年六十七葬于楊州鎭官里先塋側卯向之原嗚呼余以己酉館甥於公門深被恩愛顧今日知公之言行者宜莫如余也公天性恭儉積仁潔行於一切財利淡如也故末年未免屢空而公則不以爲意焉如公卓絶之姿宏博之心余不可復見矣公娶彥陽陳氏萬戶起英之女自公遠逝歸依余家壬申卒余躬視殯殮附公之右公無子只有四女長適金尙彩卽余也次朴世燁次金義臣次尹長禧嗚呼詩云自天申之又云孝子錫類以公仁孝宜享厚祿而卒而無079_530b天之保佑善人也果何如耶歲癸酉菊秋外甥安山金尙彩謹狀

 

雜著

 

 

倣先聖訓誡述編八章敎誨諸子姪b_079_530b  

 

詩不云乎哀哀父母生我劬勞欲報之德昊天罔極身體髮膚受之父母子非父母則不可以生矣是以父母愛之喜而不忘惡之勞而無怨洞洞屬屬竭誠致敬養志無違常恐不及則於事親之道庶幾寡過矣古人有泣竹而筍生鑿冰而魚躍者此豈人力之攸及莫非誠孝之感天而然也爲人子而養其親079_530c何不以是觀感而思其所以耶必須躬幹家事竭力經備而甘旨之供衣服之節無失其時雖父母之命事或小害於理則亦必下氣怡聲委曲陳達期於聽從可也子曰立身有義而孝爲本或持身不謹出言無章嬉戲度日者皆是忘父母之類也可不懼哉可不愼哉况歲月如流事親日少爲人子者尤當盡其誠孝不可頃刻怠忽也右事親

夫祭也者子孫所以追遠感時事死如事生之意也蓋已沒之親不可追養而若非祭盡其誠則終天之痛無處可寓是以孝子之於祭也散齋致齋專心致079_530d思其居處思其笑語思其所樂思其所嗜夫然後當祭之時如見其形如聞其聲此所謂誠至而神享者也家有疾故則量宜行祭可也而財力有可及者則饌品多寡一依祭儀貧則稱家之有無雖菜果菲薄之饌盡其誠敬享以精潔洋洋升降庶幾俯格此亦不愈於不祭乎且祭之輪行非禮矣墓祭則雖輪行皆祭于墓上猶或可也而至於忌祭則不祭于神主而乃祭于紙榜此甚未安矣古人曰盡其心者祭之本也盡其物者祭之末也今者人子之欲祭盡其誠者宜監玆而思勉可也右奉祭

079_531a漢書云黃金滿籝不如敎子一經人孰不愛子義方之敎亦不可得以見矣子若稍長則宜出就外傅嚴勅督課不敢少懈必以禮法自持而尤篤於愛親敬長導迪之意敎誡之言使之服膺而勿失然則操修旣篤聲譽日彰初無營求而爵祿自至此所謂立身揚名以顯父母者也爲其子責成之道是外更何求哉若今日不敎明日不誨一向委靡幼以不學老而無述則雖有良能何以知入孝之道雖有美質何以識出悌之義乎而况爲父所望非名利則雜藝爲子所習非豪俠則驕奢不知廉恥之爲貴禮義之可079_531b橫恣無忌自以爲得終未免反道悖德之歸豈不大可惜哉是故古人曰至要莫如敎子又曰愛而不敎是獸畜之也可不念哉右敎子

夫兄弟者同受父母遺體骨肉相屬血脈相通與我一身初無彼此如使兄飢而弟飽弟寒而兄溫是猶一人之體或有便利或有不仁者豈能安於心乎今之人或溺於妻子而不愛其兄弟至有爭田而起訟貪財而相賊視若仇敵如有愛父母之心則豈不愛父母之子而反自相害乎夫子曰百行之本忍之爲上兄弟之間雖有小失當以義理相規感悟上以079_531c慰父母之心下以全同氣之情不失其相愛也昔辥包與其弟分財奴婢必取其老田廬必取其頹器物必取其敗者司馬溫公事其兄伯康保之如嬰兒食少頃則曰得無飢乎天少冷則衣無薄乎人之於兄弟處之若是則復豈有相爭失和之理哉故詩曰兄及弟式相好矣無相猶矣右友愛

朱子曰家貧不可因貧而廢學家富不可恃富而怠學貧若勤學可以濟貧富若勤學可以守富若學者常存此心敬對方冊專心致志反復沈潛而溫故知新竆理明善則仁義之敎曉然在前踐履之操自然079_531d彌篤以至欲罷而不能也古聖賢所以用心行己之方與夫善惡之所以可效可戒者非學問亦何以知其然乎是以爲人之道莫如勤學也故學則愚者必明柔者必強矣四書六經循環熟讀使義理尋常浹洽通古今達事變以長識見則不翅若披雲見日登高望下者矣如其不學則心地茅塞義理茫昧牛襟馬裾恬不知媿而終不免亡身喪家之歸可不懼哉是以學者爲君子不學者爲小人而吾夫子亦嘗曰博學而篤志仁在其中矣右勤學

人之有子孫猶木之有枝葉也木有根本然後有枝079_532a人有祖先然後有子孫三親九族皆出一本雖有親疎以祖先之心視之則均是子孫豈有親疎哉爲子孫者苟能以子孫之心爲心而視祖先之子孫無以親疎則吾與宗族無物我也無彼此也飢寒相卹患難相救和氣藹然世世雍睦不失敦親之義則豈不休哉如或反目視若路人死喪之來不相顧焉憂患之際不相救焉則是非但情義之薄實不體我祖先之心今何以顔面入於家廟他日又何以顔面歸拜祖先於地下乎昔范文正公希文爲參知政事時恩例俸賜常均於族人並置義田宅此可以法也079_532b凡吾宗族無論疎近自吾祖先視之誰非同血共脈知此可以知睦族之義也右睦族

先儒曰見人之善而尋己之善見人之惡而尋己之惡苟能見人之善而尋我之善則其誰不善見人之惡而尋我之惡則其誰爲惡故勿以惡小而爲之勿以善小而不爲然則積善之道豈有佗哉只是勿爲私欲所蔽必充其本然之量溫恭慈惠公平正直常以尊德樂道之誠仁民愛物之意存諸胷中今日行一善事明日行一善事銖累寸積以至於博厚之域也日用動靜隨事得宜未嘗有賊仁害義之事則善079_532c不可勝用而福祿自來殃孼不作是以易曰積善之家必有餘慶積不善之家必有餘殃爲人者敢不積善而求其福反爲積不善而罹其殃耶一念之善景星慶雲一念之惡凶荒札瘥至若利己害人之事雖毫末尤不可存於心也右積善

凡齊家者當謹守禮制不以恩掩義率其妻孥分之以職授之以業責其成功事無大小使卑幼毋敢自專必稟長者冠昏之禮喪祭之需亦皆各當其可無或踰分則財用節而家道正若夫貧窶而不失其所守者鮮矣常誦古人竆視其所不爲貧視其所不取079_532d之訓反己省念無有忮求則豈不快哉必須省其宂費禁其奢華深思遠慮稍存贏餘以備不虞可也今之學者外有修飭內無操檢夫婦之間袵席之上不能以禮相敬以至於家道喪而倫常滅是故君子之道造端于夫婦夫婦之道定然後上可以安父母下可以正子孫而齊家之本立矣可不愼哉至於婢僕代我之勞念其飢寒先恩後威上下和睦使無怨懟之心此亦治家之一端也右治家

 

[金宗軾]

 

夫祖先之文墨乃是傳家之寶而况我祖考文不讓於古人筆不違於古人齊家法度言不愧於古079_533a列此八條垂訓子孫書之屛障贈金公壽完氏金公卽我姑氏之夫亦承此訓傳之於高郞命昌高郞卽金公之壻也後其子孫不能遵守歸於某氏者爲若干年余之姊夫朴公季淳歸其直而取之一屛三傳爲壻者旣非偶然蓋此屛之訓辭謹嚴筆法軒豁百世之後人皆可以爲寶而况爲子孫者乎是以余替糚一屛書其八條易是屛而藏之歲月旣多字畫汚漫漸就壞破故余懼其屛不能悠久於是乎取其屛上親筆改糚一帖藏諸深笥矣今當開印摭其事實付之于下惟我後裔079_533b世承垂誡幷與帖而勿失則非獨不負我終始勤勤之微意庶可遵我祖考遺後之澤勉旃勉旃丙子三月上澣小孫宗軾敬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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