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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김 뿌리찾기/뿌리찾기

중국교포의 조상찾기 / 아시는 분은 도움주세요

by 연송 김환수 2013. 11. 17.

질의

 

안산김씨에 대해서 잘부탁요

김용무 조회 7 2013.09.20. 03:52

 

안녕하세요

전중국에 잇는 교포 김용무라 합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전에 우리는 고산안산김씨라고 알려주더라고요 혹시 이김씨에대해서 아시는분 잘부탁요 할아버지가 돌라가시면서 조선에 가면 종상에 대해서 알아보시라고 해서 어명해서요 아시는분 잘부탁드려요 전번 01054336665

 

질의

고산안산김씨 각파에대해서

김용무 조회 10 2013.09.20. 04:07

고산 안산김씨라고 아시는분님들 대글좀부탁요 전번 01054336665 김용무 할아버지 이름은 김재순 조선시대에 평양북도 1910 출생 1981 중국서거 마지막예원 (조선으로가서 조상에대해서 알아보게라.)

 

 

 

답변

 

안녕하세요. 뿌리 찾는 글을 늦게 보았습니다.

우리 문중에 고산파를 쓰는 소문중은 없는데 괴산파(판서공파) 인 것 같습니다.

 

이글을 보시면 할머니 본관,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 성함과 증조할머니, 고조할머니의 본관을 올려주시면 족보 등재여부를 찾아 보겠습니다.

 

* 윗대 할아버지 형제분들의 함자도 아시는 범위까지 모두 올려주셔야 찾기가 좋습니다.(집안에는 돌림자를 사용하기에 같은 이름이 많아 착오를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본 블로그의 아래 내용을 먼저 읽어 보시면 많은 도움이 되실 겁니다.

자신의 뿌리를 찾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http://blog.daum.net/yescheers/8598424

 

저는 아래 주소의 안산김씨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http://blog.daum.net/yescheers

 

참고로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괴산안산김씨가 아니고

고산완산김씨가 맞다면 전주김씨또는 완산김씨일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산(高山)이란 지명은 현재의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읍의 옛지명이고 완산(完山)은 전주(全州)옛 지명이기 때문입니다.

8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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完山金氏(완산김씨)

 

始 祖(시조) : 金 晸(김정)

 

始祖(시조)金晸(김정)新羅(신라)敬順王(경순왕)의 아들인 大安君(대안군)金殷說(김은열)10世孫(10세손)金藥善(김약선)의 아들이며, 全州金氏(전주김씨) 始祖(시조) 金台瑞(김태서,?~1257)孫子(손자)이다.

 

科擧及第者(朝鮮時代)

 

金有鼎(김유정) (1630 庚午生) : 武科 孝宗2(1651) 式年試 丙科

金承吉(김승길) (1612 壬子生) : 武科 仁祖15(1637) 別試 丙科

金烘(김홍) (1663 癸卯生) : 司馬試 英祖1(1725) 增廣試 三等

金斗煥(김두환) (1861 辛酉生) :(司馬試 高宗19(1882) 增廣試 三等

金應正(김응정) (1610 庚戌生) : 譯科 仁祖11(1633) 式年試

金廣運(김광운) (1711 辛卯生) : 譯科 英祖1(1725) 增廣試

金景禧(김경희) (1711 辛卯生) : 譯科 英祖5(1729) 式年試

金孝儉(김효검) (1725 乙巳生) : 醫科 英祖23(1747) 式年試

金萬鎰(김만일) (1725 乙巳生) : 醫科 肅宗7(1681) 式年試

모두 9科擧 及第者가 있다.

(武科 2, 司馬試 2, 譯科 3, 醫科 2)

 

本貫 沿革

本貫所在地 : 全羅北道 全州

 

完山(완산)全州(전주)의 옛 地名(지명)이다. 全州(전주)全羅北道(전라북도)中央(중앙)位置(위치)地名(지명)으로 古代(고대)馬韓(마한)圓山成(원산성)에서 由來(유래)하며,百濟時代(백제시대)完山(완산)또는 比斯伐(비사벌比自火(비자화)()으로 불렸다가, 555(威德王2)完山州(완산주)로 하였다.

 

757(新羅 景德王16)()意譯(의역)하여 全州(전주)로 고쳤고,900(孝恭王4)甄萱(견훤)武州(무주):(光州)로부터 이곳으로 後百濟(후백제)都邑(도읍)을 옮겨 百濟(백제)復興(부흥)努力(노력)을 하였다

 

936(高麗 太祖19)後百濟(후백제)()하자 安南都護府(안남도호부)

 

設置(설치)되었다가 940()에 다시 全州(전주)回復(회복)되었다.983(成宗2)12() 가운데의 하나인 全州牧(전주목)設置(설치)되었으며,

 

993承化(승화)改稱(개칭)하고 節度安撫使(절도안무사)를 두었다.995()에는 江南道(강남도)管下(관하)全州順義軍節度使(전주순의군절도사)가 되었다가 1018(顯宗9)에 다시 安南大都護府(안남대도호부)昇格(승격)되고,1022()全州牧(전주목)으로 改稱(개칭)되어 1곳의 屬郡(속군)11곳의 屬縣(속현)包含(포함)하는 큰 고을이 되었다.

 

1310(忠宣王2)全州(전주)降等(강등)되고1355(恭愍王4)에는 部曲(부곡)으로 降等(강등)되었다가 이듬해에 完山府(완산부)復舊(복구)되었다.1392(太祖1)全州李氏(전주이씨)本鄕地(본향지)라하여 完山府留守(완산부유수)昇格(승격)되었으며, 1403(太宗3)全州府(전주부)改稱(개칭)되어 朝鮮時代(조선시대) 동안 維持(유지)되었다.

 

1895(高宗32)地方制度(지방제도) 改正(개정)으로 全州府(전주부) 全州郡(전주군)이되었고,1896年 全羅北道(전라북도)全州郡(전주군)으로 改編(개편)된 이래 1935年 全州面(전주면)()昇格(승격)하여 獨立(독립)하고 1949年 全州市(전주시)改稱(개칭)되었다.

 

人口數

統計廳(통계청)人口調査(인구조사)()하면

完山金氏(완산김씨)1985에는 67家口 327,

2000에는 201家口 653이 있는 것으로 調査(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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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김씨(全州金氏)

관향 : 전주(全州)

시조 : 김태서(金台瑞)

중시조 : 김경(金敬), 김달혼(金達渾)

집성촌 : 평안도 평양시 , 평안도 영변군, 평안도 강계군,

            함경도 영흥군, 함경도 명천군, 함경도 경흥군,

            경상도 의성군 등

인물 : 김약선, 김경손, 김동원, 김동인, 김연준, 김재순,

         김광섭, 김규동

인구(2000) : 18,126가구, 57,979

 

전주 김씨(全州金氏)는 대한민국의 성씨이다. 본래는 경주 김씨(慶州金氏)였으나 고려 고종 41(1254)에 식읍이었던 경주가 몽골에 의해 폐허가 되자 김태서(金台瑞)가 식솔들을 거느리고 전주(全州)로 이거(移居)했다. 이후 김태서는 전주군(全州君)에 봉해졌고, 후손들이 전주를 관향으로 삼게 되면서 전주 김씨는 경주 김씨에서 분관했다.

 

전주 김씨의 시조는 고려 왕조 때 명종, 신종, 희종, 강종, 고종의 다섯 임금을 섬겼고, 한림학사(翰林學士)부터 시작해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상장군(上將軍), 이부상서(吏部尙書)를 거쳐 수태보(守太保),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을 지냈던 문장공(文莊公) 김태서(金台瑞)이다.

 

김태서는 신라 김씨의 시조인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36세손이며,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과 고려 태조 왕건의 딸인 낙랑공주(樂浪公主) 사이에서 태어난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8세손이다.

 

아버지는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를 지낸 뒤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와 태자태부(太子太傅)를 지내고 완산군(完山君)에 봉해진 정평공(靖平公) 김봉모(金鳳毛). 전주 김씨 시조 김태서의 묘소는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모악산)에 위치해 있다.

 

전주 김씨의 시조인 김태서(金台瑞)는 신라(新羅)56대 왕인 경순왕(敬順王)의 넷째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후손인데, 전주 김씨의 역사는 신라 김씨의 시조이자 전주 김씨 집안의 비조(鼻祖)인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부터 시작한다.

 

김알지 이래로 전주 김씨의 직계혈통은 내물왕(奈勿王), 지증왕(智證王), 원성왕(元聖王), 신무왕(神武王), 문성왕(文聖王), 경순왕(敬順王) 6분의 신라 왕을 배출하였다.

 

경순왕의 아들인 김은열은 시랑(侍郎)을 거쳐 평장사(平章事)를 지냈으며, 보국대안군(輔國大安君)에 봉해졌다. 김은열의 첫째 아들인 태화(泰華)는 강릉군(江陵君)에 봉해졌으며, 태화의 아들 정구(正矩)는 호부상서(戶部尙書)를 지냈다.

 

정구의 아들 계령(繼笭)은 공부시랑(工部侍郎)을 지냈다. 계령의 아들 한공(漢公)은 형부상서(刑部尙書)를 지냈다. 한공의 차남 경보(景輔)는 공부시랑(工部侍郎)을 지냈으며, 한공의 장남인 세린(世麟)은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냈다.

 

세린의 아들 봉모(鳳毛)는 동북면병마사(東北面兵馬使)와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에 이어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와 태자태부(太子太傅)를 지냈으며, 완산군(完山君)과 정평공(靖平公)에 봉해졌다.

 

봉모의 아들이자 전주 김씨의 시조인 김태서(金台瑞)는 한림학사(翰林學士)에서 시작해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상장군(上將軍), 이부상서(吏部尙書)를 거쳐 수태보(守太保),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을 역임하였으며 전주군(全州君)에 봉해졌다. 사후에 문장공(文莊公)의 시호가 추증되었다.

 

김태서의 아들들인 약선(若先), 기손(起孫), 경손(慶孫)도 출세가도를 달렸는데, 김태서의 장남 김약선은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를 지냈으며, 완성부원군(完城府院君)에 봉해졌다.

 

또한 당시 무신정권의 수장 진양후(晉陽侯) 최우(崔瑀)의 사위이자 고려 원종의 장인이었다. 사후 장익공(莊翼公)에 추증되었다.

 

김태서의 차남 김기손은 이부상서(吏部尙書)를 거쳐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지냈고, 사후 문익공(文翼公)에 추증되었다.

 

김태서의 삼남인 김경손은 항몽(抗蒙) 당시 큰 공을 세웠고 이연년(李延年)의 난을 평정하는 등 많은 공을 세웠으며, 정주분도장군(靜州分道將軍)을 거쳐 대장군(大將軍), 전라도지휘사(全羅道指揮使),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를 역임하였다. 그러나 당시 집권세력인 최항(崔沆)의 시기를 받아 백령도에 유배되었다가 바다에 수장되었다.

 

사후 문간공(文簡公)에 추증되었다. 이후 김약선, 김기손, 김경손 형제의 자손들이 고려왕조의 주요 관직을 거쳤는데, 김약선의 아들 위항(渭恒)은 대장군(大將軍)을 지냈고, ()는 사공(司空)에 올랐다.

 

김약선의 딸인 순경태후(順敬太后)는 고려 원종과 혼인하였고, 충렬왕을 낳았다. 김기손의 자녀들도 상장군, 좌승선(左承宣), 상서(尙書) 등을 역임하였고, 김경손의 자손 중에서 혼()은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시호로 충선공(忠善公)에 추증되었다.

 

조선시대에도 전주 김씨 집안은 명문가의 명맥을 유지하였는데, 김경(金敬)은 윤필상 경원부 도원수 휘하에서 여진정벌에 큰 공을 세웠으며, 이후 자신의 식솔들을 거느리고 함경도로 이주하였고, 입북중시조(入北中始祖)로 받들어지고 있다.

 

김니(金柅)는 임진왜란 당시 김응서와 함께 왜군을 격퇴하였으며, 주사대장(舟師大將)과 공조참의(工曹參議)를 거쳐 병조참판(兵曹參判)과 황해도관찰사(黃海道觀察使)를 역임하였다.

 

또한 선무공신(宣武功臣)과 청백리에 선정되었으며, 1612년에 천추사(天秋使)로 파견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김달혼(金達渾)은 임진왜란 당시 경상북도 의성에서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키는데 앞장섰다. 김치원(金致遠)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모아 공을 세웠으며,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이 되어 선조실록(宣祖實錄) 편찬에 기여하였다.

 

이후 대북파의 모함으로 삭탈관직을 당했으나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 다시 정계에 복귀하였고 서흥부사(瑞興府使)에 이르렀다.

 

근현대에 와서는 북로군정서군에서 활약하였으며 1924년 사이토 마코토 조선총독의 순시선을 저격한 독립운동가 김관보(金官寶), 소설가 김동인(金東仁), 대한민국 제헌국회 부의장을 지낸 김동원(金東元), 시인 김광섭(金珖燮), 한양대학교의 설립자이자 초대 총장 김연준(金連俊), 대한민국의 국회의장을 지낸 김재순(金在淳), 시인 김규동(金奎東) 등이 있다.

 

전주김씨 가계도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 - 신라 경순왕의 넷째아들

2(장남) : 강릉군(江陵君) 태화(泰華)

3(장남) : 정구(正矩)

4(장남) : 계령(繼笭)

5(장남) : 한공(漢公)

6(차남) : 경보(景輔)

7(장남) : 세린(世麟)

8(장남) : 정평공(靖平公) 봉모(鳳毛)

 

9(장남) : 문장공(文莊公), 전주군(全州君) 김태서(金台瑞)

전주김씨(全州金氏) 시조

2(장남) 장익공(莊翼公), 완성부원군(完城府院君) 약선(若先)

2(차남) 문익공(文翼公) 기손(起孫)

2(삼남) 문간공(文簡公) 경손(慶孫)

 

전주 김씨 주요 집성촌

평남 평원군, 평남 영원군, 평남 평양시, 평북 희천군, 평북 벽동군, 평북 자성군, 평북 강계군, 평북 후창군, 함남 함주군, 함남 정평군, 함남 영흥군, 함남 고원군, 함남 안변군, 함남 이원군, 함남 신흥군, 함북 경성군, 함북 명천군 , 함북 무산군 , 함북 경흥군, 경북 의성군등으로 주로 이북지방에 세거하고 있으며, 조선시대 때 평안도와 함경도로 대거 이주가 이뤄졌다.

 

인구는 2000년 통계조사를 기준으로 18,126가구, 57,979 명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서울 18,194, 부산 3,619, 대구 1,554, 인천 4,082, 광주 369, 대전 1,652, 울산 717, 경기 15,561, 강원 3,457, 충북 1,515, 충남 1,662, 전북 1,697, 전남 693, 경북 1,527, 경남 1,410, 제주 270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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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참고자료입니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의 본관은 전주이고 그 시조의 묘는 전주 모악산에 있습니다. 전주김씨는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9세손 김태서(金台瑞)를 시조로 하고 있다.

 

그는 고려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1232(고종 19) 한림학사(翰林學士)를 거쳐 추밀원부사(樞密院府使상장군(上將軍) 등을 지냈으며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와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을 역임하였다.

 

1254(고종 41) 식읍(食邑)인 경주(慶州)가 몽골군의 병화(兵火)로 인하여 폐허가 되자 가족을 데리고 전주(全州)로 이거하였으며 후에 완산군(完山君)에 추봉되었다. 그로 인하여 후손들이 관향(貫鄕)을 전주(全州)로 삼게 되었다.

 

시조 김태서의 장남 김약선(金若先)은 당대의 세도가(勢道家)인 최우(崔瑀)의 맏사위이며 순경태후(順敬太后)의 부친으로 추밀원부사(樞密院府使)를 지냈고, 차남 김기손(金起孫)은 이부상서(吏部尙書)를 거쳐 원종이 즉위하자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이르렀고,

 

막내 김경손(金慶孫)은 고종 때 몽골군이 침입하자 정주분도장군(靜州分道將軍)으로 귀주성(龜州城)을 지켰고, 1237(고종 24) 전라도 지휘사(全羅道指揮使)가 되어 나주성(羅州城)에서 초적(草賊) 이연년(李延年)의 난을 평정하였다.

 

1928년에 간행된 전주김씨 족보를 보면 시조묘산도가 전주 모악산 일대로 그려져 있고 시조가 김태서임이 분명히 밝혀져 있습니다.

 

또 김태서공의 32대 손으로 김일성의 본명인 '김성주(金成柱)'와 동생 '김영주'의 이름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최근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는 방북한 남한 언론사장단과의 오찬회동에서 "남쪽에 가서 그곳(시조 태서공 台瑞公의 묘가 있는 완주 모악산)에 갈수 있으면 시조묘를 참배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또 김일성주석의 자서전인 '세기와 더불어' 1권에서 "우리가문은 김계상 할아버지대에 살길을 찾아 전라북도 전주에서 북한으로 들어왔다고 한다"고 적고 있어 김일성 부자의 본관은 전주김씨가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