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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사 방/역사 조선시대

구중궁궐 속 여인들의 애환

by 연송 김환수 2014. 10. 19.

구중궁궐 속 여인들의 애환(哀歡)

   

조선시대의 임금들은 왕비 외에도 많은 후궁을 거느렸는데 임금의 다산은 나라의 강건함과 풍요로움의 상징이 되고 왕권을 강화시키는 역할도 했기 때문이다.

 

 

궐내의 후궁들과 궁녀들은 출신에 따라 계급이 주어지고 서열이 매겨져 있는데 이들을 관리하는 총 책임자는 왕비였다.

 

후궁은 양반가문의 딸이 정식으로 간택되기도 하지만 궐내의 궁녀중 임금의 눈에 띄어 신분의 급상승이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모든 궁녀들의 최대 목표이기도 하고 삶의 애환(슬픔과 기쁨)이기도 하다.

 

따라서 구중궁궐내의 왕비를 포함해서 모든 여자들은 임금의 총애를 받고자 노력하고 암투를 벌이는 곳이 구중궁궐이다.

 

 

궐내의 여자들의 조직인 내명부는 성종때 명시된 것인데 서열에 따라 계급이 주어지고 왕비의 관리감독을 받게 되는데 왕비는 품계가 없으며, 무급의 최정상, 상전이다.

 

후궁들은 정1품 빈과, 1품 귀인, 2품 소의, 2품 숙의, 3품 소용, 3품 숙용, 4품 소원, 4품 숙원이 있다.

 

아래 도표는 내명부의 품계

1

()

1

귀인(貴人)

2

소의(昭儀)

2

숙의(淑儀)

3

소용(昭容)

3

숙용(淑容

4

소원(昭媛)

4

숙원(淑媛)

 

5품 상궁부터 9품 주변궁까지는 궁관이라 하여 왕과 왕비를 모시는 일외에 궁궐내의 잡역 궁인을 부렸다.

 

내명부의 역사를 보면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는 후궁이 없었고 혼인하는 부인들에게 모두 황후나 부인의 호칭을 두었다.

 

계급이나 서열이 따로 있지 않았고 혼인한 순서대로 자연스럽게 순서를 정했다.

 

당시에는 족내혼이라 해서 같은 친인척끼리 혹은 귀족이나 왕족 가운데서 딸을 뽑아 임금의 부인으로 보내는 경우 지체가 높은 집안들끼리의 혼인이라 서열이 없었고 후궁의 개념도 없었다.

 

하지만 조선시대 유교가 들어오면서 중국의 영향을 받아 족내혼을 금지하고 정비와 후궁의 차별을 두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직 한 여인 장희빈만은 잠시지만 왕비의 자리까지 올라갔었다.

 

조선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여성인 장희빈!

 

그녀는 미관 말직 장희재의 여동생으로 입궐했지만 뛰어난 미모로 숙종의 눈에 띄어 신분이 급상승하였다. 게다가 아무도 낳지 못한 왕자까지 생산하자 그녀의 권세는 하늘을 찌를듯했다. 그녀는 내친김에 왕비의 자리까지 오르는 활약상을 보였다.

 

하지만 사필귀정이라 그녀가 왕비의 자리에까지 오르기 위해 저지른 악행이 들통나면서 왕비 자리에서 내려오고 사약을 마시고 처절한 최후를 맞고 말았다. 그녀로 인해 이후 후궁은 절대 정비의 자리에는 오르지 못한다는 새로운 법이 생겨나게 된다.

 

왕궁에 거주하던 궁녀수를 보면 명나라 청나라의 왕궁에는 약 5천명의 궁녀가 상주했고, 백제시대에는 3천명의 궁녀가 상주했다고 전하지만 승자에 의해 과장되었을 것이며, 조선시대 왕궁에는 많을 때 500조선말기때는 150여명의 궁녀가 왕궁에 상주했다.

 

빈에는 후궁들이 받는 정일품 빈이 있고 세자빈의 무품계 빈이 있으며 궁녀중에 왕의 승은(承恩)을 입어 정1품 빈과, 1품 귀인, 2품 소의, 2품 숙의, 3품 소용, 3품 숙용, 4품 소원, 4품 숙원의 서열이 생긴다.

 

후궁의 빈에는 한글자의 작호가 붙는데 , , . , 경 등 이런식으로 붙어서 희빈, 숙빈, 영빈, 경빈 이 되는데 세자빈은 그냥 세자빈이나 빈궁으로 불리며 별다른 작호가 없다.

 

후궁중에 정1품은 희빈으로 많이 알고 있는데 정식 품계는 희빈이 아닌 '' 이.

1품의 ''은 앞에 희나, , 숙과 같은 글자를 붙여 희빈이나 경빈, 숙빈 등으로 임명되고, 부를때는 뒤에 성까지 붙여 희빈 장씨, 경빈 박씨와 같이 불리게 되는 것이다.

그 밑의 귀인이나 소의 같은 경우에는 구분없이 그 뒤에 바로 성씨를 붙인다.

 

예를 들어 김OO이 왕의 후궁이 되어 숙원이 되었다 하면, 숙원 김씨가 되는것이고 빈의 자리에 올라 희빈으로 임명이 되면 희빈 김씨가 되는 것이다.

 

왕과 왕비는 품계가 없는데 그 이유는 정1품보다 더 높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후궁이 왕자를 생산 했을때에는 일약 빈으로 대접받아 정식부인인 정비나 중전에 준하는 파격적인 신분상의 대우를 받게 된다.

   

그리고 예를 들어 품계가 높은 정1품 영의정과 품계가 낮은 종4품 숙원이 만나더라도  품계 높은 영의정이 후궁에게 반말을 하지 않는다.

 

왕이 왕비에게 반말을 쓰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하들도 후궁들에게 반말을 하지 않고 서로 존칭을 하게 된다.

아무리 영의정이라 한들 왕의 부인인 후궁에게 반말을 하였다간 후환이 두렵기 때문이다.

 

품계가 같은 신하라 할 지라도 서로 반말하는 일은 없는데 '~합니다,~. ~. 이런 식으로 서로 서로 존칭을 한다.

 

궁녀중에는 수랏간 담당, 의복바느질 담당, 빨래세탁담당(세답방 근무 궁녀), 술빚기(궁중, 제주 祭酒), 장독대담당, 왕의 상궁, 왕비의 상궁, 왕세자전 상궁들이 내관(내시)들과 짝을 이루어 소임을 다한다.

 

왕비가 임신을 하여 출산달이 가까우면 제조상궁 지휘하에 산실청이 마련되는데 약 15명의 궁녀가 배속되기도 한다.

 

상궁중에도 보모(유모)상궁이 가장 대접을 받는데 그녀들은 왕자에게 젖을 먹이고 유아때의 왕자의 예절 등 기초교육까지 담당하기에 왕세자가 왕으로 즉위하면 더욱 대우가 파격적이 되며 왕이 끔찍하게 위한다.

 

유아기에는 보모상궁에게 정을 붙이다가 3살에서 다섯 살까지는 왕세자 출입당번 내시들의 유아교육을 받게 되는데 세자시강원에 입학전의 예비교육이다.

 

승은(承恩)을 위해 궁녀들이 익혔던 방중술”에 대해서

 

지밀내관(내시)중에게 궁녀에게 성교육시키는 교관이 따로 있었는데 채색교관이라고 불렀다.

 

1. 발뒷굼치를 올리고 다니기 훈련 (질과 약근강화)

2. 앉은 자세로 방바닥에 걸레질하는 자세의 연속훈련

     (자궁경부의 상하신축의 유연성 부여목적)

3. 왕의 복상사 대비 구급훈련

4. 득남(아들낳기)비방훈련

5. 설경(혀설, 밭갈경) 훈련

     (껍질이 얇은 연시를 혀로 다루는 실습)

6. 왕의 안마

    (다리 주무르기, 허리 주무르기, 발바닥 용천혈 두드리기 등)

7. 피부 화장법

8. 맛사지 훈련 등등 세밀하게

 

이를데 없는 철두철미한 훈련과목 등은 내시부 교관(선생)은 요즘 신병교육대의 교관보다 더 무서웠다.

 

이런 훈련 과정에서 낙오 되면 세답방(빨레세탁)에 배속되어 평생 손에서 물기가 마르는 날없이 빨래감과 싸워 손바닥에 못이 배기고 손이 잿물에 퉁퉁 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