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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인연방/불교소식

염불용 카세트테이프 사라지나

by 연송 김환수 2014. 10. 18.

조용필 카세트테이프 4000?

화암스님 천수경5000!

1987년 서울에서

 

◈ '염불용 카세트테이프' 사라지나

 

데스크승인 2014.09.29 15:51:14

하정은 기자 | tomato77@ibulgyo.com

 

 

1980년대 염불 카세트테이프계를 주름잡은 전설의 두 앨범, 화암스님의 천수경 , 세민스님의 금강경 테이프. 30여년 전 제작된 앨범 속 스님들의 표지사진이 새롭다.

 

아날로그적 감성을 자극하는 카세트테이프는 1980년대 만인의 친구로 각광받았다. 이른바 마이마이’ ‘워크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소형 카세트가 대량으로 보급되면서 카세트테이프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당시 카세트테이프 시장규모는 연간 2000억원대. 외국어회화 중심으로 학습교재 테이프가 선두를 달렸고, 일반 음악을 녹음한 음반테이프와 염불과 명상 등 종교관련 테이프가 뒤를 이었다. 한 통계에 따르면 1980년 국내 종교음반테이프 제작회사는 국내 26개사로 집계됐다.

 

카세트테이프 시장이 이처럼 크게 활기를 띠자, 염불독송용 카세트테이프가 등장했다. 1987년에 나온 전설의 염불 테이프, ‘화암스님의 예불 천수경이 첫 선이다. 현 조계종 의례위원이자 교육원 염불도감을 맡고 있는 화암스님이 27년 전 서울 봉은사 기도법사 시절에 녹음한 테이프다.

 

스님에 따르면 당시 봉은사에서 학생기도(예비고사 앞둔 입시기도 지칭)와 백중기도를 올릴 때 일부 신도가 법당 뒤편 스피커에서 나오는 스님의 염불소리를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화암스님의 염불소리는 따라갈 스님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문제는 녹음상태다. 스피커 앞에서 녹음했으니 잡음도 적지 않은데다 스님이 중간에 기침을 했던 대목 때문에 집에서 염불을 들을 때마다 스님의 기침소리까지 매번 들어야 하니 참으로 웃지못할 해프닝이다. ‘한번 기침이 영원한 기침이 돼버렸다는 일화가 생긴 이후, 이제 스님이 기도를 시작하면 법상에 20~30개의 녹음테이프가 돌아가는 판국이 돼버렸다. 스님은 목소리에 신경 쓰느라 기도도 안되고 참 곤욕스러웠다고 회고했다.

 

이럴바엔 차라리 여법한 염불테이프를 제작하자고 결심한 스님은 당시 마포 아람이라는 녹음실에서 천수경과 예불문을 녹음하기에 이르렀다. 당시엔 음향녹음기기시설이 열악해서 목탁소리를 더빙해야 했는데, 목탁과 염불이 따로 노는 바람에 급기야 스테레오기기를 도입해서 최고급 음향시스템에서 염불을 녹음했다. 이후에도 염불 테이프 대부분은 여전히 모노로 제작, 목탁소리를 더빙하는 형식을 취해서 듣기좋은 편안함이 스테레오보다 덜하다.

 

화암스님은 카세트 테이프 디자인도 직접 구상해서 새로운 양식으로 기획했다. 봉은사 경내에서 5조가사를 수하고 찍은 화암스님의 사진은 스님이 직접 삼각대에 카메라를 설치해서 찍은 셀카. 앨범이름을 경면주사와 같은 붉은톤을 써서 친근하게 보인 점, 자켓표지 글자를 옆으로 뉘어 씀으로써 꽂았을 때 잘 보이도록 배려한 점. 앨범을 만든 유니버셜레코드사는 아마도 깐깐한 20대 젊은 스님때문에 제작 과정이 만만치 않았으리라.

 

화암스님의 염불 카세트테이프는 나오자마자 폭발적으로 팔려나갔다. 조계사 앞 한 불구점에선 하루종일 화암스님의 천수경을 틀어놓았고, 지나가는 스님과 불자들은 멈춰서 한참을 듣다가 테이프를 사갔고, 구입문의는 쇄도했다. 총판을 맡게 되는 회사가 생길 정도로 스님의 카세트테이프는 붐을 이뤘다. 봉은사에서는 특가로 일반보다 비싼 5000원에 팔렸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린 가수 조용필의 테이프가 4000원이었던 바, 스님은 내 염불이 유행가 가수만도 못하느냐5000원을 책정했더니 그럼에도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천수경과 예불이 주를 이루는 화암스님의 테이프에는 1시간을 꽉 채워야 하는 카세트테이프의 기본 용량을 지키기 위해 아산혜연선사 발원문과 발심수행장을 한글로 번역한 발심수행하는 글도 수록했다. ‘부록식으로 넣어 스님이 직접 낭송한 것인데, 이 역시 불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스님의 염불 카세트테이프는 신도들이 사찰을 벗어나 가정과 직장에서도 기도하는 풍토를 이어가는 획기적인 계기가 됐다. 스님들만의 전유물로 인식됐던 예불의식도 대중화되는데 기여했다.

 

스님의 아득하면서도 간절하고 구슬프면서도 애절한 염불소리를 듣고 출가발심한 이도 있고, 이혼위기에 처했다가 우연한 기회에 스님의 염불을 함께 듣고 부부가 마음을 다시 잡은 사례도 있었다. 아침 출근 1시간 동안 차 안에서 시끄러운 세상에서 벗어나 스님의 염불소리에 마음을 씻는다며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스님의 염불을 듣는다는 남성들도 수두룩했다. 염불포교의 새로운 활로를 개척한 화암스님 이후 성공스님, 세민스님 등이 뒤를 이어 염불 카세트테이프 시장을 장악했고, 영인스님과 혜광스님, 법철스님, 능허스님, 원정스님 등도 앞다퉈 카세트테이프를 출시했다.

 

 

한때 성행했던 염불 카세트테이프 시장이 사실상 정지됐다. 조계사 앞 불교용품점에는 찾아오는 단 한명을 위해 여전히 부스를 차려놓고 있다.

 

조계사 앞에서 30여년간 불구점을 운영하고 있는 업체 주인은 카세트테이프가 그렇게 성행했어도, 화암스님과 성공, 세민스님만한 소리는 없다최근 화암스님의 한글 천수경 CD가 나왔는데, 그보다 30여년 전 카세트테이프에 담긴 염불소리가 개인적으로는 훨씬 좋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도 화암스님의 카세트테이프를 틀어놓으면 환희심이 절로나고 혼이 실려있는 듯 그 음성이 널리 퍼졌다사람들이 들어와 너도나도 테이프를 사갔다고 회고했다.

 

30여년이 흐른 지금, 카세트테이프를 찾는 이들은 거의 없다. 조계사 앞 20여개 불구점 벽 한켠엔 여전히 염불과 찬불가 카세트테이프를 진열해놓고 있지만 한달에 두세개 팔리면 그만이다. 카세트테이프를 재생할 수 있는 도구가 흔치 않은 이유가 크다. 트럭이나 오래된 차의 카오디오, 휴대용 카세트플레이어 등이 있을 뿐, 스마트폰과 MP3, CD가 판치는 세상에서 카세트테이프는 이제 오래된 추억으로만 남는다.

 

한 불교용품 판매업자는 그래도 70대 노보살들이 간간이 테이프가 늘어진다며 새로운 염불 테이프를 찾을 때가 있어 판매부스를 아예 없앨 순 없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초발심이 좋듯 옛 것이 얼마나 아름답냐카세트테이프 시장이 다소 정지된 듯 하지만 찾아오는 단 한사람을 위해서라도 판매할 것이라고 말했다.

 

화암스님에 이어 한때 염불 카세트테이프계의 ‘No.2’로 인식돼온 세민스님의 금강경독경 카세트테이프도 조계사 앞 불구점마다 화암스님과 나란히 꽂혀 있다. 조계종 원로의원 세민스님이 1987년 아세아레코드사에서 녹음한 이 카세트테이프 표지에는 스님이 행자시절 찍은 앳된 사진이 실려 있다. 문화재급 수준의 전설의 카세트테이프. 다 사라지기 전에 하나쯤 소장해 두어도 좋겠다.

 

[불교신문3043/20149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