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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인연방/불교소식

고건축, 기와만 잘 이으면 수천년 거뜬해요

by 연송 김환수 2014. 7. 20.

고건축, 기와만 잘 이으면 수천년 거뜬해요

 

문화재기능이근복 번와장飜瓦匠

데스크승인 2014.07.14  하정은 기자 | omato77@ibulgyo.com

 

인간문화재 국내 1호 번와장 이근복씨는 10대부터 기와에 묻혀 살아온 기와박사. 40여년째 번와장 외길인생을 살아온 그는 지금도 전국 사찰 등 현장을 누비면서 기와불사에 적극 가담하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121번와장

지붕에 기와 잇는 장인일컬어

2008년 지정이후 국내 유일무이

 

건축물 조형 특징 번와기술 좌우

 

하중 없이 균형 갖고 지붕 이어야

나무 썩지 않고 천년 갈 수 있어

 

해인사 불국사 법주사 봉은사

 

40년 외길인생 전국 사찰 두루

불자로서 도량불사 정성 다해

 

숭례문 낙산사 화재진압 당시

고건축 구조 몰라 피해 더 키워

 

문화재청 등 공무원도 교육받아야

문화재기능인역할 지원 시급

 

건축일을 하는 아버지는 막둥이 아들을 데리고 공사현장을 다녔다. 아버지의 연장통을 옆구리에 차고 커다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면서 집짓는 과정을 어깨너머로 지켜봤던 아이는 성장해서도 그 세계를 떠나지 못했다.

 

목수일은 기본이고 기와에 마장일까지 척척 해냈던 아버지의 분주한 손놀림 가운데 소년이 특히나 눈여겨 봤던 종목은 지붕의 기와를 잇는 일. ‘아하, 집의 중심이자 생명은 기와에 있구나. 기와만 제대로 잘 이으면 비가 새지 않아서 목조건물이 썩을 염려가 없고 썩지만 않는다면 수백 수천년을 거뜬히 견뎌낼 수 있겠구나.’ 이 생각은 그로부터 50여년이 흐른 지금도 변함없다.

 

1960년대만도 기와지붕을 한 부잣집은 드물었다. 동네마다 한 채 정도 기와집이 있을 정도였으니, 어린 소년에게 기왓일은 상당한 매력으로 다가왔으리라. 그때부터 고() 기선길 씨 등 기와장 스승들을 찾아 전국 현장을 누비면서 잔심부름을 자처했다. 남들이 쉬거나 낮잠 잘 때 시간을 쪼개 배움을 청하면서 기왓일에 팔을 걷어부쳤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21번와장(飜瓦匠)’, 이근복(64)씨 이야기다. 번와장은 지붕에 기와를 잇는 장인을 말한다. 지난 2008년 번와장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번와장 기능보유자가 됐다. 2014년 현재까지도 유일무이한 번와장 1인 그는 기와지붕의 구성, 외형, 시공작업 등 실질적인 기법의 이해와 번와 전반에 걸쳐 해박한 식견을 갖추고 있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기와지붕은 한국 전통건축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인 곡선의 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지붕의 조형적 특징은 번와기술이 좌우한다고 볼 수 있을 정도다. 문화재청이 번와장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한 이유 역시 기와를 잇는 전통 번와기법과 기능을 보존전승하기 위해서다.

 

기와를 얹고 잇는 과정을 그저 비만 새지 않도록 얼기설기 덮는 단순한 작업이라고 오해하는데, 기왓일은 상당히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능력을 요구합니다. 수덕사 대웅전과 부석사 무량수전이 1000년 가까이 지나도 원형을 유지하고 건물의 미적 가치를 잃지 않는 이유 역시 기와에 들인 공력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근복 번와장은 1997년 숭례문 보수공사에 참여했고, 2008년 불탄 숭례문 복구작업에도 동참했다. 기와 한 장 무게가 6~7인데 숭례문 복구에 쓰이는 전통기와 규모는 무려 22000여장. 손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경복궁, 창덕궁 돈화문 등 5대 궁궐의 지붕도 그의 손을 거쳤고, 법주사 대웅전, 봉정사 극락전, 해인사, 불국사, 봉은사 등 전국 곳곳의 국보급 불교문화재 수백여건의 보수공사에 가담했다.

 

최근엔 조계사 일주문 불사를 총지휘했다. “목조 고건축에서 기와 덮기는 건축물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결정합니다. 멀리서 봤을 때 건축물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기와가 깔린 지붕마루입니다.

 

기와는 추녀의 선을 만들어 줍니다. 목수가 지붕 곡선에 아무리 신경을 썼다고 해도 기와를 솜씨있게 이어야 버선코와 같은 날아갈 듯한 곡선이 그려집니다. 번와장이 반()목수라는 말도 기와를 잇기 전에 다시 보강공사를 하는 경우가 숱하기 때문에 생긴 말입니다.”

 

이 번와장이 말하기를, 기와공사의 관건은 적심(積心)을 넣는 과정이다. 서까래와 지붕 사이의 공간을 채우기 위해 목재를 넣는 작업이다. 그 위에 단열과 습기 조절을 위해 보토(補土)라는 흙을 덮은 후 기와를 깐다. 적심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기와 선이 살지 않고, 너무 적으면 기와가 쉽게 부서진다.

 

이 과정을 서툴게 하면 균열이 생겨 비가 새고, 비가 새서 적심이 썩는 것은 100% 번와공의 손 끝에 달려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번와장은 1983년 서울 봉은사 대웅전 기와불사를 했다.

 

지금도 봉은사 대웅전 처마 끝에 앉아 위를 올려다보면서 그 시절에도 내 솜씨 제법 괜찮았네라고 자화자찬을 합니다.(웃음) 새삼 뿌듯하지요.” 그러나 최근 템플스테이 전용관 등 사찰마다 신축불사를 할 때 저렴한 예산으로 날림공사를 하는 실태를 우려하기도 했다.

 

그는 지붕이 하중을 받아 균형을 잃으면 천년 갈 수 있는 건물이 순식간에 썩어 무너진다번거롭더라도 불사 자문을 받고, 서로 불편하더라도 수리자와 기술자, 기능자간에 교육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번와장이 내림마루를 시공하는 모습.

 

고건축 화재진압에도 아쉬움을 표했다. 소방관들이 전통 목조건축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에 따라 화재진압 과정에서 제2의 제3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거다. 숭례문 화재 때 소방시설 근접환경이 최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고건축 구조에 문외한이었던 소방관들이 효율적으로 화재진압을 하지 못했던 사례를 예로 들면서, 이는 사찰화재시에도 우려되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이 번와장은 현재 24개 직종 7300여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문화재기능인협회 이사장이다. 26년 전부터 이사였고 지금도 이사다. 협회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 문화유산의 총체적인 기능을 보유한 자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예우는 미천하다.

 

기능인들을 지원함으로써 젊은 기능인들을 양성하는 것이 시급한 현실이지만, 정부는 예산도 주지 않고 관심도 별로 없는 듯하다. 협회는 작은 예산에다 뜻있는 임원들이 사비를 털어 2년에 한번씩 기능인전()을 열고 도록을 만들고 어렵사리 사무실을 운영한다.

 

그나마 이근복 번와장은 개인적으로 전수교육장을 마련해 그간 축적해온 전통 번와기술을 후학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전통문화를 강조만 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지키고 계승하려면 결국 교육만이 살 길입니다. 공무원 교육이 시급합니다. 문화재청 직원들도 이론만 내세웁니다. 현장소장들도 자존심만 내세울 게 아니라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전문가교육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사찰에 가면 고개를 치켜들고 지붕만 올려다보는 이근복 번와장. ‘아이고 참 잘 이었구나’, ‘아뿔싸 나무가 벌써 썩고 있는데 이를 어쩌나. 평생 기와잇는 일에 몸담았지만 그는 요즘도 제자들을 이끌고 사찰현장을 누비면서 천년 가는 건축을 꿈꾸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불교신문2024/20147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