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무도의 가람, 범어사 청련암(靑蓮庵)
범어사는 해인사 통도사와 더불어 영남 3대 사찰이다. 범어사에 속한 부속 암자는 수십 개에 이른다.
부속 암자 중에 범어사와는 분위기가 다른 암자가 하나 있으니
‘범어사 청련암’이다.
범어사 본당 우측 도로길을 50m 오르면 철문 좌우로 내원, 청련 표석이 보인다. 내원암과 청련암의 입구를 가르키는 안내 표지석이다.
오른쪽의 청련(靑蓮)
지장대도장(地臧大道場) 표석이 보인다
왼쪽은 청련암 위쪽으로 가면 내원암이다.
미타교를 지나 청련암 본당으로 들어서면 입구에 두명의 금강역사가 지키고 있다.
왼쪽은 역사 나라연금강(力士 那羅延金剛), 오른쪽은 밀적금강(密跡金剛)이다.
선무도(불무도) 총본산 범어사 청련암은 범어사내 11개의 암자중 하나로 3,1 운동 당시 부산지역의 본거지였고 불문에서 전해지는 금강영관이라는 무예를 수련하는 곳이다.
범어사 청련암은 중국 소림사처럼 승려들이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 수도하는 성지이며 불교 무술의 총본산으로 유명한 곳이다.
선무도는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불교무술로 한국 전통무예로 주목받고 있다.
선무도는 몸과 마음이 둘이 아닌 하나로 보고, 즉신성불을 목적으로 정적인 명상기공과 동적인 요가체조법 등의 무술을 조화롭게 수련하고 심신의 건강을 이루고 나아가 실천적인 깨달음에 이르는 비전 수행법이다.
지장원을 지키는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
내원암의 지국이 엄마 추정
지장보살 (地藏菩薩)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원하는 보살이다. 석가의 위촉을 받아, 그가 죽은 뒤 미래불인 미륵불(彌勒佛)이 출현하기까지 일체의 중생을 구제하도록 의뢰 받은 보살이다. 관세음 보살과 함께 가장 많이 신앙되는 보살이다.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지옥에 몸소 들어가 죄지은 중생들을 교화, 구제하는 지옥세계의 부처님으로 신앙된다. 그는 부처가 없는 시대 즉, 석가모니불은 이미 입멸하고 미래불인 미륵불은 아직 출현하지 않은 시대에 천상·인간·아수라·아귀·축생·지옥의 중생들을 교화하는 보살이다. 지장보살은 석가모니불에게 “지옥이 텅 비지 않으면 성불(成佛)을 서두르지 않겠나이다. 그리하여 일체의 중생이 모두 제도되면 깨달음을 이루리라”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지장보살을 본존으로 모신 전각을 지장전·명부전 혹은 시왕전이라 한다. 지장보살의 형상은 본래는 보살형으로 보관과 영락으로 장엄한 모습이었지만, 지장십륜경의 기록에 의해 차츰 삭발을 한 사문(沙門)의 모습으로 모셔지게 되었다. 사문형의 지장보살은 천의 대신 가사를 입고 있으며, 지옥문을 깨뜨린다는 석장인 육환장과 어둠을 밝히는 보석구슬인 장상명주를 들고 있다. 육환장의 6고리는 육바라밀을 상징하며, 윗부분에는 화불을 모시기도 한다. 예로부터 전해지는 이야기는 사람이 죽으면 저승사자가 와서 그 영혼을 염라대왕에게 데려가며 거기에서 일생 동안의 죄업을 평가받아 극락으로 갈 것인지 지옥으로 갈 것인지 정해진다고 하였다. 이것은 사실 불교와 상관없이 민간에 전해 내려오던 믿음으로 도교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권선징악의 내용이 불교에 수용되었으니 절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지장전이 바로 그곳이다. 지장전은 염라대왕이 임금으로 있는 곳이 아니라 지장보살이 지하의 왕으로 모셔진 곳이다. 염라대왕은 그저 지장보살의 일을 돕는 시왕(十王) 중의 하나일 뿐이다. 지장이란 말은 ‘땅[地]이 감춘다[藏]’는 뜻인데 여기에는 흥미로운 전설이 서려 있다. 인도의 어느 바라문 집안의 처녀가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는 불교를 비방하고 다니는 등 불교와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어머니가 죽자 처녀는 평소 불교를 나쁘게만 보아온 어머니가 어디에 가게 될지 걱정이 되었다. 그녀는 어머니를 위한 재를 올리기 위하여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절을 찾아 길을 나섰다. 그러던 중 많은 사람들이 추위와 배고픔에 떨며 신음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자신의 전 재산을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나중에는 입고 있던 옷까지 모두 벗어주었다고 한다. 열여덟 살의 처녀가 알몸으로 다닐 수는 없어서 구덩이 속에 들어가 있었는데, 지장이란 말은 바로 여기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그 처녀가 구덩이 속에 있을 때 부처가 나타나 처녀의 소망을 다 들어주어 그녀의 어머니는 극락에 갈 수 있었다고 한다. 지장보살은 관세음보살에 버금가는 원을 세우니 “단 한 명의 중생이라도 지옥에 가게 되면 나는 성불하지 않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래서 지장보살은 지옥의 문턱에 있게 되었으며, 절에서도 지장전은 대개 지하에 꾸며지게 되었다. 명부전의 시왕들은 서로 다른 지옥을 관장하고 있으며 하는 일도 가지가지이다. 이 시왕들은 당나라 장천이 편찬한 도교의 경전인 『예수시왕생칠경(豫修十王生七經)』에 등장한다. 이 경전은 고려에 전해져, 특히 몽고 침략 이후에 민간신앙으로 굳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명부전은 대웅전의 오른쪽에 있으며 지장전 또는 시왕전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조선 초기까지는 지장전과 시왕전이 분리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나, 지장보살의 역할이 지옥과 관련이 있으므로 합쳐진 것이다. 불교가 각 나라에 전파되면서 그 지역의 민간신앙을 흡수한 예이기도 한데 불교가 그만큼 포용력이 큰 종교임을 잘 알 수 있다. |
청련암에 있는 지장원은 지옥중생의 구제를 서원하는 지장보살이 계신 이상세계를 형상화한 곳으로 지장보살을 호위하는 수많은 석상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다.
아래쪽 계단 입구에 해태 두마리가 지키고 있고 여기 저기에 해태상이 있어 그 규모의 놀라움과 함께 청련암의 명소가 되어있다.
지장보살 (地藏菩薩)
해태상
청련암은 범어사 본당에서 200m 쯤 윗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불교 금강영관이라는 무예를 수련하는 불무도의 총본산이다.
1977년에 범어사 금강연수원을 이곳으로 옮겨와 현재까지 수행자들에게 금강영관을 전수하고 있는 곳이며, 지장보살을 모신 지장대도장(地臟大道場) 이기도 하다.
청련암은 입구부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법당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두 쌍의 도깨비가 험상궂은 표정으로 이방인들을 위압하고, 주 계단을 올라가는 길목에는 거대한 용 두 마리가 꼬리를 맞붙은 채로 여의주를 물고 자신의 자태를 자랑한다.
도깨비상
더 신비로운 분위기를 주는 것은 계단 왼편에 세워진 건물의 벽에 새겨진 각종 선무도의 그림이다.
마치 중국의 소림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스님들의 심오한 무도 모습이 건물 벽에 연속으로 그려져 있다.
그 기의 세계를 보면 오묘한 참선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 같다.
청련암은 호법신장들이 입구를 지키는 지장보살의 세계다.
가운데에 위치한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사방의 계단에 갖가지 모습으로 앉아 있는 보살들과 신장, 수호신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청련암 본당
본당앞 해태상
삼성각에는 영동입관과 영정좌관이 4면 벽을 둘러 벽화로 형상화되어 있는 곳으로 영정좌관이 상층부에 영정입관이 하층부에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 불교 무술의 대가, 양익스님의 흔적을 찾아 - 청호당 양익대사는 청련암의 주지 스님으로 계시다 2006년 5월에 좌탈입망하신 한국 불교 무술의 대가이다. 선무도의 불교 무술 원래 명칭은 '불교금강영관'이며 이는 부처님으로부터 면면히 이어온 승가의 전통적인 수행법이라고 한다. 선무도를 통해 작게는 심신의 안정을, 크게는 깨달음을 향한 구도의 길을 걸을 수 있다고 하며, 이 무술은 1960년대 들어 양익스님이 복구한 것이다. 양익스님은 1971년 범어사 극락암에 연수원을 설립한 후, 불교 무술 지도법을 개발했고, 1978년 경 청련암에 금강영관 수련원을 열어 본격적으로 불교무술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경주 골굴사 주지 적운스님, 보령 백운사 법천스님, 마산 성덕암 가영스님 등 현대 선무도를 대표하는 스님들이 모두 양익스님으로부터 사사받은 분들이라 한다. 당시 양익스님은 4m가 넘는 범어사 일주문을 가볍게 올랐다는 일화가 있고, 스님에게 도전장을 내민 검도의 고수에게 썩은 나뭇가지로 응수했다는 말도 있으며, 범어사 청련암에는 양익스님의 선무도 정신이 곳곳에 흐르고 있다. ------------------------------------------------------- 2006년 4월 26일 홍천 수타사앞 계곡에서... ******************************** * 입적하시기 일주일전 쯤 사진입니다.. 제가 여쭈었습니다. "왜 그렇게 혼지 외롭게 앉아 계십니까?" 큰스님께서는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거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큰스님이 많이 그립습니다. |
청련암 부도 (양익 대선사 사리탑)
고 양익 대선사(대종사) 6주기(2012. 5.29) 추모비 제막식
靑昊堂 兩翼 大禪師 碑 (청호당 양익 대선사 비)
양익 큰스님 부도탑
靑昊堂 兩翼 大禪師 (청호당 양익 대선사)
靑昊堂 兩翼 大禪師 瑞相塔 丁亥四月九日立
(청호당 양익 대선사 서상탑 정해사월구일입)
'불교무도' 양익 스님 좌탈입망 기사입력 2006-05-08 12:12 범어사 원로이며 한국 불교무도(佛敎武道)의 수장인 양익(兩翼) 스님이 지난 6일 오전 1시 20분께 앉은 채로 입적했다. 청호당 양익 스님의 좌탈입망 모습. 세수 72세,법랍 44세. 1934년 강원도 홍천 출생인 스님은 서울 법대 출신으로 사시 1차 시험에 합격한 뒤 범어사에 고시 공부를 하러 왔다가 동산 스님을 두 번째로 만나 오랜 인연을 느끼고 이듬해인 1962년 출가했다. 스님은 불교무도에서 한국 최고의 전설적인 인물이었으며 그 원조 격이었다. 젊은 시절 범어사 일주문을 쉽게 뛰어넘었다고 하며,쌍계사 조실 고산 스님은 양익 스님이 결가부좌한 채로 공중부양하여 천장의 못을 빼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한다. 스님이 집대성한 불교무도는 '불교금강영관(佛敎金剛靈觀)'. 고려시대까지 전수되다가 중국 선종이 들어오면서 맥이 끊긴 즉신성불(卽身成佛,현재의 몸이 그대로 부처가 됨)의 밀교수행법을 체계화한 것이었다. 스님은 출가 전에 이미 고수였는데 서울 청도관의 허사범(스님의 속명은 허남익)이라면 명동의 깡패들도 겁을 냈다고 한다. 출가 직후 동화사 불국사 봉훈사에서 주요 직책을 맡은 뒤 71년 범어사에 돌아가 40년 가까이 줄곧 후학을 지도했는데 선무도를 펴고 있는 골굴사 주지 적운 스님을 비롯해 수백 명에 이르는 출가 재가의 고수 제자들이 있다. 몸과 마음의 하나됨을 설파했던 스님은 무엇보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백장청규(百丈淸規)를 철저하게 지키도록 했다. 또한 "자기의 복을 비는 기도라고 해도 헛되지 않다. 마음을 모으는 일이기 때문이다. 진실한 기도는 멀리 있는 인연을 앞당길 수 있다"며 불교 연기법을 불자들이 생활 속에서 알기 쉽게 얘기했다. 제자 안도 스님은 "입적 하루 전날인 부처님오신날에도 스님께서는 통도사 적멸보궁을 참배하셨다. 당신께서는 제자들 모르게 입적을 준비하셨다"고 했다. 범어사 주지 대성 스님은 "스님은 무소유의 삶을 실천했는데 아무런 법문도 남기시지 않고 고요히 앉은 채 원적(圓寂)에 드셨다"고 했다. 장례는 범어사 다비장으로 치러진다. 분향소 범어사 보제루,영결식 10일 오전 10시30분. 051-508-3122~5. 최학림기자 theos@ |
訃 告 梵魚寺 元老 靑昊堂 兩翼大禪師 世緣 已盡 五月 六日(陰 四月 九日) 午前 一時 二十分 於釜山 金井山 靑蓮庵 坐脫圓寂 玆以訃告 佛紀 二五五○年 五月 六日 門徒代表 定慶 合掌 ■ 永訣時間: 佛紀 二五五○年 五月 十日(陰 四月 十三日)午前 十時三十分 ■ 永訣式場: 梵魚寺 普濟樓 ■ 茶 毘 場: 梵魚寺 茶毘場 ■ 問議 및 連絡處 : ○五一)五○八-三一二二~五 五○八-三六三六 梵魚寺 元老 靑昊堂 兩翼大禪師 山中葬 葬儀委員會 委員長 大成 부 고 범어사 원로 청호당 양익대선사 세연 이진 5월 6일(음 4월 9일) 새벽 1시 20분 금정산 범어사 청련암 좌탈 원적 자이부고 불기 2550년 5월 6일 문도대표 정경 합장 ■ 영결시간: 불기 2550년 5月 10日(음 4월 13일)오전 10시30분 ■ 영결식장: 범어사 보제루 ■ 다 비 장: 범어사 다비장 ■ 문의 및 연락처 : 051)508-3122~5(종무소), 508-3636(원주실) 범어사 원로 청호당 양익대선사 산중장 장의위원회 위원장 대성 청호당 양익대선사 연표 (靑昊堂 兩翼大禪師 年表) 1934년 9월25일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답풍리에서 김해 허씨 수봉옹을 부친으로 밀양박씨를 모친으로 탄생하셨으며, 아명(속명)은 남익. 1962년 3월15일(29세)부산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수계. 1964년 3월15일(31세)부산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구족계 수계. 1971년(38세)범어사 극락암에서 연수원 설립. 불교무도(불무도) 지도법 개발. 1978년 (45세)범어사 청련암에 금강영관 수련원 개설. 불교무도(불무도) 본격 지도 2006년 5월 6일 새벽 1시 20분경, 범어사 청련암에서 좌탈 원적(세수 73세, 법랍 45세) 靑昊堂 兩翼大禪師 行狀 청호당 양익 큰스님께서는 1934년 9월 25일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답풍리 논골 5반에서 부친 김해 허씨 수봉 옹과 모친 박용 보살 사이에서 3남 2녀 중 둘째로 탄생하셨습니다. 큰스님은 어려서부터 처지가 어려운 사람들과 구별없이 가까이 지내며, 따뜻한 마음으로 주변의 칭찬을 들어왔으며 마을의 세간사보다는 조용하고 인적없는 곳에서 선정(禪定)에 들어가기가 다반사였습니다. 또한 큰스님은 정신 수행과 함께 무술에 많은 관심을 가져 어린 나이에도 무예에 탁월함을 발휘했고, 당시에 마을 사람들에게 이를 전파해서 비행의 무리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도록 했습니다. 큰스님은 젊은 시절 동국대학교 총무과장 일을 부탁받아 초대 문교부 장관을 지낸 안호상씨를 만나러 가던 자리에서 동산큰스님을 처음으로 뵙고, 오랜 인연의 느낌을 받아 두 번째 만남에서 출가하셨습니다. 29세 되던 1964년 3월 15일에 범어사에서 동산 큰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으셨으며, 31세 되던 1964년 3월 범어사에서 동산 큰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으셨습니다. <평생을 바쳐 전통불교무도와 관법수행 체계 마련> 큰스님은 관법수행에 깊은 관심을 가져, 특히 수행을 통해 온갖 번뇌와 욕심을 떨치고 마침내 궁극적인 깨달음에 이르는 체계를 세우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결과 법화경과 화엄경을 토대로 몸과 마음을 실천적으로 수행해 번뇌를 여의토록하는 “불교금강영관(대금강승문불무도, 관선무, 선무도)”이란 수행법을 정립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큰스님은 무술이 마음을 닦는 수행으로 이어질 수 있게 다양한 지도법을 창안해 내시어 인연이 있는 스님들과 재가불자들에게 가르침을 널리 홍포하셨습니다. 또한 큰스님은 1971년(38세) 9월 1일 불교금강영관 관주로서 범어사 서지전(西持殿)에서 대금강승문을 열어 ‘불교금강영관’을 가르치고, 1978년도에는 범어사 청련암 주지를 맡아 불교금강영관 연수원을 개관하여 보다 많은 수행 납자와 재가불자들에게 이를 체계적으로 전수했습니다. <불무도를 통해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무상(無上) 이념 실현’> 큰스님이 체계화한 ‘불무도’는 몸과 마음이 둘이 아닌 즉신성불(卽身成佛)을 목적으로 정적인 명상 호흡법과 동적인 무술과 유연법을 수련하여 심신을 단련하고 나아가 실천적인 깨달음에 이르는 비전(秘傳)수행법입니다. 즉‘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의 무상(無上)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하여 치우침없고 끊임없이 수행하여 우주적 대아(大我)를 완성하기 위한 수행법을 큰스님이 체계화 한 것이며 이를 통해 많은 후학을 이끌어오셨습니다. 여기서 배출된 스님들은 큰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경주 골굴사, 서울 호압사, 양산 금강사, 보령 백운사등을 비롯하여 전국 90여곳에서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무술을 통해서 불법(佛法)을 펴고 있습니다. <평생 포교에 매진하시다> 양익 큰스님께서는 경전에 근거한 부처님의 세계를 구현하심에 있어서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창의력으로 청련암 지장 대도량 불사를 이루셨고, 운력을 수행의 일환으로 삼으셨습니다. 특히 큰스님은 후학하신 모든 스님들과 함께 직접 울력을 통해 불사해온 것은 오늘날 한국불교에 많은 의미로 남아있습니다. 또한 큰스님은 불사를 하시는 바쁜 와중에서도 항시 경전을 읽으시며 경전 속의 부처님 세계를 시방세계에 구현해 불자들에게 신심을 갖도록 했습니다. 큰스님은 한국 불교를 질적, 양적인 면에서 중흥시키기 위해 많은 불사를 추진해 나가셨습니다. 은사스님을 모시는 마음이 지극하여 단양에 동산 큰스님 생가 복원을 추진하고, 사부대중이 마음 놓고 수행할 수 있는 사찰인 시방원(十方院- 온 법계에 두루함)을 강원도 홍천에 건립하던 중 입적하게 되었습니다. 평생을 후학양성과 불교 포교에 매진해온 큰스님은 열반 직전까지도 불사에 열과 성을 다함으로서 오늘날 인천의 사표가 되고 있습니다. <‘무소유’의 큰 가르침을 남기고 적멸의 길로 들어가시다> 양익대선사께서는 부처님오신날인 5월 5일 오전 평소 주석하고 계신 청련암에서 상좌 약연스님을 불러 홍천의 불사와 단양의 동산 큰스님 생가 복원사업, 청련암 불사를 맡기겠다고 전하고 오후에는 통도사 적멸보궁을 직접 참배하신 후 새벽녘 가부좌를 한 채 고요한 모습으로 원적에 드셨습니다. 원적 직전에 상좌스님인 약연스님, 행언스님 두 분이 "스님이 가시면 제자들은 어떻게 합니까?"라는 물음에 큰스님은 평소 법문이나 글을 남기는 일을 사양했던 삶처럼 침묵하며 적멸의 길로 들어가셨습니다. 평생 ‘무소유’를 실천한 수행자의 모습을 마지막까지 보여주셨습니다. 양익대선사께서는 시골촌부에게도 항상 예를 갖추는 겸허한 성품이셨고, 사문을 대하실 때에는 추상같은 엄한 규율에 따르셨지만 재가 신자들에게는 반가사유의 미소로 한없이 자애롭고 자상하신 큰스승의 면모를 보여주셨습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차별 없이 깨어있는 이 순간의 삶이 수행의 근본임을 몸소 실천해오신 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도 근검절약하는 무소유의 정신으로 생활하셨으며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원적(圓寂)에 드시는 그 순간에도 생사에 구애 받지 않는 대자유인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
금강영관(金剛靈觀), 선무도(禪武道). 불무도(佛武道) 금강영관(金剛靈觀) 또는 대중적으로 더 유명한 하위일파의 선무도(禪武道)는 부산 범어사의 양익 스님이 창시한 무술이다. 양익스님은 2006년 열반했다. 불교무술 최고고수로 명성이 높았다. 현재 중국의 양대 권법은 불교 소림사의 소림권과 도교 무당파의 태극권이다. 한국에서는 불교 범어사의 선무도와 도교 국선도가 유명하다. 현재 문주는 양익스님의 제자인 적운스님이다. 경주 골굴사 주지스님이다. 골굴사는 기림사 산내 암자였으나 독립 사찰이 된 후 선무도의 본산이 돼 전국에 선무도를 보급하고 있다. 선무도는 범어사에서 주석하셨던 동산대선사 제자이신 양익대선사께서 비밀불교[밀교]에서 전해지는 즉신성불법을 심신수련법으로 승화시킨 [불교금강영관]을 말하는 것으로 총본산은 부산 범어사 청련암 금강연수원입니다. 범어사 청련암 금강연수원에서 양익대선사께 사사받은 적운스님이 불교금강영관 명칭을 선무도로 개칭하여 경주 골굴사에서 보급시키면서 널리 알려진 불교무술입니다. 선무도는 골굴사 본원을 중심으로 서울, 부산, 경주, 울산, 포항 등 17개 지부를 두고 있으며, 미국, 캐나다에도 포교원을 개설하고 있다. 이 선무도 포교원을 거쳐간 연인원은 지난 10여년동안 2만여명을 상회하고 있으며, 현재 수련중인 회원들만 해도 2천명에 이른다고 한다. 선무도의 구성은 선요가, 선무기공, 선무술로 대별되며 무관, 입관, 행관의 수행법이 있고 봉검등의 각종 병장기 기술이 총망라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선호흡이나 선요가는 수천년전부터 불가에서 전승되어 온 비법이라고 한다. 불무도 역시 양익스님 제자이신 청련암 안도스님께서 전수받으셔서 명칭을 금강승불무도라 하시고 범어사 불무도 템플스테이를 운영하시고 기장불교 문화원과 해운대 범어사 포교원인 반야원, 양정의 금강선원, 금정지부등 직접 수련생들에게 가르치고 있으시며, 해외지부도 운 영되고 있습니다. 대학에서도 경찰경호학과의 교과로 되어있습니다. 결론은 한 스승밑에서 나온 제자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선무도와 불무도의 차이점 우리나라에서 불무도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단체는 두 단체입니다. 하나는 [사단법인] 대한불무도협회를 이끌었던 [고]조자룡씨가 이끄는 단체가 유명하였으며 조자룡씨는 일붕 서경보 승려를 스승으로 모시고 불무도를 널리 보급시켰습니다. 두번째는 [사단법인] 세계불무도협회에서 보급하는 경남 진주 금선암에서 주석하고 계시는 종인대선사님이 창시한 불무도입니다. 양익대선사께서는 평생동안 불교금강영관 이란 공식 명칭만 사용하셨습니다. 범어사 청련암 금강연수원에서 영동행관 3승까지 3년간 하루 8시간 이상 집중적으로 불교금강영관을 교육시켜 뛰어난 상승 승려제자들과 소수의 재가제자들을 기수별로 많이 배출하셨습니다. 범어사 청련암 금강연수원 출신이며 양익대선사 직계제자들에 의하여 불교금강영관이 다른명칭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범어사 청련암 금강연수원 출신으로 사회에서 불교금강영관을 다른 명칭으로 사용하는 분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범어사 청련암 금강연수원 1기이신 원욱스님이 이끄시는 [사단법인]금강승문 선관무 원욱스님은 양익대선사 1기 제자로써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현존하는 무술인중에 최고라 할만큼 실전무술의 대가이며 화엄학의 태두이신 관응대선사께 화엄학을 전강받으신 뛰어난 학승이십니다. 불교금강영관에 입문하기 전부터 합기도 고수로 유명하셨던 분이셨으며 불교금강영관을 수련할때도 용맹정진으로 피나는 수련을 하여 공중을 난다 할정도로 6~7번의 특수발차기를 완벽히 소화시키며 발군의 실력으로 범어사 청련암 무술 명성을 드높였던 불교무술의 명인입니다. 선관무 공식 홈페이지 http://www.sunkwanmoo.com/ 범어사 청련암 금강연수원 3기이신 적운스님이 이끄시는 [사단법인]대금강문 선무도 적운스님은 양익대선사 3기 제자로써 뛰어난 무술실력과 학식을 두루 갖추고 불교금강영관을 선무도란 브랜드로 특성화 시켜 오늘날 경주 골굴사를 중국 소림사에 버금가는 불교무술 명찰로 탈바꿈시킨 주역입니다. 불교금강영관 입문전에 태권도 고단자로써 불교금강영관을 선무도란 명칭으로 변경하여 대한민국 템플스테이를 처음으로 도입시키며 불교문화체험사업으로 정착시킨 장본인이시며 선무도를 세계화시키며 대한민국 불교무술의 뉴 리더로 리더십을 인정받으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문대학교에서 세미나를 통해 선무도의 우수성을 설파하여 무명을 떨쳤으며 스승이신 양익대선사 명성을 드높이신 불교무술의 명인입니다. 선무도 공식 홈페이지 http://www.sunmudo.com/ 범어사 청련암 금강연수원 6기이신 법찬스님이 이끄시는 대금강승문 관선무 법찬스님은 양익대선사 6기 제자로써 불교금강영관을 관선무란 명칭으로 널리 보급시키고 있으며 출가전 국술원 고수로써 몸이 가벼워 공중을 날아다닌다 할정도로 무술실력이 뛰어나시고 인품도 훌륭하시며 참선수행과 기도수행을 정진하시며 관선무를 세계적인 불교전통수행법으로 알리려고 노력하고 계십니다. 관선무 공식 홈페이지 http://www.kwansunmu.or.kr/ 범어사 청련암 금강연수원 6기이신 안도스님이 이끄시는 금강승 불무도 안도스님은 양익대선사 6기 제자로써 불교금강영관을 금강승 불무도란 명칭으로 널리 보급시키고 있으며 불교금강영관 입문전에 종인대선사께 불무도를 사사하고 불교금강영관을 수련하셨고 무술실력과 참선 수행력이 뛰어난 분으로 체중실린 발차기가 일품이며 성격이 인자하고 자비로우며 무덕이 출중한 분이십니다. 금강승 불무도 공식 홈페이지 http://www.bulmudo.org/ 범어사 청련암 금강연수원 7기이신 최종열 법사 불교금강영관 최종열법사는 불교금강영관을 적운스님이 이끄시는 선무도 대금강문에서 1기 제자로 입문하고 수료하였으며 다시 재발심하여 범어사 청련암 금강연수원에서 양익대선사께 불교금강영관을 사사한 분이십니다. 최종열 법사는 11년간 국내에서 자생하는 여러 전통무술을 수련한 후 불교무술에 입문하였으며 당대 최고의 스승들에게 찾아가 가르침을 받았는데 적운스님에게 7년 ,양익대선사께 8년,소림무술을 보급하는 허주대선사께도 주말마다 10년간 사사한 이론과 실기가 뛰어난 무술인입니다. 특히 재가제자로는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실력을 갖춘 무술인중에 한분이십니다. 무술 자전 수행록[산사에서 무예를 배우다] 단행본을 전국서점에서 출간했으며 유명방송매체에서 불교무술시범을 보이는 모습이 전파를 많이 탔습니다. 현재는 부산에서 개인무예원인 [최종열 무예원]간판을 걸고 불교금강영관을 일반인들에게 전수하고 있으며 대학에도 무술출강을 나가고 있다 합니다. 최종열 법사 운영하는 카페 http://cafe.naver.com/choipeopsa 최종열 법사가 운영하는 블로그 http://blog.naver.com/choipeopsa 이외에도 양익대선사께 불교금강영관을 전수받은 뛰어난 승려제자들과 재가제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 소림권 - 태극권과 함께 현재 중국의 앙대 권법 * 태극권 - 올림픽 종목 * 국선도 - 유명한 한국 도교 무술단체 소림무술과 선무도의 차이점 소림무술은 중국선종본찰 소림사에서 승려들이 하는 무술로 중국인들은 소림사를 선무성지(禪武聖地)라고 표현할 정도로 유명한 불교무술을 말합니다. 소림사는 인도승려로써 중국에 불교 선법을 전한 보리달마대사때문에 유명하지요. 소림사무술은 병기술로 체계가 잡혀있는 군사무술도 있으며 수행의 방편으로 심신을 탁마하는 수행무술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선무도와 소림무술은 같은 禪武를 수련하는 것으로 불교무술이며 불교사상도 똑 같지만 수련법이 중국과 한국에서 조금씩 다르게 발전된 것입니다. |
경주골굴사
---------------------------------------------------------
강원도 홍천 시방원 : 부산 범어사 말사 (양익 선사 창건)
강원도 홍천 시방원 정면 모습
시방원 안락전
강원도 홍천 시방원 안락전에 모셔져 있는 청호당 양익 큰스님 영정
--------------------------------------------------------
범어사 내원암(內院庵)
청련암은 100m 윗쪽 숲속 계곡에 자리하고 있고 내원이란 암자 중에서 가장 안쪽에 있는 곳 안방이란 뜻을 지녔다.
범어사 암자들 중에 유일한 비구니 수행 암자이며, 고승, 대덕, 큰 스님이 상주하는 곳이란 의미도 갖고 있다.
내원암의 지국이 1개월 조금 넘었다는데 제법 큰편이다.
지국이 엄마는 청련암에서 자주 보인다.
녀석 폼이 제법인 걸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서 그럴까
지국이 태어난지 6개월 인데 정말 많이 컸네요. (2014. 6. 6)
범어사 내원암의 '제일선원' 이곳은 역대 고승들의 참선 수행처로 유명한 곳이다.
성철 큰스님 께서도 이곳에서 수행하신 적이 있다고 한다.
안녕을 비는 인등에 우리 가족의 이름이 보인다.
"대자비전" 이라는 편액을 건 본당에는 천수천안(千手千眼)하신
관음보살을 모셔 놓았다.
===========================================================
펜화로 보는 범어사 2014년 달력(Calendar)
오래전 통도사를 그린 펜화를 기념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아쉬움에
범어사 펜화를 담아본다.
---------------------------------------------------------
불교무도 대가 ‘양익 대선사’ 영결식 봉행
2006년 5월 10일 청호당 양익대선사 다비식이 거행되었습니다.
만인은 평등하다는 평소의 가르치심을 마지막까지 가시는 길에서도 가르쳐주시는듯,
내리는 5월의 단비속 다비식장으로 향하는 신도분들은 모두 같은 하얀 비옷을 입고 만장을 들고 행렬을 따랐습니다.
다비장이 있는 산의 언덕길은 비에 젖어 온통 진흙으로 변해 미끄러지기 일쑤였는데도 사부대중의 장의 행렬은 스님의 극락왕생길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순간 신도들의 눈에는 또 한번의 애도의 물결이 출렁거렸다. 하늘도 스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듯 법비를 멈추었다. 붉은 불길이 일더니 연화대는 금새 타버리고 검은 재가 하늘을 수 놓았다.
“이 생애 태어나 결국은 생로병사. 죽은 후 도대체 어디로 가는가. 마음 자체는 오고 가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렇게 보일 뿐"
“누구보다 천진무구한 도인이셨고 꾸밈없이 소탈하시어 큰 선지식이면서 티를 내지 않으셨으니, 누가 스님을 애도하지 않겠습니까”
--------------------------------------------------------
불교무도 대가‘양익 대선사’영결식 봉행
범어사 보제루 4000여명 사부대중 애도
범어사 보제루 안에 양익스님의 영정이 모셔졌다.
한평생 수행 포교 불사에 매진
꺼지지 않는 등불로 영원히 남아
“좌탈입망으로 평소 가르침을 보여주신 양익 스님! 이것이 스님의 마지막 무상법문이신가요!”
스님의 원적에 하늘도 애도하듯 법비가 내리던 5월 10일 오전 10시 30분. 범어사 보제루와 대웅전 앞 마당에 사부대중 4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청호당 양익 대선사(세수 73 ·법랍 45)의 영결식이 봉행됐다.
영결식을 알리는 5번의 명종 소리는 빗줄기를 타고 청아하게 울려 퍼져 애도하는 신도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었다.
범어사 보제루에서 열린 영결식에 참석한 스님들.
이날 참석한 청화 스님(조계종 교육원장)은 영결사를 통해 “스님께서 이루신 적멸의 분상에 어찌 오고감이 있고, 시종이 있을 수 있으며, 생사의 출몰이 있겠습니까? 다만 무상법계에 태어나서 우리와 같이 사바에 머무신 것은 상사자재한 법신의 묘용을 보이신 것입니다”고 낭독했다.
스님은 또 “이제 예토의 수고로운 연을 거두시고 대적삼매 속에 대자유·대해탈의 법락을 여유로이 누리소서”라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지유 스님(범어사 조실)은 “이 생애 태어나 결국은 생로병사. 죽은 후 도대체 어디로 가는가. 마음 자체는 오고 가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렇게 보일 뿐”이라며 삶과 죽음 그리고 마음에 관한 법어를 내렸다.
빗속을 뚫고 장의행렬이 이어졌다.
대성 스님(범어사 주지)은 추도사를 통해 “40여 년을 두 날개를 펼쳐 저 허공을 비상하시더니 날개를 고요히 접으시고 적멸을 보이신 것은 열반적정의 참모습을 시현하신 것”이라며 “누구보다 천진무구한 도인이셨고 꾸밈없이 소탈하시어 큰 선지식이면서 티를 내지 않으셨으니, 누가 스님을 애도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흐느꼈다.
이어 사부대중의 조사가 시작됐다.
흥교 스님(범어사 금강계단 전계대화상)과 반월 스님(연등사 주지)은 “양익 스님! 우리 문도들은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스님의 삶을 자신을 돌아보는 고경으로 삶을 것입니다”며 스님의 원적을 애도했다.
4000여명의 신도들이 다비장을 향하고 있다.
특히 박정현 범어사 신도회장의 조사가 이어질 때 대웅전 앞마당의 신도들의 눈에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박 회장은 “세속 인연 36년 동안 내게는 형님이자 아버지요, 큰 스승이셨던 당신의 일생을 정식 상주도 아니요, 상주 아님도 아닌 반상주로 빈소의 끄트머리에 앉아 뒤돌아보게 됩니다”라고 말한 뒤 터지는 울음을 참지 못해 말을 잊지 못했다. 잠시 후 울먹이는 목소리는 다시 이어졌다. “상중에 당신의 상좌 스님들끼리 장례비용 염출하면서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통장 잔고에 300만원. 돈은 생기는 대로 모두 불사에 부으시고 남기신 재산은 전혀 없대요. 한국과 세계 90여 곳에 개설된 ‘불교금강영관’을 원류로 하는 수많은 수행 제자들의 가슴속에 깊이 남아 당신의 가르침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될 것입니다”고 밝혔다.
범어사 합창단의 ‘왕생극락’ 조가가 흐른 뒤 일주문에서 금정산 다비장까지 장의행렬이 이어졌다.
하늘을 향해 뻗어나간 수백 개의 만장기들이 흰색 비옷을 입은 신도들의 손에 지탱되어 장의행렬을 인도했다. ‘나무아미타불∼!’ 정근소리는 쉴 새 없이 울려퍼졌다.
불에 타고 있는 연화대 모습.
다비장이 있는 산의 언덕길은 비에 젖어 온통 진흙으로 변해 미끄러지기 일쑤였는데도 사부대중의 장의 행렬은 스님의 극락왕생길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일주문에서 1시간 여의 시간이 흐르자 다비장에 다다랐고 연화대 주위는 사람들로 둥그렇게 에워싸였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순간 신도들의 눈에는 또 한번의 애도의 물결이 출렁거렸다. 하늘도 스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듯 법비를 멈추었다. 붉은 불길이 일더니 연화대는 금새 타버리고 검은 재가 하늘을 수 놓았다. 다비식이 끝나자 다비장 주변에 신도들의 나무아미타불 정근이 이어졌고 흰 연기가 피어오르자 ‘반야심경’ 봉독이 다비장에 울려퍼졌다.
부산 범어사 = 유남경 기자
작성일 : 2006-05-11 오후 12:45:36
'불교인연방 > 사찰순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홍법사 동자스님(童子僧) (0) | 2014.04.20 |
---|---|
사리탑 세워지던 날 말랐던 샘물이 솟아오르다 / 금산 보광사 (0) | 2014.03.21 |
구례 화엄사 구층암 - 산사순례 (0) | 2013.12.07 |
조선의 마지막 원당, 백운사 - 순정효황후 (0) | 2013.11.09 |
'건물 20층 높이'…62m 세계 최대 청동 좌불상 (0) | 2013.10.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