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구층암일까?
일감스님의 마음을 맑히는 산사순례 - 구례 화엄사 구층암
구층암의 명물 ‘모과나무 기둥’ 좋은 것도 많았을 텐데 왜 울퉁불퉁한 것을 사용했을까?
구층암 모과나무 기둥이 지금처럼 유명한 명물이 되리라는 것을 그 때 사람들은 알았을까? 생김새가 울퉁불퉁한 것은 말 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기둥 사이에 큼지막한 돌도 박혀있다.
구층암은 모과나무로 유명한데 임진왜란 당시 구층암이 모두 불타버려 새로 절을 지을 때 수령 200년에 이르는 모과나무 세 그루를 요사의 기둥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보통, 기둥감은 곧고 잘생긴 것을 골라 쓰는데 이 기둥들은 그런 기준을 벗어나 있다. 소나무 참나무도 아닌 모과나무를 겨우 껍질만 벗겨내는 둥 마는 둥 대충 다듬어서 기둥으로 썼다.
지금이야 칭송이 자자하지만 이런 나무를 기둥으로 쓴다고 알게 모르게 얼마나 뒷담화가 많았을까? 아마도, 집을 못 쓰게 만든다고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저 집 짓고 주지 스님은 걸망을 짊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구층암의 대표선수가 되었다.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 사찰순례하는 신도님들, 특히 한국 불교사상을 연구하는 선생님들, 생태건축 등 이런 분야의 관심 많은 사람들은 구층암 모과나무 기둥을 빼 놓지 않고 보러 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스님들의 선방이었기 때문에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제는 외국인들도 알고서 찾아온다.
독일에서 온 스벤이라는 친구는 매년 찾아온다고 한다. 처음에는 모과나무 기둥을 보러 왔다가 구층암에서 덖은 차 한 잔 얻어먹고, 구층암의 이런 저런 삶을 들여다보고는, 하루 이틀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더니, 내년 1년은 통째로 휴가를 얻어서 구층암에서 살기로 하였단다.
적은 규모이지만 농사짓는 것이 재미있고, 특히 차 농사에 관심이 많으며, 김치 담그는 방법도 꼭 익히고 싶다고 한다.
전통 건물로 보이는 화장실의 왼쪽은 외국인용과 오른쪽은 내국인용이다.
외국인 여행객들이 유기농 농사를 짓는 농가에서 숙식을 제공받는 대신에 농사일을 함께 거들어 주며 그곳의 생활과 문화를 체험하는 우프(WWOOF)라고 하는 여행문화가 있다.
구층암에도 이런 외국인 여행자들이 더러 찾아와서 텃밭 농사도 함께하고, 시절인연이 맞으면 차를 같이 덖기도 하고, 그리고 불교 수행체험을 하고 돌아간다고 한다.
언어가 다른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단다. 삶의 실제적인 입장 앞에서는 말 이전에 마음으로 통하고, 몸짓으로도 통한다고 하니 이해가 갈 법도 하다.
한쪽 방향으로 정해진 기준은
괴로움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나는 이번 생에
구층암 천불보전 부처님들께
아홉 번 이상 참배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모과나무 기둥을 바라보면서
나만의 기준으로 생긴
마음의 괴로움이 있으면
내려놓을 것이고….
절집에는 공양시간을 놓치면 밥 얻어먹기가 쉽지 않다.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아 종무소에 전화를 미리 드렸다.
“절집의 규칙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만, 구층암 밥을 꼭 먹어보고 싶습니다.” 정중하게 부탁을 드려서 공양상을 받았다.
된장도 맛있고 밥도 맛있다. 고수나물 무침도 향이 진하다. 한 그릇을 뚝딱 먹고서는 숭늉도 부어 마셨다.
공양주 보살님께 말을 붙였다. “보살님은 어떨 때 기분이 제일 좋으셔요?” “사람들이 공양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좋다”고 하신다. 굳이 설명 안 붙여도 알겠다.
여기 올라오신지 20년도 더 넘었다는 보살님이 무슨 특별한 바람이 있으시겠나. 그저 오는 사람 가는 사람들 맛있게 밥해드리고 건강한 몸과 마음을 챙기는 모습을 보면 그것으로 다 만족하실 것 같다.
구층암이 왜 구층암일까? 구층탑이 있었을까? 아니면 구품연화대를 의미할까? 자세한 내막은 사찰을 안내해주는 처사님도 자신 없어 한다.
정확한 내력이야 알면 더 좋겠지만, 지금 현재의 자신에게 필요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면 더 좋을 것이다.
나는 이번 생에 구층암 천불보전 부처님들께 아홉 번 이상 참배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모과나무 기둥을 바라보면서 나만의 기준으로 생긴 마음의 괴로움이 있으면 내려놓을 것이고….
주지 스님은 화엄사에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차에 관한 많은 공부를 하셨다 한다. 오늘 마침 일이 있어 출타를 하셨다.
사무장이 대신 이런 저런 여러 가지의 차를 내 주었다. 오래도록 보관이 가능하고 여러 가지 맛을 낼 수 있는 발효차에 대한 많은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내 입맛에는 잘 덖은 덖음차가 제일 좋았다. 해마다 구층암 덖음차 한통 얻을 수 있었으면… ….
지리산에 안겨 있는 구층암은 언제나 포근하다.
구층암 모과나무 기둥은 소리 없는 법문이다. 삶의 문제가 잘 풀리지 않을 때 모과나무 기둥과 얘기하면 풀릴 것이다.
한쪽 방향으로 정해진 기준은 괴로움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이럴 때 구층암을 찾으면 좋겠다. ‘맑은 차향이 사방으로 퍼진다는 차실(茶香四流)’에서 차 한 잔을 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인등 또한 일품이다. 인등을 들일 건물을 몇 차례 지으려했지만 그 때마다 좋지 않을 일이 생겨 이렇게 조성했다고 하는 데 풍광도 일품이다.
[불교신문2968호/2013년12월7일자]
구층암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화엄사에 있는 암자.
종파 : 대한불교조계종 창건시기 : 신라 말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의 산내 암자이다. 전하는 유물로 보아 신라말에 창건된 것으로 보이며, 사찰 이름으로 보아 본래 구층석탑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연혁이 전하지 않아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다.
건물로는 천불보전과 수세전·칠성각·요사채 등이 있다. 이중 천불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물로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으며 뒤에는 토불(土佛) 1,000개가 모셔져 있다.
탱화는 제석탱화가 걸려 있다. 수세전은 정면 2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산신탱화와 칠성탱화가 모셔져 있다. 요사채는 천불보전 좌우에 있다.
유물로는 동종과 석등·삼층석탑 등이 있다. 이중 동종은 1728년(조선 영조 4) 조성된 것으로 높이 64cm이다. 석등은 고려초의 유물로 추정되며 높이 224cm이다. 옥개석 윗면에는 복련이 조각되어 있고 상륜에는 보주가 남아 있다. 간석과 화사석은 1961년에 보수하였으나 전체적으로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32호로 지정되었다.
통일신라 때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삼층석탑은 기단이 2층이고, 상층 기단은 4장의 판석을 짜맞추어 만들었다. 탑신부 중 1층 한면에는 결갑부좌한 불상을 돋을새김으로 새겨 넣었다. 1961년 9월 주변에 흩어져 있던 탑재를 모아 복원한 유물이다.
왼쪽 요사 처마 아래에는 1829년(순조 29) 석잠(碩岑)이 쓴 〈해동봉성현지리산화엄사봉천암중수기〉와 1900년(광무 4) 송암(松庵)이 쓴 〈등봉천암(登鳳泉庵)〉 등의 현판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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