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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인연방/사찰순례

누가 이 자리에서 도인이 될 것인가…영주 부석사

by 연송 김환수 2013. 9. 28.

누가 이 자리에서 도인이 될 것인가

영주 부석사

 

데스크승인 2013.09.18 12:07:35 사진=일감스님(본지 주간)

 

 

부석바위의 전설을 듣는 아이들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상상력과 미래가 펼쳐지지만 부석사에 오면 누구나 한 번은 기대보고 싶은 곳이 무량수전이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모 방송에 나와서 부석사 무량수전에 대한 최순우의 글을 외웠다.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통해서 유홍준의 은혜를 이미 입고 있었지만, 새삼 고맙게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의상이 태백산으로 와서 절을 지으려고 했으나 그곳에 근거지를 둔 도둑들이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다. 화쟁(和諍)이 잘 이뤄지지 않았나 보다.

 

할 수 없이 의상의 호법신장이 신통력으로 바위를 들어 올려 공중에서 빙빙 돌렸다. 이것을 본 도둑들이 혼비백산 줄행랑을 쳤다.

 

호법신장은 당연히 선묘낭자이리라. 이런 내력으로 부석사(浮石寺)라는 절의 이름이 생겼다. 지금도 무량수전 뒤편에 부석이라는 이름표를 단 큰 바위가 있다.

 

부석바위의 한쪽 끝에서 실을 넣으면 빠져나온다며 지금도 바위가 허공에 떠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실제로 해보지 않았으니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이런 설화가 있으니 삶은 더 여유로워지는 것이다.

 

선묘 용()은 의상의 법문을 듣기 위해 무량수전 마당 밑 석룡(石龍)이 되었고, 아직도 무량수전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발굴조사 때 석룡을 확인하였다고 한다. 전설과 유물이 일치하는 걸 보면 설화가 설화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배흘림기둥

 

해인사 강원을 다닐 때 일이다. 방학을 하면 5대 보궁을 비롯한 유명한 사찰을 참배하면서 신심을 키우던 시절이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을 처음으로 참배하였다. 법당을 막 들어서서 합장한 채 부처님을 바라보았다. 순간 가슴에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 벅차오르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부처님의 힘이나 가피 같은 것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주말 저녁에 근일 큰스님의 참선법회에 참석해서 법문 듣던 기억도 새삼 떠올랐다. 마침 방글라데시 스님과 함께였는데 큰스님께서 좋아하면서 마음을 깨쳐 대자유인이 되라고 법문해 주셨다.

 

매주 토요일에 열리는 철야 참선법회를 30년 동안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다고 하니 정말 머리가 숙여진다.

 

조계종 제16교구 고운사는 본말사의 모든 스님들이 수행과 교화를 서로 화합하고 합심해서 잘 해내는 본사로 이름이 높다. 이런 일의 바탕에는 조실 근일 큰스님과 사부대중의 수행이 바탕이 되고 있다고 본다.

 

미래 한국불교가 사회를 향한 참여와 복지, 그리고 봉사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지만 불교의 고유한 수행 전통을 잃지 않는 것은 더욱 중요한 일이다.

 

 

무량수전 현판.

 

무량수전에서 동쪽으로 언덕을 오르면 의상스님과 역대 조사 스님들을 모시는 조사전이 있다. 물론 원효스님도 계시다. 조사전 축대에는 의상스님이 꽂은 지팡이가 싹이 나서 지금도 살아있다고 전한다.

 

비를 맞거나 물을 주지 않아도 자연적인 이슬만으로도 살아있는 것은 의상스님의 신통력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의 손을 타게 되고 그래서 이중삼중의 망을 쳐 놓아야만 한다.

 

나무를 보호해야 하는 것도 맞지만 나무가 철창 안에 갇혀 있는 듯해서 마음이 안쓰럽다. 더군다나 가지 한쪽은 문제가 생기고 있었다. 물 안줘도 잘 산다고 할 것이 아니라, 전문가를 불러서 치료와 관리를 잘 해 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석사는 유물도 많지만 이야기도 참 많은 절이다. 한 때 부석사에서 수행하였다는 스님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지금 취현암이 있는 자리에 20여년 전만하여도 구취현암지(舊醉玄庵址)라는 작은 돌비석이 마당에 있었다.

 

무량수전이 허물어질듯해서 일제총독부가 큰돈을 들여서 수리를 하는 대신에 부석사 선방이던 취현암을 없애라고 했단다. 이유는 거기서 도인이 나오기 때문이란다.

 

논의 끝에 우선 무량수전 보수가 급하니 그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지만 선방이 뜯기는 원통함에 어떤 노스님께서 작은 기념비를 마당에 세웠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그런 상처는 치유가 되었는지 지금은 다시 취현암 선방이 들어서 있다. 이제는 도인이 나오기를 기다릴 때다.

 

하나 속에는 전체의 요소가 있고, 전체 속에도 하나의 성질이 있네. 하나는 곧 전체요 전체는 곧 하나이니, 한 티끌은 전체를 품었고, 모든 티끌 속에도 또한 그러하네(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卽一 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 이렇게 법성게라도 한 번 읊고 범종루()에 서면 답답하던 가슴이 뻥 뚫리고 시야도 맑아진다

 

부석사에는 누각 건물이 두 개나 된다. 그것도 방향이 서로 다르다. 법당을 중심으로 안양루는 가로로, 범종루는 단을 한 단 내려서 세로 방향이다.

 

자칫 단조롭기 쉬운 똑 같은 형식의 건물을 방향을 달리함으로 더 멋있게 연출하였다. 안양루에서 봐도 앞산들이 멋있고 범종루에서 봐도 눈 맛이 시원하다. 누각 밑에 앉아서 쉬던 참배객들의 얘기가 귓등으로 들린다.

 

옛날 스님들은 바위도 공중에 붕붕 날렸다는디 지금 스님들은 그런 신통력은 없나벼” “도둑들이 안 사니께 없제” “어허그것이 말이여 막걸리여” “신통력이 필요 없는 세상이여. 합리적인 사고가 통하는 세상이다 그 말이여

 

일리가 있다. 서로가 인정하는 바른 생각과 바른 행동으로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부처가 되어야 할 것이다.

 

[불교신문2947/20139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