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김씨 종친회 비하인드 스토리
(behind story : 뒷이야기)
최근에 新羅金氏(신라김씨)라는 말을 들어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신라김씨" 라고 하는 것은 어느 특정 종문(宗門)의 성관(姓貫)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고, 대보공(휘 알지, 諱 閼智)의 후예, 즉 신라의 김씨왕과 그 모든 후손들을 총괄하여 일컫는 말이다.
신라김씨의 명칭이 공식적으로 거론된 것을 알아보면 1980년경에 "범 신라김씨종무원(凡 新羅金氏宗務院)"이 창립되고 이후 신라범김씨 대종회 (新羅凡金氏大宗會)로 재창립(再創立)되어 운영되었다.
이후 1991년경에 신라김씨연합대종원(新羅金氏聯合大宗院)으로 개칭(改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신라 경순왕에 대한 춘향대제를 경기도 연천군 소재 경순왕릉에서 지내고, 가을에는 경주에서 26위 왕에 대한 추향대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근래(2010년)에는 “신라김씨 연합 대종원” 이라는 카페도 만들어져 운영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신라천년 사직(기원전 57 ~935 )의 왕은 56분으로 이중 석씨(昔氏)가 8왕(王)이고, 박씨(朴氏)가 10왕(王)이며,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의 김씨(金氏)가 38왕(王)을 배출하였다.
참고로 신라의 김씨 38왕중 10위 대왕은 봉분이 있거나 별도로 춘향대제를 올리고 있으며,
신라김씨 38명의 왕 중 사당에 위패를 모시지 못한 26명의 왕에 대해서는 제향을 올리기 위해 매년 가을에 추향대제를 치르고 있다.
김알지의 후손들은 600여 관향으로 분관되어 각각 다른 시조를 모시지만 최초의 비조(鼻祖) 즉 시조(始祖) 이전의 선계조상(先系祖上)은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 이다.
신라김씨는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쳐 경주김씨(慶州金氏=신라김씨)를 종성(宗姓)으로 600여 관향으로 분적 된 것으로 족보역사서는 기록하고 있으나, 2000년 인구조사 통계상 360본관으로 나타난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김영삼이 대선후보 출마를 하면서 <신라김씨 종친회>를 거국적으로 기획한 적이 있었는데 김영삼은 경순왕(敬順王)의 후손으로 金寧金氏(김령김씨) 이다.
*** 김영삼 : 문민정부 제14대 대통령(1993년 2월 ~ 1998년 2월)
대선후보로 나선 김영삼은 많은 표를 얻기 위해 생각해 낸 것이 新羅金氏 宗親會(신라김씨 종친회)였다.
935년에 왕건에게 나라를 바친 경순왕의 후예들과 신라종실의 모든 <신라김씨>들이 모여서 종친회(宗親會)를 하자는 참신한(?) 아이디어 였다. 종친회를 만들어 득표와 연결시켜 보자는 취지였다.
金鎭奭(김진석) 신라김씨 연합회 대종원 총재 金鎭奭 유니온상사고문 신라金씨 12대왕 추모제 金鎭奭 신라김씨 연합회 대종원 총재(유니온상사고문)는 10일 상오11시 慶州반월성궁궐지에서 신라金씨12대왕 합동추모제를 갖는다. 1992.10.09 경향신문 17면 사회 기사(뉴스) |
종친회의 임시회장은 충북 괴산출신의 국회의원 김종호씨가 맡기로 하고 종친회의 캐치프레이즈가 “경순왕이 잃은 왕권 천년만에 다시 찾아오자!” 였던 것이다.
김종호 前 국회의원은 1935년생으로 경주김씨 태사공파 30세손이다. 충북 괴산 출신으로 충북도지사, 내무부 장관, 정무 1장관을 역임하셨고 제11,12,13,14,15,16대 6선 국회의원으로 국회 부의장을 지냈다. 청주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법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석사) 호(號) : 동헌(東軒) 생년월일 : 1935.11.30 (음) 본적(출생) : 충북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 1982. 4 경주김씨 중앙종친회 총재(現) 1993. 3 신라김씨 연합대종원 명예총재1997. 8 세계 스카우트 의원연맹[창설자겸 명예총재』(現) 1976. 9 홍조근정 훈장(청와대 근무 공로) 1980. 1 새마을훈장 협동장(새마을운동 공로) 1981. 3 황조근정 훈장(내무부 근무 공로) 1982. 3 벨기에대십자 훈장(벨지움 국왕 레오폴드2세) 1989. 3 무궁화장 금장(스카우트 육성 발전 공로) 1992.11 특별포상 금장(새마을금고 육성 발전 공로) 1993. 1 청조근정 훈장 1999. 7 브론즈울프 훈장(세계스카우트의원연맹 창설 공로) |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시행도 하기 전에 문제가 생겼는데 경순왕의 후손으로 “왕”에 해당하는 국가수반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그게 바로 북한의 김일성이다.
김일성이 경순왕의 넷째아들 은열의 후손 전주김씨(全州金氏)로 밝혀진 것이다.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신라김씨 종친회>는 물거품이 되었고 캐치프레이즈는 더이상 써 먹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신라김씨 종친회>는 없었던 일이 되었다.
신라김씨 대종원 연혁
新羅金氏 大宗院 沿革 | ||||||
初代 名譽總裁 | 金仁得 | 1980. 1 | 會 長 | 金振興 | 凡新羅金氏宗務院 創立 | 江陵 |
二代 名譽總裁 | 金貞欽 | 1983. 9 | 初代總裁 | 金東祚 | 新羅凡金氏大宗會 再創立 | 彦陽 |
三代 名譽總裁 | 金宗鎬 | 1993. 3 | 二 代 | 金炯珠 | 扶寧 | |
四代 名譽總裁 | 金潤煥 | 1995. | 三 代 | 金炯珠 | 扶寧 | |
五代 名譽總裁 | 金吉洙 | 四 代 | 金炯珠 | 扶寧 | ||
五 代 | 金榮輝 | |||||
新羅金氏聯合大宗院 (改稱) 總裁(총재) | ||||||
1991 | 六 代 | 金鎭奭 | 김녕김씨 중앙종친회장 | 金寧 | ||
七代 | 金鎭奭 | 김녕김씨 중앙종친회장 | 金寧 | |||
1996 | 八代 | 金泰鎬 | 고령김씨 대종회장 | 高靈 | ||
九代 | 金相祚 | 선산김씨 회장 | 善山 | |||
2002 | 十代 | 金許男 | 전 국회의원 | 全州 | ||
十一代 | 金許男 | 전 국회의원 | 全州 | |||
2005 | 十二代 | 金壽善 | 건국대 부총장,박사 | 遂安 | ||
2007 | 十三代 | 金吉洙 | 광산김씨대종회 상임고문 | 光山 | ||
2008 | ? | 金一潤 | 전 국회의원 | 慶州 | ||
2008 | 十四代 | 金秀吉 | 신라문화보존회 이사장 | 扶寧 | ||
2012 | 十五代 | 金容鈞 | 전 국회의원. 변호사 |
*** 참고로 현재 신라김씨 대종원 총재는 김용균 변호사가 물러나고 14대 총재를 지내신 신라문화보존회 김수길선생이 다시 대종원 총재업무를 수행한다고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고 소송 건이 있었는가 봅니다.)
(사)신라문화보존회 연혁 | ||
차수 | 성 명 | 기 간 |
제1대 | 김진석 | 1995년 11월 01일 ~ 1999년 11월 20일 |
제2대 | 김수길 | 1999년 11월 23일 ~ 2001년 12월 09일 |
제3대 | 김수길 | 2001년 12월 10일 ~ 2005년 12월 10일 |
제4대 | 김수길 | 2005년 12월 10일 ~ 2010년 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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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의 본관은 전주이고 그 시조의 묘는 전주 모악산에 있습니다. 전주김씨는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9세손 김태서(金台瑞)를 시조로 하고 있다.
그는 고려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1232년(고종 19) 한림학사(翰林學士)를 거쳐 추밀원부사(樞密院府使)·상장군(上將軍) 등을 지냈으며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와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을 역임하였다.
1254년(고종 41) 식읍(食邑)인 경주(慶州)가 몽골군의 병화(兵火)로 인하여 폐허가 되자 가족을 데리고 전주(全州)로 이거하였으며 후에 완산군(完山君)에 추봉되었다. 그로 인하여 후손들이 관향(貫鄕)을 전주(全州)로 삼게 되었다.
시조 김태서의 장남 김약선(金若先)은 당대의 세도가(勢道家)인 최우(崔瑀)의 맏사위이며 순경태후(順敬太后)의 부친으로 추밀원부사(樞密院府使)를 지냈고, 차남 김기손(金起孫)은 이부상서(吏部尙書)를 거쳐 원종이 즉위하자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이르렀고,
막내 김경손(金慶孫)은 고종 때 몽골군이 침입하자 정주분도장군(靜州分道將軍)으로 귀주성(龜州城)을 지켰고, 1237년(고종 24) 전라도 지휘사(全羅道指揮使)가 되어 나주성(羅州城)에서 초적(草賊) 이연년(李延年)의 난을 평정하였다.
1928년에 간행된 전주김씨 족보를 보면 시조묘산도가 전주 모악산 일대로 그려져 있고 시조가 김태서임이 분명히 밝혀져 있습니다. 또 김태서공의 32대 손으로 김일성의 본명인 '김성주(金成柱)'와 동생 '김영주'의 이름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최근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는 방북한 남한 언론사장단과의 오찬회동에서 "남쪽에 가서 그곳(시조 태서공 台瑞公의 묘가 있는 완주 모악산)에 갈수 있으면 시조묘를 참배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또 김일성주석의 자서전인 '세기와 더불어' 제1권에서 "우리가문은 김계상 할아버지대에 살길을 찾아 전라북도 전주에서 북한으로 들어왔다고 한다"고 적고 있어 김일성 부자의 본관은 전주김씨가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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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신라문화 보존회는 2012.10. 29일 신라문화 보존회 이사장 겸 850만 신라김씨(신라 김알지 공 후손) 연합대종원 총재로 메디팜헬스뉴스 법률고문 김용균 변호사(전 국회의원, 법무법인 世民 대표 변호사)를 선출 하였다.
신라김씨 연합대종원은 신라김씨 38위 대왕과 경순왕의 춘추향 대제를 봉행하고 신라 왕가의 종묘건립 등을 추진하고 있다.
김변호사는 신라김씨 문중의 광산 김씨로서 국회사무차장, 체육청소년부 차관 및 헌법재판소 사무처장과 국회의원을 역임 하였고 대종원 부총재로 봉사해왔으며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현재 북한을 제외한 남한의 "신라 김씨" 전체 인구는 8,981,500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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