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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사 방/조선오백년 야담

조선 오백년 야담 제1화 / 寶娘과 靑湖 - 血痕奇譚

by 연송 김환수 2013. 8. 29.

朝鮮(李朝) 五百年 野談

 

차 례

 

第 一 話 - 寶娘靑湖 - 血痕奇譚

第 二 話 - 樂浪好童 - 悲戀哀史

第 三 話 - 楊書房致富 - 抱腹絶倒

第 四 話 - 風流監司 - 節佳妓話

第 五 話 - 哀戀話 - 靑春悲戀

第 六 話 - 異花 雪竹梅 - 復讐奇譚

第 七 話 - 將軍義盜 - 名將逸話

第 八 話 - 煩惱僧 - 佛力奇譚

第 九 話 - 悲愴- 百濟哀話

第 十 話 - 金議官 叔侄 - 韓末逸話

第十一話 - 李星信最後 - 海戰悲話

第十二話 - 阿非知九層塔 - 望鄕哀話

第十三話 - 可憐杜十娘 - 名妓哀話

第十四話 - 公主神尺 - 怪夢奇譚

第十五話 - 餘愁 - 落照悲話

第十六話 - 斬首된 별아기 - 愛情悲譚

第十七話 - 千里遠情 - 義俠美譚

 

< 제 일 화 >血痕奇譚(혈흔기담)

寶娘靑湖 (보낭과 청호)

 

< 1 >

지금으로부터 한 백오십년전쯤 될까. 충청도 어느 조그만 고을이다.

산천경개도 아름다우려니와 어염시수(魚鹽柴水)도 많아서 살기 좋은

곳이었다.

 

어느해 여름이다. 이곳에는 다른 과실도 많이나지마는 특히 참외가

맛이 있어서 이 고을 들판에는 참외밭이 많이 있고 그 참외밭을 지키는

원두막이 여기저기 서있어 풍경이 그럴듯 하였다. 이 고을에 장난꾸러기

소년 준구(俊九)와 또 재동으로 유명한 청호(靑湖) 둘이서 밤중에 참외

서리(도둑질)를 하러 갔다. 청호는 준구를 그리 좋아 하지 않으나 준구가

끌어서 심심풀이로 간 것이다.

 

준구는 공부는 잘 못하지마는 활 쏘기, 쓰기는 잘 하였고 청호는 재동이니만치 선생이 혀를 내두를만치 잘하였다. 준구의 집은 명문이요, 부자이지만 청호의 집은 생원댁이요,

가난하기 짝이 없었다. 그들은 어두운데 살살 기어서 참외밭으로

들어갔다. 원두막에는 늙은 영감이 지키고 있는데 잠이 든 모양이다.

사다리 밑에 오줌독을 갖다 놓았다. 참외 따다가 소리가 나서 영감이

깨어 내려오드라도 오줌독에 빠져서 쩔쩔 매는 통에 도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준구와 청호는 숨을 죽이고 참외를 따서 미리 가지고 온

망태에 넣었다. 그런데 웬걸

어떤 놈이냐?

소리치면서 영김이 사다리도 내려온다. 맨 끝에 사다리에서 땅으로

내려오는데 발이 풍덩하고 오줌독에 빠져서

아이쿠!

하고 부르짖으며 호통을 치는 사이에 준구와 청호는 도망해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따가지고 온 참외를 글방에 가서 동무들과 큰 잔치를

하였다. 이랬으면 좋았을텐데 또 며칠후에 참외 생각이 나고 그래도

다른데 갔으면 좋았을 것인데 그 영감이 오줌독에 빠지는 꼴이 재미

있어서 바로 그 참외밭으로 갔다.

 

전례대로 오줌독을 사다리 밑에 놓고 참외를 따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뒤에서

이놈들!

하고 소리치며 한손으로는 청호의 머리꼬리를 잡고 한손으로는 준구의

머리꼬리를 잡으려는 순간 준구는 날쌔게 도망해 버리었다. 그래서

청호만 붙잡히고 말아서 원두막까지 와서 불을 켜갖고 얼굴을 비추어

보더니 아니 요놈이 유생원 아들 청호로구나. 너 이놈 요전에도 왔지?

하고 단단히 혼을 낼 작정이다. 영감은 그 놈들이 또 올줄 알고 사다리

하나를 따로 만들어 두었다가 다른편으로 내려와서 잡은 것이다.

 

잘못했읍니다. 다시는 아니합죠

뭣이 어쩌구! 또 한 놈은 뉘집 자식이냐?

같이 오긴 했어도 몰라요

 

청호는 혼자 망신을 당할지언정 동무까지 끌고 들어가기는 싫었다.

너 그대신 내일 이 참외밭 주인 영감에게 가서 단단히 사과를 해라,

알겠지

주인 영감이 누구십니까?

아니 그것도 모르니! 바로 바로 맹감역댁이다

!

맹감이라면 이 고을에서 뜨르르하는 집안이다. 세도도 대단하려니와

전답이 많고 큰 부자이었다. 그리고 그 성질이 괄괄해서 호랑이 라는

별명에다가 너무 인색해서 맹돼지 라는 칭호까지 겸하였다.

아차! 잘못 걸려 들었구나?

 

청호는 속으로 생각했으나 그까짓 참외서리쯤 보통이라고 안심하였다.

하기는 옛날에는 참외서리, 콩서리, 밤서리, 호박서리, 조금 크면 닭서리,

돼지서리까지 있어도 그런 것을 훔쳐다가 먹는 것쯤 보통이요, 죄로

인정하지 아니하였다. 아이들 뿐아니라 어른까지 이것을 한 재미로 하는

풍습이었다. 요전에 영감이 오줌독에 빠지고 참외를 도둑 맞아서 분김에

주인 맹감역에게 말하니

꼭 그놈들을 잡아오게 내가 만나야겠네

하고 그 꾀를 가르쳐 준 것이다.

 

너 내일 꼭 가거라. 안가면 너희집으로 잡으러 갈테니-

청호는 겨우 석방이 되어서 집으로 오니 길에서 준구가 기다리고 섰다가

 

미안하다. 괜찮았니?

하고 물었다. 청호는 사연을 다 말하니

저런! 큰일 날뻔했다. 내 말을 제발 말아다구 그집 딸하고 나하고

지금 혼인말이 있단다

하고 죽을 상이다.

 

- 네말은 아니할테니 걱정 말아라

그 은혜는 갚으마

청호는 이런 동무와 사귄 것을 후회하였다. 근묵자흑(近墨者黑)으로

나쁜 친구를 사귀면 나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이튿날 청호는

맹감역 집으로 찾아갔다. 전에는 몇번 만나서 서로 안면은 있는 처지다.

벌써 원두막지기 영감께서 연통이 있었는지

- 네 놈 왔구나 하고 대뜸 호령이다.

 

이리 오너라

맹감역은 청호를 끌고 안마당으로 들어갔다. 마당 담 밑에

복숭아나무가 있는데 거기다가 청호를 세워놓고 밧줄로 칭칭 얽어 맨 후에

미리 준비했던 채찍으로 때리기 시작하였다.

 

- 발칙한 놈아- 그래 참외 도둑질도 나쁜데 영감을 오줌독에 빠지게

해서 다리를 다치게 하다니! 요놈 박살을 시키겠다

맹감역은 채찍으로 청호의 팔, 다리 할 것 없이 닥치는대로 때리었다.

그러나 청호는 울지 아니하였고, 그가 하는 짓이 사람같지 않고 우습게

보였다. 청호의 몸에서는 붉은 피가 칠칠 흘렀다.

 

아버님! 그만 두세요. 용서하세요!

계집아이가 뛰어나오며 소리쳤다. 청호가 힐끗 보니 자기보다 한두살

아래인 소녀인데 정말 드물게 보는 아리따운 처녀이었다.

- 저 처녀가 준구와 혼인 말이 있다는 맹감역 딸이로구나?

청호는 순간 알아 맞추었다.

 

네 이년 들어가- 어딜 나와서 무슨 소리야! 남녀가 유별한데

그래도 그 도령을 놓아주지 않으면 안들어 가겠어요. 참외 좀

따먹었기로 그게 무슨 큰 죄라고 저렇게 때리셔요. 소녀는 못보겠어요

당연한 말이요, 또 규중처녀로서는 대담한 짓이다. 청호는 고맙다는 듯

쳐다보는데 서로 눈이 마주치고 이상한 정이 통하는 듯 하였다. 그러나

청호는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머리를 숙이었다.

 

너하고 같이 간 놈을 대라. 그렇지 아니하면 더 때리고 여기다가

밤새껏 매 두겠다

그건 죽어도 말 못하겠읍니다

뭣이 뭐야! 요 앙큼한 놈 같으니

채찍이 또 휙- 하고 갈기어졌다.

 

아버님!

맹감역의 딸 보랑(寶娘)은 달려들어서 그 채찍을 붙잡았다.

아니 너 저리 못가겠니?

아버지는 호령한다.

 

이 채찍을 저를 주시고 저 밧줄을 풀기전에는 못가겠어요. 아버님

이건 너무 과한 망녕이셔요. 죄송하오나---

보랑은 울었다. 맹감역은 할 수 없이 채찍을 딸에게 뺏기고 밧줄을

풀어주며

오늘은 놔준다마는 다시 그따윗 짓을 하면 용서없다

하고 화등잔만한 눈알을 부라리었다.

 

< 2 >

가을이다.

어느날 매파가 유생원 집에 와서

맹감역 댁 규수가 아주 얌전하니 한번 통혼해 보십쇼

하고 권고하였다. 그것은 보랑이 어머니에게 은근히 청혼 이야기를 해서

그 어머니가 매파를 유생원 집으로 보낸 것이다.

 

글쎄. 우리같은 한미한 집과 혼인을 하겠소. 그건 하늘에 별따기보다

어렵소. 더구나 맹감역은 호랑이 같은데

산에 가야 범을 잡지요. 막 닥들여 보십쇼. 안에서는 좋게 생각하니

이래서 유생원은 떨떠름하지만 맹감역을 찾아 갔다. 맹감역은 아들이

잘못한 것을 사과하러 온 줄 알았더니 뜻밖에도

- 황송하온 말씀이오나 제 자식놈이 뭐 변변치는 못하오나 이

고을에서 재동이라 하옵고 또 똑똑하옵니다. 그런데 어떤 매파가 와서

댁에 따님과 혼인하면 좋겠다고 해서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하고 겨우 말하였다.

 

뭐 뭣이 어쩌구 어째?

맹감역의 얼굴이 금방 빨개지면서

그런 아들은 셋을 뭉쳐 가지고 와도 내 딸과는 혼인할 수 없네.

언감생심에 그런 어림없는 말을 어디다가 하는 겐가. 자네가 미쳤네

그려! 하고 책망하였다.

 

- 저도 그렇게 생각했읍니다만 매파가 하도 와서 조르기에 혹시나

하고 온 것이 올시다

그런건 꿈에도 생각지 말게- . 아니 그리고 자네 아들놈이 요전 우리

밭에서 참외를 훔쳐 갔다네- . 아니 내가 그래 참외도둑놈을 사위 삼을

줄 아나?

? 아니 그런 일이 있었읍니까?

 

그놈 아비 한테는 말을 아니했군. 괘씸한 놈 같으니- 장가 보낼테면

참외도둑년이나 골라서 보내게

유생원은 극도의 모욕을 당하고 집으로 와서 청호를 불러 놓고 종아리를

때리었다.

 

맹감역이 안으로 들어가서 저녁을 먹는데 그 부인이

- 유생원이라고 아시죠? 하고 물었다.

알구말구. ?

 

그리고 여름에 영감께서 참외 훔쳤다고 때려준 아이도 아시죠?

그야 알지, 왜 그래?

그런데 보랑이말요, 늘 그애 칭찬을 하면서- 암만해도 수상해요.

그리고 말유 준구하고 약혼하라고 하면 세길 네길 뛰면서 다른데는 시집

안가겠다고 하니 어쩌면 좋단 말유?

 

뭐 뭐야, 미친년 같으니- 아니 어디 하필 사내가 없어서

참외도둑놈한테 가겠다는거야? 준구란 놈은 활 잘 쏘고 칼 싸움 잘하고

씩씩한 사내 대장부인데 그런델 싫다고? 눈깔이 삐었군 그래?

영감 그 준구는 장래가 좋지 못할게래요. 또 여름에 참외도둑도

그애가 유생원 아들- 청호라든가를 꾀여서 갔대요

 

아니 그건 어떻게 알았단 말요?

글방 동무들의 입에서 나온 말예요. 나도 보랑이도 그 글방 동무의

어머니에게서 들었어요. 보랑은 그 청호가 동무를 위해서 말을 아니한게

정말 사내답고 훌륭하다고 그래요. 그러면서 눈치가 그애를 퍽 사모하는

것같아서 매파를 유생원 댁에 보냈어요

 

- 그래서 유생원이 왔군- 아니 그놈이 준구 말을 아니했다- 그건

기특한데

기특하고- 말구요. 웬만하면 제 발뺌이라도 할겸 말할게 아네요.

 

그렇게 채찍으로 맞으면서 죽어도 말 못하겠다는 것을 보셔요. 얼마나

의리있는 남아인가!

 

- 하긴 그렇군- 그러나 그집은 문벌도 없고 밑이 째지게 가난하고

그런데와 창피해서 어떻게 혼인한단 말요. 그런 생각일랑 아예 하지마오

맹감역은 화가 나는 듯 재떨이에 담뱃대를 탁탁 친다.

 

그야 그 청호가 이담에 잘 되면 괜찮을게 아뇨?

그까짓 아이가 잘 되면 얼마나 잘 되겠소- 아 한다하는 명문 자제들이

많은데, 그리고 준구아버지와는 친하고 그집도 무관으로 이 고을에서는

쩡쩡 울리는 가문이요. 그런델 내버리고 아니 유생원- 하하하 쥐생원의

쥐새끼하고 혼인을 해? 그런 말은 입밖에도 내지 말우

그래도 보랑이-

아니 그년은 버렸군. 아니 감히 그런 생각을 한담. 혼인이란 부모의

뜻대로 하는 법인데- 앙큼한년- 내 혼을 톡톡히 내 줘야지- - 보랑아

맹감역은 호령을 해서 딸을 불렀다.

 

보랑은 아버지 앞에 앉았다.

- 이년 그래 어디 남자가 없어서 참외도둑놈하고 혼인을 하려고

하니? -

말씀드리긴 황송하오나 소녀와 혼인말이 있는 준구라는 사내는 참외

도둑대장이라고 하옵니다

이 말에는 맹감역도 어이가 없고 입이 꽉 막히었다.

 

이년 규중 처녀가 아비앞에 말을 또박 또박 건느는 법이 어디 있니?

입은 하느님이 말하라고 내신 것이라 생각하옵니다. 입은 사내 입이나

아녀자 입이나 같은 것이라고 아뢰나이다

뭐 뭐뭐 아니 조런 건방진 계집애 좀 보아- 그래도 또박 또박 말

대답이야

 

그럼 소녀가 벙어리가 되었으면 아버님 마음에는 좋으시겠나이까?

- 조런 말 따위 좀 보아!

 

맹감역은 기가 막히고 속으로는 우습고도 딸년이 맹랑하다고

감탄하였다. 계집애라고 얕잡아 볼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자기의

옹고집과 잘못을 약간 뉘우쳤다.

좌우간 아녀자라는건 얌전해야 하는 법이다. 너는 좀 조심해야 한다.

어디 아비 앞에서 무엄하게-

 

아버지와 딸은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하나이다. 그런데 어찌 해서

아버지에게 말을 못하고 병신처럼 얌전만 하라고 하나이까?

! 조런 점점 하는 말따위 좀 봐- 아니 여보 마누라 어디서 저런 딸을

낳고 어떻게 가르쳤기에 저렇게 버르장머리가 없단말요?

- 죄송하오나 저는 가만히 요새 생각하오니 아녀자는 너무 사람 값에

못가고 죽은 것 같았어요. 저도 영감과 단둘이 있을때는 뭐 어쩌구

 

저쩌구 무흠하게 지내면서 남보는데는 점잖을 빼고 여편네는 사내앞에

쥐구멍을 못 찾으니 그게 암만해도 어떻게 잘못된 것같아요

뭐 뭐 뭣이 어쩌구. 아니 세상이 뒤집힐라구 이러나. 그게 무슨

무도한 말요. 그래서 저년도 그러는군- - 뭐 집안이 망하겠꾼 예! !

맹감역은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해서 담뱃대를 흔들면서 나가 버리었다.

 

호호호호!

호호호호!

어머니와 딸은 마주 웃었다.

그때만 해도 옛날이요. 완고한 시절이었지만 여자가 눈뜨고 새 시대 새

세상의 싹이 트려는 징조가 이런 규중에서는 가끔 발로 되는 것이었다.

그렇지! 여자라고 말 못하고 사내앞에 죽어 대령할 것이 무엇인가.

보랑은 일찍 깬 선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머님 아무튼 저는 그 청호한테 시집 못 가면 죽겠어요

어디 규중처녀가 그런 말을 하는 법이 있니. 혼인이란 그저 부모가

골라서 하는 게란다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이건 아버지나 어머니가 시집 장가 가는게

아니고 제가 가는거예요, 그런데 왜 제가 고르지 못할 까닭이 어디

있어요?

 

- 그건 규중 여자로서는 말할 수없는 게다. 너는 마침 그 청호를

보았으니 말이지 어디 처녀와 총각이 첫날밤 전에야 볼 수 있니.

초례청에서도 눈에 밀로 봉해서 신랑을 못보게 하는 법이다

아이참 이상도 해라. 그래서 첫날밤에 맘에 안맞으면 어떡해요?

다 그럭저럭 되고 사는게다

 

그게 암만해도 틀린 것같아요

보랑은 고개를 끼웃거리며 생각해 본다. 이것도 역시 옛날에는

여자로서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보랑은 의아하였다.

참으로 영리한 소녀이었다.

 

그래 어머님도 아버님이 맘에 맞으세요?

예끼 그런말이 어디 있니. 맞고 안맞고가 어디 있니. 다 인연이요

배필이지

그러나 뭐 저도 다 알아요. 어머님도 아버님이 마땅치 않은 것을-

아니 조런! 호호호! 하기는 네말이 옳다. 아버지는 너무 성미가

괄괄하고 무뚝뚝하고 고집 불통이고

저것 봐요. 참 어머님은 무슨 재미로 한 세상을 사시는지 몰라요,

저는 그런 사내를 만날까 겁이 나요. 그런데 그 청호라는 도령은 참 크게

될 사람이고 재미있는 사내고 제게 꼭 맞을 것같아요. 이것도 인연이요,

배필이 아녜요?

 

글쎄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기도 하다

그러니 매파를 더 보내고 어머님이 아버님 맘을 동하게 하세요

호호호! 아니 네가 벌써 그런 앙큼한 말을 하다니, 그래 너 정말

시집가고 싶으냐?

아무때 가도 갈게 아녜요. 이왕이면 맘에 맞는 이 한테 속히 가야지

않아요?

 

호호호! 기가 막혀라- 오냐 내 힘써 보기는 하겠지만 원체 아버지가

저런 바윗덩이라---

너는 무남 독녀 외딸인데 시집을 잘가야 할텐데

거기만 틀림 없어요

어머니와 딸은 밤이 깊도록 이야기 하였다.

이집에는 주인 식구보다 하인들이 더 많았다.

 

< 3 >

그 이듬 해 봄이다. 갖은 꽃이 만발하였다. 보랑은 마당에 있는

복숭아 꽃이 활짝 피어 붉은꽃 분홍빛 흰빛이 섞인 복숭아꽃이 탐스럽게

되었는데 나비가 훨 훨 날아 들며 춤추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복숭아나무 등걸이에 매여서 매를 맞던 청호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때

눈에 마주친 것 사내답고 아름다운 풍채! 고것은 오매 불망이었다.

처녀로서 봄이 되니 더욱 임 그리는 정이 조발되었다.

그이도 나를 생각할까?

 

그것이 더욱 보랑을 안타깝게 하였다. 그이도 자기를 생각해 주기를

바라고 또 그럴 것같았다.

이 고을에서 인근읍 청소년들을 모아서 글을 지어 상을 주는 백일장이

열리었다.

 

원님(군수)이 있는 관청 동원 마당에는 차일을 치고 인근읍 청소년들

여러백명이 모이어 와글 와글 하였다. 이것은 정말 한양 서울에서 과거를

보는 흉내요, 연습이었다. 말하자면 요새말로 모의시험이었다. 대청에는

원님을 위시해서 육방 관속이 나열해 앉았고, 인금읍 명문 거족들이 앉아

있다. 그 밖에는 보통 백성들이 마당이 터지게 둘러섰다.

맹감역도 대청에 참례해서 앉아있다.

 

응시하는 무리중에는 준구도 청호도 섞이어 있었다.

글 짓는 운자가 나오고 청소년들은 지필묵을 꺼내서 글을 짓기

시작하였다. 모두 얼굴을 찡그리고 머리를 끼웃거리며 글을 짜내느라고

야단이다.

 

글을 지어서 쓴 종이가 하나 둘씩 대청으로 올라갔다. 글을 꼬누는

관원이 둘러 앉아서 보기 시작하였다. 잘된 것은 관주를 주고 잘못된

것은 접어 넣었다. 관주에는 동그래미 하나 하는 것 둘하는 것 차차로 그

등급이 있었다. 많아야 두셋 관주이었다.

그런데 유청호의 글에는 알관주가 다섯이 되었다.

시험관 대표가 일어나서

장원 급제는 유청호요-

 

하고 청호를 나오라고 해서 상을 주고 그 글을 읊었다. 정말 명문

명시었다. 장내는 뒤끓고 마당에 섰는 유생원은 너무 기뻐서 울었다.

그중에 놀란 것은 맹감역이다. 참외도둑했다고 나무에다가 밧줄로

동여매고 채찍으로 때리던 아이가 일등이 된 것이다. 더구나 유생원이

청혼하는 것을 책망해 보내고 딸에게도 호령하게 한 바로 그놈이다.

맹감역은 기가 딱 막히고 얼굴이 붉어졌다.

 

맹감역은 집으로 와서 안에 들어가 저녁을 먹는데 아내와 딸이 옆에서

시중하면서

오늘 누가 장원급제를 했어요?

하고 물었다.

그까짓건 아녀자들이 알아서 뭘 해

그는 입맛을 쩍쩍 다시면서 다른 말을 아니하였다.

왜 우리도 글을 아는데 좀 듣고 싶군요

글쎄 그놈이 급제야

그놈이라니요?

 

- 왜 저, 유생원 아들 청호말야

보랑이 움직 하면서

? - 정말씀이세요. 아이그 어쩌문!

하고 소리쳤다.

아녀자는 얌전해야 하는 법야

그럼 기뻐도 죽은척 가만히 있어야 해요?

- 또 그따윗말!

 

인제 그 청호를 용서하시겠지요?

그까짓 고을에서 급제한게 소용있니. 정말 한양 서울서 급제를 해서

한림학사가 돼야지

그렇게 되면 소녀를 그댁으로 보내시겠어요?

 

그야 그렇게 하겠지만 그집에서 말을 들어 줄지- 그러나 웬걸 알성

급제를 하겠니?

저는 꼭 할 것같아요

 

글쎄 우리 고을에는 여러해동안 그런 인물이 나지 않았는데- 아니

그놈이 그렇게 재주가 있는줄은 몰랐다. 그놈 때린 것을 생각하니

부끄러워서-----

맹감역도 그제서야 후회를 하는 모양이다.

 

그참 준구는 어떻게 되었어요?

보랑의 어머니가 물었다.

그건 뭐 말이 아냐. 그놈야 무관이니까

무관도 글은 알아야죠

그렇긴 해

 

< 4 >

가을이 다시 되었다.

한양 서울에서 과거를 보게 되었다.

 

전국에서 수재들이 다 모였다.

그런데 역시 유청호가 알성 급제로 장원을 해서 한림학사가 되었다.

임금님이 특히 불러서 보시고 이야기까지 하시었다. 이것이야 말로

하늘에 별따기보다 어렵고 다시 없는 영광이다.

 

청호가 고향으로 오자 원님이 친히 나오고, 삼현육각으로 주악을 하면서

환영하였다. 이것은 한 고을의 큰 영광이기 때문이다. 구경하는

남녀노소가 구름 모이듯 하였다.

 

청호가 집으로 가는데까지 삼현육각을 잽히고 청호는 한림학사의 예복을

입고는 사린교를 타고 군노사령이 호위해서 행진하였다. (三絃六角 :

거문고, 가야금, 당비파의 세현악기와 북, 장구, 해금, 피리, 두개의

대평소로 된 기악편성 )

 

보랑도 그 어머니와 함께 사랑 대청에서 내려다 보았다. 맹감역은

어이가 없는 듯 바라보고 있다. 자기가 그 청호에게 채찍을 맞는 것같은

느낌이었다. 딸을 힐끗 보니 웃으면서도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놈의 참외밭은 공연히 해가지고--- 내년엔 보리나 심어야지

맹감역은 혼자 중얼거리고 있다.

며칠이 지나서이다. 맹감역은 유생원 집을 찾아왔다.

 

-- 이거참 말하기는 거북하지만 우리딸과 댁의 아드님과 백년가약을

맺는 것이 어떻소?

 

맹감역의 평소의 우렁찬 목소리는 어디로 가버리고 가늘고 떨리는

목소리었다.

글쎄요. 댁의 따님 셋을 뭉쳐와도 내 아들과는 혼인할 수 없을걸요

그런 말씀 듣게 되었소. 그러나 과거지사는 일장춘몽으로 돌리고

어떻게 생각을 돌려 보시오

그러자 청호가 들어와서 절을 하고 가서 뵈옵는다는게 죄송합니다

참 이번 과거에서 급제한 것은 감추한 일이요, 큰 영광일세

다 고을 어르신네들의 덕택이옵지오

내가 그대를 때렸으니 대신 나를 때려주게. 정말 부끄럽네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소생은 퍽 다행으로 생각하옵니다

아니 그럼 그것 용서하겠나?

 

소생은 그 즉시로 잊어버렸나이다. 그 대신 잊지 못할 것은 보랑

아가씨의 고운 마음씨입니다. 그 채찍과 그 마음씨로 저는 더 열심으로

공부해서 급제까지 아였나이다

- 그럼 전화위복이 되었네 그려- 참 그 참외밭은 그만두고 보리를

심게 하였네

아니올시다. 그건 그대로 두십쇼. 그래서 가끔 그 원두막에 놀러

가서 그때 생각을 하게 해주십쇼. 소원입니다

아니 그럼 그 참외밭을 온통 자네에게 줌세

감사한 말씀입니다

 

한림학사가 되더니 아주 점잖고 어른이 되었는데--- 참 지금 춘부장과

이야기중일세마는 어째 내 우매한 딸이라도 데려 오겠나-

황송하옵니다. 그야 두 어르신네께서 작정하실 탓이지오

아니 이 댁 규수와 혼인 하겠다는 게냐?

 

황송하오나 소자는 벌써 보랑아가씨와 마음으로 약혼하였나이다

고맙네. 고마워-- 이런 기쁜 경사가 어디 있나. 사실은 거절 당하면

내딸에게 면목이 없어- 아 그년이 청호 아니면 시집을 아니 가겠다는군?

그 이듬해 봄에 이 고을에서는 전무후무한 혼례식이 거행되었다.

 

그것은 유청호와 맹보랑의 혼인이었다. 원님과 사또까지 참석하였고,

한양에서 임금님 특사까지 내려왔다.

 

첫날밤 신랑이 신부옷을 벗기고 원앙금침에 누울때 보랑은

이것부터 보셔요

하고 내놓는 것은 피가 묻은 채찍이었다.

! 이건 내가 맞던 그것

- 저는 이걸 늘 간직하고 잘때면 품에안고 낭군 생각을 했어요.

피를 저는 만져 보고 입 맞추고- 부끄러운 말씀이오나--

고맙소 고마워. 이 채찍이 나를 급제하게 하고 그대와 혼인하게 한

것이요

그들은 밤깊도록 이야기하다가 한 이불속에 들어가서 봄꿈을 꾸었다.

다시 없는 인생의 행복을 그들은 독차지 한 것 같았다.

 

그후 유청호는 벼슬이 점점 높아가 승지 참판으로 판서까지 되고 나중엔

정승이 되었다. 거기에는 유청호의 재덕도 있었지마는 보랑의 숨은

공로가 더 컸다.

 

아들딸 오남매나 두고 고향에 가면 그 참외 원두막에는 반드시 찾아

가는 것이었다.

 

이것은 뒤에 알려진 것이지만 준구는 산적이 되어 가끔 고을에

출몰하다가 잡히어 옥에 갇힌 것을 청호가 꺼내 주어서 회개하고 무관으로

출세하였다는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