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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사 방/조선오백년 야담

조선 오백년 야담 제17화 / 千里遠情 - 義俠美譚

by 연송 김환수 2013. 8. 28.

 

朝鮮(李朝) 五百年 野談

 

차 례

 

第 一 話 - 寶娘과 靑湖 - 血痕奇譚

第 二 話 - 樂浪과 好童 - 悲戀哀史

第 三 話 - 楊書房의 致富 - 抱腹絶倒

第 四 話 - 風流監司 - 節佳妓話

第 五 話 - 哀戀話 - 靑春悲戀

第 六 話 - 異花 雪竹梅 - 復讐奇譚

第 七 話 - 將軍과 義盜 - 名將逸話

第 八 話 - 煩惱僧 - 佛力奇譚

第 九 話 - 悲愴의 賦 - 百濟哀話

第 十 話 - 金議官 叔侄 - 韓末逸話

第十一話 - 李星信의 最後 - 海戰悲話

第十二話 - 阿非知의 九層塔 - 望鄕哀話

第十三話 - 可憐杜十娘 - 名妓哀話

第十四話 - 公主와 神尺 - 怪夢奇譚

第十五話 - 餘愁 - 落照悲話

第十六話 - 斬首된 별아기 - 愛情悲譚

第十七話 - 千里遠情 - 義俠美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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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7 화>

義俠美譚(의협미담)

千里遠情 (천리원정)

 

지금으로부터 칠백여년전 고려 고종(高宗)때의 일이다. 북방으로부터

원나라 군사가 조선국내에 쳐들어와서 전국 각처에서 상하 인민이 화를

많이 받은 때 일이다.

 

< 1 >

강원도 명주(溟州)땅 지금으로 치면 강릉(江陵) 땅에 김천(金天)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김천이 자(字)를 해장(海莊)이라하고 인물이 출중하게 잘나고 천품이

총명하여 어려서부터 인근 사방에 유명하였다.

그는 날때부터 얼굴이 비범하게 났다고 일문과 인근읍에 소문이 났기

때문에 수령방백의 귀에까지 들어가서 일부러 찾아 보는 일까지 있었다.

귀가 유난히 크고 시커먼 눈섭이 붓으로 그은 듯이 뚜렷하고 이마와

미간이 넓직하고 입이 또한 ㅋ큼직하여 거의 귀밑까지 올라가고 눈이 약간

들어간 것이 이상스럽께 광채가 있고 정기가 있는데다가 웃을때면 말할 수

없이 정당운 맛이 있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장차 일국의 재상이 될 관상이라 하였다. 아무튼지

김천의 얼굴에 귀인다운 데와 사람을 끄는데 모퉁이가 있는 것은 분명한

일이었다.

나이 겨우 열살이 넘자 벌써 용모에 어른답고 귀공자다운 태도가 있어서

동무들하고 놀면 언제든지 괴수가 되어 여러 아이의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게다가 공부를 잘하여 그야말로 일람(一覽)첩기로 하나를 배우면 열은

몰라도 두셋은 알아서 벌써 사서삼경(四書三經)을 통달하고 특별히 풍월과

시부를 잘하여 가끔 선생과 붐모를 놀라게 하였다. 봄이면 봄, 가을이면

가을, 철을 따라서 시를 지어서 읊기를 좋아하며 이태백 소동파의 글을

어떤 것은 잘했다 어떤 것은 못했다고 비평까지 하였다. 그래서 신동이라

하였다.

나이 열다섯살에 글 잘하고 말 잘하고 게다가 풍채가 좋아서 동무들

사이에 흠모와 존경의 대상이 될 뿐아니라, 동네 처녀들이 가슴속에 그

뛰어나게 잘나고 사내답고도 정당한 용모를 그리고 남모륵게 사모하는

일이 있게 되었다. 그 얼굴 생김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맑고도 우렁찬

목소리와 그 음전하고도 활발한 걸음걸이며 옷입는 맵시 어느 한가지

사람의 마음을 끌지 아니하는데가 없었다.

게다가 부모에게 대한 효성이 지극하며 모든 예절이 깍듯하고 형제간에

우애하여 집안에서도 늘 귀염을 받는 중에 특별히 그 모친 김씨의 총애를

받고, 김천도 모친을 극진히 사랑하여 어려서 부터 나올 때와 들어갈 때에

반드시

어머니 다녀오겠읍니다

어머니 다녀왔읍니다

하고 인사를 하며 조금이라도 모친이 몸이 불편하여 자리에 누우면 잠시도

그 베개머리를 떠나지 아니 하고 시약을 하고 평시에도 그 어머니 옆에서

어머니의 말씀을 듣기를 좋아하였다.

모친은 호장(戶將) 김자룡의 딸로 천성이 너그럽고 현철하며 사리에

밝아서 시부모와 지아비를 잘 섬기고 자녀를 잘 길러서 과연 훌륭한

현모양처이었다. 모친은 역시 어려서부터 규중에서 자라나면서 소학

효경 등을 배워서 상당히 유식할 뿐 아니라 삼국지 수호지 등 책을 읽어서

옛날의 성현인 군자의 교훈과 사적으로 일러주는 것은 물론이요, 본래

구변이 좋아서 여러가지 예날(신라 고구려 중국)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

주었다.

어머니의 시원하고도 그럴듯한 이야기에는 해장과 동생들이 바싹 반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어떤때는 아들 해장이 혹은 동무하고

놀던 이야기 혹은 선생에게 들은 이야기를 어머니 아버지와 동생 앞에서

이야기를 우습게도 잘해서 온 집안에 웃음판이 터지곤 하였다.

집안은 과연 즐겁고 행복스러운 가정이었다. 그러한데는 첫째는

어머니의 현숙한 심덕과 효변의 힘이요, 둘째에 김천의 효성과 활발한

성품의 탓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김천의 조부때로 부터 전해오는

전장(田莊 : 자기가 소유한 논밭)으로 의식걱정은 없이 지내이기 때문에

누구나 김천의 화평스러운 생활을 부러워 하였다.

 

< 2 >

김천의 위인이 잘나고 가문조차 상당하므로 명주땅 근경에서 딸가진

사람은 저마다 사위를 삼으려고하여 사방에서 혼담이 나서 신부감을

고르고 고르다가 그중 인물곱고 얌전한 촉선땅 고진사의 작은 딸을 택하여

혼인을 정하고 오는 봄에 길일을 정하여 잔치를 하게하고 미리붙터 준비를

하고 있던 때라 오느새 가을도 지나고 눈이 펄펄 내리는 즈음에 김천의

집에는 청천벽력같은 변이 생겼다.

모친 김씨가 작은아들 덕린(德麟)을 데리고 평창(平昌)땅 친정에

다녀오는 길에 마침 서울을 지나 남쪽으로 밀려 내려오면서 재물 약탈과

부녀겁탈을 함부로 하던 원나라 군사에게 잡혔다.

몽고병이 젊은 부녀와 아이들을 잡아다가 혹은 종을 삼고 혹은

팔아먹을려고 돌아가는 길에 많이 잡아가지고 간 일이었다.

그러나 가는 길에도 겁탈을 하고 몹시 일을 부려먹고 하는 일이 있어서

그 엄혹한 명령에 응하지 아니하면 단번에 칼로 찔러 죽이고 가버리고

그렇지 아니하고 요행히 목숨이 살아서 가던 사람들도 그해 겨울은 마침

몹시 추워서 얼어죽은 사람이 부지기수라는 소문이 사방에 퍼졌다.

이 소문을 들은 김천의 집에서는 김천의 모친과 동생이 돌아오지

아니하므로 문득 수심에 싸여서 오늘이나 돌아올까 내일이나 무슨 소식이

있을까 하고 기다리며 온 집안은 눈물과 울음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하루

아침은 이 소문을 듣고 온 집안은 방성통곡하고 김천은 모친과 동생은 꼭

죽은 줄로 알고 상을 발하여 모친의 몽상을 입었다.

그러자 김천은 수심과 슬픔에 싸여서 만사에 뜻이 없고 무슨 일에나

일이 손에 붙지를 아니하여 일절 출입을 폐하고 집안에 들어앉아 그럭저럭

하루 이틀을 지냈었다. 그후 몇해를 지나서야 김천이 대강 잔치를 하고

아내를 맞어 들였으나 김천의 아버지는 병객이고 김천이 아주 호주가

되었다. 그런데 때마침 심한 흉년이 들어서 추수가 변변치 아니하고

김천이 아버지가 무슨 장사를 하느라고 빚을 썼다가 그 빚값에 자기

소유의 전장까지 거의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김천의 집안은 그만

살기가 매우 어렵게 되었다. 어린 김천이 일가의 전 책임을 지고 해보지

못한 농사도 짓고 혹은 장사도 하여서 간신간신히 지내갔다.

 

< 3 >

세월이 흐르고 흘러서 어느새 십오년이 지났다.

어머니가 죽은지 십오년이 된 가을이었다.

마침 가을달이 몹시 밝아서 반공에서 고요히 내려 비쳤는데 남무잎이

우수수 우수수 떨어지는 소리, 가늘고 맑은 소리로 우는 귀뚜라미 소리-

게다가 반공에 끼릭끼릭 울고가는 기러기 소리는 사랑하는 어머니와

동생을 원통하게 잃어버린 김천에게는 모두가 속절없는 눈물을 자아내는

것이었다.

고요한 달밤에 김천은 지겟문에 기대어 한숨을 내쉬이면서 어머니

생각을 한다.

어머니께서 정말 돌아가셨을까?

지금도 어디서 살아 계셔서 고생을 하시면서 그리고 아들을 그리며

애를 태우시지 아니하실까?

이렇게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다가 문득 잠이 들었다.

한잠을 들었다가 동네집 개짖는 소리에 잠을 깨이니 달은 여전히 밝은데

혼자 앉아서 꿈꾸던 생각을 한다.

휀일일까 이상하도다. 어머니가 정말 살으셨나

하고 중얼거렸다.

꿈에 대문밖에 어머니가 남루한 옷을 입고 동생의 손목을 붙잡고 서서

집안을 들여다 보기만 하면서

해장아 해장아

하고 부르는 것이다. (어머니는 늘 김천의 자를 불러서 해장이라 하였다)

얼른 대문밖으로 뛰어 나가보니 어머니와 동생은 간 곳이 없었다.

김천이 꿈이 하도 이상타 해서 벌떡 일어나서 정말 대문밖으로 나가서

이리저리 어머니를 두루 찾아 보았으나 어머니의 그림자나 있으랴? 다시

문을 닫고 들어와서 자리에 누워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에 김천의 아내가

지난밤에 당신이 밖에 나가셨소?

그래

왜?

그렇지 않아도 내 그이야기를 하려던 차이요. 꿈에 어머니를 보고

하도 수상해서 나가 보았지

하고 꿈 이야기를 하였다.

당신이 하도 어머님 생각을 간절히 하시니간 꿈에 늘 보이는 것이

아니오

아니오 아무래도 무슨 이상한 소식이 들릴려는가 봐

기쁜 소식이나 들리면 안 겠소? 그러나 이제 십오년이나 되도록

소식이 없는데 웬걸 살아 오시겠어요

내외가 앉아서 이렇게 꿈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또 마침 뜰안의

뽕나무가지에서 까치가 요란스럽게 운다.

참말 무슨 반가운 소식이 들릴려는가 봐요. 저렇게 까치가 야단으로

우니

하고 아내가 남편을 위로 겸 말하였다.

참말 기뿐 소식이 들리면 좋겠나?

하고 김천은 웃으나 한숨을 쉬이면서 마침 장날이라 장으로 나갔다.

 

< 4 >

이러한 일이 있는 저녁이라 김천은 장에서 볼일을 보고 마악 집으로

돌아오려고 하던 차에 길에서 오래간만에 촉선골 친구 김순응(金順應)을

만났다.

순응이 김천을 만나자마자 썩 반가운듯이 손을 턱 붙잡고

마침 잘 만났네. 그렇지 않아도 내 자네를 찾아가던 길일세

하는 말에는 무슨 중대한 힐이 있는 모양이었다.

왜 무슨 일이 있나? 오래간만인데 집으로 가세

그러나 김천은 무슨 큰 일이야 있으랴 하는듯이 무심한 태도로 이렇게

말을 한즉

일이 있네. 일이 있어. 자네 자당(慈堂)한테서 편지가 왔다네

무어? 어머님한테서 편지가 왔어? 장난의 말이지?

그말을 못믿겠다는 듯이 김천이 이렇게 말하자 순응은 정색을 하면서

손을 잡아 끌며

내가 언제 자네에게 장난하던가. 덮어놓고 가세

하고 같이 가기를 재촉하였다. 가면서 순응의 말을 들으면 이러하다.

순응이 볼일이 있어서 명주땅에 왔다가 어떤 주막에서 점심참을 하는데

원나라에서 왔다는 백호(百戶) 습성(習成)이라는 사람을 만났다. 그런데

그 습성이라는 손님이 한두마디 이야기를 하던 끝에 이 명주고을에

김천이라는 사람을 아느냐고 묻더란다. 그래서 김천이란 사람은 내

친구인데 왜 찾느냐고 한즉 동경(원나라 서울)에 있는 김천의 모친의

편지를 가지고 와서 전하려고 찾는 중인데 당신이 그 김천의 친구라니

마침 잘 되었소, 하면서 편지를 내보이며 찾아 주기를 청하더란다.

그래서 김천은 순응과 같이가서 원나라 손님 습성을 찾아가서 습성을

친히 만났다.

만난즉 과연 습성은 원나라에서 왔는데 김천의 어머니를 친히

만납보았다고 하며 편지를 내어준다.

김천은 꿈인가 생시인가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위선(우선) 습성에게

어머니를 대한듯 절을 하고 두손으로 편지를 받아보니 과연 모친의

친필이라 글씨부터 반갑기 그지없다. 그 자리에서 팔을 들어 춤을 추고

싶은 것을 여러 사람이 있는 길거리라 그럴 수는 없으나 너무 기뻐서

껑충껑충 뛰다시피 하면서 편지 겉봉을 뜯어 보았다.

편지 사연에 하였으되

해장아 너는 내가 죽은줄만 알고 슬픔으로 냈으리라마는 죽지 않고

살아서 동경에서 삼, 사십리 가량 되는 북주(북주)라는 곳에 장모(張某)의

집에서 노비의 몸이 되어 지낸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에 천신만고한 것도

이루다 기록할 수 없거니와 이곳에서 지내는 정경은

불가형언(不可形言)이다. 이곳은 네 아다시피 본국에서 사, 오천리도

넘는 산 설고 물 설은 되땅이라 풍토가 다르고 온갖 습속이 달라 거북한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늙은 몸이 남의 집 종의 신섹가 되었으니 주리되

먹지 못하고 목마르되 마시지 못하고 병나되 치료 못하고 누워서 앓지조차

못하며 낮에는 김매고 밤에는 방아찧고 겨울에는 빨래와 다드미로 일년

열두달 삼백육십일을 하루도 쉴새없이 일만 하기에 나는 벌써 허리가 굽고

눈이 어둡고 몸은 수축하여 피골이 상접하였다. 만리이역(萬里異域)에서

사고무친(四顧無親)한 외로운 몸이니 뉘라서 이 정경을 알아주랴. 오직

기나긴 세월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되고 달이 깊어간다는 뜻으로

세월이 흘러 오래 될수록 자꾸 더하여짐을 이르는 말)에 꽃피는 아침이나

달밝은 밤에나 바라느니 고국이요, 그리느니 내 아들이라 언제나 고국을

아니 생각하며 어느날 어느시에나 너 생각을 아니 하였으랴. 그러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운산만리(雲山萬里) 아득한 고국이라 흉중에

민망하고 초조한 마음 금할길 바이없어 밤마다 애달픈 꿈이요, 오직

눈물이 앞을 가릴 뿐이로다. 그리던 즈음에 천만다행으로 고국에

돌아간다는 손님이 있다는 말을 듣고 두어자 기록하노라. 그동안 너희

아버지는 기력 어떠하시며 네몸은 어떠한지 궁금한 마음이 비할길 없다.

모(母)는 비록 고생은 되나마 아직 목숨이 붙어 있고, 네 동생도 살아서

역시 남의 종노릇하는중 지내가는 형편은 또한 말할나위없다. 쌓이고

쌓인 사정을 다 기록하자면 몇권 서책을 이룰지라 어찌 끝이 있으랴.

단촉(短促)한 겨를에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어서 오직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줄만 알기를 바라며 천애지리(天涯지리)에 매인 몸된 모(母)는 밤이나

낮이나 바라고 바라기는 하늘이 내려다 보시고 신명이 도우셔서 생전에

내아들 너를 한번 만나 보기가 진정 소원이로다

모월 모일 동경의 모서

(某月 某日 東京의 母書)

김천이 죽은줄 알았ㅅ던 모친이 살았다는 소식을 듣고 모친의 친필을

받아보니 모친을 친히 대한듯 반가운 중에도 모친의 편지에 구구절절이

슬프고 기막히는 사연을 읽으매 김천은 흐득 흐득 느껴 울기를 시작하고

마침내 눈물이 앞을 가리고 방울방울 편지를 못읽고 나중에 목ㄴ놓아

울었다. 김천의 아내는 물론이요, 친구되는 순응과 편지를 전해준

습성이며 이 소문을 듣고 찾아 왔던 동네 사람까지 모두 울었다.

반가운 편지를 전해준 귀한 손님, 김천이 비록 가난하나 습성을 흰쌀을

구하고 씨암탉을 잡아서 극진히 대접해 보냈다.

 

< 5 >

김천이 모친의 편지를 받아보고 기쁜 중에도 기막히는 것은 전같으면

염려가 없으련만 지금은 가세가 몹시 빈한하여 돈이 없은즉 머나먼 길을

갈 수도 없으니 하물며 모친을 속량해올 방책이 있으랴.

모친이 살아있는 줄을 번연히 알고 절절한 편지를 받고도 속수무책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모친의 소원과 자기의 소원을 이루지 못하니 어찌

슬프고 원통하지 아니하랴. 그러나 뉘게 구차한 소리를 하고 싶지도

아니하여 부지런히 일을 하고 먹지아니하고 돈을 모아가지고 가려고

해보았으나 그래서는 언제 갈 기약이 막연하다.

그래서 김천은 문중에 가까운 친척과 여러 친구며 부친의 친구되는

이들을 찾아서 모친에게서 온 편지를 보이고 일장 슬픈 사정으로 이야기를

하면 사정도 딱하거니와 김천이 본래 호변이라 듣는 사람마다 동정을 하여

혹은 돈으로 혹은 미곡으로 보태 준 것을 한 일년만에 겨우 백금의 돈이

되었다.

그만하면 되었느니라 하고 우선 송도(松都=開城) 서울로 올라갔다.

명주서 송도도 상당히 먼길이지만 원나라 서울 동경을 갈 사람이

송도나가는 것을 멀다 하랴. 달음질로 빨리 가서 원나라의 동경에, 가는

월국장(越國狀=지금의 여권)을 청하였다.

아직 원나라와 국제관계가 평온치 못하던 때이라 조정에서는 불허가로

퇴각을 당하였다. 나라에서 하는 일을 어찌하랴. 김천은 할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몇해를 지나 다음왕 충렬왕(忠烈王)때에 김천은 다시 여행권 수속을

할차로 서울로 올라와서 애걸하는 글을 정부에 들여 원나라 가는 것을

허락하기를 청원했으나 역시 불허가다. 그러나 김천은 굴하지 아니하고

기어이 그 뜻을 이루어볼 작정으로 이번에는 집에 내려가지 아니하고 그냥

서울에 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루 이틀 객지에 지내는 동안에 노자가

떨어지고 식량이 떨어져서 오도가도 못하고 진퇴유곡(進退維谷)의 지경에

빠졌다.

이때에 김천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객사에 홀로 누워 속절없는 눈물을

흘리고 지내다가 하루는 우연한 기회에 효연(孝緣)이라는 중을 만났다.

효연은 당시 궁중에 출입하는 세력있는 중이요 인정이 많은 사람이라

부디 부디 동경에 가서 모친을 속량해 오도록 해달라는 김천의 애걸하는

말에 측은한 생각이 들어서 어찌하든지 가도록 주선해 주고 싶은데 마침

자기 형이 나라일로 동경가는 일이 있는 것을 생각하였다.

그래서 김천더러

내 형님이 동경가시는 일이 있으니 따라가 보시오

하고 자기 형님에게 말하여 김천을 데리고 가도록 허락을 얻어서 모든

일에 지장이 없이 주선을 해 주었다. 김천은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곧

길을 떠날 준비를 하게 되었다.

이때는 벌써 습성의 편에 모친의 편지를 받아 본지가 육년이 되었던

때다. 김천이 동경을 향하여 떠나고자 하는 것을 보고 김천을 위하는

친구들은

이제 자친의 편지를 받아 본지가 육년이 지났다니, 그 동안에 자친께서

그냥 살아 계신지 불행히 돌아가셨는지도 모를 것이요, 설혹 아직 살아

계시다 치더라도 가서 만날는지 알 수 없는 터이니 잊제 공연히 멀고

험한 길을 가다가 중로에 혹 도둑이라도 만나면 아까운 재물 잃어버릴

것이니 차라리 그만 두는 것이 옳겠소

이렇게 굳이 말리었다. 그리고 벼슬을 시 줄 터이니 어디로 구실이나

가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럴때마다 김천은

자식된 도리로 설혹 갔다가 못만나고 오더라도 가는 것이 옳지, 당장

부모가 사지에 계신줄을 알고 어찌 내 몸을 아껴서 안갈 수가 있소?

이렇게 만류하는 말을 물리쳤다.

 

< 6 >

김천은 마침내 효연의 형 충연을 따라서 동경에 갔다. 동경에서

유모(柳某)의 집에 주인을 정하였다. 김천은 충연의 소개로 그곳에

가있는 고려사람으로 역어 벼슬(지금의 통역관)로 있는 별장(別將)

공명(孔明)이라는 사람을 만나서 둘이같이 북주(北州)로 노채(老寨)라는

곳을 가서 모친을 찾았더니 마침 모친이 군졸(軍卒) 요좌(要左)의 집에

있는 줄을 조사해 알았다.

어디서 오신 양반들이요?

하고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는데 옷은 여기저기 꿰어 매어 있고

봉두난발(蓬頭難髮)에 얼굴에는 주름살이 가득하고 수족에 때가 더덕더덕

하였다.

김천이야 설마 그것이 자기 어머닌줄 알았으랴마는 공명이 수상히

여겨져 노파더러 고려말로

우리는 고려서 온 사람이요. 당신은 웬 사람이요?

하고 물었다.

이때 노파가 고개를 숙이고 대답하는 말이

저는 본래 고려국 명주땅 호장 김자릉의 딸로 호장 김종연에게

출가하여 아들을 둘을 낳았는데 하나는 김천인데 자를 해장이라고 부르고

하나는 덕린인데 나하고 같이 와서 나이 스무살이라오. 그 애는 지금

서변땅 백호(百戶) 천로(天老)의 집에서 종노릇을 하며 삽니다. 오늘날

여기서 본국 양반들을 만날줄은 참말 뜻밖이요

이 말을 채마치기 전에 김천은

어머니 이게 웬일이요, 제가 해장이올시다

노파의 발밑에 엎드려 슬피 울었다.

모친은 두손으로 김천의 손을 붙잡고

네가 참말로 내 아들이냐?

두 사람은 한참이나 아무 말도 못하고 느껴 울기만 하였다.

그러나 그날은 주인 장모가 없기 때문에 모친을 속량할 일을 교섭할

형편이 못되어 김천은 잠시 작별하고 여관으로 돌아왔다.

며칠후에 김천은 다시 공명을 졸라서 모친이 있는 주인집을 찾아갔다.

주인을 만나서 모친을 속량해 주기를 간청하였으나 주인은 사정 없이

거절을 하였다. 김천은 준비하였던 돈 백량을 속량금으로 바쳤으나

주인은 백량돈을 집어서 뜰에 내던지면서

뿌우야 뿌우야(일이 없다)

를 연발하고 머리를 설레설레 흔든다. 같이갔던 공명이 아무리 여러말로

간청하여 보았으나 무가내로 듣지 아니 하였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김천은 눈물을 흘리면서 주인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장모가 모친의

속량을 거절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다른 까닭이 아니라 돈에

욕심을 내어서 그런것이니 돈만 더 있으면 곧 모친을 구할 수 있을터인데

만리 타향의 외로운 손이 어디서 돈을 구하랴- 이러한 그 기막히고 슬픈

사정을 뉘라서 알아주랴.

서변 천로의 집에 있는 아우 덕린도 찾아가서 반가이 만나는 보았으나

역시 속량할 도리가 없어서 역시 다만 애달픈 작별을 하고 있다.

모친이나 아우나 차라리 보지아니 하였으면 나을걸 머나먼 길에 허덕허덕

애를 쓰고 찾아와서 만나보고 속량해 내지 못하니 더욱 안타까운

일이었다.

김천은 할 수 없이 주인집에 들어 앉아서 식음을 전폐하고 눈물과

한숨으로 지내다가 마침내 병이 들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

김천이 자리에 누워서 더운 눈물로 베개를 적시면서 곰곰히 생각하다가

하루는 단연히 기운을 차려 일어났다. 일어나서 지필을 준비하여 있는

재주와 심혈을 부어서 장문으로 진정서를 지었다. 스스로 읽어 보아도

상당히 명문이었다. 진정서를 동경 총관부(總管府 : 지금의 경찰국)에

들이고 그 하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럭저럭 하는 동안에 김천이 동경에

온지도 어느새 석달이 되었다. 김천이 본래 재주있고 구변이 좋은 까닭에

원나라말(곧 동경말 = 지금의 북경말)을 대강은 수작을 하게 되었다.

김천이 수심중에 잠을 들었다가 깨인즉 베개 머리에 편지 한장이 놓여

있었다. 김천이 얼른 편지를 뜯어 보매 그 편지 속에는 돈 백금짜리

어음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편지의 사연은 간단하였다.

이 적은 돈을 당신의 효심을 다하시는 일에 써주시기를 바라옵니다

겉봉에도 이름이 없고 속에도 이름이 없으니 누가 보냈는지 알길이

없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그 글씨는 썩 눈에 익은 글씨였다. 보고 다시

보고 하다가 김천은 마침내 이것이 주인의 딸 춘혜(春惠)의 글씨인 것을

발견하였다.

김천의 유하는(머무르는) 주인 마부인은 동경장자 유모의 첩으로

심심소일거리고 여관을 경영하였는데 그 집에는 춘혜라는 딸이 있었는데

그는 유장자의 과부딸로서 모의 집에서 지내는 것이었다. 들며 나는

동안에 김천의 눈에도 유심히 보였거니와 춘혜의 눈에는 김천의 남자답고

비범한 용모와 풍채가 깊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하여 김천은 춘혜의

가슴에는 잠시도 사라지지 않는 그림자를 품고 있게 되었다.

처음에도 서로 멀리서 바라보고 웃음으로 바꾸고지내는 사이었으나 차차

날이 지나는 동안에 서로 수작말을 건느게 되고 서간(書簡)이 내왕하게

되고 조용한 틈을 타서 만나서 정담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춘혜라 김천의 정지를 알아주고 백량짜리 어음을 돌려보낸

것이었다. 장자의 딸이라 그만한 돈은 마음대로 돌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때에 또 마침 총관부에서 김천을 부르는 기별이 나왔다. 김천은 곧

총관부에 들어가서 관원이 묻는대로 눈물을 흘려가면서 말하니 장모에게

내시를 하기로하고 소개장을 써 주었다. 그리고 김천의 진정서를 읽고

눈물을 흘렸노라고 하면서 칭찬을 하고 노자까지 약간 보태주고

역로관원에게 보호해 주라는 증명서까지 주었다.

김천은 곧 모친을 찾아가서 사연을 말하고 주인 장모를 만나서 은한봉과

총관부 소개장을 들여 놓았더니 과연 주인은 이번에는 얼른 허락을

하였다.

은은 장모를 주고 돈은 노자로 쓰기로 하였다. 그길로 김천의 모자는

서로 손을 잡고 동경으로 돌아와서 다시 마부인의 집을 찾으니 마부인은

김천의 유숙을 거절하였다.

춘혜의 부친 유장자가 자기 딸이 고려인 김천을 은근히 하고 돈까지

주었다는 것을 알고 크게 노하여 자기 딸은 큰집으로 데려가고 김천을

마부인의 집에 유하는 것까지 금하게 한 것이다.

김천은 춘혜를 다시 만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였으나 그 마음도 앓는

부친을 위하여 모친을 위하여 억제하고 모친을 모시고 어서 귀국하기로

하였다.

김천은 모친을 모시고 아우 덕린이 있는 천로의 집을 찾아갔다.

작별하기 위하여 간 것이다. 천행으로 모친은 속량하였으나 아우까지는

속량할 도리가 없고 돌아갈 노자도 부족한지라 할 수 없이 어머니는

아들을 버리고 형은 동생을 버리고 가는 심정은 어떠하며 혼자 떨어지는

덕린의 심사는 어떠하랴. 세 사람은 서로 목을 끌어안고 통곡을 하였다.

그 중에도 김천의 모친은 덕린의 목을 끌어안고 땅바닥에 뒹굴기를

마지아니 하였다.

그러나 덕린이 먼저 눈물을 거두고

나는 대장부라 아무데 가서나 못살겠소. 어서 염려말고 늙으신

어머님이나 모시고 돌아가셔요. 아버님께서도 병중에 기다리실 터이니

하루 바삐 돌아가셔요

하는 말에 어머니와 형은 더욱 슬프게 울었으나 울어야 끝이 없는줄

깨달은 김천은 모친을 강권하여 억지로 이끌고 동경으로 해서 두달만에

귀국하였다. 마침 본국에서 왔다가 돌아가는 절도사 일행을 따라서

무사히 오게 되었다.

부친 종연이 그 소식을 듣고 병든 몸을 이끌고 진부(珍富)라는 역에까지

나와서 이십이년만에 젊어서 헤어졌다가 이제는 피차에 노인이 되어

만나니 서로 눈물만 좍좍 흘리고 말을 못하는 그 정경을 보는 사람으로

울지 아니하는이 없었다.

 

< 7 >

김천의 모친은 돌아온 다음에는 멀리 외국에서 종노릇을 하는 덕린을

잊을 날이 없어서 늘 눈물로 지내어 김천도 아우의 생각도 아니하는

바는 아니지만 춘혜의 정을 잊지 못하여 천리 만리 먼곳을 밤이나 낮이나

그리는 정을 금하지 못하였다.

그런지 다시 육년만에 명주 땅에는 몽고 옷입은 청년하고 예쁜 색시 한

사람이 나타났다. 두사람은 김천의 집을 찾아갔다. 청년은 김천의 아우

덕린이요, 젊은 부인은 천리원정(千里遠情)을 멀다 하지 아니하고 찾아온

유춘혜이었다. 김천의 부모는 물론이요, 부인까지 춘혜를 대접을 잘하여

형제처럼 지냈다.

김천은 후에 나라에 교섭하는 구실을 맡게 되고 동경에 내왕하는 사신의

중직을 봉행함에 춘혜의 내조가 많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