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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방/오늘의 소사

[조갑제 칼럼] 박근혜의 '소꿉장난' 리더십에 묻는다

by 연송 김환수 2011. 12. 31.

 

'FTA 영웅' 김종훈 같은 사람 왜 영입 못할까?

김종인-이상돈의 오만과 위선, 분노와

반발 불러온다..

콩가루 비대위 새로 짜야

  • 최종편집 2011.12.30 15:53:50

 

'FTA 영웅' 김종훈 퇴임-
왜 박근혜씨는 이런 사람을 영입하지 못할까?


趙甲濟

'그래도 박근혜 이외에 대안(代案)이 있느냐'는 소신을 가진 한 우파 인사도 이번 한나라당 非對委(비대위) 인사(人事)를 '박근혜의 소꿉장난'이라고 평하였다. 그러면서 自嘲的(자조적)으로 덧붙였다.

"모르지요. 우리 국민들이 어리석어 그런 쇼에 넘어갈지도."

정치에서 인사(人事)는 자신의 실력 고백이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수준의 인물들을 이렇게 중요한 기구에 모을 수 있느냐는 경악, 그것은 박근혜 위원장의 리더십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이다.

스물여섯의 청년을 비대위(非對委) 위원으로 영입하였더니 그는 "박근혜 위원장도 의혹을 털어야 한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한다.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면 사람들은 대체로 과격해진다.


권력형 부패 전력자(前歷者)와 천안함 폭침 부정자가 한나라당을 숙정하겠다고 한다. 종북(從北)세력과 처절하게 싸워 종북정권 등장을 저지하여야 할 역사적 사명을 망각하니 만만한 내부 사람들을 공격한다. 이게 대국(大局)을 놓친 이들의 소꿉장난이다.

김종인과 이상돈 위원의 행태에서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의 부정적 전력(前歷)이 아니다. 그런 약점을 지녔으면 자중(自重)하여야 할 터인데 자신들이 가장 양심적인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는 그 오만과 위선이 다른 사람들의 분노와 반발을 부른 것이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한미(韓美) 자유무역협정(FTA)을 성사키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김종훈(59) 통상교섭본부장이 오늘 공직(公職)에서 물러났다.

 

많은 국민들의 뇌리에 그는 논리와 용기와 배짱을 겸한 인물로 각인되어 있다. 보기 드문 '영혼 있는 공무원'이었다.

이런 투사가 한나라당 비대위(非對委)에 영입되었더라면 박근혜 위원장도 덩달아 신뢰를 얻고 중심을 잡았을 것이다. 교수나 정치인은 말이 늘 앞선다. 경험 얕은 스물여섯 청년보다 능력이 검증(檢證)된 59세의 공직자를 우대하는 게 보수의 정신이다.

자신의 성(城)을 부수고 이 넓은 세상으로 나와 널리 사람을 구하면 김종훈 같은 사람을 열 명 모으지 못할까?
박(朴) 위원장은, 콩가루 집안을 만들고 있는 비대위(非對委)를 새로 짜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가관과 도덕성에 치명적 약점을 가진 사람들이 박근혜 위원장이 쥐어준 이른바 쇄신의 칼자루를 휘두른다면 누가 승복하겠는가?

이런 사람들이 공천한 인물들이 내년 총선에서 몰락한다면 박근혜 위원장의 대통령 꿈도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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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 타결 당시엔 '글래디에이터' 라는 별명도 얻어

 

       ** 글래디에이터(Gladiator) : 검투사 

        고대 로마시대 검투사의 파란 많은 인생과 사랑, 복수를 그린 미국영화.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이임식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주연과 악역을 도맡았던 ’현역 최장수 장관’ 김종훈(59) 통상교섭본부장이 공직에서 물러났다.


김 본부장은 2011.12. 30일 청와대가 발표한 개각에서 박태호(59)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후임 본부장에 내정됨에 따라 4년5개월 만에 집무실을 비우게 됐다.

한미 FTA 탄생의 주역이자 우리나라 통상정책의 산 증인으로서 김 본부장만큼 ’박수’와 ’비난’을 한몸에 받았던 공직자는 없다.

2006년 4월 한미 FTA협상 수석 대표를 맡아 9차례의 끈질긴 협상을 주도한 끝에 이듬해 4월 극적인 타결을 이끌었다. 당시 집권당인 열린우리당과 언론은 그에게 ’글래디에이터’(검투사)라는 별명을 붙여 ‘영웅’ 대접을 하기도 했다.

그는 미국과 협상 당시 모든 것을 걸었다. 언쟁이나 벼랑 끝 전술을 피하지 않았고 귀가를 포기한 채 햄버거로 점심을 때우며 마라톤협상을 벌였다. 2007년 협상 때 남편이 갈아입을 옷을 전하려고 매일 찾아온 부인을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오바마 집권 이후 한미 FTA가 피지도 못하고 사장될 위기에 놓이자 ’쉼표 하나 고칠 수 없다’고 버티다가 재협상에 나서기도 했다.

올 초 번역오류 문제가 불거지자 ’책임지겠다’며 용퇴의사를 밝혔으나 ’비준안까지 마무리하라’는 청와대 요청에 마음을 추슬렀다.

비준안 처리과정에서는 스스로 “참담한 심정”이라고 말할 정도로 심한 마음고생을 했다. 4년여 전 협상타결 때 “미국과의 FTA는 불가피하다”며 격려했던 정동영 민주당 의원 등 비준안 반대파로부터 ’매국노’, ’이완용’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래도 그는 ’우리나라처럼 작고 자원 없는 나라가 갈 길은 ’개방경제’밖에 없다는 신념으로 주변을 설득해 나갔다.

우여곡절 끝에 11월 22일 한미 FTA 비준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김 본부장은 다시 ’쉬고 싶다’는 의사를 청와대에 전달하면서 물러날 준비를 했다.

그리고 한 달 만에 옷을 벗었다. 1974년 외무고시 8회로 공직에 입문한 지 37년 만이다.

며칠 전 모임에서 특유의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물러나면 하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손녀 재롱도 봐야 하고 더 늦기 전에 좋아하는 패러글라이딩과 암벽등반도 해야 하고 지금보다 더 바빠질걸요”

대구 출신으로 경북사대부고, 연세대를 졸업했다. 미국 참사관, 국제경제국 심의관, 지역통상국장을 지냈다.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이사회(ESCAP) 의장과 한국수입업협회 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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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소속 : 외교통상부(본부장), 외무공무원

출생 : 1952. 5. 5 (대구광역시)

나이 : 60세 (만59세) 용띠

별자리 : 황소자리

학력 : 1975 연세대학교 경영학 학사

수상 : 2006년 자랑스러운 연세대학교 상경인상

경력

2008.04~ 아시아 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 총회 의장

2007.08~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본부장

2006.06~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한국측 수석대표

200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대사

2004.08~2007.08 외교통상부 고위관리회의 의장

2002~2004 외교통상부 샌프란시스코영사관 총영사

2000~2002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지역통상국 국장

1998 주제네바 공사

1997 외무부 국제경제국 심의관

1996 외무부 의전심의관

1993 주미국대사관 참사관

1991 외무부 의전담당관

1990 외무부 특전담당관

1987 주캐나다대사관 참사관

1985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파견

1981 주어퍼볼타대사관 2등서기관

1979 주프랑스대사관 3등서기관

1974.11 외무부 입부

1974.05 제8회 외무고시 합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