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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김 재실,묘소

문광공(대제학) 김원상 흡곡 묘소 심방기

by 연송 김환수 2011. 11. 6.

문광공께서는 고려 충렬왕때 판삼사 진현관 대제학을 지내신 분으로

묘소가 보첩에 기록되어 있었지만,

 

 1339년 돌아가신 후 400여년이 지나 성묘를 위해 후손 양재(養材), 양식(養植) 주관하에 묘소를 찾았으나 부인박씨 묘소는 찾았지만 문광공 및 황려군부인 민씨 묘는 실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기록을 보면 갑오년(1774년) 춘 3월 17일 그 전말을 기록하였으며 

후손 처암(1775-1809년 집의 벼슬 -1820)의 기록도 일부 적고 있으며 이후 을미년(1919) 까지 기록물이다.

 

정리하면 종중에서 문광공 실묘를 걱정한지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찾아보자는 공론으로 백방 노력하여 묘소산도를 그리고 문광공 흡곡 묘소 심방기를 남기면서 후손들이 고증으로 삼아 실전된 묘소를 찾을 수 있도록 숙제를 내주셨다.  

 

 

 

문광공 원상 부(父) 김위 (金渭) ? ∼ 문하시중

 

고려의 문신. 본관은 안산.

麗朝 壁上三韓三中大匡 金紫光祿大夫

推忠守義 奮勇忘軀 靖亂功臣 上柱國 開府儀同三司 守太師 門下侍中

上將軍 判吏部事 樂浪郡 開國伯 贈謚 忠翊公 夫人 忠原郡夫人 安氏

려조 벽상삼한삼중대광 금자광녹대부

추충수의분용망구 정난공신 상주국 개부의동삼사 수태사 문하시중

상장군 판리부사 낙랑군 개국백 증 충시익공 부인 충원군부인 안씨

 

문광공 김원상 (金元祥) ? ~ 1339(충숙왕 복위 8) : 판삼사사

 

고려말의 문신. 충렬왕(재위1274~1308년)때 문과에 급제하여 주부·통례문지후(通禮門祗候)를 지내고 비서윤(祕書尹)·지감찰사사(知監察司事)·지신사(知申事) 등을 거쳐 좌승지가 되었으나 왕을 황음(荒淫)하게 한 죄로 파직되었다. 그러나 다시 지신사·밀직부사(密直副使)를 거쳐, 1309년(충선왕 1) 검교평리(檢校評理)가 되었다가 회주목사(懷州牧使)로 좌천되었다.

 

1320년(충숙왕 7) 삼사사(三司使)·정당문학(政堂文學)에 오르고, 1322년 심왕 고(瀋王暠)의 왕위 찬탈 음모를 도운 죄로 해도(海島)에 유배되었으나 원제(元帝)의 명으로 곧 풀려난 뒤 판삼사사에 이르러 죽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朴天圭〉

 

족보기록 벼슬

 

* 삼중대광 광정대부( ≒ 삼중대광 금자광록대부 三中大匡 金紫光祿大夫),

   판삼사사, 진현관 대제학사, 상호군, 증시 문광공

 

* 충숙왕 7년 정당문학, 판삼사 (판삼사사 :고려시대에 둔, 삼사(三司)의 으뜸

   벼슬. 품계는 종일품으로 재신(宰臣)이 겸하였다. ≒ 판사사.

 

김원상 사위 창원부원대군 왕우 (공양왕 동생)

 

신종 (고려 제20대왕)

 ↓

 ↓

6대손 정원부원군 균 鈞    김원상 = 여흥민씨(황려군부인 민씨)        鈞 弟 학성부원군 향

 ↓                                        ↓                                                    ↓

7대손 공양왕 요 瑤    =    瑤 弟 정양(정원)부원군                         子 왕화 (공양왕4촌)

                                  창원부원대군 우 瑀 = 김원상 딸

                                                                                                 ↓                 

                                                                            안산(연성)군 김정경 = 왕화 딸

 

 

 

문광공 자(子) 김성경 (金星慶) : 진주목사, 연성군

 

통훈대부 진주목사, 증 자헌대부 삼사우사 의정부사 연성군

 

문광공 손(孫) 김정경 (金定卿) : 이조판서, 연성군

 

1345(충목왕 1)∼1419(세종 1).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안산(安山). 시호는 위정, 아버지는 진주목사 성경(星慶)이다.

 

일찍이 고려 때에 벼슬하였으나, 새 왕조 창업에 찬성하고 이성계(李成桂)를 지지하였다. 조선 개국 후 삼군절도사를 거쳐 이조전서(판서)를 지냈는데, 인사관리를 잘하였다.

 

1396년(태조 5) 판예빈시사(判禮賓寺事)가 되어 전라도와 충청도 각지의 성을 수축하고 군비를 점검하는 한편 병선(兵船)의 허실을 조사하였다.

 

1400년 방간(芳幹)의 난이 일어나자 한성윤으로서 방원(芳遠)에 협력하여 이를 진압, 좌명공신 4등에 책록되고, 연성군(蓮城君)에 봉해졌다.

 

그뒤 공안부윤(恭安府尹)이 되었는데, 병을 핑계로 명나라의 사행을 회피하여 대간의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1404년(태종 4) 좌군도총제(左軍都摠制), 1408년 개성부유후(開城府留後)를 역임하고, 1410년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용맹하고 매사에 적극적이었다. 시호는 위정(威靖)이다.

 

참고문헌 太祖實錄, 太宗實錄, 國朝人物考. 〈崔完基〉

 

 

 

 

문광공(김원상) 묘소산도

 

흡곡면 歙谷面   :  북한  

 

강원도 통천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128.65㎢, 인구 1만217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화통리이다.

본래 흡곡군 지역으로 1910년 학일면·학이면·학삼면으로 되어 이 군에 편입되었다.

1929년 학이면·학삼면을 병합해 흡곡면으로 개칭하였다.

 

 

 

 

 

화장사(華藏寺) :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 갈평리 황룡산(黃龍山)에 있는 절.

 

건립시기/연도 1012년(현종 연간)

31본산시대에 유점사 (楡岾寺)의 말사였다. 1012년(현종 3) 원공국사(圓空國師)가 창건하여 아미타·관음·

대세지의 삼존상을 봉안하였고, 1018년에 오층석탑을 조성하였다.

 

그 뒤 1508년(중종 3) 불탄 것을 1512년 종수(宗修)가 중건하였으며, 1686년(숙종 12)에 석심(碩心)이 지장보살과 시왕상(十王像) 등을, 1716년 자관(自寬)이 극락전 후불탱화를 조성, 봉안하였다.

 

1748년(영조 24) 화재로 완전히 소실되자, 1752년 도신(道信) 등이 극락전과 요사를 중건하였다. 1804년(순조 4)에는 관(官)에서 이 절의 승군 80인에게 영월군으로 가서 한 달 동안 나무를 운반하라는 명을 내렸는데, 이 때 요사를 허문 재목 및 기와·토지·기물 등을 팔아 방 한 칸만 남게 되었다.

 

1863년(철종 14) 주불삼존과 불상을 석왕사에 옮겨 봉안하였고, 1893년(고종 30) 나한상과 시왕상을 석왕사로 옮겼다. 1901년 통천군수 이주하(李胄夏)가 어실각(御室閣) 3칸을 건설하였고, 1926년부터는 주지 정재은(鄭在隱)이 복구를 위하여 노력한 결과 극락보전(極樂寶殿) 등 35칸의 건물이 신축되었으나, 현재의 모습은 알 길이 없다. (북한 지역)

  

화장사

참고문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한국사찰전서(韓國寺刹全書)』(권상로,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유점사본말사지(楡岾寺本末寺誌)』(유점사간, 1942)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2010, 한국학중앙연구원

 

김처암(金處岩) :

 

영조 31년(1755.7.12~1820.4.20)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산이며 자는 중려(仲礪), 호는 진헌(眞軒)으로 양직의 아들이다. 

 

조부는 상성, 증조부는 석보, 외조부는 신의립이다. 정조 19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지평과 집의를 지냈다. 유교(遺橋) 20

 

사헌부 대사간을 지낸 김양심(金養心 : 1725(영조1)-1777(정조1)은

처암의 숙부(작은아버지)이다.

 

 

 

 

 

연성군 시 위정공 (김정경) 묘소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