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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인연방/사찰순례

통도사 자장암의 금와보살 / 홍룡사

by 연송 김환수 2011. 10. 9.

통도사 자장암의 금와보살

 

통도사는 우리 나라 3대 사찰 중 하나로 손꼽히는 큰 절로, 신라 선덕여왕 15년(646)에 자장율사가 세웠다.

 

 

 

대웅전은 원래 석가모니를 모시는 법당을 가리키지만, 이곳 통도사대웅전에는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고 건물 뒷면에 금강계단을 설치하여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다.

 

 

 

그 때문에 통도사라는 절 이름도 금강계단을 통하여 도를 얻는다는 의미와 진리를 깨달아 중생을 극락으로 이끈다는 의미에서 통도라고 하였다 한다.

 

지금 건물은 신라 선덕여왕 때 처음 지었고,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조선 인조 23년(1645)에 다시 지은 것이다.

 

 

적멸보궁

 

 

금강계단 :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 (적멸보궁)

 

 

통도사는 10여년 전부터 자주 들리는 곳인데 오래전 인증샷 으로 찍은 가족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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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자장암은 통도사 절 뒷편에 있는데  통도사에서 차로 5리에 있는

유서 깊은 암자인데 오랜 만에

다시 찾아가 보았다.

 

자장암 가는 길에는 많은 암자들이 있지만  통도사를 세운 자장율사와 금개구리에 대한 불교 전설이 있는  자장암에 대해서 모르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은 듯 하다.

 

그냥 통도사만 둘러보고 떠난다면 참으로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전에 이곳에 오면 여러 암자들도 들러 봤지만 오늘은 통도사와 자장암만 둘러보기로 했다.

 

 

 

 

사진상 보이는 건물이 관음전이다. 뒷편에 큰바위 아래 석간수 및 금개구리 전설이 있는 금와굴이 있다.

 

 

 

사진의 중앙과 아래사진에서 보이는 조그마한 구멍이 금와굴 이다.

 

 

 

 

 

전해지는 불교전설 전문을 옮겨본다.

 

통도사의 산내암자인 자장암에는 법당 뒤 절벽 바위에 1천 400년전부터 금개구리가 살고 있다고 전한다.

 

요즘도 자장암에서 정성들여 기도를 잘하면 볼 수 있다는 이 금개구리는 자장율사가 통도사를 세우기 전, 석벽 아래 움집을 짓고 수도 하고 있을 때 나타났다고 한다.

 

어느 날 저녁 자장율사는 공양미를 씻으러 암벽 아래 석간수가 흘러나오는 옹달샘으로 나갔다. 바가지로 막 샘물을 뜨려던 스님은 잠시 손을 멈췄다.

 

“웬 이럴 수가. 아니 그래 어디 가서 못 놀아서 하필이면 부처님 계신 절집 샘물을 흐려놓는고.”

 

스님은 샘에서 흙탕물을 일으키며 놀고 있는 개구리 한 쌍을 두 손으로 건져 근처 숲속으로 옮겨 놓았다. 다음날 아침. 샘가로 나간 자장스님은 개구리 두 마리가 다시 와서 놀고 있는 것을 보았다.

 

“허참, 그 녀석들 말을 안 듣는구먼.”

 

스님은 다시 오지 못하도록 이번에는 아주 멀리 갖다 버리고 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다음날에도 개구리는 또 와서 놀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로구나.”

 

스님이 개구리를 자세히 살펴보니 여느 개구리와는 달리 입과 눈가에는 금줄이 선명했고 등에는 거북 모양의 무늬가 있었다.

 

“불연이 있는 개구리로구나.”

 

자장율사는 개구리를 샘에서 살도록 그냥 놔두었다. 어느덧 겨울이 오고, 자장율사는 겨울잠을 자러 갈 줄 알았던 개구리가 눈이 오고 얼음이 얼어도 늘 샘물 속에서 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안 되겠구나. 살 곳을 마련해 줘야지.”

 

스님은 절 뒤 깎아 세운 듯한 암벽을 손가락으로 찔러 큰 손가락이 들어갈 만한 구멍을 뚫고 그 안에 개구리를 넣어 주었다.

 

“언제까지나 죽지 말고 영원토록 이곳에 살면서 자장암을 지켜다오.”

스님은 이렇듯 불가사의한 수기를 내리고는 개구리를 ‘금와(金蛙)’라고 이름했다.

 

그 뒤 통도사 스님들은 이 개구리를 금와보살, 바위를 금와석굴이라 불렀다.  금와석굴은 말이 석굴이지 지름이 1.5∼2cm에 깊이 10cm 정도의 바위구멍이다.

 

그 속에는 이끼가 파랗게 끼어 있는데 현재까지 개구리 같기도 하고 큰 벌 같기도 한 것이 살고 있다고 한다.

 

옛날 어떤 관리가 금개구리 이야기를 듣고 자장암을 찾았다.

“이 절에 금개구리가 있다면서요?”

 

“예, 있습니다. 자장율사 이후 한 번도 산문 밖을 나간 일이 없이 자장암을 지키면서 석굴 속에 살고 있지요.”

 

스님이 금개구리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자 관리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

 

“내 그 개구리를 잡아 시험을 해볼 것이오.”

“아니 됩니다. 그 개구리는 불연이 깊은 불가사의한 생물입니다.”

 

그러나 그 관리는 스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개구리를 잡아 함 속에 넣어 밀폐한 뒤 산문을 나와 함을 열어보았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분명히 잡아넣은 개구리는 보이지 않고 함은 비어 있었다. 그 후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 금개구리들은 자장율사의 신통력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자장율사의 수기를 받아 오늘까지 살아온다고 전해지는 이 금와보살은 통도사 내에 길조가 생길 때면 나타난다고 한다.

 

경봉스님이 10세 되던 해였다. 당시 80여 세이신 용익스님은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좋은 종이에 탁본하여 모실 수 있기를 발원하여 통도사 큰 법당에서 백일기도를 올렸다.

 

기도 끝나기 3일 전에, 금와보살이 큰 법당 탁상 위에 나타난 것이었다. 용익스님은 금개구리를 보는 순간 불사가 원만 성취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부처님께 감사드리며 남은 3일간 철야정진을 했다.

 

기도가 끝나고 며칠 안 되어 시주자가 나타나 팔만대장경 3권을 책으로 묶어 통도사ㆍ해인사ㆍ송광사에 1부씩 보관하게 되었다고 한다.

 

얼마 전 태응스님은 자장암 법당 증축불사를 위해 기도를 올리다가 개구리소리를 듣게 되었다.

 

이상히 여긴 스님이 ‘관세음보살’을 외우면서 계속 기도를 하다 보니 부처님 옆 탁자 위에 회색 바탕의 몸에 다리가 붉은 금개구리가 있는 것이었다.

 

스님은 그 후 사철 동안 굴 속을 들여다보면서 금개구리를 자세히 살폈다. 초봄의 금개구리는 자연석 같은 회색 바탕에 등에는 검은 점이 있고 발끝에는 둥글둥글한 구슬이 달려 있었는데, 금테 같은 선을 두른 입은 마치 두꺼비 입을 닮았다.

 

여름이 되니 몸이 파랗게 변하면서 검음 점이 많이 보이다가 장마가 지자 다시 초봄의 색으로 변하더라는 것이다.

 

여름더위가 심할 때는 몸색깔이 누렇게 변하고 겨울이면 벌처럼 보였다고 한다. 이처럼 일기와 계절에 따라 변하는 금개구리는 먹이가 무엇이며 언제 밖으로 나오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이를 궁금히 여긴 자장암 스님들은 어느 날 밤낮없이 교대로 석굴을 지켜봤다. 영축산에 어둠이 깃드니 금개구리 두 마리가 밖으로 나와 석굴이 있는 절벽바위 위로 올라갔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빨랐던지 순식간에 4∼5m를 뛰어올랐다고 한다.

그러나 언제 굴속으로 다시 들어갔는지 본 사람이 없는데 스님들은 아마 새벽 2∼3시경인 듯하다고 추측하였다.

 

여름철 바위가 태양열에 파열되어 뜨겁기가 달구어진 무쇠솥 같아도 금개구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뛰어다닌다고 한다.

 

                                                                                                출전 : 최정희, 『한국불교전설』

 

 

안내문에는 자장암은 자장율사가 646년 통도사 창건이전에 수도를하던 곳이고 금개구리 전설이 있는 곳이다 라고 적혀 있다.

 

 

이곳이 자장암 입구이다.

안쪽에 보이는 건물이 관음전이다.

 

 

 

 

 

입구를 들어서면 바로 1896년에 조성된 마애 불상이 있고 그 안쪽에

관음전이 바로 붙어 있다.

 

 

 

마애불상과 관음전 사이길로 들어서면 관음전 건물 뒷편에 금와굴이

있다.

 

 

 

 

 

몇년전에 자장암에서 휴대폰으로 찍은 마애불상 사진이다.

 

 

 

 

 

 

금와보살 사진

 

 

 

금와보살님

 

당시 게시판에 있던 금와보살을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이다.

 

 

 

처형의 뒷 모습 인데 무슨 소원을 빌고 있는 것 일까 ? ㅎㅎ

 

 

마애불상 오른쪽으로도 작은 건물 2동이 붙어 있다.

마애불상 앞에 일직선 오색 무지개가 생기고 있습니다.

 

 

 

둥근 오색 무지개와 일직선 무지개가 동시에 떴습니다.

아주 좋은 일이 생기려나 봅니다.

사진 찍을때는  몰랐던 무지개 현상 입니다.

 

 

 

자장암 바로 아래에는 자장동천이 흐르고 있다.

통도 8경중에 제4경이「자장동천(慈藏洞天)」인데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폰카로 찍어 화질이 별로인데 내려가서 보니 넓은 바위 틈새로 시원

하게 흘러 내리는 물소리.....  아 참 좋다. 세상의 모든 고민 잠시 벗어

놓고 물 같이 바람 같이 청산에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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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룡사 (虹龍寺)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 천성산(千聖山)에 있는 사찰이다.

 

신라 문무왕 때(661∼681)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 원효가 당나라의 승려 1천 명에게 천성산에서 《화엄경》을 설법할 때 낙수사(落水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는데, 당시 승려들이 이 절 옆에 있는 폭포에서 몸을 씻고 원효의 설법을 들었다 하여 이름을 낙수사라고 하였다.

 

또 산 이름은 본래 원적산이었으나 1천 명이 모두 득도하여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천성산(千聖山)이라고 바뀌었다고 한다. 원효는 산내에 89암자를 지어 1천 명의 대중을 가르쳤으며, 당시 각 암자에 흩어져 있는 대중을 모으기 위해 큰 북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 북을 매달아 두었던 집북재와 《화엄경》을 설법하던 화엄벌 등이 남아 있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수백년 동안 절터만 남아 있다가, 1910년대에 통도사 승려 법화(法華)가 중창하였다. 절 이름 홍룡(虹龍)은 폭포 이름에서 유래한다.

 

홍룡폭포는 제1폭포와 제2폭포가 있는데, 옛날에 천룡(天龍)이 폭포 아래에 살다가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전한다.

 

1970년대 말 우광(愚光)이 주지로 부임한 뒤 중건과 중수를 거듭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건물은 대웅전·종각·선방·요사채 등이 있고, 폭포 옆에 옥당(玉堂)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