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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방/오늘의 소사

[스크랩] 오늘의 소사 (09/28)

by 연송 김환수 2010.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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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흥 출신 80代 김성식씨, 안중근의사기념관에 1억원 쾌척

 

 
"나라 덕에 살았으니 나라에 주는 게 당연"

"이 늙은이가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이제 이런 것밖에 더 있겠는가. 부끄럽게 자꾸 보려 하지 마소."

지난 24일 부산 서구 부민동 자택에서 만난 김성식(85)씨는 '성금 1억원 영수증. 입금인 1925년생 김성식'이라고 쓰인 종이 한 장을 앞에 두고 손사래를 쳤다. 안중근의사기념관 건립위원회가 지난 8월 13일 예금통장으로 성금 1억원을 송금받았다고 확인하는 서류였다.


김씨는 지난 5월 부인 문소죽(81)씨와 3년 만에 서울 나들이를 하는 길에 서울 중구 남산공원 안중근의사기념관 공사 현장을 가보고 성금 기부를 결심했다고 했다. 김씨는 낡은 기념관이 철거된 현장을 둘러보고 새 기념관이 더 웅장하게 지어졌으면 하는 생각에서 재산을 보태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김씨는 당장 현장 관계자에게 물어 건립위 사무실 연락처를 알아내 기부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한평생 고생해서 모은 돈을 왜 자식들한테 물려주지 않느냐고? 해방 후 이북에서 내려와 이렇게까지 살게 된 게 다 나라 덕인데, 나라에 돌려주는 게 당연하지." 딸 미선(50)씨는 "오빠 두 분도 나라를 위해 돈을 써야 한다는 아버지의 기부 결정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며 "자식으로서 아버지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난 김씨는 중학생 때인 1938년 일본 도쿄로 유학을 떠났다. 메구로(目黑)무선전신학교를 다니며 무선통신사 자격증을 땄다. 그는 1943년 태평양전쟁에 징용돼 전쟁물자 수송선을 타고 선박 무선통신사로 일했다. 1945년 7월엔 일본 니가타(新潟)항에서 함경북도 나진으로 가는 1300t급 배에 탔다가 배가 미군이 설치한 기뢰에 부딪혀 죽을 고비를 넘겼다. 무선통신사 25명 중 8명이 죽었다.

살아남은 김씨는 일본 육군에 다시 소집됐다. 이번에는 중국과 소련 국경 지역으로 끌려가 소련군과 전투를 벌였다. 중국 지린(吉林) 쪽에 있을 때 8·15 해방을 맞았다. 일본군 신분이던 김씨는 소련군의 포로가 됐다. 시베리아로 끌려가다 만주에서 소련군 눈을 피해 도망친 김씨는 1주일을 걸어서 고향 함흥에 도착했다.

"고향에 돌아왔는데 다 공산주의가 됐더라고. 공산 치하에서 1년도 못 살고 홀로 이남으로 내려왔어. 당시엔 38선 지키는 군인한테 돈 좀 쥐여주면 다 내려갈 수 있었지."

김씨는 중앙관상대(현 기상청)와 교통부 해사국 등에서 무선통신 기술자로 일했다. 그러다 6·25 전쟁이 터졌다. 이번엔 우리 해군에 차출된 김씨는 미군 물자수송선에 탔다. 전쟁이 끝나고 1957년부터 탁구공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50년대 한국엔 공업이란 게 없었지. 수출 품목으로 부산시청에 우리 탁구공이 진열됐는데, 이승만 대통령이 와서 보고 칭찬을 하고 갔었지"라고 했다. 김씨는 1980년대부터 포클레인 사업을 하다 1990년대 초 은퇴했다.

김씨는 "1억원을 기부하고 남은 재산을 박정희 대통령과 이승만 대통령을 기리는 사업에 기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찾아준 분이 이승만 대통령"이라며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 사업을 벌이기 전만 해도 농촌에선 추수 끝나면 막걸리만 마셨다"고 말했다. "요즘 사람들은 덮어놓고 두 대통령 욕한다고 하데. 해방되고 바닥에서부터 나라가 커 온 과정을 경험했으면 절대 그런 말 못할 텐데…."

김씨의 마지막 소원은 이북의 고향 사람들을 돕는 일이다. 김씨는 "내가 이북(공산치하)에서 살아봐서 아는데, 공산당은 절대 굶주린 사람부터 돕지 않는다"며 "빨리 통일이 돼서 남은 재산을 모두 털어 고향 찾아가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다.

안중근의사기념관 건립위는 안중근 의사 서거 100주년인 올해 완공을 목표로 지난해 3월부터 서울 중구 남산공원의 낡은 기념관을 헐고, 새로 짓고 있다. 지하 2층~지상 2층에 연면적 3799㎡(1148평) 규모로 지어지는 새 기념관은 안 의사의 하얼빈역 의거 101주년인 10월 26일 완공될 예정이다. 지금까지 1만1000여명이 33억원을 기부했다. 건립위는 기부자 전원의 이름을 동판에 새겨 신축 기념관에 전시할 계획이다. 모금은 오는 30일 마감된다. 성금문의는 (02)764-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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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화폐속의 인물 파스퇴르 (프랑스)  세상떠남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 12. 27 ~ 1895. 9. 28 프랑스 5프랑(1967년 발행)


프랑스 화학자·미생물학자

쥐라주 돌 출생.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에서 물리·화학을 공부한 뒤 1849년 스트라스부르대학 화학교수가 되었다. 타르타르산에 의한 광회전성에 대한 연구를 통해 분자 내 원자 배열의 문제에 도달, 화학조성·결정구조·광학활성의 관계를 연구하여 J.H. 반트호프 입체화학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때 생물이 입체이성질(立體異性質)의 한쪽만을 이용, 합성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우주의 <비대칭성>을 강조하였다. 1854년 릴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1857년 젖산균에 의한 젖산 발효를, 1860년 효모에 의한 알코올 발효를 증명하여 발효의 의의를 확립하였다. 1861년 비등점에서 공기를 단절한 플라스크 안에서는 물질이 썩지 않음을 증명함으로써 생물의 자연발생설을 부정하였다. 1862년 아세트산의 발효와 알코올에서 아세트산으로 변하는 것을 연구하여 식초의 새로운 공업적 제법을 확립하였다. 1865년 포도주의 산패(酸敗) 원인균을 연구하여 약 60℃의 저온살균법을 고안함으로써 프랑스의 포도주제조에 크게 공헌하였다. 또 J.B.A. 뒤마로부터 누에의 미립자병(微粒子病)과 연화병(軟化病)에 관한 연구를 의뢰받고 연구한 결과 감염된 병충의 알에 의한 전염예방법 등을 발표하여 양잠업의 어려움을 덜어 주었다. 1867년 소르본대학 교수가 되었다가 이듬해 뇌출혈로 반신불수가 되었으나 연구를 계속하여 1877년 탄저병(炭疽病)·패혈증(敗血症)·산욕열(産褥熱) 등의 병원체를 밝혀냈다. 이 연구의 영향을 받은 영국의 외과의사 J. 리스터는 외과수술에서 방부법(防腐法)의 응용에 관한 연구를 하게 되었다. 1879년 닭콜레라의 독성을 약화시킨 배양균을 닭에게 주사하면 면역이 된다는 것을 발견하고, 백신접종에 의한 전염병 예방법을 일반화하였다. 1881년에는 양(羊)의 면역실험에 성공하였고, 탄저병 면역에 관한 공개실험을 하여 그 유효성을 실증하였다. 1882년 프랑스학사원 회원이 되었다. 그의 최대 공헌은 광견병백신 제조의 성공으로서, 1885년 광견에 물린 소년에게 처음으로 백신을 접종, 생명을 구하였다. 1888년 파스퇴르연구소, 초대소장에 취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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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화폐속의 인물 마카파갈(필리핀) 출생

 


마카파갈(Diosdado Macapagal) 1910. 9. 28. ∼ 1997. 4. 21.

필리핀 200Piso(2002발행)  정치가, 대통령(1961∼65년)


판팡가주 출생. 1949년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하원 외교위원장을 지냈으며, 1951년  대일강화회의 대표를 거쳐 국제연합총회  대표도 역임하였다. 1961년  대통령선거에서는 가르시아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동남아시아조약기구의  강화를 주장하는 등  반공친미 정책을 수립하였으나, 1965년 선거에서 마르코스에게 패하였다. 1971년 6월부터 제헌회의  의장직에 있으면서 신헌법 초안을 마련하였으며, 1979년 자유국민연합을 조직하였다. 2001년 에스트라다가 부패혐의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고, 부통령이던 마카파갈 의 딸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요로가 대통령에 취임함으로써 필리핀 최초의 부녀대통령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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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

 

1956년 9월 28일 오후2시38분경 민주당 전당대회에 참석한 장면 부통령이 민주당원 김상붕이 쏜 총탄에 맞아 왼손을 다쳤다. 경찰은 사건의 배후인물로 민주당 서울 성동지구당 간부 최훈을 체포했으나 그 이상의 배후는 밝혀내지 못했다.

그후 1957년 1월 1일 최훈의 부인이 前성동경찰서 사찰주임 이덕신을 배후인물로 지목하자 검찰은 이덕신도 구속했다. 최훈은 법정에서 "치안국장 김종원이 배후로 생각한다"고 폭로했으나 김종원은 이를 완강히 부인했다. 국회조사단이 조사한 결과 치안국 특수정보과장 장영복 등 경찰간부가 배후조종한 사실을 탐지해냈으나 이 또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4년 뒤 4·19혁명이 성공하자 김종원은 법정에 불려나왔고 그는 "장면박사 저격사건은 전 서울시장 임흥순이 지시했다"고 폭로함으로써 사건의 배후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즉 사건 40일 전 자유당 2인자인 이기붕이 임흥순에게, 임은 내무장관 이익흥에게, 이는 김종원에게, 김은 장역복에게, 장은 박사일 중앙사찰분실장에게, 박은 오충환 시경사찰과장에게, 오는 이덕신에게 범행을 차례로 지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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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  영국 최초의 여성 내과 의사 탄생

 

엘리자베스 가렛 앤더슨(Elizabeth Garrett Anderson, 1836-1917)은 절대적인 남성 영역이었던 의학계에 금기를 깨고, 영국 최초의 '여성' 내과 의사가 된 인물이다. 1859년 당시 24살이었던 그녀는 미국 최초의 여성 의학박사 1호인 엘리자베스 블렉웰(Elizabeth Blackwell)과의 만남을 통해 '의사'의 꿈을 키우게 된다.

그녀는 일부 의과대학에 지원했으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앤더슨은 여기에서 좌절하지 않고 미들섹스 병원(Middlesex Hospital)에 간호사로 취업한 뒤 의학 수업의 청강을 시도했으나, 남학생들의 반발에 부딪쳐 강의실 출입을 금지 당하게 된다.

그러나 얼마 뒤, 앤더슨은 <영국 약사 협회>(the British Society of Apothecaries) 정관에 여성 시험 신청 금지 조항이 누락되어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는 각고의 노력 끝에 1865년 <영국 약사 협회> 시험에 응시 합격함으로써 이 협회 최초의 여성 회원으로 입회됨과 이 동시에 '의사' 자격증을 받게 되었다. 영국 의학협회는 '앤더슨' 사건 이후 곧바로 정관을 변경하여 여성의 의학 직종 종사를 금지했다. 이 사건에 자극을 받은 앤더슨은 런던에서의 개업의 생활을 중단하고, '의학 박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모든 영국 의과 대학이 그녀의 입학을 거부하자, 그녀는 프랑스 '파리대학'으로 건너가 1870년에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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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90년  그리스가 마라톤전투(the Battle of Marathon)에서 페르시아에게 승리하다. 

1530년  이탈리아 화가 안드레아 델 사르토(Andrea del Sarto) 세상떠남

1573년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지오 (Caravaggio)  출생


1745년  영국 런던 드루리 레인 극장(the Drury Lane Theatre)에서 영국 국가가 처음으로 연주되다.

1794년  프랑스에 대항하여 영국,러시아,오스트리아가 페테스부르그에서 동맹을 맺다. 


1803년  프랑스 작가 프로스페르 메리메(Prosper Merimee) 출생

1825년  콜롬비아의 3선 대통령 누녜스 출생

1841년  프랑스 정치가 조르쥬 클레망소(Georges Clemenceau) 출생

1850년  미국, 해군 및 상선에서 태형을 폐지


1864년  칼 막스가 세계노동자기구 설립을 제안했을 때 런던에서 처음으로 인터내셔날이 만들어지다. 


1865년  엘리자베스 앤더슨(Elizabeth Garrett Anderson)이 영국에서 처음으로 자격을 인정받은 여자 내과의사가 되다. 


1885년  한성전보총국 개국 한성-인천 최초 전신시설 개통

1891년  미국 소설가 허만 멜빌(Herman Melville) 세상떠남


1894년  시몬 마크(Simon Marks)와 톰 스펜서(Tom Spencer)가 나중에 전국적인 체인점이 된 페니 바자르(Penny Bazaar)를 맨체스터에서 열다. 


1895년  프랑스 화학자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  세상떠남


1902년  프랑스 자연주의 문학운동의 창시자, '목로주점'의 에밀 졸라(Emile Zola) 사망

1908년  의병장 허위  세상떠남

1916년  영국 영화배우 피터 핀치(Peter Finch) 출생

1917년  영국 무용가 마이클 소암즈(Michael Soames) 출생

1920년  유관순 순국 


1924년  이탈리아 배우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Marcello Mastroianni) 출생

1934년  프랑스 영화배우 브리지트 바르도(Brigitte Bardot) 출생

1937년  국제연맹 총회, 일본 비난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


1939년  폴란드 군대가 독일과 소련이 폴란드를 분할한다는 조약을 맺은 후에 항복하다.

1945년  현준혁 암살

1946년  조선경비대 제2대 총사령관(참령 李亨根) 취임

1948년  정부, 남부교역 중지를 선언하다 


1949년  미국, 대외군사원조법 성립

1949년  북한군 제8차 유격대 침투


1950년  나토(NATO)공동방위군 창설

1950년  산돌 손양원 목사 순교 

1950년  이승만대통령, 38선이북 진격 명령

1950년  정부, 서울 수복

1950년  NATO군 창설.


1956년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 


1958년  북한 무장간첩선 나포.

1958년  프랑스 제5공화국 헌법 국민투표에 의해 승인 


1961년  시리아서 쿠데타, 통일아랍공화국서 이탈


1963년  도미니카의 후앙 보슈 전(前)대통령은 쿠데타로 실각 후 망명

1963년  미국 처음으로 원자력 이용한 인공위성 발사

1963년  영국-인도네시아군, 사라와크에서 무력충돌

1963년  프랑스-독일협정. 아프리카대륙에서의 양국 세력 확정


1965년  필리핀 타알화산 폭발, 약2000명 사망


1966년  아르헨티나 반(反)영국 폭동

1966년  유엔총회서 인도네시아의 UN복귀를 발표


1968년  북악 스카이웨이 개통

1969년  서독 총선거. 기민당 신승


1970년  산체스 엘살바도르 대통령 방한

1970년  이집트 대통령 가말 압델 나세르(Gamal Abdel Nasser) 세상떠남


1973년  영국 시인 오든(W H Auden)  세상떠남


1977년  일본 적군파, 일본항공(JAL)기 납치

1977년  허담 북한 외무장관 미국 방문 


1978년  교황 요한 바오로 1세가 교황 된지 26일 만에 서거하다.

1982년  한강종합개발사업 착공

1989년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 망명지 하와이서 사망 


1990년  걸프사태 부대파견을 위한 추진위원회 구성(위원장 국방부차관)

1990년  전쟁기념관 기공


1992년  노태우 대통령, 한국 대통령으로 첫 북경 방문해 한중정상회담 

1992년  영국 극작가 윌리엄 더글라스(William Douglas) 세상떠남


1994년  여객선 에스토니아(Estonia)호가 발틱해에서 침몰하여 약 852명이 사망.


1995년  북한, Frog. Scud 600기 배치. 공군 선제 파괴계획 수립.

1995년  한국 공로명 외무 UN 연설서 "북한인권 개선" 촉구


1997년  98프랑스 월드컵 예선 일본원정경기에서 2:1로 역전승을 거두다. 월드컵 본선 4회 연속진출,  당시 감독 차범근

1997년  유럽의 골프선수들이 스페인 발데라마에서 벌어진 라이더 컵 대회에서 미국팀에게 승리하다. 


1998년  마크 맥과이어 미 메이저리그 사상 시즌 70개 최다 홈런기록 수립

1998년  박찬호, 메이저리그 진출 3년만에 시즌 15승 달성 


1999년  현대남녀농구선수단, 평양서 북한농구팀과 친선경기

2000년  피에르 트뤼도 캐나다 전 총리 사망 

2001년  건군 제53주년 국군의 날 행사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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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세요!

출처 : 화폐수집-여행과 자유 (화여자)
글쓴이 : 노가다귀족/평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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