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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과하주(過夏酒)

by 연송 김환수 2010. 9. 15.

김천 과하주(過夏酒)

 
 
   투명한 황갈색에 부드러운 맛과 향. 한여름의 더위를 넘겨도 변하지 않는 약주. 경북 김천의 ‘과하주(過夏酒)’는 조선시대 임금에게 진상된 명주 중에서도 상품으로 꼽혔다.

   백두산에서 지리산으로 힘차게 뻗어 내려가던 백두대간이 추풍령을 지나며 숨을 고르는 곳에 위치한 김천(金泉). 지명부터 ‘금(金)이 나는 샘(泉)’이니 이 고장 물로 빚은 술맛이 어떻겠는가.
 
과하주는 16도짜리 순곡주와 여기에 소주를 섞어 거른 30도 안팎의 재성주(再成酒) 등 두가지가 있다. 과하주에는 충북과 전북·경남의 접경지역으로, 물 좋고 산 좋은 김천의 풍광과 숨결이 그대로 배어 있다.



#다른 곳에서는 나지 않는 맛

   “김천 과하주는 온 나라에서 그 이름이 높으며 외지 사람이 그 술을 빚는 방법을 배웠으나 맛이 본토주(김천 과하주)와 같지 아니하였음은 그 샘물이 타지와는 달리 특이한 신비가 있는 연고다.”

   오래된 향지 금릉승람(1702년)은 이렇게 과하주 맛의 비결이 이 고장 물에 있다고 적고 있다. 김천의 향토사에 따르면 옛날 이 지방에 샘이 있어 그 샘물로 술을 빚으면 맛과 향기가 좋았다. 이 샘을 금지천(金之泉) 또는 주천(酒泉)이라고 불렀으며 김천이라는 지명도 그 샘으로부터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400여년 전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이곳을 지나다가 물 맛을 보고 중국의 금릉(金陵)에 있는 과하천(過夏泉) 물맛과 같다 하여 김천의 옛 이름인 금릉이란 지명과 과하천이 유래됐다고 한다. 또 이 샘물로 빚은 술을 과하주라 부르게 됐다고 전해오고 있다.
 
옛날에 금이 났다는 샘인 금지천은 묻혔다고도 전해져 과하천과 같은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오랫동안 과하주샘으로 불려온 과하천은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228호로 남산동에 있다. 이 샘에는 1882년 새겨진 ‘금릉주천(金陵酒泉)’이란 글귀가 있다.



   #치과의사가 되살린 전통주

   김천 과하주는 조선 초기부터 만들어져 온 것으로 전해진다.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일본의 기록에 남겨질 정도의 명주다. 1930년 한·일 합작으로 김천주조가 설립되면서 대량 생산됐으나 해방과 함께 문을 닫으면서 명맥이 끊겼다.
 
이를 치과의사이자 김천문화원장이던 고 송재성씨(1912~98)가 복원, 87년 경북도 무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됐다.
 
김천주조 건너편에서 병원을 하면서 제조 과정을 익히 봐왔던 송씨는 김천주조에서 근무했던 조무성씨와 함께 숱한 시행착오 끝에 과하주를 복원했다. 91년 제조면허를 받아 생산에 나섰으며 기능보유자이던 송씨 작고 이후에는 둘째 아들인 송강호씨(66·전수조교)가 대를 잇고 있다.



   #주량에 맞게 골라 먹을 수 있는 술

   과하주는 예부터 음력 정월에 빚어서 4월에 즐겨 먹었다고 전한다.
 
   밀을 갈아 샘물로 반죽해 누룩을 만든다. 찹쌀을 샘물에 담갔다가 하루 뒤 건져내 고두밥을 찐다. 이를 떡판에 올려놓은 다음 누룩가루가 24시간 우러난 것과 함께 버무려 떡편을 만든다. 식힌 떡편을 독에 넣고 한지로 밀봉해 서늘한 곳에서 30일 이상 장기 저온 발효시킨 뒤 떠낸 16도 약주가 경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과하주다.

   정주(精酒)를 뜨고 남은 술지게미에 증류소주를 부어 숙성시켜 거르거나 16도 약주를 증류시켜 소주를 만든 뒤 이를 16도 약주와 섞어 숙성시키면 한여름 복더위에도 변질될 우려가 없는 30도 안팎짜리 과하주가 된다. 여름에 강해 이름 그대로 한여름을 나는(과하·過夏) 술이다. 소주처럼 톡 쏘는데 맛은 약주로 술이 약한 사람도 즐겨찾는다.

   달짝지근하면서도 약간 신맛이 느껴지는 과하주는 손에 묻으면 끈적거릴 만큼 진하다. 숙취가 없고 갈증을 없애주며 적당량을 마시면 혈액순환을 도와 고혈압과 신경통에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산이수(三山二水)의 맛과 멋

   과하주는 삼산이수(三山二水, 황악산·고성산·금오산·직지천·감천)의 고장이 빚어낸 술이다. 그런 만큼 이 고장의 향토음식이 안주로 제격이다.

   껍질과 비계를 그대로 구워도 기름이 흘러내리지 않을 정도로 담백하고 차지면서도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지례 흑돼지는 과하주의 맛을 돋운다. 직지사를 보듬고 있는 황악산의 버섯·참나물·곰취같은 산채와 두부·묵 등도 부드럽고 뒤끝이 없는 순한 과하주와 잘 어울린다.
 
   

  김천 과하주 [金泉過夏酒] 

 

 

   ▲요약

   경상북도 김천시 성내동(城內洞)에서 전해내려오는 재래주.

   ▲분류  음식과 무예 

   ▲지정번호  경북무형문화재 제11호 

   ▲지정연도  1987년 5월 13일 

   ▲기능보유자  송재성 

 

   1987년 5월 13일 경상북도무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되었다. 과하주란 원래 약주에 소주를 섞어 빚는 술로, 조선 초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유명했던 술이다. 알코올 13∼14도 정도로 독특한 향기가 있고 맛이 좋아 조선시대에는 임금께 진상하는 상품주로 손꼽혔다. 여름을 지나는 술이라는 뜻에서 과하주(過夏酒)라는 이름이 붙었다.


   김천 남산동 지게마을 서쪽에 있는 김천 과하천(경상북도문화재자료 228)으로 빚는 이 술은 예부터 한국의 명주(名酒)로 알려져 있다. 1718년에 간행된 향토지 《금릉승람(金陵勝覽)》에, “김천 과하주는 익산의 여산주(礪山酒), 문경의 호산춘(湖山春)과 더불어 전국에서 이름난 술”이라 했다.

 

타지방 사람이 이곳에 와서 과하주 빚는 방법을 배워가서 똑같은 방법으로 빚어도 김천 과하주의 술맛과 향기가 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물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과하주는 일제강점기까지 큰도가(김천주조회사)에서 빚었고, 그 술맛은 국내는 물론 일본에까지 알려졌다고 한다. 1930년대에는 한일 합작으로 김천주조주식회사가 설립되어 과하주가 양산되었다.

 

광복 후에는 지역 특산물로 가내양조 규모로 명맥을 유지하다 6·25전쟁 후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다 1984년 당시 김천문화원장 송재성이 과하주의 복원에 성공하였다.


   술의 제조 시기는 우수와 경칩 사이가 최적기이며, 정월 보름에 빚어 4월 8일경에 마신다. 재래 양조법은 정월 대보름날 새벽에 과하천 샘물을 길어 찹쌀을 고슬고슬하게 찐 다음 같은 양의 누룩가루를 섞어 반죽하고 떡을 만들어서 독에 넣어 밀봉하여 1∼3개월간 저온으로 발효시켜 거르면 된다. 이때 물은 넣지 않는다.


 

   김천과하주[ 金泉過夏酒 ]

 

 


   ▲종 목 : 시도무형문화재 11호

   ▲명 칭 : 김천과하주 (金泉過夏酒)

   ▲분 류 : 음식

   ▲지정일 : 1987.05.13

   ▲소재지 : 경북 김천시 성내동 190-4


   과하주는 수백 년 내려온 김천의 유명한 술이다. 찹쌀과 누룩을 원료로 하며, 김천시 남산동에 있는 과하천(過夏泉)의 물을 사용한다. 이 샘물로 술을 빚으면 술맛이 좋고 여름이 지나도 술맛이 변하지 않는다고 하여 과하주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다른 지방사람이 이곳에 와서 과하주 빚는 방법을 배워가서 똑같은 방법으로 아무리 빚어봐도 과하주의 맛과 향기가 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물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라고『금릉승감』에 적혀있다. 찹쌀과 누룩가루를 같은 양으로 섞어 떡을 만들고 물을 넣지않고 독에 밀봉하여 저온으로 1∼3개월 발효시켜서 만든다.


   이렇게 해서 빚은 과하주는 알코올 13∼14도 정도로 독특한 향기가 있고 맛이 좋다. 과하주는 일제시대까지 ‘큰도가’(김천주조회사)에서 빚었는데 한때 중단되었다가 광복 후 재개되고 다시 한국전쟁으로 자취를 감추었다가 1984년 송재성씨가 시험양조 끝에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해 김천 명주(名酒)의 맥을 이었다. 1999년 송재성씨가 사망하여 현재는 기능보유자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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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을 탈없이 날 수 있는 술이라는 뜻에서 얻은 이름이다. 소주는 독하고 약주는 알코올 도수가 낮아서 변질되기 쉬우므로 만들어진 술이다. 만드는 방법은 2가지가 전해진다.


하나는 누룩가루 2되에 끓인 물 한 병을 식혀 붓고, 하룻밤 재워 두었다가 주물러 채에 받치되, 식힌 물을 더 부어 걸러 찌꺼기는 버리고, 찹쌀 한 말을 깨끗이 씻어 지에밥을 쪄 식힌 뒤, 그 누룩물에 섞어 넣었다가 사흘 뒤에 소주 14복자를 부어 7일 뒤에 쓴다고 한다.


또 하나는 찧은 멥쌀 한두 되로 범벅을 만들어 식힌 뒤 누룩가루를 섞어 익히고, 찹쌀 한 말로 지에밥을 쪄서 식혀 그 술밑에 버무려 두었다가 7일 뒤에 소주 20복자를 붓는다고 하였다. 조선 초기부터 서울에서 알려진 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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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잘 나게 하는 술, 과하주


경상북도 문화재로 지정된 김천 명물 과하주(過夏酒)는 여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마셔서 여름을 건강하게 날 수 있다는 술입니다.

과하주는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 《산림경제(山林經濟)》,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 등에 나올 정도로 유명했습니다.


발효주는 도수가 낮은 까닭으로 여름철 변질하기 쉽기에 과하주는 발효주에 알코올 도수가 높은 증류식 소주를 섞어 일종의 혼양주를 마시게 하는 것이지요.


어쩌면 이 과하주가 폭탄주의 원조가 아닌지 모릅니다.


시내를 내려다보는 김천시 남산 꼭대기 부근에 오래된 우물 과하천(過夏泉)이 있는데 이 우물은 경북 무형문화재 제228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이곳을 지나던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이 우물물을 맛보고 중국 금릉의 과하천 물맛과 같다고 칭찬한 뒤 과하천이라고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고 전해지는 이 물로 과하주를 빚지요.


또한, 1921년 잡지 《개벽 제18호》에 권덕규 씨의 ‘경주행’이란 수필문이 있는데 “過夏酒 조키로 有名한 金泉을 거쳐 한 停車場 두 정거장 세이다가 大邱에 나리기는 해가 기울어서라”라는 글에 김천의 과하주 이야기가 나옵니다.


무더운 여름 땀 흘리고 난 어스름 저녁 느티나무 아래서 이웃과 함께 과하주 한 잔이면 무더위쯤 날려버릴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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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성내동()에서 전해내려오는 재래주.


지정종목 : 시도무형문화재
지정번호 : 경북무형문화재 제11호
지정일 : 1987년 5월13일
소재지 : 경상북도 김천시 성내동 190-4
종류 : 향토술빚기
기예능보유자 : 송재성
김천 과하주
김천 과하주
1987년 5월 13일 경상북도무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되었다. 과하주란 원래 약주에 소주를 섞어 빚는 술로, 조선 초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유명했던 술이다. 알코올 13∼14도 정도로 독특한 향기가 있고 맛이 좋아 조선시대에는 임금께 진상하는 상품주로 손꼽혔다. 여름을 지나는 술이라는 뜻에서 과하주()라는 이름이 붙었다.

김천 남산동 지게마을 서쪽에 있는 김천 과하천(경상북도문화재자료 228)으로 빚는 이 술은 예부터 한국의 명주()로 알려져 있다. 1718년에 간행된 향토지 《금릉승람()》에, “김천 과하주는 익산의 여산주(礪), 문경의 호산춘()과 더불어 전국에서 이름난 술”이라 했다. 타지방 사람이 이곳에 와서 과하주 빚는 방법을 배워가서 똑같은 방법으로 빚어도 김천 과하주의 술맛과 향기가 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물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과하주는 일제강점기까지 큰도가(김천주조회사)에서 빚었고, 그 술맛은 국내는 물론 일본에까지 알려졌다고 한다. 1930년대에는 한일 합작으로 김천주조주식회사가 설립되어 과하주가 양산되었다. 광복 후에는 지역 특산물로 가내양조 규모로 명맥을 유지하다 6·25전쟁 후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다 1984년 당시 김천문화원장 송재성이 과하주의 복원에 성공하였다.

술의 제조 시기는 우수경칩 사이가 최적기이며, 정월 보름에 빚어 4월 8일경에 마신다. 재래 양조법은 정월 대보름날 새벽에 과하천 샘물을 길어 찹쌀을 고슬고슬하게 찐 다음 같은 양의 누룩가루를 섞어 반죽하고 떡을 만들어서 독에 넣어 밀봉하여 1∼3개월간 저온으로 발효시켜 거르면 된다. 이때 물은 넣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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