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역사와 음주문화
1. 술의 기원
술은 인류 역사와 함께 탄생했다. 인류가 목축과 농경을 영위하기 이전인 수렵, 채취 시대에는 과실주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과실이나 벌꿀과 같은 당분을 함유하는 액체에 공기 중의 효모가 들어가면 자연적으로 발효하여 알코올을 함유하는 액체가 된다.
원시시대의 술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모두 그러한 형태의 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최초로 술을 빚은 생명체는 사람이 아닌 원숭이로 알려져 있다. 원숭이가 나뭇가지의 갈라진 틈이나 바위의 움푹 패인 곳에 저장해둔 과실이 우연히 발효된 것을 인간이 먹어보고 맛이 좋아 계속 만들어 먹었다. 이 술을 일명 원주(猿酒)라고 한다.
시대별로 주종의 변천을 살펴보면, 수렵, 채취시대의 술은 과실주였고, 유목시대에는 가축의 젖으로 젖술〔乳酒〕이 만들어졌다.
곡물을 원료로 하는 곡주는 농경시대에 들어와서야 탄생했다. 청주나 맥주와 같은 곡류 양조주는 정착농경이 시작되어 녹말을 당화시키는 기법이 개발된 후에야 가능했다. 소주나 위스키와 같은 증류주는 가장 후대에 와서 제조된 술이다.
술의 원료는 그 나라의 주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술로 만들 수 없는 어패류나 해수(海獸)를 주식으로 하는 에스키모족들은 술이 없었다고 한다. 또한 원료가 있다고 하더라도 종교상 금주를 하는 나라의 양조술은 매우 뒤떨어져 있다.
음주의 관습도 종교와 밀접한 관련을 보인다. 일반적으로 종교에서는 술을 빚어 마시는 것이 의식(儀式)의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인도의 베다 시대에는 소마(soma)주를 빚어 신에게 바치는 의식이 있었고, 가톨릭에서는 포도주가 예수피의 상징이라 하여 세례에 쓰이고 주교가 미사 중에 마신다.
원시인들은 발효를 증식(增殖)의 상징으로 받아들여 풍요와 연결시켰고, 여성의 생식작용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중동지역의 원시종교는 술에다 물을 섞어 신에게 바치는 것을 의식의 중심으로 거행했다. 여기에서 물을 남성으로 상징하여 음양화합의 뜻을 나타낸 것이다.
농경시대에 들어와 곡물로 만든 술이 탄생하면서 동서양에서 술은 농경신과 깊은 관계를 가지게 된다. 술의 원료가 되는 곡물은 그 땅의 주식이며 농경에 의해서 얻어지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디오니소스라고 불리는 로마 신화의 주신(酒神) 바커스는 제우스와 세멜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그 신앙은 트라키아 지방에서 그리스로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바커스는 대지의 풍작을 관장하는 신으로 아시아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여행하며 각지에 포도재배와 양조법을 전파했다고 한다.
이집트 신화의 오시리스는 누이인 이시스와 결혼을 하고 이집트를 통치한 왕이었으나 동생에게 살해되어 사자(死者) 나라의 왕이 된다. 이 신은 농경의례와 결부되어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보리로 술을 빚는 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구약성서」의 ‘노아의 방주’에 관한 이야기에서는 하느님이 노아에게 포도의 재배방법과 포도주의 제조방법을 전수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하(夏)나라의 시조 우왕 때 의적(儀狄)이 처음 곡류로 술을 빚어 왕에게 헌상했다는 전설이 있다. 그후 의적은 주신(酒神)으로 숭배되고 그의 이름은 술의 다른 명칭이 되었다.
또한 진(晉)나라의 강통(江統)은 「주고(酒誥)」라는 책에서 “술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시기는 상황(上皇 : 천지개벽과 함께 태어난 사람) 때부터이고 제녀(帝女) 때 성숙되었다”라고 적어 인류가 탄생하면서부터 술이 만들어졌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중국에서 처음 술을 빚기 시작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8,000년 전인 황하문명 때부터인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 시기의 유적지에서 발굴된 주기(酒器: 술을 발효시킬 때 사용하거나 술을 담아두던 용기)가 당시 필요한 용기의 26%나 되었을 정도로 술은 이 시기에 일상생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2. 신화속의 술
이집트 신화에 의하면, 이시스 여신의 남편인 오시리스가 보리로 맥주를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디오니소스가 술의 시조라고 한다.
술을 가리켜 '박카스'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나중에 디오니소스가 붙여진 이름이다. 디오니소스는 생후 6개월만에 어머니 세멜레가 죽자 요정들의 정성으로 양육되었고, 트라키아 지방의 뉘사 산에서 성장했다. 디오니소스는 이 산에서 숲속을 뛰어다니다가 포도를 발견하고 포도주를 처음으로 만들어 냈다고 한다.
뉘사산에서의 수업을 마치고 그리스로 돌아왔을 때, 아티카에 사는 이카리오스란 사람이 그를 환대하였으므로 그에게 선물로 포도나무를 주고 포도주 담그는 법을 일러주었다고 한다.
이카리오스는 기뻐하면서 그 신기한 포도주를 근처의 목동들에게 한잔씩 권했다. 맛이 좋아 많이 마신 목동들은 술에 취해 눈앞이 아찔아찔해지자 독약을 타먹인 줄 알고 이카리오스를 죽이고 말았다. 최초로 술의 순교자가 된 셈이다. 지금도 그리스의 아티카에서는 '디오니소스제'라는 포도주제가 12월에 거행되고 있다.
구약성서에 의하면, 아담의 10대손 노아 시대에 큰 홍수가 있어 온 세계가 물에 잠겼다고 한다. 노아는 방주를 만들어 그 일족과 농작물을 싣고 아라랏산에 도착하여 생물은 재출발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속에는 포도의 씨도 들어 있어 하나님이 노아에게 포도의 재배법과 포도주 제조법을 일러주었다고 한다. 예수도 가나안의 혼례에 스스로 술을 빚었으며, 최후의 만찬에선 제자와 함께 포도주를 마셨다고 한다.
로마신화에 의하면 박카스가 처음으로 술을 빚었다고 해서 박카스를 술의 신이라고 한다.
인도신화에서는 소마신(蘇麻神)이 감로주를 처음 빚었다고 하는데 이것을 마시면 고뇌를 잊고 장수하며 또 죽은 사람을 부활시킨다고 한다.
우리의 단군신화에 의하면 단군께서 백성들에게 농사하는 법을 가르쳤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가을에 햇곡이 나면 높은 산에 올라 신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햇곡으로 만든 술과 떡, 그리고 소를 잡아서 제물로 썼다고 한다.
이 제사를 신이 가르쳐 준 농사법에 의해서 지은 것이란 뜻에서 신농제(神農祭)라 했으며, 소는 양념을 넣지 않고 국으로 끓여 참배한 백성들에게 나누어 먹게 했다고 한다.
먹을 때 소금만으로 간을 맞추어 먹게 했으며, 이국을 신농탕(神農湯)(설렁탕의 기원이란 설도 있음)이라고 했고, 햇곡으로 빚은 술을 신농주(神農酒)라 일컬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술인 막걸리라고 하는 것과 연관이 있는 듯하다.
3. 문헌상의 술
중국의 고서 전국책(戰國策:주나라 안왕에서부터 진시황 때까지 2백40여 년 간의 역사를 기록한 책)에는 술에 대한 기록을 다음과 같이 수록하고 있다.
"옛날 황제의 딸 의적이 술을 맛있게 만들어 우왕(하(夏)나라의 왕)에게 올렸더니 우왕이 이를 맛보고는 후세에 반드시 이 술로 나라를 망치는 자가있을 것이라고 말하고는 술을 끊고 의적을 멀리 하였다." 이 글에서 보면 중국에는 하나라 때인 기원전 약 2천년대에 이미 술이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중국의 문헌에는 우왕때에 제후를 소집하여 도산회(塗山會)라는 모임을 가졌을 때 특히 단군의 자손을 초청했다는 것이 있는데, 이는 술을 매개로 정치적인 왕래가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문헌에 최초로 등장한 것은 <고삼국사기>이다. 그 중 동명성왕의 건국담 속에 술에 얽힌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하백(河伯)의 세 딸 유화(柳花), 훤화(萱花), 위화(葦花)가 더위를 피해 청하(지금의 압록강)의 웅심연에서 놀고 있었다.
이때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가 세 처녀를 보고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신하를 시켜 가까이하려고 하였으나 그녀들은 응하지 않았다. 그 뒤 해모수는 신하의 말을 듣고 새로 웅장한 궁전을 짓고 그녀들을 초청하였다. 초대에 응한 세 처녀가 술대접을 받고 만취한 후 돌아가려 하자 해모수는 앞을 가로막고 하소연을 하였다.
세처녀가 놀라 달아났는데, 그 중 유화만이 해모수에게 잡혀 궁전에서 잠을 자게 되어 정이 들고 말았다. 그 뒤 주몽을 낳게 되었다는 것이 동명성왕의 건국담이다. 이 신화를 통해 술이 아득한 예날 생성되었음은 알 수 있으나 술을 빚었다는 사실만을 알 수 있을 뿐 그밖에 재료나 방법에는 언급이 없어 어떠한 술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동양에서 술의 시조가 의적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이것이 한낱 전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설파한 사람이 이조 광해군 때의 학자 서유거다.
그는 그의 저서 <임원경제> 중 '주례총서(酒禮總敍)'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술의 기원으로 말하면 지금 이를 분명히 밝힐 도리는 없으나 글자가 생기기 이전에 이미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를 역사책에서 더듬어 보면 술의 기원에 대해 기술된 것이 있으나 근거가 희박해서 전설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따라서 고증할 길조차 없어 어느것이 정말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고서에 기재된 것을 보면 술의 연유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고 보여진다.
1. 의적이 처음 술을 빚었다는 것은 우왕 때의 일이며
2. <요주천종(堯酒千鍾)>에는 술을 요제(전설상의 황제) 때에 만들었
다고 하며
3. <신농본초(神農本草)>의 술에 대한 대목에서는 황제 내경(전설상의
황제)이 술을 다스렸다고 되어 있어 의적이 처음 술을 빚었다는 것
은 믿을 수 없으며
4. 다른 책에는 하늘에 주성(酒星)이 있으니 술을 빚는 것은 하늘이나
땅이 모두 같으며
5. 두강(杜康)이 빚었다고 해서 두강주란 말이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모든 일이란 지혜로운 사람이 먼저 시작한 것을 후세의 사람들이 흉내내어 계승하는 것이므로 술도 또한 어느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옛 풍습에 음식을 먹을 때는 먼저 술로 제사를 지내 왔지만 누구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인지조차 전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도 그 기원을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글로 보아 중국에서 전해지는 술의 기원은 애매한 것이며 태고 적에 술이 만들어지고 차차 개량되어 온 것으로 밖에는 볼 수 없다는 견해인 것이다.
4. 우리 술의 역사
1) 고대시대
우리 나라의 원시시대의 술은 얻기 쉽고 만들기 쉬운 과실주가 성행하였을 것이고 유목시에는 유주(柚酒)가, 그리고 농경시대에 들어가면서 곡물을 이용한 곡주(穀酒)가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전해 내려온 주류로는 크게 나누어 약주류(藥酒類), 고급주류 (高級酒類), 가향 주류(加香酒類), 과실주류(果實酒類), 이산주류(異酸 酒類), 속성주류(速成酒類), 탁주류(濁酒類), 감주류(甘酒類), 소주류(燒酎類), 합주류(合酒 類), 약소 주류(藥 燒酎類), 약용주류(藥用 酒類) 등이다.
우리나라에는 술의 기원에 관한 신화는 없지만, 음주에 관한 전설은 고구려의 주몽(晝夢) 신화에서 등장한다. 제왕운기(帝王韻紀)]에 의하면 주몽의 아버지 해모수(解募漱)는 물을 마시게 하니 그녀들은 놀라 달아났으나, 큰딸 유화(宥和)는 해모수에 잡혀 그 날 밤술에 취한 대 로 해모수와 잠자리를 같이하였다.
술에 얽힌 하룻밤의 인연으로 유화가 잉태하여 낳은 아이가 바로 주몽이라는 전설이 있다.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에 의하면 이 땅의 영고(迎鼓), 동맹(東 盟), 무천(舞天) 등 군집대회(群集大會)에서는 밤낮으로 식음하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음(飮)이란 물론 술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밖에 동제(洞祭), 산제(山祭), 기제 (忌祭), 각종 고사(告祀), 명절 제사 등에서도 같은 뜻으로 술을 음복(飮福)함으로써 신인공음(新人共飮)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믿음 속에서 의식이 행하여졌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11년 (28)에 지주(旨酒) (旨, 맛좋은 음식→지)란 말이 나온다. 지주는 맛좋은 술이다. 맛좋은 술이 있었으면 맛이 나쁜 술도 있었을 것이다. 발효식품의 나라가 고구려이니 누룩을 써서 만드는 여러 가지 술들이 중국 못지않게 빚어졌겠지만 현재 아무런 문헌도 남아있지 않다.
2)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
삼국 형성기에는 이미 전래 곡주가 그 바탕을 이어 왔으며 고구려에서는 건국 초기(서기28년)에 지주(旨酒)를 빚어 한나라의 요동태수 를 물리쳤다는 기록과, '스스로 즐기며 발효 음식의 저 장을 즐긴다.'라는 고서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양조 기술이 발달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해 석사 (東海釋史)와 지봉유설에서는 당대(當代)의 시인 옥계생(玉溪生)은 '한잔 신라주(新羅酒)의 기운이 새벽바람에 쉽게 사라질까 두렵구나'라는 시를 소개해 놓았다.
당대 문인들 사이에 신라주의 인기가 자못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이 당시 중국의 제민요술(齊民要術)의 술 빚기가 우리나라에 전파되고 동화되면서 독특한 술까지 빚게 된 것으로 짐작하며 실제로 일본 고사에는 우리에게서 배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일본의 [고사기]에 보면 웅신천황 때(서기 270 ~312), 백제의 수수거리가 새로운 방법으로 좋은 술을 빚어서 전하여 후세에 그를 주신으로 모셨다고 하며, 우리나라 스님 보리(保利)형제가 새 술의 창시자라고 하는데 이 새 술이란 누룩을 써서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따라서 삼국시대의 후기부터 통일 신라 시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우리의 술은 상상 이상으로 다채로웠고 중국에서까지 그 명성이 떨쳐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3) 고려시대
고려시대에는 송·원나라와 빈번 한 교류로 인하여 송·원시 대의 양주 법이 거의 도입되었으며, 상류계층에서는 음용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고려 시대의 사원은 오늘날의 여 관업을 겸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원에서 술을 빚어 팔기도 하였다.
한편 궁중의 양온서라는 부서에서 국가의 의식용 술을 빚었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고려도경, 기명(器皿), 와준(瓦遵)에서 고려의 술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고려에는 찹쌀이 없어서 멥쌀과 누룩으로 술을 빚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송·원대를 통하여 중국에는 찹쌀술이 있었으나 고려 때는 중국 강남의 영향을 받아 쌀로 술을 빚되 멥쌀을 쓰는 것이 서긍(徐兢)의 눈에 특이하게 비친 것 같다.
또 고려도경에서는 술의 맛이 독하여 쉽게 취하고, 빨리 깨는데 알코올 도수가 높고 쉽게 취하고 빨리 깨는 술이 좋은 술의 조건으로 여겨지고 있다. 고려의 술에 관한 구체적 제법에 관한 문헌은 없으나 중국의 덧술법을 배워서 한결 도수가 높아진 것이 아닌가한다.
[고려시대의 대표주]
* 상용약주 : 청주(淸酒), 유하주(流霞酒), 방문주(方文酒), 동동주,
녹파주(綠波酒)
* 특수 고급약주 : 춘주(春酒), 천일주(千日酒), 신라주(新羅酒)
* 향양주(香釀酒) : 송주(誦呪), 국화주, 두견주, 계향어주(桂香御酒),
화주, 죽엽주, 포도주 *탁 주 : 백주(白酒), 이화주
* 약양주(藥釀酒) : 오가피주, 백자주(柏子酒), 창포주, 자주(煮酒),
도소주(屠蘇酒) *구황주(救荒酒) : 천금주(千金酒 : 붉은나무인
천금목의 껍질로 빚는 술)
[고려시대에 유입된 외래주]
* 행인자법주(杏仁煮法酒) : 문종 32년(1078년) 송나라 황제가 보낸
선물 중에 용봉차(龍鳳茶)와 행인자법주가 있었는데 중국의 특급
법주를 만들 때 행인(살구 씨의껍데기 속의 알맹이)을 넣어 빚은
듯하다.
* 양주(羊酒) : 숙종 2년(1107년)에 윤관이 여진족을 정복하였을 때
하사품으로 내린 술인데 유주(乳酒)문화권이었던 그 지방 유목
민족의 술이다.
* 계향어주(桂香御酒): 예종 12년(1117년) 이자겸이 송나라에 진공사
(進貢使)로 다녀오면서 가져왔다는 기록이 있는데 계피향이 들어
가는 황실의 특용주인 듯하다.
* 화주(火酒) : 숙종 3년(1103년)에 화주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과실주
의 일종인 듯하다.
* 마유주(馬乳酒) : 고종 18년(1231년)에 몽고의 침입 당시 유입된
몽고인의 술이다.
* 포도주 : 충렬왕 12년(1302년)에 원나라의 황제로부터 우리 나라에 보내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 상존주(上尊酒) : 충선왕 때(1309년) 유입된 술로서 중국황실의
주도가 높은 청주이다.
* 백주(白酒) : 중국의 백주가 충렬왕 때 유입되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백주는 소주가 아닌 양조주로서 주도 높은 명약주인 듯하다.
* 중산주(中山酒) : 고려 중엽에 유입된 술인데 중양법(重釀法)으로
빚어지는 그 당시중국의 대표적인 청주류의 하나다.
* 증류주(아라키주) : 고려 후반기에 유입된 술로서 몽고의 침공과
함께 다량으로 유입되었던 술이다. 이 당시는 증류주가 고급주로
취급되었다.
4) 조선시대
우리 나라 주조 사상 주목할 일은 조선 시대에 오면서 지금까지 유명주로 손꼽히는 술들이 이 시기에 정착되었다는 것이다.
술도 고급화 추세를 보여 제조 원료도 멥쌀 위주에서 찹쌀로 바뀌고 발효 기술도 단사입에서 중양법으로 바뀌면서 양보다는 질 좋은 술들이 제조되는데 이때 양주로 손꼽히던 주품들은 삼해주, 백로주, 이화주, 부의주, 하향주, 춘주, 국화주 등이었다.
특히 증류주는 국제화 단계로 발달하여 대마도를 통하여 일본, 중국 등에 수출이 빈번하였다. 그 당시 우리 나라는 자가 제조가 허가 되어 자유로이 발전되었으나, 중국에서는 관이 제조를 관장하게 됨에 따라 우리 술의 수출이 용이하여 더욱 발전되었던 것 같다. 조선 후기로 접어 들면서 지방주가 전성기를 맞이하는데 지방마다 비전(秘傳)되는 술들이 멋과 맛을 내면서 노출되기 시작한다.
이때의 명주로는 서울의 약산춘, 여산의 호산춘, 충청의 노산춘, 평안의 벽향주, 김천의 청명주 등이 유명하였으며, 한편 소주에 각종 약재를 응용한 술들이 새로 개발되었는데 전라, 황해도의 이강주, 전라의 죽력고가 유명하였다.
이밖에 약주의 산패 방지를 목적으로 양조주(곡주)와 증류주(소주)를 혼합한 혼성 주인 과하주 등이 여름에도 마실 수 있는 술로서 개발되었는데 그 중 김천의 과하주가 유명하다.
[조선 시대 유입된 외래주]
조선시대에는 다채로운 술들이 개발되었고, 적지 않은 외래주가 공존하였다.
* 천축주(天竺酒) : 세조 8년(1462년) 우리 나라를 방문한 유구국
(琉球國) 사신 이계손(李繼孫)을 통하여 천축주가 들어왔다는
기록이 있는데, 야자수 약을 발효 시켜 증류한 지금의 브랜드
같은 술이다.
* 미인주(美人酒) : 세조 8년에 천축주와 같이 들어온 술인데 유구국
에서 미반 (米飯)에 주국(柱國)을 섞어 만든 술이다. 유구국에서는
제주로 쓰기 위하여 15세 처녀들이 밥을 씹어 만든다 하여 미인
주라 하였다.
* 이황주(黃酒) : 성종 19년(1488년)에 최박(催拍)의 표해록(漂海錄)
에서 황주의 이름이 나오는데 중국 청주의 일종이다.
* 섬라주(暹羅酒) : 태국의 술인 섬라주가 [동의보감]에 소개되는데
두번 증류 한소주로, 독하게 소주를 고아 장내의 제충(除蟲)을 죽
이는 약용의 목적을 쓰여 졌다.
* 홍국주(紅麴酒) : 16세기에 중국에서 유입된 술인데 동의보감에
소개된 흥국 누룩과 찹쌀로 빚은 청주이다.
* 동양주(東陽酒) : 16세기 중국에서 유입된 술로 일반 양조법에 약재
를 넣어 빚은 술이다.
* 금화주(金華酒) : 중국 남경에서 빚어졌던 술인데 16세기에 우리
나라에 유입 되었다. 일반 미곡주에다 울금(한약재의 하나)을
넣어 빚은 술이다.
* 녹두주(綠豆酒) : 조선시대 전 시기를 통하여 유입된 흔적이 보이는
데 녹두누룩으로 빚 은 약주의 일종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예록춘
(醴綠春)이 이 술을 모방하여 빚어진 듯하다.
* 무술주(戊戌酒) : 조선시대 중기부터 그 제법과 함께 유입된 술인데
일반 약주와 빚는 방 법은 같으나 물 대신 동물을 고아 그 즙으로
술을 빚었던 몸보신 주이다.
[조선 말기의 술]
19세기 조선말에는 실학자들의 주질 향상 및 새로운 술을 개발하고자 하는 노력이고 고 조되고 국제화 시대로 접어들게 됨에 따라 외국과의 정보 교환이 쉬워지면 서양 주문화가 도입된다.
주세법이 생기기 이전에는 자가 제조 및 판매가 자유로 웠던 관계로 술 도 다양하였으며 제조하는 장소 또한 무수하였다. 주세법 창설 당시 제조장 수는155,832장(場)이나 되었다.
그러나 국권이 일본으로 넘어가 전통향토주는 자취를 감추게 되고 신식 술이라는 획일적인 술이 제조되기 시작한다. 1920년을 기점으로 재래식 누룩에서 흑곡, 황곡의 배양균 을 사용하는 입국법이 활용 되어 전통주의 맥이 끊기게 되었다.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
액체인 술을 빚는다고 표현하는 것이 이상하다 생각했었는데 알고보니 술을 만들때 곡식을 쪄서 익히고 누룩을 만들고 주모를 넣어 물을 부어 술을 만들기 때문에 누룩을 둥글게 빚는다는 의미에서 술을 빚는다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물에서 부글부글 거품이 생기는 현상을 수불괸다(수불괸다: 물(水)에서 불이 생겨 부글부글 끓는다는 의미)고 표현하고 수불이란 말에서 술이란 말로 변천되었다고 한다.
상고시대에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농업의 기틀이 마련되었기 때문에 술의 역사도 꽤 오래되었을 거라고 짐작되며 아마 많은 술이 처음에는 막걸리와 비슷했을거라 짐작되지만 농경이 발달하기 전에는 과일로 만든 과실주가 주로 애용되었다.
발효문화가 발달한 우리나라의 역사문화와 더불어 술의 역사도 같이 발달해왔으리라고 생각된다. 몽골의 세계 정복 당시 페르시아 문화권에서 몽골로 전해진 증류주가 고려로 전해진 것이 바로 소주의 기원이다.
증류주를 아랍어로 "Arag"라고 하며, 몽골에서는 "아라키", 만주에서는 "알키"라고 부르며 아직도 한반도 북부지방에서는 소주를 "아락주"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원래 소주는 찹쌀을 주정으로 하여, 발효시킨 후 증류하는 과정을 통해 생산되었으며 지방에 따라 멥쌀, 밀, 보리 등을 원료로 하기도 하고, 발효과정 중에 약재나 과일등을 첨가하는 등 각각 다양하고 독특한 형태로 발전되어왔다.
전통 증류방식에 따라 증류된 소주에는, 에틸알코올 이외에도, 알데히드류의 방향물질이 같이 추출되어 있어서, 사용된 원료와 발효방법에 따라 특유의 풍미를 지니는 고급술이 된다.
그러나 곡식을 주로 사용하며, 증류과정을 거치므로 생산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 접근하기 쉬운 술은 아니었다.
이후 일제시기에 희석식 소주 제조법이 소개되고, 양곡부족과 가격문제 등으로 인해 희석식 소주의 생산이 점점 늘다가 결국 1965년 양곡정책으로 증류주를 금지하고 대신 희석식 소주의 생산만 가능하도록 정부에서 령을 내렸다.
희석식 소주는 증류식 소주와는 달리 고구마나 티피오카 등 싼 가격의 전분을 주정으로 연속 증류하여 95%이상의 순수 알코올만 추출해낸다. 이 과정에서 증류식 소주의 매력이었던 맛과 향이 사라지게 되어 무색무미무취한 알코올만 남게 된다.
여기에 물과 감미료를 적당량 섞어 묽게 희석시킨 것이 희석식 소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쌀의 낭비가 없으며, 싼 가격으로 서민에게까지 쉽게 공급될 수 있는 장점이 생겼습니다만, 예전 증류식 소주같은 맛은 완전히 없어진 셈입니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정부는 쌀소비를 촉진시키고 전통 문화를 잇는다는 차원에서 일부 전통 증류식 소주의 생산을 부활시키기도 했습니다. 안동소주, 문배술 등이 근래에 다시 부활하게된 전통 소주들입니다.
5. 주도
술을 마실 때의 예의를 가르쳐 '주도' 혹은 주례(酒禮)라고 한다. 어른을 모시고 술을 마시는 예법에 대해 [소학(小學)]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보인다. 술이 들어오면 자리에서 일어나 주기(酒器)가 놓인 곳으로 가서 절하고 술을 받아야 한다. 감히 제자리에 앉은 채로 어른에게서 술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른이 이를 만류하면 비로소 제자리에 돌아와서 마신다. 어른이 술잔을 들어서 아직도 다 마시지 않았으면 젊은이는 감히 마시지 못한다. 어른이 마시고 난 뒤에 마시는 것이 아랫사람의 예의이다.
우리나라의 사람들은 어른을 모시고 술을 마실 때는 특히 행동을 삼가는데,먼저 어른에게 술잔을 올리고 어른이 술잔을 주시면 반드시 두 손으로 받는다. 또, 어른이 마신 뒤에야 비로소 잔을 비우며, 어른 앞에서 술을 마시지 못하는 것이므로 돌아앉거나, 상체를 뒤로 돌려 마시기도 한다.
술잔을 어른께 드리고 술을 따를 때 도포의 도련이 음식물에 닿을까 보아 왼손으로 옷을 쥐고 오른손으로 따르는 풍속이 생겼다. 이런 예법은 현대 소매가 넓지 않은 양복을 입고 살면서도 왼손으로 오른팔 아래 대고 술을 따르는 풍습으로 남아 있다.
술은 임금에서부터 천만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할 것없이 즐겨 마셨기 때문에 주례(酒禮)는 술과 함께 매우 일찍부터 있었다.[고려도경(高麗圖經)]의 향음(鄕飮)조에 따르면, 고려에서는 이 주례(酒禮)를 매우 중하게 여겼다고 전한다.
잔치 때 신분이 높은 사람은 식탁에 음식을 차려 놓고 의자에 앉아서 술을 마신다. 그러나 신분이 낮으면 좌상(左相)에 음식을 놓고 두 사람이 마주 앉아서 마신다. 잔치에 객이 많으면 좌상을 늘린다. 기혈(器血)은 구리(놋쇠)로 만든 것을 쓰고 어포(魚脯), 육포(肉脯), 생선, 나물 등을 잡연(雜然)하게 늘어놓고 있다.
그리고 주행(酒行)에 절도가 없어서 많이 권하는 것을 예(禮)로 안다. 또, 사소절에는 술이 아무리 독하더라도 눈살을 찌푸리고 못 마땅한 기색을 해서는 안된다 라고 하였다.
또한 술은 빨리 마셔서도 안 되고, 혀로 입술을 빨라서도 안 된다 고 하였다.박지원의 양반전에는 술 마실 때 수염까지 빨지 말라 하였다. 술을 마셔 얼굴이 붉게 해서도 안 되며, 손으로 찌꺼기를 긁어먹지 말고 혀로 술사발을 핥아서도 안 된다.
남에게 술을 굳이 권하지 말며 어른이 나에게 굳이 권할 때는 아무리 사양해도 안되거든 입술만 적시는 것이 좋다. 고 하였다. 남에게 술을 따를 때는 술잔에 가득 부어야 하며, '술은 술잔에 차야 맛'이라고 하는 말이 지금도 쓰인다.
그래서 '술은 차야 맛'이라 할 때는 술을 차게 해서 마시는 것이 좋다는 뜻도 되고, 술은 술잔에 가득 차야 된다는 이중의 의미를 가진다.'술은 차야 맛이고 임은 품안에 들어야 맛'이라는 속담도 이런 데서 생긴 것이다.
1) 동양의 주도
모두 다 아는 바와 같이 우리네 주도에서는 상대편에게 먼저 술잔을 권하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다. 그것은 오랜만에 만난 벗에게 보이는 우정의 표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다르다. 술잔을 권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없지만, 실로 코딱지만한 잔으로 병아리 눈물 정도의 술을 홀짝홀짝 받아 마시기란 감질이 날 지경이다. 그리하여 간에 기별이 가기까지는 밤 새워 마셔도 오히려 부족할 판국이다.
중국에서는 아예 술잔을 권하는 법이 없다. 그들의 주도에 따르면 상대편에게 잔을 권하는 것은 예를 잃는 것이 된다. 각자 자기 잔에 술이 가득 부어지면 잔을 들어올려 '건배'를 하고, 또 술을 마신 뒤에도 자기 잔은 자기 앞에 놓아야 하는데, '건배!'의말이 오가면 잔에 담긴 술은 남김없이 쭉 들이켜야 한다.
때로 조금만 마시고 싶을 경우에는 '스위'(조금만이라는 뜻이라든가?)라는 말로 양해를 구하고 서로가 약간씩 마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 주도에 한 가지 재미있는 현상이 있다면, 그것은 술을 들 때, 아니 들고 싶을 때 자기 혼자 들이켜는 것이 아니라 꼭 상대편과 함께 들자고 권하는 인사말이다.
인사말이라야 방금 말한 바 '간뻬이'나 스위' 둘 중의 어느 하나이겠지만, 그 인사말에는 우리는 어딘지 모르게 대륙적인 기질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2) 일본의 주도
일본식의 안주는 한마디로 말해서 빛깔의 안주요, 술상에 공식처럼 오르는 것은 생선회이다. 그 생선회도 가지가지. 넓은 접시에 울긋불긋 야채류를 올려놓은 그 솜씨는 마치 '먹는 예술품'을 보는 듯하다.
솔직히 말해서 일본식 안주는 안주 그 자체를 먹는 것이 아니라 빛깔을 먹는다는 편이 실감이 가는 표현일는지 모른다. 일본 민족은 원래 색을 즐기는 민족인 성싶다.
술상에 같이 앉는 여색(女色) 또한 빛깔로 단장한 의상이다. 그 '기모노'부터가 그렇다. 색으로 단장한 '기모노'를 앉혀 놓고, 갖가지 색의 안주를 든다는 것은 마치 색을 감상하면서 빛깔을 먹는 일과 다름이 없다.
색이라는 것은 본래 솔직담백함을 나타낸다. 그러나 색은 오래가면 퇴색하기 마련이다. 쌈빡한 맛은 있지만 오래 두고 음미할 것은 못 된다. 이러한 의미로 본다면 일본인들이 색을 즐긴다는 것은 그것이 곧 그들의 민족성과도 어떤 면에서 일맥상통한 점이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가만히 보면 일본인들의 빛깔의 의미, 그것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솔직담백한 기질을 갖고 있는 것 같아. 말하자면 왜어(倭語)로 '앗사리'하다는 얘기가 되겠는데, 그 '앗사리'하다는 것은 빛깔로 말하자면 원색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일본의 복고정신을 부르짖다가 제 뜻대로 안 된다고 할복자살한 미시마 유끼오 같은 기질이 바로 그러한 기질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한편 그 솔직담백한 기질은 일단 이해관계가 계속되면 점차 퇴색되어 가는 면이 없지 않다. 그러한 현상은 지나간 한일관계사만 보더라도 능히 짐작할 만한 일이다.
그렇게 좋던 우정도 한번 금이 가면 그 무사도 정신이라든가 뭐라든가 하는 그런 정신으로 한칼에 우정을 끊는 예를 우리는 일본의 역사소설에서 흔히 접하게 된다. 그것은 결국 빛깔이 퇴색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 아닐지 모르겠다.
더욱이 일본식 술은 여인들의 애교 바람에 넘어가는 술이다. 빛깔로 점철된 안주는 먹는 것이 아닌 보는 안주요, 술은 여인들의 애교 맛에 저절로 목구멍을 넘어가는 술이고 보면, 그네들에 있어서는 안주야말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고, 그리하여 실제로 애교, 그것은 곧 안주가 되어 있는 것이다.
3) 중국의 주도
일본 술이 빛깔과 애교의 술이라고 한다면 중국의 술은 요리와 정(情)의 술이다. 술상에 나오는 요리만도 열 가지가 넘는다. 그것도 우리처럼 한 상에 모두 차려놓고 이것저것 제 맘대로 먹는 안주가 아니라 한 가지씩 차례차례로 들여오는 안주요, 원탁을 돌려가며 나누어 먹는 정다운 안주인 것이다.
요리하면 중국을 연상하듯이, 이 말에 그리 큰 거짓은 없을 성싶다. 어느 안주를 입에 넣어도 별미요, 다음에 나올 요리의 별미를 기다리는 바람에 더욱 마시게 되는 술이다. 때문에 안주는 맛만 보고 넘겨야 한다. 한 가지 안주를 한꺼번에 먹고 나면 다음 안주의 맛은 놓치기 마련이다.
우선 배가 불러서 다음 안주는 거들떠보기조차 싫어지게 된다. 중국 여인들의 정은 뜨겁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그네들은 눈으로 말을 한다. 중국인들의 주량은 또한 대단하지만, 거긋이 일면 대도와 자연을 터득키 위한 그들의 대륙적 기질과 통하는 일면일지도 모른다.
비록 내일 삼수감산(三水甲山)을 갈망정 오늘의 술좌석만은 충분히 즐기려 하고 주빈(主賓)에게 그러한 즐거움을 흠뻑 맛보여 주려는 성의가 엿보이는 술이기도 한 것이다.
그에 비하면 서양은 자기 것을 스스로가 따라 마시는 술,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철두철미 에고이즘이 낳은 주도이기도 하다. 주도 또한 풍류라는데, 그 메마른 자작(自酌)의 술에 무슨 풍류가 있으며 인간의 정이 오갈 것인가.
서양식 자작의 주도는 결국 개인주의를 낳았고, 그 개인주의는 곧 오늘의 비인간화라는 비극을 낳고 말지 않았는가. 정으로 통하는 인간화에는 동양의 주도가 그 한몫을 할 것같이 생각된다.
4) 술자리 예절
1. 기뻐서 마실 때는 절제
2. 피로해서 마실 때는 조용하게!
3. 점잖은 자리에서 마실 때에는 소세한 풍조가 있게!
4. 난잡한 자리에 마실 때에는 금약이 있게!
5. 새로 만난 사람과 마실 때에는 한아(閒雅)→한(閑)은 정숙함을
뜻한다. 진솔하여야 한다.
6. 마지막으로 잡객들과 마실 때에는 재빨리 꽁무늬를 빼야한다.
이 여섯가지의 심득률(心得律)은 바로 자리의 분위기, 또는
몸의 컨디션을 가리는 중요한 명심사항이다.
5) 술친구
술 친구를 가리는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말을 잘하면서도 아첨하지 않는 사람
2. 기백이 약한 듯 하면서도 어느 한군데에 쏠리지 않는 사람
3. 눈짓으로 하는 주령(酒令, 신호라 뜻한다)보고 잘못된 일을 되
풀이하지 않는 사람
4. 주령이 시행되면 온 좌중에 호응하고 나오는 사람
5. 주령을 들으면 즉시 이해하고 재차 문의하지 않는 사람
6. 고상한 해학을 잘 하는 사람
7. 좋지 않은 술잔(이 경우 여자를 포함)을 차지하고도 아무 말이
없는 사람
8. 술을 받게 되어도 술의 좋고 나쁨을 논하지 않는 사람
9. 술을 들면서 거동에 실수가 없는 사람
10. 아예 만취가 되었어도 술잔을 둘러엎지 않는 사람
11. 제목에 따라 시를 지을 수 있는 사람
12. 술을 이기지 못하면서도 ?취가 밤새도록 만발하는 사람
6. 음주문화
1) 서양인의 음주관
파리의 유명한 술집 '해리즈 뉴욕 바'에 걸려 있는 글귀 속에 서양인의 음주관이 잘 나타나 있다. 걱정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당신이 성공할 것이냐, 성공하지 못할 것이냐 가 그것이다. 성공할 것이라고? 그렇다면 걱정할 까닭이 없다.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면 당신의 걱정은 두 가지다.
건강이 유지될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병들 것이냐 가 그것이다. 건강할 수 있다면 걱정할 까닭이 없다. 만일 당신이 병들었다면 걱정할 것은 또다시 두 가지가 된다. 회생할 것이냐, 죽어 버릴 것이냐 가 걱정인 것이다. 회생한다면 무슨 걱정이랴. 당신이 죽는다고 치면 또다시 걱정거리는 두 가지밖에 안된다.
천당에 갈 것이냐, 지옥에 떨어질 것이냐 가 문제인 것이다. 지옥에 떨어진다고 치자. 그 곳에 먼저 가 있을 당신의 옛 술친구들과 악수를 하기 바빠 걱정할 시간적 여유가 없을 것이다.
[독일인에게서 배워야할 음주문화]
맥주의 나라 독일은 음주가 생활의 일부다. 맥주가 이들의 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10세기쯤. 그러니까 천 년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맥주를 마신 역사가 오래된 만큼 독일인의 술문화 또한 상당히 성숙됐다고 볼 수 있다. 성숙된 독일의 음주 문화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음주는 대화를 즐기기 위한 하나의 도구다. 라인강변에 자리자고 있는 쾰른과 뒤셀도르프의 술집 거리는 주말이면 새벽 2시까지 흥청거린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취흥이 도도해져도 결코 고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맥주는 대회를 윤기있게 하는 촉매제 역할만을 하는 것이다.
둘째, 음주는 하되 법 테두리를 지킨다. 독일에는 곳곳에 비어가르텐으로 불리는 맥주집이 산재해 있고 주택가에도 술집이 자리잡고 있다. 이 맥주집들이 아무런 문제없이 영업을 하는 데는 사생활 보호를 위해 밤 10시 반 이후에는 옥외에서는 술을 팔지 못하도록 하는 엄격한 법이 있고 이를 업주들이 철저히 지킨다는 것이다. 주택가의 비어카르텐이 인기를 끄는 데는 음주운전을 피하려는 독일인들의 지혜도 배어 있다.
독일인들은 요즘 술자리가 있는 날이면 으레 순번을 정해 그 날의 운전자 1 명을 정하고 이 운전자는 술자리에서 대화만 즐기되 음주는 거의 하지 않는다. 엄격한 독일 경찰의 법집행과 그에 걸맞는 독일인의 합리적인 음주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셋째, 더치페이로 음주량을 조절한다. 독일의 맥주는 유난히 구수하고 맛이 좋다. 16세기에 제정된 독일 특유의 맥주 순수법에 따라 맥주보리에다 호프와 효모, 물만으로 맥주를 숙성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번 마시게 되면 구수한 맛에 빠져 폭음하게 될 것 같은데 현실은 다르다.
독일의 술집에서는 술값 계 산을 치사하게(?) 각자 해야 한다. 따라서 남에게 술을 강요하고 싶으면 자기가 술을 사야만 한다. 그러나 독일같이 비자금이나 촌지가 없는 맑은 사회에서 술값을 대신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연히 강권이나 폭음하는 술자리는 거의 없고 주량은 스스로의 주머니 사정에 따라 절제될 수밖에 없다. 뮌헨의 10월 축제를 보면 보름 동안 7백만 명이라는 대규모 인파가 전세계에서 몰려와 독일의 맥주만을 위해 축제를 벌인다. 마시고 싶은 만큼 마시고 얘기하고 싶은 만큼 얘기한다. 그러나 불상사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술 판매를 엄격히 제한하는 미국]
자유의 나라라고 알려져 있는 미국이지만 술에 관한 한 무한정 자유로울 것으로 생각했다간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미국에서는 기본적으로 옥외에서는 술을 마실 수 없다.
미국에 사는 교민들이 가끔 야유회를 하면서 술을 마시다 미국 경찰에 단속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벌어진다. 운동경기장에 술을 갖고 들어갈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옥외에서 술 마시는데 대한 규제가 엄격하다 보니 심지어는 알코올 중독자들도 거리에서 술을 마실 때는 술 병을 종이 봉투에 감춘 채 몰래 마실 정도다.
술 판매 제도도 매우 엄격해서 지정 업소 이외에서는 술 판매가 금지되어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구멍가게 체인인 세븐 일레븐에서도 빵과 음료수 등의 생필품 외에 술은 팔지 않는다. 술을 판매하려면 우선 주정부나 시당국으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대부분의 주에서는 신규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다만 술 판매권을 반납한 업소가 있을 경우에 한하여 한정적으로 주류 판매허가를 내주고 있어서 술 판매소는 늘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는 허가 없으면 팔 수 없기 때문에 단골 식당이라 해도 술을 먹고 싶을 때는 손님이 직접 갖고 가서 먹어야 한다. 술 판매허가가 있다고 해도 언제나 파는 것이 아니다. 특히 일요일에는 술을 팔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다. 일요일에 집에 손님을 초대해 파티를 열 경우라면 토요일에 미리 술을 사두어야 한다.
미국인들의 음주 행태를 보면 우리와 너무도 다른 면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선 주량을 봐도 한국인들보다 훨씬 적게 마신다. 물론 양주가 우리나라 소주에 비하면 독하기는 하지만, 한국인들끼리 양주 한 병을 놓고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마시는 것을 보면 미국인들은 혀를 내두른다.
한국의 남자 직장인들이 퇴근해서 각종 술자리를 갖는 것에 비해 미국인들은 곧바로 헬스클럽에 들르거나 집 근처 공원에서 조깅을 하면서 건강을 다진다.
남자들끼리 몰려다니는 경우는 드물고 술자리 사교 모임엔 부부동반이 상식이다. 남편들은 일찍 집으로 들어가 부인을 도와 저녁 준비를 하거나 설거지를 거들거나 하지 않으면 언제든 이혼 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
아무 곳에서나 술을 살 수 있고, 아무 때나, 아무 데서나 술을 마실 수 있으며 맘껏 취할 수 있고 술 때문에 벌인 실수도 적당히 양해가 되는 한국의 음주문화. 술에 관한 한 한국은 가히 지상천국이 아닌가?
미국의 음주문화는 함께 어울려 술을 마시더라도 서로 잔을 권하거나 2차를 가는 일이 거의 없고 취해서 비틀거릴 정도로 마시는 사람도 드물다.술값도 특정인이 사겠다고 선언하지 않는 한 각자 계산한다. 뉴욕 술집에서는 대부분 '해피 아워(happy hour)'라는 걸 설정해 오후 5시반부터 1∼2시간동안 운영한다. 이 시간에는 술값을 절반으로 깎아주거나 간단한 안주를 무료로 제공한다.
[프랑스의 음주문화]
프랑스 호객꾼의 수칙 관광도시 파리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지구촌의 모든 음식과 술을 맛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각국의 전통 음식을 파는 정식 레스토랑들이 간판을 내걸고 있고, 웬만한 골목 어귀에는 카페나 비스트로라는 이름의 간이 술집들이 오가는 손님들의 호기심을 끈다.
파리에서도 젊은이들과 관광객들이 밤에 즐겨 찾는 명소로 카르티에 라탱에 있는 속칭 "먹자골목"을 꼽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한 사람에 1∼2만원 정도면 웬만큼 저녁 한 끼를 즐길 수 있는 부담없는 가격과, 프랑스 음식은 말할 것도 없고 일식 꼬치에서부터 베트남 음식, 북아프리카의 쿠스쿠스를 망라하는 다양한 메뉴에다 그 나라 술까지 곁들일 수 있다는 게 이 골목 식당의 강점이다.
특히 집집마다 문 앞에 서 있는 호객꾼들은 다른 데서 찾아보기 힘든 이 골목의 명물이다. 이들은 보통 네댓 나라의 간단한 인사말 정도는 유창하게 구사하는데 "안녕하세요"소리도 심심찮게 들린다.
이들이 근무 수칙 세 가지는 이렇다.
하나, 자기 집에 들어오라고 두 번 이상 권하지 않는다.
둘, 절대로 손님을 따라가면서 붙잡지 않는다.
셋, 다른 사람들의 통행에 방해가 되지 말 것.
카메라에 잡힌 한 호객꾼의 행동에서 이들의 근무수칙이 결코 빈말이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떤 호객꾼은 즉석에서 행인들과 어울려 박수를 치며 노래판을 벌이기도 하고, 어떤 이는 자기 장사 밑천을 늘리려는지 외국인 관광객에게 그 나라 말을 물어 메모지에 적기도 한다. 이들은 손님을 '물어 오는' 대로 돈을 받는 뜨내기 신분이 아니라 월급제 정식 종업원이다.
직업의식과 자기 업소에 대한 자부심 또한 대단하다.
- 프랑스, 알콜중독 예방 캠페인 한창
- 프랑스인들 술 많이 마셔, 알콜관련 사망자 연 5만2천
- 프랑스는 1인당 알콜소비량이 연평균 11리터 이상으로 개인당
소비량이 지극히 높은 나라로 나타나 있다.
보도들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는 매년 알콜중독으로 5만2천명이 목숨을 잃는다. 이같은 재앙에 대처하기 이해 TV들은 전국질병보험(CNAM)과 프랑스 건강교육센터(CFES)의 협조를 얻어 최근에 다시 알콜중독예방을 위한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래서 TV들은 알콜 피해를 줄이고 건강에 대한 각자의 책임감을 자각케 하기 위해 '한잔은 좋지만 3잔은 피해를 부른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운동은 실상 지난 10년동안 이어져왔다. 그러나 프랑스가 알콜에 가장 많이 피해를 입고 있는 나라 중의 하나로 존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러한 운동이 큰 효과를 거두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개인당 포도주 소비량은 지난 30년 동안에 반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진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인들은 여전히 세계에서 술을 가장 많이 마시는 사람들축에 들어있다.
친구들끼리 한잔하고 아페리티프로 한잔하고 또 식사 때 한잔하고 이렇게 해서 1년에 1인당 평균 11.5리터를 마신다(1995년). 이는 영국의 7.31리터, 아일랜드의 9.21리터를 훨씬 능가하는 것이다.
알콜 피해면에서도 프랑스에서는 알콜의 직접 또는 간접 피해로 1년에 5만 2천명이 목숨을 잃는다. 또한 지방에 따라 어떤 지방은 더욱 심각하다. 가장 심한 지방은 노르 파 드 칼레(NORD-PAS-DE-CALAIS)로 이 지방에서는 주민 10만 명당 33명꼴로 알콜 때문에 사망하고 있다. 브르타뉴(BRETAGNE)는 28.5명이고 오트 노르망디(HAUTE-NORMANDIE)는 26.7명으로 큰 대가를 치루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음주문화]
술의 고장답게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우의 술집들은 대낮부터 발 디딜 틈도 없다. 시끄러운 음악과 떠드는 소리. 우리나라 술집과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이들의 음주 습관을 발견할 수 있다. 술을 마시러 온 것인지, 수다를 떨기 위해 온 것인지 구분이 안된다. 안주 없이 맥주 한 병, 그리고 평균 두 시간씩 있는다.
남자고 여자고 무슨 할 얘기가 그리 많은지 수다만 떨고 있다. 진열대엔 위스키가 수두룩한데 위스키 마시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간혹 나이든 사람들이 향수에 젖어 위스키를 찾을 뿐이다. 위스키를 스트레이트나 온더락스로 마시는 사람도 없다. 물에 타 홀짝일 뿐이다. 역시 한 잔을 마시는데 최소한 한 시간이다.
하룻밤에 10잔 정도 마시는 사람이 가끔 있는데, 이것은 엄청난 술꾼이나 그렇게 마시는 것이다. 그래봐야 양주 반 병쯤 되는 양이 고작이다. 아무리 여러 명이 와도 술을 병으로 주문하는 법은 없으며, 그렇게 팔지도 않는다.
위스키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폭탄주는 상상도 못한다. '치샤'라고 위스키 한 모금에 맥주 한 모금 마시는 음주법이 있긴 하지만, 이젠 옛날 이야기다. 스코틀랜드는 북쪽에 위치해 여름이면 밤 11시가 되어야 날이 어두워진다.
밤 12시가 지나 집에 돌아갈 때도 취해서 비틀거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취하게 마시질 않으니 모두 차를 몰고 집에 가도 음주 운전 사고는 거의 없다. 교통 경찰이 순찰을 돌지만 술집에서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음주측정을 하는 경우는 없단다.
젊은이들이 모이는 대학가 카페에도 칵테일이나 맥주가 주종이다. 최근에는 보드카가 인기지만 역시 칵테일로 마시기 때문에 알코올 농도는 매우 낮다. 밤새 문을 여는 나이트 클럽에는 춤추러 가는 곳이지 술 마시러 가는 곳이 아니다.
폭음으로 몸을 못 가누는 사람 또한 있을 리가 없다. 맥주나 칵테일은 일상화됐지만 위스키는 거의 마시지 않는다. 오히려 위스키 회사들이 걱정할 정도다. 위스키를 마셔도 2년 산, 5년산을 가장 많이 마신다. 12년산 이상이면 프리미엄급으로 분류되어 가격도 비싸고 특별한 날에만 마신다고 한다.
하룻밤에 위스키를 한 병 이상 마셔대고 12년산 위스키를 '싸구려' 취급하는 우리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음주 문화임에 틀림없다.
2) 일본의 음주문화
일본의 직장인들이 찾는 대표적인 선술집은 '술이 있는 곳' 이라는 뜻의 이자카야(居酒屋)다. 이런 대중적인 술집은 문 앞에 빨간 종이등(아카초칭-赤提燈)을 내걸어서 눈에 잘 띈다. 큰 길가에 있는 이자카야 '무사시보'는 직장인들이 즐겨 찾는 보편적인 선술집으로 생맥주 한 잔에 4백엔, 간단한 안주 한 접시에 7∼8백엔을 받는다.
모듬 생선회도 한 접시에 1천엔을 넘지 않는다. 절대로 남길 정도는 나오지 않는다. 우리네 눈으로 보면 양이 적겠지만 대신 싸고 깔끔하다. 직장 동료들끼리 모여 술잔을 기울이지만, 술잔을 돌리거나 못한다는 술을 강요하는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각자 자기가 즐기고 술을 시켜 주량 만큼만 마신다.
같이 온 일행 동료끼리 각각 다른 종류의 술을 놓고 마시는 모습은 쉽게 눈에 띈다. 그러면서 상대방이 조금 마시고 아직 바닥이 드러나지 않은 술잔에 상대방이 시킨 술을 따라서 늘 가득 하도록 해 놓는다. 이른바 첨잔 방식이 일본식 주법이다.
술자리는 보통 한 시간이나 길어야 두 시간 정도. 다음 날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정도만 마시는 경우가 보통이다. 집들이 멀어서 마지막 전차를 놓치면 큰일난다는 현실적인 인식들도 작용한다. 각자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 많이 시키지도 않는다.
따라서 일본의 선술집에서 큰소리를 내거나 취해서 주정하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남에게 피해 주는 것을 무엇보다 꺼려하는 문화 속에서 형성된 술집 풍속도다.
이런 모습은 술값을 치를 때도 그대로 나타난다. '와리깡'이라고 해서 일행이 똑같이 나눠 내거나 자기가 시켜서 먹고 마신 것에 대한 값만 내는 것이 보통이다. 언뜻 야박하게도 보이지만 역시 남에게 신세지기를 삼가고 분수를 지키려는 일본인들의 합리성이 엿보인다. 주머니 사정에도 건강에도 큰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 일본의 음주문화다.
일본은 자동 판매기의 천국이다. 물론 술도 자동 판매기에서 살 수 있다. 일본 전역에는 20만 대에 가까운 주류 자판기가 있다. 대부분 맥주를 파는 자판기지만 그 가운데는 위스키나 청주를 파는 것도 있다.
자판기를 통한 주류판매고는 연간 4천억 엔. 일본 전체 술 시장의 10%나 된다. 이런 주류 자판기가 문제시 되는 것은 미성년자들이 자판기에서 술을 사서 마신다는 점이다.
여론이 들끓자 주류 판매상들은 밤 11시부터는 주류 자판기를 끄겠다는 개선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별 효과가 없자 이번에는 아예 미성년자들이 술을 살 수 없는 연령 식별 자판기를 개발했다.
이 자판기에서 술을 자려면 운전 면허증을 집어 넣어야 한다. 면허증에 표시된 연령이 스무 살을 넘어야만 술이 나온다. 그러나 이런 자판기도 미성년자가 다른 사람의 면허증으로 술을 사면 그만이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류 자판기를 없애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일본 소매주류판매조합은 오는 1999년까지 모든 주류 자판기를 없애기로 결의했다. 연간 4천억 엔의 수입을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 건전한 음주 문화를 위해서는 판매업자와 소비자들의 협조와 철저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3) 중국의 독주 덜 마시기 운동
중국에는 모두 4500여 종의 술이 생산되고 있고, 이 가운데 명주 칭호를 받는 술로는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마오타이, 죽엽청주, 오량액을 비롯해 8가지가 있다. 이들 명주의 공통된 특징은 모두 45도 이상의 독한 술로 좋은 물과 양질의 고량을 원료로 하는 순곡주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 같은 명주는 대부분 가짜가 많고 비싸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우리나라의 고량주와 비슷한 바이지우(白酒)를 즐긴다. 백주는 중국인들에게 일상적인 음료수일 뿐 아니라 주요한 교제 수단으로 취급되고 있다. 또한 중국 역사상 영웅 호걸들은 대부분 술을 엄청나게 즐기는 호주가로 묘사돼 있으며, 따라서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도 술을 마시는 것이 큰 자랑거리로 여겨지는 경향이 아직 남아 있다.
또 중국인들에게 공적이건 사적인 일이건 대부분 술자리에서 결정되며 특히 사업상 상담 책임자가 술이 약할 경우, 우리의 술상무라고 할만한 陪酒員을 동반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러한 음주관습 때문에 중국의 술 산업은 매년 급성장을 보이고 있으며, 현재 전국에 4 만 여 개의 술 공장이 가동 중이다.
백주는 대부분 쌀이나 보리, 옥수수 등 곡식을 주원료로 제조되고 백주를 만드는 곡식은 연간 1432만 톤으로 집계됐다. 이는 11백만 인구의 북경 시민 전체가 3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엄청난 분량이다. 이에 따라 이제 막 식량 자급 자족을 이룬 중국은 식량절약과 국민건강 보호 차원에서 백주 덜 마시기 운동을 강력하게 전개하고 있다. 지난 해 중국은 국무원 산하 23개 부서가 공식 연회석상에서 공직자가 백주를 마시지 말 것을 결의했다.
중국 당국은 또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세계 경작 총 면적의 7%밖에 안 되는 나라에서 세계 인구의 22%를 차지하는 중국인을 먹여 살려야 하는 상황을 설명하며 백주 덜 마시기 운동의 당위성을 홍보하고 있다. 중국 당국은 이와 함께 건강 보호 차원에서 백주보다는 도수가 훨씬 낮은 과일주나 맥주를 마실 것을 권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포도주 소비가 점차 늘어나고 젊은이들은 맥주를 선호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또 반부패 투쟁의 명분으로 근무 시간 중 백주 금주운동을 동시에 전개하고 있다.
공금으로 먹고 마시는 것이 습관화된 중국 관리들에게는 엄청난 고통이지만 이것도 점차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 같다. 오찬 석상이든 만찬 석상이든 어디에서든지 공직자들의 행사에서 맥주나 과실주 외에 백주는 이제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식량 절약, 건강 보호, 반부패 투쟁이라는 3대 목표를 내걸고 시작한 독한 술 덜 마시기 운동은 점차 전 인민들의 호응을 얻어가고 있다.
술은 반드시 식사할 때 반주형식으로 곁들이고 손님 접대시는 물론 친구들과 어울릴 때 빠져선 안되는 것이다. 즐겨 마시는 술은 맥주이지만 대취할 때까지 마시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손님을 초청한 경우 술을 많이 마시도록 권하지만 초대한 손님이 술을 피하면 자신을 무시한다고 받아들인다.
출처 :심온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 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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