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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사 방/역사 고려시대

대조영과 왕건의 비밀

by 연송 김환수 2008. 10. 9.

 

 

 

만주 발해 수도였던 발해진의 발해 박물관에 있는 발해 건국자 대조영 초상화



우리나라 역사상에 있어서 대진국 大震國(발해 渤海)과 고려 高麗의 의미는 매우 희미하다.

대진국과 고려를 우리 역사에 포함시키면서도 정작 그 실체에 대해서는 매우 분분한것이 사실이다.

그 일례로 발해의 건국자 대조영 大祚榮은 그 출신이 속말말갈족이라는 설이 있고

고려 태조 왕건 王建은 그 출신이 당나라 황실의 혈통이라는 설때문이기도 하다.


대조영이 속말말갈족이라는 설은 중국의 <신당서 발해전>에 따른 것이며

태조 왕건이 당나라황실의 혈통이라는 설은 고려시대 김관의의 <편년통록>에 따른 것이다.

우선 대조영의 출신에 대해서 <신당서>는 그를 속말말갈출신이라고 하지만 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柱 말갈의 역사는 반드시 우리역사에 편입해야 한다.

일연의 삼국유사에는 말갈전이 들어있다.

삼국유사는 어느 나라의 역사도 아닌 바로 우리민족의 역사를 담았고

말갈은 오래전부터 이미 우리나라에 편입되어 있었다.>

왜냐면 <신당서>보다 대조영의 출신을 속말말갈이 아닌 고구려의 혈통이라고 하는 사서가 더 많기 때문이다.

<구당서>, <삼국사기>, <삼국유사>, <제왕운기>, <책부원구>, <고려도경>, <속일본기>, <무경총요>,

<오대회요>, <동문선> 등의 많은 사서는 하나같이 대조영의 출신을 일러 고구려 高句麗라 하고 있다.

그 중 구당서는 940년대에 편찬한 사서로서 백년 후에 편찬된 신당서보다는 대진국에 대한 정보가 상세하다 할 수 있겠다.

즉 구당서가 신당서보다는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더욱이 구당서가 편찬된 시기는 오호 16국시대가 난무하던 혼란기였으며

신당서는 통일을 이루고 안정기에 들어선 송나라에서 편찬된 사서이다.


또한 신당서가 편찬된 당시는 아전인수의 중화사관이 뿌리내려 강조되던 시기로서

구당서보다는 객관적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대조영의 대진국이 고구려의 뒤를 이었다는 것은 문서적으로도 얼마든지 유추된다.

<속일본기>에 의하면 대진국의 문왕 대흠무가 일본에 국서를 전할때 자신을 고려국왕이라 칭한 사실이 나온다.

고려는 고구려의 약칭이다.

게다가 일본국이 대진국에 보내는 회답서 또한 대진국을 고려라고 하였으며

대진국의 사신들조차 견고려사(遣高麗使)라 하였다.

아울러 <속일본기>는 復高麗之舊居,有扶餘之遺俗(고구려의 영토를 회복하고 부여의 풍속을 계승하였다)라는 구절로서

대진국의 유래를 밝히고 있다.


고고학적으로 살펴본다면 대진국은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온돌시설인 쪽구를 사용하였고 무덤또한 굴식 돌방무덤이다.

그리고 대진국의 수도 상경용천부의 궁궐의 구조는 고구려의 안학성의 구조와 흡사하다.

와당 등등의 건축물도 고구려와 흡사하였으니 대진국의 전반적인 부분들은 모두 고구려로부터 시작되었다.

즉 고구려를 계승하였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고려 또한 고구려의 뒤를 계승한 국가로서 아예 국호를 그대로 고려(고구려의 약칭)라고 하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태조 왕건의 전설을 통해 태조가 당나라 혈통일 것이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당나라의 황제가 난을 피해 우리나라에 와서 어느 집에 유숙을 하다가

그 집의 여식을 통해 자식을 낳았다고 한다.

하지만 태조왕건의 혈통이 당나라 혈통이라는 것은

고려 18대 황제 의종때의 벼슬아치 김관의의 <편년통록>이라는 사서에만 등장한다.

이에 대해 익재 이제현선생은 <왕대종족기>, <성원록> 등의 사서들을 통하여 태조의 당나라 혈통설을 강하게 논박하였다.


그렇다면 과연 태조 왕건의 출신은 어디일까.

그에 대해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사서로는 서긍의 <고려도경>과 <신오대사 고려전>, <송사 고려전>,

<자치통감>, <고려사 권2 세가 태조 16년 3월 신사조> 등이 있다.

신오대사와 고려도경 등은 왕씨의 선조는 고구려의 대족이었다라고 하고

송사 고려전은 아예 고려는 본래 고구려라 한다라며 직접적으로 밝히고 있다.


<고려사 권2 세가 태조 16년 3월 신사조> 기록에서는 후당의 명종이 왕건을 고려국왕으로 인정한 문서의 내용이 나오고 있다.

문서의 내용에는 "권지고려국왕사 왕건은 주몽의 뒤를 이어 군장이 되고" 와

"당신은 동방의 분야를 영유하고 해외의 영웅이로다" 라는 구절이 들어있다.

즉 따라서 고려 또한 분명하게 고구려를 계승하였다.


그리고 왕건의 혈통은 주몽의 뒤를 이은 고구려 고씨라 할 수 있다.

또한 <고려사>의 다른 기록에는 왕건이 고구려의 옛 땅을 순시하여 조상의 고토를 회복하자는 다짐을 나타내는 구절도 있다.

그러하니 왕건이 고구려의 고씨 혈통이라는 것은 매우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더 소급하자면 고구려의 뒤를 이은 대조영 또한 고구려의 고씨일 가능성이 아주 다분하다.

<자치통감>에 의하면 왕건은 대진국을 가르켜 발해는 나와 친척이다라고 한 것으로 보면 매우 설득력이 있다.

또 앞서 나열했듯이 왕건의 선조 역시 고구려의 대족이라 했지 않은가?

이를 보건대 대조영도 왕건처럼 고구려의 황족일 가능성은 매우 높다 할 수 있다.

더욱이 대조영의 시호가 고왕 高王이라는 것은 많은 의미를 뜻하고 있다.

그리고 더욱 결정적인 것은 대조영과 왕건의 성씨에 그 비밀이 들어있는데,

대씨 大氏의 대는 태太와 그 일맥을 같이 하고 있다.


일례로 협계 태씨의 시조는 태중상이다.

태씨의 유래는 대진국 멸망 후 왕자 대광현이 고려에 귀순하자

태조 왕건은 934년 예우차원에서 대광현에게 태씨성을 내려주었다고 한다.

대조영의 아버지 태중상(걸걸중상 乞乞仲象)은 고구려의 장군 출신이라고 전해지며,

고구려 멸망 후 유민들을 이끌어 고구려 부흥에 최선을 다한 인물이었다.

그는 고구려 유민을 지도하였으며 당나라 군대와 수많은 일전을 벌이는 도중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 이후 대조영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전투를 주도하였으며 아버지가 못다한 꿈을 성취하였고

그 결실은 대진국의 건국이었다.


대진국의 건국은 곧 고구려의 화려한 부활을 뜻하는 것이다.

한편, 앞서 왕씨인 왕건은 고구려의 후예라고 하였다.

공교롭게도 대조영의 대大(太)씨와 왕건의 왕王씨를 합치면 태왕太王이다.

여기에 엄청난 비밀이 들어 있다.

태왕이 무엇이던가.


바로 고구려 임금의 칭호이다.

태왕이란 중국의 황제와 대칭되는 우리민족만의 독자적인 칭호였다.

태왕에는 천손민족을 뜻하는 강한 민족자주의식과 호탕한 천하관이 내포되어 있다.


고구려는 대대로 우주의 통치자 옥황상제께 천제를 지내왔으며 이는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와 고려도 마찬가지였다.

옥황상제께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유일한 권한은 오직 천자만이 가질 수 있다.

그 천자사상의 모태는 본시 우리나라였고, 중국과는 달리 우리민족의 신화는 일찌감치 천손이라 못박았다.

중국 후한의 학자 채옹의 저서 <독단>은 이에 대해서 잘 말해 주고 있다.

"天子之號 始於東夷 父天母地 故曰天子 천자의 부름은 동이에서 시작하였다.

하늘을 아버지, 땅을 어머니라 여겼기에 천자라고 한다." 라는 구절을 통해

천자사상의 뿌리가 과연 어디인지를 명백히 시원하게 밝히고 있다.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비 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또한 고구려의 선조 주몽을 천제의 아들이라 칭하였다.

따라서 고구려를 계승한 대진국과 고려는 천자국임을 표명하며 천제를 중요시 한것이다.

이러한 의식과 관념은 이성계의 조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이성계의 조선이 유교를 정치이념으로 하여 존중화주의를 표방했지만,

조선초까지만 해도 왕이 직접 하늘에 대해 천제를 올렸다.

한편, 한번 요약하자면 대조영과 왕건이 같은 고구려 고씨라는 사실을 전제로 할때

대조영은 태왕의 태자를 취해 새로운 성씨로 삼았고 왕건의 집안은 왕자를 취해 왕씨로 하였다.

왕건집안이 왕씨성을 쓰게 된 것은 개성왕씨족보에 의하면 왕건의 증조부 국조 때부터였다고 한다.

왕건이 왕씨성을 쓴 것은 태왕의 태는 이미 대조영이 사용했기에 그런 것이 아닌가라는 강한 추측이 든다.

아울러 왕건이 대광현을 대표하는 대진국의 황성 대씨에게 태씨성을 내린 것은

고구려의 뒤를 잇는 승계문제의 정통성을 세우기 위함일 것이다.

대저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그 시대에 살지 않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분명히 고구려 고씨의 후예임을 성씨를 통해 강력히 나타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좀 더 상세히 말하자면 태왕의 의미를 더욱 부각시켜 천손국의 천자임을 강력히 표명했다는 것이다.

고高와 태太(대大)와 왕王의 뜻은 높음과 귀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동일하다 할 수 있다.


그래서 대조영과 왕건이 본성인 고씨를 버리고 태와 왕을 취해 성씨로 삼은 것은

고구려로부터 내려온 천자의식을 뚜렷히 나타내고 새 왕조의 창업을 기리기 위해서 개성改姓한 것이 아닐까라는 추측이 든다. 매듭을 짓자면 대조영은 말갈인이 아니라 당당한 고구려의 황족이었고 왕건또한 그러하였으니

명실상부하게 자주적 천하관과 천손국가(천자국)임을 표명하여 고구려를 계승하였다는 것이다.


우리민족에게 있어서 천자사상의 근원인 상제문화上帝文化우리민족의 핵심이요, 자존심이었다.

우리민족의 역사를 바르게 하는 것은 상제문화의 복원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이는 곧 사라져간 우리민족의 천하관과 자존심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선 시급한 것은 잘못되어진 우리민족의 국통을 바로 잡는 일이다.

국통이란 나라가 이어져 흘러온 계보로서 그 나라 그 민족의 정체성과도 연결되어 맞닿는다.

그러기에 국통을 바로 잡는 일은 민족의 실존을 분명히 하고 민족의 본래 모습을 되찾는 것이다.

그 흘러온 국통의 바탕에 상제문화가 존재하였고

그것은 우리민족이 태고로부터 소중하게 지켜왔던 우리의 뿌리이자 자존심이었다.

대조영과 왕건 또한 그것을 알았기에 태왕太王의 한글자씩을 취해 새로운 성씨로 삼아 고구려의 뒤를 이었던 것이다.

이제 그 후세인 우리들도 진국과 고려의 후예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여 자존심을 이어 본받아야 하겠다.

그리고 옛 선인들로부터 면면히 내려온 호방한 기상과 의기를 마음껏 펼쳐야 한다.


[출처] 대조영과 왕건의 비밀|작성자 killidm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