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이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한 것은 조선 초기 태종 13년(1413)이다. 삼국시대 초기에는 인천을 미추홀(彌鄒忽)이라고 하였다.
삼국사기지리지』에 "매소홀(買召忽)현을 일명 미추홀이라 한다"라고
되어있는데, 매소홀은 고구려시대의 인천의 이름이다. 고려사지리지』에 "인주(仁州)는 원래 고구려의 매소홀현이며 일명 미추홀이라 한다"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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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일부 발췌"
인주이씨는 고려 왕실과 관계를 맺게 되는데, 이는 안산김씨 가문과의 결혼으로 시작되었다. 고려시대 문벌 귀족의 대표적인 존재가 안산김씨와 인주이씨 인데, 안산김씨는 은부(殷傅)의 3녀가 모두 현종비(顯宗妃)가 됨으로써 왕의 외척이 되었다.
그런데 김은부의 처 안산군대부인(安山郡大夫人)이 인주이씨의 중시조인 이허겸(李許謙)의 딸이었기 때문에, 현종은 외조부인 이허겸에게 “상서좌복야상주국소성현개국후(尙書左僕射上柱國邵城縣開國候)”를 내리고 1,500호의 식읍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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