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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김 재실,묘소

안산김씨 묘소 및 재실 사진

by 연송 김환수 2008. 2. 9.

연성군(안산군) 할아버지와 후손 묘소 및 재실 사진을 올려봅니다.

  

                    연성군 묘소, 화혜택주 묘소,  위정각

 

  

 안산군(연성군) 할아버지의 시호는 위정공 입니다.

 (부인 : 평산신씨, 교하노씨 합장 ≒부장(附葬))

O鎭 항렬 17대조, 濟0 항렬의 18대조, 0采 항렬의 19대조 할아버지 묘소

 


2018년 2월 하남시 감북동(甘北洞) 안촌에 있는 연성군 할아버지의 위정각을 리모델링하여 시조 안산현 개국후 김긍필 할아버지, 1세손(대손) 안산군 개국후 김은부 할아버지, 중시조 연성군 김정경 할아버지의 위패를 같이 모시고 위정각 입구 출입문인 추충문을 감북사로 위정각을 숭조각으로 현판을 변경하였습니다.


2018년 2월 연성군 김정경 할아버지 옆에 화혜택주 개성왕씨 할머니를 모셨다.

연성군 김정경 할아버지 묘(평산신씨, 교하노씨 합장, 오른쪽묘 화혜택주 개성왕씨)

 

연성군 위정공 할아버지는 판서 신익지, 신양군 노영, 남평군 왕화의 딸(평산신씨, 교하노씨, 개성왕씨) 3명을 부인으로 맞이하였다.

 

평산신씨와 교하노씨는 연성군과 부장(합장)하였으며, 개성왕씨는 그 아래에 임좌로 장사 지냈다가 최근 연성군 할아버지 옆으로 이장하였다.




 

 둘레석으로 새 단장을 한 연성군 할아버지 묘

 

 

 

  

 안산군(연성군) 할아버지 셋째 부인이신 개성왕씨 묘 (부인 : 평산신씨, 교하노씨, 개성왕씨)

 

 

둘레석으로 새 단장한 화혜택주 묘

 

단종 11권, 2년(1454 갑술 / 명 경태(景泰) 5년) 7월 5일(갑인) 1번째기사

박은의 처·조연의 처 등에게 당상관의 예에 의하여 술과 고기를 보내다


예조(禮曹)에 전지(傳旨)하기를,“졸(卒)한 금천 부원군(錦川府院君)박은(朴訔)의 처(妻) 진한국 대부인(辰韓國大夫人) 주씨(周氏)와 한평 부원군(漢平府院君)조연(趙涓)의 처 변한국 대부인(卞韓國大夫人) 김씨(金氏)와 여산 부원군(礪山府院君)송거신(宋居信)의 처 마한국 대부인(馬韓國大夫人)신씨(辛氏)와 풍산군(豊山君)심귀령(沈龜齡)의 처 정화택주(靖和宅主) 김씨(金氏)와 연성군(蓮城君)김정경(金定卿)의 처 화혜 택주(和惠宅主)왕씨(王氏) 등은 나이도 늙었거니와 또 공신(功臣)의 처이니, 나이 70에 치사(致仕)한 당상관(堂上官)의 예에 의하여 매달 술과 고기를 보내게 하라.”하였다.

 

 

회화나무는 중국이 원산지인데 중국에서는 회화나무를 괴수[槐樹(훼나무 괴, 나무 수)]라 하며 길상목(吉祥木)의 하나로 귀하게 여겼다.
그 기원은 중국의 주(周)나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삼괴국극(三槐九棘)이라 하여 조정의 뜰에 세 그루의 회화나무를 심고 우리나라로 하면 3정승(영의정, 우의정, 좌의정)에 해당하는 삼공[三公 ; 태사(太師), 태전(太傳), 태보(太保)]이 마주보고 앉도록 하였다는데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벼슬을 기원하고 의미하는 것으로 발전해나가면서 회화나무를 심어서 출세(出世)하거나 또는 출세의 시작인 과거시험에 합격하면 회화나무를 심어 기념하였던 것이다.

회화나무의 노수(老樹)들은 대개가 고궁, 서원, 문묘, 당대 명문대가들의 뜰에 심어져 있으며,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 "괴(槐)는 허정(虛精)의 정(精)으로서 노괴(老槐:오래된 회나무)는 불(火)을 잘 만들어 신선(神仙)이 깃들어 있어서 그 신기함이 귀히여겨야 한다."라고 표현되어 있다.


옛날에 판관(判官)이 송사를 들을 때 반드시 회화나무를 가지고 재판에 임했다고 하니 회화나무의 정(精:정할 정)으로 하여 진실에 이르도록하고자 함에 그 뜻이 있었고, 훗날 회화나무 3그루를 집 정문 안에 심어두면 그집에 행복이 찾아오고 자녀들이 출세한다라고 생각하며 즐겨심는 정원수로 자리잡은 민속의 나무이기도 하다.

 

경덕국사(景德國師)

고려 목종 2년(999) ~ 문종 20년(1066)


고려 시대의 왕사(王師). 본관은 안산(安山). 속성은 김(金), 속명은 난원(爛圓). 안산현(安山縣;현 안산시 장상동) 출신으로 아버지는 호부상서 김은부(殷傅), 형은 병부상서 충찬, 할아버지는 안산김씨 시조 상서좌복야 긍필이고 문종의 외숙부이며, 대각국사 의천의 스승이다.


문종 12년(1058) 왕이 봉은사에 행차하여 왕사가 되었고, 도승통(都僧統)을 역임하였다. 문종 19년 5월 문종의 아들인 후(煦;의천, 대각국사)를 중이 되게 하였고 화엄교관(華嚴敎觀)을 가르쳤다.


구룡산(九龍山) 복흥사(福興寺) 주지를 지냈다. 죽은 후에 복흥사에 비를 세우고 시호로 경덕(景德)을 내리고 국사(國師)로 추존하였다. 그의 묘지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판 독 문

九龍山福興寺故 王師都僧統」
贈諡景德國師墓誌幷序」
國師諱爛圓俗姓金氏其先安山」
郡人也故尙書左僕射諱兢弼祖」
也故檢校太師上柱國諡安平公」
諱殷傅父也故安孝國大夫人李」
氏妣也故中樞使兵部尙書忠賛」
兄也故首座弘睡師也 師自削」
周羅脫身于豪戚間遭遇累朝歷」
揚緇秩纔及順耳陟爲 王師智」
慧花果自然成就賛謂人中之師」
子矣烏乎以咸雍二年丙午冬十」
月八日示化報年六十八僧夏五」
十七▨▨震悼咸▨迦文定入涅」
槃卽以其月 詔護葬事權之于」
五龍山南崗更取▨子冬十月竪」
碑塔▨九龍山福興寺軋隅尋奉」
靈骸移安于玆地順也門弟等弗」
杇是圖乃爲墓誌」
  九龍山兮山之秀」
  景德師兮師之尊」
  彼佛刹兮旣證果」
  此靈本兮且安魂」
[출전 : 『韓國金石全文』中世上篇 (1984)]



 

 

복흥사 경덕국사묘지명 (福興寺景德國師墓誌銘)

 

구룡산 복흥사(九龍山 福興寺)의 돌아가신 왕사 도승통(王師 都僧統)이며 시호 경덕국사(景德國師)의 묘지명 및 서문


국사의 이름은 난원(爛圓)이고, 속성은 김씨(金氏)이며, 선조는 안산군(安山郡) 사람이다.


돌아가신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긍필(兢弼)이 조부이고, 돌아가신 검교태사 상주국(檢校太師 上柱國)으로 시호가 안평공(安平公)인 은부(殷傅)가 아버지이며,돌아가신 안효국대부인 이씨(安孝國大夫人 李氏)가 어머니이다.


돌아가신 중추사 병부상서(中樞使 兵部尙書)인 충찬(忠贊)이 형이고, 돌아가신 수좌(首座) 홍주(弘疇)가 은사이다.


국사는 머리를 깎고 호척(豪戚) 사이에서 몸을 빼어낸 이후 여러 대에 걸쳐 계속 승계(僧階)를 높여나갔다. 예순에 이르러 왕사(王師)가 되었으니, 지혜의 꽃과 과실이 스스로 무르익어 사람 중의 스승이라는 찬상을 받았다.


아, 함옹(咸雍) 2년 병오년(문종 20, 1066) 10월 8일에 돌아가시니, 나이는 68세이고, 승랍은 57세이다. 매우 슬퍼하여, 모두 “석가모니가 열반에 드신 것과 같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곧 그 달에 조칙을 내려 장례일을 돌보게 하여 오룡산(五龍山) 남쪽 언덕에 임시로 모셔두었다가, 다시 임자년(壬子年? : 문종 26, 1072 ) 10월에 비와 탑을 구룡산 복흥사(九龍山 福興寺)의 서북쪽 모퉁이[乾隅]에 세우고, 영해(靈骸)를 받들어 이 곳으로 이장하여 모셔두었으니, 순리에 따른 것이다.


문하의 제자들이 위업이 영원하기를 바라며, 이에 묘지(墓誌)를 짓는다.

구룡산(九龍山), 산 중에 빼어나고 경덕국사(景德國師), 스승 중에 으뜸이시다. 저 사찰에서 이미 성불(成佛)의 진리를 깨우쳤으니

이 영혼의 터전에서 또 평안히 하리라.


[출전 : 『역주 고려묘지명집성(상)』(2001)]

 

김지우(金之祐) 1108(예종 3)∼1151(의종 5).

합문지후 김군(閤門祗候 金君) 묘지명

     시대 고려   연대 1152년(의종6년, 금(金) 제량(帝亮) 천덕(天德) 4년)

    유형/재질 묘지명·묵서명 / 돌  문화재지정비지정


 


   

閤門祗侯金君墓誌銘」

 

君諱之祐字福基其先新羅國」

元聖大王之後大王生大匡金」

禮禮生三韓功臣三重大匡仁」

允允生大子大保左僕射信雄」

雄生司徒內史侍郎平章事因」

謂謂生兵部尙書中樞使元晃」

晃生中書令樂浪公景庸庸生」

中書侍郎平章事判尙書工部」

事仁揆揆生之祐初功臣仁允」

仕大祖統合三國有功隨大祖」

入京家焉金氏之族世世衣冠」

顯達金姓自此始矣至今稱爲」

貴姓母開州郡夫人左僕射叅」

知政事王嘏之女也君爲人寬」

厚有節少好文學以祖蔭入仕」

爲良醞令同正初受寫經院判」

官遷大樂署丞遷禮賓注簿至」

善慶府舍人天德三年戊辰二」

月日超拜閤門祗侯出安西都」

護府判官爲郡淸直臨事善決」

三年以▨聞辛未年七月二十」

六日因病卒于京城享年四十」

四歲娶金氏女王大妃延壽宮」

主之兄也追封戶部尙書金」

之女也生子二人長衛尉丞同」

正忠彦一男最幼女三人長適」

禮賓主夫黃文富餘並幼壬申」

年十月十九日葬于松林縣白古」

浦銘曰天難測命靡常世素貴」

壽不長銘於石永以藏」

〔출전 : 『韓國金石全文』 中世上(1984)〕

 

 

합문지후 김군(閤門祗候 金君) 묘지명

군의 이름은 지우(之祐)이고, 자는 복기(福基)로, 선조는 신라국(新羅國) 원성대왕(元聖大王)의 후손이다. 대왕은 대광(大匡) 김예(金禮)를 낳고, 예는 삼한공신 삼중대광(三韓功臣 三重大匡) 인윤(仁允)을 낳고, 윤은 대자대보 좌복야(大子大保 左僕射) 신웅(信雄)을 낳고, 웅은 사도 내사시랑평장사(司徒 內史侍郞平章事) 인위(因謂)를 낳고, 위는 병부상서 중추사(兵部尙書 中樞使) 원황(元晃)을 낳고, 황은 중서령(中書令) 낙랑공(樂浪公) 경용(景庸)을 낳고, 용은 중서시랑평장사 판상서공부사(中書侍郞平章事 判尙書工部事) 인규(仁揆)를 낳고, 규가 지우(之祐)를 낳았다.

처음 공신 인윤이 대조(大祖, 太祖)를 섬겨 삼국을 통합하는 데 공로가 있었으므로 대조를 따라 서울로 올라 와 가문을 일구었다. 김씨 집안이 대대로 벼슬하여 현달하였으니, 김씨 성이 이로부터 비롯하였으며, 지금에 이르러서도 귀성(貴姓)으로 불리운다. 어머니는 개주군부인(開州郡夫人)으로 좌복야 참지정사(左僕射 叅知政事) 왕하(王嘏)의 딸이다.

군은 사람됨이 관대하고 너그럽고 지조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글공부하기를 좋아하였는데, 조음(祖蔭)으로 벼슬하여 양온령동정(良醞令同正)이 되었다. 처음 사경원판관(寫經院判官)이 되었다가 대악서승(大樂署丞)에 오르고, 예빈주부(禮賓注簿)로 바뀌었다가 선경부사인(善慶府舍人)에 이르렀다. 천덕(天德) 3년 무진년 2월에 합문지후(閤門祗候)에 특별히 임명되면서 안서도호부판관(安西都護府判官)으로 나갔다. 군(郡)을 청렴하고 정직하게 다스리고 일을 잘 처리하였으므로, 3년이 되자 잘 다스린다는 평판이 있었다. 신미년(의종 5, 1151) 7월 26일에 병으로 서울에서 돌아가시니, 향년 44세이다.

김씨 집안의 여인을 아내로 맞았는데, 왕대비(王大妃) 연수궁주(延壽宮主)의 언니이며, 호부상서(戶部尙書)에 추봉된 김선(金瑄)의 딸이다. 아들 둘을 낳으니, 큰아들은 위위승동정(衛尉丞同正) 충언(忠彦)이고, 다음 아들은 가장 어리다. 딸은 세 명이 있는데, 큰딸은 예빈주부(禮賓主夫) 황문부(黃文富)에게 시집갔고, 나머지는 모두 어리다. 임신년(의종 6, 1152) 10월 19일에 송림현 백고포(松林縣 白古浦)에 장례지냈다.

명(銘)하여 이른다.

하늘의 뜻은 헤아리기 어려워 사람의 목숨도 항상 같을 수는 없네.

대대로 본래 귀한 가문이지만 수명이 길지 못하였네.

돌에 명(銘)을 새겼으니 영원토록 간직되리라. 

〔출전 : 『역주 고려묘지명집성(상)』(2001)〕


 

 

 

시조이신 휘 긍필(兢弼) 할아버님, 할머님의 묘소는 세월이 오래되어 찾을 길이

없고 이후 10대조 할아버지, 할머니의 묘소까지 실묘되어 후일 지석이라도 출토

되어 산소를 되찾을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11대 후손이신 연성군 할아버지부터 향사를 지내고 산소를 관리하게 되어 

조상님들께는 후손으로서 정말 면목이 없게 되었습니다.

 

1대조(2세)인 김은부 선조의 둘째 아드님이신 경덕국사의 지석이 출토되어

가족사인 형이 병부상서 충찬, 아버지가 안평공, 조부가 긍필이라는기록이

전해지고 있으며 6대조(7세) 할아버지(합문지후)의 지석이 출토되었으나

정확한 산소 위치를 알수가 없고 9대조(10세)이신 문광공 할아버지의 묘소도

산도까지 그려가며 선조님께서 찾고자 각고의 노력을 하였으나 찾지를 못하였

으니 이른 시일내에 설단이라도 세워서 대제를 거행하게 되면 좋겠습니다.

 

 

 

 

 시조                                      2세                                      3세 

4세                                    5세                                     6세 

 

7세                                     8세                                     9세 

9대조(10세손)이신 문광공(시호) 김원상(진현관 대제학사, 정당문학, 판삼사사)  묘소산도

    문광공 할아버지의 정확한 묘소 위치를 찾지 못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0세                                  11세                               12세 (중시조)

 

 

위정사

위정사에 봉안된 연성군 김정경의 위패

 

연성군 위정공 신주,   정경부인 평산신씨 신주,   정경부인 교하노씨 신주,   화혜택주 개성왕씨 신주

 

     

 

 

 

 

  

 

위정사  (충북 괴산군 장연면)

 

 

 

 

 

 

 

 

 

 

 

 

 

 

 

 

  

 

 

 

 

 

 

 

 

 

 

 연성군 둘째 아들이신 관(상호군), 상호군 관의 아들 사직공 을신의 단소

 

 

 

연성군 다섯째 아들 한(대호군)  시호 : 호평공

 

숙의기씨(淑儀奇氏)에 대하여
미상∼1457년(세조 3). 본관은 행주(幸州). 부는 기면(奇勉)이고, 관찰사(觀察使)와 대사헌(大司憲)을 지낸 정무공(貞武公) 기건(奇虔)의 누이이다.

정종(定宗)의 후궁이다.

숙의기씨의 소생으로는 순평군(順平君) 이군생(李羣生), 금평군(錦平君) 이의생(李義生), 정석군(貞石君) 이융생(李隆生), 무림군(茂林君) 이선생(李善生), 숙신옹주(淑愼翁主), 덕천옹주(德川翁主), 고성옹주(高城翁主), 상원옹주(祥原翁主), 전산옹주(全山翁主)가 있다. 기타 상세한 정보는 찾아보기 어렵다.

[참고문헌] 璿源系譜紀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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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군 다섯째 아들 한(대호군)

수록대부 안성위 역 지중추부사 대호군 시 호평공 지묘

 

수록대부(綏祿大夫) : 조선시대 의빈계(儀賓階) 정1품 상계(上階)의 위호(位號). → 의빈계

≪참고문헌≫ 經國大典
≪참고문헌≫ 朝鮮初期兩班硏究(李成茂, 一潮閣, 1980)
≪참고문헌≫ 朝鮮初期の文武散階(李成茂, 朝鮮學報 102, 1982)

 

正一品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영의정),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종친이면 현록대부(縣祿大夫), 흥록대부(興祿大夫),

의빈이면 수록대부(綏祿大夫), 성록대부(成祿大夫).

* 수록대부 : 조선시대에 둔 정일품 의빈(儀賓)의 품계, 성록대부의 위로 고종 2년(1865)에

                   상보국숭록대부로 고쳤다.

 

지중추부사 김한(兄김개)의 졸기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김한(金澣)이 졸(卒)하니, 철조(輟朝)하고 부의(賻儀)를 내려 주고 조제(弔祭)하기를 예(例)와 같이 하였다. 김한안산인(安山人)이며, 연성군(蓮城君) 김정경(金定卿)의 아들이다. 공정 대왕(恭靖大王)의 딸인 고성 군주(高城君主)에게 장가들었는데,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자헌 대부(資憲大夫)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이르러 졸(卒)하니, 향년이 77세이다. 시호는 호평(胡平)인데, 오래도록 장수(長壽)한 것이 호(胡)이고, 다스려 재앙이 없는 것이 평(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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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鎭 항렬

16대조 개(연성군 넷째아들 좌참찬, 시호 : 평호공) 1480년(성화16년)

묘소는 경기도 장단군 하서면 봉황암(鳳凰庵)[현재 북한 지역으로 광복 전 행정구역] 에 있다.

예장(나라에서장사), 사후 증직으로 의정부좌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안산군(安山君)에 봉작되었다.

16대조모 : 파평윤씨, 진천송씨(?)

 

 

 

 

 

 

 

 

  

 

 

증 통정대부 형조참의 안산 김공 옥 지 묘

괴산군 장연면 광석리

 

金鈺(1617~?)은 김정경의 9대손으로 자는 仲玉이고,

부는 덕제, 모는 河濱李氏이다.

묘는 서향으로 부인(淑夫人漢陽趙氏)과의 합장묘이다.


봉분의 크기는 4.4×1.5m이며 상석, 망주석, 묘비를 갖추고 있다.

묘비명 : ‘贈 通政大夫 刑曹參議 安山 金公 鈺 之 墓’

 

 

 

 

 

 

 

 

 

 

 

 

 

 

 

 

 

충남 아산시 배방면 휴대리

  

 

 

 

 

 

 

 

O鎭 항렬

15대조 맹강 및 조모 진주강씨 묘 : 아산시 배방면 휴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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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조 맹강의 아들(子) : 사진 가운데 쌍분 형태 =  제용부정 김위( 무후),   장흥고령 김장 (무후)

15대조 맹강의 아들(子) :  제용부정 김위( 무후),   장흥고령 김장 (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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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鎭 항렬

14대조 홍문관 부제학 필(珌) 및 조모 전주이씨 묘 : 아산시 배방면 휴대리

 

 

 

13대조 수의부위 원회 = 사진 맨앞 묘소

O鎭 항렬

13대조 수의부위 원회 및 조모 문화유씨 묘 : 아산시 배방면 휴대리

 

 

 

O鎭 항렬

12대조 동지중추부사 수온 묘 (사진맨앞) : 아산시 배방면 휴대리, 조모 남원양씨 묘 : 청산면 장위리 양산

 

 

 

O鎭 항렬

11대조 계남, 조모 청주한씨 묘 : 옥천군(족보:보은군) 청산면 하례곡

 

O鎭 항렬

10대조 종서, 조모 순흥안씨 묘 : 상주시 모서면 팔음산에서 옥천군 청산면 이장 (2000년 후반)

 

 

O鎭 항렬

9대조 하일(1657년생), 조모 연일정씨 묘 : 청산면 대덕리 대사동 합장

9대조모 밀양박씨 묘 : 용산면 청화리(덕진리) : 300년된 묘소

 

  * 대덕리{대사리+덕곡리(덕우리) 합쳐진 마을이름}

 

 9대조모 밀양박씨 묘 : 충북 영동군 용산면 청화리(덕진리) 300년이 지난 묘소

기울어진 석물을 바로 잡아야 할텐데 ....

 

 

 

  

 

충북 옥천군 청산면 대덕리 약도

 

용산면 청화리(덕진리) 약도

 

  

 

O鎭 항렬

8대조 형기, 8대조모 성주이씨 합장 묘 : 용산면 청화리(덕진리), 용산면 선영으로 이장 ('12.4.8)

8대조모 전주이씨(둘째부인) 묘 : 황간면 용암리(용암초 뒷산) 용산면 선영으로 이장 ('12.4.8)

 

 

 

오른쪽  붙어 있는 묘와는 숙질(아저씨와 조카)사이라는데 역장묘(逆葬墓)를 쓸 수 없어 봉분이 같이 붙어 있는 형국인데 앞으로 절은 어디서 해야 하나 ......

 

처음 찾아가 진(鎭)자 항렬 8대조 및 8대조모 합장묘 선대묘소 측면에서 절을 했다. 산정상에 봉분이 두개 붙어 있는 것이 이상해서 나중에 알아보니 오른쪽 묘는 왼쪽 진(鎭)자 항렬 8대조 할아버지의 아저씨 뻘이 된다고 합니다.  진작 알았다면 오른쪽 아저씨께 먼저 예의를 갖출것을.........

 

청화리(덕진리) 선영에서 용산선영으로 이장시에 8대조 휘 형기묘와 8대조모 성주이씨 묘로 최종 밝혀짐

 

* 역장묘 : 우리나라의 선산(가족묘)은 제일 높은 위치에 가장 윗분을 모시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즉, 할아버지가 제일 위에, 그리고 아버지가 그 아래, 그리고 아들이 그 아래... 그러나 이렇지

               않고 아들이 아버지나 할아버지 보다 높은 위치에 묘를 쓰는 것을 역장묘라 한다.

 

조선전기까지만 해도 역장묘 쓰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지는 않았습니다.

율곡 이이 뿐아니라, 예학의 거장이라는 김장생, 이이와 버금가는 성리학자인 성혼 등이 이 역장묘를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조선중기의 학자이며 정치가인 이정구의 묘 역시 역장입니다.

이 경우에는 묘를 순차적으로 쓸 경우, 후손 중에 역적이 나온다는  설에 의해 역장을 썼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조선전기에는 역장자체를 금기시 하지 않았으므로, 풍수학적으로 특수한 상황일 경우엔 역장을 했던 것입니다.

조선전기의 풍수지리학 책 역시 역장 금기에 대한 내용은 없습니다.

풍수에서 역장을 금기시하기 시작한 것은 유교적 질서가 완성되는 조선후기 17세기 이후부터입니다.

 

숙질사이에 봉분이 붙어 있는 모습 (숙질 : 사진에서 우측 아저씨, 좌측 조카)

청화리(덕진리) 선영에서 용산선영으로 이장시에 8대조 휘 형기묘와 8대조모 성주이씨 묘로 최종 밝혀짐

숙질 묘가 아니고 성주이씨 할머니 묘로 밝혀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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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鎭 자 항렬 8대조, 7대조, 5대조 산소 영동군 용산면 선영으로 이장 ('12.4.8 - 4.9)

 

 

 

 

 

 

 

O鎭 항렬 8대조 형기, 8대조모 성주이씨 합장 묘 : 용산면 청화리(덕진리), 용산면 선영으로 이장 ('12.4.8)

8대조모 전주이씨(둘째부인) 묘 : 황간면 용암리(용암초 뒷산)

용산면 선영으로 이장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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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는 O鎭 항렬 7대조 명윤, 8대조모 전주이씨 묘소

 

 

  

 8대조 할아버지 묘소는 용산면 청화리(덕진리 윗마을)  안산 손좌(巽坐 : 동남쪽)

 

진자 항렬 8대 할머니 전주이씨(둘째부인) 묘소 : 황간면 용암리 (용암초 뒷산)

용산면 선영으로 이장 ('12.4.8)

 아래는 7대조 

 진자 항렬 7대조 묘소 : 황간면 용암리 (용암초 뒷산)

용산면 선영으로 이장 ('12.4.8) 사진추후 등재

 

 

 7대 조모 태안박씨 할머니 묘소 용산면 청화리(덕진리 윗마을) 안산 갑좌 

용산면 선영으로 이장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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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鎭 항렬 7대조 묘소 : 황간면 용암리 (용암초 뒷산)

용산면 선영으로 이장 ('12.4.8)

7대 조모 태안박씨 할머니 묘소 용산면 청화리(덕진리 윗마을) 안산 갑좌 용산면 선영으로 이장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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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O鎭 항렬 6대조 이하 선영

충북 영동군 용산면 구룡초등학교 뒷산 선영

 

 

 



 

  5번 김범진 묘,  배 진주강씨 : 0鎭 항렬 (본 매니저 : 백부, 백모)

0진 항렬 광진 6대조 처욱(處彧) : 풍천리( 구촌리 구룡초등학교 뒷산) 부인 영산장씨 ? (1776년 족보 구례장씨)   3번


1776년 족보 구례장씨 할머니


가계도 구례장씨 할머니

1958년 족보 영산장씨 ? (구례장씨) 할머니


충북 영동군 용산면 유래

영동현(永同順)의 가장 북쪽에 위치하여 북북일면이라하여 풍천리[楓川里 : 현 구촌리(九村里), 을리(栗里), 신항리(新項里), 산저리(山底里)], 송림리[松林里 : 현 법화리(法化里), 미전리(米田里), 청화리(靑化里),매금리(梅琴里)]와 북이면(北二面)의 대동리[大同里 : 현 천작리(千作里), 한곡리(閑谷里)B,와촌리[瓦材里 : 현 부상리(扶桑里), 가곡리(佳谷里), 금곡리(金谷里)], 어천리[漁川里 . 현 부릉리(夫陵里), 한석리(閑石里), 시금리(詩今里)]지역으로 1895년에는 북일면 산저리, 풍천리,송림리와 북일면의 대동리, 와촌리, 어천리의2개 면 6개 리로 되었으며, 1895년 5월 26일영동현이 영동군(永同郡)으로 개칭 될 때 영동군 관할이 되었다.

 

  

 

         0진 항렬 5대조 응종, 영산(영동)김씨 묘소 : 용산면 청화리 선영

용산면 선영으로 이장 ('12.4.8) 사진추후 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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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진 항렬 5대조 응종, 영산(영동)김씨 묘소 : 용산면 청화리 선영

영동군 용산면 선영으로 이장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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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진 항렬 4대조 광진 고조부호원  7번

 

 0진 항렬 4대 광진 고조모 호원 부인(배) 전주이씨  1번 오른쪽 묘소

 

 0진 항렬 광진 증조부 낙삼(병선) 부인(배) 개성김씨, 상산김씨  2번

 

 

 

  0진 항렬 광진 조부 도섭  부인(배) 경주이씨  4번 : 용산면 청하(덕진리)에서 이장

 

 

 0진 항렬 광진 부 기홍 (양자 광진 친부 기형) 부인(배) 무송윤씨   6번

 

  기형 (범진, 광진, 익진  친부) 부인 경주이씨  8번

 

  기형 (범진, 광진, 익진  친부) 묘,  둘레석 조성전 묘   8번

 

범진 묘

 

 광진 (부인 밀양박씨 생존 당 87세 2008년)   1번

 

 

 

 

 

 익진 가묘 (2008년) 8번 아래

 

안산 김기형 壻(사위) 김해김씨 재경 쌍분

(안산 김광진 여동생 김용순 지묘)

소재 : 경북 상주시 모서면 덕수1리 팔음산 선영 (2012.10.25)

 

김해김공 재경 지묘, 유인 안산김씨 쌍분 축좌 (姑母夫, 姑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