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산(王山), 필봉산(筆峯山) - 산청
지리산 천왕봉의 한 맥이 북서쪽으로 뻗어 왕산과 함께 인근의 필봉산을 일으켰다.
왕산은 경남 산청군 금서면에 있는 높이 925.6m의 산이고, 그 옆에 필봉산은 858.2m이다.
필봉이라는 산 이름은 붓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풍수적인 형국명과 관련되어 있는 이름이다. 조선시대에는 (문)필봉이 있으면 과거급제자나 문사(文士)가 난다고 하여 귀하게 여겼다.
가락국의 멸망을 지켜본 구형왕의 능과 삼국통일의 주역 김유신이 활쏘기를 했다는 사대(射臺)가 있는 왕산과 선비의 고장인 산청을 상징한다는 필봉산은 산청군 금서면 일대에 높이 솟아 있다. 이런 사연이 있어 왕산이다.
왕산은 정상에서의 조망과 필봉산으로 이어지는 날등의 철쭉과 억새밭이 좋은 산이다. 산자락에는 가락국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릉이 있다.
구형왕릉 아래 공용주차장에서 산행 시작하거나 최단코스인 산청한방자연휴양림에서 가는 코스가 대표적이다.
경남 산청의 왕산, 필봉산 코스는 지리산 천왕봉을 비롯해 주변 명산을 두루 조망할 수 있고 볼거리도 있어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왕산과 한 줄기로 이어진 필봉산은 붓끝을 닮은 독특한 암봉만으로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가락국 역사의 마지막 현장인 구형왕릉, 망경대, 류의태 약수터 등이 왕산의 품에 있다.
부담없는 산행이 가능하다는 것이 이 코스의 장점이다.
산행시간이 길지 않고 산길도 좋은 데다 고속도로 나들목에서 가까워서 가족 산행지로 추천할 만하다.
왕산~필봉산 산행은 흔히 류의태 약수터와 망경대, 두 코스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산행 시간이 길지 않아 두 곳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왕릉은 큼직한 바윗돌을 쌓아 만든 독특한 형태로 가락국 마지막 왕 구형왕의 역사가 아직 전설로만 머물러 있다.
최단코스 : 동의보감촌 산청한방자연휴양림
산청한방자연휴양림 등산로 입구 → 여우재 → (필봉산 → 여우재) → 왕산 정상(원점회귀)
산청한방자연휴양림 등산로 입구
이 곳에서는 선산김씨 묘소 좌측길로 계속 직진하여 여우재 까지 올라 갑니다.
여우재
이 곳 여우재에서는 필봉산을 먼저 갔다오거나 왕산을 먼저 가고 하산길에 필봉산을 가면 된다.
왕산(王山) 925.6m
왕산 정상에서 구형왕릉 방향이나 여우재를 거쳐 필봉산으로 갈 수 있다.
王山(왕산) 정상표지석은 앞뒤에 같은 크기로 세겨져 있다.
필봉산이 비온 후 안개에 반쯤 가려져 있다. 한참을 기다려도 안개구름이 걷히지 않아 필봉산으로 향한다.
필봉산 정상 도착 약 50m전 조망이 좋다.
필봉산(筆峯山) 858.2m 이곳은 사방으로 조망이 좋다.
필봉산 뒷쭉으로 보이는 높은 봉이 왕산이다.
가운데 높은 봉이 왕산이다.
동의보감촌 산청한방자연휴양림이 내려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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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산의 산자락에는 가락국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릉이 있다.
이 곳에서 왕산을 오를 수 있다.
등산로 우측으로 구형왕릉이 있다.
산청 왕산 구형왕릉
이 능은 가야 10대 임금인 구형왕의 무덤으로 전해지고 있는 돌무덤이다. 구형왕은 구해 또는 양왕이라 하는데 김유신의 증조부이다. 521년 가야의 왕이 되어 532년 신라 법흥왕에게 영토를 넘겨줄 때까지 11년간 왕으로 있었다.
이 무덤을 둘러싸고 석탑이라는 설과 왕릉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었다. 이것을 탑으로 보는 이유는 이와 비슷한 것이 안동과 의성 지방에 분포하고 있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
왕릉으로 보는 근거는 <동국여지승람> 산음현 산천조에 '현의 40리 산중에 돌로 쌓은 구릉이 있는데 4면에 모두 층급이 있고 세속에는 왕릉이라 전한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이 무덤에 왕명을 붙인 기록은 조선 시대 문인인 홍의영(1750∼1815)의 <왕산심릉기>에 처음 보인다. <왕산심릉기>는 무덤의 서쪽에 왕산사라는 절이 있는데, 이 절에 전해오는 '왕산사기(王山寺記)'에 구형왕릉이라 기록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 무덤은 일반무덤과는 달리 경사진 언덕의 중간에 총높이 7.15m의 기단식 석단을 이루고 있다. 앞에서 보면 7단이고 뒷면은 비탈진 경사를 그대로 이용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평지의 피라미드식 층단을 만든 것과는 차이가 있다.
무덤의 정상은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돌무덤의 중앙에는 '가락국양왕릉'이라고 쓰인 비석이 있고 그 앞에 석물들이 있는데 이것은 최근에 세운 시설물이다.
조선 정조 17년에는 왕산사에서 전해오던 나무상자에서 발견된 구형왕과 왕비의 초상화, 옷, 활 등을 보존하기 위해 '덕양전'이라는 전각을 짓고 오늘날까지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가락국 10대 양왕릉 (구형왕릉)
이분이 저기 왕릉의 후손이랍니다. ㅋ
구형왕릉 우측에 興武王侍陵祠宇地遺址(흥무왕시릉사우지유지) 비석 / 흥무왕은 김유신이다.
興武王 侍陵 祀宇地 遺址(흥무왕 시릉 사우지 유지)라는 비는 흥무왕(김유신)이 능(陵)을 지킬(侍) 때 제사(祀)를 지낸 집(宇)이 있었던(遺) 자리(址)라는 뜻이다.
호릉각(護陵閣)
정조 22년(1798) 산청군 좌수 민경원(閔境元)이 구형왕릉에 와서 기우제를 지내고 돌아가는 길에 왕산 기슭의 왕대암(王臺庵)에 들러 잠시 쉬었는데 시렁 위에 얹힌 궤에 먼지가 수북 쌓인 것을 보고는 중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중이 대답하기를 누구든지 궤에 손을 대면 큰 벌을 받는다고 전해져 와 그대로 두고 있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민경원이 더욱 호기심이 나서 궤를 열어보려고 하니 중이 극구 만류하였다.
그래도 민경원은 끝내 그 궤를 열었다. 그랬더니 궤 안에는 조금 전에 기우제를 지낸 곳이 구형왕릉이라는 기록과 영정, 갑옷, 칼 들이 들어 있었다.
민경원은 그 사실을 김해김씨 문중에 알렸고, 그 이후 문중에서는 그것들을 보관하고 있다.
호릉각 중건기
산청 전 구형왕릉(山淸傳仇衡王陵) / 사적 제 214호
가락국(駕洛國, 金冠伽倻) 10대 구형왕릉으로 전해지는 특이한 석조물(石造物)이다. 동쪽으로 내려오는 경사면에 피라밋 모양으로 자연석을 쌓아 올렸다.
위로 올라갈수록 면적을 줄여가며 모나게 일곱 단을 쌓아 올렸는데, 전체 높이는 7.1m이다. 각 단 앞부분의 양쪽에는 모서리가 분명하지만, 뒤쪽은 경사면에 붙여 돌을 쌓아 모서리가 없다.
네 번째 계단에는 가로 40cm, 세로 40cm, 깊이 68cm의 감실(龕室)과 같은 것이 설치되어 있다. 감실은 신주(神主)를 모시거나 등잔을 두기 위해 만들어지지만, 여기에서의 용도는 알 수 없다.
앞에는 가락국양왕릉(駕洛國讓王陵)이라 새긴 비석이 있고, 돌담으로 주위를 둘렀다. 문무인석(文武人石), 석수(石獸), 상석(床石), 장명등(長明燈) 등도 배치되어 있으나 근래에 만들어진 것이다.
전구형왕릉이라는 명칭은, 확증은 없고 그렇게 불려진다는 뜻으로 붙여졌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아래쪽에 있는 암자 부근에 왕산사(王山寺)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지역의 전승에는 약 200년 전에 왕산사에서 활, 칼 등과 함께 왕릉에 대한 기록도 나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산을 다 내려간 입구에는 구형왕과 왕비의 영정을 모시는 덕양전(德讓殿)이 있다. 덕양전 경내에는 홍살문, 영정각, 안향각, 정숙당, 추모재 등의 건축물과 연못이 있으며, 해마다 음력 3월 16일과 9월 16일에 제향(祭享)이 올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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