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정서 인영(蘭亭序 印影) 전각(篆刻) 작품
청계(晴溪) 선생의 난정서 인영(印影) 작품은 다양한 크기의 인장석(印章石)에 백문(음각)과 주문(양각)의 기법으로 난정서 전문을 세긴 작품이다.
* 인장석(印章石)은 돌(石)로 만든 인재(印材)를 말한다.
* 인재(印材) : 도장(圖章)을 만드는 인장재료(印章材料)이다.
난정서(蘭亭序)는 중국 동진(東晋)의 왕희지(王羲之)의 행서첩이다.
동진 묵제의 영화9년(353) 3월 3일 회계산음(저장성 소흥) 난정에서 당시의 명사 41명이 모여 계추를 하고 유상곡수(流觴曲水)의 유흥을 하고 시흥에 젖었다.
그때 지은 시집의 서를 왕희지가 썼고 옛날에는 『임하서(臨河序)』라고 하였으나 지금은 『난정서』라고 하며 또 『계첩(稧帖)』이라고도 한다.
당태종은 왕희지를 숭배하여 그의 글씨를 많이 수집하였는데, 특히 『난정서』에 관심이 깊어 지영(智永)의 제자 변재(弁才)에게 사자 숙익(肅翼)을 보내어 이것을 교묘히 빼돌렸다고 전한다.
태종은 그것을 평생 옆에 두고, 임종에 임하여 소릉(昭陵)에 순장하라고 하였다 한다.
현재 전하는 것은 정관년간(貞觀年問, 627~649)에 내부에서 꺼내어 베낀 것과 그것을 다시 베낀 것들이다.
왕희지의 대표적 행서이며 전28행으로 이루어졌고 수소(隨所)에 도말(塗抹)한 문자가 있고, 고서(稿書)의 체를 이룬다. 또 묵탁에는 구양순의 임사라고 하는 정무본(定武本)이 대표적이다.
安氏 蘭亭序 印影 釜山市 無形文化財 第二十四號 篆刻匠 安 晴溪 刻
(안씨 난정서 인영 부산시 무형문화재 제24호 전각장 안 청계 각)
인장(印章) 용어
◇ 인영(印影) : 도장을 찍은 모양을 말한다. 도장을 찍은 형적(形跡)
인장이 찍혀있는 흔적에 대하여 인영(印影), 인흔(印痕)이라 한다. / 인발.
◇ 인장 : 인(印), 신(信), 인신(印信), 도장(圖章), 새(璽), 인감(印鑑),도서(圖書)등의 별칭이 있다.
◇ 도서(圖書)와 인장(印章)의 합성어로서 도장(圖章),
또는 인(印)과 장(章)의 합성어로 인장(印章) 용어도 사용한다.
◇ 인장을 찍는 행위를 날인(捺印), 압날(押捺) 또는 검인(鈐印)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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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印材)는 인장재료를 말하는데 인장석(印章石)은 우리나라 또는 중국에서 생산하는 돌의 산지명을 따서 부르고 있다.
참고로 전각(篆刻)은 전자(篆字,전서체)로 인장(印章)을 새기는 것을 말한다.
중국의 몽고석, 요령석 등이 있는데 몽고석은 일반적인 석질이며 요령석은 인재(印材) 중 재질이 물러서 세기기 쉽기에 전각재료로 많이 사용한다.
중국의 유명한 인재 4대산지는 창화석(절강성) / 청전석(절강성) / 파림석(내몽고지방) / 수산석(복건성 수산현)이다.
우리나라는 전남 해남에서 생산하는 해남석이 있으나 국내 소비가 늘어 현재는 고갈된 상태이다.
도장(인장)의 재료는 다양한데 중국 진시황제는 황제의 도장만을 옥으로 쓰게 해 ‘옥새(玉璽)’라는 말이 생겼으며, 관청에서 사용하는 인장은 벼슬에 따라 금은동의 금속이 쓰였고, 대한민국의 국새도 금인(金印)이다.
인재는 호안석을 비롯한 각종 보석류, 상아, 물소뿔, 죽근(竹根), 흑단 대추나무 등 단단하고 새기기 쉬운 재료들이며, 모두 다양한 형태의 인장재료로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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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희지의 난정서(蘭亭序) 원본 찾았다”
http://road3.kr/?p=27529&cat=150
위 사진은 이번에 발견했다는 난정서 원본, 아래가 북경고궁박물원에 있는 馮乘素(빙승소/풍승소) 임모본.
참고 하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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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정서. 모본(神龍本,신룡본)은 많은 낙관(落款)들이 찍혀 있는데 낙관에는 신품(神品), 소장자 이름, 장서각, 열람자 등이 포함되어 있다.
왕희지 글을 좋아한 당태종은 어렵게 구입한 난정서를 평생 곁에 두고 애지중지 하였는데, 자신이 운명(殞命)할 때 난정서(蘭亭序)를 자신과 함께 순장(殉葬)할 것을 유언으로 명하니, 난정서(蘭亭序)는 당 태종 능(陵)인 소릉(昭陵)에 같이 묻혀버렸다고 전한다.
이때부터 난정서(蘭亭序)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고 역사서들은 기술하고 있다.
중국인들은 왕희지의 난정서(蘭亭序)는 가격을 매길 수 없다 하여, 무가지보(無價之寶)라 부르고, 국가적인 보물로 여기지만 원작(原作)은 전하지 않고 있다.
원본을 베껴 쓴 유명한 임본(臨本) 및 모본(摹本)은 500여 종이 넘고, 임본(臨本)및 필사본들의 글자가 조금씩 다르게 쓰여 있어 진본(眞本)의 글자를 정확하게 판단하기에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
난정서(蘭亭序)는 중국 북경 고궁박물원에는 몇 종의 난정서 필사본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당 빙승소(馮乘素) 모본을 다시 신룡본(神龍本)이 모본한 것이다.
원나라 때 조맹부가 쓴 모본. 송나라 구양순의 임사 정무본(定武本)등이 현존하는 대표작으로 북경 고궁박물원에 소장 돼 있다.
송나라 때 인종 조정 모본, 탁본으론 수나라 개황이 쓴 모본, 청나라 강희 황제가 쓴 모본, 청나라 강판교 모본등도 박물관에서 소장품하고 있다.
아래 작품 臨(임) 난정서는 신룡본과 당초(唐初) 서예 3대가인 저수량, 구양순, 우세남의 글씨이다.
당대(唐代) 신룡본(神龍本)
당나라 때의 서예가 빙승소(憑承素)가 모사했다고 전해지는 "신룡본(神龍本)"이다.
중국 북경 자금성(紫禁城)의 고궁박물원(故宮博物院)에 소장되어 있고, 모사품중 가장 유명하며 한때 진묵(眞墨)으로 평가를 받기도 했다.
당(唐) 명필 저수량(褚遂良)이 임서한 황견본 난정서(黃絹本蘭亭序)
구양순(歐陽詢)의 임난정서 정무본(定武本)
우세남(虞世南)의 임난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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蘭亭序(난정서)
永和九年 歲在癸丑 暮春之初 會於會稽山陰之蘭亭 修契事也(영화구년 세재계축 모춘지초, 회어회계산음지난정 수계사야)
영화 구년 계축년 늦은 봄 초승(3월 3일)에 회계산 북쪽 난정에 모였는데 계제사를 지내기 위함이다.
群賢畢至 少長咸集 此地有崇山峻嶺 茂林脩竹(군현필지 소장함집 차지유숭산준령 무림수죽)
많은 현인들과 젊은이 나이든이 등 모두가 모였다. 이곳엔 높은 산과 험준한 봉우리와 무성한 숲 그리고 대숲이 있다.
又有淸流激湍 映帶左右 引以爲流觴曲水 列坐其次(우유청류격단 영대좌우 인이위류상곡수 열좌기차)
또 맑은 시냇물과 여울이 좌우를 띠처럼 서로 비치며 둘러싸고 있기도 하며, 시냇물을 끌어들여 술잔을 띄울 곡수를 만들고 차례로 줄지어 둘러앉았다.
雖無絲竹管絃之盛 一觴一詠 亦足以暢敍幽情(수무사죽관현지성 일상일영 역족이창서유정)
비록 거문고나 피리같은 음악이 있는 성대한 연회는 아닐지라도 술 한잔 마시고 시 한 수 읊으며 그윽한 감정을 나누기에 충분하도다.
是日也 天朗氣淸 惠風 和暢 仰觀宇宙之大 俯察品類之盛(시일야 천랑기청 혜풍화창 앙관우주지대 부찰품류지성)
이날은 하늘은 깨끗하고 공기는 맑았으며 은혜로운 바람은 따스하고 화창했다. 고개들어 우주의 광대함을 우러러보고 고개 숙여 만물의 풍성함을 살펴 본다.
所以遊目騁懷 足以極視聽之娛 信可樂也(소이유목빙회 족이극시지오 신가락야)
자유롭게 눈을 들어 마음 가는 대로 생각을 풀어놓으니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즐거움이 참으로 흥에 겨운 일이로다.
夫人之相與俯仰一世 或取諸懷抱 悟言一室之內(부인지상여 부앙일세 혹취제회포 오언일실지내)
무릇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굽어 보며 한 평생을 살아감에 있어, 어떤이는 회포를 풀며 벗들과 한방에 마주앉아 얘기를 나누며,
或因寄所託 放浪形骸之外 雖趣 舍萬殊靜躁不同(혹인기소탁 방랑형해지외 수취사만수 정조부동)
또 어떤이는 자기 내면 사상들을 끌어내어 육체 밖에서 마음대로 노닐게 하기도 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비록 취향이 만가지로 다르고 고요함과 시끄러움이 서로 같지 않으니
當其欣於所遇 暫得於己 快然自足(당기흔어소우 잠득어기 쾌연자족)
저마다 자신의 취흥이 기쁠 때는 자기 뜻을 주장하며 스스로 득의하여 기뻐하고 만족하다가
不知老之將至 及其所之旣倦 情隨事遷 感慨係之矣(부지노지장지 급기소지기권 정수사천 감개계지의)
장차 노년이 다가오리라는 것 조차 잊고 즐긴다. 그러다 그가 즐기는 일에 권태를 느낄 때도 있고 감정이 옮겨가면서 변하게 되기도 하느니라.
向之所欣 ?仰之間 以爲陣迹(향지소흔 면앙지간 이위진적)
이전에 즐거웠던 일이 어느 짧은 순간에 낡은 과거사의 자취로 바뀌어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尤不能不以之興懷 況脩短 隨化 終期於盡(유불능불이지흥회 황수단 수화 종기어진)
특히 그런 것 때문에 감회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허나 목숨이 길고 짧은건 모두 자연의 조화를 따라 마침내는 모두가 끝에 이르게 되는 것이 거늘.
古人云 死生亦大矣 豈不痛哉(고인운 사생역대의 개불통재)
옛 사람이 말하 길 "죽고 사는 것은 매우 큰 일이다"고 하였으니 이 어찌 가슴 아픈 일이 아니겠는가.
每攬昔人興感之由 若合一契(매람석인흥감지유 약합일계)
나는 옛사람들이 감회를 일으켰던 까닭을 알게 될 적 마다 마치 두 개의 부절을 하나로 맞춘 듯 내 생각과 똑같은 것을 깨닫는다.
未嘗不臨文嗟悼 不能諭之於懷 固知一死生爲虛誕(미상불림문차도 불능유지어회 고지일사생위허탄)
그러니 옛 사람들의 문장을 대할 때 마다 탄식하고 슬퍼하지 않을 수가 없어 마음을 달래려고 해도 쉬 달래지지 않는다. 죽고 사는 일이 서로 같은 일이라는 말은 허황된 말이다.
齊彭爲妄作 後之視今 亦猶今之視昔 悲夫(제팽상위망작 후지시금 역유금지시석 비부)
팽조처럼 오래 사는 일과 일찍 죽는 일이 서로 같다고 하는 말 역시 함부로 지어 낸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후세 사람들이 지금 사람들을 볼 때도 또한 우리가 옛사람들을 보는 것과 같을 지니 이 또한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故列敍時人 錄其所述 雖世殊事異 所以興懷 其致一也 後之覽者 亦將有感於斯文(고열서시인 록기소술 수세수사이 소이흥회 기치일야 후지람자 역장유감어사문)
그리하여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이름을 순서대로 적고 그들의 시들을 여기에 수록하였다. 비록 세상이 달라지고 세태도 변하겠지만 감회를 일으키게 되는 이치는 서로가 같을 것이다. 후세에 이 글을 읽는 사람도 또한 장차 이 문장에 대하여 감회가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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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정 선생 난정서 작품
해정(海丁) 신주철(申朱澈) 난정서(蘭亭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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