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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예 방/인문고전

산토고륜월 강함만리풍 - 이이

by 연송 김환수 2019. 8. 5.

산토고륜월 강함만리풍 (山吐孤輪月 江含萬里風)  


산은 둥근 달 하나를 토해 냈고, 강은 만리의 바람을 머금었도다.


이이(李珥) 선생이 8세 때 지은 ‘화석정(花石亭)’ 시의 경련(頸聯) 제 5ㆍ6의 두구(頭句) 

※ 경련(頸聯) : 한시(漢詩)의 율(律)ㆍ배율(排律)



 화석정 정자 내부에 여덟의 나이에 작시하였다는 "8세부시(八歲賦詩)" <화석정 시> 편액.

 

花石亭(화석정) - 栗谷 李珥(율곡 이이)

 

林亭秋已晩 (임정추이만) 숲 속 정자에 가을이 이미 깊으니

騷客意無窮 (소객의무궁) 시인의 뜻(생각)이 끝이 없도다

遠水連天碧 (원수연천벽) 먼 물줄기는 하늘에 닿아 푸르고

霜楓向日紅 (상풍향일홍) 서리 맞은 단풍은 해를 향해 붉다

山吐孤輪月 (산토고륜월) 산은 외로운 둥근달을 토해놓고

江含萬里風 (강함만리풍) 강은 만 리의 바람을 머금었다

塞鴻何處去 (새홍하처거) 변방의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가?

聲斷暮雲中 (성단모운중) 소리가 저물어 가는 구름 속에서 끊어지네

                                  (처량한 울음소리 저녁구름 속에 비치네)

 

지은이 : 이이 / 형식 : 오언율시 / 성격 : 주정적, 감상적 

구성

1~2구 : 화석정에서의 시상 / 3~4구 : 주변의 가을 정취

5~6구 : 주변의 가을 정취 / 7~8구 : 주변의 가을 정취

 

시간적 배경 : 계추(만추: 늦가을)

주제 : 늦가을의 풍경에 느껴지는 정취

특징 : 자연 경물에 대한 감각적 묘사와 대구가 사용됨

 

내용 연구 

숲속 정자[화석정 : 경기도 파주군 임진강 가에 있는 정자, 율곡이 벼슬에서 물러나 만년에 거처하던 곳이라 함.]에 가을 이미 늦으니[계절적 배경으로 만추],

시인[시인이나 묵객, 곧 풍류를 즐기는 사람, 여기서는 작자 자신을 가리킴]의 시상은 끝이 없구나.

먼 물줄기는[화석정에서 바라본 임진강] 하늘에 잇닿아 푸르고,

서리 맞은 단풍은 해를 향해 붉도다[푸르고와 붉도다의 색채 대비이자 대구].

산은 외로운 둥근 달을 토해 내고[활유법의 표현으로 산 위에 둥근 달이 외롭게 떠오르는 모습],

강은 만리의 바람을 머금었도다['토해내고'와 '머금었도다'는 의미 대조이자 대구].

변방의 기러기[가을을 나타내는 소재로 떠남의 이미지]는 어디로 가는고?

처량한 울음소리 저녁구름 속에 비치네.

 

이해와 감상

 

율곡 이이가 화석정의 한가로운 가을 정경을 읊은 것으로 임진강 근처에 자리한 화석정에 올라 느낀 만추의 계절 분위기와 정경을 잘 묘사하고 있는 작품으로 화석정 일대의 가을 경관에 대한 감각적 묘사와 긴밀한 대구적 표현미가 돋보인다.

 

※ 선조의 피란 때 화석정에서 있었던 이야기.

 

율곡 이이는 관직에서 물러나 제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면서 지내고 있었다. 그가 머물고 있던 집 근처 임진강에 정자가 하나 있는데, 그 정자는 1443년 이이의 5대 조부인 이명신이 세운 것으로 1478년 숙부 이의석이 보수하였고 이름은 화석정이라고 한다.

 

이이는 이곳에 즐겨 머물면서 시를 읊으면서 자연을 즐기고 학문을 논하였다. 그런데 이이는 매일 들기름을 듬뿍 묻혀서 정자를 닦는 것이다. 제자들이 의아해하면서 “스승님, 왜 들기름으로 정자를 닦는지요?” 라고 물어도 대답도 없이 매일 들기름으로 닦는 것이었다.

 

1592년 왜구가 조선으로 물밀 듯이 쳐들어왔다. 최후 방어선이라고 믿던 탄금대에서 신립이 패하여 왜구의 서울 진입이 다가오자 조정에서는 “지금 도성을 막을 군사도 없으니 하루 속히 서울을 버리고 몽진하셔야 될 줄로 아뢰옵니다.” “절대 안 됩니다. 서울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급히 팔도에 조칙을 내려 근왕병을 일으켜 굳게 지키셔야 합니다.” “우선 의주로 피하셨다가 난이 평정되면 환도하시고 그렇지 못하면 명나라로 들어가 신종(神宗)을 움직이게 하셔야 합니다.” 등등의 의견이 분분하였다.

 

이때 도승지 이항복이 나서서 “명나라로 들어가면 뒷일을 어떻게 수습하겠습니까. 또한 약한 군사로 도성을 지키는 것도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지금 적군이 눈앞에 이르렀으니 일단 의주로 몽진하시고, 급히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원병을 처하는 것이 옳을까 합니다.” 라고 왕께 아뢰었다.

 

마침내 선조는 도성을 뒤로 한 채 피난길을 떠났다. 서울을 떠난 이튿날 밤 일행은 임진강 나루터에 도착하였는데, 비구름으로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으며 마침 소나기가 억수같이 쏟아져 내렸다. 왕의 일행은 강을 건너기 위해서 겨우 사공과 배를 찾았지만, 비바람으로 횃불조차 켤 수 없어서 건너기를 주저하고 있었다.

 

이때 도승지 이항복(李恒福)이 강기슭에 있는 정자를 발견하고 뛰어 올라가 불을 질렀다. 이 정자가 바로 율곡 이이가 들기름을 듬뿍 발라 닦은 화석정이었다. 아무리 비가 많이 내리고 있어도 정자에는 들기름이 가득 묻혀 있었으므로 순식간에 타올랐다. 그 불빛을 이용하여 왕의 일행은 간신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율곡 이이는 선조에게 왜구의 침공해 대비해 10만 대군을 양성해야 한다는 ‘10만양병설’을 주장했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이는 관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장차 일어날 일을 걱정하여 화석정에 들기름을 많이 먹였던 것이다. 나라의 환란을 예감하여 대비한 이이의 선견지명이 돋보이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