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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인연방/법정스님 말씀 등

무소유(無所有) / 법정 스님

by 연송 김환수 2016. 3. 7.

 

이 책이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 - 김수환 추기경


무소유(無所有) / 법정 스님


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담요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뿐이요.

 

마하트마 간디가 19319월 런던에서 열린

2차 원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도중

마르세유 세관원에게 소지품을 펼쳐 보이면서 한 말이다.

크리팔라니가 엮은 <간디어록>을 읽다가

이 구절을 보고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의 내 분수로는 그렇다.

 

사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나는 아무것도 갖고 오지 않았었다.

살만큼 살다가 이 지상의 적()에서 사라져갈 때에도

빈손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살다보니 이것저것 내 몫이 생기게 되었다.

물론 일상에 소용되는 물건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꼭 요긴한 것들만일까?

살펴볼수록 없어도 좋을 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흔히 자랑거리로 되어 있지만,

그만큼 많이 얽히어 있다는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난해 여름까지 난초 두 분()

정성스레, 정말 정성을 다해 길렀었다.

3년 전 거처를 지금의 다래헌(茶來軒)으로 옮겨왔을 때

어떤 스님이 우리 방으로 보내준 것이다.

혼자 사는 거처라

살아있는 생물이라고는 나하고 그애들뿐이었다.

그애들을 위해 관계서적을 구해다 읽었고,

그애들의 건강을 위해 하이포넥슨가 하는 비료를 구해오기도 했었다.

여름철이면 서늘한 그늘을 찾아 자리를 옮겨주어야 했고,

겨울에는 그애들을 위해 실내 온도를 내리곤 했다.

 

이런 정성을 일찍이 부모에게 바쳤더라면

아마 효자 소리를 듣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렇듯 애지중지 가꾼 보람으로

이른 봄이면 은은한 향기와 함께

연둣빛 꽃을 피워 나를 설레게 했고,

잎은 초승달처럼 항시 청청했었다.

우리 다래헌을 찾아온 사람마다

싱싱한 난초를 보고 한결같이 좋아라 했다.

 

지난해 여름 장마가 갠 어느 날 봉선사로

운허노사(耘虛老師)를 뵈러 간 일이 있었다.

한낮이 되자 장마에 갇혔던 햇볕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고

앞 개울물 소리에 어울려 숲속에서는

매미들이 있는 대로 목청을 돋구었다.

 

아차! 이때에야 문득 생각이 난 것이다.

난초를 뜰에 내놓은 채 온 것이다.

모처럼 보인 찬란한 햇볕이 돌연 원망스러워졌다.

뜨거운 햇볕에 늘어져있을 난초잎이 눈에 아른거려

더 지체할 수가 없었다.

허둥지둥 그길로 돌아왔다.

아니나다를까, 잎은 축 늘어져 있었다.

안타까워하며 샘물을 길어다 축여주고 했더니

겨우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어딘지 생생한 기운이 빠져버린 것 같았다.

 

나는 이 때 온몸으로 그리고 마음속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

그렇다.

나는 난초에게 너무 집념해버린 것이다.

이 집착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난을 가꾸면서는 산철(僧家遊行期)에도

나그네 길을 떠나지 못한 채 꼼짝을 못했다.

밖에 볼 일이 있어 잠시 방을 비울 때면

환기가 되도록 들창문을 조금 열어놓아야 했고,

()을 내놓은 채 나가다가 뒤미처 생각하고는

뒤돌아와 들여놓고 나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말 지독한 집착이었다.

 

며칠 후, 난초처럼 말이 없는 친구가 놀러왔기에

선뜻 그의 품에 분을 안겨주었다.

비로소 나는 얽매임에서 벗어난 것이다.

날아갈듯 홀가분한 해방감.

3년 가까이 함께 지낸 유정(有情)’을 떠나보냈는데도

서운하고 허전함보다 홀가분한 마음이 앞섰다.

 

이때부터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난을 통해 무소유(無所有)의 의미 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고나 할까.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소유사(所有史)처럼 느껴진다.

보다 많은 자기네 몫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소유욕에는 한정도 없고 휴일도 없다.

그저 하나라도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일념으로

출렁거리고 있다.

물건만으로는 성에 차질 않아 사람까지 소유하려 든다.

그 사람이 제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는

끔찍한 비극도 불사하면서.

제 정신도 갖지 못한 처지에

남을 가지려 하는 것이다.

 

소유욕은 이해와 정비례한다.

그것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간의 관계도 마찬가지.

어제의 맹방들이 오늘에는 맞서게 되는가 하면,

서로 으르렁대던 나라끼리 친선사절을 교환하는 사례를

우리는 얼마든지 보고 있다.

그것은 오로지 소유에 바탕을 둔 이해관계 때문인 것이다.

만약 인간의 역사가

소유사에서 무소유사로 그 방향을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싸우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주지 못해 싸운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간디는 또 이런 말도 하고 있다.

내게는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

그가 무엇인가를 갖는다면

같은 물건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

똑같이 가질 수 있을 때 한한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자기 소유에 대해서 범죄처럼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소유 관념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자기의 분수까지도 돌볼 새 없이 들뜬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한 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 이 육신마저 버리고 홀홀히 떠나갈 것이다.

하고 많은 물량일지라도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 번쯤 생각해볼 말씀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또 다른 의미이다.   <1971>  무소유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법정스님 명언

 

1.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물으라.

    자신의 속 얼굴이 드러나 보일 때까지 묻고,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건성으로 묻지 말고,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귀 속의 귀에 대고 간절하게 물어야 한다.

    해답은 그 물음 속에 있다.

 

2.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 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3.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전 존재를 기울여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이 다음에는 더욱 많은 이웃들을 사랑할 수 있다.

    다음 순간은 지금 이 순간 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지

    시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4.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

    공간이나 여백은 그저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과 여백이 본질과 실상을 떠받쳐주고 있다.

 

5. 나 자신의 인간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내가 얼마나 높은 사회적 지위나 명예 또는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나 자신의 영혼과 얼마나 일치되어 있는가이다.

 

6.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7. 내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느낌 과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나답게 살고 싶다.

 

8. 빈 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빈 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 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 있는 것이다.

 

9. 사람은 본질적으로 홀로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홀로 사는 사람들은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다.

 

10. 홀로 있다는 것은 물들지 않고 순진무구하고 자유롭고 전체적이고 부서지지

     않음을 뜻한다.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

 

                       -법정스님-

 

진정한 인연과 스쳐가는 인연은

구분해서 인연을 맺어야 한다

 

진정한 인연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좋은 인연을 맺도록 노력하고

스쳐가는 인연이라면 무심코 지나쳐 버려야 한다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헤프게 인연을 맺어 놓으면

쓸 만한 인연을 만나지 못하는 대신에

어설픈 인연만 만나게 되어

그들에 의해 삶이 침해되는 고통을 받아야 한다

 

인연을 맺음에 너무 헤퍼서는 안된다

옷깃을 한 번 스친 사람들까지 인연을 맺으려고 하는 것은

불필요한 소모적인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접촉하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지만

인간적인 필요에서 접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주위에 몇몇 사람들에 불과하고

그들만이라도 진실한 인연을 맺어 놓으면

좋은 삶을 마련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진실은 진실된 사람에게만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좋은 일로 결실을 맺는다

 

그것은 상대방에게 내가 쥔 화투 패를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다름이 없는 어리석음이다.

 

우리는 인연을 맺음으로써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피해도 많이

당하는데 대부분의 피해는 진실없는 사람에게 진실을 쏟아 부은 댓가로 받는

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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