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술이야기
추사의 작품가격은?
김영복 :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 입력 : 2011-04-04 오후 3:49:22
어느 날 천안에서 골동업을 하는 분께 전화가 왔다. 추사(秋史; 金正喜) 선생 편지가 나왔는데 사라는 것이었다. 일단 팩스로 내용을 보내 달라하고, 팩스로 받아보니 추사글씨가 아니라 추사 제자인 우봉(又峰) 조희룡(趙熙龍; 1797~1859)의 글씨였다.
가격을 물어보니 150만원이란다. 하여 그 가격에 바로 샀다. 그 분은 지금까지 그 편지가 우봉 글씨인지 모르고 추사의 가짜 편지를 내가 샀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150만원이면 우봉의 편지 값으로는 조금 비싼 듯하지만, 내용이 좋기 때문에 나로서는 괜찮게 샀다고 여겼다. 우봉은 추사편지를 그대로 모방하여 쓴 것이 시중에 많이 나돈다. 옛날에는 글씨나 내용을 배우고자 스승이나 존경하는 이의 글씨를 이렇게 많이 임모(글씨를 그대로 베껴 쓰는 것)했다.
그렇다면 추사의 글씨 값은 어느 정도나 할까?
추사의 경우는 제주도 유배 이후와 이전의 글씨가격이 꽤 차이가 있는 편이다. 관지(款識; 이름이나 도장)가 확실히 있을 경우 제주도 유배이전의 것은 약 300~800만 원, 제주 이후는 500~1500만 원이 기본이다. 관지가 없는 경우는 여기에서 30%정도 하향 조정된다.
하지만 작품의 수준에 따라 크게 좌우한다. 작품일 경우는 소품이면 편지값과 크게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작품이 약간 크거나 특별한 경우는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
추사편지는 제주이전에는 두 동생 김명희(金命喜; 1788~1857)나 김상희(金相喜; 1794~1861), 친구인 권돈인(權敦仁; 1783~1859), 제자인 조희룡과는 거의 구별하기 쉽지 않다.
자칫 잘못 사면 이 세 사람의 편지를 추사로 알고 살수도 있고 , 정반대로 운 좋게 추사의 글씨를 이 세 사람의 글씨로 싸게 살 수도 있다.
몇 년 전 어떤 이가 묻기를 추사의 '세한도'를 지금 가격으로 논한다면 얼마나 평가하겠느냐고 하여, 50억 원을 평가한 적이 있다. 반절지도 되지 않는 조그만 데에, 더군다나 먹물을 아껴서 제대로 그린 것 같지도 않은 그림에다 한 쪽에는 글씨만 잔뜩 써 있는 이런 그림을 누가 사느냐고 묻는 이도 있다. 안목의 차이가 이렇게 크다.
세한도는 그렇다 치더라도 추사의 현액(懸額; 가로로 된 현판 글씨)과 대련(對聯; 세로로 된 대구를 적은 글씨)은 어느 정도 갈까? 근래에는 추사글씨의 백미인 현액과 대련은 골동품시장에서 거의 구경조차 할 수가 없다.
만약 나온다면 글씨의 수준에 따라 2배 이상의 차이는 나겠지만 보통을 기준삼아 대련은 2~5억원, 현액도 그 정도쯤은 하지 않을까한다.
추사의 작품은 사람마다 보는 시각이 다르다. 그만큼 예술성이 뛰어나기 때문인데, 그 덕분에 사는 사람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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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史 처가 ‘건재고택’ 매각 일단 ‘스톱’
‘일로향각’ 등 현판 2~3점 추사 글씨 추정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가 처가인 건재고택 매각을 잠시 멈춰 세웠다.
김찬경(56·구속) 미래저축은행 회장이 별장으로 사용하다 경매에 내놓은 충남 아산시 외암리 민속마을 내 건재고택(중요민속자료 233호)이 추사가 쓴 것으로 알려진 현판 때문에 경매가 무기한 연기됐다.
유선시보(唯善是寶 착한 일을 베푸는 것이 보물)
대전지법 천안지원은 4일 건재고택에 대한 2차 경매에서 법원집행관사무실에 고택 내 현판 등에 대한 재조사를 명령하고 조사 후 경매를 재개한다고 발표했다.
이날 연기는 당초 소유주인 예안 이씨의 한 문중원이 “현판은 경매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언급이 없어 낙찰자가 고택의 일부로 알고 소유권을 주장하면 다툴 수 있는 만큼 이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이의제기해 경매가 늦춰진 것으로 알려졌다. 건재고택 경매물건은 대지 5714㎡, 고택 341㎡, 부속건물 143㎡, 수목 394그루 등이다.
건재고택에는 안채와 사랑채 등에 추사가 쓴 것으로 알려진 현판 2~3점이 있다. 현판에 일로향각(一香閣·한 마음을 화로에 넣고 담금질해 향기를 만든다), 유선시보(唯善是寶·착한 일을 베푸는 것이 보물), 무량수각(無量壽閣·만수무강의 뜻) 등의 글씨가 있다. 글씨 끝에 김정희의 또 다른 호 ‘완당’(阮堂)이라고 쓰여 있다.
추사가 건재고택에 친필을 남긴 것은 첫 부인과 사별하고 22살에 재혼한 부인이 이 고택 주인이던 조선 후기 성리학자 외암 이간(1677~1727)의 후손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추사는 인근 충남 예산이 고향으로 재혼 후 예안 이씨 집성촌인 이 처가 마을을 자주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금실 좋은 부부의 연이 현판 글씨로 남았으나 정확한 감정을 거친 적이 없어 진품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지난 4월 30일 1차 가격(47억 4284만원)보다 30% 낮아진 33억 1999만원에 2차 경매가 시작돼 여럿이 관심을 보였다.
천안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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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재고택보다 추사 김정희 친필 현판이 더 고가?
등록 일시 [2012-06-04 12:16:24]
미래저축은행 김찬경 회장 소유 건재고택 경매 연기
종중인 예안이씨건재공파, 건재고택의 현판과 편액 소유 주장
추사 김정희 선생의 친필 현판과 편액의 소유자는?
【천안=뉴시스】서정훈 기자 = 미래저축은행 김찬경 회장의 소유로 알려진 충남 아산 외암마을의 건재고택의 경매진행이 연기됐다.
대전지법 천안지원 경매5계는 4일 오전 10시 중요민속자료 233호인 외암마을의 건재고택에 대해 경매를 진행하려 했으나 종중인 예안이씨건재공파에서 연기를 신청해 이를 받아들였다.
경매 진행이 연기된 것은 종중인 예안이씨건재공파가 건재고택 안채와 사랑채에 내걸린 추사 김정희 선생의 친필 현판과 벽에 부착돼 있는 편액(액자)이 종중의 소유라고 주장하며 제기됐다.
이에 대전지법 천안지원은 지난달 31일 현판에 대한 탈부착이 가능한지 재현황조사명령을 내려 천안지원집행관사무실에서 현황조사를 벌이고 있다.
경매는 떼어갈수 있는 부합물의 경우 유채부동산으로 간주해 경매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현판과 편액이 떼어갈 수 있는 부합물로 판정날 경우 이번 경매에서 진행되는 건재고택의 부동산 가격보다 현판과 편액의 가격이 더 높아질 수 있다.
한편 천안지원 관계자는 "건재고택에 대한 경매를 진행하면서 현판과 편액에 대한 감정평가 자체를 제외한 부동산에 대해서만 감정평가를 실시했다"며 "재현황조사가 끝나면 기일을 다시 잡아 경매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건재고택은 지난 4월30일 최초감정가 47억4284만원에 1차 경매를 진행했으나 유찰되고 6월4일 최초감정가보다 30% 낮은 33억1900만원에 2차 경매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경매 물건은 송악면 외암리 196·180번지 5714㎡의 대지와 건재고택 341㎡, 부속건물 143㎡, 수목 394주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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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암고택 경매나온 사연은?
[100년주택을 찾아서]<10>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민속마을
머니투데이 김유경 기자 |입력 : 2014.04.06 12:47
국토교통부가 2015년부터 100년 주택인 '장수명 아파트' 인증제 도입에 나선다. 유럽에선 100년 주택 찾기가 어렵지 않지만 고속성장을 하며 재개발·재건축을 해온 국내에서는 100년 넘은 집을 찾기가 쉽지 않다. 주택이 100년 이상을 버텨내려면 유지·관리비도 만만치 않다. 100년을 버텨온 주택을 찾아 역사와 유지·관리 노하우, 어려움 등을 알아본다.
- 龍 두마리 솟아난 아름다운 정원 …'탄성'과 '탄식' 교차
- 조경뛰어난 '건재고택' 후손 사업실패로 소유권 넘어가
- 경매 나왔지만 2차 유찰뒤 취하…마을측 국가매입 건의
- 옆집 감찰댁도 공매 '감정가 20억' 땅값만 12억5000만원
외암민속마을 '건재고택' 사랑채 / 사진=김유경기자
외암민속마을 '건재고택' 사랑채 앞에 있는 소나무 두그루. 무릎을 꿇고
고택을 지키고 있는 듯 하다. / 사진=김유경기자
"이 소나무는 일본인들이 20억원에 사가겠다고 한 겁니다."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외암민속마을 '건재고택' 정원에 있는 소나무 두 그루에 대해 이 마을의 주민이 해준 얘기다. 두 마리 용이 무릎을 꿇고 고택을 지키는 듯한 기묘한 형상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20억원 이상 준들 이런 소나무를 구할 수 있을까.
소나무뿐 아니다. 사랑채를 바라보고 왼쪽으로는 학 모양을 한 연못이 있는데 마을 뒷산인 설화산 계곡에서 흐르는 시냇물을 끌어들인 것이다. 집안에 작은 시냇물이 흐르는 것.
시냇물 중간중간에는 두세 걸음에 건널 수 있는 작은 무지개다리도 놓았다. 건재고택의 정원은 행정안전부의 '한국정원 100선'에도 선정된 이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다.
외암민속마을 '건재고택' 사랑채 앞에 조성한 학 모양의 연못.
마을 뒷산인 설화산 계곡에서 흐르는 시냇물을 끌어들인 것이다.
/ 사진=김유경기자
아산시 송악면 외암민속길 19-6(외암리 196)에 위치한 건재고택은 4433㎡의 터에 문간채, 사랑채, 안채, 광, 곳간, 가묘가 있고 돌담을 두른 대표적인 양반가다.
조선시대 후기 성리학자인 외암 이간(1677~1727년)이 태어난 터로 18세기 말엽에 외암 선생의 후손인 건재 이욱렬 공이 현재 모습으로 건립했다. 18세손인 이상익(1848∼1897년)이 영암군수를 지냈기 때문에 영암집(영암군수댁)으로도 불린다. 건재 이욱렬은 이상익의 아들이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처가로도 유명하다. 김정희 선생의 글씨를 본떠 새긴 현판과 편액(액자)이 있다. 사랑채 기둥마다 추사의 친필로 추정되는 주련이 붙어있다. 이들 고미술품의 감정시가 총액은 1억3000만원에 달한다.
고미술품들의 감정가가 나온 것은 2012년 11월26일 건재고택이 경매시장에 등장해서다. 미래저축은행 파산재단에 따르면 1차 경매가는 48억7284만원. 아무도 경매에 나서지 않아 유찰됐다. 그해 12월31일 34억1099만원에 2차 경매가 진행됐지만 또 유찰됐다. 현재는 경매를 취하한 상태다.
외암민속마을 '건재고택'의 솟을대문 / 사진=김유경기자
건재고택이 경매에 나온 건 외암 이간 후손인 고 이준경씨가 건재고택을 담보로 미래저축은행에서 60억~70억원을 대출받고 갚지 못해서다.
13대째 외암민속마을에서 살고 있는 보존회사무소 이준봉 회장(62)은 "이준경씨가 서울에서 사업을 하면서 수십억 원을 빌려 갚아야 할 부채가 컸고 아들 이정직씨의 음료사업 자금도 필요해 고택을 담보로 대출을 크게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업실패로 돈을 갚지 못해 고택이 김찬경씨에게 넘어가면서 이준경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이 회장은 귀띔했다.
건재고택은 고 이준경씨의 부친과 소실이 거주하다 공가 상태인 적도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고 이준경씨가 2006년까지 거주했으나 소유권이 미래저축은행으로 넘어가면서 김찬경 전 미래저축은행 회장이 밀항을 시도하기 전까지 술파티를 벌이는 등 별장처럼 이용됐다.
외암민속마을 '건재고택'의 안채. 우물에서는 1급수 지하수가 나온다고 한다.
/ 사진=김유경기자
건재고택이 경매에 나와 주인을 찾지 못한 것은 중요민속자료 제233호이기 때문이다. 중요민속자료는 소유자 임의로 변경해서 사용할 수 없다. 게다가 이 마을 주민들이 문화재 보호를 위해 공공기관 매입을 강하게 요구하고 나서면서 경매도 취하됐다.
이준봉 회장은 "외암마을의 대표 가옥인 건재고택이 또 다시 불순한 외지인들의 투기 목적이나 주말 별장으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며 "문화재청이 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재고택 바로 옆집인 감찰댁도 최근 경매에 나왔다. 외암민속길 19-10(외암리 197)에 위치한 감찰댁은 미래저축은행 소유 부동산으로 현재 예금보험공사에서 공매(공매번호 미래110)를 진행한다.
김찬경 전 회장이 미래저축은행 명의로 소유 또는 근저당설정한 외암민속마을 주택은 건재고택과 감찰댁, 하서원 총 3채다. 이중 감찰댁이 지난달 25일 최저공매가격 10억925만원에 나왔으나 유찰됐다.
외암민속마을 '감찰댁'의 솟을대문 / 사진=김유경기자
대한감정평가법인의 감정평가서(2012년 9월)에 따르면 감찰댁의 평가액은 20억1850만원에 달한다. 우선 토지 3683㎡의 가격이 3.3㎡당 112만2000원으로 평가됐다. 땅값만 12억5222만원인 셈이다. 개별공시지가가 3.3㎡당 23만5620원인 데 비하면 5배 가까이 비싸다.
선례로 든 건재고택의 경우 3.3㎡당 164만3400원으로, 하서원은 108만9000원으로 평가됐고 인근 주택의 2010~2011년 실제 거래가격은 3.3㎡당 82만~86만원 수준이다.
이준봉 회장은 "이 마을 땅값이 다른 곳에 비해 2~3배 비싼데, 2006년 김찬경씨가 들어오면서부터 가격이 갑자기 뛴 것"이라며 "3.3㎡당 30만원 수준에서 거래되던 게 김찬경씨가 100만원씩에 사들이면서 이후 70만~100만원에 거래된다"고 설명했다.
외암민속마을 '감찰댁'의 사랑채. 최근 복원한 것으로 미준공 상태다.
/ 사진=김유경기자
외암민속마을 '감찰댁'의 안채 / 사진=김유경기자
감찰댁 안채(92.56㎡)는 조선후기에 지은 것으로 1억9800만원에 평가됐다. 사랑채와 문간채는 오래전 훼손된 것을 김찬경씨가 최근 복원했는데 미준공 상태다.
사랑채(131.78㎡)는 2억3300만원으로 평가하고 수목 79주에 대해서는 3억3400만원으로 책정했다. 한 마을 주민은 "감찰댁은 건재고택과 달리 중요민속자료가 아니기 때문에 곧 팔릴 것같다"며 "지난 경매에서 유찰된 이후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미래저축은행이 근저당을 설정한 하서원(천안지원 2012타경 13001)은 지난해 5월17일 경매에서 제3자에게 낙찰됐다. 하서원(6억6100만원)과 부속토지의 낙찰가는 총 10억593만원이었다.
외암민속마을 하서원. 미래저축은행이 근저당 설정했던 주택 중 하나로
지난해 경매에서 10억원 정도에 제3자에게 낙찰됐다. / 사진=김유경기자
예안이씨 집성촌인 외암마을은 1978년 충남 민속보존마을로, 1982년에는 민속관광마을로, 1988년에는 국가지정 전통건조물보존지구 2호로 지정됐다. 2000년 1월에는 마을 전체가 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민속자료 제236호로 지정·보존된다. 개별 문화재로는 건재고택 외에 중요민속자료 제195호로 지정된 참판댁과 지방무형문화재 연엽주가 있다.
이준봉 회장은 "외암마을에는 기와집 17채를 포함해 총 67채의 주택이 있는데 80% 이상이 100년 넘은 고택"이라며 "현재 55가구가 살고 있는데 이중 예안이씨는 30% 정도로 집성촌이라는 게 무색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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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180호 / 김정희필 세한도 (金正喜筆 歲寒圖)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실학자로 청나라 고증학의 영향을 받아 금석학을 연구하였으며 뛰어난 예술가로 추사체를 만들었고 문인화의 대가였다. 이 작품은 김정희의 대표작으로 가로 69.2㎝, 세로 23㎝의 크기이다.
이 그림은 그가 1844년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을 때 그린 것으로 그림의 끝부분에는 자신이 직접 쓴 글이 있다. 이 글에서는 사제간의 의리를 잊지 않고 북경으로부터 귀한 책들을 구해다 준 제자 이상적의 인품을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하며 답례로 그려 준 것임을 밝히고 있다.
한 채의 집을 중심으로 좌우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주위를 텅 빈 여백으로 처리하여 극도의 절제와 간략함을 보여주고 있다. 오른쪽 위에는 세한도라는 제목과 함께 ‘우선시상’, ‘완당’이라 적고 도장을 찍어 놓았다. 거칠고 메마른 붓질을 통하여 한 채의 집과 고목이 풍기는 스산한 분위기가 추운 겨울의 분위기를 맑고 청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마른 붓질과 묵의 농담, 간결한 구성 등은 지조 높은 작가의 내면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
인위적인 기술과 허식적인 기교주의에 반발하여 극도의 절제와 생략을 통해 문인화의 특징을 엿볼 수 있는 조선 후기 대표적인 문인화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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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필 세한도(金正喜筆 歲寒圖)는 조선 말기의 사대부 서화가 완당 김정희가 1844년 제주도 유배지에서 수묵으로만 간략하게 그린 사의체의 문인화이다.
1840년 윤상도사건에 연루되어 지위와 권력을 박탈당하고 제주도로 귀양 온 김정희에게 사제간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두 차례나 북경으로부터 귀한 책을 구해다 준 역관인 우선 이상적(1804~1865)의 인품을 날씨가 추워진 뒤에 제일 늦게 낙엽지는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에 비유하여 그려 준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작가의 발문이 화면 끝부분에 붙어 있으며, 이어서 이 그림을 받고 감격한 이상적의 글이 적혀있다. 그리고 1845년 이상적이 북경에 가서 그 곳 명사 장악진·조진조등 16명에게 보이고 받은 찬시와 함께 김석준의 글과 오세창·이시영의 배관기가 붙어 있어 긴 두루마리를 이루고 있다.
추사는 제자처럼 아끼던 역관인 이상적에게 세한도를 그려주었고, 이상적은 청나라에 이를 가지고 가서 추사의 옛친구를 비롯한 명사들의 글을 그림에 이어 붙인 저지에 받은 것이다.
그 후 세한도는 이씨 문중에게서 떠난 후 130여년 동안 유전을 거듭하다가 1930년대 중엽에 일본인 경성제대 교수 후지쓰카 지카시(藤塚鄰, 1879 ~ 1948)[1]에게 들어갔다.
세한도는 일제 말에 후지쓰카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서예가 소전 손재형(1902~1981)의 노력과 재력에 힘입어 국내에 돌아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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