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왕의 옥새보다 더 신용받은 이덕유(李德裕)의 어음
이덕유(李德裕)가 19세기말 국제적인 갑부로 명성을 떨치니 그의 어음 한 장이면 나라 안팎에서 다 신용해서 의심치 않았다.
당시 의주를 중심으로 청나라와 무역을 할 때는 물건값으로 이덕유(李德裕)의 어음이면 은 덩이 이상으로 믿어서 그의 수결이 든 종이쪽지가 국제통용 화폐가 되었다.
임금(→당시, 高宗)도 청나라에 관계되는 돈 쓸 일이 있으면 이덕유(李德裕)의 어음을 받아서 보냈다. 중국의 상인들은 국왕의 옥새보다 이덕유(李德裕)의 붓끝(→수결)을 더 믿었다.
이덕유 : 상인 (19 C 말엽 | 양인) 분류 : 관허상인 업종 : 역관(驛官) 활동지역 : 조선↔중국(청) 취급품목 : 해외농장경영 시기 : 조선시대 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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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주의 한 상인이 책문에서 청나라 상인과 거래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거래할 물건을 놓고 한참을 흥정을 했다. 이들은 자신이 가져온 물건의 값을 더 받기 위해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고, 결국 흥정이 성사되었는지 두 나라의 두 상인은 다시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이 물건의 값을 이 정도로 받는 것은 어디 가서도 못할 것이오! 내가 특별히 대인을 봐서 이렇게 해드리는 것이니, 다음 번에도 좋은 물건 부탁하오.” 청나라 상인이 말했다.
“아, 여부가 있겠소! 다음에도 중국에서 좋은 물건을 부탁하오. 홍삼 값은 은으로 받겠으나, 비단 값은 은 대신 어음으로 치르고 싶소이만···.” 조선의 상인이 말했다.
“어음이라고 했소? 어음은 곤란하오.” 그러면서 청나라 상인이 약간 얼굴을 찌푸렸다.
“믿을만한 어음이니 염려 마시오.” 조선 상인은 이렇게 말하면서 한 장의 어음을 꺼냈다. 그리고 이것을 청나라 상인에게 주었다.
청나라 상인은 받은 어음을 살펴보더니 곧 얼굴을 펴고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 대인의 어음 아니오! 이거라면 믿을 수 있소.”
이렇게 조선 상인과 의주 상인의 거래는 성사되었다. 그리고 이 거래에 사용되었던 어음은 바로 이덕유의 어음이었다. 한 청년의 운명을 바꾸고 대신 자신은 오래도록 고생했던 이덕유(李德裕)는 그 힘든 세월을 모두 보상 받을 수 있었다.
그는 돌려 받은 돈으로 청나라와 무역을 해서 더 많은 부를 쌓아 조선 최고의 갑부가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명성은 조선 땅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었다. 청나라의 상인들도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여서, 그의 어음 한 장이면 나라 안팎에서 다 신용해서 의심치 않았다.
당시 의주를 중심으로 청나라와 무역을 할 때는 물건값으로 이덕유(李德裕)의 어음이면 은 덩이 이상으로 믿어서 그의 수결이 든 종이쪽지가 국제 통용 화폐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고종 황제도 청나라에 관계되는 돈을 쓸 일이 있으면 이덕유(李德裕)의 어음을 받아서 보냈으며, 중국의 상인들은 국왕의 옥새보다 이덕유(李德裕)의 붓끝(→수결)을 더 믿었다고 한다.
이덕유는 가끔 고종의 부름을 받기도 했는데, 그의 재력이 임금의 체면을 세워주었기 때문이다. 고종은 자신의 재정이 고갈되어 사정이 궁할 때 이덕유(李德裕)를 차비문(差備門→편전의 정문) 안으로 불러들여 만났다고 한다.
이 때 승지로 임금을 모시고 있던 민영환(閔泳煥)은 손님을 사절하고 아무도 들여보내지 않다가도 ‘이음죽(李陰竹)이 찾아왔다’고 하면 얼른 맞이했다. 음죽이란 이덕유(李德裕)의 호(號)로 그가 잠시 음죽(陰竹) 현감을 지낼 때 읍호(號)를 따서 부른 것이다.
이처럼 임금에게 조차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었으니, 이덕유의 재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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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유(李德裕)가 사형수를 구해, 최초의 해외 농장주가 된 사연
이덕유(李德裕)는 19세기말 가장 큰 부자로 손꼽혔다.
그는 중인 신분으로 중국과 무역을 해서 억만 금을 모아, 구한말 권력으로 갑부가 된 ‘민 아무개’보다 더 재물이 많았다.
이덕유(李德裕)는 중국말을 뛰어나게 잘 했는데 젊어서 청나라로 가는 사신을 따라 북경으로 가는 길이었다.
요동 땅에 이르러 일행이 쉬고 있는데 혼자 거리 구경을 나섰다.
대륙의 새로운 풍물도 익히고 기이한 구경거리라도 없나 싶어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왁자지껄 사람이 모여들고 있었다.
옳거니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겠거니 기대를 걸고 군중 속을 파고 들었다가 흠칫 놀랐다.
손을 뒤로 묶이고 머리를 늘어뜨린 죄수가 곧 칼을 받을 자세로 앉아있었고 번쩍이는 칼을 든 회자수가 춤을 추고 있었다.
“저 사람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죽음을 당하는 건가?”
“공금을 친구에게 꿔줬다가 받아내지 못한 죄라오. 불쌍도 하지.”
“그 돈이 얼마나 되나?”
“천금이 넘나봐요.”
옆 사람에게 연유를 알아본 이덕유(李德裕)는 형 집행 관원 앞으로 나서서 유창한 중국말로 물었다.
“대인, 이 사람을 꼭 죽여야 하오?”
“친구를 믿었다가 이 꼴이 되었지만 나라 돈을 못 갚으면 면할 도리가 없소.”
“지금이라도 공금을 물어주면 목숨을 살려낼 수가 있단 말이오?”
“돈 갖고 오겠다는 친구는 약속한 기일까지 나타나지 않고 지금 이 요동 땅 천지에 그 돈을 갚아줄 사람이 아무도 없소.”
이 말을 들은 이덕유(李德裕)는 선뜻 품속에서 천 금짜리 어음을 꺼내 줬다. “친구를 도운 의리의 사나이를 죽일 수는 없소. 어서 이 돈으로 그 죄를 속(贖) 받도록 하시오.”
이래서 풀려난 그 죄수는 이덕유(李德裕) 앞에 꿇어 엎드려 큰 절을 올렸다.
“대인은 제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데려가주시면 무슨 심부름이라도 다하겠나이다.”
노예라도 되겠다는 그의 청을 뿌리치고 그는 선선히 돌아섰다.
그리고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덕유(李德裕)가 다시 역관(驛官)의 소임을 띠고 사신의 일행으로 중국 땅을 밟게 되었다.
요동 땅이 가까워오자 죽을 고생을 한 그 동안의 풍상이 그의 말발굽에 아로새겨졌다.
젊은 혈기에 천 금을 이름 모를 타국의 사형수에게 던져주고 돌아오다, 그는 백수건달에 미치광이 소리를 들었을 뿐만 아니라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사신 길을 따라가며 아는 듯 모르는 듯 역관은 돈을 장만해 가서 그 돈으로 중국의 물건을 사오면 큰 이문을 남길 수가 있었다.
일부는 외교 비용도 대고 정부사(正副使)의 여비도 보태어 온 것이 말기로 내려오면서부터 불문율이 되어 왔다.
그는 갖고 간 돈을 다 놓쳤으니 그런 구실을 하나도 못했을 뿐더러 그 돈의 절반은 꾼 돈이었기에 빚 갚느라 청춘을 다 보내다시피 했다.
요동 성문 밖에 이르자 화려하게 꾸민 수레를 세워놓은 사람이 길게 읍하며 말을 붙였다.
“대인께서는 조선서 오신 이덕유(李德裕) 통사(→통역관)가 아니십니까?”
“그렇소마는….”
그 사람이 얼른 이덕유(李德裕) 앞에 꿇어 엎드려 큰 절을 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제가 바로 20년 전 대인께서 살려주신 그 사형수입니다.”
“…….”
“이제야 은인을 다시 만나 뵙게 되니 하늘도 무심치는 않나 봅니다.”
그를 수레의 상좌에 앉혀 고루거각(高樓巨閣)인 자기 집으로 모셔가더니만 당장 큰 잔치를 열고 그의 처첩은 물론 자녀들 전부를 불러와 큰 절을 올리게 했다.
진수성찬에, 옥잔에 가득 술을 부어 이덕유(李德裕)에게 올리고는 문서 책자 한 권을 꺼내서 바쳤다.
“제가 대인의 은덕으로 목숨을 건진 지 얼마 안 되어 제 친구가 급히 꾸어간 그 공금을 도로 갖고 와 제게 갚았습니다만 그 돈을 대인에게 돌려드릴 길이 없었습니다.”
“그렇겠지…. 내가 그 뒤 좀처럼 연경(燕京→북경)에 올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지 못 했으니.”
“그래서 그 돈을 2~3년 동안 이자를 놓아 늘렸다가 토지를 샀습니다. 큰 농장이 되었는데 거기서 나오는 소작료가 해마다 만 석이나 됩니다. 이 장부를 살펴보십시오.”
“내가 어이 이걸 다 받겠소. 정 그렇다면 원금만 갖겠소.”
“아닙니다. 생명을 구해주신 은혜만 해도 백골난망인데, 어이 은인의 돈을 제가 차지하겠습니까.”
이래서 이덕유(李德裕)는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해외 농장을 갖게 되었고 해마다 추수해 오는 곡식을 은덩이로 바꾸어 오니 그 집 창고에는 ‘말발굽 은(馬蹄 銀→마제 은)’이 여러 창고에 그득했다.
해마다 1만 석의 재산이 중국에서 이덕유(李德裕)의 광으로 들어오는데, 그 1만 석도 돈으로 바꿔 중국에서는 값싸고 우리나라에서는 비싼 물건을 사와 파니, 몇 갑절 이문을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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