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위씨(江華韋氏)의 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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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씨(韋氏)는 중국(中國) 경조(京兆)에서 계출(系出)된 성씨(姓氏)로서 팽조(彭祖)의 손자가 위(韋)땅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고을 이름을 성(姓)으로 삼은 것이 시초(始初)가 된다. 한편 득유(得儒ㆍ?∼1278)는 충렬왕 즉위년(1274년) 대장군으로 지병마사(知兵馬事)가 되어 부사 손세정(孫世貞)과 함께 도원수 김방경(金方慶)의 휘하에서 제1차 일본정벌에 참전하여 이키섬(壹岐島)을 거쳐 북구주(北九州)를 쳤으나 태풍을 만나 돌아왔다. 이때 주장인 좌군사(左軍使) 김신(金侁)이 태풍으로 물에 빠져 죽었는데, 그를 구하지 못한 책임으로 김방경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1277년에 김방경에게 반감을 품고 있던 중랑장 노진의(盧進義)ㆍ김복대(金福大) 등과 모의하여 김방경이 왕과 공주 및 다루가치(達魯花赤)를 제거하고 강화에 들어가 반역을 꾀한다고 무고하여 원나라 장수 흔도(?都)와 홍다구(洪茶丘)에게 모진 고문을 당하게 하여 마침내 대청도로 귀양가게 하였다.
우리나라 위씨(韋氏)는 중원(中原) 출신으로 고려 광종 11년(960년) 동래(東來)한 위수여(韋壽餘ㆍ?∼1012)를 시조로 하고 있다. ‘고려사(高麗史)’의 기록을 보면, 그는 성품이 단정하고 신중하여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 없었으며, 광종 때부터 사선(司膳)으로 오래 있었으나 높이 등용되지 못하다가 목종 이후 누천하여 현종 즉위년(1009년)에는 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가 되었다. 나이가 많아 물러나고자 하였으나 도리어 궤장(?杖)을 하사받았다. 조신(朝臣) 가운데 가장 연로하므로 크게 등용하고자 하여, 1012년 2월 문하시중 상주국 강화현개국자 식읍오백호(門下侍中上柱國江華縣開國子食邑五百戶)에 제수되었으나 4월에 죽었다. 내사령(內史令)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안공(安恭).
후손들이 식읍(食邑)으로 하사받은 강화(江華)를 본관(本貫)으로 삼게 되었으나, 그후 문헌의 실전(失傳)으로 세계(世系)를 상고할 수 없어 조선에서 인천부사(仁川府事)를 지낸 조(組)를 일세조(一世祖)로 하고 본관(本貫)을 강화(江華)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가문을 빛낸 대표적인 인물로는 시조의 후손 근영(瑾英)이 고려 인종(仁宗) 때 소감(少監)을 역임했으며, 원(元)은 몽고(蒙古)의 내침으로 강화에 천도하는 왕(王)을 호종하여 평장사(平章事)에 이르러 가세(家勢)를 일으켰다.
1278년에 상장군이 되었는데 “나라에서 담선법회(談禪法會)를 베푸는 것은 원나라를 저주하려는 것이다.”라고 홍다구에게 무고하여 왕으로 하여금 변명하기 위하여 원나라에 가게 하였다. 이때 원나라에서 대청도에 귀양간 김방경과 함께 들어오게 하자 사태가 위태롭게 되니 공모자 노진의가 ”내가 이에 이른 것은 위득유 때문이다.” 하고 죽으므로, 득유가 이 말을 듣더니 잠도 자지 못하고 음식도 먹지 못하면서, 하늘을 우러러 보며 한숨만 지을 뿐이었다. 10여 일 더 있다가 득유 역시 혓바닥이 헐어 죽어 버렸다.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의령현감(宜寧縣監)과 인동현감(仁同縣監)을 거쳐 인천부사(仁川府事)를 역임한 조(組)가 간신(奸臣)들의 모략으로 평안도 영유(永柔)에 유배되었다가 그 곳에 정착하여 살면서 후손들이 번성하자, 그를 낙향시조(落鄕始祖)로 삼고 기일세(起一世)하고 있다.
1세조 조(組)의 9세손 관(觀)이 숙종 15년(1689년)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찰방(察訪)과 선전관(宣傳官)을 거쳐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을 지낸 후 홍성군수(洪城郡守)에 임명되었으나 사퇴상소문(辭退上疏文)을 올리자 왕명(王命)을 거역했다는 죄목으로 이건창(李建昌)과 함께 고군도(古郡島)에 유배되었다. 그 후 풀려나와 영유(永柔)에서 일생을 마치자 후손들은 위촌(韋村) 뒷산 주마현(走馬峴)에 솟대를 세우고 그의 영광된 유업(遺業)을 영원히 기렸다.
그외 인물로는 효행(孝行)이 뛰어나 정려(旌閭)가 내려진 응표(應豹)와 ‘백석창화집(白石唱和集)’을 남겨 문명(文名)을 떨쳤던 관식(觀植)이 유명했으며, 병식(秉植)과 달식(達植)은 광복운동(光復運動)에 신명(身命)을 바쳐 강화 위씨를 더욱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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