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내 일자리 빼앗는 시대, 정말 왔나
기사입력 2014-06-12 11:09
로봇을 만든 건 인간이지만, 인간에겐 로봇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68년작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에는 인공지능 컴퓨터 ‘할 9000’이 나온다. 인간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로봇이지만, 할은 자체적으로 지능이 발달해 인간의 명령을 거부하고 인간을 공격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1982년작 ‘블레이드 러너’에도 인간이 만든 복제인간 리플리컨트가 나온다. 리플리컨트 역시 진화해 인간과 지능이 대등해지며 폭동을 일으킨다.
감정을 인식하는 로봇 ‘페퍼’, 13살 수준의 인공지능 ‘유진’까지 로봇들의 능력이 빠른 속도로 확장되고 있다. 이 같은 로봇들의 등장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시선과 함께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란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로봇, 정말 내 일자리를 빼앗을까?
IT 공룡들의 로봇에 대한 관심
구글과 아마존이 뚜렷하게 겹치는 취향이 있다. ‘로봇’이다. 구글이 지난해 사들이 로봇공학 기업만 8곳이다. 구글이 인수한 기업은 인더스트리얼퍼셉션, 메가로보틱스, 레드우드, 오토퍼스, 봇앤돌리, 홀롬니, 레드우드로보틱스, 보스턴다이나믹스다. 안드로이드의 아버지 겸 구글 로봇 관련 총 책임자인 앤디 루빈은 보스턴 다이나믹스를 인수할 당시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구글의 생각을 실제로 구현한 초기 제품이 나오기까지 수년이 걸릴 것”이라며 “로봇이 상용화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구글이 인수한 보스턴 다이나믹스가 개발한 펫맨 로봇
'월스트리트저널'도 지난 2월, 구글이 폭스콘과 로봇 사업에 대해 협력해 나가기로 했으며 폭스콘 공장에 구글로봇을 공급한다고 보도했다.
아마존은 지난 2012년 로봇 고객주문처리업체 키바시스템즈를 약 8700억원에 사들였다. 키바시스템즈는 e쇼핑몰에서 고객 주문을 받은 후, 배송할 제품을 선별 포장해 고객에게 출하하는 과정을 자율 이동형 로봇과 품질제어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자동화한 곳이다. 지난 해 12월, '워싱턴포스트'는 “아마존은 3개 물류 센터에 1382개 로봇을 갖고 있다”라고 보도한 바 있다.
아마존은 지난해 12월에는 물류 배송 시스템 '아마존 프라임'을 선보였다. 무인 헬리콥터 로봇 ‘드론’이 구매자가 물건을 산 뒤 30분 안에 배송지로 물건을 가져다 주는 시스템이다. 제프 베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는 드론이 아마존 물류센터에서 반경 16km까지 30분 안에 배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드론은 상용화를 위해 미국 연방항공청(FAA)의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 '아마존 프라임 에어' 소개 영상 보기
육체 노동에서 자동화로 바뀌며 로봇 역할 커져
성낙환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과거 산업혁명 시기 증기기관이 발명되면서 단순 육체 노동 인력은 줄어들고 공장에 있는 기계를 제작하거나 유지·보수하는 사람의 수요가 늘어난 사례에서 보듯이 인공지능의 확산은 산업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라고 내다봤다.
▲테슬라 조립 라인. (사진: https://flic.kr/p/bs52Uo. CC BY)
성 연구원은 또한 “예전 로봇은 공장이나 기계 등 육체적 노동쪽에 포커싱이 됐다면 요즘은 자동화 서비스에 집중되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 18세기 말 : 육체노동의 기계화
18세기 말의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힘을 월등히 능가하는 동력과 기관을 바탕으로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수 있는 기계들이 만들어져 왔다. 이전에 7년 이상의 도제 생활을 요구하던 장인적인 노동은 그 이후 기계적인 동작들로 분해되어 한편으론 기계들에 넘겨지고 다른 한편으론 인간의 노동 자체를 탈숙련화하고 단순화했다. 이를 위해 육체적 동작들은 역학적 수단을 통해 분석되어 표준화된 요소동작으로 분해되었다. 테일러와 길브레스에 의한 이른바 ‘과학적 관리’나 그에서 연원하는 인체공학의 발전은 이러한 시도의 요체를 보여준다.
■ 1970년대 이후 : 정신노동의 기계화
1970년대 들어와 또 한 번의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다. 육체 노동에 이어서 인간의 다른 요소들을 기계화하려는 시도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일련의 복합적인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어떤 경우에는 컴퓨터의 발전을 들기도 하고, 그것의 소재를 제공한 반도체혁명 내지 극소전자기술혁명을 들기도 하며, 그것의 이론적 지반을 제공한 인공두뇌학을 통해 이해하기도 하고, 그러한 ‘혁명’의 구체적 양상이었던 ‘자동화’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혹은 이와 약간 다른 측면에서 정보혁명이나 디지털 혁명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출처 : 이진경, ‘인간, 생명, 기계는 어떻게 합류하는가?’)
매사추세츠공대(MIT)의 학자이자 책 ‘기계와의 경쟁(Race Against the Machine)’의 저자인 에릭 브린욜프슨과 앤드류 맥아피는 “2000년 이후 생산성은 견고하고 지속적으로 증가하지만 고용은 갑자기 시들해진다”라며 “2011년까지 경제활동과 일자리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나타나 일자리 창출이 병렬적으로 증가하지 않은 채로 경제 성장을 보여주었다”라고 노동자들이 ‘기계와의 경쟁’에서 패배하고 있다고 보고한다.
로봇이 일자리를 빼앗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었다. MIT의 과학잡지 ‘테크놀로지리뷰’의 편집장인 데이비드 로트먼은 '테크놀로지리뷰'를 통해 "로봇이 일자리를 뺏어간다는 지적은 자동화가 가져올 일차적인 효과만 고려했기 때문"이라며 "기계를 사용해 절약한 자금은 더 높은 임금과 이익 등에 재투자돼 수요를 창출한다"라고 밝혔다.
기술철학박사인 손화철 한동대 교수는 “인공지능을 합친 로봇 때문에 생기는 일자리가 분명히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고 보는 것은 너무 낙관적 입장이라고 본다”라며 전체적인 일자리 숫자가 늘어난다고 장담할 수 없다고 봤다.
손 교수는 “로봇을 폐기하는 산업이 일어나고 거기서 일자리가 생길 것이나 과거에 사람이 하던 일을 로봇이 하게 되면 그 사람은 해고될 것”이라며 “몇 명은 아주 중요한 일을 많이 하고, 나머지는 (로봇보다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냥 노는 사회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기술력 없는 노동자 일자리부터 위협
'더퓨처리스트' 편집자이자 미래학자인 토마스 프레이는 “2030년까지 20억개의 일자리가 없어지고 포춘 500대 기업 가운데 절반은 문을 닫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자리 20억개는 세계 일자리의 절반에 해당한다. 20억명이 일자리를 잃는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는 “2030년이 되면 미국 시민들은 무인항공기 드론으로 1주일에 평균 4.5개의 물품을 배송 받고 시민가운데 40%는 무인자동차로 여행을 하고 3D 프린터로 음식을 만들어 먹을 것”이라고도 내다봤다.
에릭 브린욜프슨 교수는 “가장 위협받는 이들은 기술이 없거나 중간 정도의 기술을 지닌 노동자들로, 이 그룹이 불균형적으로 더 큰 타격을 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 2013년 '워싱턴포스트'는 2013년에 일자리 현장에 이미 투입됐거나 준비 중인 로봇을 소개하며 ‘로봇이 대체할 직종 8가지’를 소개한 바 있다.
▲ https://flic.kr/p/giLBUj
워싱턴포스트가 뽑은 ‘로봇이 대체할 직종 8가지’
1. 물류 담당 인력
2. 단순 조리 인력
(맥도널드는 이미 유럽 매장에서 주문을 받는 사람을 ‘터치 스크린’으로 대체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들어진 음식을 다시 가열하는 정도인의 업무는 로봇에 대체될 확률이 크다는 전망이다.)
3. 의류 판매자
(이미 온라인으로 옷을 사는 사람들의 수는 늘어 많은 오프라인 의류 매장이 문을 닫았다. 워싱턴포스트는 의류 생산과 물류,유통 전반에 로봇·IT 자동화가 확산되며 없어질 수 있는 위험 직군이라고 내다봤다. )
4. 매장 관리원
5. 트럭 운전사
(워싱턴포스트는 자율주행자동차 기술로 570만명의 트럭 운전사가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6. 농장 설비 관리자
(PC와 로봇이 협업하는 농장이 현재 실험 단계에 있다고 한다.)
7. 애플 제품을 만드는 사람
(폭스콘은 세계 최대 규모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회사로 중국 임금 상승이 계속되자, 가능한 많은 인력을 로봇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진행하고 있다. 구글로봇을 들이기 위해 지난 2월 구글과 손잡기도 했다.)
8. 낮은 수준의 연구활동을 하는 연구원들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는 한 연구소는 혈액 샘플을 분류하고 색인할 수 있는 로봇을 개발하고 있으며 이보다 높은 수준의 연구 활동을 할 수 있는 연구용 로봇도 등장할 예정이다.)
'비즈니스인사이더'도 지난 1월, '이코노미스트'를 인용해 20년 후 없어질 직종을 꼽아 보도했다. '비즈니스인사이더'가 뽑은 없어질 일자리 1위는 ‘텔레마케터’였다.
▲ https://flic.kr/p/by4Wbf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보도한 ' 20년 후 없어질 일자리들'
1. 텔레마케터
2. 회계사 및 회계감사관
3. 소매점 판매 사원
4. 과학기술 전문 저술가 (컴퓨터 전문용어를 쉽게 풀어 집필하는 사람)
5. 부동산 중개인
6. 타이피스트
7. 기계 기술자
8. 상업용 항공기 조종사
9. 경제전문가
10. 건강 관련 기술 전문가
성낙환 연구원 역시 "단순 질의 응답이 주된 업무인 콜센터나 특정 분야에 한정된 지식을 요하는 전문가, 실시간 모니터링 요원 등은 자연어처리, 전문가시스템, 인텔리전트 에이전트 등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전망했다.
로봇,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가 중요해
손화철 교수는 인간과 일자리를 두고 공존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일자리를 두고 공존하는 문제라면, 인간의 고유한 능력을 발휘할 여지를 두고 나머지 일을 로봇에게 맡기는 방법이 있겠지요. 그러나 이것은 자본주의와 기술이 서로를 자극하면서 무조건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현재로서는 생각하기 상당히 힘든 일입니다. 현재의 경제체제에서 로봇의 발달, 상용화, 광범위한 사용은 대부분의 사람들을 경제적인 측면 뿐 아니라 인간적인 측면에서도 소외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공산이 큽니다.”
대안은 있을까. 손화철 교수는 해결책은 로봇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경제 체제 변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답했다. 인간 노동의 조건을 악화시키는 범인은 로봇이 아니라 우리 사회체제라는 얘기다. “포괄적으로 말하자면 '누가, 왜 로봇을 개발하는가?'를 생각하면 된다고 봅니다. 기업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로봇을 개발하는 경우와 국가가 전쟁을 잘 하기 위해 개발하는 경우와 시민이 참여해서 복지와 인간적인 삶을 위해 개발하는 경우가 다 다를 것입니다. 어차피 로봇은 개발될 것인데, 어떻게 하면 그것을 잘 조정할 것인가를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권혜미 기자 hyeming@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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