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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인연방/불교용어

불교교리 삼법인(三法印)

by 연송 김환수 2014. 5. 4.

불교교리 삼법인(三法印)

 

삼법인(三法印)은 불교의 근본 교의를 셋으로 표시한 것으로 세 가지 불변의 진리란 뜻이며 일체는 무상(無常)하고 고()이고 무아(無我)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일체는 어떤 속성을 갖고 있는가에 대한 세 가지 명제를 법의 특성이란 뜻으로 삼법인이라고 부른다.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일체개고인(一切皆苦印)을 말하는데 불교의 우주관으로서 연기법(緣起法)을 잘 설명한 말로 여기에 도장 인()자를 붙인 것은 틀림없는 진리다. 확실한 표시가 된다는 의미이다.

 

부처님께서 중생이 잘못된 견해에 빠지지 않도록 인간과 사물의 실상을 이 세 가지로 밝혀 주셨기 때문에 마치 진리의 도장과 같다고 하여 법인(法印)이라고 한다.

한편 이 삼법인은 초기 원시경전(原始經典)에서는 줄기차게 설해지고 있었으나 후대에 와서는 일체개고를 빼고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을 넣어 삼법인(三法印)으로 표현하고 있다.

 

(1)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행(諸行)은 생멸 변화하는 (), ()의 현상이다. 일체 사물과 인간 그리고 그 마음의 현상은 시시각각(時時刻刻)으로 생멸 변화하여 항상 변천하는 것이며 잠시도 쉬지 않고 변하므로 영원히 똑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제행무상은 존재에 대한 시각적 판단으로서 항상 불변하는 존재로 생각하여 부질없이 온갖 것에 집착해 있는 중생들에게 존재의 덧없음을 일깨워 주는 것으로 이 그릇된 견해를 없애기 위해 우주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진리는 모든 것이 무상하다고 말한다.

 

인간이 생로병사(生老病死)를 거치지 않을 수 없듯이 이 우주 세계의 모든 존재도 한결같이 나고 머물고 변하고 사라지는 과정을 반드시 거치게 된다. 자연과 인간의 바탕을 이루는 물질적 요소는 원자가 소립자로 구성되어 있고 이 소립자 또한 불변의 존재가 아니라고 현대과학이 실증하고 있다. 그리고 정신적 요소라 할 수 있는 영혼 역시 오온이 무상함으로써 항구불변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체는 무상하다.고 부처님은 단언하신다.

 

불교의 무상설(無常說)은 중생들이 무상함을 유상함으로 보고 집착하는 무지를 깨우치기 위함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이 명제(命題)는 집착을 떠나게 할 뿐만 아니라 존재가 영원한 것으로 착각하는 그릇된 견해를 떠나게 함으로써 새로운 가능성과 창조의 원리가 되는 것임을 깨닫게 하는 가르침이다. 따라서 올바른 인생관을 수립코자 한다면 먼저 현실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직시해야 할 것이다.

변화(變化)의 법칙 : (:원인) + (:조건) (:결과적 현상)

변화의 현상(現象)

. 생물현상 : (), (), (), ()

. 정신현상 : (), (), (), ()

. 우주현상 : (), (), (), ()  

변화의 형태(形態)

. 찰나무상(刹那無常) : 순간적으로 변화 상견(常見)에 빠진다.

. 상속무상(相續無常) : 일정기간을 통해 변화 단견(斷見)에 빠진다.

 

상견(常見)

사람은 죽으나 자아는 없어지지 않으며 오온(五蘊)은 과거나 미래에 상주 불변하여 간단(間斷, 잠시 끊어짐)하는 일이 없다고 고집하는 그릇된 견해를 말한다.

단견(斷見)

만유(萬有)는 무상한 것이어서 실재하지 않는 것과 같이 사람도 죽으면 몸과 마음이 모두 없어져서 공무(空無, 온갖 사물은 낱낱의 자성이 없음을 말함)에 돌아간다고 고집하는 그릇된 견해를 말한다.

 

(2)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모든 현상은 하나 하나에 어떤 실질적인 물체나 실질적인 본질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환경에 의해서 생겼다가 어떠한 환경에 의해서 사라지기 때문에 하나 하나에는 실체가 없다. 즉 시간적으로 일체의 존재가 무상한 것 처럼 공간적으로도 일체의 모든 존재는 연관되어 있어(공간적 연기(緣起)라 함) 만유의 제법(諸法)은 무아(無我)라는 것이다.

 

이 무아는 고정된 실체로서의 내가 없다는 존재론적 입장을 밝힌 것으로 만유의 모든 법은 인연으로 생긴 것이어서 자아인 실체가 없으나(다른 것이 있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가 있으며, 나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相對的)인 존재이다) 사람들은 아()에 집착하는 그릇된 견해를 일으키므로 이를 없애기 위해 무아라고 말한다.

 

우리가 보통 나라고 할 때 그 나는 육근(六根)을 말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육근이나 오온(五蘊)을 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인간이 나라고 할 때는 상일성(常一性)과 주재성(主宰性)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육근, 오온은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다. 무상함은 상일성이 없기 때문이고 괴로움은 주재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을 결코 나의 실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불교의 무아관(無我觀)은 나의 절대적인 부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참다운 나를 찾기 위한 기초작업이라고 보아야 한다. 나 아닌 것을 나로 착각하고 있다면 참다운 나는 그러한 착각의 부정을 통해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가르침은 나라든가 내 것이라는 자아에 대한 고정적 관념을 부정하는 것으로 더 큰 인생관과 세계관을 갖게하는 바탕이 된다.

 

인무아(人無我) : (), (), (), (), ()의 오온(五蘊)이 화합하여 된 심신에 상일주재(常一主宰)의 실아(實我)가 없다는 말로 신체와 경계라는 것은 아뢰야식(阿賴耶識)으로부터 나타난 것으로서 변하고 변하여 머무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법무아(法無我) : 만유의 제법은 모두 인연이 모여 생긴 일시적인 가짜 존재이므로 참다운 체성(體性)이 없다는 말로 신체와 경계에 대해 나와 내 것이라는데 집착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3)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

생사에 윤회하는 고통을 벗어난 이상향인 열반적정의 진상을 말한 것으로 불교는 무상이라는 무상론(無常論)과 무아라고 하는 무아론(無我論)이 있는 반면에 그 근본 진리는 항상 유와 무를 초월하여 항상 고요하고 실상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열반적정(涅槃寂靜)이라고 한다.

 

모든 괴로움의 원인을 관조(觀照)하여 고()의 속박에서 벗어난 해탈이 열반이며 불교의 목표로서 종교적 실천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 열반적정(번뇌소멸煩惱消滅)이다. 이는 새롭게 순화(醇化)된 종교적 자각과 실천행으로 나타나는 절대 생명의 활동으로 우리의 욕망에 대해서 그 실체와 진실을 추구하여 잘못된 자신을 억제하고 모든 번뇌를 소멸함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이며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자재할 수 있는 경지이다.

 

(4) 일체개고(一切皆苦)

시간적으로 덧없고 공간적으로 실체가 없는 일체의 존재 가운데 포함되어 있는 인간의 현실은 모든 것이 고통이라는 것으로 일체개고라고 한다. 일체가 영원히 머물러주지 않는 곳 즉 무상(無常)한 곳에 불안과 슬픔이 있는 것이다. 인간의 느낌에는 괴로움과 즐거움 그리고 버림의 세 가지가 있다.

 

삼법인설(三法印說)의 괴로움은 괴로움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과 즐거움도 괴로움도 아닌 것까지도 괴로움으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무상하기 때문이다. 이런 견지에서 부처님께서는 무상한 것은 고(). 라고 단정하신다. 그래서 생로병사, 미워하는 사람과의 만남,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 구하는 바를 얻지 못함 등 오취온(五取蘊)이 모두 괴로움이라고 하셨다.

 

인간은 상주불변의 인식과 자아의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반해 제법은 끊임없이 생멸 변화하여 인간의 욕망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어 인간의 일체 현실은 가치적으로 괴롭다고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는 인생의 의의와 가치를 부정하는 염세관(厭世觀)이 아니라 현실을 바르게 인식함으로써 보다 향상된 삶을 이루고자 하는 절실한 종교적 요구의 발로인 것이다.

 

한편 삼법인은 일체개고의 항목을 다시 합하여 사법인(四法印)이라 할 때도 있었으나 후에 이 일체개고(一切皆苦)를 빼고 열반적정(涅槃寂靜)을 넣어서 삼법인(三法印)으로 정해져 내려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