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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방/오늘의 소사

일본이 반출 막으려한 '독도 팻말'의 비밀

by 연송 김환수 2013. 12. 5.

일본이 필사적으로 반출 막으려한 '독도 팻말'의 비밀

 

한국인이 2009.3.15 경매에서 구입해 국내로

첫 공개 1837년 니가타 해안에 걸려

 

"울릉도 오른쪽 섬은 한국땅 항해 엄중히 금지" 적혀

 

언론 "팻말 한국 가면 안 돼"

일본이 한국으로 팔려갈 것을 우려하던 일본 에도(江戶)시대의 나무 팻말이 극적으로 한국으로 넘어왔다.

 

나무팻말에는 1837년 독도와 울릉도가 한국 땅이니 일본인의 항해를 금지시킨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팻말은 2009년 3월 일본 교토에서 경매에 나왔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당시 일본에선 독도를 울릉도로 불러 지금의 독도와 다른 곳인데 한국측이 이를 이용해 자국의 영토로 주장하는 잘못된 주장을 한다""이 팻말이 한국측에 넘어가면 안 된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그랬던 이 팻말을 한국인 사업가가 150만 엔(2000만 원)에 입수했다. 팻말은 일본 에도 바쿠후(幕府)가 독도와 울릉도 주변에서 조업을 한 자국 어민 2명을 해금령(海禁令) 위반으로 처형한 이듬해에 만든 것이다.

 

 

일본 경매시장에서 150만 엔(2000만 원)에 팔려 한국으로 반입된 1837년 일본 에도막부시대의 독도 도해(渡海) 금지팻말. 가로 72, 세로 33크기의 소나무 팻말로 윗부분에 2개의 고리가 달려 있다.

독도와 울릉도가 한국 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사진은 흐릿해진 글자를 판독하기 위해 적외선 촬영한 것이다.

 

나무 팻말은 18372월 에도 바쿠후의 명령을 받아 다카다번(高田藩)이 니가타현 지역 해안에 게시한 것으로 가로 72, 세로 33크기다. 팻말 위쪽에는 두 개의 고리가 달려 있어 게시판에 걸었던 것으로 보인다.

 

팻말에는 "죽도(울릉도의 일본 이름)는 겐로쿠(元祿·1688~1704)시대부터 도해(渡海) 정지를 명령한 곳이므로 다른 나라 땅에 항해하는 것을 엄중히 금지한다""죽도의 오른쪽 섬도 항해해선 안 된다"로 기록돼 있다. 오른쪽 섬이란 독도를 말하는 것이다.

 

이상태 국제문화대학원대학 석좌교수는 "이 팻말은 죽도(울릉도)의 오른쪽 섬(독도)까지 항해금지를 내린 것으로 기록돼 일본이 독도를 한국 땅이라고 스스로 인정한 중요한 사료"라고 했다. 바로 이 '오른쪽 섬'이란 구절 때문에 일본측이 팻말의 반출을 막으려 했던 것이다.

 

도해금지령 팻말은 일본의 돗토리현 하마다시 향토사료관에도 한 개가 남아있다. 가로 1m, 세로 50크기로 이번 발견된 팻말보다 2년 뒤인 1839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 팻말은 죽도(울릉도)에 도해금지령을 내린 것으로 기록돼 일본측은 독도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우리는 독도가 죽도(울릉도)의 부속 섬이니 특별히 기재하지 않았다는 논리를 펴왔다.

 

그러나 이번 팻말 발견으로 일본이 독도를 자국 땅에서 배제한 것이 명확해진 것이다. 팻말은 이어 "해상에서 다른 나라 배와 만나지 않도록 하고 될 수 있는 한 먼 바다에 나오지 않도록 분부한다"고 되어 있다.

 

당시 일본 기록을 보면 "에도 막부의 도해 금지 통지는 팻말로 해서 게시판에 걸어두고 고다이칸(치안담당자)은 방방곡곡에 이를 알려야 한다"고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이런 울릉도·독도 도해금지령 팻말은 일본 해안 곳곳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팻말은 2009년 315일 일본 경매회사인 코기레카이(古裂 )에서 가격 120만엔으로 공개 경매에 부쳤다.

 

일본인 3명이 138만엔과 145만엔, 150만엔으로 응찰했다. 5만엔 차이로 낙찰받은 것을 한국인 사업가가 인수했다.

 

이 팻말이 경매에 나오면서 관심을 쏟던 일본 언론들은 낙찰된 이후에도 150만엔에 팔렸지만 낙찰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선 경매회사가 함구하고 있다는 보도와 함께 팻말 행방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한국인 사업가는 "이 팻말이 한국으로 넘어가면 안 된다는 논조로 일본 언론이 관심을 보여 놀랐다"

 

"일본측이 반출을 금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보따리를 싸고 풀기를 여러 번 거듭했다"고 했다.

 

이 사업가는 사태가 잠잠해지길 기다려 10개월 뒤인 2010년 1월에야 국내로 들여왔다.

 

팻말은 국내에 들어온 뒤 좀벌레가 먹은 구멍에서 나무가루가 계속 흘러나와 국내 문화유산보존연구소에서 보존처리 작업을 거쳐 공개됐다.

 

팻말은 살균살충 기능을 가질 수 있도록 훈증처리하고, 부스러진 표면은 전통아교로 처리했다.

 

나무 재질은 소나무였고 흐릿한 글자는 적외선 촬영으로 판독했다.

 

출처 : 2010. 3. 6 조선일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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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팻말에 적혀있는 글자는

 

今度 松平周防守元領分 石州濱田松原浦ニ罷在候 無宿八右衛門 竹嶋江渡海いたし候    一件 吟味之上 右八右衛門其外 々厳科ニ被行候 右嶋往古ハ 伯州米子之者共 渡海魚漁 等いたし候得共 之度 朝鮮國江御渡ニ相成候以 渡海停止仰付候場ニ有之

 都而異國渡海之義者重キ御製禁ニ候 向後右嶋之義も同ニ相心得 渡海いたし間敷候  勿論國之廻船等 海上ニおゐて 異國船不出合 筋等心かけ可申旨 先年も相觸候通り  弥相守以者可成たけ遠沖不致 廻り可申候

 右之趣御料者御代官私領者 領主地頭より浦方村町共 不洩可觸知候 尤觸書之趣 板札 ニ認 高札等ニ懸置可申者也

二月

右之通可被相觸候

  

Text from 郡方御 14『加賀藩農政経済史料』第213回、1966 

 

대략의 해석

 

1. 금번, 松平周防守의 원래의 영지인 石州의 하마다(浜田) 松原浦에 있었던 주소가 정해져 있지않은 八右衛門이 다케시마(竹島, 울릉도)에 도해한 한 사건을 검토한 뒤, 오른쪽의 八右衛門외 기타는 각각 엄벌에 처해졌다.

 

오른쪽의 섬은, 옛날은 伯耆·米子 사람들이 도해해서 어로 등을 했지만, 겐로쿠(元祿) 시대에 조선국에 건네주셨을 때부터 도해 정지를 분부하셨던 곳이다. 모두 다른 나라에 도해하는 것은 엄중히 금지이다.

 

앞으로, 오른쪽의 섬도 같음을 알아서 도해해서는 안된다. 물론, 각 국의 廻船등은 해상에서 다른 나라의 배를 만나지 않도록 탈 것등을 유념하는 취지는 예전에도 통지한 대로이지만, 이후로 될 수 있는 한, 먼 앞바다에 나오지 않도록 몰고 돌아다니는 것을 분부한다.

 

오른쪽의 趣御料, 代官私領은 방방곡곡 누설이 없도록 접촉해서 알려야 한다. , 통지의 취지는 팻말로 해서 게시판 등에 걸어 두도록 분부한다.  (天保 8) 2월 오른쪽과 같이 통지할 수 있어야 한다.

 

위의 문장을 원래 형태와 같은 세로쓰기로 풀어본다. 

 

"향후 오른쪽의 섬도 같음을 알아서 도해해서는 안된다" 

오른쪽의 섬이란, 오른쪽에 쓰여 있는 섬 즉 "독도(竹嶋)"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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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獨島)

독도(獨島)는 동해의 남서부, 울릉도와 오키 제도 사이에 있는 섬으로 동도와 서도를 포함한 총 91개의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독도의 동도는 동경 1315210.4, 북위 371426.8초에 자리잡고 있고, 서도는 동경 1315154.6, 북위 371430.6초에 위치해 있다.

 

이 섬은 현재 대한민국이 실효 지배하고 있으나, 일본이 섬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영토 분쟁 지역이다.

 

대한민국에서는 1952년 당시 이승만 전 대통령이 평화선을 선포하여 일본에 대해 강경하게 맞선 경우를 제외하고는 독도 문제에 대하여 대체적으로 조용한 외교정책을 취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 섬을 대한민국이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이 이 섬을 일본에 반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팔도총도 조선 중종 25(1530)에 완성한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관찬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조선 전도인 팔도총도가 실려 있다. 동해에 울릉도, 우산도를 나란히 표시하고 있는데 울릉도와 독도를 나타낸 것이다.

 

위의 '韓國(한국)'은 한진호 씨 글씨이다.

 

한국령 1954년에서 1956년까지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도 않은 때에 울릉도 민간인들로 구성된 독도 의용 수비대는 일본의 어부들로부터 독도를 지켰다.

 

 '韓國領(한국령)'이라는 글씨는 독도 의용 수비대가 활약하던 당시에 새겨 놓은 것으로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임을 천명하기 위해 한국령(韓國領)’이라는 영토 표시를 독도 남동쪽 암벽에 새겼다.

 

한국령 영토표시의 형태는 화강암 암벽에 한국령이라는 세 글자를 세로로 음각, 부조되어 있다. 크기는 약 120×40정도이다

 

 

독도 의용 수비대 우리는 독도를 노래나 구호만으로 사랑하지 않았다. 그 곳에 살며 독도에 불법 침입한 일본 어부들이나 해군들과 목숨을 걸고 전투를 벌여 물리친 영웅들의 넋이 구천에서도 지켜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독도 의용 수비대원 명부

 

고성달 김수봉 김인갑 김장호 김재두 김현수 안학률 이상국 정이관 정재적 조상달 한상용 허신도 홍순칠 황영문(이상 사망자)

 

구용복 김경호 김병렬 김영복 김영호 김용근 박영희 서기종 양봉준 오일환 유원식 이규현 이필영 이형우 정원도 정현권 최부업 하자진(이상 생존자)

 

1996420, 국무회의에서는 고 홍순칠 대장에게 4등급인 보국훈장 삼일장을, 나머지 대원 32명에게는 5등급인 광복장을 각각 수여하기로 의결했다.

 

태극기 게양대 밑에 새겨진 '한국령' 글씨

 

독도 수비대가 세운 팻말 (표지석, 標識石)

한자로

"大韓民國 慶尙北道 鬱陵郡 獨島"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

라고 새긴 표지석으로 동도 선착장 부근에 있다.